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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허락해야 열리는 섬 ~~
'인천의 섬'을 거닐다
“자고 일어났더니 가을이더라.” 불현듯 계절이 바뀌었다. 길고 지루했던 여름이 그렇게 예고도 없이 가버렸다. 불쑥 찾아온 가을을 마중 삼아 운전대를 잡는다. 드라이브 여행의 참맛을 느끼기 좋은 시기도 이즈음이다. 느릿느릿 길을 따라가다가 마음에 쏙 드는 곳에 차를 세워두고 보고 싶은 경치를 마음껏 감상하며 가을을 감상할 수 있다. 운전대를 잡고 향한 곳은 경기 안산의 대부도와 인천 선재도·영흥도를 잇는 국도다. 내륙 쪽의 무수한 볼거리에 가려져 살짝 뒷전으로 밀렸던 곳.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의외로 볼거리가 많은 곳도 여기다. 눈부신 청색 바다를 배경으로 갯벌과 곳곳에 숨은 유적, 바닷가 식당들이 내는 싱싱한 해산물까지. 삼박자를 다 갖춘 해안여행지다. 말 그대로 ‘섬의 종합선물세트’인 셈이다. 희롱하는 가을볕에 못 이기는 척 운전대를 잡고 달려보자. 시화방조제~대부도~선재도~영흥도 30㎞ 환상길수도권에서 인기를 끄는 섬 드라이브 코스는 단연 시화방조제~대부도~선재도~영흥도를 연결하는 구간이다. 여름 내내 무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탁 트인 가을바다에 헹구고 오기 좋은 길이다. 이 코스는 경기 시흥시 오이도선착장 인근에 위치한 시화방조제 입구부터 시작해 방아머리선착장, 시화방조제 남쪽 끝, 대부도, 영흥도까지 30㎞에 달한다. 야경이 아름다운 영흥대교를 포함한 연륙교 2개, 썰물 때만 접근이 가능한 측도, 한국 유일한 소사나무 군락지인 십리포해수욕장, 옹기종기한 섬마을 등 수많은 볼거리가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중간중간에는 인근 갯벌에서 잡은 바지락으로 만든 바지락칼국수 등을 파는 음식점이 여러 곳 있다. 전체를 둘러보고 식사를 하는 데 3~4시간이면 충분하다.
영흥도까지는 바다를 세 번 건너야 한다. 첫번째가 12㎞의 시화방조제다. 시화방조제를 건너다보면 저 멀리 새롭게 들어선 건물이 보이는데 시화호 조력발전소와 ‘티-라이트’(T-Light) 테마공원이다. 주차장과 휴게소, 친수체험계단, 바다전망테크, 산책로, 광장 등을 갖췄다.
시화방조제를 건너면 대부도다. 여의도 면적의 4배가 넘는 큰 섬이다. 하지만 초입인 방아머리는 당최 섬 같지가 않다. 음식점이 길 양편에 도열하고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육지가 돼버린 섬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인지 왠지 씁쓸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방아머리에서 선재도 쪽으로 3㎞ 이동해 제부도 방면으로 향한다. 주변에 갯벌이 나타나면서 조금씩 섬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부도에는 여러 곳의 어촌체험마을이 있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도자기체험을 할 수 있는 세종도예원이 있다. 유리공예와 유리조형물을 감상할 수 있는 유리박물관인 유리섬, 염전 체험을 할 수 있는 동주염전 등 가족·연인 단위로 즐길 요소가 정말 많다. 대부도의 여러 체험관이나 미술관·박물관 등은 대다수가 월요일에 휴무다. 모래 대신 굴껍데기 바스락대는 해안가 ‘선재도’바다 위에 놓인 선재대교를 넘으면 선재도다. 선재도는 대부도와 영흥도를 잇는 징검다리 섬. 대부도에서 선재대교를 건너자마자 나오는 뱃말삼거리에서 유턴하듯 우회전하면 소담한 어촌마을이 나온다. 어민들의 작업용 보트들이 물 빠진 드넓은 갯벌 위에 점점이 박힌 모습이 이채롭다. 해안가에는 모래 대신 굴껍데기가 쌓였다. 이 위를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걷는 기분이 독특하다.
선재도에는 바닷길이 열리는 ‘모세의 기적’을 두 군데서 볼 수 있다. 대부도에서 선재대교를 왼편으로 볼 수 있는 2개의 섬이 그렇다. 무인도인 목섬은 선재대교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동그랗게 보이는 섬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작은 무인도로 평소엔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아련한 섬일 뿐이지만 바닷물이 빠지면 목섬을 중심으로 바닷길이 갈라지면서 조금씩 모랫길이 드러난다. 물때가 맞으면 모랫길을 걸어 목섬의 작은 숲길을 돌아보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
선재도의 또 다른 신비의 섬 측도는 목섬에 비해 규모가 큰 편이다. 측도에서도 신비한 바닷길이 열린다. 특히 측도로 이어지는 길에는 해상송전선로가 설치돼 있다. 만조 시 바닷길 한편에 꼿꼿이 서 있는 선로와 이어지는 전깃줄이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완전한 섬이던 이곳에서 물이 빠지면 바닷길이 열리면서 돌길이 드러난다. 물을 잔뜩 품은 올망졸망 매끈한 자갈길이다.
바닷물이 빠지면 차로 이동할 수도 있다. 자갈길을 건너 측도에 들어가면 조그마한 수산물 직판장이 있고 아기자기한 펜션도 여럿이 있다. 덕분에 1박2일 코스로 찾는 사람들도 많다. 바닷길이 열려야만 들어갈 수 있는 만큼 붐비지 않아 고즈넉하고 호젓한 기분을 낼 수 있다. 한가롭고 조용한 섬여행을 원한다면 측도가 제격이다. 선재리 서쪽 1㎞ 거리에 위치한 이 섬에는 17가구 38명이 거주하고 있다. 밀물 때면 선재도와 분리되고 썰물 때는 차량·도보로 통행을 할 수 있다.
드넓은 갯벌, 갈매기 노랫소리 일품 ‘영흥도’마지막으로 바다를 건너는 다리는 영흥대교다. 선재도에서 차로 5분 남짓 달리면 영흥대교다. 예전에 뱃길로 다닐 때는 1시간여를 가야 닿을 수 있던 섬이었다. 2001년 11월 1.25㎞의 영흥대교를 개통하면서 찾아가기 쉬워졌다. 사실 이 다리는 주민보다는 영흥화력발전소 건설과 관리를 위해 지은 것이다. 국내 기술진이 바다 위에 세운 최초의 사장교다.
영흥도는 고려말 익령군 기(琦)가 고려왕조가 망할 것을 알고 식구를 이끌고 피신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연흥도(延興島)라 불렀으나 익령군의 ‘영’(靈)자를 따서 영흥도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1270년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가 강화도에서 진도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영흥도를 기지로 삼아 70여일 동안 항몽전을 벌이기도 했다. 또 한국전쟁 때에는 인천상륙작전의 전초기지로 활용했다. 이래저래 사연이 많은 곳이다. 주변으로 십리포해수욕장과 장경리해수욕장, 소사나무군락지와 오래된 고송, 해양성 기후가 빚은 당도가 높은 포도가 유명하다. 청정해역의 해산물과 갯벌, 갈매기의 노랫소리가 일품이다.
영흥도에는 십리포·장경리·용담리 등 3개의 해수욕장이 있다. 섬 북쪽에 위치한 십리포해수욕장은 진두선착장에서 10리가 떨어져 붙은 이름. 해변은 길이 1㎞로 자갈밭이다. 해수욕장 뒤편으로는 수령 130년이 넘은 소사나무 군락이 멋지게 자리잡았다. 바다 너머로 인천이 보이는데 야경이 더 좋다. 장경리해수욕장은 십리포에서 서쪽으로 3㎞쯤 떨어져 있다. 해안가를 둘러싼 1만평의 송림이 우거졌다. 이곳에서 가까운 국사봉(해발 123m)은 영흥도의 최고봉. 올라서면 섬 전체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농어바위는 영흥도의 숨은 보석이다. 길이 300m로 아담한 곳이지만 군데군데 솟은 갯바위를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낭만적인 산책시간을 제공한다. 십리포에서 장경리해수욕장 쪽으로 포장·비포장길을 번갈아 10분쯤 가다가 나오는 팻말을 따라 우회전, 700m쯤 흙길을 따라 들어간다.
국사봉도 가볼 만한 곳이다. 장경리해수욕장 동쪽에 위치한 산봉우리로 해발 123m에 불과하지만 영흥도에서는 가장 높은 봉우리다. 고려가 이성계에게 망한 다음 고려의 왕족들이 이곳으로 피란해 봉우리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며 나라를 걱정했다고 해서 국사봉이란 이름이 붙었다. 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등산로도 짧아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다. 산은 야트막하지만 정상에 오르면 2층짜리 전망대가 있어 섬의 사방을 조망할 수 있다. 북쪽을 바라보면 인천 송도 신도시와 영종대교, 시화호가 한눈에 들어오며 날이 좋으면 황해도 해주의 수양산까지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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