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켈론

이름만 남은 도시 ‘아스글론’

 그 지경은 유다 족속의 남은 자에게로 돌아갈지라 그들이 거기에서 양 떼를 먹이고 저녁에는 아스글론 집들에 누우리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야훼가 그들을 보살피사 그들이 사로잡힘을 돌이킬 것임이라(습 2:7)

 이스라엘에 여행을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지를 방문한다. 기독교인들에게 성지는 성경에 나오는 곳이라기보다 예수님이 사역하신 곳이 대부분이고 나머지는 스치듯 보거나 아예 지나쳐버리는 곳도 많다. 아쉬켈론(Ashkelon)은 그런 곳들 중 하나이다. 지중해를 바라보는 멋진 풍경을 가진 도시이자 유적지이지만 성경에서 언급된 적이 있었나 싶은 낯선 지명과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인 가자에서 가까운 위치여서 더더욱 여행자들의 발길이 뜸한 숨겨진 보석 같은 곳이다.

 아쉬켈론은 한글 성경에서 ‘아스글론’으로 씌어 있다. 성경에는 블레셋으로 불리는 지역이 있는데, 우리가 잘 아는 골리앗이 속한 군대가 블레셋 연합군이었다. 블레셋은 지역 이름이다. 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가드, 에글론이란 도시가 위치하던 지역을 블레셋이라고 불렀다. 블레셋은 5개 도시국가가 연합한 지역을 통칭하던 말이고 그 지역에 살던 이들을 블레셋 사람이라고 불렀다. 현재도 이 다섯 도시는 현대 이스라엘 속에 존재한다. 유적지와 함께 현대적 도시들이 그곳에 자리잡고 있다. 아스돗은 아쉬돗(Ashdod), 아스글론은 아쉬켈론(Ashkelon), 가드는 갓(Gath), 에글론은 에크론(Ekron)이란 이름으로. 다만 아쉬운 것은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시이자 휴양지였던 가사(현대의 가자지구)는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통치 이후 출입이 통제되면서 그 아름다움을 잃어버렸다. 아쉬켈론과 다른 네 성읍이 블레셋이라는 연합민족적 형태를 띨 수 있었던 까닭은 그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아쉬켈론은 지중해가 바라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아름다운 도시이다. 푸른 파도가 몰아치는 아름다운 바닷가를 끼고 있던 이 도시는 지중해를 통한 무역으로 말미암아 번성했다. 대국들이 앞다투어 점령하려고 했던 많은 항구도시들 중 하나였지만 위로는 욥바, 아래로는 가사 덕에 커다란 피해 없이 자신들의 도시를 잘 보존할 수 있었다. 다른 유적지와는 다르게 정복자의 층(대부분의 큰 도시들은 제국들이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는 과정에서 층이 생겨나게 된다. 므깃도 요새의 경우 27개 층이 존재한다)이 거의 없다. 다만 이제는 사용하지 않고 버려진 흔적들만이 시간의 흐름을 대신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아쉬켈론은 우리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여호수아의 정복시대부터 예레미야에 이르기까지 성경에 빈번하게 등장한다. 아쉬켈론은 번영의 도시였던 만큼 우상화가 크게 일어난 장소이기도 하다. 무역항이었으므로 부가 넘쳐났다. 그래서 멸망의 상징이기도 하다. 삼손은 자신이 결혼하게 된 블레셋 여인의 친구들과 내기하여 지자 아스글론으로 내려가 길에서 지나가던 이들을 때려눕히고 뺏은 채색 옷을 주었다고 사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아스글론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내쫓지 못한 이들 중 하나였고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계속 가시와 같은 존재로 남아 있었다. 다윗이 블레셋의 골리앗을 물리친 후 잠시 주춤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을 괴롭혔고 다윗이 정복한 이후에도 여전히 그 도시는 그 자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아쉬켈론은 가장 오래된 과거로는 가나안 시절 주전 1400년 전부터 시작해서 가장 근대인 오스만제국 때까지 남아 있던 도시이다. 그 사이 무려 8차례나 주인이 바뀌었지만 도시 자체의 번영은 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아쉬켈론은 아름다운 해안 도시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잘 정리된 도로와 아름다운 해변은 많은 이들에게 휴양지로서 찾아오게 만든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 많은 제국들이 거쳐가며 사람들이 오고갔지만 그 도시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고 모든 문화를 품어 왔다. 지금도 유적지를 가보면 가나안 시대의 성읍을 시작으로 로마 비잔틴 시대, 십자군의 주둔 터와 오스만제국의 성벽 터가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재밌는 것은 그 모든 것들이 각자가 아닌 하모니를 이루면서 남아 있다는 점이다.


 아쉬켈론은 근대사에서도 흥미로운 곳이다.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땅에서 쫓겨난 주후 90년 이후 아쉬켈론에는 여전히 유대인들이 살았고 아쉬켈론은 지금의 팔레스타인(이전에는 유대 땅이라고 불리던 지역)에서도 거의 몇 안되는 유대인들에게 친절한 곳으로 남아있었다. 그래서 19세기 후반 이곳으로 이주하던 유대인들은 아쉬켈론과 가자 인근으로 많이 이주해 살았다. 이는 마치 예언서에 등장한 장면을 떠올리게도 한다.


 현대의 아쉬켈론은 지금 가장 뜨거운 감자인 가자지구와 가까이 있으면서 이전에는 화목했던 모습을 추억이라도 하는 듯이 번영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는 이스라엘에 살면서 자주 캠핑을 다닌다. 이는 현지인들과 쉽게 만날 수 있고 이스라엘의 자연과 그 지역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북쪽부터 남쪽까지 자주 이곳저곳을 돌아본다. 캠핑을 하면서 역사 속에 자리잡고 앉아 성경의 이야기와 역사의 언저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아주 멋진 곳이었다. 과거와 현재가 맞닿아 있으며 현재의 갈등과 고뇌 속에서도 의연히 피어나는 삶의 모습들이 보이는 곳이었다. 눈을 들어 멀리 바라다보면 분쟁의 땅 가자지구가 보인다. 하지만 아쉬켈론은 평화로운 파도만이 일렁인다.
 과거 유적지를 바라보면서 이루어진 고층 아파트와 아름다운 집들은 이제 더 이상 과거 이방인의 땅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안식처이며 모두의 휴식처가 되어가고 있다. 이제 진정한 휴식처가 되기 위한 평화와 공존의 길은 언제쯤 이어질까? 저 바닷길로 가자와 아쉬켈론, 아스돗과 욥바까지 이르는 길이 이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김요셉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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