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난 양말을 꿰매신었던 그때 그시절 
구멍난 양말을 꿰매는 지혜로운 어머니

우리들의 어린시절을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생각만해도 가슴이 떨리도록 져러오는 싸~한~ 아픔이랄까? 아니면 너무도 그리운 늘 꺼내어 보고픈 아름다운 추억이랄까? 오늘따라 유난히 우리들의 초등학교 시절이 불쑥 생각납니다. 그 당시의 어머님들은 학교(學校)에 갔다 오면, 양말 꿰매는 것이 일과(日課)이다시피 했었다. 학교 교실 바닥이 나무 바닥인데다가 나무의 결도 그리 좋지 않아서 교실을 걸어 다니면 양말이 튀어나온 나무결에 걸려 찢어지기도 했고, 날카로운 나무가시에 발이 찔리기도 했었다. 멋지고 이쁘다는 엄마의 감언이설에 속아서 구제품의 알록달록한 셔츠를 입고 학교에 갔다가 "얼레리~ 꼴레리~"라는 친구들의 그런 놀림을 받고는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땡깡을 부렸던 그런 기억도 납니다.

날이 추우면 발이 시러워 고무신 안에 짚을 넣어 신었다. 발까지 피가 잘 돌아야 단잠을 잘 수 있고 발이 추위 얼었다면 바로 동상이 걸리기도하였습니다
당시에는 또 검둥 고무신조차 너무 귀해 웬만큼 헤져도 꿰매고 또 꿰매어 바닥이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신고 다녔다. 때문에 아침에 꿰매어 신고 간 고무신이 하학(下學)길에는 다시 헤져서 ‘왕모래’가 신발 가득 스며들기도 했다. 이 경우는 기워 신은 헌 양말이 모래와 마찰(摩擦)되거나 양말 안에까지 모래가 들어가 ‘빵꾸’가 나기 일쑤였고, 발가락을 파먹기까지 했었다. 사정이 이쯤 되고 보면, 발이 시리더라도 양말을 벗어 책보에 싸들고 귀가(歸家)하는 경우가 많았다. 밤마다 희미한 등잔불 아래 어머니가 덧대어 꿰매 준다지만 꿔매주는 것도 한계가 있지요. 수십번 꿰매대니 나중에는 양말 모양이 이상하게 되기도 했고 아이들이 놀린다고 그 양말 신을 자식들이 아니지요. 그렇게 그 양말은 어느날 슬그머니 아궁이 속에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답니다.


 

 

겨울이 되면 그때 혹독했던 추위와 유행했던 나일론 제품들이 생각납니다. 요즘은 너무 좋은 옷과 양말이 많아 추위에도 외출 걱정이 없답니다. 요즘 누가 헤진 양말를 신고 다니던가요. 가격도 저렴하고 흔하고 흔한 게 양말인지라 조금만 목 부분이 늘어나거나 닳아서 헤어지면 버리고 새 양말을 신지 않습니까. 까마득하게, 그러나 또렷이 발뒤꿈치 헤어진 나이론 양말을 두 겹 세 겹 기워서 신고 다니던 어릴 적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오히려 발바닥을 여러 겹 기운 양말은 맨발로 다니던 나무 마루바닥에 미끄럼 타기가 더 좋아서 함부로 미끄러지며 좋아했던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그 시절의 아련한 기억들이 추억으로 잠시나마 스쳐갑니다. 그러나 눈앞이 흐려지며, 눈물이 글썽해지는 것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아니라 헤어진 양말 이 주는 상징성과 주소지를 옮기신 어머니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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