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묘교회                                 


   

 

 

 성묘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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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의서쪽의 벽이라고도 하는 이곳은
유대인들이 가장 성스럽게 여기는 곳이며,파괴된 그들 성전의 마지막 흔적이다.
이 서쪽 벽은 B.C. 20년에 솔로몬의 성전에 이어 두 번째 성전을 세울 때 건축된 것이다.
A.D.70년에 티투스 황제는 성전을 모두 파괴하면서 이 벽만 남겨 놓았다.
그는 후대에 이 웅장한 건물을 파괴할 수 있었던 로마 병사들의 막강한 힘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다.
로마시대에는 유대인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비잔틴 시대에 들어오면서 일 년에 한 번씩 사원이 파괴된 날이면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것이 허용되었는데,
이 날 그들은 이 벽으로 몰려가 흩어져 버린
그들 민족과 부서진 성전을 보면서 슬피 울곤 했다고 한다.
이 이후로 이 벽은 통곡의 벽이라고 불리어져 왔으며
이 벽 앞에서 기도하는 관습이 수 세기동안 지켜져 왔다.
1948년에서 1967년까지는 요르단 관할 지역이었기 때문에
유대인의 출입이 금지되었었다.
6일 전쟁 후 이곳을 다시 회복한 유대인들에게
이곳은 기쁨과 참배의 장소가 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수 천 명의 참배객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공간이 마련되었다.

통곡의 벽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나라를 잃은 유대인들이 이곳에 와서 성전이 파괴된 것과
나라를 잃은 자신들의 처지를 슬퍼하여 통곡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사진의 왼쪽은 남자, 오른쪽은 여자 이렇게 나눠져 있다.

 

 

 

 Via Dolorosa·슬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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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의 벽 광장을 지나 현재 아랍 상인들의 상점이 즐비한 좁은 골목길 끝에 ‘비아 돌로로사

(Via Dolorosa·슬픔의 길)’가 있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갔던 고난의 길이다. 예수가 십자가를 진 곳,

힘에겨워 넘어진 곳, 어머니 마리아를 만난 곳 등 14곳에 번호가 붙어 있었다.

‘성묘교회’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고, 유해가 내려지고, 묻혔다가 부활한 무덤이 있는 곳이다.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서기 335년 처음 세웠다.

1960년 본격 복원공사를 시작해 1997년 현재 모습을 갖췄다.

성묘교회는 순례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무덤에는 한번에 3명 정도밖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1시간 이상 줄을 서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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