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이영훈목사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요한복음 21장 1~6절)

우리 인생은 꿈과 희망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사람들이 꿈과 희망을 잃어버리면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도 방향도 없이 절망 가운데 방황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러한 삶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우주 만물은 주님의 사랑이 충만하고 꿈과 희망이 넘쳐나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죄 짓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꿈과 희망은 산산조각이 나고 죄와 절망, 가난, 저주, 질병이 온 인류를 뒤덮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죄 가운데 태어나,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 죽어가는 절망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웬 은혜인지 이 같은 절망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를 구원해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와 저주, 가난과 질병, 모든 절망을 짊어지시고 돌아가셨습니다.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은혜가 임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사는 가운데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주십니다. 죄와 저주와 질병을 이기고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값없이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베드로라 하는 제자가 예수님을 떠나 절망에 처해 있을 때 그를 찾아오셔서 그를 회복시켜주신 귀한 말씀을 통하여 우리 함께 은혜 나누기를 원합니다.

1. 실패한 인생

베드로는 예수님께 부름을 받고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동안 열심히 주님을 섬겼던 제자입니다. 제자 가운데 특별히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대표 되는 수제자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변화산으로 기도하러 올라가실 때, 열두 명 중에 베드로, 요한, 야고보, 셋을 데리고 올라가셨고,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올라가실 때에도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가장 가까운 곳까지 데리고 가셔서 함께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특별히 베드로는 사역 초기에 그 장모가 늘 열병으로 몸이 아팠는데 예수님께서 장모를 고쳐주셔서 주님의 은혜를 크게 체험했던 주님의 일꾼입니다.

그런데 이 수제자 베드로가 예수님 붙잡혔을 때, 자기 목숨이 위험해지니까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특히 세 번째에는 예수님을 저주하고 맹세하며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 73절로 74절을 보면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마 16장 16절)라고 고백했던 제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고난당하는 것을 말씀하실 때도 ‘다른 제자들은 다 주님을 버리고 떠나도 절대로 저는 주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니까 예수님을 모른다고 배반했던 사람이 되고 맙니다. 심지어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예수님을 부인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 베드로 같은 사람들입니다. 큰 은혜와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자신에게 약간의 불이익이 임하면 금새 거짓말하고 받은 은혜를 저버리고 주님을 슬프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또 누가 나에게 큰 도움을 줄 때에는 그 사람에게 그냥 간을 빼어 주듯이 온갖 입에 발린 칭찬을 하다가도, 나하고 관계 속에서 나에게 조금 불이익을 주고 손해를 주면 갑자기 돌아서서 원수가 되고 마음에 미움과 분노로 가득 찬 경우를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믿을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배신은 가장 가까운 데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믿었던 사람들이 배신하고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만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재정을 맡았던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종교 지도자들에게 가서 은 30에 팔았구요, 그리고 다른 제자들도 다 예수님 붙잡히실 때에 뿔뿔이 흩어지고 다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마가복음 14장 50절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인간의 연약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도망하기 직전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14장 38절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이 기도하고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들과 똑같은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불이익을 당할까봐 직장에 가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습니다. 자기 직장 상사가 예수님 믿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을 알고부터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습니다. 거래처 사장하고 여러 가지 거래를 하다가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불이익을 당할까봐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을 안 하기도 하고, 또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을까봐 전혀 안 믿는 척하기도 하고, 또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 핍박을 받을까봐 교회 나오는 것을 숨기고 조용히 교회를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절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 부끄러워서는 안 됩니다. 자랑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세주 되심을 만방에 자랑하며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답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절대로 나에게 불이익이 다가온다고 죄와 타협하면서 살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 찬양대원 가운데 국립합창단 단원이었던 분이 계십니다. 그런데 국립합창단이 불교 행사에 가서 찬불가를 부르게 되었는데 ‘나는 신앙의 양심 상 못 부릅니다.’라고 말해서 결국 합창단에서 해고됐습니다. 믿음을 지킨 것입니다. 그런데 국립합창단 단원의 70%가 각 교회들의 찬양대 솔리스트들입니다. 본인의 직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불렀다고 하지만 그래도 찬양대원이 찬양을 부르던 그 입술로 찬불가를 부르면 되겠습니까? ‘내게 손해가 오더라도, 불이익이 다가오더라도 나는 믿음을 지키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더 좋은 길로 이끌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식사할 때 기도하는 게 부끄러워 고개만 잠깐 숙였다가 드는 사람이 있어요. ‘저 사람, 왜 머리를 숙였다고 드나?’하고 봤더니 예수 믿는 사람이에요. 그렇게 예수님을 믿으면 안 됩니다. 어디를 가든지 예수님 믿는 것에 대해 떳떳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는 닭 울음소리를 듣고 그가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75절에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절대 부인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세 번 부인하고 난 다음에 닭이 우니까 그때 주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자기를 그렇게 사랑해주시고, 자기의 장모의 병도 고쳐주시고, 늘 가장 가까운 곁에 자기를 두고 사랑하시고, 자기를 세워주시고, 지금까지 함께하신 예수님을 배반했다고 하는 그 죄책감에 그는 나가서 심히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신앙을 가진 후에는 예수님을 잘 믿어야 합니다. 바로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높여주십니다. 절대로 예수 잘 믿는 것 때문에 여러분이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에 모든 어려움을 딛고, 더 높여 주시는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탈북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김길남 성도님이 <굶주림보다 더 큰 목마름>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평양에서 조선노동당 간부로 있다가 양강도 오지로 쫓겨났는데, 그곳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만나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혀 예수님을 모르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성경에 대한 지식이 없었습니다. 당시 지하교회 성도들은 성경이 귀해서 한 권을 뜯어 나눠서 읽곤 했는데, 김길남 성도에게 주어진 것은 레위기와 사무엘상이었다고 합니다. 사무엘상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을 진멸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은 복수하시고 진멸하시는 하나님이다.’라고 잘못 알고 노동당 타도를 외치며 당 간부들을 대상으로 해서 도둑질과 강도질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그는 중국으로 도망가게 되고, 말 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게 되니까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다 이 원수들을 박멸하려고 했는데 왜 나에게 이렇게 어려움이 다가옵니까?’

숨어 지낼 때 누가 성경을 가져다줍니다. ‘성령을 제대로 읽어봐. 당신 하나님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거야.’ ‘내가 왜 성경을 보냐!’고 집어 던졌다가 다시 성경을 펼쳐 보는데 성령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요한복음을 읽을 때 눈물, 콧물이 쏟아지면서 주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실패한 인생에 다가온 하나님에 대해서 너무 감사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1999년 초겨울이었다. 나는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에 이끌려 탈북을 하게 되었고, 이것으로 내 인생도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절망과 좌절에서 허우적거릴 때, 하나님이 찾아오셨다! 예전에 내 맘대로 해석하고 왜곡시킨 일그러진 하나님이 아니라, 온전하고 완전하고 무결하고 무엇보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으로 찾아오셔서 내 손을 붙드셨다! 하나님이 찾아오신 그날, 내 인생의 어둠이 걷혔다! 내 인생에 빛이 임하기 시작한 것이다!”

13년 넘게 중국과 북한의 국경 지역에서 탈북자를 도우며 섬기다가 2012년 의문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이메일 내용의 일부입니다.

“내 평생의 소원대로 북녘 땅이 주의 나라가 된다면, 그리하여 우리 주님의 소원을 풀어드리고 또한 먼저 돌아간 형제자매들의 한을 풀어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위험도, 아니 죽음도 불사할 것입니다!”

그렇게 그의 인생을 주님께 바쳤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실패자로 끝나지 않습니다. 버림받은 자로 끝나지 않습니다. 실패한 인생, 저주받은 인생, 버림받은 인생을 주님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2. 실패한 자를 찾으시는 예수님

예수님을 배반하고 깊은 절망에 빠졌던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에도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다시 옛날로 돌아가야 되겠다.’고 하며 갈릴리로 돌아가 고기 잡는 어부의 모습으로, 옛 모습으로 그가 살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21장 3절에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떠난 인생은 실패하고 무엇을 해도 이룰 수 없는 빈 배와 같은 인생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감격해서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신한 후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그에게는 그 어떠한 것도 그의 노력을 통해서 얻을 수가 없었고 돌아온 것은 빈 배 뿐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전부가 되십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예수님을 붙잡으면 우린 다 가진 것이고, 이 세상 것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잃어버리면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모든 것 되시는 주님을 꼭 붙드시길 바랍니다. 주님을 떠난 인생은 결국 빈 배 인생이 됩니다. “나를 떠나서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 말씀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결국 밤새 그물을 던지고 또 던지고, 또 던지고, 또 던졌지만 그물에 걸려온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지치고 피곤하고 밤을 꼬박 새워서 허기지고 그렇게 “이제, 어떻게 하지?”하고 낙심에 처해 있을 때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가 빈 배 인생이 되어서 손 놓고 있을 때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 4절, 5절은 설명합니다.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아주 사랑스런 음성으로 부르십니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고기 좀 잡았느냐?” “아니오, 우리 한 마리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오늘 실패하고 좌절하고 마음에 상처입고 낙심해 빈 배 인생이 되어있는 우리들에게 묻습니다. “네가 그렇게 나가서 열심히 산다고 했는데 뭐 얻어진 것이 있느냐?” “네가 네 자신의 노력을 가지고 그렇게 사업을 경영한다고 했는데 사업의 성과가 있느냐?” “지금 너의 인생에 무언가 만족할 무언가를 다 얻었느냐?”고 물으십니다.

여러분, 예수님 떠난 인생은 빈 배 인생입니다. 무엇을 해도 그 빈 배를 채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노력은 늘 불완전하고 결국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를 도와주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21장 6절입니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공허하고 허무하고 피곤하고 지쳐 빈 배된 인생에게 주님이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오른쪽에 그물을 던져라!” “믿음으로 그물을 내려라!” 그날 밤에 사실 오른쪽, 왼쪽, 뒤쪽, 앞쪽 다 던져봤지만 한 마리의 고기도 못 잡았는데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던졌더니 얼마나 고기가 많이 잡히는지 너무 많아서 들어올리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 말씀입니다. “‘신발 끈이 엉켰는데 풀 줄 아세요?’ 예수님은 그런 부탁을 아주 좋아하신다. 삶은 엉킨다. 사람들은 일을 망친다. 위를 올려다보며 ‘도와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떠나지 않는다. 예수님은 으레 그런 순간에 나타나신다! 베드로의 빈 배에 누가 나타나시는지 보라. 예수님은 우리의 이웃으로 오신 구주다. 당신도 닳고 젖은 빈 그물이 있는가? 예수님은 당신의 빈 그물을 아신다. 지친 마음을 아신다. 그리고 빈 그물의 주인에게 이렇게 속삭이신다. ‘늦지 않았으니 다시 해보자. 이번에는 내가 함께 타겠다!’”

이 예수님이 오늘도 우리의 맘을 두드리고 계신 것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시록 3장 20절)

우리가 깊은 절망에 처해 문을 꽁꽁 닫고 외롭게 홀로 있을 때 주님이 문을 두드리십니다. “너, 왜 이렇게 낙심하고 있느냐? 왜 절망하고 있느냐? 왜 상처를 끌어안고 있느냐? 문을 열고 나를 맞아라!” 여러분,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회복시켜주시는 예수님

고기가 많이 잡힌 그 순간 제자들은 알았습니다. ‘아, 예수님이시구나!’ 그때 사도 요한이 말합니다. “예수님이시다! 주님이시다!”

요하복음 21장 7절에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기가 많이 잡힌 순간, 그 순간 다 알았어요. 그런데 사도 요한이 먼저 말합니다. “주님이시다!” 베드로는 그 말에 너무나 감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주님을 배반하고 이곳까지 도망 왔는데 주님이 나를 찾아오셨구나.’ 너무나 감격해서 웃통을 벗고 있다가 옷을 입고 그냥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향해 헤엄쳐나갑니다. 바닷가에 사는 어부니까 헤엄은 잘 쳤겠죠. 그러나 그가 그 헤엄쳐가는, 그 물길을 헤쳐 가는 그의 모습은 주님을 향한 너무나, 너무나 감사하는 감격과 함께 고마움에 눈물을 흘리며 헤쳐 간 물길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울며, 울며 그는 헤엄쳐나갔을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했는데, 모른다고 부인했는데, 주님이 날 찾아오셨어. 내가 버림받은 줄 알았는데 주님이 날 버리지 않으셨어. 주님 날 사랑하시는 거야, 날 용서하시는 거야.’

너무 감격해서 울며, 울며 헤엄쳐 나가보니 예수님께서 환한 미소로 기다리고 계신데 숯불을 피워놓고 생선을 굽고 계셨습니다. 주님이 베드로를 따뜻하게 맞이하십니다. “밤새 너무 힘들었지? 추웠지? 배고팠지? 이리와 불 쬐고 아침 먹자.”

베드로는 물에 빠진 생쥐처럼 온몸을 덜덜 떨면서 숯불 앞에 나가면서 한없이 기쁨과 감사와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주님을 배반하고 먼 길을 왔는데 나를 찾아오신 예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성경에 이 숯불이라고 하는 원어 표현이 두 번 나오는데, 한 번은 가야바의 뜰에서 예수님을 배반할 때에 그 숯불 앞에서 배반 했거든요, 모닥불 앞에서. 자기가 숯불 앞에서 모닥불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는데 예수님은 그 모닥불 앞에서 그 베드로를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침상을 차려주십니다.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너, 베드로 그럴 수 있니. 네가 내 뒤통수를 때렸지.” 그러지 않으셨어요. 말 한마디 안 하시고 꾸짖지 아니하시고 인간의 연약함을 다 아시고 “내가 너 마음의 고통스러운 것을 알아, 스승을 배반하고 너무나 마음이 아팠던 것을 내가 알아. 내가 널 용서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 자, 배고프지 밥 먹자.” 어디 이 세상에 배신 때리고 간 사람을 찾아가서 이런 진수성찬을 차려주면서 오라고 부를, 용서해줄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오직 예수님만이, 사랑의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이 같은 사랑을 베풀어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부르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아마 그날 아침은 눈물바다를 이룬 아침 식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눈물 속에 그냥 목이 잠겨서 눈물 반, 음식 반을 먹는 그런 아침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주님이 그렇게 사랑하신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고 계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 12절, 13절은 설명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이렇게 우리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큰 사랑을 받고 살면서도 우리는 마음이 얼마나 좁은지 나를 힘들게 하고 상처주고 배신한 사람들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인생은 한번 뿐입니다. 안개처럼 쉬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내가 조금 손해 봤다고 해서 불편하다고 해서 사람들과 원수 짓고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나가 살면서 나의 유익을 위해서 주님을 배반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적당히 죄와 타협하며 사는 모습은 베드로와 똑같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다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를 회복시켜주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가 그 사랑에 감격하여 눈물 흘리며 이제 남은 여생 주님 위해 살겠습니다. 시기와 분노와 미움과 질투와 상처로 얼룩졌던 내 마음 다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자기를 배반했던 그 모닥불 앞에서 다시 용서하시는 그 주님의 사랑을 체험한 베드로처럼 여러분 모두가 주님의 사랑과 용서를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알콜 중독자였다가 지금 알콜 중독을 치유하는 사역을 하고 계시는 임효주 목사님의 간증으로 말씀을 마칩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외롭게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일을 가셔야 됐고, 그러다 보니까 늘 마음에 불안과 마음에 여러 가지 외로움과 고통이 있었습니다. 우연히 초등학교 들어갔을 때, 포도주 찌꺼기를 먹고 술에 취한 경험이 있었는데 그로부터 술에 취해 살았습니다. 고3 때 교회에 갔다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배당에 들어가서 앉아 앞쪽 강단의 십자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어느새 내 볼에 뜨거운 눈물이 타고 내리고 있었다. 울음을 그치고 바닥을 보니 눈물과 콧물과 침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은 이후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책상 앞에 책을 펴는데, 마음이 너무나 평온했다!”

그런데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다음 다시 술꾼이 되었습니다. 매일 술과 함께 살았습니다. 해외 지사장으로 나가서 알콜 중독자가 되어가지고 결국 회사에서 쫒겨나게 되었습니다. 20년 동안 알콜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했다, 입원했다, 퇴원했다 하지만 입원했을 때는 끊는 것 같은데 나오자마자 또 술을 찾아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심신이 황폐하게 되었고 그는 절망의 밑자락에 떨어졌던 것입니다. 술을 마시지 않기 위해서 자기 몸을 줄로 묶어보기도 하고 저녁 때 술집에 안 갈려고 문을 못질을 해보기도 하고. 그래도 술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칼로 동맥을, 손을 그어보기도 하고, 또 소주를 한 박스 싣고 만취 운전을 하다가 크게 교통사고가 나서 크게 위험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알콜 중독의 심각성을 표현합니다.

“알코올 중독은 모든 것을 파괴해버리는 병이다. 처음에는 중독자 자신의 모든 사회적인 능력을 앗아가 버리며 이어 점차 중독자가 사랑하던 모든 것을 없애버린다. 그 과정에서 재산은 다 소진되고 다음엔 서서히 영적으로 파괴되어 인성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며 급기야 오로지 술만 탐닉하다가 결국은 죽음에 이른다!”

이렇게 폐인이 되었을 때, 아내 손에 이끌려 기도원에 갑니다. 그때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하늘에 담배 연기를 내쉴 때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엄청난 힘이 몰려오는 것같이 느껴졌다! 그리고는 하늘에서 음성이 벼락같이 들리는 것 같았다.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냐?’” 깜짝 놀라 담배를 던지고 예배실에 들어가서 기도하는데 성령이 임해가지고 눈물 콧물 쏟으며 회개하고 그날로 술을 끊어버렸습니다. 신앙으로 목사가 되었습니다.

선양원을 설립하고 알콜 중독자 및 가족의 치유, 회복, 자활 사역을 지금 전개하고 있습니다. 알콜 중독 치료 전문가로서 각종 세미나와 방송에 나와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그렇게 방탕한 삶을 살아온 나를 하나님은 항상 인내해주셨고 회복되기를 기다려주셨다. 교회를 등진 지 수십 년 만에 돌아온 탕자를 하나님은 당신의 포근한 품으로 꼭 안아주시고 위로해주셨다. 이제야 비로소 사랑을 알고, 내가 얼마나 사랑을 받았고, 또 하나님과 사람들과 세상은 나를 얼마나 기다려주었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사랑을 주고 내가 기다려줄 시간이다. 그것이 내가 잃었던 그 사랑을 회복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우리가 믿고 섬기는 우리 주님은 우리가 실패했을 때, 좌절과 절망에 빠졌을 때,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이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끝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의 시작인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을 찾아오신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다시 회복되어지시기 바랍니다. 첫사랑의 감격을 회복해서 남은 여생 하나님의 영광위해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너무나 그 삶 가운데 주님을 배반하고 멀리 떠난 삶을 살았는지 주님, 이 시간 회개하고 주님 앞에 새롭게 우리 마음을 다짐합니다. 주님, 이제부터는 우리 주님 위해 살겠습니다. 날 위해 몸 버려 피 흘리고 돌아가시고 끝까지 사랑하신 주님 위해 살기를 원합니다. 나의 잘못된 옛사람 모든 모습을 벗어버리고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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