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7

  선화성결교회 차승환 목사 심방을 다녀오다가 교회 앞에서 목욕탕에 가는 아주머니 한 분을 보았습니다.

츄리닝에 슬리퍼를 신고 흔히 말하는 목욕 바구니에다 샴푸, 린스 같이 고만고만한 목욕제품 몇 가지와 우유랑 수건까지 담아 편하게 가는 모습이 마냥 부럽기만 합니다.

저는 목욕에 관해 아픈 추억이 있습니다.

십여 년 전 대구에서 개척교회를 섬길 때 일입니다.

어느 모임이 끝난 후 함께 했던 분들과 목욕을 하게 되었는데 대부분 저보다 연배가 위인 목사님과 장로님들이었습니다.

같이 목욕하는 것이 불편했던 저는 빨리 몸을 씻고 후다닥 탈의실로 나왔습니다. 제일 먼저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장로님 한분이 저보다 앞서서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계시더군요.

순간 우물쭈물 하고 있는데, 제 몸을 보시고는 “차목사! 백돼지 같데이”라고 하시는 겁니다.

결혼할 때는 29인치였던 허리가 아내의 음식 솜씨 덕분에 갈수록 차곡차곡 살이 붙어서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백돼지 같다는 말을 듣는 순간 제 몸이 부끄럽고 창피했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가족을 제외한 어떤 사람과도 함께 목욕을 할 수 없었습니다.

대구에서의 목회를 마감하고 안성에서 부목사로 8년여를 지내면서 효도관광이나 부흥회강사를 모시면서 수 십 번의 목욕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핑계를 삼아 밖에서 기다릴 뿐 함께 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전에서도 동료 목회자들과 가끔 축구를 하고 2차로 목욕을 하러 가면 저는 약속을 핑계 삼아 도망쳐 와야 했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목욕탕에서 혼자 목욕을 했습니다.

무심코 던진 장로님의 ‘백돼지’란 말이 내겐 큰 상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축구를 마치고 역시나 혼자 집으로 돌아와 동네 목욕탕에서 목욕을 했습니다.

보통은 집에서 좀 떨어진 목욕탕을 이용했었는데 그날은 귀찮기도 하고 월요일 낮이라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돈을 지불하고 남탕 안을 들어가 살펴보니 다행히 모두 모르는 얼굴이었습니다. 안심하고 온탕에 들어가 나만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아~ 좋다’하는 순간 옆에서 누군가 인사를 하는 게 아닙니까.

깜짝 놀라서 보니 부목사님이 목욕을 하러 온 것입니다.

그냥 집에서 씻을 걸! 뒤늦은 후회를 하면서 서둘러 나오는데 부목사님이 “목사님, 꼭 백돼지 같으십니다.”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건 병입니다. 아주 심각한 정신병. 백돼지 같다는 말 한마디에 저는 10여 년째 목욕유목민이 되었습니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로 인해 목욕탕에 갈 때마다 아는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고 가능한 한 집에서 먼 곳을 택하게 되었고 혼자서만 목욕을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살을 빼면 되겠지만 붙어버린 살들은 그마저도 도무지 떨어지지가 않으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 살을 먹으라”고 하셨는데 저도 우리 교인들에게 제 살을 떼어주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언제나 백돼지의 망령(?)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목욕할 수 있을지. 요즘 텔레비전이나 한국영화를 보면 왜 이리 나쁜 말과 욕들이 난무 하는지 아이들과 함께 볼 수가 없습니다.

 지나가는 학생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절반은 욕이 섞여 있습니다.

나쁜 말과 욕을 들으면서 자라는 청소년들이 걱정이 됩니다.

하긴 국민의 대표라는 분들도 국회에서 서로 막욕을 하는 시대이니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라는 성경말씀이 생각납니다.

자기가 무심코 내 뱉은 말이 때론 다른 사람에게 비수가 되고 큰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겨우내 숨죽이고 있었던 나뭇가지마다에 새순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이제 막 피어나는 새싹과 꽃들처럼 우리 혀의 말들이 푸르고 예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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