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할머니 祈禱

 

20세기의 마지막 해 1월 21일 아침 11시, 서초동 법원 5층 복도에는 
한겨울의 싸늘한 기운이 가득 차 있었다. 

법정으로 바쁘게 들어서던 나는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몸집이 작은 할머니 한 분이 
문 잠긴 다른 법정 앞에서 절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뼈가 시릴 만큼 차가운 바닥 위에서 홑겹의 바지를 입고, 
잠시도 쉬지 않고 엎드려 절을 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곧 쓰러질 것 같이 위태로워 보였다. 

내심 아마도 죄 지은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거라고 짐작했다.  

 

“할머니 무슨 일이신데 이렇게 추운 데서 기도하세요?”
나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할머니는 조금은 불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지는 우리 아들을 감옥에 집어넣은 못된 에민기라요.”
할머니의 눈에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눈물이 고였다.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면서 호소한 내용은 이랬다. 
할머니의 아들 내외는 둘 다 약대를 나와 함께 약사시험을 쳤는데
 며느리만 합격해 하는 수 없이 며느리 이름으로 서울 변두리에 
조그만 약국을 열었다. 

 

 

그 뒤 아들은 공부를 계속하고 며느리는
 약국을 경영하면서 생활을 꾸려 갔다. 

하지만 여자 혼자 약국을 경영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늦은 밤 젊은 며느리 혼자 약국을 
지키다가 동네 불량배들한테 봉변을 당할 뻔했고, 

이따금씩 술취한 손님들이 희롱하며 덤벼들기도 했다.  

 

부산에 사는 할머니는 오랜만에 아들집에 다니러 왔다가 

이런 며느리의 모습을 보고 속이 무척 상했다. 

한편으론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아들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할머니는 집에서 공부만 하는 아들을
 다그쳐 약국으로 내보냈다. 

아내와 함께 약도 팔고 조제도 해주라고 몰아세운 것이다. 

아들은 어머니의 말을 따랐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아들은 세 번째 도전한 약사 시험에 합격했다. 
이제 면허증을 받으면 흰 가운을 입고 

당당히 약사 노릇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행운이 다가올 때 늘 악마가 먼저 시기하는 법일까.
 갑자기 무면허 약사를 적발하는 단속이 나와 아직 약사 면허가 
나오지 않은 아들이 그만 구속되고 말았다. 

법은 국민건강을 위해 엄격한 약사법을 규정하고 있다. 
약사 면허증이 없으면 약국을 개설하지 못하고, 

의약품을 판매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을 위반할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전과자가 되면 있던 자격도 박탈된다. 

“아들을 맨날 구박만 했어요. 

며느리는 약사인데 아들은 약사가 못 되었으니까요.

 그것만 해도 녀석은 마음 고생이 심했을 텐데…. 
이제 에미 때문에 감옥살이까지 하는기라요.”

할머니는 오열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콧잔등이 시큰했다.

 도와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 변호사는 선임하셨어요?” 
“우리 며느리가 변호사는 댔어요.”

다행이었다. 나는 그 변호사가 이 할머니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어떤 면에서 재판은 기계적이고 냉혹할 때가 있다. 
사법경찰관리가 작성한 수사기록 안에는 위법만 있을 뿐 

온정은 없다.
 검사의 공소장 역시 자격 없이 약을 팔았다는 

몇 줄의 생명 없는 보고서인 게 현실이다.

 이럴 때 어떻게든 재판장의 피를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요소가 필요하다.

 그게 뭘까. 

몇 년 전이었다. 상습절도범으로 구속된 

한 소년의 어머니가 나를 찾아왔다. 

사십대 초반인 그녀는 수원역 광장 한 모퉁이에서
 핫도그를 파는 노점상인이었다.

 그녀는 하얀 손수건 속에 꽁꽁 뭉친 백만 원을 내게 내밀었다. 

얼굴에 가득 낀 기미와 누런 피부는 
그녀를 칠십 노파처럼 보이게 했다. 

찌든 삶이 그녀를 늙게 만든 것이다.
 나는 그 돈을 만들기 위해 

핫도그를 몇 개 팔아야 했느냐고 물었다.

 한 개 팔면 백 원짜리 동전 네 개가 남으니까 

핫도그 2천5백 개를 팔아야 남는 돈이라고 했다. 

그녀는 훔친 돈으로 놀기에 바빴던 
못된 아들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상습절도범인
 아들에게는 아무런 정상참작의 사유가 없었다.

나는 법정에서 그 소년의 어머니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단속원 눈치를 보며 팔아야 했던 핫도그 갯수를 이야기했다.

 어머니의 눈물겨운 희생과 사랑을 강조했던 것이다.

 마침내 그 어머니의 정성으로 소년은 석방됐다. 

어머니의 치열하기까지 한 사랑은 자식이 어떤 음침한 
골짜기에 있더라도 살려낼 힘이 되는 것이다.

그 일을 떠올리면서 나는 할머니의 담당 변호사가 기도하는

 이 모습을 꼭 보았으면 하고 마음으로 희망하고 있었다. 

“할머니, 아드님은 잘 될 겁니다. 만약 재판이 끝났는데도 
아드님이 나오지 못하면 저를 찾아 주십시오.”

나는 명함을 꺼내어 할머니에게 조심스럽게 건네주었다. 

"
선생님 요, 정말 고맙습니다.”

한마디 위로에 할머니의 얼어붙은 얼굴이 조금 풀어지는 듯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다시 차가운 바닥에 엎드려 기도를 시작했다. 
할머니의 작은 어깨가 가냘프게 떨리고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나 재판을 마치고 나오는데 할머니는 아직도 
법정 앞에서 얼어붙은 망부석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슬며시 걱정이 됐다.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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