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소식을 알리는 자/이영훈목사 |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하시니라(나 1:15) 오늘은 구약 소선지서 가운데 나훔서 1장에 있는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함께 은혜 나누기 원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는 자”입니다. 구약성경의 소선지서 가운데 요나서와 나훔서는 똑같이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니느웨는 앗수르 제국의 수도였는데, 그런데 똑같이 니느웨를 향해서 선포하신 말씀이지만 그 내용은 정반대입니다. 요나서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에 대한 말씀을 선포했고, 나훔서는 계속해서 악한 길을 가는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계속 죄짓고 불의하고 방탕한 삶을 살 때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1. 심판하시는 하나님 먼저,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나훔서 1장 2절과 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죄에 대해서는 심판하시고 우리를 늘 바른길로 가게 하기를 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근데 하나님은 아무 때나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참으시고, 또 참으시고, 또 참으시고, 또 참으시다가 결국 돌이키지 않을 때에, 마지막에 가서 그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03편 8절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죄를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사랑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과 공의는 같이 가는 것입니다. 요나 선지자를 보내서 니느웨를 향해 회개 메시지를 선포했을 때, 왕과 모든 신하들, 백성들이 금식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다시 그들은 악한 길로, 죄짓는 길로, 방탕한 길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이 임할 때, 그 누구도 주님 앞에 바로 설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강한 나라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무너지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지을 때마다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 나와야 합니다.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를 용서하여주옵소서!” 회개가 빨라야 되는 것입니다. 자꾸 변명하고,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다가는 진짜로 하나님의 심판의 채찍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제일 처음 선포하신 메시지가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 4장 17절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덩어리입니다. 예수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 자녀가 됐지마는,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자꾸 죄의 유혹에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에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그 ‘시험에 들게 하지 말라’는 말은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옵시며’, 그 말씀입니다. ‘lead us not into temptation!’ 이 죄의 유혹에 우리를 빠지지 않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죄의 유혹을 받을 때 회개해야 됩니다. 생각이 잘못될 때가 있습니다. 잘못된 생각, 욕심, 교만, 탐욕, 더러운 생각, 남을 해하려고 하는 생각, 속이고 피해를 입히고, 상처를 주려 하는 그 생각의 죄를 짓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말로 짓는 죄도 많습니다. 그 말 한마디가 상대편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는지 모릅니다. 좋지 않은 소문을 막 옮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용도 알아보지 않고 먼저 옮기고 나서 봅니다. ‘아니면 말고...’ 그래서 이 잘못된 소식들 때문에, 메시지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남들에게 피해를 입힐 때가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가끔 상담 오는 그 내용들에 보면,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들이 있다 합니다. 회개해야 됩니다. 요즘은 또..., ‘아멘!’ 소리가 크게 여기서 나왔는데..., 요즘은 또 남편이 아내한테 매 맞고 사는 남편이 있다고 그러더라구요. 어쨌거나 폭력은 안 됩니다. 사랑해야 됩니다. 용서해야 됩니다. 잘못해도 돌이키도록 용서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랑을 얘기하고, 용서를 얘기하고 있지, 싸움을 얘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죄인을 부르러 오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2장 17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간마다, 때마다, 나의 잘못을 고백하고 내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 나와야 합니다. 주님께 돌아 나올 때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복된 자녀로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주님, 저의 허물을 용서하여주시옵소서! 제가 죄덩어리입니다. 제가 교만하여서 남을 짓밟고 상처를 준 것을 용서하여주옵소서.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2. 환난 날에 산성이 되시는 하나님 둘째로,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환난 날에 산성이 되어주십니다. 1장 7절에, 히스기야 왕이 앗수르 제국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산헤립이 이끄는 18만5천의 대군이 유다 나라를 초토화하고 예루살렘을 둘러쌌습니다. 이제 곧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직전입니다. 그런데 산헤립이 저들을 조롱합니다. 열왕기하 18장 35절에,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하면 도움을 줄 사람을 찾아갑니다. 도움을 못 주더라도 내 마음에 그 속상하고 원통한 것을 들어달라고 여기저기에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문제가 어렵게 되고 힘들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문제를 만났을 때, 문제의 해결자 되신 주님 앞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저 기도원에 올라가서 기도굴에 들어가서 금식하며 눈물로 부르짖을 때 주님이 들으시고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이 절망의 자리에서 저를 건져주시옵소서!” “지금 가정에 풍랑이 일었습니다.” “육신의 질병이 다가왔습니다.” “사업이 파산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주여, 불쌍히 여기시고 나를 한 번만 살려주셔서 주님의 은혜 가운데 승리하게 하여주시옵소서!”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 주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날 밤에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일을 하셨습니다. 만일 이 히스기야가 여기저기 사람들에게 가서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고 도움을 요청했더라면 그다음 날 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아니하고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께 간절히 눈물의 기도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날 밤에 18만 대군을 다 멸하셔서 그들이 아침에 깨어나 보니 다 시체가 되었더라. 할렐루야! 이것이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 우리가 열심히 뛰면 하나님 구경만 하세요. “그래 잘해봐라.” “잘해봐라.” 그런데 우리가 어려움 당했고, 문제를 만났고, 중한 질병에 걸려서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 주님이 들으시고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절망에 처했을 때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와 부르짖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요한 1서 4장 16절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믿고 나서 그날부터 하늘나라 갈 때까지 감사만 하며 살아야 됩니다.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우리는 한평생 감사해야 되고, 어떤 일을 만나도 절대적으로 감사해야 되고, 무조건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입만 열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작년 10월 달부터 저희 교회 가장 힘들고 어렵게 사시는 분들 심방을 가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공통적으로 그분들이 하신 말씀은 “감사합니다”입니다. 정말 너무나 힘들고 어렵게 사시는데, 한 달 수입이 15만원, 20만원밖에 안되는데도 감사해요. 왜 감사하냐? 그 수입을 가지고 하나님께 헌금할 수 있어 감사하고, 예배를 열심히 드릴 수 있어서 감사하고, 건강을 주셔서 감사하고. 할렐루야! 설탕 통에 설탕이 담겨 있으면 우리는 설탕을 통해서 단맛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설탕은 우리를 속이지 않습니다. 설탕이니까 우리에게 단맛을 주는 것입니다. 설탕이 갑자기 쓴맛을 내거나 그 짠맛을 내지 않습니다. 우리는 감사 통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안에서 감사만 나와야 하는데 희한하게 감사 통에서 불평도 나오고 감사도 나오고, 그것은 설탕 속에 소금이 섞여 있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감사만 하시기 바랍니다. 불평이 나오면 ‘읍’ 닫아버리고 “감사합니다.” 어려워도 감사, 속상해도 감사, 답답해도 감사, 감사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환란 중에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46편 1절입니다. 유명한 설교자 찰스 스펄전 목사님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사슴이 숲에서 놀고 있는데 사람들이 다가와도 도망가지를 않아요. 보는데 목에 이런 이름표가 달려있었습니다. 황제의 소유이기 때문에 사냥꾼들이 손을 대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손을 대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왔다 갔다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황제의 소유인 사슴과 비교할 바가 없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정말로 가장 이 세상에서 귀하고 으뜸가고, 하나님께 사랑받는 하나님의 소유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위대한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스펄전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도우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일을 만나도, 문제를 만나고 고통을 당하고 괴로움 당하는 일이 있어도, 질병이 다가와도, 자식이 속을 썩여도, 사업이 곤두박질해도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면 반드시 주님께서 잘되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만군의 야훼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린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에 그 누구도 우리를 함부로 하지 못할 것입니다. 3.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 나아가서, 우리는 이 받은 은혜를 온 세상에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1장 15절은 말씀합니다. 여러분, 예수님 믿고 난 다음 우리는 이 구원받은 이 놀라운 사실을 만방에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멸하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골로새서 2장 15절 보니까, 할렐루야! 이 놀라운 구원의 소식을, 이 놀라운 평화의 소식을, 이 놀라운 기쁨의 소식을, 이 놀라운 사랑의 소식을 만방에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걸음이 아름답다고 로마서에 사도 바울이 인용해서 말씀했습니다. 10장 15절입니다. 주여, 우리의 발걸음이 사랑을 전하는 발걸음 되게 하여주옵시고, 기쁨을 전하는 발걸음이 되게 하여주옵시고, 희망을 전하는 발걸음이 되게 하여주옵시고, 치료와 용서를 전하는 발걸음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분쟁이 있는 곳에 평화를 전하고,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전하고, 상처 있는 곳에 위로와 용서를 전하는 발걸음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오실 때에 이러한 삶을 산 우리 모두에게 큰 상급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계시록 22장 12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은 온 세상에 전할 참 기쁨의 소식입니다. 지금도 이 세상에는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모르고 죄와 절망 가운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전해야 됩니다. 구세주이심을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희망의 소식을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될 때 장차 주님 오실 때 우리가 주님 앞에 서게 되면,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라.”하고 하는 칭찬을 다 받게 될 것입니다. 주일 날만 교회를 겨우 왔다 갔다 하던 선데이 크리스천이었던 한 의사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변화되어서 복음과 사랑을 전하는 의료선교사가 된 최병한 선교사를 소개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아내를 치유해주셨습니다. 부인이 치유함을 받게 되자 그가 하나님께 약속한 대로 2006년도 57세의 나이에, 자기가 26년간 운영하던 병원을 청산하고 중국에 의료선교사로 나갑니다. 사실 이렇게 기도하고 나서 서원을 지키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의사가 평생 동안 자기가 하던 그 병원을 다 문 닫고 선교사로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너무 은혜에 감사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약속대로 병원을 내려놓고 중국에 들어가서 10년 동안 지하 가정교회를 섬기며 복음과 사랑을 전하는 선교사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간 중 2012년에 몸에 간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간의 삼분지 일을 잘라내는 대수술을 했습니다. 의사가 한 2년은 쉬어야 된다고 하는데 다시 또 중국으로 복음 전하러 들어갑니다. 그의 아내인 최 권사님의 말씀입니다. “의사는 재발 위험이 있으니 2년 동안 안식하라고 했지만 한 달 만에 선교지로 돌아갔죠. 중국에 대한 그 열정은 눈물 없이는 못 봐요. 결국은 사랑이거든요. 열악한 환경에서 쉬지 않고 환자들을 돌보며 선교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진정한 하나님을 향한 삶이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중국 공안에 노출되어서 중국에서 선교를 마치고 나와서 아프리카 부룬디에 들어가서 한센병, 옛날에 나병 환자라고 했지요.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고 섬기다가 최근에는 로힝야 난민촌에 저들을 섬기는 발걸음을 옮겨 행하고 있습니다.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서 쫓겨나서 지금 방글라데시에 살고 있는 난민촌에 있는 92만 명의 불쌍한 로힝야족. 정말 가장 비참한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는 저들에게 주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이제 지구의 땅끝이라고 하는 그곳에 복음을 들고 주의 사랑 들고 갑니다. 그는 고백을 합니다. “중국 지하 가정교회의 어려운 분들을 돌보고 부룬디에서 한센 환우를 돌보던 때가 40년 의사 생활 중 가장 보람되고 기쁜 때였습니다. 남이 안 가는 곳에 가서 더 섬기라고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시고 마음에 소원을 주신 것 같습니다. 로힝야족을 무슬림으로만 보지 않고 한 인간으로 보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감싸주면 이분들도 변화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아픔이 있는 곳은 어디나 저의 선교지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구원받고 변화된 자의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난 다음, 하나님이 나의 환란 때의 산성인 것을 깨닫고 난 후에는 우리는 복음의 빛을 전하는, 사랑의 빛을 전하는 주님의 일꾼이 되어야만 합니다. 주여, 우리의 발걸음이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발걸음 되게 하여주시고, 꿈과 희망을 전하는 발걸음 되게 주옵시고,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는 발걸음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주님의 앞에 가는 그날까지 우리가 있는 곳에서 예수의 사랑을 전하며 살다가 기쁨으로 주님 맞이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 같은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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