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이영훈목사

온 땅이여 야훼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야훼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야훼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야훼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시 100:1~5)


 오늘은 시편 100편 1절로 5절 말씀 가지고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우리 크리스천의 일생은 감사의 일생이 되어야만합니다.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아 하나님 자녀가 되었으니 예수 믿는 그날부터 하늘나라 갈 때까지 우리의 입에서는 넘치는 감사가 주님께 올려져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감사와 찬양을 기뻐 받으십니다. 그래서 신앙이 성숙하면 성숙할수록, 신앙의 연륜이 쌓이면 쌓일수록, 교회 직분을 받으면 더 받을수록 더 넘치는 감사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됩니다. 신앙생활은 오래했는데 그 삶에 감사가 없다고 하면 그것은 무엇인가 잘못된 것입니다. 문제를 만나도, 어려움 당해도, 환난 가운데서도 넘치는 감사로 나아갈 때 하나님 기뻐하시고 그의 삶 가운데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심해야 됩니다. “주님, 한평생 감사하며 살기 원합니다. 어떤 문제와 어려움을 당해도 넘치는 감사로 주님 앞에 나아가겠습니다.”

 1. 찬양과 감사

 첫째로, 우리의 일생 동안 찬양과 감사의 삶을 살아야 될 것에 대해서 함께 은혜 나누기 원합니다. 시편 100편 1절과 2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온 땅이여 야훼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야훼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이 시편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성전에 올라가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귀한 은혜의 찬송입니다. 그런데 주님께 나아갈 때 기쁨과 즐거움을 가지고 나아가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 땅이여 즐겁게 주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즐거운 소리로 찬양하라’는 이 표현의 원어 내용을 보면 환호를 지르며 기뻐 뛰고 즐거워하며 주님을 찬양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기쁨과 감사함으로 주님을 찬양해야 됩니다. 어저께 뉴스를 보니까 페루가 월드컵에 나가게 되었는데 그 시합에서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골이 들어갈 때마다 페루에서 지진이 측정되었대요. 그런데 그 시간을 보니까 골이 들어갈 때 “와!” 소리를 지르면서 막 온 국민이 난리를 하니까 그것이 진동이 와가지고 지진계에 잡혔다는 거예요.

 저는 그 뉴스를 보면서 ‘아니 우리가, 이렇게 구원받은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올 때는 그렇게 막 온 환호성을 지르며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주님을 찬양하지 못하는데, 세상 사람들은 골 하나만 넣어도 그냥 지진계가 움직일 정도로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고 하니 우리가 한참 감사가 부족하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넘치는 감사로 나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과 감사를 기뻐 받으십니다. 이사야 43장 21절에 말씀합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찬양과 감사로 나아갈 때 하나님 기뻐 받으시고 하늘의 문을 활짝 여시사 쌓을 곳이 없도록 넘치게 우리에게 은혜와 축복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호흡이 다하는 그날까지 우리 입에서 찬양과 감사가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이 성숙하면 성숙할수록 신앙의 연륜이 쌓이면 쌓일수록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무장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긴 책인 시편 맨 마지막의 결론입니다. 시편 150편 6절에 말씀합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야훼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여러분의 호흡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가 여러분의 운명을 바꾸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절망에 처했을 때 감사하면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되고,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문제가 변하여 응답과 축복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짧은 인생길 지나가는 동안에 넘치는 감사와 찬양으로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백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말씀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고 그 행위를 옳다 하시고 우리에게 복을 내려주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감사하지 아니하면 그 행위가 옳은 것이 아니고 잘못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습관적으로 원망하고 불평하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그러한 모습을 가졌다고 하면 이 순간부터 바꾸어야 됩니다. 입만 열면 늘 남의 문제점만 지적하고 부정적인 얘기만 쏟아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삶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감사가 없습니다. 뭐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입술이 바뀌어 감사하는 입술이 되면 그 다음부터는 모든 것이 잘 풀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대인관계도 잘 풀리고, 건강도 좋아지고, 내가 하는 일에 정말 아름다운 열매가 맺혀지고, 범사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1620년,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영국에서 102명의 청교도가 메이플라워호라고 하는 배를 타고 65일 간을 항해해서 미국 북동부 지역에 매사추세츠의 플리머스라는 지역에 도착을 했습니다. 이 102명이 이 배를 타고 있었는데 이 102명을 기념해서 지은 빌딩이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입니다. 102층으로 되어있는데. 그해 겨울을 지나면서 마흔네 명이 추위로, 굶주림으로, 병으로 죽었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그 플리머스 지역에 도착했을 때 제일 먼저 한 것이 교회를 지은 일이고 그리고 감사의 예배를 드린 일입니다.

 그리고 봄이 되어서 저들이 나가서 농사를 짓는데 대부분이 농사를 지어본 일이 없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그 지역 원주민들의 도움을 받아서 농사를 지어서 가을 첫 수확을 거둬들이게 되었는데, 그 수확이 그렇게 풍성한 것이 아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넘치는 감사를 드렸습니다. 영국에 모든 자신들의 삶의 기본 재산을 다 내려놓고 왔는데, 전 재산을 다 영국에 내려놓고 온 것에 대해서 그들이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또 65일 동안 배를 타고 오면서 고생했던 것에 대해서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해 겨울이 지나면서 마흔네 명이 죽은 것에 대해서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 한 해 동안 크게 고생해서 수확이 별로 많지 않은 것에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은혜에 대해서 넘치는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수확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또 고기가 필요했기 때문에 당시 날짐승이었던 칠면조를 잡아서 음식을 해서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 자신들을 도와주었던 인디언들을 초청해서 3일 동안이나 감사 예배를 드리고, 많은 사람과 함께 그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이것이 미국의 건립 정신입니다. 기독교 정신, 감사 정신. 할렐루야!

 이것이 북동부 지역으로부터 시작해서 온 지역에 확산되었습니다. 그래서 11월 말쯤 되면 너도나도 모여서 감사하게 되었는데, 남북전쟁이 한창이었던 1843년,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공휴일로 선포했습니다. 전쟁 중에, 또 북군이 남군에게 막 밀려서 많은 피해를 입고 있었을 때, 그런 고난 중에 감사를 선포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데 감사하자. 진정한 감사는 고난 중에 감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 절기를 지켜오다가 1941년에 루즈벨트 대통령이 11월 넷째 목요일로 고정을 해서, 넷째 목요일은 추수감사절로 지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가장 큰 명절은 11월 넷째 목요일인 추수감사절인데, 수, 목, 금, 토, 주일, 닷새를 추수감사절 절기로 지킵니다. 그때는 흩어졌던 가족들이 다 모여서 함께 모여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고 예배드리고 주 앞에 감사를 드리는 그러한 귀한 시간을 갖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뼈아픈 남북 갈등에서 비롯된 미망인, 고아, 가까운 이를 잃어 슬퍼하는 자, 전쟁으로 고통받는 자들을 포함한 모든 미국인과 상처 난 미국에 하나님의 돌보심을 구합니다.

 길선주 목사님은 추수감사절에 대한 기도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조선에서의 감사절은 어두운 조선에 기독교 복음이 들어와서 교회가 세워진 것에 대한 감사에서 시작되었다. 초기 한국 기독교인들은, 비록 나라는 외세의 침략으로 주권을 잃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 놓여 있었지만, 기독교의 전래는 우리 민족의 운명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추수감사절은 수확한 곡식과 열매로 인해서라기보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감사하는 날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의 감사절은 어두운 이 나라에 하나님께서 은혜의 복음을 보내주신 것을 감사하는 날이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여러분, 진정한 감사는 고난 중에 드려진 감사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무슨 어려움을 당하든지, 문제를 만나든지, 가족 중에 누가 아프든지,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많은 고난에 처했다고 할지라도, 주님 앞에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려드리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둘째로, 우리를 지으시고 돌보신 하나님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시편 100편 3절은 말씀합니다.
야훼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시고 돌보시고 우리의 한평생을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믿고 의지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시고 돌보신다. 하나님만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신다. 할렐루야! 시편 62편 7절입니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나의 구원이 나의 영광이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피난처가 되시고 나의 반석이 되시고 나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만드실 때에 모든 만물과 구별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는 것이 눈, 코, 입, 우리와 같은 그러한 형상이 아니라 영적인 존재로 만들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창세기 1장 26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2장 7절에도 말씀합니다.
야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다음 ‘후’하고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는데 그 생기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래서 히브리 언어로 ‘루아흐’라고 하는데 이 루아흐라는 말은 영으로 번역하기도 하고 숨으로 번역하기도 하고 바람으로 번역하기도 하고 생기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헬라말로 바뀔 때 ‘프뉴마’라고 합니다. 프뉴마. 우리 청년국에 프뉴마라고 하는 부서가 있는데요, 이 프뉴마라는 뜻이 이 루아흐라는 말이고 그 말이 하나님의 영이다. 하나님의 생기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흙으로 사람을 지은 다음 ‘후’하고 하나님의 영을 불어넣으심으로 이제 우리가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만물의 영장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놀라운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귀한 역사를 이루어나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7절은 말씀합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할렐루야!

 지금은 인도네시아에서 사역하고 계신 이용규 선교사님이 최근에 가정에 대한 책을 하나 쓰셨습니다. 제가 엊그제 그 책을 받아서 오늘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책을 좀 펼쳐보았습니다. 보면서 그 선교사님의 진솔한 간증을 통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내용 중에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몽골에서 사역하는 중에 그 학생 한사람과 상담을 하는데, 신앙이 들어갔는데 많은 고난이 있는 거예요. 그리고 동생이 자살을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어떻게 우리 가정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하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 열심히 주님 뜻을 따라 살려고 하는 데도 되는 일이 없이 다 집안일에 어려움만 다가오고 또 동생은 자살을 하고...’ 그래서 신앙을 포기하려고 할 때, 그때에 선교사님이 질문을 한 가지 합니다. “너는 하나님 한 분으로 충분하냐?” 그 말씀을 듣고 보니까, 자기는 하나님 한 분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고, 자기가 잘 살아보려고 했고, 자기가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 많았던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모든 문제들을 만날 때마다 그것이 내게 절망이고 아픔이고 상처고 슬픔이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 다 맡겼더라면 내가 이런 상처가 없었을 터인데... 다 하나님께 맡겼더라면 내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안 생겼을 터인데... 그래서 그 자매가 말씀 듣고 다시 자신을 돌이키게 되었다는 얘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 자신에게 물어봤습니다. ‘너는 하나님 한 분으로 충분하냐?,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냐?’ 우리가 늘 자신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합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멘은 잘하는데 살다보면 그렇지 않은 게 많아요. 왜 상처를 받습니까? 하나님 한 분으로 충분하지 않으니까 상처를 받는 거예요. 내가 하려고 하니까 상처가 되는 거죠. 하나님께 다 맡겼다면 상처받을 일이 없어요. 왜 분노합니까? 내가 하고자 하는 뜻대로 안 되니까 분노하는 거예요.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해야 하는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왜 다툽니까? 하나님이 문제를 다 해결해주실 것인데 내 뜻대로 하려고 그렇게 주장을 하다보니까 다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만이 홀로 존귀하시고 모든 것을 이루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오늘 이후로 우리의 믿음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러한 모습이 되어서 “다 맡깁니다. 내 문제도 맡기고, 내 가정도 맡기고, 내 자녀도 맡기고, 다 맡깁니다. 다 맡깁니다!” 그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늘 물어보세요. ‘하나님 한 분만으로 내가 만족한 삶을 살고 있는가?’ ‘하나님 한 분만으로 내가 충분한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하나님 외에 돈도 필요하고, 높은 자리도 필요하고, 내가 나를 따르고 추종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자꾸 여러 가지 조건을 따진다고 하면, 아직 나는 주님 보시기에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하면 하나님이 주실 것인데 순서가 바뀐 거예요. 내가 다 모든 것을 챙기고 나서 하나님을 찾으려고 하니까 이것도 저것도 다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도록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백성 되기를 바랍니다.

 3.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감사

 셋째로, 우리는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인하여 감사하여야 할 것입니다. 100편 4절 5절입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야훼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선하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완전하고 흠이 없으신 하나님.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에요. 우리는 불완전하고 하나님은 완전합니다. 하나님은 흠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흠이 많고 하나님은 흠이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무어냐? 나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것이 우리 믿는 자들의 본분인 것입니다. 시편 29편 1절로 2절은 말씀합니다.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야훼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야훼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야훼께 예배할지어다

 우리를 사랑하신 그 놀라운 사랑을 인하여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보면 얼마나 문제가 많았던 사람인지 모릅니다. 죄짓고 불의하고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때때로 남을 짓밟고 피해를 주었던 적도 있습니다. 나의 어떠한 일을 이루기 위해서 거짓말을 한 적도 있고 남을 속인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허물투성이인 우리를 무조건 사랑하신 하나님의 그 선하시고 인자하신 놀라운 은혜와 사랑에 대해서 우린 감사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내가 어디 사랑할 만한 구석이 있어서, 자격이 있어서 사랑한 것이 아니라, 죄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허물 많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고 택하고 구원하여주셔서 오늘 여기까지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해야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보세요. 430년 동안 종살이 하다가 해방 받았는데도 불평하고 또 불평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런 그들을 40년 동안 먹이시고 돌보시고 인도하셔서 가나안까지 저들을 이끄셔서 여호수아와 그의 자손들이 다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또 불평하고 또 원망하고 죄짓고 불의하고 방탕해서 이스라엘 왕국이 세워졌다가 삼대가 지나고 난 다음에 사 대째 가서 나눠집니다. 그래서 솔로몬 아들 르호보암 때 북 왕국 이스라엘, 남 왕국 유다로 나눠지게 됩니다. 그런데도 저들이 회개하지 않고 또 죄짓고 불의하고 방탕하니까 북 왕국은 앗수르에 의해서 주전 722년에, 남 왕국은 바벨론에 의해서 주전 586년에 망합니다. 망했는데도 하나님이 또 사랑하셔서 70년 만에 포로 생활 끝에 다시 돌아오게 만들어주시고, 그리고 저들이 절망 가운데 살고 있을 때 메시야를 보내주셔서 저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선포해주시고,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첫째로는 유대 민족을 구하기 위한 것이요, 둘째로는 온 우주에 있는 우리 인간들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주님 돌아가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와 사랑에 대해서 우리는 감사해야 됩니다. 그저그저 감사할 것밖에 없습니다. 시편 106편 1절은 말씀합니다.
할렐루야 야훼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러분, 소아조로증이라는 말을 혹시 들어 보셨습니까, 소아조로증. 남들보다 여덟 배가 빨리 자란답니다, 여덟 배. 여덟 배. 그러니까 한 살이 되면 여덟 살이 된 거에요. 그런데 홍원기라고 하는 이 학생은 지금 열두 살인데요, 107센티 14킬로그램, 그런데 신체 나이는 팔십 세. 이 소아조로증 때문에 그렇답니다. 평균수명이 십대 중반. 그래서 보통 십오 세에서 십칠 세 사이에 세상을 떠난답니다.
다섯 살 때 발달 속도가 더뎌 검사를 받았더니, “소아조로증입니다. 열다섯 살에서 열일곱 살이면 사망합니다.”라고 하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버님이 목사님이신데도 너무 기가 막히고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소아조로증이 대한민국에 한 명 있다는데, 어떻게 그 한 명이 하필이면 원기인지…. 아버지께 제 삶을 드리겠다고 약속했는데 저한테 왜 이러십니까? 많은 것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보통 아이처럼 살 수 있게 해주세요. 불쌍한 우리 원기 도와주세요!”

 수없이 이유를 물었지만 답이 없으신 하나님. 사 년 뒤 미국 조로증연구센터에서  새로운 약이 나와서 임상 실험을 하는데 이 아이에게 실험해 보겠냐고 그래서 그 약을 받아왔는데, 너무 독해가지고 먹는 족족이 토하다가 결국 위벽이 헐어가지고 피를 쏟아내는 바람에 투약을 중단합니다. 병을 알게 된 원기는 이렇게 기도해서 부모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습니다. “엄마, 나 엄마보다 하늘나라 먼저 가는 거야?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저 빨리 데려가지 마세요. 엄마랑 동생이랑 오래오래 살래요!’”

 그렇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죽음 또한 하나님의 섭리임을 받아들이면서 온 가족이 ‘지금 살아있는 것을 감사하자. 어차피 우리에게 누구에게나 죽음은 다가오는데 이렇게 절망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지 말고 살아있는 것을 감사하자.’ 할렐루야! 아버님의 고백입니다. “가늘고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원기의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아내와 저는 원기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걱정만 했다는 것을, 원기의 그 예쁘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한 번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왜 저한테 원기를 주셨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갔으면 매일 슬퍼했을 텐데, 전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니까 그래서 저한테 원기를 주셨다는 것을요.” 열두 살 생일 때 이렇게 감사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우리 원기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부모와 자식으로 맺어준 아버지의 손길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가족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원기도 신앙적인 고백을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 만나러 가요. 그건 하나님만 아세요. 그러니까 매일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면 되요.”
목사님이 쓴 책, 내 ‘새끼손가락 아들’이라는 책의 고백입니다. “한때는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아들과 함께하는 그 운명이 너무나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새 그 원망과 분노는 사라져버렸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즐겁고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니까. 온 힘을 다해 행복하다고 느끼는 시간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삶이 내게는 가장 가치 있는 삶이 되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이 자체에 대해서 감사하고 찬양과 영광을 주님께 올려드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 있는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절망을 바라보지 말고, 상처를 바라보지 말고, 아픔을 바라보지 말고 내가 오늘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결심하시길 바랍니다. 나의 남은 여생을 매일매일같이 감사하며 살리라.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주님께 영광 돌리며 살리라. 이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은 다 죄덩어리입니다.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우린 늘 쉽게 불평하고 원망하고 부정적인 말을 쏟아놓으며 살았습니다. 주님, 우리를 용서하여주옵소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부터 먼저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무장해서 감사의 언어를 쏟아놓을 수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들이 달라져서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수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너무나 부정적인 이야기가 꽉 들어찬 우리 대한민국을 우리들의 긍정의 고백이 바꾸게 하여주시옵소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아들을 두고도 매일매일 감사할 수 있는 그 큰 믿음의 모습을 우리 모두가 배울 수 있게 하여주시고, 남은 여생 하나님의 영광위해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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