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희망 예수 그리스도/이영훈목사

<말씀봉독>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누가복음 24장 13~14절, 28~32절)

<등단 후 멘트>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부활 신앙은 우리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 부활 신앙이 2천 년 동안 우리 기독교를 이끌어 온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전 세계 3분의 1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고 있고 이 부활 신앙에 근거하여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2천 년 전에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오늘도 인류는 죄와 절망 가운데 낙심하며 방황하는 삶을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들려오는 이야기가 너무나 부정적인 이야기, 절망적인 이야기만 들려옵니다. 경제가 어렵고, 국가 안보가 어렵고, 외교 문제가 어렵고, 통일 문제가 어렵고, 어렵다는 이야기만 들려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망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긍정의 고백을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구세주가 되셨다는 이 사실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 다같이 기도할 때 다른 기도하지 말고, 감사하는 기도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건강을 주시고 오늘 여기까지 있게 하신 것을 감사하고, 자유 대한민국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고, 북한 2,500만 불쌍한 동포들은 예배를 드리고 싶어도 드리지 못하고, 예배를 드리면 붙잡혀 강제 노동 수용소에 갇혀서 평생 풀려나지 못하고 고통을 겪는 그러한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자유 대한민국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주신 것을 감사하고,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이 대한민국을 붙들고 계심을 감사하고, 우리에게 밝은 내일을 허락해 주신 것을 믿고 감사하면서 오늘 다른 기도하지 말고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복음성가: 예수 가장 귀한 그 이름>

예수 왕의 왕이 되신 주

예수 당신의 끝없는 사랑

오 예수 목소리 높여 찬양해

가장 귀한 귀한 그 이름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 찬송, 존귀 영광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이 부활의 아침에 기쁨과 감사와 감격으로 주님께 예배 드리오니 주님 이 예배를 기뻐 받아 주시옵소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 부활의 기쁨이, 감격이, 은혜가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은 누가복음 24장을 본문으로 해서 ‘절대 희망 예수 그리스도’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말씀의 제목을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절대 희망 예수 그리스도’, ‘절대 희망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 역사 이래 최대 기적이고 축복의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길, 생명의 길, 영생의 길이 펼쳐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1. 내리막길 인생

오늘 말씀은 부활의 날에 부활의 기쁨과 감격을 누리지 못하고 예루살렘을 떠나 내리막길을 가고 있던 두 제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먼저 내리막길 인생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길 원합니다. 누가복음 24장 13절 14절 말씀입니다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이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따라다녔던 제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붙잡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큰 충격을 받고 낙심하여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예루살렘에서 11km 떨어진 엠마오라고 하는 곳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길을 떠나기 전에 여인들로부터 예수님의 무덤에 가보니 무덤이 비었고,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누가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갔는가 큰 충격 속에 슬픔 속에 내리막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 사는 사람 누구나 때때로 내리막길을 가게 됩니다. 늘 말 잘 듣고 착하고 모범생이었던 아이가 중학교 가서 갑자기 돌변하더니 폭력적으로 되고, 사사건건 부모에게 대들고, 급기야는 학교를 중퇴해서 온 집안이 내리막길을 걷게 되는 그러한 가정을 본 적이 있습니다.

또 제가 아는 어느 분은 결혼한 지 2년이 되어 아이가 태어났는데 남편 되신 분이 위암 말기로 세상을 떠납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함 두어 달밖에 안돼서 옆에서 버둥거리고 있는데 남편이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큰 충격과 슬픔 속에 끝이 모를 보이지 않는 내리막길을 가는 인생을 살아왔던 분을 기억합니다. 매일 눈물을 흘리며 아이를 돌봐야 되고 삶을 꾸려나가야 했던 그 힘들고 어려웠던 그 모습을 기억합니다.

또 어떤 분은 잘 나가는 벤처기업 사장으로 승승장구하며 나가는 것 같더니 갑자기 주식이 폭락하면서 파산지경이 되어서 완전히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그런 내리막길 인생을 사는 분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우리 인생에는 알게 모르게 내리막길을 갈 때가 다가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믿고 그토록 의지했던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나서 낙심하여 삶의 희망도 용기도 다 잃어버린 채 내리막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15절 16절은 설명합니다.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하나님 없는 인생길은 내리막길 인생입니다. 아담과 하와부터 내리막길을 갔습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 죄 가운데 방황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지금 죄와 절망 가운데 내리막길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이 내리막길 인생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절망의 길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리막길 인생을 돌이켜 보려고 관심을 갖고 그것을 얻을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돈과 권력입니다. 그러나 최상위층에 살고 있는 분들이 가진 것을 다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요즘 뉴스를 보면 우리가 얼마나 실망하는 그런 뉴스를 많이 대하게 됩니까? 약물 중독에 빠지고, 도덕적으로 한없이 타락하고, 갈지 자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뉴스를 보면서 우리는 참 안타까운 마음을 느낍니다.

그렇습니다. 인간 스스로는 이 절망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온 인류의 희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문제 해결의 길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길이 되시고 진리가 되시고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날 때에만이 우리는 이 내리막길 인생에서 벗어나 다시 회복되는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고, 예수님만이 우리의 절망의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주실 수 있고, 예수님만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으신 위대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잊지 말게 되기를 바랍니다. 내리막길 인생에 필요한 것은 바로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내리막길에 동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놀라운 것은 이 구세주 예수그리스도께서 내리막길 인생에 우리와 동행하고 계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리막길에 동행하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서 24장 15절은 설명합니다.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니

원래 두 제자는 예수님이 로마의 압제에서 저들을 해방시켜 줄 메시아로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그 놀라운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이 행하시는 그 기적을 보면서, 풍랑을 잠잠케 하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 어른만 오천 명, 약 이만 명 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고 열두 바구니가 남게 되고,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 눈을 뜨고, 나병 환자들이 치료함을 받고 이러한 기적을 보면서 과연 예수님은 우리를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해 주실 분이다. 예수님을 열렬히 믿고 의지하고 지지하며 따랐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믿고 의지하고 따랐던 예수님이 무기력하게 붙잡히셔서 그 멸시 천대를 받으시고 온몸에 채찍에 맞아 온몸을 채찍에 맞아 찢기시고 피 흘리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들은 크게 낙심하고 실망했습니다.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꿈과 희망이 다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믿고 의지하던 예수님이 그렇게 세상을 떠나셨으니 이제 저들이 살아갈 꿈도 희망도 용기도 다 사라져 버리고 망연자실해서 저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내리막길 인생을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 절망의 길을 가고 있는 그들에게 예수님이 가까이 다가오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복음입니다. 우리가 나아갈 수 없지만 주님이 우리 가까이 다가오셔서 우리의 손을 붙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와 동행하시는 것입니다. 이천 년 전에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와 동행하셨던 예수님이 지금도 절망의 길을 내려가고 있는 우리와 동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릴 부르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천 년 전 제자들과 동행하셨던 예수님이 지금도 절망의 길을 가고 있는 우리와 동행하시고 앞으로도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세상 사람들은 참 이기적입니다. 자기의 유익이 되면 가까이 다가오고 자기에게 유익이 없으면 가차 없이 가까웠던 사람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 사람들의 인심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시절 때에 가깝게 지낸 친구 아버님이 고위 관직에 계셨는데 어느 날 저한테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관직에 있을 때 문전성시를 이루고 명절 때가 되면 온갖 선물 박스가 쌓였는데, 관직에서 물러나고 나니깐 발길이 딱 끊어졌다고. 매일 같이 문안 인사 드리러 온 사람이 문안 인사 드리러 오기는커녕 전화도 없고, 명절 때마다 들어오던 쌓이던 선물이 거의 다 사라졌다고. 이게 세상 인심인가 보다는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도움이 된다고 하면 유익이 있다고 하면 다 거기로 몰려가지만 도움이 안 된다고 하면 그대로 등을 돌립니다. 오랜 병에 효자 없다고 부모님 중에 누가 아프셔서 오 년, 십 년 누워계시면 자식들끼리 눈치 주며 서로 다툽니다. “네가 모셔라.” “네가 모셔라.” 그것이 세상 인심인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내리막길을 갈 때 등을 돌리고 떠날 수 있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가까이 다가오셔서 우리와 동행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꿈과 희망과 용기를 주시고 절망에 처한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일으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 주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우리의 길에 동행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실수하고 넘어졌을 때, 우리가 스스로 자기 잘못으로 인하여 큰 상처를 입고 주저앉았을 때, 우리가 어떤 큰 범죄를 저질러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을 때, 그때에도 그때에도 주님은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다가오셔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우리를 일으켜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희망과 꿈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우리의 축복의 길이 열려져 있는 것입니다.

카일 아이들먼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라! 네 거적에서, 네 동굴에서, 네 십자가에서, 네 절망에서 일어나 다시 걸어가라!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시간이다. 바로 지금 주님이 당신을 만나고자 하신다. 그저 도움을 요청하라. 무력할수록 더 좋다. 나의 끝이야말로 주님이 나를 만나주시는 지점이다!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이 바로 하나님의 시작인 것입니다. 절망의 끝이 바로 우리의 희망이 싹트는 시간인 것임을 잊지 말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 인생길에 찾아온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주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주의 말씀을 따라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주님은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에게 말씀을 통하여 위로해주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주셔서 우리 마음에 뜨겁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3. 말씀과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주님

말씀과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주님에 대해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누가복음 24장 27절을 보니까 실의에 빠져 걸어 내려가고 있는 두 제자들에게 말씀을 통하여 위로하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저들에게 주님이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십니다. “십자가는 끝이 아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성취되었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부활하셨다. 그래서 모든 믿는 사람들의 주님(the Lord)이 되셨다.”

빈 무덤의 의미를 바로 깨닫게 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에도 전혀 이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던 저들이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영의 눈이 띄어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절망이 깊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면서도 예수님이 옆에 계신지 몰랐던 것 같이 너무나 절망이 깊고 상처가 깊으면 아무도 안 보이고 죽어가는 자신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주님이 곁에 계십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붙들고 계십니다. 주님이 여러분에게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을 위로하시고 여러분을 치료하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깊은 절망의 자리에서 상처 입은 그곳에서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절망의 눈을 떠서 생명 되신 우리 주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들을 때 저희 마음이 뜨거워지고 희망이 생겨났습니다. 날이 저물어서 예수님을 청하여 이곳에서 하루 쉬면서 말씀을 계속 나눠주십사 하고 여관에 들어가서 함께 식탁을 대합니다. 누가복음 24장 30절입니다.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절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예수님께서 감사 기도드리고 떡을 뗄 때 그 절망의 자리가 희망의 자리로 슬픔의 자리가 기쁨의 자리로 문제의 자리가 해결과 응답의 자리로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긴 시간 예수님과 이야기하면서도 예수님인지 몰랐던 그들이 예수님이 축복하시고 떡을 떼려고 하는 그 순간 눈이 떠졌습니다. 예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 예수님이시다.” 하는 그 순간 예수님이 사라지셨습니다.

오늘 이 시간 절망에 눈이 감겨 아무것도 보지 못한 분들이 예수님 말씀을 듣고 눈이 떠지길 바랍니다. 여러분 앞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말씀을 통해 위로와 힘과 용기를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무너져가는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상처 투성이인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우리의 생명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문제를 만나면 죽겠다고 그럽니다. 왜, 문제만 보이니까. 자신만 보고 있으니까. 상처만 보고 있으니까. 그러나 상처보다 크시고 문제보다 크시고 문제 해결자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눈이 떠졌을 때 그들의 마음속에 주님의 은혜가 회복되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32절에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말씀이 우리에게 감동으로 다가올 때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절망으로 눈이 감겨버리면 무슨 말을 들어도 마음에 그것이 와닿지 않습니다. 너무 상처가 커서 상처로 인해서 눈을 감아버렸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눈 감으면 상처밖에 안 보이는 것입니다. 눈 감으면 절망의 자신밖에 안 보이는 것입니다. 눈 감으면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죽고 싶은 생각밖에 안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셔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이 우리를 치료합니다. 우리를 살립니다. 우리를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절망의 눈이 떠지게 되고 상처로 닫혔던 눈이 떠지게 되고 슬픔으로 닫혔던 눈이 떠지게 되고 희망의 주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되어서 마음에 다시 뜨거움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하다가 내리막길의 인생을 걷는 분들이 있습니까. 그래서 온 눈이 감겨 졌습니까. 예배에 와도 아무런 감동도 없고 찬송을 불러도 아무런 감동도 없고 말씀을 들어도 전혀 마음에 와닿지 않고 혹시 이런 내리막길의 인생 가운데에 있는 분이 안 계십니까? 오늘 말씀을 듣고 치료되고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다시 마음이 뜨거워지게 되길 바랍니다. 뜨거워지게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은혜받았을 때의 그 모습으로 다시 회복되어 돌아갈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주여! 우리 마음이 뜨거워져서 성령의 은혜로 말씀 붙잡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절대 주님은 여러분을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먼 길을 가는 야곱에게 준 창세기 28장 15절 말씀을 기억합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져서 가던 발걸음을 돌이켜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내리막길 인생이 예수님과 동행하고 예수님을 만난 후 마음이 뜨거워져서 오르막길 인생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어떤 내리막길 인생을 걸어가고 있든지 간에 예수님을 만나서 오르막길 인생이 되길 바랍니다. 오르막길 인생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많은 어려움 가운데 내리막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주여 주님의 은혜가 임하여서 모두가 다시 오르막길 인생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경제가 어려운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많은 부정적인 소문이 문제가 아닙니다. 무너진 우리 마음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다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절망으로 인해 닫혀진 눈이 캄캄한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우리가 문제인 것입니다. 영의 눈을 떠서 이제는 내리막길 인생이 오르막길 인생으로 바뀌어야 될 것입니다.

내리막길 인생이 오르막길 인생으로 바뀌게 되면서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리게 된 빌 게이더 부부를 소개하기를 원합니다. 저기 잘생긴 분이 빌 게이더 남편이고 부인이 글로리아 게이더 부인이신데 원래 이 빌 게이더 이분은 영어 선생님입니다. 1959년 알렉산더 고등학교의 영어 선생님으로 계시는 가운데 그 학교에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학교를 잠시 못 나오게 돼서 임시 보조교사로 왔던 글로리아 시칼이라고 하는 분이 있는데 이 분은 대학교 졸업반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와서 프랑스어 보조교사를 했는데 독실한 크리스천입니다. 두 분이 사랑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3년 후에 1962년에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이 빌 게이더라고 하는 분은 하나님이 찬양을 작곡하는 은사를 주셔서 영어 선생님이지만 많은 찬양을 작곡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복음성가를 그분이 많이 작곡했어요. 부인은 또 글을 잘 써서 작사를 합니다. 그래서 아주 둘이 찰떡궁합이 되어가지고 환상의 콤비로 찬양을 지어서 불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끼친 그러한 부부가 되었고 빌 게이더는 복음성가의 빌리 그레이엄이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 분이 되었습니다.

이분들이 처음 작사 작곡해서 발표한 것이 1963년에 지은 “He touched me”라고 하는 곡입니다. 우리나라 복음성가로는 “주 붙드네”라고 번역되어 나와 있는데요 이것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엘비스 프레슬리 라고 하는 가수가 이 노래를 71년도에 부르고 72년도에 그래미상을 탑니다. 원래 저분이 우리 순복음교회 성가대원이었는데 말이죠, 교회에서 찬양대만 부르고 있었으면 그 인생이 허무하게 안 마쳤을텐데 너무 유명해져가지고. 가수가 되어 가지고 약물 중독을 40대에 죽고 맙니다.

이 엘비스 프레슬리가 부른 He touched me가 전 미국과 세계를 뒤흔들어 놓고 그 다음 많은 곡들을 이분들이 지었는데 그러다가 이 가정에 위기가 다가왔습니다. 이 남편이 바이러스성 전염병에 걸려서 무기력에 빠진 것입니다. 단핵구증이라고 하는 병에 걸렸는데 완전히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내리막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가정이 파탄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부인이 남편 돌보랴 아이들 돌보랴 너무 하루하루가 피곤한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재정적인 어려움이 다가왔습니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가까웠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그들을 비난했습니다. 저 사람들 돈벌이하려고 복음성가를 만든 것이다. 찬양이 목적이 아니라 돈벌이가 목적이다. 이렇게 비난을 했습니다. 가까웠던 지인이 등을 돌려 이렇게 비난하게 되니까 그 스트레스와 충격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남편이 깊은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우울증의 종착역은 자신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런 깊은 우울증에 빠졌을 때 또 예기치 않게 부인이 임신을 했어요. 세 번째 아이를 가졌습니다. 하루 사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삶이었습니다. 이제 산달이 다가오는데 매일같이 고민합니다. 이 아이가 태어나면 이 아이가 당하는 환경은 재정적인 어려움, 주변 사람들의 비난, 아픈 아버지, 온갖 문제와 어려움의 그러한 절망의 구름이 뒤덮고 있는데 태어나서 어떻게 살 것인가.

그 절망의 밑자락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주님! 저희 가정을 살려 주시옵소서.” 그러나 그 한 가지 몰랐던 것은 그 내리막길을 가고 있을 때 주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그가 영적으로 눈을 떴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직전에 그는 고백합니다.

“그가(주님이) 살아계시기에, 나는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Because He lives, I can face tomorrow).”

주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나는 내일을 담대하게 맞이할 수 있다. Because He lives, I can face tomorrow. 그가 살아계시기 때문에, all fear is gone. 모든 두려움은 사라졌다. 할렐루야.

그래서 지어진 불멸의 복음성가가 1971년에 지어진 “because he lives” “살아계신 주”입니다. 이 살아계신 주가 한국에서는 여의도 순복음교회 복음성가를 통해서 뮤지컬 알렐루야를 통해서 전국에 보급되었습니다.

살아 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 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할렐루야.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빌 게이더 선생님은 이 찬양을 통해 무력감에서 벗어나 4번이나 그레미 상을 받게 되었고 20번이나 도버 상을 받게 되었고, 1984년에는 복음성가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내리막길 인생에 우리 주님이 동행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면서 굽이굽이 다가오는 고난의 때에 내리막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혼자가 아닙니다. 외로운 길 혼자 걸어가고 있다 생각하지 마시고 그 길에 동행하시는 예수님을 만나서 내리막길 인생이 오르막길 인생으로 변화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여러 가지 문제와 어려움으로 내리막길 인생으로 살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님 만나서 오르막길 인생으로 살기 원하오니, 주님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우리를 위로하여 주시고 우리를 치료하여 주시고 우리를 회복시켜 주셔서 모든 절망과 상처와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나 주님과 동행하며 오르막길 인생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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