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삼뿌리 버금가는 약초
정자나무아래 모인 노인들께도 쇠비름 이야기를 나누며 옛날 약초 캐던 시절의 무용담을 들었습니다. 할아버지 살아 계실 적에 전설처럼 들어 왔던 산삼 이야기는 아직도 돌고 있지만 아직 캤다는 사람은 없었다는데요. 할아버지가 황매산 깊숙한 곳에서 거울(풀·꼴)을 베어왔는데 그 곳에 산삼 잎이 가득 있어서 몇 해를 걸쳐 그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다시는 볼 수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속단이나 박새를 캐다가 약을 잘 못 써서 병을 더 깊게 했다는 이웃 동네 약초꾼 이야기, 옛날의 그 많던 약초들이 다 사라졌다는 이야기로 꽃을 피우다가 다시 할아버지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힘이 장군이셨던 할아버지는 칠순이 넘어서도 키보다 높은 나뭇짐을 거뜬히 해 오셨는데요.
그 비결이 황매산 깊은 숲에 풀 베러 가셨다가 캐서 드셨다는 큰 더덕 뿌리만한 ‘지치때문이라고 합니다. 큰 지치를 한 뿌리 뽑아서 반쯤 먹었는데 취해서 잠이 들어 깨어보니 밤이어서 겨우 돌아 왔는데 그 후부터 감기 한 번 않고 건강하게 사시다가 팔순 넘어 장수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칠순 어르신 근력 비결 냉증 등 부인병에 좋아
지칫과의 여러해살이 풀인 이 지치는 약초꾼에게 산삼에 버금가는 전설적인 약초로 알려져 있습니다. 온갖 독을 제하고 살결을 곱게 하여 늙지도 않게 하는 신선이 먹는 약초라는 신비의 영약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지초’·‘주캄라고도 하고 산 속 깊은 곳 양지쪽에서 자라며, 줄기와 잎 모양이 흡사 참깨와 닮았고 5~6월에서부터 7~8월까지 작고 흰 꽃이 피어납니다.
뿌리가 보랏빛을 띤다 하여 ‘자초’·‘자근’으로도 불리는데 땅 속 깊이 곧게 박혀서 자라며 오래된 것일수록 그 보랏빛이 선명하고 약효가 큽니다. 뿌리가 갖고 있는 열기 성분이 강해서 겨울에 눈이 내려앉으면 그 주위가 붉게 물든다는데요. 그래서 눈이 녹기 전 이른 봄이면 약초꾼들은 지치를 캐러 산을 오른답니다. 풀 주위를 붉게 물들이며 녹아 있는 곳을 찾기 쉽기 때문이지요!
어릴 때에 전설처럼 지치 이야기를 들으면서 겨울 눈 녹기 전에 꼭 한번 가보리라 계획 했었는데 못가고 만 것이 못내 아쉬운데요. 이제는 숲이 짙어서 어르신들도 찾아 나서기 힘든 그야말로 신비의 영약이 되고 말았답니다.
요즘은 가끔 인공재배를 하기도 하는데 사람의 땀 기운이나 냄새가 닿으면 이내 썩어버려서 성공률이 낮고 또 10년 이하의 것은 약효가 별로 없어서 물감 만드는 염료로 쓰이는 정도라는데요.
야생 지치는 부인병에 특히 좋은데요, 냉증·대하·생리불순 등에 특효가 있으며 피부를 곱게 하고 비만증을 치료해준다고 합니다. 또 열을 내리고 독을 풀어주며 염증을 없애고 새살을 돋게 하는가 하면 각종 암을 제하고 그 후유증을 없게 하며 중금속이나 농약·알코올 중독을 풀어주는 특효도 있다고 합니다.
마을 어른들과 말로 다 열거할 수 없는 신비의 영약 지치 이야기를 나누며 이미 전설이 되어 버린 산 속의 약초와 할아버지가 가슴 뭉클하게 그리워집니다.
황매산 깊숙한 어느 곳에서 해마다 제철이 되면 수십년 된 지치가 자라는 그 곳에 할아버지가 거닐고 계실 것 같은 상상을 하며 먼 산을 올려다봅니다. 올 겨울에는 기어이 저 산을 누비며 지치의 붉은 열기와 만나 보리라 다짐해봅니다. 둥실 뜬 반달이 물끄러미 흘러갔습니다.
/숲해설가
약재에 대하여
지치는 그 뿌리에서 보라색 물감을 얻는 까닭에 우리 겨레와 퍽 친숙한 식물이다. 지치는 노랑색과 빨간색 물감을 얻는 홍화, 파란색 물감을 얻는 쪽과 함께 우리 선조들이 염료작물로 즐겨 가꾸어 왔다.
지치는 지초, 자초, 지혈, 자근, 자지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부르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우리나라 각지의 산과 들판의 양지바른 풀밭에 나는데, 예전에는 들에서도 흔했지만 요즘은 깊은 산속이 아니면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귀해졌다.
굵은 보랏빛 뿌리가 땅속을 나사처럼 파고 들면서 자라는데 오래 묵은 것을수록 보랏빛이 더 짙다.잎과 줄기 전체에 흰빛의 거친 털이 빽빽하게 나 있고 잎은 잎자루가 없는 피침꼴로 돌려나기로 난다. 꽃은 5~6월부터 7~8월까지 흰빛으로 피고 씨앗은 꽃이 지고 난 뒤에 하얗게 달린다.
약성 및 활용법
지치는 약성이 차다. 열을 내리고 독을 풀며 염증을 없애고 새살을 돋아나게 하는 작용이 뛰어나다. 갖가지 암, 변비, 간장병, 동맥경화, 여성의 냉증, 대하, 생리불순 등에 효과가 있으며 오래 복용하면 얼굴빛이 좋아지고 늙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암 치료약으로 쓰고 있다. 혀암, 위암, 갑상선암, 자궁암, 피부암에 지치와 까마중을 함께 달여 복용하게 하여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북한에서도 암과 백혈병 치료에 지치를 쓰고 있다.
강한 거악생신작용과 소염, 살균작용으로 암세포를 녹여 없애고 새살이 돋아나오게 한다.
지치는 하늘과 땅의 음한의 기운을 받아 자라는 약초이므로 여성의 자궁처럼 생긴 곳에서 많이 난다. 지치는 그 상서로운 보랏빛 빛깔처럼 신비로운 약초이다. 다마 야생지치는 매우 희귀하여 구하기가 어려운 것이 흠이다. 재배한 지치는 약효가 현저하게 떨어진다.
지치는 해독효과도 뛰어나다. 갖가지 약물중독, 항생제 중독, 중금속 중독, 농약 중독, 알코올 중독 환자에게 지치를 먹이면 신기할 정도로 빨리 독이 풀린다.
강심작용이 탁월하여 잘 놀라는 사람, 심장병 환자에게도 효과가 크며 악성빈혈 환자도 지치를 말려 가루 내어 6개월쯤 먹으면 완치가 가능하다.
증상별 적용 및 복용법
▶지치를 암 치료제로 쓰는 방법은 유황을 먹여 키운 오리 한 마리에 지치 3근을 넣고 소주를 한 말쯤 부어 뭉근한 불로 열 시간쯤 달인다. 오래 달여서 건더기는 건져 버리고 달인 술을 한번에 소주잔으로 한잔씩 하루 세 번 먹는다.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은 물을 붓고 달여도 된다.
▶상초에 열이 있고 하초가 허약해서 생긴 여성의 냉증, 곧 여성이 아랫배나 손발이 차가울 때에는 지치를 잘게 썰어 참기름에 넣고 24시간 이상 약한 불로 끓여서 한번에 밥숟갈로 두 숟갈씩 하루 세 번 밥 먹고 나서 먹는다. 여성의 냉 대하, 무릎이 차갑고 힘이 없는 데, 신경통 등에 효험이 크다.
▶심장의 열이 머리로 올라와서 생긴 두통에는 지치를 가루 내어 한번에 밥숟갈로 하나씩 3~4번 먹는다.
▶소화가 잘 안되고 밥맛이 없으며 온몸이 나른하고 몸이 부을 때에는 생지치를 잘게 썰어 토종꿀에 이틀쯤 끓여서 한 숟갈씩 수시로 떠 먹는다. 토종꿀에 끓이는 것은 지치의 찬 성분을 없애기 위해서이다.
▶변비, 고혈압, 동맥경화, 중풍에는 지치를 가루 내어 한번에 두 숟갈씩 하루 3~4번 더운물이나 생강차와 함께 먹는다.
▶어린아이의 경기에는 지치를 생즙을 내어 먹이거나 지치를 술과 물을 반쯤 섞은 데에다 넣고 끓여서 먹인다. 아니면 참기름에 지치를 넣고 달여서 한 숟갈씩 떠서 먹인다.
▶위장이나 뱃속에 딱딱한 덩어리가 생긴 데에는 지치를 가루내어 술과 함께 먹는다. 한번에 한 숟갈씩 하루 3~4번 먹는다.
▶어린아이나 어른이 크게 놀라서 병이 난 데에는 거름기 없는 황토에 술을 부어 반죽한 것으로 아이 오줌에 하룻밤 담갔던 지치를 싸서 잿불에 구운 다음 지치만을 꺼내어 가루 내어 먹는다. 그냥 지치 가루를 먹어도 효과가 있는데 한번에 한 숟갈씩 하루 세 번 더운물로 먹는다.
▶두통이나 소화불량에는 지치를 술에 담가 마시면 즉효가 있다. 한번에 소주잔으로 두 잔씩 하루 세 번 마신다.
▶비만증에는 지치 가루를 한번에 한 숟갈씩 하루 세 번 먹는다. 5개월쯤 먹으면 정상적인 체중으로 몸무게가 줄어들고 다시 살이 찌지 않는다.
▶동맥경화, 어혈, 신경통, 타박상 등에는 지치와 장뇌삼을 같은 양으로 달여 먹으면 특효가 있다.
▶백전풍, 자전풍에는 지치 가루를 한번에 밥숟갈로 하나씩 하루 세 번 먹는 동시에 지치 가루를 자신의 침으로 개어 아픈 부위에 하루 3~4번 바른다. 바르고 나서 한 시간쯤 뒤에 반창고를 붙여두었다가 다시 바를 때에는 반창고를 떼어내고 즉시 바른다.
이렇게 하면 반창고에 흰 가루 같은 것이 묻어 나오는데 그것이 더 이상 묻어 나오지 않으면 다 나은 것이다. 완치되기까지 2~3개월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