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
아론이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함으로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마치고 내려오니라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야훼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불이 야훼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레 9:22~24)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기도는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모든 문제를 주님께 나와 부르짖고 기도하면 우리 주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남에게 말 못할 고민도 있고 상처도 있고 가정의 문제도 있고 생활의 어려움도 있고 또 우리 대한민국에 많은 문제와 어려움이 있습니다. 북한은 연일 미사일을 쏘아대고 있고 우리 남한은 지금 국론이 분열되어서 심한 갈등과 대립이 모든 분야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일본과의 갈등도 더욱 심해져 가고 있고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가 고립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에 기도하는 1천만 크리스천이 있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약한 것 같지만 기도로 주님을 붙잡기만 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을 붙잡는 손이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주님을 꼭 붙잡으면 주님께서 큰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어떤 문제를 갖고 나왔던지 주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나를 불쌍히 보시옵소서. 나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나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 응답하여 주옵소서." 개인의 문제, 가정의 문제, 생활의 문제, 자녀의 문제, 이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를 주님 앞에 맡기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놀라운 일을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 앞에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고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나를 도와주옵소서. 우리 대한민국을 긍휼히 여겨 주시고 붙들어 주시옵소서." 우리 다같이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 393장 (통:447)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날마다 자비를 베푸시며 일용할 모든 것 내려주시니 오 신실하신 주 나의 구주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사랑이 없으면, 주님의 용서가 없으면, 주님의 치료가 없으면, 주님의 은혜가 없으면 하루 한 시간도 살아갈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나왔사오니, 주여 상한 심령들을 어루만져 주시고 주님이 예비하신 놀라운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넘치게 채워 주옵소서. 주님 앞에 나올 때는 무거운 짐을 지고 나왔지만 돌아갈 때는 모든 무거운 짐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기쁘고 평안한 마음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세상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할렐루야. 우리는 늘 변하지만, 주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오늘 저는 레위기 9장 22절~24절 말씀 가지고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따라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성경을 보면,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중심에는 성전이 있었습니다. 광야 생활 40년 가운데에는 성막이 있었고 그다음 가나안에 정착해서 솔로몬 왕 때에 이르러서 성전을 지었습니다. 왜 성전을 지었느냐? 이 성전을 통하여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 기도하기 위해서 성전을 지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중심은 성전이었고 예배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신앙인의 삶의 중심은 교회가 되어야 하고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누가 믿음이 좋은 사람이냐, 예배 잘 드리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기본입니다.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이 믿음이 좋은 사람이고 믿음이 좋은 사람이 예배를 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예배를 이 교회에 와서 드리는 것뿐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예배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1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시간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든 순간이 바로 주님 앞에 드려지는 예배가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내가 서 있는 곳 그 어디서든지 그곳이 주님 앞에 예배하는 예배의 처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레위기 9장을 보면 대제사장 아론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서 3가지 제사를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3가지 제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교훈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속죄제 첫 번째로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레위기 9장 22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아론이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함으로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마치고 내려오니라 구약 레위기에 가면 여러 제사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장부터 9장까지 주로 제사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중에 가장 많은 부분을 속죄제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4, 5, 6이 3개의 장에 중심적으로 기록된 것이 바로 속죄제에 대한 것입니다. 레위기 4장 3절~12절에 보면 제사장의 속죄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고, 그 뒤 13절~21절은 회중의 속죄에 대하여서, 22절~26절은 족장의 속죄에 대하여서, 27절~36절은 평민의 속죄에 대해서 기록합니다. 그러니까 4장 전체 부분이 속죄제에 대한 것이고, 5장, 6장에도 속죄제를 다루고 있는데, 그만큼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죄 사함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 앞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죄가 그 마음을 누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죄에서 놓여남 받기를 위하여 주님 앞에 나와 눈물로 회개하며 우리 죄를 고백하고 죄 사함을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사이를 가로막는 그 장애물이 바로 죄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을 피하여 숨었던 것처럼 우리가 주님 앞에 범죄하였을 때 우리는 주님을 두려워하게 되고 주님 앞에 감히 나갈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철저히 눈물로 회개하며 주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죄라고 하는 것이 꼭 도둑질을 하고 사기를 치고 사람을 폭행해서 상처를 주고 이렇게 눈에 드러나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속에서 내가 생각으로 지은 죄, 말로 지은 죄, 행동으로 지은 죄, 주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 모든 것이 죄인 것입니다. 이러한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우리 이웃들에게 상처를 주고 절망에 빠뜨리게 한 이 죄도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 우리들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불쌍히 보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뭐가 잘 되고 잘나갈 때를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 방심하게 되기 때문에 죄가 확 와서 우리를 절망으로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한창 다윗의 전성시대에, 전쟁에 나가면 100전 100승하고 태평성대를 이루었을 때에 순간적으로 방심했습니다. 부하들이 나가서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고 있는데 늦잠 자고 일어나 궁전에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가 그만 그가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충성스러운 부하인 우리야 장수를 전쟁터에 내보내 죽게 하고 그 부인 밧세바를 빼앗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서 그를 정죄하고 그 죄를 지적합니다. "당신이 바로 그 죄인이오." 이때, 다윗이 하나님 앞에 엎드러져 통곡하고 회개합니다. 감히 누가 왕에게 그런 죄를 지적할 수 있습니까. 죄지은 것을 알고도 신하들이 아무 말도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데, 나단 선지자가 와서 그 죄를 지적한 것입니다. 그때 눈물로 회개한 기도가 시편 51편입니다. 1절~3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여러분들이 죄를 지었을 때 주님의 십자가 밑에 나와 눈물로 죄를 고백하고 죄 사함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주님 나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죄를 지었사오니 이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나를 정결케 하여 주셔서 내가 주님 앞에 바로 서게 하여 주시고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눈물의 기도를 드리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2. 번제 이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난 후에 두 번째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번제는 주님 앞에 온전히 제물을 다 태워드리는 헌신의 제사입니다. 9장 22절에 아론이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함으로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마치고 내려오니라 말씀합니다. 진정한 번제는 그 짐승을 모두 태워드리는 것처럼 온전하게 주님 앞에 다 바치는 것입니다. 내 마음도, 내 재능도, 내 물질도, 내 생명까지라도 주님이 원하신다면 주님께 드리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번제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영국의 부요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주님께 부르심을 받고 선교사로 헌신한 헨리 마틴을 소개합니다. 캠브리지 대학 수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나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인도에 선교사로 갑니다. 인도에 가보니 저들이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하는데 성경이 없어요. 그래서 그들을 위해서 힌디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또 페르시아어로, 아람어로 성경을 번역해서 성경을 배포합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 복음을 전하다가 31살의 나이로 순교합니다. 한참 더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는 그 젊은 나이인데 그는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온몸을 던져 희생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하찮은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종이 아닌 흙덩어리로 살았습니다. 이제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위해 불타 없어지게 하소서." 하나님을 위해 불타 없어지게 하소서. 이것이 온전한 헌신입니다. 번제를 드릴 때 형편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소를 드렸고, 양을 드렸고, 염소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생활이 어려운 분들은 비둘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드렸든지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시고 저들에게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진정으로 우리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 주님 앞에 사랑과 정성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거룩한 산 제물로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러한 제물로 자신을 주님 앞에 드리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12장 2절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주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을 분별하여 온전히 주님 앞에 자신을 드릴 수 있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미국 워싱턴 순복음 제일교회를 지었을 때에, 전 그때 성도들의 믿음을 보았습니다. 교회에서 직접 교회 건축을 하느라 매달 공사비가 10만 불에서 14만 불이 들어갈 때였습니다. 3백 명 성도들이 아무리 헌금을 해도 매달 10만 불씩 헌금을 할 수가 없어요. 겨우겨우 공사비를 지불해 나가면서 공사를 진행했는데, 또 몇 달씩 밀리기도 하고 공사비 재촉을 받기도 하고 참 어려운 시절을 지냈습니다. 근데, 저희 교회에 돈 많은 분이 있었어요. 집이 만 평입니다. 만 평. 미국은 워낙 땅덩어리가 넓으니까 뭐 8에이커 정도는 부자가 가질 수 있죠. 네 분이 일 년에 백만 불을 벌어요. 그 제가 젊고 목회감이 없는지라, 그 사람 주머니만 보는 거에요, 언제 나오나. 안 나오더라구요. 단 천 불이 귀해가지고 그냥 하나님 앞에 교회 건축비가 모자라다고 눈물로 기도하는데, 안 나오더라구요. '하나님 아버지, 저 포켓트를 눌러서 그 사람을.' 근데, 그 사람을 안 누르시는 거에요. 오히려 옥합을 깨뜨린 분은, 가장 어렵게 사는 분이었습니다. 세탁소에서 바느질하면서 한 달에 천 불 버는 분이 있는데, 가정도 형편이 넉넉하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일 년 치를 다 모아서 만 불을 하고, 또 만 불은 계를 들어서 타가지고 이만 불을 그 집사님이 주님 앞에 가지고 왔는데요, 누런 봉투에 얼마나 울었는지 눈물 자국이 얼룩진 헌금 봉투를 가지고 왔어요. 주님 앞에 내놓았습니다. 한 달에 천 불을 버는 분이 내는 헌금하고, 일 년에 백만 불 버는 분이 내는 헌금하고 건축헌금이 비슷했어요. 진정한 헌신이란, 이렇게 옥합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외교관이 한 분 있었는데, 그 아들 대학 등록금을 준비합니다. 왜냐하면, 목돈을 준비할 수 없으니깐 매달 월급에서 얼마를 떼어가지고 대학 등록금을 준비하는 거에요. 미국 대학의 등록금이 일 년에 5, 6만 불 이상 드니깐. 그런데, 교회 건축을 할 때, 가장 어려울 때, 그냥 그 등록금을 주님 앞에 갖다 내놓더라구요. 근데, 하나님은 참 공짜가 없으세요. 그 아들이 4년 장학생으로 대학을 가더라구요. 할렐루야! 이것이 보여지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헌금 못해요. 왜? 내 마음에 감동이 없기 때문에. 제가 그때 이후로, 사람 이렇게 포켓트를 보면서 목회하지 않습니다. '주님, 제가 목회 경험이 없어가지고 자꾸 남의 호주머니만 보는데, 우리 하나님의 호주머니만 보게 하여 주옵소서!'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요, 모든 것이 우리 아버지의 것인데 내가 자꾸 사람 호주머니를 보고 있어가지고, 혼자 상처받고 혼자 시험에 들고 혼자 낙심하고. 여러분! 주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님만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할렐루야! 온전하게 드리는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헌금할 때 헌금 주머니가 있지만, 강남에 있는 교회들을 보면 헌금 접시를 돌리는 교회도 많이 있더라구요. 그런데 실제로 그 헌금 접시에 올라가서 자기 자신을 드린 사람이 있습니다. 로버트 모펫이라고 하는 선교사인데, 어린 시절 그날 교회가서 헌금하는데 주머니에 1파운드도 없어요. 단돈 천 원도 없습니다. 그런데 헌금접시는 오는 거에요. 그 위에 털썩 앉았습니다. 그리고 말하는 거에요. "나는 가진 것이 없으니 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24살에 아프리카로 선교를 떠납니다. 복음의 불모지, 열악한 환경, 가난과 전염병이 창궐한 그곳에 가서 53년 동안 사역을 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감동을 받고 아프리카 선교사로 자원을 합니다. 그에게 감동을 받고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바친 분이 바로 데이비드 리빙스턴입니다. 아프리카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이비드 리빙스턴. 이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이 모펫 선교사의 딸과 결혼해서 그의 사위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에 가서 평생을 바쳐 헌신하다가 아프리카 정글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헌신입니다. 여러분! 내 삶 전체를 주 앞에 드리는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열린 문의 복을 주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러분, 삶의 순서가 바로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 속죄제를 드리고 우리의 헌신을 다짐하는 번제를 드린 다음, 셋째로 화목제를 드려야 합니다. 3. 화목제 화목제는 하나님과 나와의 만남이요, 교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우리 자신을 드리기로 결심한 후에, 주님과 깊은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교제는 희생을 동반합니다. 왜?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의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 사랑에 감동되어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갚으려고 해야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믿는 사람들끼리 사랑할 때 이와 같은 희생이, 섬김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를 섬겨라'하는 이러한 이기적인 사랑으로는 진정한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가 없습니다. 누구나 다 그렇지요. 다 제멋에 삽니다. 제가 잘났지요. 잘났어요. 여기서 있어도 늘 제가 잘난 줄 착각하고 사니까. 착각은 커트라인이 없다고, 문제가 많은 겁니다. 여러분 진정한 사랑은 낮아지고, 섬기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고, 주님을 우리가 목숨 바쳐 사랑하면 주님이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고, 우리가 우리 이웃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과 깊은 교제 속에서 여러분들의 믿음이 자라고, 여러분 마음에 은혜가 풍성해 지고, 여러분 마음에 기쁨이 넘쳐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장 9절은 말씀합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속죄제를 통하여 죄 사함을 받고, 번제를 통하여 온전히 하나님의 것이 되기로 결단한 다음에는 주님과 교제하며 동행하는 삶을 사는 화목제를 우리가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교제는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사랑의 손을 내미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사랑과 용서의 손을 내미셨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으로 그 손을 붙잡고, 주님과 교제하고 주님과 동행하게 된 것입니다. 이 은혜에 우리가 늘 감사하며 살아야 됩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사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시고, 주님과 동행하게 해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만이 홀로 영광 받으시옵소서." 언제나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 앞에 결단하고 순종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늘 내 중심으로 살던 지난 이기적인 모든 모습을 다 내던져 버리고, 주님 중심으로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아멘" 하는데 잘 안 돼요, 사실은. 늘 주님 앞에 나갈 땐 "아멘 내가 뜻대로 살겠습니다."하고 돌아서면 내 뜻대로 사는 것이죠. 그래서 늘 우리에게 문제가 많고 상처가 많은 것입니다. "주님 우리 주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게 하여 주시고, 진실된 사랑의 모습을 담고 살게 하여 주옵소서." 에녹이라고 하는 사람은 365년 동안이나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면서 하나님을 얼마나 감동시켰는지 하나님이 죽음을 보지 않게 하고, 천국에 데려가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 5절에 에녹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365년을 하루같이 주님과 동행하며 변함없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감동시키는 모습을 하였던 에녹.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을 붙잡으러 가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 만난 후에 그의 운명이 바뀌고, 삶이 바뀌었습니다. 그전에 30년은 자기만을 위한 삶을 살았는데, 그 후로부터 남은 30년은 오직 주님만 위해 살다가 로마에서 목 베임을 당해서 순교합니다. 마지막 그가 로마로 순교하러 가는 것을 알면서 예루살렘에서 붙잡혀서 로마까지 가게 되는 이유를 알면서 그는 그 길을 갑니다. 왜. 주님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주님이 자신을 위해서 목숨 버려 희생했던 것을 알기 때문에 내 목숨마저도 주님을 위해 드리기 원합니다. 내가 이렇게 사랑받았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주님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그의 마지막 고별설교가 사도행전 20장 22절 이하에 나옵니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우리가 내 것을 얼마나 그냥 움켜쥐고, 내 것 무엇 하나 손해 보지 않으려 합니까. 그런데 생명까지도 내놓는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바울로 이름이 불리어지고 난 후에 그의 일생이 이렇게 생명까지도 바칠 수 있는 헌신의 삶, 희생의 삶이 되었던 것입니다. 인생은 한 번 지나고 보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길입니다. 한 번뿐인 인생길에서 여러분 정말 주님 앞에 주님을 감동시켜 드리는 그러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길 바랍니다. 늘 주님을 감동시켜 드리고, 주님 앞에서 늘 내 부끄럽고 쑥스러운 모습을 회개하고, 내가 주님의 은혜로 정결함 받아 늘 자기를 드리기를 힘쓰고, 주님과 깊은 교제 속에 주님을 날마다 기쁘시게 하고, 주님을 감동시켜 드리는 믿음의 사람, 은혜의 사람, 축복의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늘 입술로는 말하지만 언제나 이기적인 나의 모습 때문에. 주님보다는 내 자신을 더 사랑하고, 내 자신을 더 보호하고, 움켜지며 살았던 나의 모습을 회개하고, 주님 앞에 다시 한번 고백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 우리 남은 여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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