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은혜와 축복/이영훈목사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20장 19~23절

0. 들어가는 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기적이요, 축복이요,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아니하셨더라면 지금 우리는 죄와 절망 가운데 고통 가운데 신음하며 살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예수를 믿기만 하면 죄와 사망에서 놓여남을 받게 되고 주님의 은혜와 축복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은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게 되고, 영생을 얻게 되고, 죽음 이후의 부활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에 그 이유로 모든 사람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그 부활의 은혜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면서 한평생 하나님 영광 위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1. 평안의 축복

  주님께서 주신 축복은 평안의 축복입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은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요한복음 20장 21절에는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 두려움과 절망 가운데 문을 꼭꼭 닫고 숨어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두 차례나 강조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어 말로 ‘샬롬’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서로 만나면 ‘샬롬!’하고 인사합니다. 만날 때도 ‘샬롬’하고 인사하며, 헤어질 때도 ‘샬롬’하고 인사를 합니다. 그들은 지금도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평안이 임하도록 ‘샬롬’하고 인사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참 평안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샬롬’은 세상이 주는 일시적인 평안이 아닙니다. 영원한 평안입니다. 영혼육의 전인적인 평안입니다. 이 평안이 넘쳐날 때 어둠이 사라지고, 근심이 사라지고, 걱정이 사라지고 주님의 기쁨이 넘쳐나게 됩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도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평안은 영원한 것이고 그 누구도 우리에게서 이 평안함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평안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에 근거한 사랑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평화가 임할 때 근심, 걱정이 다 물러가고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찬송가 412장에 이와 같은 고백이 있습니다.
 
  1.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2. 이 땅 위에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 있나
    우리 모두 다 예수를 친구 삼아 참 평화를 누리겠네
  3. 이 땅 위에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 있나
    우리 모두 다 예수를 친구 삼아 참 평화를 누리겠네
<후렴>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어떤 문제를 갖고 나오셨습니까? 어떠한 염려, 근심, 걱정을 갖고 나오셨습니까? 어떠한 상처로 인해 고통하고 계십니까? 십자가 밑에 다 내려놓으시고 주님이 주신 참 평안함으로 모든 결박에서 자유함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평화가 우리에게 주어지게 될 때 기쁨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0장 20절에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주여. 이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게 임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 대한민국에 임하게 하여주옵소서. 저 북녘 땅에도 임하게 하여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대한민국에 평화통일의 날이 속히 다가오게 하여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평안함이 임하면 그때로부터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서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14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있다가 주님의 평안함이 임하고 난 다음 회복되어서 일어나서 활동하게 된 마틴 피스토리우스라는 분을 소개합니다. 평범하게 살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소년이었습니다. 12살이 되던 해에 목에 통증이 오더니 갑자기 먹지도 못하게 되고, 말도 못하게 되고, 전신마비가 되었습니다. 병의 원인도 모르고 의사들은 이 아이가 곧 죽을 거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식물인간이 되어서 누워있었는데 4년이 지나고 난 다음 의식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전신마비 상태였기에 의식이 돌아온 것을 사람들이 알지 못했어요. 그래서 ‘평생을 이렇게 내가 의식은 있지만 아무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몸에 갇혀 죽어가겠구나.’ 절망했습니다.

  당시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저는 화분에 담긴 식물과 같았습니다. 물을 주어야 하며,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에 모두들 익숙해진 탓에 제가 다시 의식이 깨어나서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제가 여생을 혼자서 내면에 갇힌 채 살게 될 거라는 잔인한 현실이 덮쳐왔습니다. ‘나는 영원히 구조되지 않을 거야!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저는 꿈도 희망도 기대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어느 날 충격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자기 때문에 어머니가 아버지랑 다투고 난 다음 옆에서 이렇게 푸념하신 것입니다. 울면서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 네가 죽어야 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더 큰 충격이 다가왔습니다. ‘엄마마저 나를 버렸구나.’ 그 절망하던 때에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이 찾아오셔서 마음에 평안함을 주셨습니다. 천사들이 나타나서 무어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그 순간 마음에 평안함이 임했습니다.

  그때를 고백합니다. “완전하게 의식을 찾았을 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대해서 모르고 죄, 성경, 회개 등의 의미는 몰랐지만 그냥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제가 이렇게 살아있음을 몰랐지만, 하나님만은 아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육신에 갇힌 상태에서 해방하셔서 구출해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재활 치료사가 어느 날 의식이 돌아온 것을 알아챈 것입니다. 그래서 재활 훈련을 하고, 조금씩, 조금씩 몸이 회복되기 시작해서 컴퓨터 음성으로 대화를 하게 되었고 공부까지 하게 돼서 대학을 졸업하고 웹 개발자로 사업도 하게 되고 믿음 좋은 자매(조안나)를 만나서 결혼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간증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 그리고 가장 작은 기도까지도 응답하신 은혜에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하나님은 항상 거기에 한결같은 나의 친구로 함께하셨습니다. 나와 동행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 만나던 그곳에 계심을 항상 확신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평안함을 주시고 나서 그 다음 우리에게 사명을 맡겨주십니다. 그 사명이 무슨 사명이냐? 복음을 전하는 사명입니다.

2. 전도의 축복

  전도의 축복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1절에는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문제 많고 어려움 많은 사람 가운데로 우리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절망에 처한 사람들에게 우리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은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삽자가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구원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영생의 복음을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온 가족이 다 예수 믿고 주님 앞에 나오도록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돈의 팔촌까지 한 사람도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 없도록 복음을 전하기를 바랍니다.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바랍니다. 회사에서 직장 동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바랍니다. 사업장에 있는 사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바랍니다. 학교에서, 캠퍼스에서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딜 가든지 예수님이 구세주임을 증거 하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는 성령께서 역사하실 것이니까 여러분은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사도 바울은 한평생 복음에 빚진 자로 살았습니다. 로마서 1장 14절은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은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절망 가운데 처해있습니까?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소년 소녀 가장들이 있습니다. 추운 겨울에 전기담요 하나로 지내는 독거노인들이 있습니다. 몸과 마음의 장애를 겪는 장애우들이 있습니다. 또 버려진 많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미혼모의 자녀들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고생하며 인권 사각지대에서 살고 있는 다문화 가족들이 있습니다.
  그 때 주님은 우리들에게 ‘그들에게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의 사랑을 들고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때문에 우리는 예수의 사랑을 품고 그들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상처 입은 영혼들에게 다가가야 하는 것입니다. 고통당하고 슬피 울며 외롭게 홀로 있는 자들에게 우리가 주의 사랑 들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케리 슉 목사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 각자의 삶은 세상을 향한 메시지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속에 품고 다니는 복음 자체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메시지를 들고 밖으로 나가라고 말씀하신다. 메시지를 행동으로 옮기라! 세상 속에서 실제로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라!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삶이 예수님의 메시지를 온전히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당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 하나님은 당신이 바로 그 사람에게 복음이 되어 주길 원하신다!”
  ‘주여, 우리를 사용하여주소서. 복음의 일꾼으로 쓰임 받게 하여주시옵소서. 죄와 절망 가운데 죽어가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라고 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보다 더 귀한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 주변의 예수 믿지 않는 영혼들에게 예수의 사랑 들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기도로 준비하고 나아가서 말씀을 전할 때 하나님이 감동을 주셔서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이 일을 우리가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3. 성령 충만의 축복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 충만의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0장 22절은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으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은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영입니다. 오셔서 예수님의 일을 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여, 우리가 성령 충만 받기 원합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어서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을 전하고,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성령 충만 받을 것을 분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4절과 5절은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열흘 동안 간절히 기도할 때 오순절 날 성령이 임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절은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붙잡고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반드시 받아야 됩니다. 성령 충만할 때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날마다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늘 시험에 잘 들고, 상처 잘 받고, 쉽게 낙심하고, 절망하는 이유는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대부분 이러한 분들은 자기 감정에 충만해서 쉽게 화내고, 쉽게 상처받고, 쉽게 절망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 받으면 달라집니다. 누가 뭐라 그래도 개의치 아니하고, 환난과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와도 믿음으로 싸워 이기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주님의 귀한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 18절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주여,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원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늘 승리하는 삶을 살기 원하오니 날마다 순간마다 우리를 충만케 하여주시옵소서.
  성령님은 예수님의 영입니다. 살리는 영입니다. 치료의 영입니다. 회복의 영입니다. 우리를 승리하게 하는 영인 줄로 믿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자연히 우리가 만난 예수님을 증거 하는 복음의 증인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는 성령의 권능이 임해야 합니다. 왜 권능이 임합니까?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권능이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 받으면 우리 삶 가운데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로 23절은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성품이 우리 삶 가운데 넘쳐나야 합니다.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우리는 참지 못합니다. 쉽게 분노합니다.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우리는 늘 미워하고, 다투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주여, 우리를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주셔서 우리의 감정을 다스리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이, 주님의 기쁨이, 주님의 평화가 넘쳐나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하는데 성령 충만 받고 복음을 증거 하기위해서 우리가 해결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삶 가운데 상처를 주고, 내 마음에 고통을 준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4. 용서의 축복

  주님은 우리에게 용서의 축복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3절은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용서는 부활의 메시지의 완성이요, 사랑의 결정체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 된 우리를 값없이 용서해 준 것처럼, 그것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기까지 희생의 값을 치루시면서 우리를 용서해주셨는데 우리도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값없이 용서를 받고나서도 우리에게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세상의 싸움은 상대편을 때려눕혀야 이깁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의 싸움은 용서해야 이기는 것입니다. 용서는 최선의 복수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치실 때 용서를 가르쳐주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12절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용서할 때 응답이 다가옵니다. 기적이 임합니다. 용서할 때 우리 마음에 치료가 강물처럼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9절에 천국 열쇠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이 천국 열쇠를 소유하는 능력이 바로 용서입니다. 용서해야만 우리에게 천국 열쇠를 주시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응어리진 것이 있고 상처받은 것을 그대로 품고 살아가면 우리는 큰 은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천국 열쇠를 소유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도 자기를 못 박는 사람들,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을 용서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은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누가 자기 뺨을 때리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가 있습니까? 요즘 사람들 중에 누가  한 빰을 치는데 아주 두 뺨을 때려라고 내 주겠습니까? 참지 못하고 견디지 못합니다. 누가 나를 모욕하면 견디지 못하고 분노합니다. 이미 그 말을 듣는 순간 사실 여부도 확인해보지도 않고 분노에 치를 떨면서 가만두지 않겠다고 펄펄 뛰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까지 다 용서해주셨습니다. “저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저들을 용서하여주옵소서.”
  이 좁은 땅에 살면서 우리가 너무나 그동안 많이 다투고 서로 갈등하고 미워했습니다. 나와 다 다르면 적이라고 생각해서 심한 갈등과 대립이 있었습니다. 끊임없는 문제가 그로 인해서 우리 사이에 일어났던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책임이 큽니다. 이 조그만 땅덩어리가 남북이 나눠져 있는데 또 동서로 나눠 서로 다투게 하고, 갈등하게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인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해야 되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를 묶고 있는 결박에서 놓여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고 상처를 주었던 모든 기록이 나를 칭칭 감고 있어요. 그래서 보통 때는 잘 모르는데 내가 좀 약해지면 내가 기도하지 아니하고, 내가 예배드리는 데 소홀이 하고, 내가 주님 말씀 묵상하지 않으면 이것들이 삭 솟아올라 와서 우리를 다시 얽어맵니다. 우리로 하여금 분노하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미워하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화내게 하고 다투게 만듭니다.
  주여, 우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용서하지 못하고 고통 가운데 사로잡혀있는 나를 주님 불쌍히 여겨주셔서, 예수의 사랑으로 예수의 용서로 모든 미움과 아픔의 결박을 풀어버리고 참 기쁨과 평안함을 누리며 살 수 있게 하여주옵소서.
  전신 마비 사고를 당한 후 30년 동안 전 세계를 다니며 용서의 메시지를 전하는 한 경찰을 소개하면서 오늘 말씀을 마칩니다.
  뉴욕경찰이었던 스티븐 맥도널드는 1986년 맨하탄 센트럴 파크를 순찰하던 중에 15살 소년이 쏜 세 발의 총을 맞고 심지어 총알 하나가 척추를 관통해서 목 아래쪽을 영원히 쓸 수 없는 전신 마비 환자가 되었습니다. 경찰이 된 지 2년 밖에 안 됐는데 그런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그때 아내는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침에 웃고 나갔던 자기 남편이 총에 맞아갖고 온몸이 불구가 되어서 병원에 누워있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그 가정에 고통이 컸겠습니까?

  그런데 이 경찰은 주님을 잘 섬기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태어난 아들을 보면서 용서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한순간에 저는 활동적인 경찰관에서 몸도 못 가누는 범죄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건이 발생하고 6개월 후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아들은 저에게 살아야 한다고, 이전과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고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지 같았습니다! 저는 그 메시지에 답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를 변화시켜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면서 저를 쏜 젊은 친구를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사건 발생 후 9개월이 지난 1987년 3월 1일, 휠체어를 타고 아들의 유아세례 참여 후에 자신에게 총을 쏜 그 소년을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교도소에 있는 소년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내가 너를 용서한다.” 그 소년이 그 사과를 받아들이고 그 자기의 잘못을 빌었습니다.

  소년을 용서한 이유를 이렇게 고백합니다. “척추에 박힌 총알보다 가슴속에서 자라는 복수심이 더 끔찍하다고 믿으니까요. 물론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분노는 감정 낭비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처음엔 용서한다는 것이, 그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에서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어요. 그러나 나중에야 알게 됐어요. 저 자신도 악하고 이기적인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말입니다. 용서가 필요한 것은 바로 저 자신이었어요. 그 사고는 내게 호된 신앙의 시험이자 나를 하나님께로 더욱 가까이 이끌어주고, 내면과 영원에 집중하도록 해준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여러분, 화난다고 다 화내지 마세요. 그건 다 감정 낭비라고 그랬습니다. 이제는 그렇게 살지 말고 웃고 사랑하고 용서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하루가 멀다고 부부싸움을 하는 집 봤어요. 그냥 부부싸움을 안하고 그날 하루를 안 지나가면 섭섭하대요. 또 싸우고 잠자리에서 또 싸워요. 그렇게 살아서 서로 그렇게 상처에 상처를 입히면 무엇이 유익합니까? 예수 믿는 사람답게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전 세계를 다니면서 용서를 실천하고 용서 캠페인을 벌입니다. 폭력 끊기 프로그램을 통해서 많은 학생들을 계몽합니다. 중고등학교, 대학교, 미국의 학교 588곳을 방문해서 말씀을 전하고 이를 통해 학생들에게 감동을 끼쳤습니다. 살아있는 성자, 진짜 영웅이라는 칭찬을 받았고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뉴욕 시장, 시경국장 등 수많은 사람들이 장례식에 나와 애도했습니다.
  그가 활동한 폭력 끊기 프로그램의 주체자인 요한 크리스토퍼 아놀드 목사님은 용서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용서는 그리스도의 명령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삶과 관계 속에서 깨어진 모든 것을 회복시키는 중요한 열쇠다. 증오를 증오로 갚으면 증오만 더 증식시킬 뿐이며, 별이 보이지 않는 밤하늘에 짙은 어둠만을 더할 뿐이다. 어둠으로 어둠을 몰아낼 수 없다. 오직 빛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미움이 미움을 몰아낼 수는 없다. 오직 사랑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미움은 미움을, 폭력은 폭력을, 그리고 가혹함은 가혹함을 낳는다. 사랑만이 오직 적을 친구로 변화시킬 힘이 있다!”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갑시다. 그렇게 살기도 너무 짧은 인생길을 살아가는데 미워하고 다투고 욕하고 성질내고 살다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가 주님을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 앞에서 서서 뭐라고 우리가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우리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모두 주님 앞에서 변화되어서 이와 같이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주여, 이 땅에 평화를 주옵소서! 사명을 감당하게 하여주옵소서! 성령 충만을 받고 용서를 실천하게 하옵소서! 용서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연약해서 용서하지 못합니다. 쉽게 분노합니다. 쉽게 상처받습니다. 그런 나 자신에 갇혀있는 저희들의 모습을 불쌍히 여겨주셔서 오늘 이후로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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