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한 선교사(슬로바키아)

순복음 열정으로 주의 빛과 생명 전파
2002년엔 집시 사역 시작, 마을 출입한 첫 외부인
기업 주재원 늘면서 처음으로 한인교회도 세워
사단법인 ‘JOY’ 세워 한·슬 교류 가교 역할

 1993년 체코와 분리되면서 독립국이 된 슬로바키아는 면적과 인구 면에서는 체코의 절반 정도인 작은 나라지만 북쪽으론 폴란드, 서쪽으로는 체코와 오스트리아, 남쪽으로는 헝가리, 동쪽으로는 우크라이나를 연결하는 유럽의 중심입니다.

 알프스 산맥의 일부이자 각종 희귀동식물이 서식하는 자연의 보고, 타트라 산맥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고, 180여 개에 달하는 고성들이 중세시대의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 바로 동유럽의 아름다운 나라 슬로바키아입니다.
 강력한 로마가톨릭의 영향으로 도시 곳곳에 아름다운 교회들이 도시 중앙에 우뚝 솟아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름다운 교회들은 교회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채 관광객들의 발걸음만이 있을 뿐입니다. 더 이상 그 교회에는 생명이나 복음이 없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암흑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슬로바키아순복음교회는 1998년 11월 역사적인 사역의 첫발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이전까지는 한국인 선교사의 활동이 없었던 지역이라 첫 시작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힘이 들었지만, 순복음의 정체성과 강력한 오중복음을 통한 성령사역의 결과로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이뤄 나갈 수 있게 됐습니다.

 처음 사역은 거리 노방전도로 시작됐습니다. 기타를 들고 무작정 거리로 나가 노방전도를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됐습니다. 아직 언어도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 가운데 성령님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한 두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접근을 하자 그들에게 희망과 소망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게 됐고 그 사람들이 중심이 돼 역사적인 슬로바키아순복음교회가 세워지게 됐습니다.

 한국인이 없는 외딴 지역에서 비자를 받고 건물을 얻어 교회를 시작한다는 것은 그 당시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들로 여겨졌습니다. 2년 동안이나 비자를 받지 못해 경찰을 피해 마음 졸이며 사역을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언어에 집중해 교회는 점차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제자양육에 집중했습니다. 사역자를 양육하고 세우는 것이 저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사역이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슬로바키아에 네 곳의 협력교회를 섬기게 됐습니다. 슬로바키아에서도 가장 놀라운 부흥과 성장을 보이고 있는 교회들 가운데 우리 협력교회가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다른 교회와는 차별된 모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금요철야예배, 구역예배, 새벽기도회, 금식기도회 등을 통해 다른 교회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슬로바키아에는 집시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루마니아 다음으로 가장 많은 집시들이 거주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슬로바키아입니다. 흔히 집시하면 떠돌아다니며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로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집시들도 그들의 말이 있고 그들의 왕국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2002년부터 저희들은 집시선교를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도시에서 떨어진 외딴 지역에 무허가로 지은 집을 짓고 외부와는 단절된 그들만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2002년도 처음 찾아간 집시마을의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독 제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은 바로 집시아이들이었습니다. 그 어려운 환경에도 아이들은 유독 밝은 모습을 하고 있었고 외부 사람들의 손길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나 웃는 얼굴로 우리를 반겨주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 이후 그 집시마을에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한 사역을 한 것이 아니라, 그 아이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품어주었습니다.

 외부사람들 중에 그 마을에 들어간 것이 우리가 처음이라는 것을 안 것은 나중이었습니다. 슬로바키아인들도 그 마을에는 들어가기를 꺼려할 정도로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한국선교사의 방문은 그 마을에 큰 이슈가 됐습니다. 그리고 그 방문은 한 번 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달에도, 그 다음달에도 계속해서 그 마을 방문해 아이들을 품어주고 손과 발을 씻겨주고, 그 아이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이자 몇몇 어른들이 복음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더니 주님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집시선교사역의 지경을 넓혀주셨습니다. 그 주변 마을에서도 우리의 방문을 기대하게 된 것입니다. 단 한번도 이방인의 방문이 없었던 지역, 철저하게 외부사회로부터 소외된 그 지역이 복음을 통해 세상과의 소통이 시작된 것입니다. 지금도 정기적으로 그 곳의 젊은 청년들과 함께 선교사역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집시사역자를 세워 공동체를 섬기게 했습니다.

 13년간의 선교를 통해 느끼게 된 중요한 사실은 현지인들을 위한 선교는 반드시 현지인 사역자들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교사는 선교사일 뿐입니다. 선교사는 현지인들을 돕고 특히 현지인 사역자들을 도와 그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옆에서 철저히 도와주는 자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다섯 곳의 집시교회를 세워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 사역에 협력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사람들을 변화시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 집시사역을 반대했습니다. 슬로바키아 현지 교단들도 사역의 열매를 얻기 힘들다고 했지만, 우리의 사역을 통해 복음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그 마을을 변화시키고, 그 사회를 변화시킴을 확신하게 됐습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는 2003년부터 슬로바키아에 한국인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삼성전자공장이 슬로바키아에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여섯 가정이 가장 먼저 슬로바키아에 들어오게 됐는데 그 가운데 세 가정이 예수님을 믿는 가정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세 가정이 중심이 돼 슬로바키아에 세워진 첫 한인교회 공동체가 시작됐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2005년부터는 기아자동차 공장이 슬로바키아에 세워지게 됐습니다. 갑자기 한인들이 많아지면서 한인교회는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한인교회는 저희 교회가 유일한 교회였습니다.

 지금은 출석 성도 150여 명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또한 2008년에 세워진 사단법인 ‘JOY(조이)’를 통해 한국과 슬로바키아 사이의 종교적, 문화적인 가교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매년 개최되는 ‘한·슬 음악회’를 통해 문화적인 교류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사랑의 복음을 나누는 장이 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로봇의료기계를 전달했으며, 올해는 시작장애인 학교 후원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더욱이 감사한 것은 한인교회를 통해 현지사역에 큰 힘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인교회 성도들은 슬로바키아에 온 평신도 선교사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됐습니다.
 ‘선교사’라는 단어는 참으로 가슴 떨리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를 통해 일하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성도님들의 사랑의 중보 덕분임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에 빚을 진 자로서 더욱 더 선교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슬로바키아는 하나님의 도성입니다. 이 나라를 위해 더 많은 중보자들이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자들이 복음을 듣기 원하고 있습니다. 함께 협력할 사역자들이 세워지도록 성도들님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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