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섬진강의 봄맛, 술안주·해장국으로 딱이죠

            
섬진강 봄 재첩 수확에 여념이 없는 하동 어민들. 재첩은 산란을 앞둔 오뉴월에 가장 짙은 맛을 품는다. 담백한 국물 맛이 일품인 재첩국(왼)
섬진강 봄 재첩 수확에 여념이 없는 하동 어민들. 재첩은 산란을 앞둔 오뉴월에 가장 짙은 맛을 품는다. 담백한 국물 맛이 일품인 재첩국(왼)
하동 신기리 강변에서 재첩을 잡으러 ‘거랭이’를 들고 강바닭을 훑고 있는 조상재씨.
하동 신기리 강변에서 재첩을 잡으러 ‘거랭이’를 들고 강바닭을 훑고 있는 조상재씨.
재첩국·재첩회·재첩전등 다양한 코스요리의 재첩 모둠 정식.
재첩국·재첩회·재첩전등 다양한 코스요리의 재첩 모둠 정식.
섬진강 하동의 재첩.
섬진강 하동의 재첩.
재첩회무침
재첩회무침

| 이달의 맛 여행 <5월> 경남 하동 재첩

섬진강 하류는 치열한 수(水) 싸움의 장이다. 남해 바다가 강어귀를 거슬러 올라치면, 지리산을 타고 내려온 물줄기가 바닷물을 하구로 몰아붙인다. 짠물과 민물의 밀고 당기기가 반복되는 섬진강에 손톱만한 조개 ‘재첩’이 자란다. 봄이 무르익으면 겨우내 강바닥 깊숙한 곳에 몸을 숨기고 있던 재첩이 얕은 모래톱으로 거처를 옮긴다. 강마을 사람이 재첩잡이에 나서는 시기도 이맘때다.

재첩은 민물조개다. 지리산 남녘에서는 강에 나는 조개라 하여 ‘갱(강)조개’라 부른다. 강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기수(汽水) 어디서든 재첩이 났던 때도 있었다. 하나 지금은 섬진강에서 국내 재첩의 90%가 잡힌다. 섬진강만큼 자연 상태로 보존되고 있는 강이 적기 때문이다. 해서 재첩은 섬진강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의 자랑거리다. 섬진강이 지나는 12개 시·군 중에서 경남 하동이 특히 그렇다. 지난달 하순 만난 하동군청 최대성(54) 계장은 “재첩은 섬진강이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운을 뗐다.

“남해 바다가 섬진강 강줄기에 재첩의 먹이가 되는 플랑크톤을 실어 나릅니다. 섬진강의 너른 모래밭은 재첩의 산란장 역할을 하고요. 재첩은 하동의 청정함이 깃든 먹거리입니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하동을 마주보는 전남 광양에서도 재첩을 잡는다. 그러나 1950년대부터 하동에서 재첩을 사고파는 거래가 이뤄진 까닭에 재첩에는 으레 하동이라는 지명이 따라붙는다. 지난해 하동수협에서 거래된 재첩은 약 1000t으로 거래액은 5억원에 이르렀다. 개인이 거래하는 몫까지 합치면 하동은 재첩만으로 연간 100억 원의 수익을 얻는다고 한다.

재첩 수확기를 맞으면 조용했던 강 마을은 이내 활기를 띤다. 재첩잡이를 업으로 삼는 어민도, 찬거리를 마련하려는 아낙도 소매를 걷어붙이고 섬진강으로 향한다. 19번 국도를 타고 달리면서 내려다본 섬진강에는 재첩잡이에 나선 어민이 여럿이었다. 하동 신기리 강변에서 재첩을 잡으러 나온 조상재(54)씨를 만났다. 조씨는 대나무 끝에 부챗살 모양의 쇠갈퀴가 달린 일명 ‘거랭이’를 들고 강바닥을 훑고 있었다.

“하동에서는 모래톱을 두고 ‘조개등’이라고 불러요. 음력 3월이 되면 재첩이 산란을 준비하러 얕은 모래로 올라옵니다. 날이 후텁지근해지면 모래 사이로 재첩이 보일 정도예요.”

조씨가 거랭이를 강물에 헹구니, 모래는 쓸려나가고 반질반질한 재첩만 덩그러니 남았다. 이날 조씨는 두어 시간 작업 끝에 15㎏ 들이 고무통 절반을 채웠다.

“어디서 잡느냐, 언제 잡느냐에 따라 재첩이 다 달라요. 상류에 사는 것은 패각(껍데기) 색이 옅고, 하류 것은 거무튀튀합니다. 그래도 지금부터 6월까지 잡은 재첩이 제일 맛있어요. 여름에 산란을 하기 전까지 재첩이 몸을 불리거든요.”

봄 재첩을 맛보기 위해 하동읍으로 방향을 돌렸다. 하동에는 853개 식당 중에서 138개 식당이 재첩을 다룬다. 하동읍 재첩특화마을에 식당 5곳이 어깨를 잇대고 있는데, 재첩국·재첩회·재첩전 등 다양한 재첩 요리를 코스로 낸다. 재첩특화마을에서 만난 해성식당 정현숙(55) 사장은 봄 재첩을 손질하기 바빴다. 가마솥에 재첩과 물을 1대1 비율로 맞춰 넣고 한소끔 끓였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뽀얗고 푸르스름한 국물이 우러나왔다.

“봄 재첩을 냉동해서 여름에도 써요. 여름 산란기에는 봄 재첩처럼 진한 국물이 나오지 않거든요.”

삶은 재첩 살만 따로 모아 초장에 찍어 먹는 재첩회무침, 재첩 살을 가득 넣고 부친 재첩전의 맛은 호화로웠다. 그러나 역시 백미는 재첩을 우려낸 국물이었다. 정 사장은 부추를 너푼너푼 썰어 넣은 재첩국을 쭉 들이키라 권했다. 하동 사람이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맛보고, 술안주로 먹고, 이튿날 해장국으로 또 삼킨다는 그 국물은 풋풋했다. 담담한 국물에 섬진강의 봄이, 하동의 추억이 배어 있었다.

● 여행정보=서울시청에서 경남 하동까지 자동차로 약 4시간 걸린다. 하동군청 근처 재첩특화마을에 재첩 전문 식당 5곳이 모여 있다. 해성식당(055-883-6635)에서 모둠 정식을 시키면 재첩국·재첩회 등을 맛볼 수 있다. 2인 이상 주문 가능하다. 1인 1만5000원. 오는 7월에는 하동 송림 인근에서 ‘알프스하동섬진강재첩축제’도 열린다. 직접 재첩을 잡아볼 수도 있다. 하동군청 문화관광실 055-880-2384. 지역 특산물 온라인 장터 농마드(nongmard.com)에서 섬진강 재첩으로 만든 재첩국을 판매한다. 1인분(300g) 10개 들이, 2인분(500g) 6개 들이 각 3만원. 02-2108-3410.

농마드는 ‘농부 마음을 드립니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가 운영하는 온라인 생산자 실명제 쇼핑몰입니다.

글=양보라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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