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예수님의 행적 (마 21:12-17)


월요일은 성전을 청결케 하셨습니다.

마21:12-13에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책망하셨습니다.


화요일에는 논쟁과 강론의 날입니다.

마21:23에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 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따질 때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서냐 하시며 효과적으로 그들을 제압하셨습니다.


수요일에는 예수님의 장사를 위해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은 날입니다.

마26:6-7에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그리고 이 날 가룟유다가 예수를 은 30에 팝니다.


목요일에는 성만찬의 날입니다.

유월절 만찬을 하루 앞당겨 하셨는데 유월절이 아니라 성만찬으로 바꾸어 하셨습니다. 눅 22:19-20에 “떡을 가져 감사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 때 제자 중 하나가 자기를 팔 것이라 말씀하시고 식후에 주님께서 제자들과 찬송하시며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땀방울이 피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유다를 앞세운 칼과 몽치를 든 군인들에게 체포되었고 그 날 밤 가야바의 법정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고 신성모독죄로 정죄하고 베드로가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한 사건도 목요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금요일은 빌라도에 의해 사형이 언도되고 집행된 날입니다.

예수님이 빌라도 재판석에 서셨으나 유대종교지도자들의 선동에 의해 예수님 대신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하면서 사형을 언도하게 했고, 군병들에게 온갖 조롱을 다 당하신 후에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 못 박히시면서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한 강도를 구원하시고 어머니를 제자에게 부탁하시고 다 이루었다고 승리를 외치시며 운명하셨습니다.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사람 부자 요셉이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장사하고 군병들이 무덤을 지킵니다.


토요일은 예수님께서 무덤에 계시던 때입니다.

토요일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주일 이른 새벽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자 악인들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도적질해 갔다고 거짓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소식과 함께 거짓된 소식도 널리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예수님의 고난의 사랑을 묵상할 뿐 아니라 우리들도 예수님의 고난의 자취를 따라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기 위해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온전히 주님을 만나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구약에 나타난 예수님의 고난 예표 (눅 24:44-48)


분문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 일을 영으로만 생각하고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을 가지고 기록된 이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할 것을 설명하시고 성경을 깨닫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이처럼 철저히 성경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만이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보내신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알고 믿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아무나 그리스도라고 믿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예표는 성경에 수없이 많지만 몇 가지만 살펴보면

1. 아담의 증거가 있습니다.
엿새째인 금요일에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해서 여자를 만드신 것이나,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힌 사건이나, 창3:15에 뱀에게 한 저주처럼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 하신 말씀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언하신 예표를 봅니다.

2. 아브라함의 증거가 있습니다.
창22:2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여기 이삭은 그리스도의 예표였고, 모리아 땅은 바로 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곳입니다.

3. 모세의 증거가 있습니다.
양을 잡는 구약의 제사제도, 절기, 안식일, 성막 기타 수많은 것들이 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민 21장을 보면 백성들이 불평하다가 불뱀에 물려 죽어갈 때 모세가 만들어 장대에 세운 놋 뱀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한 것이었습니다.(민21:9) 그래서 요3:14-15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셨습니다.

4. 다윗의 증거가 있습니다.
다윗의 증거는 주로 시편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제자가 배반할 것(시69:21~29, 109:8, 41:9), 십자가에 달리실 때 조롱할 것과(시22:7~8), 옷이 제비 뽑혀 나눠가질 것(시22;18), 옆구리에 창이 찔리실 것(시22:16), 뼈가 꺾이지 않을 것(시22:17), 몸이 썩지 않을 것(시16:8~11)을 비롯해서 아주 구체적인 예언들이 많습니다.

5. 이사야의 증거가 있습니다.
사53:3-5에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는 동정녀 탄생 뿐 아니라 예수님의 성장 과정과 모습),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심, 창에 찔리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자의 묘실에 들어갈 것(사53:9), 얼굴이 가시로 상할 것(사52:14)까지도 자세히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학개 스가랴 말라기 등 다 증거할 수 없습니다. 구약 최후의 선지자 세례요한은 요1:29에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외쳤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만세 전에 예정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서 예언한 나의 구주로 믿고 영원토록 변함없이 사랑하는 복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고난주간에 예수님의 생활 일람표

   
         

예수님)

1. 고난주간에 예수의 생활 일람(1)

    일요일

    • 예수가 나귀 타시고 예루살렘 입성(마 21 : 1 - 11, 막 11 : 1 - 11).

    월요일

    •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심(마 21. 18 - 19, 막 11 : 12 - 14).
    • (세금의 질문에 설명) 성전 청결케 함(마 21 : 12 - 13, 막 11 : 15 - 19).

    화요일

    • 무화과나무 마름(마 21 : 19 - 22, 막 11 : 20 - 25).
    • 제사장 바리새인의 질문(막 11 : 27 - 33, 눅 20 : 1 - 8).
  • 경고의 세 가지 비유, 포도원 비유(마 21 : 28 - 22 : 14, 막 12 : 1 - 12).
    • 바리새인과 헤롯 왕이 예수께 질문(마 22 : 15 - 40).
    • 메시야에 대한 예수의 질문(눅 20 : 41 - 44).
    • 예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 책망(막 12 : 38 - 40).
    • 과부연보에 대하여 칭찬함(막 12 : 41 - 44, 눅 21 : 1 - 4)
    • 유대인이 예수를 배척함. 예루살렘 멸망과 말세를 예언함(눅 21 : 5 - 38, 요 12 : 37 - 50).

    수요일

    • 예수가 밤마다 베다니에 나가시니 이 날은 거기서 기도했을 것임.(성경에 수요일은 기록이 없음.)

    목요일

    • 최후 성만찬, 예수 그리스도의 고별사(마 26 : 31 - 35, 막 14 : 12 - 26, 눅 22 : 31 - 38).

    금요일

    •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반역과 예수의 포박(마 26 : 36 - 47, 막 14 : 32 - 52).
    • 안나스와 가야바의 심문(막 14 : 53 - 72, 요 18 : 13 - 27).
    • 빌라도의 심문(마 27 : 2 - 11, 31, 요 18 : 13 - 29).
    • 십자가의 고난(마 27 : 32 - 56, 눅 23 : 26 - 45).
    •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를 장사함(마27 : 57 - 61, 막 15 : 43-47).

    토요일

    • 무덤을 파수군이 굳게 지킴(마 27 : 62 - 66).

    일요일

    • 부활의 새벽(마 28 : 1 - 10, 막 16 : 1 - 17).
    • 파수군이 부활의 사건을 제사장에게 보고(마 28 : 11 - 15, 눅 24 : 13 - 35).
    • 엠마오 도상의 예수(눅 24 : 13 - 35).
    • 도마와 다른 제자들에게 예수 나타남(막 16 : 14, 요 20 : 19 - 25).

2. 고난주간에 예수의 생활 일람(2)

일자

요일

일명

사건명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첫째날

개선의날

예수 나귀 타시고 예루살렘 입성

21:1-11

11:1-11

14:27-44

12:12-19

둘째날

권위의날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심. 성전을 청결케 하심.

21:18-19
21:12-17 

11:12-14
11:15-19 

19:45-48

 

셋째날

논쟁의날

무화과 나무가 마름

21:20:22

11:20-25

 

 

예수의 권위에 대한 질문. 경고의 세가지 비유(두아들, 악한농부.혼인잔치)

21:23-27
21:28-
22:14 

11:19-33
12:1-12 

20:1-8
12:1-12 

 

바리새인과 헤롯당이 예수께 질문, 메시야에 대한 예수의 질문

22:15-40
22:41-46 

12:13-39
12:35-39 

20:26-40
20:41-44 

 

바리새인을 책망하심 과부의 연보에 대하여 칭찬하심

23:

12:38-40
12:41-44 

20:45-49
21:1-4 

 

헬라인이 예수잡을 것과 죽일 것을 예언함 (밀알의 비유)

 

 

 

12:20-36

유대인이 예수를 배척함,
예루살렘의 멸망과 말세를
예언함

24:1-14

13:

21:5-38

12:39-50

막 14:1-11은 화요일 설도 있고 수요일이라고
하는 이도 있어 잘 알 수 없다. 수요일은 예수께서
조용히 하루를 보낸 날인가도 하고 막 14:1-11 이라고도 한다.

넷째날

A은퇴일
B 기도일

가롯유다의 반역(문둥이 시몬집 초대)26:17 화요일
예수 죽이기로 함으로 은퇴일이라 함.
예수가 밤마다 베다니에 나가시니 이 날은
거기서 조용히 겟세마네서 기도했을 것임

다섯째 날

최후 성찬의 날

최후의 성만찬. 예수그리스도의 고별사. 중보의 기도(요 17:1-23)

26:17-30
26:31-35

14:12-26
14:27-31 

22:7-30
22:31-38 

13:1-30
13:31-
16:33
17 

여섯째 날

고난의 날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반여과 예수의 포박

26:30-40
26:47-50 

14:26-32 -43
14:43-52 

22:39-46
22:47-53 

18:1-
18:1-11 

안나스와 가야바의 심문

26:50
27:10 

14:53-72
15:1- 

23:54-71

18:12-27

빌라도의 심문

27:2,11- 31

15:1-20

23:

18:28-29

십자가의 고난

27:32-56

15:21-41

23:26-45

19:16-37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를 장사함

27:52-62

15:34-47

23:50-56

19:38-42

일곱째 날

무덤의 날

무덤을 파수군이 굳게 지킴

27:62-66

 

 

 

여덟재 날

부활의 날

부활의 새벽

28:1-10

16:1-17

24:12
29:56 

 

파수군이 부활의 사건을 제사장께 보고, 엠마오 도상의 예수

28:11-15

16:12-13

24:13-35

 

도마와 다른 제자들에게 예수 나타남

 

16:14

24:36-43

20:19-25

3. 십자가의 사실로 이루어진 구약의 예언

    (1) 제자에게 배척 당하심(시 41 : 9, 눅 22 : 48).
    (2) 은 삼십에 팔리심(슥 11 : 12, 마 26 : 15).
    (3) 심문 당하실 때 잠잠하심(사 53: 7, 마 26 : 63).
    (4) 강도와 함께 못 박히심(시 22. 16,사 53 : 12,눅 23 : 39-43).
    (5) 옆구리 창 맞음(요 19: 34-39, 슥 12 : 10).
    (6) 신 포도주를 드림(시 69; 21, 요 19; .29).
    (7) 의복을 제비 뽑음(시 22 : 18, 요 19 : 24).
    (8) 다리뼈를 꺾지 않음(시 34 : 20, 요 19 : 31-37).
    (9) 부자의 무덤에 장사됨(사 53; 9, 마 27 : 57-60)

4. 십자가 사후에 일어 난 사실들

    (1) 지진으로 성전 휘장이 찢어짐(마 27 : 51).
    (2) 무덤이 열림(마 27 : 52).
    (3) 백부장의 증거(마 27; 54).
    (4) 무리들의 확신(눅 23; 48).
    (5) 도적의 다리를 꺾음(요 19 : 31-32).
    (6) 옆구리 찌름(요 19 : 34).
    (7) 장사 지냄(요 19 : 38-42).
    (8) 무덤 봉하고 파수꾼 세움(마 27 : 66).

 

5. 고난에 관한 금언 ·격언 ·속담

    (1) "고난은 축복을 갖다 주는 지름길이다. " -M. 루터-
    (2) "하나님 앞에 진실되게 살려고 하는 이는 고통을 보석으로 삼는다. " -하천풍언-
    (3) "고난은 성공의 축대를 쌓는 것과 같다. " -M.NL. 영안-
    (4) "고생보다 더 중요한 교육은 없다. " -지스레지-
    (5) "고난을 모르는 사람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없다. " -도미트 아쓰 -
    (6) "고난이 크면 클수록 그 영광도 크다. " -M. T시세로
    (7) 초년 고생은 말년 낙의 근본이라. 네가 자라면 오복이 구비하고 남이 우러러보는 사람이 되리라." -이광수 -
    (8) "대부분의 생의 고난은 우리 자신이 햇빛에 서 있기 때문에 생긴다" -에머슨-
    (9) "고난은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다. 어려움이 우리에게 찾아 왔을 때,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물로써 하나님의 신임의 증거 라고 간주해야 한다. " -비쳐(H.W. Beecher)-

    (10) 고난이란? 좋은 것이다.

    • 고난은 좋은 훈련이다.
    • 고난은 사람이 살기에 귀찮을 정도다.
    • 고난은 여행하는 것과 같다.
    • 고난은 자신이 깨뜨려지는 것이다.
    • 고난은 나쁜 문제들을 안고 있는 것이다.
    • 고난은 한 성도가 받으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고통을 겪게 된다.
    • 고난은 하나의 체험이다.
    • 고문을 받는 것도 심한 고난이다.

 

6. 참혹한 십자가


십자가(Cross)는 라틴어 '크룩스(crux)'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고문대(拷問臺)'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이 만든 형벌 가운데 가장 참혹한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의 형벌은 고대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 이미 통용되어 왔던 사형법 이었습니다. 알렉산더 왕도 그가 점령한 지역에서 반기를 드는 사람들을 즐겨 십자가에 매달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드로 사람 일 천명을 십자가에 처형했다고 합니다. 에스라 6 : 11에는 파사의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리는데 자기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십자가에 달아 매어 죽이라고 명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제국에 와서는 노예만을 십자가에 죽였으나 때로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라도 중죄(로류)를 범한 경우 이를 적용시켰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참혹했기 때문에 로마 본국 내에서는 가급적 십자가 형을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콘스탄틴 황제가 십자가 형벌 금지령을 내렸고, 그 후 이 사형법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릴 죄인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구속 사업을 성취하기 위하여 그 참혹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이미 구약에서 예표로 알려진 것과 같이, 십자가를 쳐다보는 사람은 죽지 않으리라는 그 말씀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류 구원이란 신학적 의미를 가진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 : 6-7)

7. 십자가 위에서 남기신 예수님의 일곱마디 말씀 (가상칠언)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린 것이 오전 9시이고, 운명한 것이 오후3시니 십자가 위에서 6시간 동안 생명이 유지되어 있었습니다. 빨리 죽지 않고 모든 고통을 겪으며 서서히 죽기 때문에 십자가 처형은 가장 고통스러운 처형 방법인 것입니다.
    이 6시간 동안에 예수는 일곱 마디 밖에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4복음서에 나타난 것을 종합해서 순서대로 적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 첫째말-"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 : 34). 이것은 용서의 기도였습니다.
    • 둘째말-"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 : 43). 이 것은 파라다이스(낙원)의 약속이었습니다.
    • 셋째말-"어머니 보십시오, 당신의 아들입니다. " "보라, 네 어머니다"(요 19 : 26-27). 이것은 아들로서의 효도였습니다.
    • 넷째말-"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마 27 . 46). 이것은 영적인 고민이 었습니다.
    • 다섯째말-"목 마르다"(요 19 : 28). 이것은 육신적인 고통이었습니다.
    • 여섯째말-"다 이루었다"(요 19 : 30). 이것은 승리의 선언이었습니다.
    • 일곱째말-"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눅 23 : 46), 이것은 최후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이상 일곱 마디 중 처음 세 마디는 9시부터 12시 사이에 말씀하셨고, 12시부터 3시까지 세 시간 동안 갑자기 온 땅이 어두워졌습니다. 그 세 시간 동안 예수는 한마디도 말씀하지 않으셨고 오후 3시에 예수께서는 나머지 네 마디 말씀을 연거푸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고난주간] 예수님의 행적 (마 21:12-17)

   
     

[고난주간] 예수님의 행적 (마 21:12-17)


월요일은 성전을 청결케 하셨습니다.

마21:12-13에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책망하셨습니다.


화요일에는 논쟁과 강론의 날입니다.

마21:23에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 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따질 때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서냐 하시며 효과적으로 그들을 제압하셨습니다.


수요일에는 예수님의 장사를 위해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은 날입니다.

마26:6-7에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그리고 이 날 가룟유다가 예수를 은 30에 팝니다.


목요일에는 성만찬의 날입니다.

유월절 만찬을 하루 앞당겨 하셨는데 유월절이 아니라 성만찬으로 바꾸어 하셨습니다. 눅 22:19-20에 “떡을 가져 감사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 때 제자 중 하나가 자기를 팔 것이라 말씀하시고 식후에 주님께서 제자들과 찬송하시며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땀방울이 피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유다를 앞세운 칼과 몽치를 든 군인들에게 체포되었고 그 날 밤 가야바의 법정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고 신성모독죄로 정죄하고 베드로가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한 사건도 목요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금요일은 빌라도에 의해 사형이 언도되고 집행된 날입니다.

예수님이 빌라도 재판석에 서셨으나 유대종교지도자들의 선동에 의해 예수님 대신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하면서 사형을 언도하게 했고, 군병들에게 온갖 조롱을 다 당하신 후에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 못 박히시면서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한 강도를 구원하시고 어머니를 제자에게 부탁하시고 다 이루었다고 승리를 외치시며 운명하셨습니다.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사람 부자 요셉이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장사하고 군병들이 무덤을 지킵니다.


토요일은 예수님께서 무덤에 계시던 때입니다.

토요일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주일 이른 새벽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자 악인들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도적질해 갔다고 거짓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소식과 함께 거짓된 소식도 널리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예수님의 고난의 사랑을 묵상할 뿐 아니라 우리들도 예수님의 고난의 자취를 따라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기 위해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온전히 주님을 만나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검색


가롯유다가 받은 은 30의 값은?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유다)

 

 

가롯유다가 받은 은 30의 값은?

 

은30세겔 이면 1세겔 당 11.4그램이고,총 342그램이며 3.75그램이 1돈 이므로 총91돈 입니다.

1키로그램이 약100만원으로 볼때 대략 34만원 정도입니다.

당시 재정을 맡고 있는 유다가 얼마나 돈이 궁하면  이 유혹에 빠질수 있나,

그러나 이 모든것은 스가랴서 11장에 기록된 은30에 팔리는 대목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으로

어쩔도리 없는 상황 전개이고 여기에 꼼짝없이 유다가 걸려든 것입니다.

예수님의 흠없는 어린양의 십자가 보혈의 제물도 예언된 그대로 이루어진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사단의 올무에 빠진 자를 수없이 봅니다.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도 걸려들고

솔로몬도 이방 여인으로 인해 우상을 섬기고 타락한 모습으로 걸려들고

유다도 은 삼십 세겔 이란 물질에 그 올가미에 걸려들고 만 것입니다.

당시 노예 한명 값 이라니 얼마나 사람이 노예로 살아간 그 운명의 처절함과 비참함까지 생각나게 합니다.

우린 신앙생활 하면서 정말 조심합시다. 사단의 올가미에 걸려들지 맙시다.

특히 재물,권세,여자,세상일,세상자랑, 올가미에 걸려든 자가 불쌍한 것입니다.

이 토록 하나님 백성인 아담, 솔로몬, 다윗,삼손,유다,등등 사단의 거짓과 유혹,

사단의 유혹 도구인 돈과 이웃여자의 올무에 걸려든 인생이 되지 맙시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이 가르침에 준행하는 진리의 사람,

예수의 사람으로 항상 청빈 생활과 돕는 생활을 즐기다가 예수님을 뵈오시길 소망합니다.

지금 유다와 같은 목사와 성직자들과 성도들이 얼마나 많이 보이는지 모릅니다.

영적으로 뚫어보십시오.



스크랩 / 고난에서 존귀로(대상4;9-10)    

제 목 : 고난에서 존귀함으로(부흥)



성 경 : 역대상 49-10 (2020.2. 23.주일오전예배)


설 교 : 전 원 준 목사

 

< 찬송 = 148갈보리동상. 59오놀라운. 63 나의갈길 >



(역대상 4:9-10) [9]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


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아름다운 해변가에서 세미나를 하고 있었다.


경치는 최고이고, 좋은 분위기의 장소였다.

 

문제는 종종 기차가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기차 소리 때문에 강의 분위기를 망치게 되었다.

 

당장 기차소리를 없앨 수는 없다. 당장 방음 장치도 힘들다.


방해하는 소리를 돕는 소리로 만드는 길은 없을까?

 

강사가 이렇게 제안했다.


이제부터 기차 소리가 날 때마다 박수를 치고,


환호를 지르며, 옆 사람에게 축하하고 칭찬합시다.”

 

그러자 기차가 지나가면 오히려 가라앉은 분위기가 살아났다. 기차 소리가 날 때마다 분위기가 좋아졌다.

  

탈무드에도 =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칭찬하는 사람이요,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요즘 우리들의 마음이 무겁고 힘든 가운데 있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우리 서로를 격려하며 감사하는 신앙으로 사는


복된 성도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인물이 바로 야베스라는 사람입니다.


역대상 1-9잘까지 이스라엘 여러 사람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600명 정도. 그중에 존귀한 사람,

 

특별히 하나님이 지적한 사람은 야베스 한사람입니다.

 

야베스는 그 형제들 중에서 존귀한 자라는 명칭을 얻게된 것입니다.

 

원래 야베스란 이름은-고통, 수고, 눈물 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야베스는 자기의 인생을 존귀한 자로 바꾸었습니다.이것이 바로 진정한 부흥입니다.

 

야베스의 부흥이 오늘 우리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야베스는 기도를 통하여 그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그의 기도는 무엇이였습니까 ?

 

 

1. 야베스는 복에 복을 더 하여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대상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1) 야베스는 유다 지파 로 태어났습니다.


이것이 그에게는 최고의 복이 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실재의 삶에는 고통의 연속이였습니다.

 

2)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습니다.이것은 대단한 축복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신앙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3)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축복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 복에 복을 더하사,” 신앙입니다.

 

 

## 다시 한번 안수 하신 주님 =

 

(8:23-25) [23] 예수께서 소경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24] 우러러보며 가로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의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25]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저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만물을 밝히 보는지라

 

## 솔로몬의 기도 = 지혜를 구함.


(왕상 3: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왕상 3: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이 왕이 되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그러나 이백성을 다스리기 위하여 더 필요한 것이 있었습니다.껏이 바로 지혜였 던 것입니다.

 

## 야곱의 기도 =


(28:21-22) [21] 나로 하여금 평안히 내 아버지 집으로 되돌아오게 하시면 주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더라.

 

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오늘 우리는 하나님으로 부터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 많은 일, 더 큰 일을 하기 위하여 쓰임 받는 존귀한 신앙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야베스는 지경을 넓혀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대상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원하건대 주께서 ...


내 지경(地境)을 넓히시고 ...

 

# 유람선과 전투함 =


교회의 존재를 유람선과 전투함으로 구분한 것을 보았습니다.

 

유람선 유형이란 교회가 존립하는 것에 만족하는 유형입니다. 유람선을 탄 관광객들은 쾌적한 환경에서


 승무원들의 섬김과 돌봄을 받고, 바깥에 펼쳐지는 경치를 즐기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전투함 유형의 교회는 교회가 지향해야 할 사명의 완수를 위해 모든 성도들이 뜻을 같이하고,


사명이 완수됐을 때 함께 기뻐하는 유형입니다.

 

전투함 내에서는 어떤 사람들은 섬기고 어떤 사람들은 서비스를 받는 상황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사명을 위해 각자 받은 임무가 있습니다.


사명 완수를 위해 각자 맡은 역할 속에서 땀 흘리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 “지금 우리 교회는 유람선일까? 전투함일까?.


나는 과연 우리 교회의 관광객일까, 전투요원일까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1) 내 지경을 넓혀 달라는 기도는, 지금 내가 하는 사역에서 더 많은 일을 하겠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2) 우리 교회 사역이 =


명장동에서, 동래구로, 부신시에서 전국으로,아시아에서 전 세게로... 나아가자는 뜻입니다.

 

3) 내가 섬기는 사역의 버위를 점점 더 넓히자는 것입니다.지금 내가 섬기는 사역이 무엇입니까 ?


그것보다 하나씩 둘씩 점점 더 넓혀나가야 합니다.좁아지지 말아야 합니다.

 

(10: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6: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땅에서 지경을 넓혀서 앞으로 나아가는 복된 신앙됩시다.

 

 

3. 야베스는 하나님이 지켜 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대상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손이 나와 함께하사


나를 악에서 지켜 주시고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

 

0 주님의 손길이 순간 순간 필요합니다 =

 

(119:173) 내가 주의 훈계들을 택하였사오니 주의 손이 나를 돕게 하소서

 

0 악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140:4) 여호와여 나를 지키사 악인의 손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나를 보전하사 강포한


자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저희는 나의 걸음을 밀치려 하나이다

 

0 근심이 없이 즐겁게 주님을 섬기는 신앙이여야 합니다..

 

(9:7) 네 길로 가서 기쁨으로 네 빵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즙을 마시라,


하나님께서 이제 네가 행하는 일들을 받으시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 찬 송 =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평안하고 복된 신앙생활 되시기를 야베스처럼 기도하며 살아갑시다. 아멘 !

 

 

 

4. 하나님께서 야베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대상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


하나님께서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1) 기도는 성도의 축복입니다.

 

(29:12-13) [12] 그때에는 너희가 나를 부르고 가서 내게 기도하리니 내가 너희 말에 귀를


기울이리라. [13] 또 너희가 마음을 다하여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날 것이라.

 

(41:10)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기 때문이니라. 너는 놀라지 말라.


내가 네 하나님이기 때문이니라. 내가 너를 강하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내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의 기도가 야베스 기도처럼,


축복으로 응답되는 놀라운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신앙이 야베스처럼 존귀한 신앙되기를 축복합니다.

 

찬 송 = 너는 담장 넘어

 


고난의 자취를 따라 (벧전 2:18-21)


     

고난의 자취를 따라


베드로전서 2:18-21

  

서구의 오래된 풍습 가운데 엄마가 시집가는 딸에게 진주를 선물하는 관습이 있다고 합니다. 엄마가 시집가는 딸에게 주는 이 진주를 얼어붙은 눈물(Frozen Tears)이라고 부릅니다. 그 진주가 딸이 시집가서 흘려야 할 많은 눈물을 상징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낯선 환경으로 시집을 간 딸이 속상할 때 많은 눈물을 흘리게 될 텐데, 그 때 이 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각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렇습니다. 진주는 땅에서 캐나는 것이 아니라 바닷속의 조개 안에서 만들어집니다. 어쩌다가 모래 하나가 조개의 몸속으로 들어가면 까끌까끌한 모래가 보드라운 조갯살 속에 박히게 됩니다. 그러면 조개는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첫 번째는 자신의 몸에 박힌 모래를 무시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조개는 자신의 몸에 박힌 모래알 때문에 병들어 살이 썩기 시작하고, 얼마 가지 않아서 그 모래알 때문에 조개는 죽고 맙니다. 또 하나의 선택은 조개가 자신의 몸속에 들어온 모래알의 도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주층(nacre)이라는 생명의 즙을 짜내 자기 몸속에 들어온 모래알을 계속해서 덮어 싸고 또 덮어 쌉니다. 오랜 기간 동안 고통을 감내하면서 생명의 즙으로 모래알을 감싸고 감싸다 보면 그것이 영롱한 진주가 됩니다.

엄마가 결혼하는 딸에게 진주를 선물한 이유도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결혼생활이 언제나 행복하고 기쁜 것만은 아닙니다. 살다보면 수없이 많은 시련과 고통의 순간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것을 무시한 채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까지도 병들고 썩고 맙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에 찾아온 그 시련과 고통을 받아들여 의미를 찾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것을 통해서 진주를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그 선택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엄마는 선물하는 얼어붙은 눈물이라는 진주는 사랑하는 딸에게 인생에 찾아온 쓰라린 시련과 고통을 통해서 진주와 같은 사람이 되어가라는 삶의 교훈을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자신 앞에 큰 시련이 닥치길 원하거나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그런 바람과는 달리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시련과 고통의 순간에 부딪치며 살아야 합니다.

어쩌면 진주조개의 이야기에서 교훈해주는 것처럼 우리에게 닥친 시련이 크면 클수록 우리는 더 크고 값진 진주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오늘 우리가 고통 속에서 흘리는 눈물의 양만큼 우리의 인격과 신앙은 더욱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 앞에 당한 시련이나 고통을 문제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시련과 고통은 문제가 아니라 숙제일 뿐입니다. 여러분, 문제와 숙제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문제는 그 해답을 얻기 위해서 원인을 밝히는 것에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숙제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해결하고 그 책임을 감당하려는 것에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당한 시련이나 고통을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숙제로 봐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내가 당한 시련이나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도 때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당하는 시련이나 고난은 대부분 그 이유를 잘 알 수 없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래서 무엇 때문에 이 시련과 고난이 내게 닥쳤는지를 알려 하는데 우리의 영적 에너지를 소비할 것이 아니라, 이것을 통해서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지를 깨닫고 그 목적을 향해 끊임없이 전진해 가야합니다. 그것이 고난이 우리에게 준 숙제입니다.

 

  시련이나 고난을 문제로 해결하려 한다면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그 해답을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원인을 찾는다면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 우리에게 시련이나 고난이 오는 이유는 우리의 실수나 잘못, 또는 우리의 죄악 때문에 당하는 고난입니다.

그것을 흔히 신명기적 고난이라고 말합니다. 신명기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복을 받을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으면 징벌이라는 고통이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의 삶에도 그런 연유로 고통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못하는 불순종으로 인해 고난을 받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맞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고통이나 고난, 시련이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2. 우리에게 시련이나 고난이 오는 두 번째 이유는 그리스도인으로 살려 하다가 받는 사명적 고난입니다.

바울이 그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평생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과 시련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에서 증언한 것처럼 때로는 돌에 맞아 죽을 고비도 넘겼고,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아야 했고, 일주일 동안 깊은 바다의 위험 속에서 지내는 등 수없이 많은 고난과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은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면 굳이 그런 시련이나 고난을 겪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사도행전 20:24)는 사명감에 사로잡혀 복음을 전하다가 그런 시련과 고난을 겪은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길을 가려할 때 반드시 고난이 있습니다. 시련이 있습니다. 그것을 견디어내며 갈 때 우리의 사명을 완수해낼 수 있습니다. 꼭 사명의 길을 가는 데에만 그런 시련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려할 때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그런 고난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신앙인답게 사는 것은 세상의 가치나 삶의 방법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제자로 사는 삶에는 반드시 고난이 따른다고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마가복음 10:30)


3. 우리가 시련이나 고난을 받는 세 번째 이유는 훈련을 위한 고난입니다.

우리를 연단하기 위해서 오는 고난과 시련입니다. 그 고난이 시작될 때에는 그 이유를 잘 알 수 없지만, 고난을 인내로 이겨나가면서 깨닫는 것은 그 고난이 나를 강한 그리스도의 군사로 연단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강한 훈련을 받지 않고서는 강한 군사가 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통해 연단되지 않으면 좋은 그리스도의 군사가 될 수 없습니다.


베드로전서 4:12-13에서 이렇게 가르쳐줍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기에 여러분, 우리에게 때로 이유 없이 고난이 찾아오거든 나를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연단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훈련학교에 입학했구나!’라고 생각하시고 그 연단을 통해 성숙해지는 기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네 번째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이성과 논리로 아무리 설명하려고 해도 설명할 수도 없고, 그 이유를 알 수도 없는 고난이 때로 우리의 삶에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욥입니다. 욥기에서는 욥이 고난을 당한 것이 사탄이 하나님께 욥을 시험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 욥을 고난 속으로 밀어넣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적 표현입니다만, 실제로 우리 인간의 사고를 가지고는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욥을 시험하도록 사탄에게 허락하셨는지, 왜 욥의 자녀들이 한 순간에 죽임을 당하고, 평생 모은 재산을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습니다. 때로 우리의 삶에 그런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아무리 우리의 삶을 되돌아봐도 무엇 때문에 내가 이 시련과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으리라는 믿음의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재해석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왜 내가 이런 시련을 당해야 하느냐?’고 기도해도 응답이 없습니다. 우리를 시련의 풀무불에 밀어 넣으신 이유가 분명 있긴 있을텐데 우리의 머리와 지성으로는 도저히 깨달을 수 없는 시련과 고난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머리와 지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없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신 하나님만의 계획과 섭리가 분명 있을 거라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전적으로 위탁하는 믿음이라면 말입니다.

 

4.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또 하나의 고난과 시련의 이유가 있다고 가르쳐줍니다.

사도 베드로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가 당하는 것과 다른 의미의 고난이라고 말씀합니다. 사실 오늘 본문은 오늘 우리시대의 눈으로 바라보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이 말씀을 주신 대상이 오늘 본문 18 첫 단어에 나온 것처럼 사환들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환은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과는 다른 부류의 사람입니다. 종은 말 그대로 노예입니다. 전적으로 주인의 소유이고, 그들에게는 주인이 허락하지 않는 한 자유가 없습니다. 종은 그 생명이 주인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사환은 종보다는 조금 더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주인이라고 불리는 사람의 수하에서 일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종과 같이 자유를 완전히 박탈당한 사람이 아니라 주인의 권위 아래서 주인의 집안일을 돌보아주는 하인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사장 아래에서 일하는 직장인이나 가게 주인 아래서 일하는 점원이나 아르바이트생 정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환들에게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두려워함으로 주인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자신에게 자비롭고 너그럽게 대하는 마음씨 좋은 주인에게만 순종하고 주인대우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주인대우를 하고 그들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까다로운 자들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하인들에게 못되게 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 말을 성경 다른 곳에서는 패역한 사람들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사도행전 2:40, 빌립보서 2:15) 그들은 하인들을 불공정하게 대하기도 합니다. 자기들의 감정에 따라서 하인들을 대합니다. 패역한 세상을 닮아 자기들의 이익 앞에서는 앞뒤를 가리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손해가 되는 것처럼 보이면 가차 없이 불법도 서슴치 않습니다. 그래서 하인들은 그런 주인을 만나면 고생하게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르게 살려고 하고, 정직하게 살려고 하는 하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악한 사람입니다. 저주하고 욕하고 싶을 정도로 패역한 마음에 사로잡혀 하인들을 배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정하지 못한 일이나 불법적인 일을 하도록 강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정직하게 살려하는 하인들의 입장에서는 처세하기가 참 곤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주인이라 하더라도 그들을 두려워함으로 순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두려워하다는 말은 오늘 본문 바로 앞인 베드로전서 2:17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라는 말씀에 쓰인 그 단어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패역하고 불공정한 주인, 그래서 주인으로서 도저히 공경하거나 순종하고 싶지 않은 주인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그 주인에게도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하듯이 주인을 대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시대의 사고를 가지고 생각한다면 그 말은 참 부당한 요구입니다. 어떻게 그런 주인을 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것처럼 두려워하여 순종할 수 있습니까? 나에게만 좀 까탈스럽게 대하는 주인이라면 그냥 참고 견딜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불법을 행합니다. 마음 자체가 패역한 주인입니다. 무엇 하나 존경할만한 것이 없는 주인입니다. 그런데 그런 주인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두려워하고 순종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요,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그런 주인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이유 없이 고난을 받는다 하더라도 항거하거나 그 집에서 도망칠 생각을 하지 말고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아름다운 신앙인의 모습이라고 말입니다. 더구나 20에서는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뭔가 잘못을 해서 주인에게 미움을 받거나 어려움을 겪는다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잘못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주인에게 유익이 되도록 일을 했습니다. 누가 봐도 선한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주인이 미워하고 나를 힘들게 할지라도 참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말입니다.


19절과 20절 마지막에 표현된 아름답다.’는 말은 신약성경 언어로 카리스(χαρις)입니다. 카리스라는 말을 우리가 잘 아는 표현으로 한다면 은혜입니다. 그러기에 19절과 20은 이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은혜로운 것이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서 은혜로운 것이다.’ 무슨 말입니까? 은혜는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것, 선물입니다.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하나님의 신령한 것들로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기억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부당하게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등 종교지도자들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산헤드린 공회 공회원들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을 죽일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는 말은 그들의 계획이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다가 가롯 유다를 은 30에 매수해서 스승이신 예수님을 팔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늦은 밤에 불법 재판을 해서 사형을 언도합니다. 당시에 밤에 열리는 재판은 불법입니다. 더 나아가 자신들의 권한으로는 사형을 집행할 수 없기에 군중들을 선동해서 로마 총독 빌라도 앞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게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을, 로마 총독도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누가복음 23:4)라고 말했는데도 그들이 억지를 써서 십자가에 못 박에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불의한 사람들에게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 죄로 찌든 인간의 권력자들에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피조물인 인간에게 채찍에 맞으시고 침 뱉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평화의 왕이신 주님께서 로마 군인들에 의해 손과 발에 못을 박히셨습니다. 가장 영광을 받으셔야 할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21절에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그 고난의 길을 따라오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5. 우리가 받는 고난의 다섯 번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지으신 죄로 인해 고난을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더욱 성숙한 믿음을 위해서, 연단과 훈련을 위해서 고난을 받으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고난당하신 것은 우리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애매한 고난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죄로 인해 죽어 마땅한 우리를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로 그 고난의 자취를 따라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위해 고난을 당할 정도로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난을 통해서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우리의 고난을 통해서 누군가를 살리는 구원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이 사환들아!’ 그러면서 이유 없이 주인에게 고난을 당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그것이 은혜로운 일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당한 그 고난을 통해서 나를 힘들게 하고 나를 미워하는 주인까지도 구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힘듭니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억울합니다. 참고 참으려 하지만 인내에 한계를 느낄 때가 참 많습니다. 내가 왜 이런 불이익을 당해야 하느냐고 누군가에게 항변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억울한 재판을 받으실 때에도, 군병들에게 채찍을 맞으시고 가시관이 그의 머리에 씌워질 때에도,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으실 때에도 우리 주님께서는 항변 한 번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묵묵히 참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랬기에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예수님처럼 우리도 때로 참아 보십시다. 억울해도 참아 보십시다. 불이익을 당해도 손해를 감수하고 참아 보십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묵상하며 참아 보십시다. 그러면 세상은 우리에게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할지 모르지만 분명 우리를 통해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닭과 독수리는 위험한 순간을 당할 때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폭풍우가 몰려오면 닭은 몸을 날개에 묻은 채 숨을 곳을 찾습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거대한 날개를 활짝 펴서 태풍에 몸을 싣고 유유히 날아 안전한 곳을 향해 갑니다. 인생의 폭풍우를 만날 때 우리 인간도 두 가지 유형으로 대처합니다. 너무너무 힘든 일을 만났을 때,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억울한 일을 당할 때, 견디기 힘들 정도로 괴로운 일이 몰아칠 때, 닭과 같은 사람은 일단 몸을 숨기고 봅니다. 그 때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독수리 같은 사람은 고난 앞에 당당히 서서 그 고난을 통해서 더욱 큰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해갑니다. 누가 더 지혜로운 사람일까요? 때론 힘든 문제 앞에서 자신을 숨겨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숨긴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당장 눈을 감는다고 내 앞에 불어닥친 폭풍우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고난의 시련을 통과한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선한 역사를 만들어 가십니다.

 

   여러분, 그거 아세요? 낮에도 하늘에 별은 떠 있습니다. 단지 별이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주변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이 되었을 때에 비로소 우리는 푸른 창공에 떠있는 영롱한 별빛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평안할 때에는 볼 수 없는 것을 고난의 때에 볼 수 있습니다. 평안할 때에 들을 수 없었던 하나님의 음성을 고난과 시련의 때에는 들을 수 있습니다. 평안할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하나님의 임재를 고통의 때에는 깊이 경험하게 됩니다.

   때때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은 우리로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누군가를 구원하는 놀라운 역사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주님의 고난의 자취를 따라 가십시다. 힘들더라도 기쁨으로 가십시다. 분명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선한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제목 : 예수님의 흔적을 간직하자       

성경 : 6:17 -18

 

예수님의 고난주간을 앞두고 우리는 예수님의 고통과 십자가의 죽음을 되새기며 은혜 받는 기간입니다.

인간의 삶에서 고통과 죽음은 가장 중요한 가치와 내용을 지닙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문화, 노동, 국방,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 등 모든 분야에 걱정이 많습니다.


(6:17-18)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흔적 : 유대인들은 종들에게 화인을 이마나 손에 찍어서 주인의 이름 중에 머리글자를 새기는 풍습이

있었다. 이러한 화인의 흔적이 있는 사람은 주인의 소유물이 된다.

바울도 외적인 흔적보다도 실질적인 흔적, 주님위해 당한 흔적이 있다고 강조했다.
오늘,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도 아래 4가지 흔적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1. 내 심령에 예수님의 흔적이 있어야 한다.(마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주님을 사랑하는 흔적, 영혼을 사랑하는 흔적,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심령에 성령의 불이 임하는 흔적이 있어야 한다.

 

성자 다미엔은 나환자를 위하여 자신도 나환자가 되었다.

바울은 자기 민족의 구원을 위하여 저주를 받아도 된다고 하였다.

우리의 심령은 어떠한가?

우리는 우리의 심령에 성령의 불을 지른 흔적이 있는 성도가 되자.

2. 내 얼굴에 예수님의 흔적이 있어야 한다.
(11:32-35, 나사로 죽음):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 이다 하더라. (33)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예수님의 3차례 눈물은

1) 나사로의 무덤을 보고 눈물을 흘리셨다. 감람산위에서

2) 예루살렘을 보시면서 멸망을 안타까워하셨다. 목자 없는 양 떼를 생각하시면서 불쌍히 여기셨다.
3) 겟세마네동산에서 마지막 기도 하실 때.

(26:39) 십자가지기 전 피눈물의 기도,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절규 -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 살고 싶었다. 3년간의 사역만, 아직 많은 일을 하여야한다 - (생각) 베드로 욕 - 위로, 요한 마리아, 마르다 책망 - 위로, 결국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소 - 철저한 순종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내 얼굴에 예수님을 위한, 성도를 위한, 내 죄를 위한, 교회를 위한,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흘린 눈물의 흔적이 있는가?

3. 내 성격에 예수님의 흔적이 있어야 한다.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은 온유하시고 겸손하셨다. 털깎는 양같이 발길로 채이고 침뱉음을 당하고 채찍에 맞으시고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홍포를 입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하심을 당했어도 오히려 자기를 못 박는 자들을 향하여 기도하시는 분이셨다. 불같이 무섭고 교만하던 자가 온유해지고 겸손해지지 않았는가? 혈기 있는 모습이 바꾸어지자.

4. 내 육체에 예수님의 흔적이 있어야 한다.
(20:27-29)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사람마다 다친 흔적이 조금이라도 있다. 예방주사를 맞은 흔적 이 있다.

바울은 예수님을 위하여 수많은 핍박을 당했고 매를 맞았으며 고난을 당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흔적이 있는가?

기도한 흔적, 사랑한 흔적, 핍박받은 흔적이 있는가?

예수님 때문에 받은 육체적인 흔적, 또는 정신적인 흔적, 또는 마음에 상처가 있는가?

결론:
우리 예수님을 믿어 예수님을 믿는 흔적을 보여 주어야합니다.
1. 우리 심령에 예수님의 흔적이 있어야 한다.

2. 우리 얼굴에 예수님의 흔적이 있어야 한다.

3. 우리 성격에 예수님의 흔적이 있어야 한다.

4. 우리 육체에 예수님의 흔적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한 주 보냅시다


26∼31일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열려
조용기·이영훈 목사 ‘제자의 길’ 주제로 설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전이 바로 고난주간이다. 우리 교회는 4월 1일 부활절을 앞두고 26일부터 31일까지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를 갖는다. ‘제자의 길’을 주제로 오전 5시 대성전(지·직할성전은 위성중계)에서 열리는 특별새벽기도회는 조용기 목사와 이영훈 목사가 설교한다. 이영훈 목사는 고난주간의 예수님 행적에 대해 전할 예정이다.
 고난주간은 사순절 마지막 한 주로 인류 대속을 위해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종려주일부터 부활 주일 하루 전인 토요일까지다. 고난주간은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신앙을 점검하고 훈련하기 좋은 때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교회들은 금식을 선포하고 특별 새벽기도회 또는 개인기도 시간을 보낸다. 금식을 선포하는 것은 나와 우리를 위해 고난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하기 위함이다. 개인의 유익과 쾌락 대신 기도에 힘쓴다는 것은 온전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을 고백한다는 의미다.
 성경이 기록하는 믿음의 선조들은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금식기도를 선포했다. 또 특별한 예배와 관련해 금식하기도 했다. 부활절을 앞두고 하는 고난주간의 금식기도는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다. 또 특별새벽기도회에 동참함으로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의 마음을 고백하자는 것이다.
 더불어 매일 성경을 묵상하고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교제하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배가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한 영광을 경험하게 해주신다. 그런 의미에서 한 주간은 기도에 동참하는 시간이 돼야 한다.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새벽 오히려 미명, 한적한 곳에서 홀로 기도하셨던 주를 기억하며 우리도 새벽기도회에 동참해 감사기도를 드려보자.


고난주간 예수님의 행적

(주일) - 주님이 고난을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입니다. 종려주일이라고도 부릅니다.
(월) - 예수님이 거룩한 성전이 시장화된 것을 보시고 성전을 청결하게 청소하신 날입니다. 성전인 우리는 우리 마음 안에 예수님이 거하시도록 마음을 청결히 해야 합니다.
(화) -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무리를 가르치시고 유대인들과 치열하게 논쟁하신 날입니다. 우리 신앙의  첫 계명인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쳐주신 날입니다.
(수) - 예수님이 성 밖 베다니에서 제자들과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신 날입니다. 이날 마리아는 주님께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었고,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할 음모를 꾸몄습니다.
(목) -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을 드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이어 열 한 제자를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체포당하셨습니다.
(금) -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6시간 동안 고통당하시다 돌아가셨습니다.  이날은 ‘성금요일’이라고 말합니다. 나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야만 했던 주님의 깊은 사랑을 묵상해야 합니다.
(토) - 우리의 죄와 허물을 속량하시기 위해 무덤에 갇혀 죽음과 저주, 심판을 홀로 견디신 날입니다. 사망과 죽음을 이기고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되신 부활의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는 날입니다.


십자가의 고난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