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입관/이영훈목사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창세기 50장 24~26절

 

 우리에게 주신 성경 말씀의 제일 처음은 하나님의 천지 창조로 시작됩니다.
 창세기 1장 1절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온 우주 만물의 시작이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성경은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 한 마디로 온 우주 만물을 지으셨고, 하나님이 지금도 온 세상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창세기의 맨 마지막 절은 하나님께 쓰임 받았던 위대한 인물인 요셉의 죽음으로 마무리되어있습니다.
 창세기 50장 26절입니다.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창세기 처음과 끝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하나님이 모든 것의 시작이 되신다는 것이고, 하나님만이 우리의 절대 희망이 되시고 생명의 근원이 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 인간이 아무리 위대하고 잘났다고 할지라도 죽음 앞에서는 그 누구도 어떻게 자기의 힘을 쓰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 요셉


 요셉은 자기가 곧 세상을 떠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형제들을 불러놓고 이야기합니다.
 창세기 50장 24절은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라고 말씀합니다.
 그의 유언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난 세상을 곧 떠날 것인데,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당신들을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온 천지가 변하고 세월이 흘러가도 약속의 말씀은 변함이 없습니다.
 꿈꾸는 소년이었던 요셉은 가정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고 13년 긴 고난의 세월 끝에 그가 누명을 쓰고 죄수로 들어갔다가 하루아침에 하나님의 때가 되어서 그를 높이심으로 당시 최대의 강대국인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위대한 인생을 살았던 요셉도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가 가진 것이 많고 높은 위치에 있으면 사람에게 대접을 받습니다.  어떻게 보면 없는 사람과 좀 달리 차별적으로 대우를 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는 모두가 평등하게 예외 없이, 또 예고 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피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성경에 우리가 맞이할 죽음에 대해서 예고합니다.
전도서 3장 1절, 2절입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시편 90편 3절로 5절입니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언제 예고 없이 우리에게 죽음이 다가올지 모르기 때문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면서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시편 90편 12절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이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죽음 이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은 말씀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모든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는데 죽음 이후에 천국과 지옥의 심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은 단 하나입니다. 그에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배웠어도 예수를 믿는 믿음이 없으면 천국으로 이끌림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 없고 부족해도 아무 공로 없어도 예수를 믿는 믿음을 갖고 있으면 우리는 영원한 기쁨이 있는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음은 영원한 세계에서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래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천국에서 영원한 삶이 시작되는 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죽음 앞에 통곡하고 울며 몸부림치지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 슬픔 속에서도 큰 위로함을 받습니다.

 저희 교회 성도님이 좀 많다 보니 장례식이 매주 있습니다. 지난 주일도 세 분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장로님 한 분께서 88년 동안 주님 잘 섬기다가 천국 가셨고, 또 한 집사님은 3년여 동안 병상에 누워계셨다가 천국 가셨습니다. 어저께 장례식장을 가서 권사님을 뵈니까 참 지난 3년 동안 그렇게 고생을 많이 하셔서 얼굴도 수척해지시고.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보내고 딸은 아빠를 보내드렸으니 눈이 퉁퉁 부었지만 마음속에 주님이 주신 위로가 있었기 때문에 크게 슬퍼하지 아니하시고 장례식을 잘 치를 수 있게 된 것을 제가 감사드렸습니다. 가서 기도드리고 나오는데 주님의 위로하심이 임했어요.

 세상 사람들은 정말 죽음 앞에서 끝이라 생각하니까 온 가족이 큰 충격 속에 통곡하고 난리를 하지만 우리 믿는 사람은 잠시 헤어지는 것입니다. 왜? 언젠가 먼 훗날 우리도 그곳에 갈 것이니까. 그리고 지금 사랑하는 가족이 떠나갔다 할지라도 그 순간 천국에 올라가셔서 다 내려다보고 계시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담담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맞이할 수 있는 주님의 일꾼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장차 영원히 거할 천국에 대해서 성경은 설명합니다.
 계시록 21장 3절, 4절입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
 계시록 22장 3절로 5절입니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우리 모든 믿는 사람들이 그 영광스런 천국에서 주님을 모시고 날마다 찬양하며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고 죽는 사람들은 그 순간 영원한 불 못,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계시록 20장 10절은 말씀합니다.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계시록 20장 15절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불덩이 속에 던져지는데 고통을 느끼지만 죽지는 않아요. 영원토록 죽지 않고 영원토록 고통당하는 곳이 지옥입니다. 제가 심방 갔다 오다가 길에서 싸인을 봤더니 ‘연옥 불가마’라고 쓴 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기는 들어갈 훈련을 미리 받는 데인가?’ 사람들이 웃는 말로 한국 사람들은 잘 견딘대요. 불가마에 자주 갔다 와가지고.   

 그러나 그 불덩어리는 우리가 그 고통을 참을 수 없습니다. 몸부림을 치며 영원토록 고통당해야 할 것인데,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믿는 것에 너무너무 감사하고 언젠가 우리가 주 앞에 섰을 때 “너 무엇하다 왔느냐?” 물으실 때 당당하게 “예, 제가 하나님 영광 위해 살다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으로부터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 살면서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여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예수님을 만난 다음,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 7절, 8절에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그의 호흡이 다하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에서 고백합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한평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 주님 앞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평생 독신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다가 지난 1월 27일 천국 가신, 낮은 자의 대모로 불리우신 문수영 목사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이화여대 법대를 졸업하고 여섯 번 사법고시를 쳤는데 그게 잘 안 됐어요. 그래서 심한 불면증과 위장병으로 건강이 극도로 나빠졌을 때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 인생이 변화되었습니다. 그 은혜를 체험하고 고백합니다. “고시 합격보다 천국 고시 합격의 기쁨이 충만하여 하나님이 써주신다면 주 위해 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에 들어갑니다. 신학교에 다니면서 윤락여성, 가출 소녀, 걸인, 직업소년, 껌팔이, 신문팔이, 구두닦이 등을 보살피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남대문경찰서의 요청으로 넝마주이들을 돌보게 되고 그들에게 한글과 기술을 가르쳐서 자립을 도와줬습니다. 대부분 고아 출신들이라 매우 난폭했습니다. 매일같이 술 먹고 칼부림을 했는데, 어느 날 너무나 감당하기 힘들어서 문고리를 붙잡고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왜 여자인 나를 쓰십니까? 난 약하고 그들은 강합니다.”

 그런데 그 약함이 그들의 강함을 꺾었습니다. 몸이 약한 목사님이 저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것을 보고 저들이 감동되어서 목사님을 “어머니”, “어머니” 부르면서 저들이 목사님을 위해서 울며 기도하며 목사님을 보살피게 되고. 그래서 이 목사님이 호적 없는 사람들을 호적을 갖게 하고, 주민등록 말소된 사람들을 주민등록을 만들어서 국방의 의무도 감당하게 하고, 초등학교도 못 나온 아이들이 검정고시를 통해서 이제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고, 기술을 배워 사회생활도 하고 결혼도 하게 되어서, 그 목사님이 돌본 아이들이 목사가 네 명이나 되었고, 장로님, 안수집사님으로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문수영 목사님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는 말씀을 가장 좋아합니다. 이것이 저의 신앙고백입니다. 성령이 주관하는 사람, 즉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내 안에서 예수님이 함께 더불어 산다는 것을 이들에게 심어주고 싶습니다.” 
 나중에는 오갈 데 없는 무의탁 노인들과 장애를 가진 자활근로 대원들을 위해 ‘영광의 집’, 그룹홈을 만들고 영광교회도 세웠습니다. 현재 그의 제자가 담임으로 사역하고 있는데, 1월 27일 세상을 떠날 때 자기의 모든 유산을 이 교회에 위탁했고 육신도 이화여자대학병원 해부학교실에 기증했습니다. 유언장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내 장례 때 조화는 사절해주세요. 너무 허전하거든 ‘천국에서 만납시다’라는 글귀만 써주세요.”          

 그의 제자로 영광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박명철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영적 어머니인 문 목사님을 40년 넘게 모셨는데, 목사님은 그 거친 넝마주이들에게 말씀과 기도로 사랑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정말 예수님을 닮은 분이었습니다!”
 살아 숨 쉬는 동안 예수님을 가장 닮은 주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여, 예수님 가신 그 발자취를 뒤따라가는 우리 삶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주님이 내게 주신 축복을 내 것으로 생각하지 아니 하고 우리 주위에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자들에게 나눌 수 있게 하여주시고, 소외되고 병들고 몸에 장애를 가진 분들을 사랑으로 섬길 수 있게 하여주옵소서. 우리가 값없이 넘치는 은혜를 받았으니 이제는 나누어주며 살게 하여주옵소서.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에 주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도록 이와 같이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돌보심을 선포한 요셉


 둘째로, 하나님의 돌보심을 선포한 요셉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요셉이 형제들을 불러 모아놓고 말씀합니다.
 창세기 50장 24절, 25절입니다.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그는 죽기 전에 자기를 노예로 판 형들에게 그동안 쌓였던 섭섭한 그 마음, 상처 입고 고통당했던 그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죽기 전에 “내가 당신들이 이렇게 나를 괴롭혀서 내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단 한마디 형들에게 원망과 불평을 말하지 아니하고 형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돌보아주실 것이고, 약속하신 땅에 이르게 하실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언약을 이루어주셔서 그 하나님의 언약대로 축복의 땅에 우리를 거하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끝까지 돌보아주십니다. 우리가 힘들고, 지치고, 상처받고, 고통당하여 때때로 주님을 멀리 떠났어도 한 번도 주님은 우리를 버리신 적이 없고 늘 우리를 붙들어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돌보시는 양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참 목자로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생명을 버리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4절, 15절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예수님의 양인 우리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 말씀에 순종해야 됩니다. 이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이제는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한평생 갚으래야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지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으므로 넘치는 감사의 삶을 살아야 되고, 사랑을 실천해야 되고, 예수님의 흔적을 남기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끝까지 그의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입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주님이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인생의 큰 어려움을 당했다고 문제를 만났다고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고 멸시하고 짓밟았다고 해서, 내가 억울한 일 당하고 상처받았다고 해서 절대로 절대로 주님 곁을 떠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온 세상 사람이 다 나를 버리고 떠나도 주님은 내 곁에 계십니다. 찬송도 있잖아요.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끝까지 나를 돌아보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한평생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나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요셉이 만난 하나님은 그와 같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가 집에서 사랑받는 아들로 자랄 때도 하나님이 함께하셨고, 노예로 팔려가서 그 긴긴 세월 동안 말할 수 없는 모진 고통을 당하고 어려운 일 겪을 때에도 함께 계셨고,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언제 나올지 모르는 감옥에 던져졌을 때도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그를 돌보셨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그를 높여주셔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게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고 상처 입고 또 몸에 병이 들고 힘들고 어려운 일 당한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주님 곁을 떠나지 말고 주님 손 꼭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나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가졌을 땐 내게 아주 잘하고 날 위해주는 척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만 가진 것 다 없어지면 그냥 그날로 등 돌리고 떠납니다. 그게 사람 인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믿는 대상이 아니라 사랑을 주는 대상입니다. 사람을 믿고 의지하고 따라갔다가는 낭패를 겪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가 한평생 믿고 의지하고 따라갈 분은 우리 주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변하신 적이 없습니다. 버리신 적이 없습니다.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이신 것입니다.
 내가 우리 주님을 사랑합니다. 너무나 너무나 우리 주님을 사랑합니다. 나를 위해 몸을 버리고 피를 흘리고 돌아가신 우리 주님을 사랑합니다. 세상 사람이 나를 버리고 떠나도, 내가 몸에 병들고 아프고 힘들어도, 외롭고 쓸쓸하고 어렵고 고통 가운데 있어도 주님 나와 함께하시니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이와 같은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요셉은 남은 형제들에게 하나님께서 돌봐주실 것을 두 번이나 강조하면서 이야기합니다. 이 약속은 이미 그의 아버지 야곱에게 주신,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창세기 48장 21절입니다.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창세기  50장 25절, 26절입니다.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요셉은 죽으면서 절망을 남긴 것이 아니라 꿈과 희망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은 마지막에 꿈과 희망을 남겨놓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절대 절망을 남겨놓지 아니하고, 상처를 남겨놓지 아니하고, 고통을 남겨놓지 아니하고, 꿈과 희망을 남겨놓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방직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주님의 은혜를 체험한 한 소년이 “하나님, 나를 써주시기만 한다면 내 평생 바쳐 주님 일을 하겠습니다.” 주님이 그를 부르시고 택하셔서 그가 신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선교사로 떠납니다. 그분이 위대한 아프리카의 아버지로 불리는,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이비드 리빙스턴입니다. 의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의사로서 선교사로서 최초로 아프리카 대륙을 횡단한 사람입니다.

 1841년 아프리카에 도착해서 동서를 최초로 횡단했는데 그는 이 횡단할 때 목표를 세웠습니다. 첫째로, 내륙 지방에 위생적인 선교지 확보. 둘째로, 내륙으로 접근하는 길, 내륙에서 동쪽이든 서쪽이든 해안으로 나오는 길을 확보. 셋째, 노예 매매를 막을 수 있는 정당한 사업을 위한 루트 확보. 그래서 노예 매매 대신 연화나 커피 재배 등 다른 사업을 할 것을 유럽인들에게 권장을 했습니다. 길을 헤쳐 나가는데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첫해에 그가 사자의 습격을 받아서 한 팔이 다 뜯겨 나가서 팔이 부러져서 덜렁덜렁하는 팔을 가지고 동서 없는 길을 만들어 정글을 헤쳐 가면서 길을 만들어 횡단을 세 번을 했는데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그는 이러한 결심으로 이겨냈습니다. “장사꾼들이 노예무역으로 가는 곳에 선교사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갈 수는 없단 말인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는데 많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전까지 온 모든 서양 사람들은 그들을 붙잡아가지고 노예로 팔았는데 이  사람은 와서 병도 고쳐주고 말씀을 전하고 사랑으로 품어주었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서고 많은 영혼들이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그의 아내도 동역자들도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 미리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믿음의 전진을 해나갔던 것입니다.

 마지막 생일, 1873년 3월 19일 날 일기입니다. “너무나도 많은 장애물이 있었다. 오, 나의 선하신 주 예수님, 사단이 나를 압도하지 않도록 해주소서! 세상의 어느 것도 나의 일을 실망 가운데 포기하도록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주 나의 하나님 안에서 용기를 얻어 계속 나아간다!” 
 그러다가 1873년 5월 1일 새벽 4시경, 조그만 오두막집 탁자에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조용히 천국 가셨습니다. 심한 이질에 걸려서 고통당하시다가 그렇게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그의 심장은 아프리카에 묻혔고 시신은 8개월에 거쳐 운구를 이동해서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힙니다. 그의 전기를 쓴 작가, 제이 워체스터는 이와 같이 그의 업적을 말합니다. “그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선구자였다. 길을 열어 남들이 따라오도록 거친 곳을 평탄하게 만들며, 기독교가 들어가도록 지역을 개방했다. 그가 죽은 지 몇 년 안 되어 그의 마음의 가장 깊은 소원이 벌써 성취되었다. 아프리카는 개방되었고, 노예 매매는 정죄되었으며, 기독교 선교를 심는 데 놀라운 추진력이 주어졌다!”

 이와 같은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고 영광스런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죽음을 피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죽음은 예고 없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 죽음을 맞아도 부끄럽지 않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가 이 땅을 사는 동안 오늘 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서 이 땅에 아름다운 예수님의 흔적을 남기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크신 사랑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무엇이간데 죄 많고 허물 많고 문제투성이이고 고집불통인 저희들을 사랑해주셔서 십자가에 달려죽으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셨는지 그저 그저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한번 뿐인 인생 지나가는 인생 정말 하나님 영광위해 살다가 주님께서 오라 부르실 때 기쁨으로 주님 맞이할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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