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함께하시는 주님/이영훈목사 |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 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편 23편 3~4절) <등단 후 멘트>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오늘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33년 반 사시면서 그중에 10분의 1, 약 3년 반 동안 공생애 사역을 하시고,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마지막 한 주간의 그 일정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마가복음서는 거의 절반 가까이 그 마지막 일주일간의 기록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2000년 전 오늘 주일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실 때에 모든 무리들이 나와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주님을 환영했고 겉옷을 펴서 앞에 깔고 주님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월요일 날 다시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오셔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다 내어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몸 된 교회는 늘 세속화되지 않고 거룩함을 유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화요일 날은 하루종일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논쟁을 하시고 말세에 되어질 일을 예언하시고 그리고 수요일 날은 베다니에 머물면서 십자가 고난을 준비하며 하루종일 기도하시며 다른 일정 없이 그날을 보내십니다. 그날 옥합을 깨뜨린 여인이 와서 기름을 부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목요일 날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고별설교를 하십니다. 고별설교의 내용은 요한복음 14장, 15장, 16장에 나와 있습니다. 내가 가면 나와 똑같은 너희를 돕는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내용이 요한복음 14장, 15장, 16장에 나오는 것입니다. 만찬을 마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다음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십니다.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 수제자는 세 명은 가까운 곳에 기도하게 하시고 나머지 제자 9명은 아래쪽에서 기도하게 하셨는데 마지막 순간에 그 기도할 때까지도 제자들은 잠을 잤습니다. 그들을 깨우시면서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있을 수 없었더냐?” 하고 안타까운 말씀을 하시고 금요일 새벽을 맞이하면서 가룟 유다가 앞서서 병졸들을 이끌고 와서 예수님을 붙잡아갑니다. 그날 금요일 날 밤부터 십자가에 달리실 때까지 예수님은 단 1분도 쉬지 못하시고 여기저기 끌려다니셨습니다. 제일 먼저 끌려가신 곳이 현직 제사장 가야바의 장인인 직전 대제사장 안나스의 집입니다. 안나스에게 가서 먼저 심문을 받고 그다음 현직 대제사장인 가야바에게 가서 또 심문을 받습니다. 여기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끌고 빌라도에게 갑니다. 당시 사형집행권이 유대인들에겐 없었고 로마 제국에게만 있었기 때문에 로마 총독인 빌라도에게 가서 자고 있는 빌라도를 깨워서 사형을 집행해달라고 합니다. 빌라도는 이 종교적인 문제에 연루되기 싫으니까 당시 자기와 좋지 않은 관계였던 헤롯왕에게 보냅니다. “당신네 사람이니까, 당신이 이 사람을 심문하시오.” 헤롯왕에게 끌려갔을 때 예수님은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헤롯왕이 예수님을 심문하다가 다시 빌라도에게 돌려보냅니다. 빌라도에게 돌려보낸 후에 빌라도가 할 수 없이 재판을 열었습니다. 그때 불과 며칠 전에 예수님을 호산나 찬양하던 무리들이 제사장들의 돈을 받고 매수가 되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칩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사형 언도를 내리는 것이 금요일 날 아침 6시쯤 됩니다. 채찍질 당하시고 머리에 가시관 쓰고 피를 흘리시면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서 금요일 날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혀 6시간 동안 온몸에 물과 피를 쏟으시며 고통당하시다가 오후 3시쯤 숨을 거두십니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서 주님이 이 모진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금요일 날 3시에 시신이 내려와서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들어가 들어가서 안치되고 토요일 날 하루 종일 그 무덤에 계셨다가 신학적으로는 그때 음부에 내려가서 예수님이 계셨다가, 주일날 새벽 동트기 전에 한 4시쯤 그러니까 정확하게 죽음 가운데 사망의 권세 가운데 있었던 시간은 금요일 날 오후 3시부터 밤 12시까지 9시간하고 토요일 날 24시간하고 주일날 4시간 합치면 한 37시간 동안 사망의 권세 가운데 계시다가 주일날 아침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게 바로 한 주간, 예수님의 그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정말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나의 죄 때문에, 나의 허물 때문에, 나의 잘못 때문에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그리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해서 이제 이와 같은 사랑을 받았으니 우리 주위의 소외되고 헐벗고 병들고 고난 당하는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겠다는 그런 마음 자세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한 주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잠시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 314장 (통 511):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내 진정 소원이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의 죄와 허물 때문에 우리 예수님께서 그 모진 고난을 당하시고 금요일 밤 한잠도 못 주무시고, 온 등은 찢겨 피투성이가 되고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셔 머리로부터 흘러내리는 피로 범벅이 되어 골고다 언덕에 오르시고 손과 발에 못이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 우리 때문에 그 모진 고통을 당한 우리 주님을 생각하며 우리 죄를 회개하고 주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들의 죄를 용서하여주시고 우리들의 여생 우리 주님이 가장 기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들의 발걸음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 말씀의 제목은 “언제나 함께하시는 주님”입니다. 시편 23편 3절, 4절을 본문으로 하여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눕니다. 제목을 한번 따라해주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함께하시는 주님”, “언제나 함께하시는 주님” 기독교 신앙에 몇 가지 핵심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그 가장 중심적인 신앙의 모습은 바로 십자가 신앙입니다. 그리고 온 우주 만물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창조 신앙이 또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내용 중의 하나입니다. 이와 함께 사랑의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고 계신다는 임마누엘의 신앙 또한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심적인 내용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일생 동안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에게 은혜에 은혜를 내려주시는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성부 하나님의 역사로 저들과 함께하셨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성자 예수님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소외된 이웃들, 가난하고 헐벗고 상처 입은 사람들을 돌보셨고 예수님이 승천하신 열흘 뒤에는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오늘 이 시간까지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며 우리를 주님의 은혜의 길로 인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 놀라운 은혜에 우리는 한평생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때때로 낙심하고 상처 입고 쓰러져있을 때 주님이 우리를 찾아와주셔서 우리를 일으켜주시고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켜 주십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는 하나님에 대해서 시편 23편 3절은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영혼의 침체는 우리 영과 혼과 육에 극심한 괴로움과 고통을 가져다줍니다. 이러한 고통이 우리에게 엄습하면 그 극한 스트레스로 인해서 몸과 마음이 다 무너져버립니다. 제 가까운 분이 여러 차례 저에게 얘기한 정부 고위급 인사 중 한 분이 계십니다. 대통령 경호를 책임졌던 분입니다. 또 88올림픽을 준비할 때 공을 세운 분입니다. 스위스 로잔에서 미국 NBC 방송국과 계약하고 돌아오는 길에 몸이 좀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를 모시고 왔던 분이 “위원님, 큰일을 앞두고 있는데 건강검진을 좀 받고 그리고 그 일을 준비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사람아, 괜찮아. 나 지금까지 감기 한 번 안 걸렸잖아.” 워낙 건강 체질이기 때문에 평소에 술을 많이 먹는 게 그 삶의 습관이었긴 하지만 어디 한 군데 아픈 데가 없었어요. 그런데 그를 모신 보좌관이 간곡히 요청해서 서울대학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았는데 의사가 와서 이야기합니다. “위원님, 간암으로 판정이 났습니다.” 한평생 감기 한 번 안 걸리던 분이 간암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제 나 죽는구나!’ 극한 스트레스가 그를 눌렀습니다. 몸과 마음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분은 병원에 입원한 지 28일 만에 세상을 떠나 시신이 되어 나와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의사가 말합니다. “만일 모르셨더라면 그는 2, 3년은 살 수 있을 터인데…” 간암이란 말을 듣자마자 마음이 무너진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고 마음이 무너지는 것이, 우리를 이와 같은 절망으로, 이와 같은 고통의 자리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에 이와 같은 권면이 있습니다. 17장 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오늘 여러 가지 일로 근심하는 분들은 이 말의 의미를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마음의 기쁨이 그것이 우리에게 좋은 약이 되지만, 마음의 근심은, 스트레스는, 염려는 우리의 뼈를 마르게 하는 그러한 고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어떠한 문제가 다가와도, 어려움이 다가와도, 고통의 순간이 다가와도, 마음을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좋으신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절망에 처해 마음이 무너져내려 살고 싶은 의욕도 다 잃어버리고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우리들을 붙들어주시고, 회복시켜주시고, 일으켜주시는 것입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켜 주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라고 다윗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어떠한 절망과 고통과 스트레스로 이 자리에 오셨든지 간에, 우리를 소생시켜주시는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다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나를 이 시간 소생시켜 주시옵소서! 영혼의 침체에서 나를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그러한 힘과 용기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참으로 감사한 것은, 우리 사랑의 주님이 절망의 자리에 우리와 함께하여 주셔서 넘어질 때마다 우리를 붙들어주셔서 또 일으켜주시고 또 일으켜주시고 또 일으켜주신다는 그 은혜인 것입니다. 잠언에 고백합니다. 24장 16절입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일곱 번 넘어져도 또 일으켜주시고, 여덟 번 넘어져도 또 일으켜주시고, 아홉 번 넘어져도 또 일으켜주셔서, 결국 굳건히 서서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갈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절망의 자리에 주저앉아 있든지 간에, 어떠한 고통과 괴로움과 상처로 낙심하였든지 간에, 주님 앞에 돌아 나와야 합니다.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주의 사랑으로 품으시는 주님께, 나의 모든 잘못을 내려놓고 회개하고 돌아 나오면 풍성한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55장 6절과 7절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야훼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야훼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주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 고개를 돌리고, 우리가 절망에 처한 모습을 애써 외면하지만은, 주님은 우리를 불쌍히 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용서해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는 더 큰 허물을 갖고 있으면서도, 남의 조그만 잘못을 보면 다 돌 들어 던지려고 하는 그러한 습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청문회를 보면 정상적인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것 같아요. 미국 청문회는 그런 개인적인 검증은 미리 다하고 청문회에서 그의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검증을 하는데, 우리는 개인적인 문제부터 파헤치기 시작하니깐 문제없는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본인도 그 자리에 서면 또 본인도 그렇게 문제가 또 많아요. 이것은 세상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허물이 있어도, 죄가 있어도 “내게로 돌아오라! 회개하고 돌아오면, 너희를 불쌍히 여기고 너희를 용서하리라. 너희를 용서하리라. 너희를 용서하리라!” 할렐루야!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상처 입은 곳에서 붙들어주시고, 일으켜주시고, 완전히 어그러지고 깨어진 모든 것들을 다시 소생시켜주시고 회복시켜주시는 그 은혜를 여러분 모두가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회복시켜주시고 소생시켜주셔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의의 길’이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길, 주의 말씀을 따라 사는 길을 의미합니다.사람들은 늘 자기 의로움에 갇혀서 자기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 절대적이고 옳았기 때문에 밥 먹듯이 죄를 짓고 잘못을 하고 남을 짓밟고 상처를 주면서도 뻔뻔하게 가식의 가면을 쓰고 살았던 우리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 철저히 주님 앞에 그런 잘못된 모습을 회개해야 됩니다. “주님!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제 위선과 가식과 거짓말과 잘못됐던 모든 모습을 다 용서해주시고, 주 앞에 바로 서서 주님 기뻐하시는 의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내 삶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우리 목자가 되셔서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여 주시고 우리 삶 가운데 큰 은혜 베풀어주십니다. 완전히 상처 입고 망가지는 인생인데도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소생시켜주세요. 소생시켜주신다는 것은 완전한 회복입니다. 버려진 인생이 다시 새 출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문제를 만나고 위기를 만나면, 가까웠던 사람들조차도 곁을 떠납니다. 오래된 병에 효자가 없다고 부모님이 나이 많이 들고 병상에 오래 누워있으면 자식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하고 나중에 부모님 곁을 지키는 자식은 거의 없는, 그러한 모습을 우리가 봅니다. 그렇게 사랑과 정성으로 자녀를 키워줬건만, 아버지 병이 중해서 7, 8년 누워 있는다고 자식은 다 떠나고 어머니가 병간호하다가 어머니까지 병이 드는 그러한 모습을 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그러한 절망의 자리에 있는 우리를 절대로 떠나지 아니하시고, 곁에 계셔서 우리를 붙들어주시고, 놀라운 은혜로 우리를 품어주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찬송가 88장 1절에 이러한 가사가 있습니다. “내 맘이 아플 적에 큰 위로되시며 나 외로울 때 좋은 친구라” 2절에 이러한 가사가 있습니다.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끝까지 나를 돌아보시니 주는 저 산 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 별 이 땅 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 할렐루야! 이와 같은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우리를 소생시켜주시고 나아가서 절망의 자리에도 함께하시며 우리와 동행하시는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의 일생동안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굽이굽이 인생의 어려운 시간을 지날 때마다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그의 말년에 가서 그의 일생을 회고하면서 그는 고백합니다. “주님이, 야훼가 나의 목자기 때문에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일생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나의 목자가 되셨기 때문에, 내게 어떠한 문제와 고통과 괴로움의 현실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나는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무너뜨렸습니다. 민족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이 그때로부터 그것을 시기해서 “저 다윗이 노릴 자리는 내 자리밖에 없구나.” 권력은 부자도 나누지 못한다고 했는데, 다윗을 사위로 삼고 나서는 죽이려고 합계 군사 삼천 명을 풀어서 쫓아갔습니다. 다윗이 도망 다닌 기간이 10년이 넘습니다. 거의 10년 기간 동안 그가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때로는 블레셋 진영으로 넘어와서 미친 사람 흉내를 내가면서 그렇게 도망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때로는 누구에게 쫓기고 마음에 끊임없는 불안이 있는 상태로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큰 고통인 줄 아십니까. 하룻밤도 제대로 자지를 못해요. 어디서 잠을 자도 오늘 또 누가 제보해서 왕이 군사를 부르면 또 도망가고 또 도망가고 또 도망가고 또 도망가고 옛날에 유명한 신창원이라는 도둑이 오랫동안 도망 다니다가 잡혔는데, “어휴 이제 편하게 잠자겠다.” 그러더라는 거에요. 하루도 편하게 잠을 못 잤다는 거에요. 누가 신고할까 봐. 그렇게 10년 가까이, 10년 남짓한 세월을 쫓겨 다니다가 왕이 되고 난 후에도 7년 6개월 동안 사울 왕의 아들 이스보벳과 전쟁을 해야 되었고, 그의 말년엔 그의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를 대적해서 반역을 일으키는 바람에 궁궐을 버리고 도망가는 그러한 신세를 그가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을 때 그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할렐루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 고백해야 됩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사람들이 다 나를 버리고 떠나도 내 곁에 아무도 없어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이스라엘은 곳곳에 깊은 골짜기가 있어서 가파른 그 골짜기 밑에는 물이 흘러 들어간 다음에 수렁이 생기는 바람에 양들이 발을 잘못 디뎌 떨어지면 어딘가 부러지고 또 수렁 한가운데 갇혀서 막 허우적거리며,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 했습니다. 우리가 때로 발을 잘못 디뎌서 그러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몸부림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 하여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서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예기치 못한 중병이 다가와서 의학적으로 의사 선생님이 손을 들어서 그 죽음이라는 공포의 사망의 골짜기에서 헤매며 죽음의 공포와 싸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요즘은 젊은이들이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수렁 속에서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경제가 침체가 되었고, 살아갈 꿈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데 누구 하나 그것에 대한 답을 주지 않으니까 그냥 포기한 것입니다. 그 포기 자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인 것입니다. 결혼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결혼해도 애를 낳을 의욕이 없습니다. 애를 낳으면 어떻게 키우나. 결혼해서 뭣하나. 그냥 살면 되지 그냥 이렇게 사는 게 편한데. 지금 한국이 통일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큰 이슈가 되는 것 같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저출산 문제입니다. 올해 말이 되면 1.0명에서 더 내려가서 0.88명까지 내려간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태어나는 인구보다 죽는 인구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인구감소로 우리는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통일은 그 뒤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정치하는 분들이 이걸 몰라요. 싸우느라고 지금 이 나라가 어떤 게 중요한지 모릅니다. 젊은이들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제발 우리에게 갈 길을 보여 달라고 허우적거리고 있는 이러한 고통의 현장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밤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새벽이 가까워오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추운 겨울일수록 따뜻한 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천둥 번개가 치고 우박이 떨어지는 날이 있을지라도 바로 그날 다음에는 맑은 새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5장 3절과 4절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여러분! 이 모든 과정이 소망을 향해 나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여기서 멈출 수가 없습니다. 절망에서 멈출 수가 없습니다. 사망의 골짜기에서 멈출 수가 없습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할렐루야!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더욱 감사하기는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집과 교만과 불순종과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러운 모습이 깨어지는 것입니다. 늘 자기가 이 세상의 전부였고, 늘 자기중심으로 살았던 고집과 교만과 강한 자아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늘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정죄했던 부정적인 모습이 깨어지는 것입니다. 신앙의 기초가 다시 든든해지고, 겸손해지고, 믿음이 자라고, 강하여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주님의 일꾼으로 바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은 아프고 힘들고 눈물의 골짜기지만, 주님과 함께 잘 통과하기만 하면 이와 같은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의 때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며 탄식하지만 말고, 다시 일어나 울고 또 울며 그 길을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그 골짜기는 반드시 통과해야 합니다. 중간에 멈추면 안 됩니다. 멈추면 죽는 것입니다. 통과해야 됩니다. 주님과 함께 통과해서 반드시 승리하고 주님 보시기에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굳건한 모습으로 변화되어 나오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 사망의 골짜기를 통과하고 나면, 우리 주님과 함께 영광의 새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 골짜기를 통과할 때 꼭 우리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두려움을 쫓아내야 됩니다. 욥이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다 잃고 열 자녀를 잃고, 몸에 건강도 잃고, 아내마저 하나님을 저주하며 죽으라고 하며 떠나고, 친구들이 와서 손가락질하고 비판했을 때 이런 고백을 합니다. 욥기 3장 25절에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 우린 두려움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또 다른 내일을 향해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한번 교통사고가 난 사람은 운전할 때마다 사고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한번 중병을 앓았던 사람은 몸이 조금만 이상해도 내가 또 병을 앓는 것이 아닌가? 또 암이 재발하는 것이 아닌가? 두려움이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두려움을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두려움은 떠나갈 찌어다. 나를 짓누르고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또 고민하게 하고 또 상처 입게 하고 또 아프게 하는 이 모든 부정적이고 날 아프게 하는 생각들은 떠나갈지어다! 두려움은 떠나갈지어다!” 시편 23편 4절에 말씀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님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이라! 영원토록 동일하심이라! 동일하신 예수님이 지금 여러분과 함께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여러분과 함께하고 계셔서 여러분을 그 자리에서 붙들어주시고 전혀 한 걸음도 떼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는 여러분을 끌고 가는 것입니다. 주님께 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주님 주신 평안함으로 무장해서 이제 주님과 함께 위대한 승리와 축복을 맛보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두려움이 다가오면 밤에 잠이 오지 않습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면증으로 시달리고 있는지, 약국에서 가장 불티나게 팔리는 약이 신경 안정제 수면제입니다. 인기 정상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마음이 불안한지 마약에 손을 뎁니다. 급속도로 마약이 퍼지고 있습니다. 아시아에 마약 청정국가로 불렸던 우리나라가 지금 완전히 곤두박질하고 있습니다. 또, 프로포폴이라고 하는 그러한 중독성의 그러한 주사를 계속 맞고 있어서 수많은 사람이 폐인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이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민족의 희망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희망인 것이요. 우리 모두의 희망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이 모든 절망을 이겨내십시다. 예수님 안에서 이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쫓으십시다. 예수님 안에서 위대한 승리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시편 91편 2절입니다.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나와 동행하시는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모든 어려움과 문제를 이겨내고 두려움을 물리치고 주님 안에서 위대한 승리를 체험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2018년 6월 9일, 본 교회 출석하는 우찬균 성도의 아내가 아기를 낳았는데 아이가 낳자마자 경련증세가 나고 얼굴이 흙빛으로 변화되어서 급히 동네병원을 갔는데 병명을 몰라요. 그래서 다시 세브란스로 옮겼는데 세브란스에서도 이 아이가 왜 발작을 하고 경련을 해서 혼수상태가 됐는지 병명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큐베이터에 집어넣고 24시간 집중적으로 이 아이를 지켜보고 있는데 이 우찬균 성도 부부는 아이를 가서 보니까 온몸에 바늘이 꽂혀있고 얼마나 아이가 작은지 요만한데 거기에 온갖 바늘이 꽂혀있으니까 그 아이를 보며 그냥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6월 15일 철야예배를 드리는데 그때 제가 말씀을 전할 때 이사야 41장 말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그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부부가 손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고 우리 아이와 하고 계신다. 지금 혼수상태로 아이가 흙빛이 되어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주님이 지금도 함께 하고 계신다. 할렐루야! 제가 병자를 위한 신유기도를 할 때 어린 자녀의 난치병이 치료를 받을지어다. 이 부부가 아멘! 우리 아이는 낳았습니다. 믿음을 갖고 기도했습니다. 며칠 동안 아이가 계속 혼수상태고 의학적으로 손을 대지 못해서 링거만 꽂아 놓고 체크하고 있는데 “목사님 한 번만 와서 기도해주세요.” 가서 인큐베이터를 들여다보니까 아이가 온몸이 새까맣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데 얼마나 불쌍한지 의식이 없으니까 인큐베이터 통에다 손을 얹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아이가 살아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아이를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눈물로 기도하고 나오는데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어요. 2시간 후에 아이가 의식이 돌아와서 밝게 웃게 되었고, 3일 만에 완전히 건강해져서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3월 달에 건강한 모습으로 이 아이 헌아식을 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저렇게 얘가 컸어요. 히브리서 13장 5절 말씀을 기억하세요.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내가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내가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오늘 우리 모두에게 주신 축복의 말씀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내가 너희를 절대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아니하리라! 주님의 은혜 감사합니다. 어떠한 고통과 괴로움과 아픔이 있어도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여주시고 떠나지 아니하시는 주님의 은혜만을 사모합니다. 우리 일생 다가도록 우리의 손을 붙잡고 인도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영광만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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