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능력/이영훈목사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린도전서 1장 23-24절


 전 세계 어느 교회를 가도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요, 구원의 상징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심으로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우리 신앙의 출발점이 되고, 우리의 신앙의 목표가 되고, 우리의 신앙의 전부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 만난 이후에 한평생 예수님의 십자가만 자랑하며 살았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2절에 그는 고백하기를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여러분 삶의 유일한 자랑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구원의 능력

 예수님의 십자가는 첫째로, 우리에게 구원의 능력이 됩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우리가 인간의 노력으로, 또 많은 수행을 해서, 업적을 남겨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단순하고 분명하고 정확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 이것이 우리의 복음 전부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셨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를 사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짓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라고 하는 큰 장벽에 가로막히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 모든 인류가 죄 가운데 거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 죽어가는 절망적인 존재가 된 것입니다.
 누구도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인간이 죄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는 누군가 죄를 지었을 때 그가 가장 아끼는 짐승이 대신 피를 흘려 죽어야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그의 수치를 가려주시느라고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린 그 피의 제사가 시초가 되어서, 모든 사람이 죄를 짓기만 하면 그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짐승을 가지고 나와 피를 흘려 죽게 하고 일시적인 죄 사함을 받았던 것입니다.  

 레위기 17장 11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히브리서 9장 22절입니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그래서 죄를 짓기만 하면 그 주인의 죄 때문에 주인이 가장 사랑하는 그 집의 짐승들이 피를 흘려 죽어야만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짐승들이 피를 흘렸는지 모릅니다.  
 요즘 많은 가정에서 강아지를 키우고 고양이를 키우는데 주인을 대신하여 강아지, 고양이가 대신 죽는다고 하면 우리나라의 강아지, 고양이, 아마 씨가 말라버릴 것입니다. 또 실제로 주인을 대신해서 죽는다고 할 때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무너지겠습니까? “아! 내 죄 때문에 나의 사랑하는 동물들이 죽는구나. 다시는 죄짓지 말아야지.” 고개를 저으면서 되돌아섰다가 또 죄를 짓고, 또 죄를 짓고, 또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죄 없으신 예수님이 그 모든 구약의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죄 사함을 완전히 해결하기 위해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 침례 요한이 말합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12절입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무조건 죄를 용서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어떡하든지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원해서 구약에는 짐승이 대신 피를 흘려 죽게 하셨고, 그다음 죄 없으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모든 구약의 제사를 완성하여 영원한 제사로 하나님 앞에 피를 흘려 드린 바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신비요, 은혜요, 축복입니다. 이제 더 이상 죄 사함받기 위해서 짐승의 피를 흘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 피 흘리며 돌아가실 때 우리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가 다 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의 부활의 능력을 힘입을 때 죄 사함 받게 되고 하나님 앞에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구원의 능력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이 선물로 값없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은 말씀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우리가 구원을 받습니다. 내가 착한 일을 많이 하고, 헌금을 많이 하고, 봉사를 많이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구원받은 후에 주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나와 예배드리고, 봉사하고, 주 앞에 귀한 예물을 드리며 섬기는 것이지, 그것이 구원의 전제 조건이 될 수가 없습니다. 구원받는 데는 우리의 믿음만 필요한 것입니다.
 “날 위해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 내가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합니다. 믿습니다!” 그 구원의 사건이 우리의 일생을 바꾸어놓는 것입니다.

 인도의 부유한 시크족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무엇 하나 부러움이 없이 자랐던 선다 싱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 집에서 버림을 받았습니다. 집에서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집에서 쫓겨나온 그는 16살 때부터 맨발로 온 인도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를 맨발의 성자로 불리게 됐는데, 불교 국가인 티벳에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간절한 열망이 있어서 복음을 전하러 갔다가 그 후로 그가 어찌 되었는지, 히말라야를 넘은 후에 소식이 끊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남긴 말입니다.
 “어느 날 티벳에서 쓰러져 죽는다고 해도 저는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날을 기쁨으로 맞이할 것입니다. 저는 해마다 티벳으로 들어갑니다. 제 생명이 그곳에서 끝났다는 소식을 어느 해에 들으시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선다가 죽었구나’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선다가 천국에 가서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구나’라고 생각해주십시오.”  
 그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었지만, 예수님을 믿는 그것 때문에 모든 것 다 포기하고 한평생 예수님의 십자가만 자랑하며 살다가, 그는 어느 날 어디서인지 모르게 복음 전하다가 마지막 그의 삶을 마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에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 이 십자가의 능력을 체험해서 우리의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구원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죽음 이후엔 두 가지 길만이 열립니다. 한 길은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가는 길이요, 다른 한 길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살다가 영원한 지옥 형벌에 떨어지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의 호흡을 연장시켜 주실 때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지혜

 둘째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 인간의 지혜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실 때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깨달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십자가에 대해서 그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깨달아 알지 못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4절에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만이 그 의미를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3절에 보면 이와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유대인들에게는 십자가가 거리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구약의 율법에서 저주를 받은 자가 나무에 달린다고 했기 때문에 그 십자가가 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그 마음에 불편함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헬라인들에게는 사형 틀이었기 때문에 십자가는 수치요, 부끄러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의 놀라운 역사가 우리게 이뤄지게 되었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귀한 뜻을 깨달아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나면 날마다 주님 은혜 가운데 십자가 은혜에 더욱 감사하고 또 감격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저는 원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매일같이 가정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성경에 있는 내용을 모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십자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밤낮 들었습니다. 그저 듣고 아는 지식으로 십자가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순복음교회에 와서 1966년 2월 달에 성령 체험하고 나니까 그 순간 십자가가 내 마음 속에 하나님의 은혜로 다가왔습니다. 기도만 하면 눈물이 나고 주님의 십자가가 떠올랐습니다. 그 전엔 십자가 때문에 울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는데’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성령을 받고나니까 진짜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내 마음에 걸어 들어오셨어요. 얼마나 울었는지. 울고, 또 울고, 또 울었습니다. 기도만 하면 주님의 십자가가 떠올랐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구나. 얼마나 울었는지. 그 당시 서대문 시절의 우리 순복음교회는 통성기도 하면 그 통성기도가 통곡으로 이어지고, 주님을 향한 간절한 부르짖음으로 이어져서 종을 쳐도 기도가 그치질 않았습니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성령 받고 나니까 평생 어디서 그렇게 눈물이 쌓였다 나오는지, 기도만 하면 통곡과 같은 눈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억울하고 원통해서 우는 것이 아니라 너무 감사해서, 너무 기뻐서, 너무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고마워서. 그저 그저 눈물만 흘렀습니다.

 요즘 우리가 생활이 풍족해지고 큰 어려움이 없으니까 옛날 같은 그 간절함이 사라졌습니다. 부르짖는 기도가 사라졌습니다. 눈물의 기도가 사라졌습니다. 한번 눈물을 흘리려면 온몸을 비틀고 침을 발라도 잘 눈물이 나지 않아요. 옛날에 그냥 기도만 하면 통곡 같은 눈물이 쏟아져 나왔던 그때가 있었는데. 아마 서대문 시절부터 신앙생활을 하셨던 분은 ‘나도 옛날에 한때 저랬지’ 생각하실 것입니다. 십자가의 신앙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눈물의 기도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첫 사랑의 감격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날 부르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알아서 하나님의 영광 위해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장 30절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골로새서 2장 3절에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라고 말합니다.
 개혁주의 신학자, 설교자인 싱클레어 퍼거슨의 말씀입니다.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를 전부 담당하셨다는 사실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드러난다! 처음에는 비극 같았던 예수님의 죽음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열쇠요, 그분의 부활을 위한 전주곡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가 단번에 영원히 용서되었다는 것을 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분의 임재를 믿고 그분과 교제하며 살 수 있으며, 예수님이 그분의 영을 보내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지혜 안에서 성장하고 예수님의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이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 마음 가운데 충만히 임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전에는 성경을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알지를 못합니다. 대부분 처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마태복음 1장에서 걸립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태복음 1장 1절)는 괜찮은데, 그 다음 2절부터 걸립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낳고, 낳고, 낳고...”

 무슨 성경이 이렇게 어렵냐? 1장을 못 넘어가고 ‘낳고, 낳고...’에서 그치는 거예요. 그런데 십자가 은혜를 체험하고 나면 하나님께서 영의 눈을 열어주셔서 말씀 읽을 때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말씀을 읽으면 읽을수록 또 은혜가 되고, 또 은혜가 되고, 또 은혜가 되고, 주님의 뜻을 깨달아 알게 되고, 한없는 영광 위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주님의 자녀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2절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성령으로 충만 받아서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그 뜻대로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우리의 자랑

 셋째로, 우리의 자랑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 한평생 우리의 자랑은 첫째도 예수님, 둘째도 예수님, 마지막도 예수님의 되어야 되고, 예수님의 십자가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 사도 바울의 고백이 나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내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자랑할 것이 많았던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그는 훌륭한 가문을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 혈통을 자랑할 수 있었고, 또 그의 학벌을 자랑할 수 있었고, 자랑할 것이 많이 있었는데, 예수 믿고 난 다음 모든 것을 다 내버리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며 살았습니다.

 빌립보서 3장 7절, 8절에 고백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우리가 지금까지 무엇을 자랑하며 살았는지. 주님,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자신이 가진 것들을 너무 자랑하며 살았습니다! 많이 공부한 사람은 그의 공부한 그 학문적인 업적을 자랑하고, 돈을 많이 번 사람은 그 가진 돈을 자랑하고, 권력의 자리에 앉은 사람은 그 권력을 자랑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 자랑하는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내가 가진 것, 내가 누리고 있는 것, 그런 것들은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자랑을 하는데 우리가 얼마나 예수님을 자랑하며 살았는지 우리 자신을 보면 부끄럽기 한이 없습니다.

 제가 아는 어르신은 저를 만날 때마다 옛 이야기를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하는데 들었던 얘기를 또 하시고, 또 하시고, 또 하세요. 그런데 그게 제가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건 자랑거리가 아닌데 본인은 자랑으로 생각하세요. 조선 총독부 시절에 그 국장급 높은 위치에 있었는데, 그때 자기 밑에 사람들이 다 줄서서 인사했다고... 그 이야기를 한 두 시간씩 하세요. 가만 생각해보니까 그게 지금 오히려 사람들에게 비난받을 내용인데, 본인은 “내가 이런 권력의 높은 위치에 있었다. 그때 내 밑에 있었던 사람들이 나중에 독립되고, 해방되고 난 다음에 뭐 어디 장관도 되고 국회의원도 되고...” 자기 얘기를 자꾸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그분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 예수님을 자랑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옛날 자랑만 하다가 그냥 세상을 떠나셨어요. 여러분, 여러분의 자랑거리가 예수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여, 나의 고집과 교만과 나의 자랑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여주옵소서! 뿐만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는 상처, 미움, 원망, 불평들도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주님만 위하여 살게 하여주시옵소서! 주님만 높이고, 주님만 자랑하고, 주님 위해 살다가, 주님께서 “오라!” 부르실 때 기쁨으로 우리 주님을 맞이할 수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만을 자랑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기를 원하며,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계시는 김정화 권사님. 『내가 급하다』라고 하는 책을 내셨어요. 본인은 교사, 남편은 의사로서 평안할 삶을 살 수 있었지만 “주님, 십자가 은혜에 너무너무 감사해서 한평생 복음 증거 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하고 지금도 시간과 물질을 주님 앞에 드려 헌신하고 계신 주님의 귀한 일꾼입니다.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 했지만 그냥 본인 말 그대로 맹숭맹숭한 신앙이었습니다. 교회를 왔다 갔다 하고, 성경도 알고 찬송도 알고 다 아는데 은혜 감동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학교 교사로 나가서 가르치는데 한 선생님이 열심히 학생들에게 전도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물어보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전도할 수 있습니까, 선생님?” 그러니까 본인에게 그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김 선생님, 혹시 성령 세례 받았습니까? 아, 이 말 듣고 본인이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내가 성령 세례를 못 받아서 그렇구나.’ 매일같이 성경 보고 찬송 부르고 기도하면서 성령을 받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또 사모하고, 사모했습니다. 8일째 되던 날 교사 기도회 때, 성령 세례를 받았습니다. 성령 세례를 받았는데 그때에 3년 동안 무릎이 아팠는데 무릎 통증까지 나았어요.

 2002년 의사 남편의 고향인 경북 의성에 병원을 개원하게 되어서 의성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 가서 ‘내가 이 지역 복음화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되겠다.’며 겨자씨 선교회를 만들어서 전도지를 제작하여 보급하고, 전도자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2011년 건강이 악화돼서 대상포진으로 3년 동안 고생하게 되었는데, 그때 아픈 가운데 본인이 자신의 그 인간적인 열심만을 갖고 주님을 섬겼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 와서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나의 실체, 즉 철저히 내가 주인으로 살아온 지난날의 열심 있는 한 율법주의자를 보았다! 유일한 처방은 그 죄인이 죽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으실 때 나도 함께 죽었다는 것이 나에게는 복음 중의 복음이었다! 내가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었다는 것이 믿어지자, 변화가 일어났다. 예수님이 우리 가정으로 걸어 들어오셨다! 복음을 만나고 나니 가정이 회복되는 것이 당연했다!”

 겨자씨 선교회를 통해서 100명이 넘는 전도인을 훈련시키고, 매달 학생들에게 250만원씩 장학금을 내놓고, 또 불우이웃을 돕는데 병원 수익의 절반을 불우 이웃을 돕는데 헌신하고. 온 지역사회에 존경받고 사랑받는 부부가 되었습니다. 그 책 끝에 이와 같이 말씀이 소개되어있습니다.
 “내 나이 또래 할머니들의 특징은 휴대폰에 꼭 손주 사진을 넣고 다닌다는 것이다. 손주가 너무 예뻐서 자랑하고 싶어서 야단이다. 전도는 왜 손주 자랑하듯 하지 못하는 걸까? 손주처럼 내 마음에 자리 잡지 못해서다. 당신 안에 계신 예수님을 교리로만 알지 말고, 진짜 알아야 한다. 체험해야 한다. 같이 살아야 한다. 아니 그분만이 사셔야 한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을 자랑하고 싶어서 입만 뻥긋해도 예수님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오늘부터 핸드폰 갖고 “우리 애 예쁘죠, 예쁘죠?”만 하지 말고 여러분 마음속의 예수님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만난 예수님, 여러분에게 은혜 주신 예수님, 여러분의 병을 고쳐주시고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가정 위에 평안함과 축복을 주신 예수님을 자랑하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 예수님의 놀라운 사역이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한 평생 자랑이 예수님의 십자가가 되어야 합니다. 내 개인을 자랑하지 말고, 내가 갖고 있는 거 자랑하지 말고, 나와 함께 계시고 나의 주인 되시고 나의 일생을 인도해 주실 예수님을 자랑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일생이, 날 위해 십자가에서 몸 버려,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자랑하고, 예수님을 섬기고, 예수님 뜻을 이 땅에 실천하며 살아가는 일생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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