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이냐 아벨이냐/이영훈목사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야훼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야훼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야훼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야훼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창세기 4장 1~8절)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 거룩한 꿈을 꿉니다.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가 희망의 70년을 바라보면서 제2의 도약을 하는 꿈을 꿉니다. 우리의 과거의 모든 잘못된 구습은 다 내던져버리고 새롭게 교회가 개혁되어서 제2의 부흥의 역사를 이룰 것을 바라봅니다.

 나아가서 우리 민족의 통일을 바라봅니다. 이 통일은 정치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북한의 체제가 다른 이 체제가 우리와 합쳐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냥 적화통일이 되면 우리는 다 순교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의 복음이 북한에 먼저 들어가서 북한 전역에 증거되고, 교회가 서고, 그러고 나서 남북이 함께 8000만 명이 예배드리는 그 날에 진정한 통일이 올 것입니다. 이 통일을 위해 우리 교회를 쓰실 것입니다. 심장병원을 완성시켜 주시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북한의 전역에 병원과 교회가 서게 되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거룩한 꿈을 가지고 우리는 나아가야 합니다.

<찬송가 490 : 주여 지난밤 내 꿈에>

(1절)

주여 지난밤 내 꿈에 뵈었으니 그 꿈 이루어주옵소서

밤과 아침에 계시로 보여주사 항상 은혜를 주옵소서

(2절)

마음 괴롭고 아파서 낙심될 때 내게 소망을 주셨으며

내가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니 앞길 환하게 보이도다

(3절)

세상 풍조는 나날이 변하여도 나는 내 믿음 지키리니

인생 살다가 죽음이 꿈같으나 오직 내 꿈은 참되리라

<후렴>

나의 놀라운 꿈 정녕 나 믿기는 장차 큰 은혜받을 표니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라

다 같이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후렴>

나의 놀라운 꿈 정녕 나 믿기는 장차 큰 은혜받을 표니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라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희망의 70주년을 바라보며 거룩한 꿈을 꿉니다. 우리 교회 제2의 도약과 부흥이 있게 하여주옵소서. 우리가 지나간 60년을 돌아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부족했던 모든 부분들, 잘못됐던 것은 주님이 다 벗어버리게 하여주시고, 이제 새로운 도약, 제2의 부흥, 영적인 성장과 놀라운 변화가 우리 교회에 임하게 하여주옵소서. 남북통일의 꿈을 꿉니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체제가 다르고, 73년 동안 헤어져 있던 우리 남한과 북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외에는 진정한 통일이 이루어질 수 없을 줄로 믿습니다. 자유민주주의 물결이 온 북한을 뒤덮고, 곳곳마다 교회가 서고, 찬양이 울려퍼질 때에, 그때 진정한 통일이 올 것을 믿사오니 주님 도우시고 함께하시고 역사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은 창세기 4장 1절로 8절의 말씀을 본문으로 해서 “가인이냐 아벨이냐?” 이와 같은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말씀의 제목을 따라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인이냐 아벨이냐?” “가인이냐 아벨이냐?”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만물의 영장으로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상을 다스리는 권한을 주셨는데,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그 놀라운 축복과 놀라운 권한을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명령을 불순종해서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그로부터 인류 역사 가운데 죄가 뿌리를 내리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축복의 동산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땅은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육신에는 질병과 사망이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1. 가인과 아벨의 제사

이 죄의 역사는 그 자녀들에게 그대로 이어져 갑니다. 오늘 특별히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중심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데,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 대해서 4장 1절 이하는 이와 같은 설명이 나옵니다.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야훼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아담과 하와가 자녀를 낳았는데, 큰아들의 이름이 가인입니다. 그 동생의 이름이 아벨입니다. 그런데 저들이 장성해서 가인은 농사하는 자가 되었고, 아벨은 양을 치는 자가 되었습니다. 때가 되어 저들이 얻은 것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가인은 자기가 농사하여 지은 곡식으로, 아벨은 양의 첫 새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립니다. 4장 3절, 4절입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야훼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야훼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아벨과 그의 제사를 받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 속에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 드리는 예배, 찬양, 기도, 헌물을 기뻐 받으시지만 먼저 우리 자신의 신앙의 모습을 받기 원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나와 예배를 드리는지 이것이 중요합니다. 예배의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 가운데 신령과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감사하며 감격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느냐 이 자세가 중요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아벨은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해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모아 가장 귀한 것, 양의 첫 새끼를 잡아 피를 흘려 그 피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먼저 그 마음을 드린 것입니다. 그 정성을 드린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올 때 주님을 향한 그 사랑과 그 믿음의 모습으로 나아와 그 정성을 주님 앞에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습관적으로, 형식적으로 나와 예배드리는 것은 참으로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건 가인의 제사와 같습니다. 가인은 형식은 갖췄습니다. 얻은 것으로 제물로 드렸지마는, 하나님 보실 때 그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그 믿음과 감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고,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일생동안 주님 앞에 예배드리는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 자세입니다.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기쁨과 감사함으로 예배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은혜를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형식적으로, 습관적으로 나와서, ‘그저 내가 직분자니까, 그저 내가 이 교회 오래된 성도니까, 주일은 지켜야지.’ 나와서 이렇게 예배드리는 그러한 모습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가인의 제사를 드리고 있지 않은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아가서, 아벨의 제사는 피의 제사였습니다. 피의 제사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부터 시작된 그러한 제사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그들이 수치를 무화과로 가렸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서 죄 없는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시고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그로부터 구약의 제사는 피의 제사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 21절에,

“야훼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히브리서 9장 22절입니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죄 없는 짐승이 우리 인간의 죄 때문에 우리를 대신해서 죽은 것입니다. 이 구약의 4000년의 피의 제사는 장차 죄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돌아가실 그 예수님의 죽음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12절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단번에 영원히 우리의 모든 죄와 질병과 가난과 저주를 다 멸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예수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기만 하면 우리에게 치료가 임합니다. 예수의 보혈의 능력을 믿고 주 앞에 나오기만 하면 우리 마음 가운데 평안함이 임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날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해서 우리를 정결케 해야 되는데, 우리가 너무나 죄 가운데 살면서 죄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잘 회개하지 않습니다. 죄로 얼룩져있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그것을 무시하고, 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우리가 귀한 신분을 만나러 갈 때는 옷도 깨끗하게, 단정하게 입고 가서 그분과 만납니다. 막 이리저리 때가 얼룩져있는 그런 옷을 입고 갈 사람이 없습니다. 깨끗한 옷을 입고, 내가 귀한 분을 만나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올 때, 예수의 보혈로 씻어서 정결케 되어 우리 주님 보시기에 부끄럼이 없는 모습으로 주님 만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에 민감해야 합니다. ‘내가 주님 앞에 나올 때 형식적으로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모습이 가인의 제사와 같지 않은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주님, 내가 죄인입니다.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주 뜻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내가 죄짓고 불의하고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거짓말하고 욕하고 남을 속이고 이러한 삶을 살았던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러면서도 회개하지 않았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는 주님의 보혈을 의지해서 주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 내 죄를 정케 하신 주, 날 오라 하신다.”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내 주의 보혈은>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

내 죄를 정케 하신 주 날 오라 하신다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십자가의 보혈로 날 씻어주소서

죄는 먼지와도 같습니다. 아침에 세수하고 나갔는데 저녁에 들어오면 내가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들이 내 몸에 붙어있기 때문에 또 세수를 하는 것처럼 우리는 날마다 예수의 보혈로 씻고, 또 씻고, 또 씻어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가 주님 앞에 정결한 모습으로 나와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가인의 분노

둘째로, 가인의 분노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 4장 5절, 6절입니다.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야훼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고, 동생의 제물만 받으신 것에 대해서 가인은 격분했습니다. 얼마나 그 마음속에 분노가 차고 넘쳤는지 얼굴 안색이 변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실, ‘왜 나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을까?’ 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반성하고 돌아봐야 될 그였는데, 거꾸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아니, 왜 내 제물은 안 받으시고, 동생의 제물은 받으셨습니까?’ 원망과 섭섭함으로 그 마음에 분노로 가득 채웠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혹시 이와 같은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은지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전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혹시 내가 가인이 아닌가? 그동안 많은 경우에 가인의 모습으로 살지 않았는가?’ 주님 앞에 기도하고 회개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내 뜻대로 안 될 때 분노하고, 내 뜻대로 안 될 때 다투고, 그리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는지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뜻이 앞서야 되는데 내 계획, 내 뜻, 내 생각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분노하고 다퉜다면, 그 순간 나는 가인이 된 것이고, 가인의 분노가 들어온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자기 자존심이 더 강하기 때문에 이런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과연 가인이 아닌가?’

저희 작은 아버님께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부산의 광안교회 담임목사님으로 30년 넘게 목회하시고 은퇴하셨습니다. 부산 지역의 동노회장도 지내시고 통합측 해외선교회장도 지내셨는데, 교회 공동의회가 끝나면 꼭 저한테 전화가 옵니다. “이 목사, 참 하나님 은혜에 감사해. 올해도 공동의회가 은혜롭게 끝났어.” 무슨 말씀인고 하니, 장로교회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장로 피택 투표를 하는데 많은 경우에 절반 이상이 떨어집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한 사람도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소망교회 김지철 목사님 말씀을 들었더니 “우리 올해 한 사람도 안 됐습니다.” 그러시더라고요. 근데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이제 장로 피택 투표를 해가지고 반이 떨어지고 반이 붙었을 경우에 두 종류의 사람이 나온다고 합니다. 떨어진 사람들 가운데 ‘내가 무엇이 부족한가? 내가 더 열심히 교회를 섬겨서 선임들에게 신임을 받아야겠다.’고 충성하시는 분들이 있고, 떨어진 그날로 집에서 가족회의를 하고 “이 교회가 나를 우습게 봤어. 야, 보따리 싸서 딴 교회 가자.” 그래서 교회를 떠나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로교회 목사님들은 공동의회할 때마다, 장로 피택 투표할 때마다 가슴이 두 근 반 세 근 반 한답니다. 우황청심환을 먹어야 한답니다. 또 떨어진 분들의 어떤 상처받고 교회 떠나는 분들은 없는가?

여러분, 그것은 그 순간 자신이 가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군데, 내가 이 교회에서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고 얼마나 많은 헌금을 드리고 우리 가족이 이 교회에 공헌한 것이 얼마나 많은데 감히 나를 떨어뜨릴 수 있냐?”고 그래서 분노해서 교회를 떠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타당한 이유를 대도 그것은 하나님 앞에 가인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가인의 길을 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화를 내는 가인을 꾸짖으셨습니다. 창세기 4장 7절입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네가 바른 일을 했다면 네가 왜 이렇게 분노하고 있고,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느냐? 죄가 너를 점령하려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여러분, 분노할 때 죄가 딱 기다렸다 우리를 쳐들어와서 점령해버리는 것입니다. 죄는 바로 내 마음의 문 앞에 와있습니다. 언제? 분노할 때. 언제? 내가 사람들한테 무시당했다고 생각할 때. “나를 무시해? 내가 누군데 내 말을 우습게 들어?” 그 순간 죄가 나를 점령하는 것입니다.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가인의 길을 가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평생 신앙생활을 한 분들이 가인의 길을 가서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를 하고, 분노하고, 교회 소란을 일으키고, 교회 분열을 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님, 제가 가인입니다. 저를 용서해주옵소서.’

주님께서 요번에 예루살렘 다녀오는 동안에 주신 강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 목사, 이 교회는 내가 세운 교회고 이 교회는 내가 영광받을 교회이니까 이후로 너는 은퇴할 때까지 이 교회 사역을 맡을 때까지 너의 흔적을 지워라. 주님의 모습만 나타내고 주님의 영광만 나타내라.’ 주님 앞에 회개 많이 했습니다. ‘주님, 제가 혹시 가인이 되어서 내가 사람들한테 무시당할 때 상처 받고 분노한 일이 있다면 용서하여 주옵소서.’

분노할 때마다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데 사람들이 나를 짓밟냐? 내가 누군데 사람들이 무시하냐?” 그 순간 나는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그 길을 가면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이 가인이 우리를 끊임없이 넘어뜨리고 또 넘어뜨리고 또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딱 깨어지고 낮아져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가인의 문제가 모세에게도 있었습니다. 모세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 중에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고 칭찬했던 모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백만이 넘는 불평분자들을 데리고 40년을 광야 길을 가서 가나안 입구까지 인도한 위대한 지도자였기 때문에 그는 “온유함이 지상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라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자나 깨나 이백만이 불평을 했습니다.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았겠습니까?

이 사람도 와서 불평하고, 저 사람도 와서 불평하고, “물이 없습니다. 고기가 없습니다. 애굽에 있을 때는 부추, 파, 마늘로 맛있게 음식을 해먹었는데 맛있게 해먹을 음식도 없고, 뭐도 없고.” 하루에도 열 번씩 열이 받아서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가나안 입구까지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 불평하니까, 물이 없다고 또 불평하니까, 그 순간 참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바위를 명하여 물을 내라 하셨는데 분노한 그가 자기 지팡이를 들어가지고 “내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 바위를 힘껏 두 번 쳤습니다. 물은 터져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사람들 앞에서 나의 영광을 가렸기 때문에 너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 한 번의 실수가 그토록 사모하고 사모했던 가나안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멀리 비스가 산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그는 세상을 떠났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 순간 그가 가인이 안 되었더라면, 한 번만 더 참았더라면, 그 이백만을 데리고 당당히 가나안에 입성했을 터인데 그 순간을 놓쳐서 그가 분노하여 하나님 앞에 이와 같은 책망을 받고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주님 앞에 이 가인을 십자가 앞에 못 박아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누구는 그런 얘기를 합니다. “자꾸 나를 분노하게 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것은 여러분을 깨어지고 낮아지게 하기 위해서 도구로 쓰시는 것입니다. 내 분노가 가라앉을 때가지 계속 이 사람이 와서, 저 사람이 와서 여러분을 한 번씩 분노하게 만들 것입니다. 여러분을 짓밟을 것입니다. 여러분 자존심도 짓밟고, 여러분 무시하고 상처를 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이 은혜 가운데 들어가면 우리는 넉넉히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면 안 됩니다.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됩니다. 여기서 분노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사랑하고 용서하며 아벨의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벤처 크리스천 처치의 칩 잉그램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존재의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하나님의 사랑이 침투하도록 내어드릴 때 분노가 머물 자리는 그만큼 줄어든다. 그 사랑이 우리의 혈관을 타고 흐르게 하면 분노는 사라지고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능력이 생긴다. 이것이야말로 분노의 가장 좋은 해독제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보혈의 능력이 우리의 혈관을 타고 들어가서 우리 삶 가운데 모든 분노와 미움과 아픔과 상처를 다 치료하고 주님의 은혜로 충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여, 우리가 오늘 이 시간 이후로부터 가인의 길을 가지 않게 하시고 아벨의 길을 가게 하여주시옵소서.”


3. 죄와 은혜

가인의 길을 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오늘 죄와 은혜에 대해서 마지막 세 번째 부분을 말씀드립니다.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하나님에 대한 분노가 동생에게 쏟아졌습니다. “하나님, 내가 장남인데, 어떻게 나를 인정하지 않고 동생을 인정합니까? 내가 부모님 앞에 얼굴을 들지 못하겠습니다. 나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나를 장남으로 인정하겠습니까?” ‘저 녀석은 뭐가 잘났다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나?’ 들에 불러내서 돌로 쳐 죽입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동생을 분노로 인해서 돌로 쳐 죽인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의 역사입니다. ‘아, 그것은 가인의 이야기라고요?’ 아닙니다. 여러분 마음속에는 다 가인이 있습니다. 제 마음 속에도 가인이 있습니다. 분노와 충동을 절제하지 못하면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사회가 가인으로 뒤덮여 있어서 얼마나 많은 분노, 충동 조절하지 못해서 사건들이 날마다 벌어지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 교회부터 이런 분노가 사라져야 합니다. 미움이 사라져야 합니다. 우리 마음의 상처가 사라져야 합니다. 사랑과 용서가 넘쳐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가 없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가인을 뽑아내지 않으면 우리 교회의 미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부터 우리 마음속에 있는 가인을 제거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부터, 여기 있는 모든 여러분들이 가인을 제거하면 우리 교회에 미래가 있습니다.

가인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4장 12절입니다.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농부인 가인인데, 땅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무엇을 해도 곡식을 거둬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제부터 외롭게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그러한 노숙자의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회개하지 않고 돌아서지 않으면, 회개하지 않고 잘못된 길을 가면, 우리는 가인처럼 외롭게, 쓸쓸하게 고통스러운 그러한 방랑자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주님, 우리를 치료하시고 고쳐주셔서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게 하여주시고 주님의 기뻐하시는 길을 가게 하여주옵소서.”

우리가 늘 말씀으로 새로워져야 하고, 성령으로 충만함 받아야 합니다. 시편 1장 1절로 2절은 말씀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야훼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말씀의 인도함을 따라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자신 속에 있는 가인을 십자가에 못 박고, 말씀으로 내가 늘 새로워지고 변화되어 영적으로 성장하여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다 부끄러운 죄인들입니다. 주님 앞에 볼 때, 누구나 할 것 없이 다 죄인입니다. 잘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할 때, 주님 앞에 눈물로 회개하며 돌아 나올 때, 주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놀라운 일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은 1903년 원산에서 일어난 하디 선교사님의 회개운동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하디 선교사는 캐나다의 명문대학인 토론토 대학의 의과대학을 나온 의사였습니다. 의사이며 선교사입니다. 항상 우월감을 가졌습니다. ‘내가 저 배우지도 못하고 지지리도 못사는 저 조선 땅에 가서 저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복음을 전한다!’ 그런 우월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와서 선교를 하는데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나는 3년 동안 강원도에 교회가 처음 세워진 곳에서 애써 일하였으나 선교 사역에 실패하였다. 이 실패감은 나에게 헤아릴 수 없는 타격을 주었고 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기진맥진의 상태에 이르렀다.”

와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줘도 열매가 나타나지 않으니까 낙심해서 ‘이제 내가 선교를 접어야겠다.’ 하던 그때에, 1903년 8월 원산에서 중국에서 오신 화이트 선교사님과 함께 선교사님들이 모여서 기도회를 갖습니다. 기도회를 갖는데, 성령체험을 합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십니다.

“성령께서 내게 임하시어 첫 번째 명하신 것은 선교사 생활의 대부분을 할애했던 사람들 앞에서 내가 실패하였다는 사실과 실패한 원인을 밝히라는 것이었다!”

죄의 고백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님들 앞에 자기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내가 교만했습니다. 내가 우월감을 가지고 한국 사람들을 우습게 보고 깔보고 늘 내가 저들을 도와준다고 하는 그러한 생각 속에서 내 자존심을 세워 사역을 했기 때문에 선교사역에 실패한 것입니다.” 그가 눈물로 회개할 때, 거기 있는 선교사님들이 다 성령의 감동을 받고 눈물로 회개하며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교회에 나가서 성도들 앞에 자기의 죄를 고백합니다. “제가 교만했습니다. 제가 잘못해서 선교의 열매가 없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주의 사랑으로 섬기지 못하고 늘 우월감을 가지고 여러분을 업신여겼습니다.” 그때, 모든 교인들이 통회자복하며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내가 성령의 충만함을 깨달은 후 그 첫 주일 아침 우리 원산 감리교회 회중 앞에 서서 부끄럽고 당황한 얼굴로 나의 교만, 심령의 강퍅함, 그리고 믿음의 결핍과 또한 이것들이 가져다준 많은 결과들을 고백하면서, 그들은 처음으로 ‘죄의 확산과 회개가 실제적인 경험 속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다!”

이 부흥운동이 1907년 대부흥운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러나 우리에게 다시 사랑과 용서를 주시고 기회를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벨이 죽고 난 다음 셋을 주십니다. 창세기 4장 25절입니다.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여러분, 여러분은 과연 가인입니까 아벨입니까? 어느 길을 가고 있습니까? 여러분, 자존심 하나 갖고 살면, 그것은 가인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주님 안에서 다시 거룩한 꿈을 가지고 아벨의 길을 가게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그 길을 가게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꿈을 이뤄나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과거의 잘못됐던 나의 모습을 다 던져버리고 주님 기뻐하시는 그 길을 가기 원합니다.

세상 풍조는 나날이 변하여도 나는 내 믿음 지키리니

인생 살다가 죽음이 꿈같으나 오직 내 꿈은 참되리라

나의 놀라운 꿈 정녕 나 믿기는 장차 큰 은혜 받을 표니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라


<기도>--------------------------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가인의 길을 걸었습니다. 늘 교만했습니다. 늘 자존심 하나 내세우면서 누가 날 건들기만 해도 분노하고 다투고 상처를 받으며 살았던 저희들의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항상 분노가 내 마음속에 숨어있다가 언제든지 누가 건드리기만 하면 분노가 폭발했던 저희들의 연약한 모습을 용서하여주시고, 오늘 이후로 우리가 주님을 섬기며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가인의 모습을 내던져버리고 아벨같이 순수하고 겸손하고 온유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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