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신앙 |
장로교에서 순복음으로 1964년 이원근 장로는 가족들과 함께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 45번지로 이사했다. 장로교 명문가에서 자란 이원근 장로는 북한에서의 옥고를 치른 후유증으로 다리가 불편해 집에서부터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순복음중앙교회(현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전신)로 새벽예배를 다니게 됐다. 약 3개월 후 가족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이원근 장로는 “이번 주부터 우리 가족은 모두 순복음교회에 출석한다. 그 교회에 젊은 목사님이 매우 성령이 충만하고 말씀이 살아있어 은혜를 많이 체험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1964년 4월 이원근 장로와 가족들은 순복음교회에 출석하게 됐다. 정통 신학자이자 개척 목회자
이영훈 목사는 영산출판사(현 서울말씀사)의 편집부장, 순복음뉴스(현 순복음가족신문)의 초대 편집장을 역임했다. 1978년 순복음교육연구소(현 국제신학연구원)의 창립멤버로서 신학연구실장을 거쳐 1981년 순복음교육연구소 제2대 소장에 취임했다. 1982년 이영훈 목사는 안수를 받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워싱톤순복음제일교회의 요청을 받아 공부와 사역을 병행하며 1985년 2월 워싱톤순복음제일교회에 부임해 6년 만에 교회 건축을 이뤘다. 성전 완공 후 1992년 5월 조용기 목사의 부름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 국제신학연구원 원장으로 부임했다. 이때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신앙과 신학’ 1,2권을 편찬하는 등 순복음 신학의 정립에 주력해 예장통합 측과 10년간 불거진 이단 시비를 잠재우는데 일조했다. 이영훈 목사는 2000년 동경순복음교회 담임으로 부임했다. 당시 물가 높기로 유명한 일본의 수도에서 기도와 믿음의 역사로 매일 새벽제단을 쌓았고 1년 반 후 약 200억 규모의 8층 빌딩을 동경 한복판에 매입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어 조용기 목사의 뜻에 따라 교무부목사에 임명돼 우리 교회를 섬기다가 2005년 미국 LA 나성순복음교회로 파송됐다. 이영훈 목사는 나성순복음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던 중 2006년 우리 교회 운영위원회와 당회 2차 투표를 거쳐 2대 담임목사로 선출되어 귀국 후 담임목사 서리로 사역했다. 이후 2007년 7월 공동의회를 거쳐 담임목사로 인준을 받고 2008년 5월 여의도순복음교회 제2대 담임목사로 취임했다. 이영훈 목사가 제2대 담임목사 승계와 정착과정을 순조로이 이끌어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조용기 목사의 영적 유산을 잘 계승했다는 점이다. 이영훈 목사는 누구보다도 조용기 목사의 신학과 목회 철학을 잘 알았고 국제신학연구원장 재임 중 조용기 목사의 3박자 축복과 성령운동을 신학적으로 체계화한 당사자였다. 무엇보다 조용기 목사는 영적인 아들이자 제자인 이영훈 목사가 여의도순복음교회 제2대 담임목사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영훈 목사의 신앙과 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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