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주일] 부활의 은혜를 누리자 (요 11:23-27)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이 시간 "부활의 은혜를 누리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콩트와 영국 시인 칼라일이 어느 날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철학자 콩트가 의기양양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기독교를 대신할 수 있는 완전한 종교를 창설하기 위해 구상 중에 있습니다. 그 새로운 종교는 기독교가 내세우는 유치한 신비적인 이야기들을 배제할 것이기 때문에, 완벽하고 분명한 것이 될 것입니다.”


듣고 있던 칼라일이 대답했습니다. “새로운 종교를 만든다니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전에 당신이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처럼 당신도 죽었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당신이 만들고자 하는 종교가 생명 있는 종교가 될 것입니다.” 그러자 콩트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기독교 신앙을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부활 때믄입니다. 이 부활 하나로 모든 종교를 정리하고 또 인생의 모든 고민과 문제까지도 다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더욱 모방할 수 없는 이유는 예수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그 안에서 부활의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은혜는 어떻게 누릴까요?


1. 믿는 것입니다.


본문 요11:25-26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셨습니다. 그 때 마르다는 마지막 부활 때에 살아날 것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보통 우리가 하는 고백과 같습니다. 틀린 답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은 마르다에게 현재적 부활이 있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도 부활의 현재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5:25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먼저 복음의 말씀을 믿음으로 우리 영혼이 살아나고 다음은 재림 시에 우리 육체까지도 영광의 형체로 다시 살아납니다. 십자가 부활의 사건이 귀한 것은 예수님 혼자만의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포함한 사건입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와 함께 죽었고 예수와 함께 살았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엡2:3-8에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했습니다. 하늘의 영광과 권세까지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2. 순종하는 것입니다.


빌3:10-12에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부활 생명의 더욱 풍성함을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 바울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라고 했습니다. 즉 죽어야 사는 원리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와 함께 죽었다고 믿어도 삶에서 그 진리를 적용하여 순종하지 않으면 이론에 그칩니다. 그러므로 늘 엎드려 성령의 도우심으로 온전히 장사지내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롬6:10-11에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했습니다. 죽은 만큼 삶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요12:24-26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하나님은 죽은 자를 귀히 여기십니다. 시116:15에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했는데 우리가 예수님의 본을 받아 내가 죽으면 하나님 보실 때 아주 귀하게 보십니다. 세상에는 온통 제 잘났다고 산 사람들이 많은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죽은 사람을 보신다면 회개할 것 없는 하늘의 의인 아흔아홉보다 이 사람을 더 귀히 여기실 것입니다.


어떤 동네에 소리 잘 지르고 욕 잘하기로 유명한 소몰이 영감님이 있었습니다. 이 영감님은 소 몰고 나갈 때면 어찌나 목소리가 거칠고 큰지 온 동네가 떠들썩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감님이 어느 날 친구의 인도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세례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이 때 동네 사람들의 관심사는 이 영감님이 얼마나 달라졌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영감님이 소를 몰고 나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소들이 말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항상 큰 욕설만 들어온 소들이라서 갑자기 달라진 영감님의 소리를 알아듣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소들이 말을 잘 듣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달라진 목소리로 “소들아 일어나, 소들아 일어나” 해도 소들은 꿈쩍도 하질 않습니다. 이거 잘못했다가는 하나님 영광을 가리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영감님은 또 다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버지, 지혜를 주시옵소서!!” 그런데 기도하던 영감님의 머리에 와 닿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영감님은 회초리를 번쩍 들더니 소의 엉덩이를 내리치면서 소리를 지릅니다. 그런데 뭐라고 질렀을까요? “할렐루야~”였습니다. 그랬더니 꿈쩍도 않던 소들이 후닥닥 일어나고 순종하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온전히 순종함으로 죽을 때 우리는 더욱 더욱 부활생명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예배 잘 드리고 말씀에 순종함이 잘 죽은 모습입니다. 잘 길들여진 명마처럼 어떤 말씀에도 온유와 충성함으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벧전1:22에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3.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계2:10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습니다. 생명이 왕노릇하는 풍성한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5:4에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여기 소망은 주님처럼 영광의 형체를 입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일3:2-3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광의 형체는 주를 위해 살다가 고난 받고 핍박 받는 자에게 먼저 영적으로 임합니다. 그래서 벧전4:14에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하였습니다.


마5:10-12에도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를 위해서 사시기 바랍니다. 스데반 집사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빛났던 것처럼 그것이 바로 예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가 받는 부활의 은혜입니다. 순교자들의 얼굴에는 영생이 넘쳐 흘렀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외부적인 박해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쓰신 귀한 일군들은 매일 매일 죽도록 충성하며 순교자적 삶을 살았습니다. 보다 많은 시간과 힘을 주를 위해 바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의 은총을 온전히 누리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신 것처럼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효과적으로 증거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부활의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들을 통해서 사도행전의 연속으로 놀라운 일을 계속하시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 부활을 내 부활로 믿을 뿐 아니라 온전히 말씀에 순종함으로 죽어지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하므로 부활의 예수님이 우리를 통하여 온전히 나타날 수 있는 복된 성도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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