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이영훈목사 |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 13:8] 1. 어제의 부활 먼저 어제의 부활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은 말씀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2천 년 전에 실제로 죄와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그 부활의 놀라운 사건을 기록으로 남겨놓았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절로 6절은 이와 같이 설명합니다. 안식 후 첫날, 이 주일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누가복음에 의하면 요안나라고 하는 여인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무덤의 돌이 무덤 문을 막고 있다가, 굴러서 열리고 흰 옷 입은 천사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저들에게 전해주었을 때, 저들이 크게 놀라 기뻐하며 이 소식을 제자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뛰어갔습니다. 마태복음 28장 8절과 9절은 설명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마음의 평안을 선물로 은혜로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이 세상이 주는 평안과 같지 않습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찰나적인 것입니다. 잠깐 내게 기쁨과 만족을 주고 떠나 가버립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 누구도 이 평안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 수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할렐루야! 주님의 평안함이 있는 곳에 기쁨이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우울하고, 짜증이 나고, 속상하고, 기쁨이 없으면 주님의 평안함을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세상 생각이 들어와서 그렇습니다. 세상의 염려가 들어와서 그렇습니다. 세상의 염려, 근심, 걱정이 우리를 자꾸 낙심시키고 주저앉게 만드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염려, 근심, 걱정은 물러갈지어다! 주님의 평안함이 임할지어다! 담대하게 믿음으로 선포해야 됩니다. 본회퍼 목사님께서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하셨습니다.
할렐루야! 부활의 예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계신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있든지 염려, 근심, 걱정, 내 마음의 상처, 슬픔, 괴로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십자가 밑에 다 내려놓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주님, 내 마음에 오시옵소서. 나의 주인이 되어 주셔서 내 마음속에 주님의 넘치는 평안으로 채워주시옵소서. 그 평안함을 가지고, 주님 주신 기쁨을 가지고,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 나를 인도하여주시옵소서! 주여, 이 평화가 우리 마음 가운데 임하게 하여주시고, 우리 모든 성도에게 임하게 하여주옵시고, 우리 대한민국에 임하게 하여주옵시고, 저 북녘 땅에도 임하게 하여주옵소서. 그리하여 휴전선이 열리고,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주의 복음 안에서 하나 되는 놀라운 역사가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2. 오늘의 부활 예수님의 부활은 어제의 부활일 뿐 아니라 바로 오늘의 부활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어제 부활하신 예수님이 오늘도 동일하게 우리에게 부활의 예수님으로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은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가 부활의 영으로 충만하게 되면 죽음도, 절망도, 고통도, 괴로움도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첫 열매가 되셨다고 하는 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그 다음에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계속 부활의 열매로 다시 살아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생명을 얻은 우리는 이미 우리 마음 가운데 주님 오셔서 우리가 부활에 참여했기 때문에 어떠한 고통도, 괴로움도, 절망도 우리를 넘어뜨릴 수가 없습니다. “죄와 사망은 나에게서 묶음을 놓고 떠나갈지어다! 나는 주님의 은혜로 부활에 참여한 자가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것이 다가오면 몸부림치면서 그 죽음을 맞이하지 않으려고 어떡하든지 피해보려고 발버둥 쳐보지만, 그 죽음을 피할 사람은 아무도 없고 결국 죽음으로 그의 모든 희망은 끝나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죽음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영원한 세계에서의 새로운 시작이 죽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문을 열면 우리에겐 영원한 천국이 예비되어있고, 주님이 두 팔을 벌리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게로 오라.” 주님이 우리를 기쁨으로 맞아주실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1절은 설명합니다. 살리시리라! 살리시리라! 할렐루야! 그런데 성경을 보면 제일 처음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누구냐? 막달라 마리아라고 하는 여인입니다. 무덤에 여인들 셋이 같이 갔는데, 다른 여인들은 너무 놀래갖고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러 뛰어가는 동안 막달라 마리아는 그 무덤을 떠나지 않고 곁을 돌면서 ‘예수님 시신이 어디 갔나?’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그 마음 가운데 확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반신반의했던 거 같아요. 천사들이 부활했다고 했는데 진짜 부활했는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했으니까 울면서 예수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뒤에서 이와 같이 물으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5절입니다. 마리아를 부르신 예수님이 지금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어찌하여 울면서 고통 가운데 있느냐? 너의 문제가 무엇이냐? 너의 슬픔이 무엇이냐? 너의 고통이 무엇이냐?”고 지금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슬픔에 처한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주시고 부활의 기쁨을 주신 주님께서 오늘 절망에 처한 우리를 만나기 원하십니다. 슬픔에 처한 우리를 만나기 원하십니다. 고통과 괴로움에 처한 우리를 만나기 원하십니다. 병상에 누워서 울고 있는 우리를 주님이 지금 만나기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찬송가: 저 장미꽃 위에 이슬 (442장)>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주님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절망, 고통 가운데서 “‘와서 나를 도우라’ 손짓하고 있으니 가라! 은혜 받은 이 자리에 머물러있기만 원하지 말고 이제는 절망에 처한 사람, 슬픔에 처한 사람, 고통에 처한 사람,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들고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부활절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우리만 복 받고, 우리만 잘되고, 우리만 기쁘고, 우리만 행복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참으로 이기적인 신앙인 것입니다. 3. 내일의 부활 이 부활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내일의 부활이요, 영원의 부활이 됩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우리를 영원토록 주님이 인도해주십니다. 우리가 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주님이 인도해주실 뿐 아니라, 죽음 이후의 영원한 천국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무엇이냐? 꿈꾸고 믿고 바라는 것이 지금 내게 이루어진 것처럼 믿고 나가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미래를 현재에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인간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꾸는 것이 미래입니다. 안 된다는 것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믿음인 것이고, 축복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주여, 우리가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가지고 살게 하여주시옵소서. 절대로 과거회기형으로 돌아가지 않게 하여주시옵소서. 마음에 응어리진 것, 상처입은 것을 품고 살지 않게 하여주시옵시고, 다 털어내버리고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앞만 보고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히브리서 11장 6절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할렐루야! 여러분, 이 세상은 잠깐 ‘우리가 무언가 했다’ 생각을 하는 동안에 지나가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옛 중국말에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느냐? 네 마리 마차가 막 질주해 달려가는 것처럼 빨리 지나간다’고 그랬습니다.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간다’는 말은 더 빨리 간다는 겁니다. 쏜살은 확 빨리 나가는 것처럼 그 세월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몰라요. 할렐루야! 부활할 신앙을 갖고 있기만 하면 우리는 어떤 절망도 이깁니다. 죽음조차도 이깁니다. 왜? 부활의 생명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깊은 우울증에 빠져서 자살 충동 속에 몇 번이고 자살을 시도하다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 독실한 크리스천이 된 한 분의 간증으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장사를 해서 본인은 늘 집에 혼자 있었습니다. 그래서 늘 TV를 보고, 그 영화를 빌려다 보았는데, 끔찍하게 사람을 죽이고 막 그런 영화들을 주로 보았다고 합니다. 공포 영화. 왜 어린 애가 그런 것을 즐겨 봤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다보니까 밤에 잘 때 자꾸 흉측한 그런 모습이 떠오르고, 그 영화를 봤을 때 끔찍한 장면이 떠올라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점점 우울증에 빠져서 ‘이젠 난 죽어야 되겠다.’ 일이 안될 때,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자꾸 자포자기하고 나중에는 그가 친구를 다 끊어버리고 혼자 외롭게 그냥 자살을 시도하면서 죽을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밤잠도 자지 못하고, 얼굴은 초췌해지고 삐쩍 말라서 죽어가는 그 때에, 어머니께서 이웃에 예수 잘 믿는 언니를 데려와서 복음을 전하게 했습니다. 그 언니가 오자마자 성경책을 펼쳐서 말씀을 하나 찾아 읽으면서 따라 읽으라고 했습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에게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천천히 이 말씀을 따라 읽다가 그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생각을 넣어준다’는 말에 ‘아! 지금까지 내가 죽고 싶어했던 이 자살충동이 마귀가 넣어준 것이구나.’ 그때 보니 뭐가 잘못된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크게 깨달음이 와서 언니를 따라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갔더니 목사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말씀을 읽어주시면서 부활의 소망을 그녀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그 부활하신 예수님이 자신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믿게 되니까 얼마나 그것이 은혜가 되는지, 그는 눈물 콧물 쏟으며 예수 믿고 독실한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춘천 한마음교회를 다니는 이경아 성도의 간증입니다. 그렇게 좋아했던 TV와 많은 영상물을 다 끊고 오직 말씀 읽고 예배드리는 일에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할렐루야!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희망을 발견하고 꿈과 믿음을 가지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나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한평생 여러분과 함께해주셔서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절망에 차서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손짓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 사랑을 들고 나가야 합니다. 죄와 절망에 처해서 고통당하는 저들에게 가야 하는 것입니다. 병사에 누워있는 저들에게 가야되는 것입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고 힘들고 어려운 그러한 인생을 살아가는 독거노인들, 소년소녀가정들, 미혼모들, 노숙자들에게 우리가 주의 사랑을 들고 가야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메시지입니다. “가라!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라.” 한평생 부활의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넘쳐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말씀과 찬양의방 > 설교의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행하시는 하나님 /이영훈목사 (0) | 2018.04.19 |
---|---|
풍성한 삶을 주신 예수님/조용기목사 (0) | 2018.04.16 |
단물로 변한 마라의 쓴 물/조용기목사 (0) | 2018.04.09 |
자랑스러운 신앙생활 /조용기 (0) | 2018.04.07 |
항상 선을 따르라 /조용기목사 (0) | 2018.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