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신앙인 - 이영신 목사(광명성전 담임)

 잘못된 정치인들로 인해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이러한 시기에 생각해 볼만한 정치인이 있다.
 바로 21세에 정치에 입문하여 74세에 이르기까지 의원선거에서 한 번도 낙선되지 않은 유명한 정치인으로 수많은 좌절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46년 동안 인내하며 노예제도의 폐지 법안을 진행한 영국의 유명한 정치인이자 신앙인인 윌리엄 윌버포스(1759∼1833)다.

 윌버포스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방탕하게 보냈다. 탁월한 말솜씨와 재력을 바탕으로 정치에 입문하고 나서도 승승장구하는 전도유망한 정치인이었다. 그렇게 세상을 즐기고 자기밖에 모르던 젊은 정치인이 25세에 회심하고 나서 변화가 일어났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한 정치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가난한 자들과 핍박받는 자들을 위해 정치를 시작하자, 그에게서 등을 돌리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당시에 영국은 해상을 통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강대국이었으며, 아프리카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잡아 노예로 파는 노예무역이 큰 이익을 남기고 있었다.

 윌버포스가 보기에 노예무역은 비인간적이며 비윤리적인 행위였다. 그래서 그는 노예무역과 노예제의 폐지를 외쳤지만, 당시의 귀족들과 상류사회에서 노예무역이 주는 이익과 노예제를 통한 특권을 포기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윌버포스는 수많은 협박과 회유를 당했고 건강도 안 좋아졌지만, 20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 설득하여 마침내 1807년 ‘노예무역 폐지법’을 성립시켰다. 그리고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최종 목표인 ‘노예제’ 자체를 폐지하기 위해 애를 썼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그가 죽은 해인 1833년 ‘노예 해방 법령’(The Emancipation Act)을 통해 영국전역에 노예제도 폐지라는 값진 결실을 거두게 됐다.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영국은 기독교 국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은 삶에서 전혀 나타나지 않는 형식적인 믿음이었고 그런 신앙과 삶의 이분적인 모습에 윌버포스도 실망하고 무신론자로 살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신앙을 삶으로 살아내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들로 인해 윌버포스는 회심하게 되어 큰 일을 이룰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의 윌버포스에게 신앙의 씨앗을 심어준 큰 아버지와 그가 회심하는데 영향을 준 그의 스승 아이작 밀러 그리고 노예선의 선장이었다. 회심한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작사자 존 뉴턴 목사의 조언, 그가 정적들로 인해 지치고 힘들어 포기하려 할 때 그를 격려한 존 웨슬리 목사 등 소수이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었던 사람들로 인해 그들과 함께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 라는 말이 있다. 사회 고위층 일수록 더욱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가 요구된다는 말이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특권을 가진 매우 높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이 특권을 가진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우리의 믿음을 말이 아닌 삶으로 실천하는 신앙인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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