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찜닭·갈비·문어·매운탕 거리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를 자처하는 도시답게 경북 안동은 다른 지역에선 사라지거나 사라질 위험에 처한 전통문화가 살아 숨 쉰다. 음식도 마찬가지. 하지만 전통을 지키면서도 그 속에서 현재의 입맛과 요구에 맞춰 진화하며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안동 음식의 저력은 시내 곳곳에 있는 맛골목에서 확인된다.

구시장 찜닭골목

안동찜닭은 안동 출신으로 가장 '출세한' 음식일 듯하다. 구시장 서문부터 시장 한복판까지 30곳 넘는 찜닭집이 모여 있다. 1980년대까지 이 시장통 골목은 '통닭골목'이라 불렸다. 통닭은 1990년대 들어 치킨에 밀렸다. 살아남기 위해 통닭집 주인들이 개발한 것이 찜닭이다.

가게마다 둥그렇고 우묵한 냄비가 네댓 개씩 문앞에 놓였다. 유진찜닭 서미경씨는 "닭에 양념이 잘 배도록 간장과 설탕, 건고추, 캐러멜, 마늘, 고추씨 등 기본양념을 넣고 거의 익힌 뒤 10분쯤 둔다"고 했다. 손님이 주문하면 파, 당근, 당면 따위를 넣고 센 불에서 빠르게 익혀서 낸다.

커다란 접시 하나가 가득할 정도로 양이 많다. 밥(공깃밥 1000원)을 비벼 먹으면 장정 대여섯 명이 먹기에도 충분하다. 서울에서 파는 안동찜닭보다 훨씬 덜 달다. 칼칼하고 개운하다. 서미경씨는 "다른 데선 치즈, 해물 같은 거 이거저거 마이(많이) 옇(넣)잖아요. 안동엔 기본적인 거 외에 없다"고 했다. 찜닭과 함께 나오는 새콤한 '치킨무'(깍두기처럼 썰어서 식초에 절인 무)는 통닭집 시절의 남은 흔적이다.

'1인분' '반 마리' 따위는 없다. '안동찜닭 한 마리 2만5000원' 하나뿐이다. '쪼림닭'은 찜닭을 물기 없이 졸인 것이다. '양념통닭'과 '후라이드', '마늘치킨'(각 1만6000원)도 있다. 유진찜닭 (054)854-6019

중앙신시장 문어골목

문어(文魚)는 이름에 글월 문(文) 자가 들어가며, 바다 깊은 곳에 몸을 숨기고 사는 습성은 선비의 덕목인 겸양을 나타낸다 하여 양반들에게 사랑받았다. 덕분에 안동을 비롯한 경북 제사상이나 잔칫상에는 문어가 빠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안동은 전국 문어 유통량의 30%나 차지하게 됐다. 중앙신시장에는 문어를 전문적으로 삶아서 파는 가게가 10곳이 넘는다. 이곳 '중앙문어' 남한진 사장에게 '왜 안동 사람들이 생문어를 직접 삶지 않고 여기서 사가느냐'고 물었다.

"문어는 삶는 시간과 온도, 간을 잘 맞춰야 합니다. 가능한 한 센 불에 8~9분 정도로 빨리 삶아내는 게 관건입니다. 여러 마리를 삶다 보면 냄비 속 물이 일종의 육수가 되는데, 여기에 끓이면 문어에 간이 배는 효과를 냅니다."

문어 가격은 보통 1㎏당 5만원에 판매된다. 문어골목에서 문어를 살 수 있지만 먹을 수는 없다. 시장 입구 맞은편 '동털실내포장'은 중앙문어에서 삶은 문어를 사다가 썰어서 '문어숙회'로 낸다. 바로 내지 않고 냉장고에 하루 이틀 숙성시켜 판다. 주인은 "이렇게 해야 더 차지고 감칠맛이 난다"고 했다. 문어 여러 부위를 고루 담은 한 접시가 2만원이다. 중앙문어 (054) 853-6926, 동털실내포장 (054)859-4535

안동갈비골목

양념갈비와 생갈비의 중간쯤이랄까. 안동식 갈비는 소금과 다진 마늘로 주문을 하면 즉석에서 버무려 낸다. 1970년대 초 '구서울갈비'에서 시작했다. 먹고 남은 갈비뼈를 가져다가 김치찌개를 끓여다 주는 것도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다. 갈비집 10여곳이 운흥동에 모여 있다. 생갈비 1인분 200g 2만2000원. 양념갈비도 가격이 같다. 구서울갈비 (054)857-5981

동악골 매운탕촌

안동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와룡면 중가구리 동악골에 매운탕집 10여곳이 모여 있다. 안동댐이 생기면서 안동호에서 잡히는 민물 생선으로 매운탕을 끓인다. 메기매운탕이 대표 메뉴이다. 커다란 옹기 냄비에 메기와 토란대, 시래기 따위 채소를 넣고 부글부글 끓여 낸다. 진하고 구수하고 얼큰하고 시원하게 잘 끓인다. 1인분 1만원으로 돌솥밥까지 딸려 나오는 걸 감안하면 저렴한 편이다. 솜씨는 어느 집이나 비슷하다. 메기에 잡어를 더해 끓인 매운탕은 1만2000원이다. 토종닭으로 만든 백숙과 볶음탕(닭도리탕)도 있다. 3만3000·3만8000·4만4000원이다. 산초향이 매력적인 파김치나 껍질째 삶은 땅콩 따위 경상도식 밑반찬도 괜찮다. 동악골가든 (054)855-5740

그 밖의 먹거리

천연 효모 빵… 미슐랭이 찜할 만하네

푸짐한 고기에 선지… 이게 국밥이지

맘모스제과는 얼마 전 프랑스 '미슐랭' 여행 가이드 한국판 책자에 소개되면서 화제가 된 제과점이다. 천연 효모로 천천히 숙성시킨 반죽으로 만든 빵이 기본에 충실하다. 발효시키지 않은 얇은 밀전병을 고깔 모양으로 말아 설탕에 졸인 사과로 채운 '애플 또띠야'(2000원)가 가장 인기라는데, '소보로빵'(1200원)이 더 감동적이었다. 빵 자체도 맛있지만 아몬드를 직접 볶아 만든다는 소보로(빵 겉에 붙은 토핑)가 훌륭하다. '유자파운드'(1만3000원)는 파운드케이크에 유자청을 더해 독창적인 맛이다. 맘모스제과 (054)857-6000

중앙신시장 중앙문어 맞은편 옥야식당에서 오랜만에 제대로 끓인 국밥을 맛봤다. 소 머리 고기 여러 부위에 길게 자른 큼직한 대파, 벽돌만 한 선지를 듬뿍 넣어 푹 끓이고 고추기름으로 맛을 낸다. 국물이 맑지만 맛은 진하다. 맵지 않고 구수하다. 선지는 부드러우며 퍽퍽하지 않고 신선하다. 고기와 선지가 푸짐하다. 한 그릇 8000원. 정육점 진열대 옆에 간이 식탁 두어 개 놓고 시작했는데, 국밥이 인기를 끌면서 정육점 전체가 국밥집이 됐다. 고기 걸어놓던 쇠고리, 냉동고 등 정육점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가게 내부가 재미있다. (054)853-6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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