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 같은 인생/조용기목사

 “너희의 하나님 야훼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야훼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보다 먼저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알리게 하자 하기에 내가 그 말을 좋게 여겨 너희 중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둘을 택하매 그들이 돌이켜 산지에 올라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그 곳을 정탐하고 그 땅의 열매를 손에 가지고 우리에게로 돌아와서 우리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하나님 야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이 좋더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올라가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너희의 하나님 야훼의 명령을 거역하여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야훼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넘겨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우리가 어디로 가랴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를 낙심하게 하여 말하기를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들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노라 하는도다 하기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야훼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야훼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야훼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신명기 1장 21~32절


 오늘 ‘메뚜기 같은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으로 진격해 가고자 할 때, 백성들 중 12명을 택하여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고 보냈습니다. 12명의 정탐꾼들은 목숨을 걸고 40일 동안 그 땅을 탐험해보고 돌아와서 그들을 기다리는 모세와 백성들 앞에 나가 보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1. 두 종류의 보고


 그들이 보고할 보고서는 열 정탐꾼이 본 것과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이 본 것이 대단히 다릅니다. 그들의 보고, 10인과 2인을 비교해보면 가나안 땅을 정탐한 10인은, “그 땅은 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자기들은 그들하고 비교해보니 메뚜기와 같다. 어림도 없다. 그 땅을 못 점령한다.” 꿈이 없던 10명은 패배주의적, 절대 부정적 보고를 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서 그 땅을 정탐한 것이 아니라 자기 인간 스스로를 의지하고 땅을 보았기 때문에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민수기 13장 31절로 33절에 보면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참 기막힌 일입니다. 어떻게 자기들을 메뚜기로 보았는지요. 가나안 땅을 정탐한 2인의 보고는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 두 명은 절대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민수기 14장 6절로 9절에 보면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야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야훼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야훼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면을 했습니다.

 10인의 보고에 하나님은 조금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함께 그것을 관찰한 보고가 올라왔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과 함께 사물을 보는 것과 하나님과 함께 보지 않고 인간적인 지혜와 총명으로 보는 것과 굉장히 다릅니다.

 지나간 이야기 중 한번 우스운 이야기가 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하루 저녁을 같이 먹자고 청와대에 들어오라고 했어요. 요사이는 청와대에 들어가는 것이 자랑도 못되는데, 들어가니까 저녁을 먹자고 저녁상을 차렸는데, 순 보리밥에 된장찌개를 냈는데, 나보고 먹으라고 할 때, 내 생각에 “자기 선전하려고 이렇게 엄하게 먹고도 충성한다고 그렇게 하려나보다.”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이 생겨요. 그가 밥을 먹으면서 하는 말이 ‘우리 대한민국이 살려면 해외 수출을 많이 해야 되고, 해외 물건을 많이 만들어야 되는데, 내가 해외 석유 기름이 많이 나오니까 중동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도시를 건설해달라. 교량을 지어 달라. 뭐 여러 가지 신청이 많은데 내가 우리 한국에 손꼽는 건축가들, 대학교수들, 이것을 조사하러 보냈더니만 가서 조사를 하고 와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기회가 오지만, 거기 가서 일할 사람 없을 것이라고. 얼마나 더운지 일을 하기 전에 모두 다 더위 먹고 죽을 것이라고. 괜히 탐냈다가는 사람들만 절단 난다고.” 그래서 그들이 과학적으로 조사한 조사 내용을 무시할 수는 없고 우리 한국에 제일 잘 나가는 건축가 한 사람을 불렀습니다. 정주영씨를 불러가지고서. 당신이 가서 한 번 조사를 해보고 오너라고. 그래서 그 분이 거기 갔다가 여기에 들어와서 얼굴에 만면에 웃음을 띠고 “왔다고.” “뭐가 왔노?” 하니까 “살 축복이 왔다고.” “거기 더워서 일을 못한다고”하니까 “더워서 일 못할 만큼 더우니까 배부른 사람은 안 오지, 경쟁자는 없고, 그다음에 그곳이 낮에는 일을 절대 못한다고 하니까 그것도 좋은 게 낮에 일 못하면 밤은 시간 아닙니까? 밤에 일하고 낮에 자면 되는 거죠. 그리고 재료는 돌, 자갈이 있어야 건축 재료가 되는데 흔해 빠진 것이 돌, 자갈이야. 모래하고 돌들이 어디 가도 있기 때문에 건축 재료가 천지에 가득하다고, 그리고 물은 요단강을 건너면 물이 있으니 미리 길어오면 되는 것이지요. 와따라고. 내가 해보겠다고.” 그래 자기가 생각한 결과 정주영씨에게 일을 시켰더니만 손대는 것마다 성공을 해서 우리나라가 해외에 건축 수출을 이렇게 많이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내가 조 목사 불러서 저녁 먹자고 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 전체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못 한다. 안 된다 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로 나가 살게 된다면 우리 한국이 정말 잘 살게 될 것인데 그런 것을 가르칠 사람이 교인들이 돼야지 일반 사람들 힘으로는 안 될 것이니까 조 목사님이 좀 연구를 해가지고서 우리 국민 전체가 다 용기백배하고 일어날 수 있는 그러한 일을 생각해보라고. 내가 그래서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나도 사람 마음에 흥분을 주는 것은 농촌도 잘 살 수 있다. 우리는 하면 된다.” 그렇게 밀고 나가야 됩니다. 그러니까 “기독교회에서 그런 것 잘할 것 같으니까 신중하게 진실하게 사태를 보고해달라고.” 그랬는데 김현옥 시장이 날보고 며칠 후에 부르더니만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대통령에게 가서 무슨 말을 했기에 가만있는 사람을 충원해가지고 모조리 무슨 일을 만드는데 헌 마을인지 새마을인지 그런 걸 연구를 하라고 하는데 내가 그런 걸 알 턱이 무엇이냔 말이지.” 내가 그래서 “성내지 마십시오. 우리 교회 나오면 헌 마을은 새마을이 되고 좋아지는 것이니까.” 그래서 새마을 운동이 그때 생겨난 것입니다. 똑같은 것을 보아도 하나님 눈으로 본 것 하고 인간의 눈으로 보는 것하고 보는 것이 틀려요. 열두 정탐꾼을 보냈는데 열 명은 자기 인간을 의지해서 보았고, 두 명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의지해서 보았기 때문에 그 바라본 상황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어떤 눈으로 보는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말하기를 “두려움의 안경을 끼고 바라보면 세상만사가 걱정과 염려로 가득 차 보이고 믿음의 안경을 끼고 바라보면 하나님의 손길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또 같은 상황을 봐도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과 평가가 달라지데 열두 명의 정탐꾼은 똑같은 가나안 땅을 보았지만, 그들이 내린 평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열 명은 인간적인 눈으로만 보았기 때문에 “우리가 정탐한 땅은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우리는 메뚜기와 같다”라고 악평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보았기 때문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눈으로 본 것을 보고 했습니다.

 민수기 14장 8절입니다.  ‘야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완전히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택 


 보고를 받은 제3자 백성들은 모두 다 겁을 집어먹고 애굽으로 뒤돌아 가자고 했습니다. 2인의 긍정적인 보고는 반대했습니다. 민수기 14장 1절로 4절은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야훼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큰일 났습니다. 완전히 반역을 도모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모세는 10인의 보고에 대노했습니다. 그리고 벌을 내려서 그들을 죽였습니다. 10인의 스파이들이 보고, 듣고,  뒤돌아 애굽으로 가자고 한 사람들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죽고 후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침공하는 것을 허락해주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후손들을 인도하여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어찌해도 그 사람은 절망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생각을 긍정적으로 보면 “좋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나는 힘이 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면을 중점적인 것으로 하나님과 함께 사물을 보면 좋습니다. 우리는 메뚜기 같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메뚜기가 무얼 합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고 평할 때는 “심히 좋았더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엿새 만에 세상을 다 만드시고 이레째 마지막 여러분과 저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짓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보기에 말할 수 없이 좋아서 심히 좋다.’ 여러분을 보고 한 말입니다. ‘심히 좋았다.’ 그런데 그 말을 받아서 메뚜기다. 메뚜기. 그러면 하나님이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좋을 리가 있겠습니까?

 오늘날 메뚜기의 자화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메뚜기로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그 지으신 것들을 보며 처음 말씀하신 것이 바로 감탄사였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고 빛을 보시고 “보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늘과 바다를 지으시고, 지으신 후에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섯째 날에는 인간을 지으셨고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나님이 이 세상을 아주 좋게 만드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인간은 하나님께서 너무 좋다고 감탄사를 말할 만큼 귀한 존재입니다.

 나는 좋은 존재입니다. 메뚜기라고 절대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좋다고 감탄한 사람이 바로 여러분인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열등감과 비교의식에 시달리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3.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광야에서 살 것인가? 가나안 땅을 점령할 것인가? 우리 개인의 삶 속에 지금이 광야라고 하면 광야에 그냥 묻혀서 살 것인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갈 것인가? 결정을 내려야 되는 것입니다. 가슴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느냐?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대답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하나님은 능히 하겠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표가 뚜렷한 꿈이 있는가? 여호수아와 갈렙을 보면 갈렙은 꿈이 있어요.

 여호수아 14장 7절로 12절을 보면 ‘내 나이 사십 세에 야훼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야훼께 충성하였으므로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야훼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이제 보소서 야훼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야훼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야훼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40대 여호수아와 갈렙은 정탐하는 열두 명 중에 두 사람으로 갔었습니다. 부정적인 보고를 한 사람은 벌을 받아 죽고, 그 자손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이제 40년이 지나고 난 다음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따라서 쳐들어가게 됐는데, 갈렙이 한 말 보십시오. “그때에 내가 40세였는데 지금은 80세가 넘어 84살이라고. 그래도 끄떡없습니다. 내가 그때나 지금이나 걸음걸이도 비틀거리지 않고 힘도 들지 않고 마음에 용기도 있고 하니 나에게 그 땅을 점령하는 선봉장이 되게 해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자기를 평가할 때, 잘 평가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도 나이가 81살이지만 나이 81살인 지금이나 신학교를 졸업하고 개척교회 나올 때나 같아요. 하나님께서 시키는 일이 있으면 그 일을 할 수 있는 자가 자기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85세나 되어서도 그는 지치지 않고 피곤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4절에 ‘또 야훼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마음에 소원은 즉 마음의 꿈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면 마음의 꿈을 이루어주실 것이라고. 시편 145편 18절로 19절에 ‘야훼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소원은 즉 꿈입니다. 꿈이 쉬운 말로 말하면 소원인데 왜 꿈이라는 말을 쓰느냐면 소원이란 것은 그냥 마음에 느낌이지만 꿈이라는 것은 그릇입니다. 이 물건을 담으려면 그릇을 가지고 가야 하지 않습니까? 꿈이 있느냐? 꿈은 하나님이 담을 그릇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래. 그 꿈을 가져오너라. 내가 채워주마.” 그냥 자꾸 달라고 하면 “그릇도 안 가져오고 무엇을 어떻게 채우란 말인가?” 그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 같이 기도하고 세상을 살아갈 동안에 마음에 소원이 있으면 소원으로써 두지 말고 그것이 이루어진 모습을 꿈꾸고 그 꿈꾸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나는 이런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이 꿈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시옵소서.”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꿈에 응답해 주시고 믿음으로 기적이 일어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창조적인 선언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꿈을 가지면 보통 때는 아무 말도 안 한 것 같아도 창조적인 선언을 하면 굉장히 좋습니다. “잠이 잘 오게 된다. 잠이 잘 오게 된다. 나는 잠이 잘 오게 된다. 나는 집을 짓게 된다. 짓게 된다. 짓게 되고말고.” 창조적인 짧은 선언을 하는데 그 선언이 큰 역사를 이루는 기반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왕 같은 삶을 삽니다. 만유의 주이신 하나님 아버지가 되시고 나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어떤 형편에 있든지 두려워하지 않고 평안을 누리며 삽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거지같이 삽니다. 늘 부족하고, 내일은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고 불안해하며 두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자기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불평하다 죽을 것인가? 하나님을 믿고 가나안으로 진격할 것인가? 그 선택이 여러분의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자기의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을 의지하고 보면 못할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으로 선택을 하면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스스로를 묶습니다. 사람은 생각으로 스스로를 묶는 것입니다. 영국의 심리학자 하드필드는, 연구에 따르면 자기 스스로에게 ‘넌 틀렸어. 이젠 끝났어’라고 말하며 좌절할 때, 자기 능력의 30%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기 스스로에게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하며 자신감을 가질 때에는 자기 능력의 150%까지 발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150%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할 수 없다, 안 된다’는 생각에 묶여서는 안 됩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하나님이 같이 계신다.’ 그 긍정적인 생각으로 자기를 묶어놓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부정적인 생각부터 제거해야 되는 것입니다. 미국 포터워스 암 연구센터의 칼 사이몬 박사는 말기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좋은 세포가 암 세포를 먹어 치우는 상상과 병이 나아서 가정으로 돌아가는 생활하는 모습을 상상하도록 시켰습니다. 암이 걸려서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그들에게 강제로 상상을 통해서, 생각을 통해서 치료해 보는 것입니다.

 4차원의 영성 속에 생각을 부정적으로 하지 말라고, 그 생각 속에 자기 속에 있는 좋은 세포가 암세포를 하나씩 잡아먹는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기도를 하면 더 잡아먹는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치료할 수 없는 단계에 들은 암이 10명 중에 2명은 깨끗이 나아 버렸어요. 그리고 억지로라도 꿈을 꾸라고, 아침부터 내가 온전히 암에서 고침 받은 것을 꿈꾸라고 그렇게 했는데 그 사람은 2배나 길게 살았어요. 그러므로 그 사이몬 박사는 ‘암을 물리치려면 먼저 부정적인 생각부터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이미 치료받은 자기 모습을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너는 나음을 입었다 저는 채찍에 맞음으로 너는 나음을 입었다’ 자꾸 외치면 여러분 속에 있는 암을 잡아먹는 좋은 세포가 암을 잡아먹어요. 밑져야 본전인데 해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안 믿는 사람은 긍정적인 생각을 살리기 위해서 그렇게 하지만 우리 믿는 사람은 긍정적인 생각이 아니라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당신의 살을 떼어주고 피를 쏟아서 값을 지불했기 때문에 당당하게 그렇게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결론


 예수님은 광야 같은 세상에, 이 세상을 정복하고 속량하시기 위하여 인생의 모양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으로 우리들에게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허락해 주셨는데, 예수님의 “다 이루었다” 마지막 외친 말씀을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몸 찢고 피를 흘려서 값 주고 사준 은혜를 여러분은 감사히 받아들이고 입으로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죄가 용서받고, 하나님이 의인으로 품어주는 것을 꿈꾸고 생각하면, 병들어서 죽어가는 사람,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 병을 갚아버린 거예요. 그다음 예수님께서 저주를 받아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저주를 청산하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허락해 주었으니 무슨 일을 하든지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저주에서 해방되었다. 잘 된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그렇게 일을 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도와주실 것인데 왜 그렇게 안 하나요? 예수님이, 죽지 않을 분이 죽었습니다. 죄가 없는 사람은 죽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은 것은 우리 죄를 대신해서 사망과 음부 속에 들어갔으나 부활해서 승천함으로 사망과 음부를 멸해버리고, 우리는 죽음 없이 하나님 따라 천국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죽어도 평안하게 죽습니다. 아인슈타인 박사의 친구인데 아주 머리가 좋은 사람이나 유머가 심한 사람이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이제 죽게 되었는데 혼수상태에 빠져서 그 주위에 가족들이 둘러 있는데 잠시 동안 정신이 돌아오니까 주위를 살피더니만 자기 여동생을 보고 “야, 죽는 것 별로 어렵지 않다. 굉장히 평안하다. 간다.” 그리고 가버렸어요. 죽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 그렇게 해놨으므로 편안하게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표 있는 꿈을 반드시 꾸어야 되는 것입니다. 목표 있는 꿈을 어떻게 꾸느냐? 최근 신문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날씬한 연예인 사진을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설정해 두면 다이어트에 효과가 굉장히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진을 자주 바라볼수록 효과가 더 커진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사진을 바라보기만 해도 다이어트가 되는 이유는 사람은 목표를 바라볼 때 동기 부여가 되고 그래야 행동으로 옮기고 마는 것입니다. 자기가 되고 싶은 사람 사진을 찍어 놓고 ‘이 사람은 내가 모범으로 할 사람이라’고 그렇게 마음에 동의하면서 바라보면 그것이 바라봄의 법칙에 의해서 그 사람에게 옮겨 들어서 똑같이 다이어트가 되고 날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진을 바라보기만 해도 다이어트가 되는 이유는 사람은 목표를 바라볼 때, 동기부여가 되고 크게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목표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꿈과 목표가 있을 때, 계속 도전하고 성취하는 것입니다. 꿈이 있으면 꿈이 믿음을 생기게 하고 믿음이 또 꿈이 생기게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 19절은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꿈을 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자손에 대한 꿈을 품었습니다. 그 마음에 꿈이 있었기 때문에 25년이라는 세월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믿음을 붙잡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꿈과 믿음은 함께 갑니다. 꿈을 품은 사람은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그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굳건해 지는 것입니다.

 말의 중요성을 또 알아야 돼요. 말의 중요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끊임없이 강조되어 왔습니다. ‘고기는 낚시 바늘로 잡고 사람은 말로써 잡는다’ 속담이 있습니다. ‘바다는 사람의 손에 의해 세계는 사람의 입술에 의해 지배된다’고 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말 한마디 때문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칭찬이 한마디가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입술을 칭찬에, 격려하는 데 사용하면 누군가 그 칭찬과 격려를 들은 사람은 인생이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격려해주고 칭찬해주는 말이 굉장히 효과를 발생하는 것입니다.

 저도 주일 예배를 필하고 난 다음에 전화를 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주일 예배 은혜를 받았습니다. 참 은혜를 받고 기쁩니다.” 그러면 “뭘요, 별로 잘하지도 못했는데......” 그러면서도 내 속으로는 ‘두고 봐라. 더 잘해야 되겠다. 정말 은혜받도록 다음 주일을 만들어야겠다.’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았다는 것은 굉장한 축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절대로 남에게 칭찬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감탄을 하셨는데 우리가 우리를 보고 감탄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기를 보고 “메뚜기 같은 녀석, 네가 뭘 하겠느냐?” 그러면 뭐,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하나님은 우리를 만들어 놓으시고 만드신 것 보고 참 좋다”  조용기 이름은 쓰기가 어려우니까 이름을 하나 지어서 김상아로 하나 지으십시다. “김상아, 내가 너를 만들어놓고 보니까 참 잘 만들었다. 네가 보통 놈이 아니다.” “아이, 하나님 뭘 그러십니까?” “무슨 소리, 내가 지어놓고 보니 그렇게 좋은데 네가 나쁠 턱이 있느냐?” 나쁠 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러분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고 더러움을 씻음 받고 정의롭고 깨끗한 사람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고 병은 암을 위주로 해서 모든 다른 병들도 다 좋은 세포가 잡아먹어 버리기를 원하는 것이죠. 여러분이 긍정적인 말을 하고 기도를 할 때, 칭찬하고 용기를 주는 말을 할 때, 이 좋은 세포들이 일어나서 여러분을 위해서 싸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환경도 여러분 무엇을 하든지 형통하게 하기를 하나님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모시는데 예수님이 저주를 다 담당해버리기 때문에 예수님을 모신 가슴에 저주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축복이 있음 따름인 것입니다. 잘 된다는 것입니다. 형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나는 형통하게 된다. 잘 된다.” 그렇게 말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학자들이 중동에 갔다 오면서 “못 해요. 너무 더워요. 사람 잡아요. 안 됩니다.” 그러기보다도 공부는 별로 하지 못하고 잘나지 못했을지라도 “야, 사람 팔자 고칠 때가 왔구나. 기회를 놓으면 안 되겠다. 우리 한국 사람이 들어가면 저런 것 다 문제없이 해낸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긍정적인 적극적인 생각을 살리면 여러분의 미래는 여러분의 생각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메뚜기가 되지 말고 하나님이 지으신 보기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광야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사랑의 주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이 믿음의 눈으로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믿음의 입술로 절대 긍정을 시인하여, 날마다 승리하며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