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겁의 신비 품다, 탐나는 탐라 속살       

       
제주도는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지질공원이다. 제주도의 12개 핵심 지질명소 중 하나인 용머리해안에 들어서면 켜켜이 쌓인 화산재 지층에서 유장한 세월을 읽을 수 있다.
제주도는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지질공원이다. 제주도의 12개 핵심 지질명소 중 하나인 용머리해안에 들어서면 켜켜이 쌓인 화산재 지층에서 유장한 세월을 읽을 수 있다.
다양한 화산 퇴적구조를 보며 걸을 수 있는 수월봉 엉알길.
다양한 화산 퇴적구조를 보며 걸을 수 있는 수월봉 엉알길.
병악 현무암지대(소금막)의 주상절리.
병악 현무암지대(소금막)의 주상절리.
성산일출봉 해녀 물질 체험.
성산일출봉 해녀 물질 체험.

l 제주 지질관광
비우는 여행이 있는가 하면, 채우는 여행도 있다. 제주도는 덜어냄보다는 채움의 정서가 짙은 여행지다. 사시사철 빼어난 자연과 산해진미가 여행자의 눈과 입을 능히 살찌우게 한다. 알고 보면 머리를 채우는 제주도 여행법이 있다. 화산지형과 지질자원을 온몸으로 확인하며 섬의 역사를 체험하는 지오 투어리즘(Geo tourism·지질관광)이라는 여행법이다.

제주도는 명실공히 세계가 인정하는 지질 유산이다. 2002년 생물권보전지역, 2007년 세계자연유산, 2010년 세계지질공원에 연달아 오르며 유네스코 3관왕을 달성했다. 특히 한라산·만장굴·성산일출봉·천지연폭포·산방산·용머리해안·수월봉 등 12개 지역은 핵심 지질명소로 지정돼 있다. 그러나 지질자원을 테마로 제주도 여행을 실천한 사람은 아직 드물다. 제주도가 지닌 지질자원의 가치를 어렴풋한 소문으로만 알고 있어서다.

제주도에서는 몇 년 사이 꾸준한 변화가 있었다. 제주관광공사가 2013년부터 약 35억 원을 들여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핵심마을 활성화사업’을 진행했다. 제주의 지질학적 특성을 관광에 접목해 지역 경제도 키우고, 지질 명소로서 가치도 보존하겠다는 취지로 시작한 사업이다. 그 결과로 지난해 ‘지오 브랜드(Geo Brand)’가 출범했다.

지오 브랜드는 도보여행·체험활동·숙박·음식 등 관광의 전 분야를 아우른다. 그 가운데 ‘지오트레일’은 핵심 지질 마을을 걸으며 지질자원의 의미와 마을의 문화를 느끼는 걷기여행길이다. 지리 해설 교육을 받은 지역 주민이 함께 걸으며 제주 지질자원의 이해를 돕는다. ‘지오액티비티’는 지질마을의 독특한 문화를 바탕으로 한 지질관광 체험 프로그램이다. 성산일출봉 해녀 물질 체험, 산방산 주변 자전거트레킹 등이 여기에 속한다.

‘지오하우스’는 이름 그대로 지질마을의 특성을 살린 숙소다. 100년 역사를 헤아리는 전통 민박집이 있는가 하면, 펜션도 있다. ‘지오푸드’는 지질 명소의 특성을 재해석한 음식이다. 지오푸드 지정 식당에서 화산재 지층처럼 겹겹이 층을 이룬 돈가스도 먹고, 화산 퇴적층 모양의 주먹밥도 맛볼 수 있다.

제주관광공사 최갑열 사장은 “관광객이 제주도의 속살을 누비며 지역 주민과 어우러지는 것이 지질관광의 핵심”이라며 “지질관광을 통해 관광객은 새로운 재미를 찾고, 마을 공동체와 지역 주민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제주도 지질관광은 기본적으로 땅의 역사를 이해하는 일이다. 해돋이 명소로만 알고 있던 성산일출봉에서는 화산재 지층을 직접 만져보고 화산 활동과 퇴적 과정을 몸소 체험한다. 월정리에서는 요즘 핫하다는 카페 거리 대신 마을 안쪽 밭담길로 들어간다. 딱딱한 화산 암석을 깨뜨려 돌담을 세우고 밭으로 일군 제주 사람의 고난한 삶을 밭담길 위에서 배운다.

제주도 유일의 해녀 지질 해설사 장순덕(66)씨는 요즘 지질에 대해 공부하다 무릎을 탁 치고 말았단다. “수월봉 바당(바다)에서 물질만 50년을 한 나도 몰랐지. 엉알(절벽 아래) 다니는 관광객을 보멍 정신머리 없는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했는데, 그게 아니야. 물속에서 보던 절벽이 그전에는 그냥 시커멓게 보였는데, 1만 년 전에 생겼다는 걸 알고 나니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어.”

이번 주 week&은 제주도 지질 여행이다. ‘지질’이라는 테마 아래서 걷고 먹고 잠을 잤다. 성산일출봉과 용머리해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지질관광이라는 프리즘으로 보니 낯설고 흥미로웠다. 제주가 다시 보였다.


글=손민호·백종현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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