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평창·알바..부모 vs 자녀 '세대갈등 폭발'


◆ 청년·비정규직·88만원 세대 vs 중장년·정규직·누린 세대 ◆

"부동산과 주식으로 이미 돈을 번 기성세대가 (정작 젊은 세대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을 만들고 있다."

지난달 28일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온 이후 21만명이나 동참한 '가상화폐 규제 반대' 청원에 달린 댓글 중 하나다. 유일한 탈출구로 여겼던 가상화폐를 규제하는 데 대한 젊은 세대의 분노, 그리고 '세대 갈등'의 단상을 보여주는 일성(一聲)이다. 이렇듯 가상화폐 논란을 둘러싸고 기성세대에 대한 2030 젊은 세대의 분노가 심상치 않다. 스스로를 '코인(coin) 세대'라고 자조하는 젊은 세대는 직장과 주식, 부동산 등 이미 모든 것을 갖고 진입장벽을 높게 쌓은 기성세대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가상화폐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대학생 최 모씨(24)는 "가상화폐 규제는 유일하게 남은 계층 이동 수단마저 막는, 기득권을 위한 대책"이라며 "취업도 결혼도 어려운 젊은 층은 꿈도 꾸지 못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열풍을 '투기'로 보는 50·60대 중장년층은 젊은 세대의 대척점에 섰다. 자녀들의 가상화폐 투자에 반대한다는 직장인 박 모씨(55)는 "학업과 취업을 위해 노력해야 할 젊은이들이 투기에 빠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자녀 교육비, 조기 은퇴, 준비 없는 노후로 불안한 우리도 기득권층이 아닌 피해자"라고 말했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평창동계올림픽도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놓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세대 프레임'이 작동하고 있다. 붕괴된 계층사다리에 분노하는 젊은 세대는 "메달권 밖에 있다"는 이유로 정부가 단일팀 구상을 강행하자 자신들과 동일시하며 정부 정책을 기성세대의 '갑(甲)질'로 보고 있다. 더욱이 첨예화되는 '세대 갈등'은 전통적 균열선인 이념·지역마저도 넘어섰다. 젊은 층의 지지가 높던 여권 스타 정치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가상화폐는 튤립버블"이라고 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가상화폐 규제와 단일팀 구상에 대한 젊은 층의 반대에 문재인정부마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처럼 불과 몇 년 새 '세대 갈등'이 한국을 규정짓는 핵심 화두로 등장했다. 부모와 자식 세대 간 감정 대립으로만 봤던 세대 갈등은 저성장·고령화 사회와 맞물려 희소 자원을 둘러싼 경제적 대결구도로 확산하고 있다. '386세대' 'X세대'를 지나 최근 등장한 'N포 세대'는 여전히 기득권을 쥐고 자신들의 미래를 가로막은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표출하기에 이르렀다. '청년=비정규직=88만원 세대' '중장년=정규직=누린 세대'라는 인식이 세대 간에 좁힐 수 없는 골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실제 세대 갈등에 대한 우려는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성인(만 19~75세) 남녀 366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회통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2.2%는 "세대 갈등이 심하다"고 답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중1~고3 청소년 655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72.1%가 "세대 갈등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답했다. 세대 갈등이 '더 심해질 것'으로 전망한 응답자도 66.6%에 달했다.

박길성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적 이해관계 충돌이 세대 갈등의 중심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과 다르다"고 경고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현재의 세대 갈등은 주택 문제를 비롯한 경제정책과 관련해 기성세대가 잘못 설계한 여러 가지 제도에 기인한다"며 "젊은 세대 입장에선 '기성세대가 제도를 잘못 만들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는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올해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일자리 문제, 4차 재정계산에 따른 국민연금 개혁을 포함한 복지제도가 '세대 갈등'에 불을 붙일 최대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고용 없는 성장'으로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역대 최고치인 9.9%까지 치솟았다. 전체 실업자(102만8000명) 가운데 청년실업자(43만5000명) 비중만 42%를 넘는다.

반면 자녀 사교육비와 주택비용 부담 으로 준비 안 된 은퇴에 내몰린 중장년층도 일자리를 찾거나 창업에 나서고 있다. 노인빈곤율이 49.6%에 달하다 보니 은퇴 후에도 쉬지 못하는 노인(65세 이상) 비중이 31.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4.5%)의 2배를 훌쩍 넘는다. 이러다 보니 '아들 세대'는 '아버지 세대'를 '일자리의 적'으로 간주하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세대 갈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 중 하나가 편의점이다. 실제 편의점 '알바'에 뛰어드는 중장년층이 늘면서 편의점은 '세대 간 일자리 전쟁'이 벌어지는 최일선으로 변했다. 더욱이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으로 이 같은 편의점 일자리마저 줄면서 세대 갈등은 청년 '알바' 대 '편의점주', '청년 알바' 대 '중장년층 알바'로 다원화하는 양상이다.

서울 관악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최 모씨(54)은 "은퇴 후 편의점 창업에 나서 한 달에 200만원도 벌지 못하는 처지인데, 아르바이트생들이 '갑'으로 대하는 걸 느낄 때 마음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인근에서 다른 편의점을 운영하는 박 모씨(51)도 "젊은이보다 성실하고 결근도 적어 60대 어르신을 한 명 채용했다"며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직원 1명을 줄여야 하는데 대학생과 어르신 중 누구에게 (그만두라는) 어려운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최근 금융권을 중심으로 청년 고용 확대를 위해 정부가 '세대 간 (일자리) 빅딜'까지 들고 나오면서 오히려 세대 갈등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학 졸업장만으로 취업이 가능하던 예전과 달리 계층사다리가 무너졌다는 점도 고용 불안에 대한 분노를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에 돌리는 주된 요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과거 중산층 진입을 위한 '티켓'으로 여겨졌던 대학 졸업장의 가치(투자수익률·ROI)는 1987년 12.5%에서 2015년 6.7%까지 급락했다. 같은 노력을 하고 동일한 결실을 맺을 수 없는 젊은 층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심각한 고령화와 맞물려 급증하는 복지비용을 청년층이 부담해야 한다는 불만과 박탈감도 세대 갈등의 한 축을 차지한다. 생산가능인구(15~64세) 100명이 부양해야 할 65세 이상 노인 숫자를 의미하는 '노년부양비'는 올해 2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젊은이 5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셈이다. 2050년에는 노년부양비가 72.6%에 달해 생산가능인구 1.4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젊은 층의 부담이 더욱 늘어나는 셈이다.

반면 젊은 층이 받을 혜택은 가파르게 줄고 있다.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국민연금 가입자가 누리는 수익비는 미래 세대로 갈수록 급감한다. 수익비는 급여 수입을 보험료 지출로 나눠 계산한 값이다. 연구 결과 1930년생 수익비는 4.82인 데 반해 1985년생은 1.88까지 낮아졌다.

최기홍 국민연금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초기 세대의 높은 수익비는 낮은 보험료와 높은 소득대체율 때문"이라며 "이후 연금 수급 연령이 높아지고, 소득대체율이 낮아지면서 수익비가 낮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기성세대가 누리는 연금 혜택을 젊은 세대가 부담하는 '세대 간 재분배'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대로라면 젊은 세대의 미래는 더욱 암울하다. 현재 소득의 9%인 국민연금 보험료를 올리지 않으면 2060년 이후에는 기금 자체가 고갈돼 200조원 넘는 돈을 그해 근로소득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구조로 바뀔 수 있다. 더욱이 문재인 대통령 대선공약에 따라 소득대체율을 50%까지 올릴 경우에는 기금 고갈 시기가 4년가량 앞당겨지고 부담액도 연 300조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20~24세인 청년층이 65세를 맞아 연금을 받게 될 시점이라는 점에서 젊은 세대의 불안감과 분노는 크다.

결국 해결책은 세대 간의 '제로섬 게임'을 서로 '윈윈'하는 '포지티브섬 게임'으로 바꾸는 것이다. 핵심은 고착화된 저성장 구조 탈출을 통해 국가 전체의 파이를 키우고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대 갈등은 결국 국가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며 "경제가 지속적으로 꾸준히 성장하면 혜택과 부담이 일방적으로 한쪽 세대에 몰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세대 간 형평성과 지속가능성을 고려할 복지제도의 대대적인 개혁, 그리고 이를 통한 세대 간 연대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도 "사회 전체가 고통을 분담하고 양보하는 세대 공감을 이뤄야 한다"며 "특히 공적연금과 관련해선 보험료와 급여 수준에 대한 세대 간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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