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대명항

               

대명항

초지대교

건어물판매

 

   

   



야채도 표정관리






야채들은 말을 할 수는 없지만


표정관리를 통해 무언가를 속삭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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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망을 보세요, 조금은 화가 난듯 하네요~






피망을 칼로 쪼개면 본심이 드러납니다. 화난 거 맞죠?






감자의 멋지 표정 보세요, 야무지게 한판 벌이게 생겼죠?





감자가 요렇게 귀여운 표정을 짓기도 하네요~





채소의 표정은 가히 엽기적이지요?





눈 감고 명상에 들어간 참외의 멋진 표정을 보세요~





수박의 표정은 더위를 금방 혼내어 쫓아버릴듯 매섭네요~






호박의 표정은 어른답게 노숙하답니다~




야채의 표정들이 재미나지요?

 


일본인들에게서 배울게 익는가?                                

 
 

 

 
8천여개의 각기 다른
우상을 집집마다 섬기는 일본..
공중질서 세계 제 1위인 일본..
세계 제2차대전이 패색으로 기울 때,
거침없이 치마폭에 어린 것들을 안고
절벽을 뛰어내린 옥쇄(玉碎)의 일본..
남편이 친구와 새벽 3시까지 바둑을 두면,
그 옆에서 무릎꿇고 공손하게 시중드는 일본의 여인네들..
日本人의 성씨
족보의 유래를 살펴본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천하통일을 하는 과정에서
오랜 內戰으로 남자들이 너무 많이 전장에서 죽자
天皇의 命으로 모든 여자들에게 외출할 때 등에 담요 같은
항상 매고 아랫 내의는 절대 입지말고 다니다가 남자를 접할 기회가
되면 조건없이 애기를 만들게 했다.
이것은 당시 최고의 애국운동으로 번져갔다.
그리하여 애기를 낳을수록 여인들의 애국충정은 많은 이들의 칭찬을 얻었다.
 
이것이 일본 여인의 전통 의상인 기모노의 유래이며
오늘날에도 기모노를 입을땐 팬티를 입지 않는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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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덕에 다행이도 전장에서 살아남은 남자들은
어떤 여자이든 합의하면 즉시 장소를 찾아 授胎시킬 特權이 주어졌다.
그 결과 애 아버지가 누군지 몰라 이름을 지을 때는 교제하던 장소가 어디였는지
기억을 더듬어 작명하였는데 그것이 지금까지도 전래되어 일본인들의 姓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세계에서 성씨가 가장 많은 나라는 일본이다.
한국은 300姓氏가 채 못 되는데(2010년말 기준 288)
일본에는 10만개의 姓氏가 넘는다.
1.木下(기노시타): - 나무 밑에서.
2.山本(야마모토): - 산 속에서 만난 남자와.
3.竹田(다케다); - 대나무 밭에서.
4.大竹(오타케): - 큰 대나무 밑에서.
5.太田(오타): -콩밭에서.
6.村井(무라이): - 시골 동네 우물가에서.
7.山野(야마노): - 산인지 들판인지 가물가물..
8.川邊(가와베): - 끝내고 보니 개천이 보여서.
9.森永(모리나가): - 숲속에서 오랜동안 만난 뒤 잉태.
10.麥田(무기타): - 보리밭에서.
11.池尻(이케지리): - 도랑옆에서.
12.市場(이치바): - 시장(공방)에서.
13犬塚(이누즈카): - 개무덤에서.
14.田中(다나까): - 밭 한가운데.
15.內海(우츠미); - 가까운바다에서~
16. 奧寺(오쿠테라): - 절에서~~(카도야) - 코너에 있는 집에서
17.柏木(카시와키): - 측백나무 아래서~
18.桐本(키리모토): - 오동나무 아래서.
19.小島(코지마): - 작은 섬에서.
20.小林(코바야시): - 작은 숲에서.
21.笹森(사사모리): - 조릿대(대나무와 비슷) 숲에서.
22.高柳(타카야기): - 버드나무 아래서.
23.皆川(미나가와); - 개천가에서.
24.水上(미나카미): - 물 위에서(온천?).
그중 특히 밭 전() 字가 많은 것은 논에서는 곤란하니
주로 밭에서 많이 愛國을 했기 때문이다.
이 절대적 애국정신의 뒤에는 천황을 축으로
하나가 되는 민족성이 근간이 되었을 뿐 아니라,
이즈음에 조명되는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1836~1867, 아래 흑백사진)
같은 훌륭한 사무라이 정신도 한 몫을 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막부(幕府:바쿠후)로부터
명치유신을 일본에게 선사한 일본의 위대한 정신으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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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1836~1867)



 

 

 

여행지 정보를 먼저 알고가면 여행의 맛이 한결 더하지요

울님들의 여행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불빛과 얼음의 조화,

하얼빈 빙등제(哈爾濱 氷燈祭)

(中國 黑龍江省 哈爾濱市)

 

매년 1월5일 저녁 7시 개막식의 불꽃 놀이는 장관이다

중국의 북쪽에 위치한 도시 하얼빈은 혹독한 추위로 잘 알려진 도시이다.

겨울 내내 영하 30℃에 가까운 맹추위가 계속되고,

꽁꽁 얼은 시베리아의 강풍 때문에 눈이 한 번 내리면

녹질 않아 길이 온통 얼음 투성이다.


이런 연유로 오래전부터 빙설(氷雪)문화가 발전해왔다.

하얼빈 여행의 백미는 ‘얼음과 눈’이다.

1963년에 처음 시작돼 매년 겨울 타이양다오(太陽島) 공원과

조린 공원 등에서 열리고 있는 하얼빈 빙등제(빙설제)는

캐나다 퀘벡 윈터카니발, 일본 삿포로 눈 축제와 함께

세계 3대 겨울축제 중 하나로 꼽힌다.


하얼빈 빙등제는 세계 각국의 빙등제 중 가장 먼저 시작됐고,

 규모 또한 가장 큰 실외 빙등제다.

태양이 모든 사물을 한 치도 예외 없이 드러내려 한다면

하얀 눈은 세상의 모든 잡티는 묻어버리고 깨끗함을 방출한다.

 예술가와 장인의 손을 거친 작품에서는

어느 하나 군더더기와 아기자기함을 찾아볼 수 없다.

한마디로 중국식의 거대한 아름다움,대륙의 스타일을 느끼게 한다.


하얼빈 빙등제의 최고 볼거리는 야경이다.

중국의 유명 건축물, 동물, 여신 등의 다양한 얼음조각 작품들이

휘황찬란한 조명과 어우러지면 한마디로 황홀하다.

마치 ‘동화의 세계’와 같은 환상적인 분위기는

평생 추억으로 남을 만한 구경거리다.



하얼빈 여행의 백미 ‘빙등제 야경’

 

쑹화(松花) 강 북쪽에 위치한 타이양다오(太陽島) 공원은

호방한 풍경을 가진 북방 평원의 특색을 잘 갖춘 공원으로

 매년 겨울 조린 공원과 함께 빙등제가 개최되는 빙설 관광 명승지다.


공원 부지 면적이 38㎢에 달하는 타이양다오 공원은

 제정 러시아 때의 고급 피서지였던 곳으로

지금까지도 당시의 러시아인 별장이 숲 속에 숨어 있다.


빙등제에서는 매서운 바람과 추위가 엄습하지만

눈앞에 버티고 서 있는 대형 조각들이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드넓은 평원 위에 우뚝 서 있는 초대형 작품 앞에서는 입이 딱 벌어지고,

추운 날씨 속에서 거대한 작품을 만들려고

얼마나 고생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돈다.


‘프랑스 소녀’라는 작품의 경우, 길이가 무려 126m이고

높이도 34m에 달한다.

눈은 인공 눈을 사용하고, 축제에 사용되는 얼음은

쑹화 강의 희고 단단한 것을 골라 사용한다.


하얼빈 시민들의 젖줄인 쑹화 강은 헤이룽장성 최대의 강이다.

여름에는 수영이나 낚시를 즐기고,

겨울에는 강이 매우 두껍게 얼어 빙상 요트나 스케이트를 만끽한다.


타이양다오 공원 맞은편 쑹화 강변에는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영국의 국회의사당,

중국의 톈안먼(天安門) 등 세계 유명 건축물들과

올림픽 성공을 기원하는 베이징올림픽 조형탑 등

초대형 얼음조각 작품들이 들어서 있다.

마치 거대한 얼음 도시 같다.



날이 어두워지면 빙등제의 백미가 시작된다.

오후 4시, 얼음 조각 안의 조명이 하나 둘씩 켜지기 시작하면

얼음조각들은 오색영롱한 불빛을 내뿜는다.

오색등이 밝혀지면 건축과 조각,

음악 등이 어우러진 황홀한 예술세계가 펼쳐진다.


‘얼음과 눈의 향연’이라 할 수 있는 하얼빈 빙등제는

관광객들로 하여금 그 화려함에 넋을 잃게 만든다.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빙등제는 매년 새로운 작품을 선보여

‘영원히 반복되지 않는 동화의 세계’라고 불리기도 한다.


빙등제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관람 계획을 잘 짜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옷차림이다.

밤이면 영하 30℃까지 기온이 떨어지기 때문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개막식 불꽃놀이

(매년 1월5일 저녁 7시부터 1시간 정도 펄처지는 개막식 불꽃놀이는 세계 최대 장관이다)

 

 

 

 

 

 

 

 

 

 

 

 

 

 

 

 

 

 

 

 

 

 

 

 

 

 

 

 

 

 

 

 



 


반년만에 200만원으로 "6억" 모은 후기 올립니다.. | 자유게시판
슈퍼개미(rich-*****)
 
*못믿으실까봐 아래에 실제 계좌 사진도 첨부합니다*
저같은 분들 여기 많이 계실 것 같아 정보공유 차원에서 글 씁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ㅋㅋ
그럼 편하게 썰 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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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20대 후반 남자 입니다.
지방4년제 졸업하고, 어학연수나 인턴같은 특별한 스펙도 없어서
취준생같은 백수생활 2년 가까이 했습니다...
부모님한테 눈치 정말 보였죠..
그래도 한 이력서 200통 쓰니까 연락오는곳이 있긴 있더라고요.. 그래서 입사는 했는데
하..참.. ㅋㅋㅋ 처음 받은 월급이 120만원이었습니다.
매일같이 야근하고 회식하고.. 암담했죠..ㅎㅜㅜ
페북이랑 인스타보면 금수저 대학동기들 외제차 뽑고 해외여행 다니고 지 사업하고,
큰 회사 들어간 애들도 떵떵거리면서 사는 사진들만 잔뜩 올라오는데..
왘ㅋㅋㅋ진짜 나는 뭐하나 싶더라구요.. 뭐 어디다 얘기할곳도 없고
진짜 퇴사 고민 이직고민만 하면서 6개월 정도 회사 다니다가
아 이젠 진짜 안되겠다 싶어서 재테크 결심했습니다.
부동산..ㅋㅋ은 어림도 없고
그나마 주식이 소자본으로는 나을 것 같아서
취준알바하면서 모은 돈 + 쥐꼬리 월급에서 쪼개고 쪼개서 모은돈
거의 200만원쯤 됐겠네요.. 그걸로 시작했습니다.
사실 첨엔 막막해서 인터넷 카페 가입하고 뉴스보고 이것저것 정보 모으다가
리치투자정보(
http://www.rich-stock.com/)를 알게 되었고,
가입만 해도 무료 추천종목 주길래
매일 아침 무료추천종목 주는거 시.키.는.대.로.만 사고 팔았습니다.
목표가, 손절가, 매입가 알려주니까 생각안해도 되곸ㅋㅋㅋ
엄청 편하더라구욬ㅋㅋㅋㅋ
처음 가입하자마자
시**스2300원에 매도해서 수익 50만 원 났습니다ㅋㅋㅋㅋㅋㅋ
1개월 빡세게 일해서 받는 돈의 거의 절반이 하루 아침에 생겼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완전 신나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이후로 매일같이 수익이 났습니다.
진짜 시키는대로만 했는데 통장 잔고가 쭉쭉 쌓이더라구요
내친김에 나름 투자라고 VIP가입도 해봤습니다.(손실보증 있어서 밑져야 본전싶었거든욬ㅋ)
수익률인 더 치솟더라구요 ㅋㅋㅋㅋ
무료추천은 단타로 재미보다가
VIP되니 스윙종목이라 매수 타이밍 잡기 더 편하기도 했습니다.
이쯤에서 인증 사진 드립니다.
진짜 6개월정도 걸렸네요..ㅜㅜ
주식 안하고 월급만 받았으면 제 통장잔고 지금 어땠을지.. 상상이 가시죠?..ㅜㅜ
월급만가지고는 제 미래 보장할 수도 없는 세상인데.. 이젠 회사 때려치우고 저도 제 사업 할랍니다.
주식 하기 전에
개미는 절대 주식으로 돈 벌 수 없다, 주식으로 돈 버는 사람보다 잃는 사람이 많다
라는 얘기 많이 들었는데.. 뭐 ㅎ 저도 혼자 했음 그럴지도 모르죠 ..
아!
제 친구도 제 소개로 들어와서
브렉시트 사태 이후에 100만 원 정도 있던 손실 며칠만에 복구했습니다!
진짜.. 여기 계신 분들도 저처럼 도움 받으시라고 큰 맘ㅁ 먹고 후기 적습니다.
진짜 믿고 한 번 들어가보세요..진짜 무료에요.
다들 성공투자 하셔야죠!!!


'독도 팻말'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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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팻말'의 비밀

 

일본이 필사적으로 반출 막으려한 '독도 팻말'의 비밀
한국인이 작년 경매서 구입해 국내로…

첫 공개 1837년 니가타 해안에 걸려
"울릉도 오른쪽 섬은 한국땅 항해 엄중히 금지"

적혀 日언론 "팻말 한국 가면 안 돼"


일본이 한국으로 팔려갈 것을 우려하던 일본 에도(江戶)시대
의 나무 팻말이 극적으로 한국으로 넘어왔다.

나무팻말에는 1837년 독도와 울릉도가 한국 땅이
니 일본인의 항해를 금지시킨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팻말은 작년 3월 일본 교토에서 경매에 나왔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당시 일본에선 독도를 울릉도로 불러
지금의 독도와 다른 곳인데 한국측이 이를 이용해
자국의 영토로 주장하는 잘못된 주장을 한다"며
"이 팻말이 한국측에 넘어가면 안 된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그랬던 이 팻말을 한국인 사업가가 150만 엔(2000만 원)에

입수했다.
팻말은 일본 에도 바쿠후(幕府)가 독도와 울릉도 주변에서 조
업을 한 자국 어민 2명을 해금령(海禁令) 위반으로 처형한 이
듬해에 만든 것이다.

▲ 일본 경매시장에서 150만 엔(2000만 원)에 팔려
한국으로 반입된 1837년 일본 에도막부시대의
‘독도 도해(渡海) 금지’ 팻말.
가로 72㎝, 세로 33㎝ 크기의 소나무 팻말로
윗 부분에 2개의 고리가 달려 있다.
독도와 울릉도가 한국 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진은 흐릿해진 글자를 판독하기 위해 적외선 촬영한 것이다.
나무 팻말은 1837년 2월 에도 바쿠후의 명령을 받아

다카다번(高田藩)이 니가타현 지역 해안에 게시한

것으로 가로 72㎝, 세로 33㎝ 크기다.


팻말 위쪽에는 두 개의 고리가 달려 있어 게시판에

걸었던 것 으로 보인다.

 

팻말에는 "죽도(울릉도의 일본 이름)는

겐로쿠(元祿·1688~1704년)시 대부터 도해(渡海) 정지를

명령한 곳이므로 다른 나라 땅에 항 해하는 것을

엄중히 금지한다"며 "죽도의 오른쪽 섬도

항해해 선 안 된다"로 기록돼 있다.

오른쪽 섬이란 독도를 말하는 것이다.
이상태 국제문화대학원대학 석좌교수는
"이 팻말은 죽도(울릉도)의 오른쪽 섬(독도)까지
항해금지를 내린 것으로 기록돼 일본이 독도를
한국 땅이라고 스스로 인정한 중요한 사료"라고 했다.

바로 이 '오른쪽 섬'이란 구절 때문에 일본측이 팻말의 반출을
막으려 했던 것이다. 도해금지령 팻말은 일본의 돗토리현

하마다시 향토사료관에도 한 개가 남아있다.

가로 1m, 세로 50㎝ 크기로 이번 발견된 팻말보다
2년 뒤인 1839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 팻말은 죽도(울릉도)에 도해금지령을 내린 것으로
기록돼 일본측은 독도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우리는 독도가 죽도(울릉도)의 부속 섬이니
특별히 기재하지 않았다는 논리를 펴왔다.

그러나 이번 팻말 발견으로 일본이 독도를 자국 땅에서

배제한 것이 명확해진 것이다. 팻말은 이어
"해상에서 다른 나라 배와 만나지 않도록 하고
될 수 있는한 먼 바다에 나오지 않도록 분부한다"고
되어 있다.

당시 일본 기록을 보면

"에도 막부의 도해 금지 통지는 팻말로 해서 게시판에

걸어두고 고다이칸(치안담당자)은 방방곡곡에

이를 알려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이런 울릉도·독도 도해금지령 팻말은
일본 해안 곳곳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팻말은 작년 3월 15일 일본 경매회사인 코기레카이(古裂 )

에서 가격 120만엔으로 공개 경매에 부쳤다.

일본인 3명이 138만엔과 145만엔, 150만엔으로 응찰했다.
5만엔 차이로 낙찰받은 것을 한국인 사업가가 인수했다.

이 팻말이 경매에 나오면서 관심을 쏟던
일본 언론들은 낙찰된 이후에도 150만엔에 팔렸지만
낙찰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선 경매회사가 함구하고 있다는 보
도와 함께 팻말 행방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한국인 사업가는

" 이 팻말이 한국으로 넘어가면 안 된다는 논조로
일본 언론이 관심을 보여 놀랐다"며 "일본측이 반출을 금지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보따리를 싸고 풀기를 여러 번 거듭했
다"고 했다.이 사업가는 사태가 잠잠해지길 기다려

10개월 뒤인 올 1월에야 국내로 들 여왔다.

팻말은 국내에 들어온 뒤 좀벌레가 먹은 구멍에서
나무가루가 계속 흘러나와 국내 문화유산보존연구소에서
보존처리 작업을 거쳐 공개됐다.

팻말은 살균살충 기능을 가질 수 있도록 훈증처리하고,
부스러진 표면은 전통아교로 처리했다.

나무 재질은 소나무였고 흐릿한 글자는

적외선 촬영으로 판독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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