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성지순례          

                                                                                                                                    

   예루살렘은 해발 800m의 유대 산악지대에 발달한 도시로 인구 약 40만명이 살고 있는 이스라엘의 현재 수도이자, 고대 이스라엘 및 유다 왕국의 도읍지입니다. 기원전 1000년경 다윗왕이 이곳을 유대인의 도읍으로 정하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화려한 신전을 건설한 이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은 그곳에 사는 사람과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 모두를 매료시킵니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회교도에게 있어서도, 기독교도에게 있어서도 성스럽고 그리운 도시입니다. 그러한 연유로 이곳을 자기네들만의 것으로 삼고자 다투어 왔습니다.  예루살렘은 히브리어로 평화의 도시인데도 인간의 야망과 증오 사이에서 싸움이 그치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은 과거와 현재가 잘 조화된 불가사의한 도시입니다. 유대산을 향하여 카스데르의 긴 언덕으로 올라가면 눈앞에 도시가 펼쳐집니다. 엷은 베이지색의 예루살렘은 베이지색의 돌 건축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곳의 건축물들은 영국의 위임통치시대의 시조례로부터 지금까지에도 이곳 특유의 베이지색 돌만을 사용하여 짓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황혼녁이면 온통 이 엷은 베이지색의 도시 건축물들은 황금빛으로 빛납니다. 예루살렘은 구도시(Old City)와 신도시(New City)로 나누어 불려지고 있는데, 구도시는 3000년전 이래의 고대도시 흔적 위에 서기 16년 오토만제국의 슬레이만 대제에 의해 세워진 성벽 내의 도시로 유태인, 기독교, 회교, 아르메니아 지역으로 이루어진 지역을 지칭하며, 여기엔 성전산, 예수님무덤교회, 통곡의 벽, 바위 사원, 성안나 교회, 다윗 성채, 가야바의 집터, 최후의 만찬기념 교회, 마리아 기념교회, 다윗왕의 무덤, 베드로 통곡기념 교회, 안토니아 성, 아르메니아 교회, 엘 악사 회교사원, 예루살렘 역사박물관 등이 있습니다.

신도시는 구도시 서편에 발달된 신시가지로 이스라엘 국회의사당, 정부 관공서, 히브리 대학교, 이스라엘 국립박물관 등이있는 지역입니다.

 

예루살렘 북쪽 기드론 골짜기에는 제1신전과 제2신전시대의 무덤들이 많습니다.  그 중 성 밖 남동쪽에 위치한 무덤과 기념비가 있는데, 이곳이 다윗왕의 아들 압살롬의 무덤과 기념비입니다.  계단을 포함하여 모든것이 바위를 조각하여 만든 것으로 그 예술성을 높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전체 높이가 18.5m입니다.

 

   감람산 정상에 위치한 회교경당으로 예수님 승천의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AD 383년 귀족출신 포이메니아가 소성당으로 봉헌하였고, AD 614년 페르시아에 의해 파괴된 후, AD 676년에 재건되었으며, AD 1009년 하킴에 의해 또 다시 파괴되었습니다.  AD 1152년 십자군이 팔각형의 교회를 다시 재건하여 아드스딩 수도회가 사용하고 있던 중, AD 1198년 살라딘이 회교경당으로 개조하여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회교경당으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다윗시대의 예루살렘성을 의미하며 시온성이라고도 불리워지는 성으로 모리아산에서 기드론 골짜기 서쪽 언덕을 따라 실로암 연못까지 이르는 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기원전 1000년경 다윗왕이 에비스인의 요새를 점령하고 이스라엘의 수도를 건설한 곳으로 예루살렘의 가장 오래된 유적지입니다. 이곳은제1신전시대의 성벽 흔적인 느헤미아 성역 등 많은 유적이 발굴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 유적이 일반인에게 공개된 것은 1985년 이후부터였습니다.

 

  성전이 있던 장소에 세워진 8각형의 황금색의 둥근 지붕의 회교건물로서 서기 691년 압델 말릭에 의해 세워졌으며, 돔 한 가운데의 나무에 둘러싸인 커다란 바위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쳐 번제제사를 지내려던 장소라 전해지는 곳입니다. 돔의 내부는 대리석 기둥들이 바치고 있는데, 그 기둥의 색깔, 높이, 두께 등 모두 다릅니다. 그 이유는 이 기둥들이 비잔틴이나 로마시대 신전의 것으로 복잡한 배경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갈람산에서 게세마네로 내려오는 중간지점에 있는 눈물방울 형태를 지닌 교회로서, 6세기경 비잔틴 양식의 소성당 위에다 1955년에 건축한 프란시스꼬교회입니다. 이 교회가 있는 위치는 교회 안에서 예배를 보는 사람이 똑바로 눈을 들면 예루살렘 전체를 한눈에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곳에서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그 붕괴를 예언하였고, 눈물을 흘리면서 설교하셨다고 합니다. 마치 암탉이 날개 밑에 병아리들을 모으듯이 나는 너희들의 아이들을 몇 번이고 모으려고 할 것이다 라고 한 그분의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듯 교회제단에는 암탉이 병아리를 모으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성전산 남쪽에 위치한 은색 둥근지붕의 회교사원입니다.  메디나, 메카와 더불어 이슬람교 3대 성지의 하나로 멀리 떨어진 성지라는 뜻에서 엘 악사(멀다)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8세기 압델 말릭과 그의 아들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십자군 시대에는 십자군의 왕궁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엘 악사 사원은 원래 비잔틴시대의 교회를 모스크로 만든 것인데, 그 후 지진 등으로 훼손되어 수차례 수리되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066년에 완성되었습니다. 사원 내부는 7개의 홀로 되어있고, 스테인 글라스와 타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습니다.

 

   서기 375-395년에 데오도시우스 1세에 의해 건축된 교회었으나 614년 페르시아 침입시 파괴되었으며, 8세기에 지진으로 또다시 파괴되었습니다. 현재의 교회는 1919년에 세워진 것으로, 가능한 한 옛 모습을 재현코자 했기 때문에 4세기 종반의 바실리카 모양이나 비잔틴시대의 모양과 벽의 자취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한편 이 교회는 여러나라에서 보내 온 헌금으로 건립되었다는 점에서 '만국민의 교회'라고도 불려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동쪽, 스코푸스산 남쪽에 이어져 있는 해발 825m의 전망 좋은 산으로 이른 아침에는 태양빛을 받은 도시가 황금빛으로 빛나고, 저녁에는 시온산 맞은 편으로 가라앉은 태양의 붉게 타오르는 아름다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올리브산은 구약성서의 사무엘기에 다윗왕이 예배드린 장소로 솔로몬이 자신의 이방인 아내들을 위해 우상을 제사드린곳으로 기록되어있으며, 이곳엔 주가 울었던 교회, 주기도문 교회, 예언자의 무덤 등이 있습니다.

 

   주기도문이 시작되는 라틴말을 따서 지은 교회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치신 곳이며, 이세상 말기에 나타나는 징조들에 관해서 설파하신 곳이라 전해집니다. 서기 4세기에 콘스탄틴 대제가 예수의 말씀을 기리기 위하여 이곳 감람산위에 처음으로 교회를 세웠으나 614년 페르시아 침공시 파괴되고, 12세기 십자군에 의해 다시 세워진 교회 또한 회교도에 의해 파괴되고 맙니다. 현재의 교회는 1875년 프랑스에서 카톨릭의 카르멜파수녀들을 위한 수녀원과 같이 건립한 것으로 수녀원 건물벽에는 한국어를 포함하여 세계 62개 언어로 주기도문을 번역하여 새겨 놓고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십자가의 길까지를 의미합니다.  로마 총독이었던 빌라도의 관저에서 예수는 형선고를 받았으며, 채찍아래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까지 14번을 멈추었던 길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시온문(다윗의 문)밖이 시온산입니다. 이곳은 제2성전시대의 예루살렘 윗쪽의 도시남단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구약성서에 이 지명이 자주 언급되고 있으며, 유대인에게 있어서는 예루살렘이나 성지를 일컫는 지명이기도 합니다. 시온산에는 다윗왕의 무덤, 최후의 만찬장소, 마가의 다락방, 성모 운명장소, 베드로 통곡교회 등의 유적이 있습니다.

 

   베들레헴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지방과 이집트를 잇는 중간지역으로 예루살렘 남쪽 7Km에 위치한 아랍도시입니다. 예수님이 나신 장소로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수많은 순례객이 찾는 곳이며, 크리스마스철에는 순례객들로 발디딜 틉이 없을 정도입니다. 베들레헴은 AD 330년 콘스탄틴황제에 의해 세워진 후 십자군 시대를 거쳐 현재까지에 이르는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또한 이곳에는 야곱의 아내 라헬의 무덤이 있는데, 아이가 없는 유대교 여자들이 자기처럼 아이가 없던 라헬이 임신한 것을 본받으러 자주 찾아가고 있으며, 구약성서에 이방의 여인과 로맨스가 기록된 보아즈라는 사람이 살았으며, 바로 이 보아즈의 자손이 다윗왕이 되었으므로 다윗의 도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베들레헴 교회에서는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양치기의 들(Shepherds'Field)을 볼 수도 있습니다.

 

   남북의 길이 21km, 평균폭 12km, 수심 210m수면높이 해수면 이하 약200m의 이 호수는, 그 모양이 옛날 현악기 중의 하나인 입금(立琴:키노르kinor)과 같이 생겼다하여 히브리어로 긴네렛이라고도 불리어지고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 주변은 아름다운 경치와 비옥한 토양이어서 여러 도시들과 키부츠들이 들어서 있으며, 호숫물은 이스라엘 땅의 중요한 식수원이며 생명선입니다.

또한, 갈릴리 호수는 예수복음 선교활동의 중심지입니다. 대부분의 예수 제자들이 이 곳에서 부름을 받았고, 베드로가 살았던 곳도 이곳 갈릴리 호수변의 가버나움 마을이며,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던 장소도, 그 유명한 산상보훈의 설교도 바로 이 곳의 연안이요, 언덕이었습니다. 예수가 활동하던 시기의 호수 주변지역은 교통의 중심지이면서 많은 인구가 살았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헤르몬산 아래 단(Dan)과 인접한 샘이 솟는 장소로 그리스의 한 신인 판(Pan)의 이름을 따서지은 지명이었으나, 훗날 로마인들에 의하여 가이사리아 빌립보라 재명명된 지역입니다.따라서 그리이스, 로마시대의 판(Pan) 신의 사원이 있었으며, 바위를 파서 만든 제단이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가이사리아 빌립보는 헤롯 빌립에 상속되었던 지역이었습니다.

 

   무깃도는 애급에서 지중해 연안을 따라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이르는 바닷길(비아마리스:Via Maris)목으로 이즈르엘 평야 중에서도 동서남북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의 요지이며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오랜 옛날부터 제국의 군대는 이곳을 통과하여 지날갈 수 밖에 없었고, 가나안 땅에서도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전투가 벌어졌던 곳입니다. 솔로몬왕은 무깃도의 중요성을 감안 이곳을 강화시켰고 이지역을 행정의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서기913년경 애급의 시삭은 무깃도를 파괴하고, 이후 아합왕때 다시 재건되었습니다. 유대왕 요시아가 북진하는 애급군대를 이곳에서 맞아 싸우다가 전사한 곳이며 최근인 서기 1917년 영국의 알렌비장군이 터어키군을 패배시켜 승리로 이끈 곳도 무깃도입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아마겟돈」은 무깃도라는 히브리말은 히랍어로 옮긴 말입니다. 무깃도는 1925-1939년에 미국 시카고 대학의 동양연구소에 의해 발굴되어 그 실체가 들어났는데, 이 곳은 기원전 4,000년 전부터 도시가 형성되었으며, 가나안 원주민들이 만들었던 산당식신전, 솔로몬의 마굿간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무깃도는 이집트의 기원전 15세기 문서에 언급된 도시로 헬라시대에 쇠퇴되었습니다.

 

   갈릴리 북서쪽 호숫가 요르단강 서쪽 4km에 위치한 고대도시로 나훔 예언자의 마을이라고도 알려지고 있으며, 예수님의 갈릴리 복음 전파의 중심지였습니다. 이 곳은 성서에 예수 이전부터 아코에서 다마스커스를 지나 바빌론으로 통하는 중요한 중계지역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예수가 이 도시를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수많은 기적을 행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가버나움에는 4세기경 예수님 당시의 검은 현무암 기초 위에 세워진 유대교 회당의 유적이 있고,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발굴한 베드로의 집 유적 위에 세워진 배모양의 아름다운 베드로 교회가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 북서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고대도시와 유대회당의 폐허가 발굴된 곳입니다. 이 곳에서 발굴된 '모세의 의자'는 현무암을 깍아서 만든 돌의자로, 모세가 율법을 낭독할 때 쓰던 의자로서 원본은 이스라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 북동쪽 해안에 위치한 고대도시의 발굴 유적지로, 5세기 비잔틴 교회의 유적과 선착장 시설이 잘 발굴 보존되어 있는 곳입니다.

 

   이스라엘의 비옥한 농경지 이스르엘 평야 가까이에 있는 작은 언덕에 둘러싸인 도시로 처녀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잉태한 곳입니다. 베들레헴에서 예수를 낳은 마리아는 남편 요셉과 나사렛으로 돌아와 생활을 시작합니다. 예수는 전도활동을 펴기까지 30년동안 이곳에서 목수의 아들로 지냈습니다. 나사렛은 예루살렘, 베들레헴과 더불어 전세계의 순례객들이 주로 찾는 성지입니다. 나사렛에는 서기 326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의 어머니 헬레나의 부탁으로 마리아의 집터에 교회를 세웠으나 이후 7세기에는 회교도의 점령, 11세기 십자군의 침공, 살라딘의 역습등으로 무수한 붕괴와 재건을 되풀이 했으며, 오스만터어키의 지배하에 들어간 이후 17세기부터 비로소 프란체스꼬 수도사들이 나사렛에 사는것을 허락되면서 교회들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나사렛에는 회교도와 크리스챤이 반반씩 사는 인구 4만여명의 이태리풍 도시입니다. 나사렛은 '크리스챤'이라는 말로 히브리어로는 '노쯔리', 아랍어로는 '낫스라이'라고 불리었는데, 이는 '나사렛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나사렛의 주요 순례 명소로는 마리아가 예수 수태를 고지받은 동굴위에 세워진 "수태고지교회"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목공일을 했던 곳에 세워진 성요셉교회 그리고 예수께서 안식일에 유대교의 시나고그에서 구약성서 이사야 서의 메시아 강림에 관한 부분을 낭독하고 예수 자신이 바로 메시아라고 말했던 장소인 '시나고그교회'와 마리아가 물을 길었던 마리아 우물 등이 있습니다.

 

   갈리리호수 북쪽 가버나움 부근에 위치한 장소로 예수께서 빵과 물고기의 기적을 행하셨다는 지역입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한 베네딕 또 수도회의 교회와 베드로 수위권을 기념하는 프란치스꼬 수도회교회가 있습니다.

 


   이즈르엘 골짜기에 위치한 해말 588m의 종모양을 한 산으로 다볼산 정상에는 서기 4세기 비잔틴 시대의 교회터에 서기 1921년 프란치스꼬 수도회에 의해 세워진 교회가 예수님의 변화(Trasfiguration)를 기념하고 있으며, 십자군시대의 성벽과 건물의 유적이 있습니다. 또한 그리이스 정교회의 엘리아 기념교회도 정상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 남서쪽 연안과 경사진곳에 발달한 인구 약3만의 도시로서 많은 호텔과 온천이 있으며 이곳 갈릴리 호수지역 리조트산업의 중심지입니다. 기원전 20년경 헤롯 안디바드리에 의해 처음 건설된 도시로 당시 로마황제인 아우구스트 티베리우스의 이름을 따서 도시이름을 지었습니다. 이곳엔 십자군시대의 베드로교회가 해안에 있으며 랍비 아키바와 람밤등 유대교 학자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특히, 예루살렘이 망한뒤 유대문화의 중심지로서 200년 무렵에는 랍비 유프타 하나에 의해 성전 미시나의 편찬이 이루어졌으며, 400년경에는 예루살렘 탈무드도 이곳에서 완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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