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와 장어의 싱그런 '뻘'맛, 강화도 맛기행

        가무락 조개
가무락 조개
가무락 조개탕
가무락 조개탕
갯벌 장어
갯벌 장어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영양덩어리’ 강화도”
“감칠맛 도는 가무락 조개부터 살집 탄탄한 갯벌장어까지”

4개의 대학과 고고장, 캬바레, 스탠드바, 볼링장, 연탄공장, 홍등가, 도깨비 시장… 70~80년대 신촌은 화려했다. 함성과 고성이 오가고, 투기와 열기가 넘치는 용광로 같던 그 시절. 한 복판에 강화버스터미널이 있었다. 로터리에서 적당히 떨어진 이 공간은 ‘신촌인’들의 아지트였다.

터미널을 중심으로 상가와 식당, 파출소, 주택가가 펼쳐졌다. 햇살이 기지개를 켜는 새벽녘부터 자정까지 이 성지와도 같은 곳을 외면할 자유가 우리에게는 없었다. 섬이 아닌 섬으로 연결해주는 베이스캠프. 자동차가 없던 시절 일탈을 꿈꾸게 해주었던 마지막 정거장.

‘강화’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도파민의 원천이었다. 신촌 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내 아버지는 퇴근길 포장마차에서 늘 강화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리로 연결된 섬, 어마어마한 크기의 갯벌, 단군 신화, 성화 봉송… 그 신비의 섬에 발을 디딘 건 그 뒤로 한참 후의 일이다. 프로듀서가 아니었다면 아마 평생 오지 않을 기회였을 지도 모른다.

한반도에서 4번째로 큰 섬, 강화도는 영양 덩어리다.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이 섬이 자리한다. 강줄기가 세 개나 강화도로 쏟아진다. 예성강, 임진강, 한강. 그래서 늘 먹이가 풍부하다. 그 덕에 예서 노니는 수산물들은 포동포동하다. 귀한 녀석부터 꼽아보자면!

음~ . 그렇지! 가무락 조개가 으뜸이다. 껍데기가 새까맣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가무락. 거개의 국민들은 모시조개란 이름으로 알고 있다. 백합과의 귀하디귀한 녀석이다. 바지락이나 동죽과는 달리 먼 바다에서 산다. 그것도 군락이 아니다. 뭉쳐 사는 법이 없어 갯벌의 숨구멍을 하나하나 뒤져야 겨우 몇 마리 건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조개들은 쇠스랑으로 긁으면 한 주먹씩은 걸리기 마련이다. 그럴 일이 없기에 가무락이 귀족 대접을 받는다. 뻘을 성큼 성큼 내딛어 반나절은 돌아다녀야 망태기 하나를 채울까 말까다. 대신 정신 나갈 정도로 맛있다. 깨끗이 손질한 녀석은 양념이 필요 없다. 그저 커다란 전골냄비에 쏟아 붓고 물만 조금 넣어 딱 한소끔 끓이면 입이 쩍쩍 벌어진다.

속살이 노르스름하다. 게다가 암팡지다. 조갯살 하나를 꺼내 물고 슬그머니 깨물면 달쪼롬한 바닷내가 입안으로 쏟아진다. 혀를 깨물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거짓말 좀 보태면 혀까지 삼킬 정도로 감칠맛이 기가 막히다. 아쉬운 건 개체수가 적어 가무락만 따로 다루는 전문점이 없다는 사실. 단 강화도 전역에 퍼져 있는 조개전문점에서 추가로 주문을 하면 어느 정도 갈증이 해소된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뜨끈한 육수가 그립다면 가무락 조개탕을 시켜보면 어떨까. 다진 마늘 한 숟가락에 채 썬 파 한 웅큼이면 사나흘 전 마신 알코올도 씻겨 내려간다.

침이 마르는 가무락 칭찬에 발끈하는 녀석이 있다. 음흉하게도 생겼다. 반지르르한 게 기생 오래비 같기도 하고. 강화도가 자랑하는 갯벌장어 되시겠다.

장어는 치어를 잡아야만 양식이 가능하다. 아직 인간의 기술이 여기까지다. 안간힘을 써서 바늘만한 치어를 잡는다. 고이 모셔 키우면 성어가 된다. 그 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녀석들을 갯벌에 놓아먹인다. 그럼 야생성을 되찾는다. 살이 좀 마르긴 하지만 더 ‘보양식스럽게’ 변한다. 토할 건 토하면서 근육을 키운다. 살집이 탄탄해지는 까닭이다.

TV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녀석이 바로 이 친구다. 주인장이 호기롭게 풀어놓은 장어를 잡느라 비명을 질러대는 전국의 리포터들을 우린 꽤 자주 보아왔다. 전라도 고창에서는 순치장어라 부르기도 한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서해안에 있는 그 많은 갯벌을 놔두고 왜 하필 강화로 모이는 걸까? 그 해답은 갯벌 속에 있다.

전 세계 5대 갯벌로 꼽히는 강화의 그것은 ‘뻘’로 구성되어졌다. 모래로 된 갯벌도 있고, 두 가지가 섞인 혼합형 갯벌도 있다. 단위 면적당 먹이 개체수가 가장 많다는 뻘 갯벌 덕분에 조개도 장어도 맛있어진다. 자 그럼 이놈의 갯벌 장어를 어찌 먹어야 제대로 먹었다는 소리를 들을 것인가?

손질한 장어를 불판 위에 가지런히 뉘여 놓고 굽는 것까지는 크게 다르지 않다. 앞 뒷면을 지지고 모로 세워 다시 두면을 굽는다. 까슬하고 노릇하게 구워지면 제일 먼저 씻은 묵은지를 곁들여 입으로 넣는다. 콤콤한 김치가 찢어지면서 흐르는 국물이 장어를 감싸 안는다. 묘한 쾌감이 살살 오른다. 명이나물도 나쁘지 않다. 단 새콤함이 강해 장어의 참맛을 잃을 가능성도 있으니 순서를 뒤로 물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개인적으로 강화 갯벌 장어에게 최고의 파트너는 순무김치라고 주장하고 싶다. 나박하게 썬 순무를 한 조각 올려 장어와 함께 깨물면 제일 먼저 와그작 소리가 귀를 울린다. 삼키기도 전에 포만감이 채워진다. 강화 순무는 맵싸하다. 그것도 발효가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라면 그 정도는 배가 된다. 이게 묘미다.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장어의 새로운 장르가 열린다. 어찌나 맛이 있는지 앞에서 젓가락을 내미는 아내가 미워질 정도다. 외포리에 가면 장어집 어느 곳을 들어가도 도긴개긴이다. 순무를 품은 장어의 맛이 궁금하다면 이번 주말 강화행을 추천한다.

P.S.
사랑하는 사람이 들려주는 강화도 이야기는 분명 천일야화보다 재미있을 것이다. 차 안이든 버스 안이든 손 꼭 잡고 들려주는 다리로 연결된 섬, 어마어마한 크기의 갯벌, 단군 신화, 성화 봉송 이야기는 맛(味 )진 여행의 덤이다.

◆ 김유진 김유진제작소 대표는 올해로 21년째 음식 관련 방송을 제작하고 있다. 13년 동안 컨설팅을 통해 성공시킨 레스토랑이 200곳을 넘고, 국립중앙박물관 식음료 총괄 컨설턴트를 맡았다. MBC프로덕션 PD로 일하던 그는 순전히 ‘맛’ 때문에 피디 생활을 마치고 요식업계에 뛰어들었다. 맛있는 요리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면 100시간 내로 맛을 보고야 만다. 울릉도 옆 죽도에서 출발해 동해, 남해, 서해를 거쳐 백령도까지 44개의 섬을 취재하고 대박의 비결까지 섭렵한 대한민국 유일한 칼럼니스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뭘 먹을까?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하루를 보낼까만 연구한다. 아침을 먹으면서 점심 고민하고 점심 먹으면서 저녁 고민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식탐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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