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앙고백

날마다 베풀어주신 구원과 축복에 감사 찬양해야

구약성경 가운데 모세오경과 역사서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기록하고, 예언서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제시하고 있다면, 시편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말씀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시로 나타내고 있다. 시편이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앙 고백을 생동감 있고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주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자 기도인 시편에 대해 살펴보자.

시편의 구조

시편은 총 150편이며, 크게 5권으로 구분된다. 1권은 1∼41편, 2권은 42∼72편, 3권은 73∼89편, 4권은 90∼106편 그리고 5권은 107∼150편으로 분류된다. 각 권의 마지막에는 거의 동일하게 ‘아멘, 아멘’ 또는 ‘할렐루야’로 끝마치고 있다.

시편의 저자

시편의 저자로 알려진 자로는 모세(1편), 다윗(73편), 아삽(12편), 헤만(1편), 에단(1편), 솔로몬(2편), 고라 자손(11편)이며, 전체의 3분의 1이 되는 49편은 저자를 알 수 없다.

시편의 내용

시편은 내용에 따라 일반적으로 찬양시, 탄원시, 감사시, 신뢰시, 제왕시 등으로 분류된다.
찬양시는 하나님께서 은혜와 베푸신 일에 대한 찬양을 나타낸다. 대표적인 찬양시로는 8편, 19편, 33편, 100편, 104편, 113편, 117편, 135편, 145편, 147편, 148편, 149편, 150편 등을 들 수 있다. 이 시편들은 하나님에 대한 찬양의 권유로 시작하며 찬양의 이유 또는 찬양의 내용이 뒤따른다. 찬양의 내용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통치 섭리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예배 가운데 나타나는 찬양이다. 찬양시는 주로 이스라엘 백성의 축제 때에 사용되었다.

탄원시는 시편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지닌 시로 인간이 고난과 문제 가운데 탄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탄원시는 개인 탄원시와 공동체 탄원시로 나뉜다. 대표적인 탄식시에는 3편, 12편, 13편, 22편, 39편, 44편, 54편, 61편, 80편, 88편, 137편, 142편 등이 있다. 탄식시는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탄식의 사정을 말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확신 그리고 찬양의 다짐으로 끝을 맺는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쳐 절망 가운데 놓였을 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간구했다. 이런 의미에서 탄원시는 곧 탄식하는 영혼의 기도라고 할 수 있다.

감사시는 찬양시와 탄원시의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는 시로 구원의 경험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증하는 내용을 지니고 있다. 감사시는 탄원시처럼 개인적 감사시와 공동체 감사시로 분류된다. 시편에 나타난 대표적인 감사시에는 18편, 34편, 66편, 67편, 107편, 116편, 118편, 124편, 129편, 138편 등이 있다. 감사시의 특징은 시의 종결 부분에 감사로 귀결하고 있는데, 이것은 고난 가운데 체험한 하나님의 응답이 감사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신뢰시는 개인과 공동체가 처한 곤경과는 관계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구원에 대한 신뢰와 확신을 노래하고 있다. 대표적인 신뢰시에는 4편, 11편, 16편 23편, 62편, 131편 등이 있다. 신뢰시의 시인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할 것을 다짐하거나,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긴밀하게 묘사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선포하고 있다.

제왕시는 하나님과 왕과 관련된 시들로서, 대표적인 제왕시에는 2편, 18편, 20편, 21편, 45편, 72편, 89편, 101편, 110편, 132편, 144편 등이 있다. 제왕시에 속하는 시편들은 모두 왕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지상의 왕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장차 도래할 메시아를 의미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시편 2편과 110편은 내용상 이스라엘의 왕들이 왕위에 즉위할 때 불렸던 노래이지만, 장차 왕으로 오시는 메시아에 대한 찬양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시편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 하신 일에 대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응답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들을 구원해주시고, 돌보아주시고, 인도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구원과 축복에 대해 날마다 찬양과 감사와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국제신학교육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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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고난과 회복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책

욥기는 시대를 초월해 신앙인들뿐만 아니라 신학자, 철학자, 문학가, 예술가 등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아왔는데, 그 이유는 욥기가 인간 삶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 즉 인간에게 다가온 고난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욥기는 우리에게 삶의 근원적인 문제인 고난, 특히 의인에게 다가오는 고난에 대해 생각하게 해 주는 책이다. 그런데 욥기는 매우 독특한 형식을 지니고 있다. 욥이 자신의 고난을 토로하는 부분(욥 1∼2장)과 그가 다시 회복되는 부분(42:7∼17)은 산문의 형식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욥과 그의 친구들과 하나님의 대화가 등장하는 부분(3:1∼42:6)은 운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욥의 고난(욥 1:1∼2:13)

욥은 남들이 부러워 할 정도의 상당한 재산을 가진 사람으로 무엇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로운 사람이었다(1:1).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삶을 살았던 욥은 자녀의 축복과 함께 재물의 축복을 받았다(1:2∼3). 그러나 이러한 욥에 대해 사탄은 그의 신앙을 의심하면서, 욥이 시련을 겪으면 하나님을 욕하게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1:9∼11). 사탄은 우선 욥으로부터 소유물을 빼앗고(1:13∼17), 그리고 다음으로는 그의 자녀들을 빼앗았다(1:18∼19). 그러나 욥은 여전히 믿음을 지켰다(1:20∼22). 그러자 사탄은 욥을 직접적으로 그의 몸을 공격하였다(2:7∼8). 그럼에도 사탄의 기대와는 달리 욥은 끝까지 입술로 죄를 짓지 않았다(2:10).

욥의 탄원(욥 3:1∼26)

욥기 1∼2장에서 욥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참고 인내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욥기 3장부터는 욥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욥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에 대해 자기 운명을 탄식하며 회한에 휩싸이게 되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삶을 저주하기까지 하였다(3:1∼11).

욥의 친구들(4:1∼37:24)

욥의 친구들은 차례대로 등장하면서 욥의 고난에 대해 말한다. 가장 먼저 욥의 친구 엘리바스는 세상에서 죄 없이 망한 자는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에(4:7∼8), 욥이 고난을 당하는 원인을 욥의 죄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하며 욥을 정죄한다. 또한 욥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지 않는다고 책망하며 회개하지 않으면 악인들처럼 화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의 목소리를 높인다(15:1∼35). 다음으로 수아 사람 빌닷은 더 독한 말로 고난당하고 있는 욥을 몰아붙인다. 빌닷은 욥의 자녀들이 갑자기 죽은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께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8:3∼4). 그러면서 욥에게 당장 회개해야 한다고 긴 설명을 늘어놓는다(18:1∼21). 욥의 세 번째 친구인 소발은 앞의 친구들 보다 더 독한 말로 욥을 공격한다. 소발은 욥이 지금 받고 있는 고난은 그의 죄 때문인데, 사실 욥이 지은 죄에 비하면 너무나 가벼운 징벌이라고 주장한다(11:2∼6). 또한 그는 욥이 가난한 자를 학대했고, 악을 사랑했으며, 탐욕스러운 생활을 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고난을 받는 것이라고 욥을 비난한다(20:1∼29). 세 친구에 이어 엘리후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앞의 세 친구가 고난의 원인에 대해서 말했다면 엘리후는 고난의 목적에 대해 욥에게 말한다. 엘리후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욥을 꾸짖으며(33:12∼30), 고난은 하나님이 사람을 가르치시는 방식이라고 주장한다(36:15∼21).
이처럼 욥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논리’에 기초하여 욥의 고난을 분석하고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고난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욥에게 이들의 말은 위로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상처로 다가왔다.

욥과 하나님(38:1∼42:6)

욥과 친구들의 대화를 듣고만 계시던 하나님께서 이제 직접 욥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등장하셨다(38:1). 하나님께서는 욥 앞에 나타나심과 동시에 창조와 그 신비로운 과정에 대해(38:4∼38), 그리고 자연과 그 안에 살고 있는 들짐승들의 신비한 생존에 대해 연속적으로 질문하셨다(38:39∼39:30). 욥은 하나님의 질문에 한 마디도 대답할 수 없음으로 인해 자신의 비천함과 초라함을 깨닫게 되었다(40:3∼5). 또한 이제까지 자기중심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자기 의로움을 내세우고 있었음을 알고 마침내 회개하게 되었다(42:4∼6).

욥의 회복(42:7∼17)

자신의 미천함과 부족함을 하나님께 고백한 욥에게 회복의 역사가 다가왔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어 그의 소유를 이전보다 갑절이 되게 하셨고(42:10), 열 명의 자녀를 더 낳을 수 있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42:13), 아들과 손자 등 후손을 4대까지 볼 수 있도록 장수의 삶을 허락하셨다(42:16∼17).

우리는 욥기를 통해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도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어떤 고난이든지 모든 고난에는 반드시 끝이 있고, 또 그 고난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고난을 이기고 난 뒤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있게 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국제신학교육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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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세상을 주관하시는 이는 하나님
에스더를 통해 유대민족을 구원하셔

에스더서는 이방 국가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에 대한 기록으로 바사(페르시아)를 배경으로 한다. 이 책은 제목이 말해주듯, 유대인 여성 에스더를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에스더는 대적들의 모함과 핍박으로부터 동족 유대인들을 구원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 책은 또한 유대인들이 적의 위협으로부터 구원받은 날을 기념하며 축제를 갖는 ‘부림절’의 기원을 설명한다. 에스더서를 통해 우리는 위기 가운데 처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받게 되는지를 목도하게 된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1∼5장)

광대한 땅을 다스렸던 바사 왕 아하수에로는 어느 날 모든 지방 장관과 신하들을 초청하여 장장 6개월 동안 잔치를 베푼다(에 1:1∼4). 이 기간 동안 왕은 왕비 와스디의 아름다움을 신하들 앞에서 자랑하고자 했다(에 1:11). 그러나 왕비 와스디는 왕의 명령을 무시하고 왕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 일을 계기로 와스디는 폐위를 당하게 되고(에 1:12∼22), 이어 새 왕비의 간택을 위해 아름다운 여인들이 수도인 수산 성으로 소집되었다(에 2:1∼4). 수많은 여인 가운데 에스더가 왕후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에 2:17). 변방의 유대 출신의 소녀가 바사 제국의 왕후가 된 것은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오로지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다.

그런데 당시 정부의 고관대작 중에 하만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에스더의 사촌인 모르드개를 극도로 미워했는데, 그 이유는 모르드개가 자신에게 절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에 3:1∼6). 그래서 그는 모르드개가 속한 민족인 유대인 모두를 제거하기 위해 왕으로부터 조서를 받아낸다(에 3:7∼15). 그러자 모르드개는 이 사실을 에스더에게 알리고, 왕에게 나아가 민족이 멸절되는 것을 막으라고 하였다(에 4:8). 이 말을 들은 에스더는 모르드개와 동족들에게 3일 금식 중보기도를 부탁하며 죽을 각오로 왕 앞에 나아가겠다고 하였다(에 4:16∼17). 이 때 에스더가 한 말이 유명한 “죽으면 죽으리이다”이다. 그 당시 왕의 허락 없이 왕 앞에 나아갔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에 4:11). 드디어 모든 사실을 왕에게 알리기 위해 에스더는 연회를 준비하였다(에 5:1∼14). 이 모든 일은 에스더를 통해 죽음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에 6∼9장)

에스더가 준비한 연회에 참석한 왕은 밤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신하에게 명하여 왕의 일지를 낭독하게 하였다. 이때 왕은 얼마 전 자신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모르드개가 막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아무런 상도 주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에 2:21∼22; 6:2∼3). 이에 왕은 하만을 불러서 존귀하게 하고 싶은 사람에게 어떤 상을 내려야 할지를 물었다. 전후사정을 모른 하만은 상 받을 사람이 자신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사람에게는 왕의 옷을 입히고, 왕의 말을 태워 존귀하게 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러자 왕은 하만에게 그가 말한 대로 하라고 지시했다(에 6:10∼11). 자신에게 절하지 않는다고 모르드개를 죽이려 했던 하만이 오히려 모르드개를 존귀하게 만들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주시고 머리에 기름을 부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손길이었다(에 6:12∼14; 시 23:5).

한편 에스더는 잔치 중에 왕에게 하만의 모든 만행을 알리고, 하만이 노리는 대상이 바로 에스더를 포함한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폭로했다(에 7:1∼6). 이에 분노한 왕은 하만을 나무에 매달아 처형하고(에 7:10), 또 유대인들을 죽이려고 했던 자들을 처단하는 권한을 모르드개에게 주었다(에 8:7∼14). 그 결과 각 지방에 있던 유대인들의 적들은 모조리 제거되었다(에 9:1∼10). 유대인들은 이날을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된 날로 삼고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하며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부림절’의 축제로 기념하게 되었다(에 9:20∼32).
에스더서의 진정한 주인공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언약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역사의 뒤편에서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것은 압제와 핍박을 당하고 있는 자들을 구출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 계획과 역사하심이 잘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어떤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마침내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믿음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고후 4:7-15).

국제신학교육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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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신앙공동체 회복, 기도와 말씀

느헤미야서는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너진 신앙 공동체를 회복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사실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의 회복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회복을 원하지 않은 주변의 세력들의 수많은 방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느헤미야서는 이러한 위기의 시기에 지도자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기도와 말씀에 의한 신앙 회복이 잘 나타나 있다.


기도로 시작된 공동체의 회복(느 1∼7장)


느헤미야서는 바사 왕국의 궁중에서 술을 담당하는 관리였던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처참한 상황을 전해 듣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느 1:2∼3). 고국에 남아있던 자들이 큰 환난을 겪고 있다는 사실과 예루살렘 성이 불에 타 허물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가 첫 번째로 결단하며 행한 것은 기도였다(느 1:4). 그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죄에 대한 회개의 기도와 함께 왕으로부터 은혜를 입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렸다(느 1:5∼11). 6개월간 지속된 기도의 응답으로 느헤미야는 마침내 예루살렘 성의 재건을 왕으로부터 허락받게 되었다(느 2:1∼9). 고향으로 귀환한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반대하는 산발랏, 도비야 그리고 아람 사람 게셈의 방해를 이겨내고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라는 위대한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게 되었다(느 2:11∼3:32).

느헤미야의 방해자들이 그들을 조롱하고, 무력으로 협박도 하고, 음모를 꾸미기도 했지만(느 4:1∼14), 그들은 기도로 시작한 느헤미야의 열정과 지혜를 이길 수 없었다(느 4:15). 왜냐하면 기도함으로 성벽의 재건을 시작한 느헤미야를 하나님께서 돕고 계셨고(느 4:15∼20), 그 자신도 본을 보이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었다(느 5:1∼19). 결국 산발랏과 게셈의 거짓 소문과 음모에도 불구하고 성벽 재건은 단기간인 52일 만에 완성되었고(느 6:15∼19), 바벨론으로부터 돌아온 자들의 인구 조사가 행해졌다(느 7:1∼72). 성경의 역사를 뒤돌아 볼 때,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항상 순조롭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니 더 험난하고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 어려운 것을 이겨내는 사람들이 있다. 느헤미야의 경우 그 비결은 하나님을 향한 기도였다.


말씀으로 시작된 신앙의 회복(느 8∼13장)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복이 기도로부터 시작되었다면, 공동체의 영적 회복은 말씀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영적 회복의 장소는 바로 예루살렘에 있는 수문(Water Gate) 앞 광장이었다. 학사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느 8:1). 말씀 낭독은 새벽부터 정오까지 이어졌고, 사람들은 그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느 8:2∼3). 점점 말씀을 뜻을 깨닫게 된 백성들은 울기 시작했다(느 8:8∼9). 말씀의 참된 의미를 깨달은 자들은 더욱 더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기 위해 모여들었고, 그 결과 과거에 지켜지지 못했던 절기(초막절)와 예배가 다시 드려지게 되었다(느 8:12∼18).

예배의 회복으로 이어진 말씀은 또한 백성들 속에서 회개를 불러일으켰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를 자복하며 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할 것을 다짐하였다(느 9:1∼38). 그리고 말씀으로 촉발된 신앙의 변화는 삶의 변화로 이어졌다. 사실 이제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야훼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구별된 삶을 살지 않았다. 이방 사람들과의 혼인은 신앙의 거룩성을 상실하게 되었고, 그 결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말씀을 깨달은 자들은 과거의 과오를 뉘우치고, 앞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겠다고 맹세하였다(느 10:1∼39).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던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주민과 지방 주민들(느 11:1∼36), 그리고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동참을 이끌어 냈고(느 12:1∼26), 그들과 함께 성전을 정화하고, 안식일을 준수하며, 이방인과의 혼인을 금지하는 등 신앙 회복을 위한 개혁적 조치들을 취하게 되었다(느 13:1∼13).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 회복의 결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처럼 느헤미야서는 절망에 빠져있던 이스라엘 공동체가 한 지도자의 기도에 의해 회복되고 또한 죄 가운데 방황하던 백성들이 말씀에 의해 새로워진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진심으로 회개하고 말씀대로 살겠다고 결단할 때, 무너진 신앙 공동체가 회복되고 끊어진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도 다시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국제신학교육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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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하나님 앞에 바로서기

구약 에스라서는 바벨론 포로 이후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연합하여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고 와해된 신앙 공동체를 회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에스라서는 무엇보다 신앙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에스라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스 1:1∼6:22)은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재건한 사건이다. 두 번째 부분(스 7:1∼10:44)은 에스라의 귀환에 의한 신앙 공동체의 개혁을 다룬다. 에스라서에는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신앙으로 이겨낸 이스라엘 귀환 공동체의 승리의 역사가 담겨 있다.


하나님의 감동과 은혜로 재건된 성전(1∼6장)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기 위해 바사의 초대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라는 조서를 공포하게 하셨다(스 1:1).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마음에 감동을 받고 예루살렘에 야훼의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함께 일어났고(스 1:5),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던 금과 은과 각종 물품들을 기쁨으로 내어 놓았다(스 1:6). 뿐만 아니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빼앗아 갔던 야훼 성전의 그릇들도 환수 조치되었다(스 1:7∼8). 세계 역사에 아무런 보상도 없이 포로들을 고국으로 돌려보내고 빼앗은 전리품을 무상으로 되돌려주었던 경우가 있었을까?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셨다. 고레스 그리고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 모두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자들이었다. 에스라서는 하나님의 감동만이 어둡고 절망적인 상황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성전 재건의 시작은 예배의 회복에서 시작되었다(스 3:2∼6). 그리고 예배의 회복은 성전 재건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었다(스 3:7). 성전의 기초가 놓일 때 옛 솔로몬 성전을 회상한 노인들은 대성통곡했지만 많은 백성들은 음악에 맞춰 찬송을 드리고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질렀다(스 3:10∼13). 그러나 이스라엘의 예배가 회복되고 성전이 재건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자들이 있었다(스 4:1∼6). 이들의 갖은 훼방으로 인해 성전 재건은 다리오 왕 2년까지 중단되었다(스 4:7∼24).

장기간 중단되었던 성전 건축은 학개와 스가랴 두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감동의 말씀으로 재개되었다(스 5:1∼2). 야훼 성전의 재건을 정치적으로 받아들인 자들은 바사 왕 다리오에게 성전 건축이 정말로 허락되었는지 물었다(스 5:3∼17). 이에 다리오는 문서 창고에서 왕의 조서를 찾아보게 하였다(스 6:1). 그런데 문서 창고에는 두 개의 조서가 있었다. 하나는 건축을 허락하는 고레스 왕의 ‘허락 조서’(스 6:3)였고 다른 하나는 건축을 중단시킨 아닥사스다 왕의 ‘금지 조서’(스 4:21)였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였다. 왜냐하면 관리들이 발견한 조서는 금지 조서가 아닌 허락 조서였기 때문이었다. 이에 다리오 왕은 유다 사람들의 성전 공사를 막지 말 것이며, 왕의 재산과 세금으로 성전 재건을 도우라는 조서를 내렸다(스 6:6∼12). 성전의 재건을 막기 위해 온갖 방법이 동원되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역전의 기회로 바꿔 놓으셨고 성전 재건은 완성되었다(스 6:15).


기도와 금식을 통한 삶의 개혁(7∼10장)

야훼 성전이 재건되자 하나님은 학자 에스라의 지도하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다시 한 번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인도하셨다(스 7:1∼9). 이 때 에스라는 야훼의 율법을 연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가르치기로 결심한다(스 7:10). 에스라 7∼10장은 예배와 성전을 회복한 이스라엘 공동체가 어떻게 삶의 방식들을 개혁했는지 보여준다. 이 당시 이스라엘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방 민족들과의 혼합 결혼과 이로 인한 종교의 혼합화였다(스 9:1∼15; 10:2). 이 때 에스라가 취한 방법은 기도와 금식이었다. 그는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기도하였다(스 8:21). 에스라가 이처럼 기도와 금식으로 하나님께 간구하자 백성들 사이에서 큰 회개의 운동이 일어났다. 에스라의 가르침에 백성들은 통곡하며 회개하기 시작하였다(스 10:1∼3). 에스라에게 있어서 최우선 개혁 대상은 종교의 혼합을 조장하는 이방인과의 결혼이었다(스 10:11). 왜냐하면 아무리 성전이 재건되었다 하더라도 신앙이 온전하지 못하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스라서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재건한 것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몸부림치며 삶을 변화시킨 과정들이 잘 나타나 있다. 이것은 신앙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해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먼저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것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교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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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이스라엘 백성에게 미래의 희망 보여주다

 성경 역대기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지나간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으려는 미래지향적 역사책이다. 역대상은 아담의 족보에서 시작하여 다윗 왕까지의 역사에서 미래를 위한 교훈을 찾는다. 역대하에서도 이러한 시도는 계속된다. 그러면 이러한 시각에서 쓰인 역대하가 주는 신앙적 가치와 교훈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은혜로운 하나님의 관점(대하 1∼9장)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 치세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종교 등에 많은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열왕기서에 기록된 솔로몬의 생애와 역대기에 기록된 솔로몬의 생애는 차이가 있다. 열왕기서는 초기에는 신실했지만 후기에는 하나님을 배역했던 솔로몬의 양면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다. 반면 역대기는 솔로몬을 일생 동안 하나님께 충성을 다했던 왕으로 묘사한다. 그래서 역대기는 솔로몬 초기, 왕위 쟁탈로 인한 형제간의 피 흘림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곧장 기브온 산당에 가서 야훼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고(대하 1:1∼3), 백성을 바르게 통치하기 위한 지혜와 지식을 구하는 솔로몬의 모습으로 시작한다(대하 1:7∼13). 또한 열왕기는 솔로몬이 이방 민족과의 정략적인 결혼을 통하여 이스라엘에 우상이 들어오게 만든 죄를 지적하지만(왕상 11:1∼13), 역대기는 솔로몬을 다윗이 완수하지 못했던 다른 나라들과의 평화를 이끌어 내고(대하 9:22∼28), 다윗은 준비만 하고 완성하지 못했던 성전 건축을 강조하고 있다(대하 8:1∼16). 역대기에서는 솔로몬 왕의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이 부각된, 이른바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왕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열왕기서가 하나님의 공의의 시각에서 기술한 책이라면 역대기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관점에서 기술한 책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솔로몬이 여러 가지 잘못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나, 솔로몬은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렸을 정도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열정적인 사람이었고(대하 1:6), 자신의 왕궁을 짓기 전에 하나님의 성전을 먼저 완공한 그야말로 하나님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대하 7:11; 8:1). 결국 역대하에 기록된 신실하고 충성된 솔로몬의 모습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시각에 비춰진 솔로몬의 모습이다. 우리는 역대기하를 통해 우리를 죄인으로만 바라보지 않으시고, 오히려 사랑과 은혜의 대상으로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심정과 관점을 읽게 된다.


 은혜로운 하나님의 역사(대하 10∼36장)


 역대하는 솔로몬 왕 이후부터 바벨론 포로들의 귀환까지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대하 36:22∼23). 이 부분은 이스라엘이 북 왕국과 남유다로 나뉘는 분열왕국의 시기와(대하 10:1∼19),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이스라엘과 유다가 멸망하는 시기도 포함한다(대하 36:6∼8). 이 시기에 대해 열왕기는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해 왕국이 분열되었고, 그 결과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모두 망했다고 기록한다. 하지만 역대기는 그 죄악의 역사 중에서도 하나님 앞에서의 순종과 낮아짐의 모습을 보였던 자들의 모습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자신을 낮추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그들을 용서하신 것을 보여준다(대하 7:14∼18). 몇 가지 예를 들면 하나님은 르호보암이 ‘스스로 겸비하는’ 모습을 보이자 노를 돌이키셨다(대하 12:12). 또한 하나님은 자신의 교만함을 뉘우친 히스기야 왕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진노를 내리지 않으셨다(대하 32:26). 심지어 유대 왕 중 가장 악하다는 평가를 받는 므낫세조차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기도하니 적국으로부터 놓임을 받았던 것을 보게 된다(대하 33:12∼13). 이 외에도 역대하는 기도와 예배의 회복을 위해 애썼던 사람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증언한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군대를 준비하기보다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며 성가대를 세운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의 선물을 받았다(대하 20:20∼23).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는 역대하의 마지막 부분에서 더욱 크게 부각된다. 열왕기서는 이스라엘의 왕이 바벨론에 끌려가 포로 생활을 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역대기는 유다 백성들을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명령하는 바사의 고레스왕의 칙령으로 끝을 맺고 있는 것이다(대하 36:22∼23).

 역대하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미래의 희망을 보게 한다. 이것은 하나님은 겸손하고, 순종하며, 기도와 예배의 회복을 꿈꾸는 자들을 결코 외면하거나 버리시지 않으신다는 것에서 잘 나타난다. 모름지기 하나님께 마음을 두며 겸손히 그 은혜를 사모하는 백성은 결코 망하지 않으며, 그들의 나라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 역대하를 통해 밝히 깨닫게 된다.

<국제신학교육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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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루는 책은 이미 살펴본 열왕기상·하 외에도 역대기 상·하가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루는 책은 네 권이다. 그런데 열왕기와 역대기를 읽다보면 내용이 서로 겹치는 부분들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실제로 이 책들은 서로 동일한 사건들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성경에는 비슷한 역사책이 두 개나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열왕기가 이스라엘이 멸망할 수밖에 없는 멸망의 원인에 관심을 가지고 기록했다면, 역대기는 포로기 이후 본토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열왕기가 과거지향적 역사서라면, 역대기는 미래지향적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참된 믿음의 뿌리(역대상 1∼9장)


 역대상이 기록된 시대는 이스라엘이 70년의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고향으로 귀환한 시기로 나라의 모든 것이 파괴된 때였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재건이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뿌리를 되찾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뿌리를 찾은 후에야 미래의 비전을 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역대상의 서두가 족보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열왕기서가 다윗이 솔로몬에게 왕권을 넘겨주는 시점부터 시작하는 것과는 달리 역대기는 이스라엘의 역사의 시작을 아담에서 찾는다. 역대기가 이스라엘의 역사의 시작을 아담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대상 1:1).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이다(창 1:27). 이것은 이스라엘의 백성들도 자신들의 조상인 아담과 같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백성이라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깨달아 그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 하는 운명적 사명을 일깨워준다.

 역대상의 족보에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여러 이스라엘 족장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데, 유독 ‘야곱’이라는 이름 대신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러면 역대상에는 왜 ‘야곱’이라는 이름 대신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것일까? 그 이유는 거짓과 속임 가운데 파란만장한 삶을 산 야곱 대신에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만나 삶의 전환기를 맞이한 믿음의 사람 이스라엘이 주는 의미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역대상 전반부(대상 1∼9장)에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족보가 매우 세심하게 기록되고 있다. 이것은 역대기가 인간의 변화 이전의 삶보다는 참 믿음에 의한 변화 이후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시사한다.


 진정한 신앙의 역사(역대상 10∼29장)


 역대상의 후반부는 사울의 죽음(대상 10장)과 동시에 다윗의 왕위 등극(대상 11장)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것은 역대기서는 열왕기서와 달리 신앙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보통의 역사는 정치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기록하지만 역대기서는 믿음의 눈으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것은 언약궤를 모셔 오고 성전 건축과 관련된 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전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한 후 가장 먼저 시행한 일은 아비나답의 집에 있던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는 일이었다(대상 13:1∼6). 이는 다윗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웃사의 실수로 다윗의 계획은 어긋난다(대상 13:9∼14). 이 때 하나님은 언약궤를 옮기려 했던 다윗을 축복하고 외교와 정치 그리고 군사적으로 성공을 거두게 하셨다. 다윗은 교만해지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기 위해 세밀한 계획을 준비하는 신앙의 모습을 보였다(대상 15:1∼29). 이것은 역대기가 다윗을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측면에서가 아니라 신앙의 측면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다윗은 마침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게 되었고, 이 궤를 섬기는 사람들의 복무규정을 제정하고(대상 16:1∼6), 기쁨으로 감사의 찬양을 불렀다(대상 16:8∼36). 그 다음 다윗은 하나님이 거하실 집을 건축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에게 성전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다윗은 전쟁으로 인해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이었다(대상 22:8). 그러나 다윗의 열심은 멈추지 않았다. 비록 자신에게는 성전 건축이 허락되지는 않았지만, 성전 건축 준비까지 금지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석재, 목재, 금속 그리고 기술자 등 성전 건축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준비하고(대상 22:1∼5), 성전 봉사를 위한 여러 부서들과 직책들을 꼼꼼히 설치한다(대상 23:1∼28:21). 마지막으로 다윗의 삶은 감사의 기도로 끝을 맺는다(대상 29장).

 역대상이 이스라엘과 다윗의 삶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들이 고난과 역경의 삶을 살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에 대한 절대 믿음으로 삶을 종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이스라엘 역사의 평가는 한 인간이 이룬 업적과 성취보다도 믿음을 가지고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것을 역대상은 분명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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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심판의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 승리의 삶 보여줘

 열왕기상은 솔로몬을 비롯한 여러 왕들의 죄악으로 인해 이스라엘 통일왕국이 분열되어가는 과정을 묘사했다. 그 뒤를 이어 열왕기하는 북 이스라엘이 끝까지 하나님을 배역하는 길로 나아간 결과 이방 나라인 앗수르 군대에 의해 처참하게 멸망하는 과정과 더불어,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던 예루살렘 성마저 바벨론 군대에 의해 처참히 짓밟히며 남 유다 또한 패망의 길로 나아가는 과정을 묘사한다. 열왕기서는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역사서가 아니라 지나간 역사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담겨져 있는 고백이다. 따라서 우리는 열왕기서를 읽을 때 지나간 역사를 되돌아보며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야훼 신앙의 마지막 수호자 엘리사(왕하 1∼8장)

 열왕기상에서는 엘리야가 꺼지지 않은 희망의 불씨로 활약을 했다면, 열왕기하에서는 그의 수제자이자 불의 용사로 알려진 엘리사가 등장한다. 엘리사는 불수레를 타고 하늘로 승천한 스승 엘리야에게 갑절의 영감을 구하였다. 그가 갑절의 영감을 구한 것은 자신이 엘리야의 수제자로서 이스라엘의 야훼 신앙을 수호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왕하 2장). 과부의 빈 그릇을 기름으로 채우고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려낸 일과(왕하 4장), 아람 군대의 장군이었던 나아만의 병을 고쳐주고(왕하 5장), 물에 빠진 도끼를 떠오르게 한 일 그리고 아람 군인들의 눈을 어둡게 만든 일(왕하 6장) 등은 엘리사의 위대함을 보여준 이적들이지만 사실은 엘리사의 하나님의 위대함을 나타내주는 사건들이었다. 남북 왕국의 지도자들은 여전히 악을 저지르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 엘리사를 통하여 그의 살아계심과 능력을 드러내셨다.


 예후 혁명에서 북왕국 멸망까지(왕하 9∼17장)

 열왕기하 9∼17장에는 예후로부터 시작하여 북 왕국이 멸망하는 과정이 나타나 있다. 예후는 우상 숭배에 빠져있던 아합 왕조를 무너뜨리는 일종의 종교개혁인 ‘예후 혁명’을 일으켰다(왕하 9∼10장).

 북 이스라엘의 극심한 우상숭배를 하나님께서는 예후라는 인물을 통해 아합 왕조를 심판하신 것이다. 북 왕국에서 바알 숭배 무리들을 전멸시킨 예후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우상의 불씨는 남쪽 유다로 넘어가고 말았다. 그것은 바알 종교의 신봉자였던 이세벨의 딸 아달랴가 남유다의 여왕이 되어 바알 숭배를 계속해서 조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달랴도 하나님의 심판을 벗어날 수 없었다. 6년 통치 후에 아달랴는 제사장 여호야다에 의한 요아스 반정으로 죽임을 당한다(왕하 11장). 요아스 반정 이후 남 유다에서는 다시금 야훼 신앙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싹트기 시작했다(왕하 12장). 그러나 그 때 야훼 신앙의 마지막 수호자였던 엘리사가 죽음을 맞이한다(왕하 13장). 엘리사의 죽음 이후 북이스라엘은 여러 왕들, 즉 스가랴, 살룸, 므나헴, 브가히야, 베가 왕 등이 통치하지만, 이들에 대한 열왕기하의 비판은 일관되게 “야훼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여로보암의 죄에서 평생 떠나지 아니했다”로 마무리 되고 있다(왕하 15:9, 18, 24, 28). 우상을 섬긴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은 북 왕국에게 남은 것은 심판뿐이었다. 결국 북 왕국은 마지막 왕 호세아를 끝으로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게 되고 백성들은 앗수르의 포로로 끌려가게 된다(왕하 17장).


 히스기야와 요시야 그리고 유다의 멸망(왕하 18∼25장)

 남유다의 후반부 역사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인물은 히스기야 왕과 요시야 왕이다. 이 두 왕은 성경에서 드물게 하나님께 칭찬받은 왕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앗수르의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침공했을 때(왕하 18장), 히스기야는 애통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두 번의 작정 기도를 드렸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18만 5000명이나 되는 앗수르 군대를 진멸시킴으로 그의 나라를 지켜주셨다(왕하 19장).

 또한 그는 죽을 병에 걸렸으나 하나님께 기도하여 생명을 연장받게 되는 기적을 체험했다(왕하 20장). 그리고 열왕기하는 요시야를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야훼께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왕하 23:25)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요시야가 이토록 의미 있는 평가를 받은 것은 그가 이스라엘 역사상 유례없는 종교개혁을 단행했기 때문이다(왕하 23장).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가 전쟁에서 죽음으로 그의 종교개혁은 중단되고 말았다. 뛰어난 지도자를 잃은 남 유다는 얼마 후 바벨론의 침공을 받아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왕하 25장).

 이처럼 열왕기하에서는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이 계속되지만 그러한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인물들과 사건들이 여기저기 드러난다. 이것은 성도가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살아간다면 고난 가운데서도 승리와 축복의 삶을 살아가게 됨을 분명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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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하나님 중심의 신앙의 삶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

 구약 열왕기서는 문자 그대로 이스라엘 왕들에 대한 기록이다. 열왕기서는 왕들의 재임 시에 일어난 큰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열왕기서를 읽을 때에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점은 열왕기서가 단순한 이스라엘의 역사가 아니라 이스라엘 왕들의 하나님 앞에서의 죄악을 지적하는 반성의 기록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열왕기서에 나타난 역사적 교훈을 거울삼아 우리의 삶을 깊이 성찰할 기회를 얻게 된다. 

 열왕기상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반부(1∼11장)는 다윗에서 시작한 통일왕국이 솔로몬이라는 새로운 왕에게로 넘어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으며, 후반부(12∼22장)는 솔로몬 왕국의 종말과 분열왕국의 시작을 다루고 있다.


 아름다운 시작, 수치스러운 결말(왕상 1∼11장)

 열왕기상의 시작 부분은 통일왕국 시대에 솔로몬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의미있는 사건들을 다룬다. 맨 먼저 등장하는 것이 왕위 쟁탈전이다. 다윗이 늙어 쇠약하게 되었을 때 다윗의 후계자로 거명된 사람은 아도니야와 솔로몬이었다. 자연히 다윗의 왕국은 두 분파로 나뉘었고, 왕위를 물려받기 위한 치열한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결국 싸움은 솔로몬의 승리로 끝난다.

 그런데 용모가 준수했던 아도니야가 왕이 되지 못했던 결정적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성경은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왕상 1:5)고 말한 것을 기록한다. 하나님은 스스로 높여 왕이 되려고 했던 아도니야 대신에 솔로몬이 다윗의 후계자로 지명되도록 역사하셨다. 결국 솔로몬은 다윗에 이어 이스라엘의 합법적인 왕으로 선포되었다(왕상 1:32∼39).

 통치 초기에 솔로몬은 하나님과 백성들 앞에서 지혜와 겸손을 겸비하고, 백성을 잘 통치하는 열심을 보였다(왕상 3:1∼4:34). 또한 아버지가 이루지 못했던 꿈, 즉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 위하여 헌신의 노력을 기울였다(왕상 5:1∼9:9).
 이처럼 지혜와 겸손으로 출발했던 솔로몬의 아름다운 나라는 안타깝게도 끝까지 지속되지 못했다. 솔로몬의 왕국은 그 위세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점차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성경은 야훼 하나님을 향한 솔로몬의 사랑이 이방 여인들로 옮겨갔다고 기록한다(왕상 11:2).

 솔로몬은 자신의 왕국을 지키려는 정치적 목적으로 1000명의 이방 여인들을 후궁과 첩으로 맞이했고(왕상 11:3), 그 결과 솔로몬은 이방의 신들을 이스라엘로 유입시킨 죄를 짓고 말았다(왕상 11:4∼8). 이에 하나님의 진노가 왕국에 임하였고(왕상 11:9), 하닷과 르손 그리고 심지어는 솔로몬의 신하 여로보암이 그로부터 돌아서면서 왕국은 균열되기 시작했다(왕상 11:14∼26). 이처럼 겸손과 지혜로 시작된 솔로몬의 왕국은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수치스러운 결말을 맺게 되었다.

 통일왕국에서 분열왕국으로(왕상 12∼22장)

 하나님은 솔로몬이 죽기 전에 실로 사람 선지자 아히야를 통하여 통일왕국이 분열왕국이 될 것임을 알리셨다(왕상 11:29∼40). 솔로몬이 죽자 하나님의 말씀대로 솔로몬의 통일왕국은 서서히 와해되기 시작했다.

 솔로몬의 뒤를 이어 왕이 된 르호보암의 어리석고 경솔한 선택은 왕국의 분열을 가속시켰고(왕상 12:1∼20), 결국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하는 북이스라엘을 결성하게 되었다(왕상 12:21∼24). 열왕기상 후반부에 묘사되는 분열왕국 이야기는 북이스라엘이 자행한 죄악을 고발한다.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은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설치하고, 일반 백성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는 등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모든 것을 결정하였다(왕상 12:25∼33). 이로 인해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역사상 최악의 죄를 저지른 왕으로 낙인이 찍힌다(왕상 13:33∼34; 14:16; 16:31).

 열왕기상의 후반부는 죄악이 난무하는 가운데에서도 꺼지지 않은 희망의 불씨가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그 희망의 불씨 가운데는 위대한 예언자 엘리야가 있다.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벌인 바알 선지자들과의 결전은 성경에서 길이 남는 명장면이다(왕상 17∼19장). 이것은 아무리 힘없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막을 자가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처럼 열왕기상은 이스라엘의 왕들이 저지른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증거한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우리는 언제나 겸손히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나아가야 함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자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새 역사를 써 가시기 때문이다. 

<국제신학교육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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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두는 삶

 구약성경 사무엘상이 사무엘과 사울과 다윗이라는 세 인물을 다루는 반면, 사무엘하는 다윗 한 사람에게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사무엘하에는 두 명의 다윗이 등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고(삼하 1∼5장), 하나님께 기쁨을 드림으로써(삼하 6∼10장) 하나님의 전적인 인도하심을 받은 다윗이고(삼하 1∼10장), 다른 하나는 흉악한 죄를 범함으로 말미암아 수치와 고난의 삶을 살아야 했던 다윗이다(삼하 11∼24장). 이제 두 가지 인생길을 걸어갔던 다윗에 대한 이야기 숲으로 산책을 떠나보자.
 
 하나님께 기도하는 인생(삼하 1∼5장)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신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삼상 13:14). 하나님께서 다윗을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신 것은 다윗이 중요한 일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삼상 23:2,4; 30:8; 대상 14:10,14; 21:26). 다윗의 이러한 모습은 사무엘하 1장부터 10장에서도 이어진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고(삼하 5:4), 다윗 왕조의 시조로서 기반을 다진다.

 다윗은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의 때를 앞당기려 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다. 다윗은 사울의 죽음(삼하 1:1) 후에도 사울의 가족들을 해치려 하지 않았다. 다윗은 인내와 긍휼을 가지고 기다렸다. 때가 이르자 남 유다의 사람들이 먼저 다윗에게 나아와 그에게 기름을 붓고 왕으로 삼았다(삼하 2:4). 그리고 조금 뒤이어 북이스라엘 모든 지파와 모든 장로도 다윗에게 나아와 그를 왕으로 삼았다(삼하 5:3). 이런 다윗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만군의 하나님 야훼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삼하 5:10).

 이처럼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시고 그의 나라가 강성해 간 것은 그가 기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다윗은 늘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작은 일에도 큰일에도 하나님께 기도하였다(삼하 2:1; 5:19, 23). 다윗의 형통 뒤에는 늘 하나님의 뜻을 묻는 기도가 있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생(삼하 6∼10장)

 다윗이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블레셋을 무찌른 후(삼하 5:17∼25) 가장 먼저 한 일은 하나님의 궤를 자신이 살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모시고 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다윗은 늘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의 관심사는 ‘어찌하면 하나님 중심에 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였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것을 본 다윗은 너무나도 기뻐하며 야훼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뛰놀고 춤을 추면서(삼하 6:14∼15), 온 백성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었다(삼하 6:18∼19).

 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던 다윗은 또한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지으려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다윗의 마음만을 받으신다(삼하 7:4∼7). 다윗의 마음을 받으신 하나님은 다윗에게 큰 선물을 허락하셨다. 바로 영원한 왕조의 약속이다(삼하 7:8∼13). 그 이후로 다윗은 어디로 가든지 야훼께서 승리하게 하셔서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삼하 8:14).


 수치와 고난에 처한 인생(삼하 11∼24장)

 사무엘하 11∼24장에서 이전의 삶과는 달리 다윗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된다. 왕국이 안정되었다고 방심했던 탓일까? 다윗은 해서는 안 될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야 만다(11장). 자기 신하의 부인인 밧세바와 간음을 저지르고(삼하 11:4), 이를 덮기 위해 그녀의 남편이자 자신의 충성스러운 부하 우리아를 죽게 만든다(삼하 11:14∼17). 하나님은 다윗의 범죄에 크게 진노하셨다. 이 날 후로 다윗은 처참한 모욕과 아픔을 경험한다. 자녀들끼리 싸우고 죽이는 광경을 지켜보아야만 했고(삼하 13∼14장),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도망당하는 수치와 더불어 끝내 그의 죽음도 겪어야만 했다(삼하 15∼18장).

 다윗이 하나님 앞에 죄를 저지르고, 고통의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에서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기도하는 다윗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전에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뜻을 물었던 다윗의 모습은 사무엘하의 후반부에서는 찾기가 힘들다. 기도가 사라진 때부터 다윗은 범죄를 저질렀고, 그 결과 고통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우리는 사무엘하의 다윗의 삶을 통해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받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자는 자기 뜻 가운데 범죄하며 결국 수치와 고난 가운데 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두며 그에게 의지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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