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라 빛을 발하라(광복절)이사야 60:1-7
오늘은 광복 00주년을 맞으며 예배드리는 주일이다. 1945. 8.15. 일본의 속박의 굴레에서 되었다. 해방이 되고서 비로소 우리는 자유란 말을 들었고 배웠다. 처음엔 정치적 자유만 있으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경제적 자유가 없으면 정치적인 자유도 소용이 없음을 알았다. 또한 지적인 자유도 필요하다. 무식하면 자유인이 아니다. 사상적으로 속박되면 그것 역시 자유가 아니다. 위험한 사상에 붙들리기라도 하면 거기서 헤어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잘못된 세계관에 붙들릴 수도 있다,
우상과 미신에 붙들릴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에 사로잡혀 노예가 되고 자유를 잃어버린 적이 많았다. 이제 우리는 참 자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얻어지는 것인지, 그 대가가 얼마나 큰지, 자유에 따르는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비로소 해방 00년 동안에 배워오기 시작했다. 오늘도 배우고 있고, 앞으로도 배워야 할 것이다. 자유의 가치를 모르면 자유하지 못한다. 자유를 지키지 못한다. 참 자유는 오직 하나님 안에 있다. 하나님께서 자유케 하실 때라야 자유할 수 있고, 하나님의 그 능력과 은총에만 자유함이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자유하고, 진리를 따라 삶으로 자유하고, 진리의 노예가 됨으로 자유하고, 사랑에 매임으로 자유 한 것으로 이 자유의 참 뜻을 알아야겠다.
자유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언제나 투쟁을 통해 자유를 얻으려한다. 이를 가리켜 변증법적 유물사관이라 한다. 즉 싸워 투쟁을 통해 얻어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공산주의자들에겐 늘 따라다니는 용어가 있고, 철학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혁명”이다. 여러분 해방 후 오늘까지 그들은 혁명 혁명해왔는데 아직도 혁명이다. 00년 동안 혁명한답시고, 이 사람 저 사람 잡아 죽이고 추방과 감금을 하고도 아직도 날만 새면 혁명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가야 끝날 것인가? 뿐만 아니라 입만 벙긋하면 투쟁이다. 투쟁이 체질화 됐다. 투쟁으로 얻어진다고 하던 자유는 온데 간 데 없고 투쟁만이 계속된다. 싸움의 연속이며, 피의 연속이다. 남은 것이라곤 증오뿐이다. 증오와 분열, 싸움과 파괴가 저들 사회에서 지라하게 이어지고 있다. 투쟁자체가 목표인양 되고 말았다.
그런가하면 자유주의, 소위 자본주의는 어떤가?
자본주의의 철학은 경쟁을 통해서 자유를 얻고져 하는 것이다. 끝없는 소유욕, 끝없는 경쟁이 그 생활 철학이다. 공부도 더 열심히, 돈도 더 많이, 집도 더 좋은 집, 그저 더 잘살아 보겠다고 경쟁에서 경쟁으로 치닫는다. 그러다 지쳐 쓰러지는 사람들을 본다. 끝없는 소유욕과 경쟁의 악순환 속에서 영혼들이 지쳐 쓰러지는 것이다.
여러분!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투쟁과 경쟁, 이 잘못된 방법 때문에 목적 마저 잃었다. 목적이 사라져 버렸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결과인가? 인간성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그 투쟁과 경쟁 때문에 우리의 체질이 변하고 속박 받게 된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이것이 공산주의와 자유주의가 함께 인간을 노예화 하고 있는 결정적인 문제다. 목적은 있는 것 같은데 사실은 없었다. 스스로 지혜로운 체 했지만, 어리석었다.
여기서 얻어지는 결론은 인간은 스스로 자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가 만든 함정, 자기가 만든 굴레에서 벗어 날 재간이 없다. 죄에서 자유하는 길 말고는 자유 함이 없다. 영혼이 자유하지 못하면 참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주님은 요한복음 8:36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고 말씀하셨으니, 즉 예수께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영혼을 구원하시는 그 자유케 하시는 역사가 근본이요, 이에 뿌리를 두지 않는 한 자유 함이 없다는 말씀이다. 어느 사회, 어떤 제도의 틀에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께서 자유케 하시는 그 자유 안에 참 자유가 있다.
이런 뜻에서 오늘 본문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제시하고 있다.
① 본문 1에“네 빛이 이르렀다”즉 빛이 임했다 고 했다.
하나님의 빛, 구원의 빛, 계시의 빛, 지혜의 빛이 임했다. 어둠 속엔 자유가 없다. 뭐니 뭐니 해도 영적으로 어둡고, 지적으로 어두운 것, 그리고 생활의 어두움처럼 무섭고 답답한 속박은 없다. 빛 안에 깨달음의 자유가 있고 식별의 자유가 있고, 행함의 자유가 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은 ”일어나 빛을 발하라!“ 즉 자유케 하라는 말씀이다. 빛 안에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② 본문 4에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이는 영적으로 자유 할 때에 회복케 하시는 자유가 있다. 즉 관계성을 회복케 하시는 것이다.“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흩어졌던 가족이 다시 모인다. 다시 만나게 되고 반가워하게 된다. 증오하는 곳엔 자유가 없다. 사랑하고서야 자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샬롬, 그 평화, 그 화평 속에 자유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유케 하시는 자유는 화평 자체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③ 본문 5下“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즉 자유 할 때 부해 진다는 것이다.
여러분! 참 이상한 것이 있다. 너무도 상식적인 이야기가 되고 말았지만 세계 여러 나라를 볼 때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잘 살 것 같은데 대체로 잘 못 산다. 그리고 천연자원이 없는 나라, 기름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나라가 오히려 잘 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잘 살고 못 살고는 결코 천연 자원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결국은 지식의 문제요, 지식의 문제는 교육의 문제요, 교육의 문제는 사상의 문제다. 어두움 가운데는 풍요가 없다. 이제는 온 세상에 어디를 가든지 사회주의 국가는 지긋지긋하게 못 산다. 왜 못사느냐? 사회주의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래서 사회주의를 거지주의 라고도 빗댄다. 그 주의가 사람을 변질시켰다. 일을 해도 육체노동만 고무시켰지 정신노동에 대해선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탐구하고 연구하지 않으니 무슨 발전이 있겠는가? 중국 북경대학생들의 이야기다.
“우리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쓰레기통에 내다버린 사회주의를 한국 대학생들은 쓰레기통을 뒤져가면서 찾고 있다”고 "그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한다. 온 세계가 쓸 수 없는 물건이라고 폐기 처분한 사회주의를 어찌되어 이 나라 젊은 학도들이 그처럼 동경하고 있는지 도대체 그 이유를 모르겠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역사가 분명히 말해 주고 있다. 사회주의 가지고는 안 된다. 사람도 문화도 경제도 다 망친다. 신앙이 바로 될 때 교육이 바로 되고, 사상이 바로 되고 나아가 풍부함이 있는 것이다.
例: 동남아를 여행 해보면 참으로 불쌍하게 못 산다. 어떤 사람이 자동차를 후진 하다가 그만 뒤에 서있는 어린이를 치어 죽였다. 이 죽은 아이의 부모를 찾아 용서를 빌 때 어떻게 보상해야 되겠느냐 했더니 그 어머니 曰“전혀 태연한 얼굴로 그 애 말고도 자 식이 많은데 뭘 그러시느냐고, 괜찮다고, 그냥 가라”는 것이다.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자유케 하시는 것은 마침내 물질에 까지도 풍부하고 여유 있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사상적으로 잘 못되고 이데올로기에 노예가 될 때 가난에 빠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본문 7下“영화롭게 하리라”는 것이다. 우리를 의롭다하시고, 의를 회복케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쳐 주신다는 말씀이다. 이것이 바로 영화롭게 하시는 역사로 이 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고린도후서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 함이 있느니라”
요한복음8:32“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받은바 자유를 하나님께 반납할 때, 그리하여 사랑에 매이고, 하나님께 매일 때 오히려 자유함이 있는 것이다.
結論: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광복 00주년을 맞으며 우리 모두 일어나 빛을 발하여 이 조국과 이 민족으로 하여금 진리 안에서의 자유를 구가할 수 있는 나라와 백성이 되기 해 그리고 주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일하는 성도들이 되기 바란다.
찬송 502 빛의 사자들이여 어서 가서 어둠을 물리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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