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9. 다니엘의 소명과 제국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류와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된 역사책이다. 성경 한 구절은 한 개의  구절 이상의 의미와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함축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과 구절들을 넓은 시야로 혹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세하게 접근함으로써 성경 전체를 조금 더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순복음가족신문은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기록한 성경구절의 행간을 풀어 성도들이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세 개의 제국과 네 명의 왕을 보필한 최고의 재상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단 1:21)


17세기 이후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왕정시대가 저물어가고 왕에 의한 1인 통치가 아닌 의회에 의한 입헌군주제가 시작되었다. 왕은 존재하나 통치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왕의 권한은 대폭 축소되었다. 왕은 상징적인 의미일 뿐 나라의 전반적인 대내외적인 일은 의회의 수장인 총리가 감당하게 되었고 역할과 권한도 강화되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했던 총리를 손꼽으라면 저마다 다른 인물들을 댈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현대의 입헌군주제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이지만 왕을 대신해 총리로서 제국을 다스렸던 위대한 인물들을 기록하고 있다.

형들에게 팔려 히브리 노예에서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창 41:41)과 전쟁 포로에서 신(新)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과 그의 아들 벨사살, 메대의 다리오, 바사(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 왕까지 세 개의 제국, 네 명의 왕을 보필한 역사상 유일무이한 최고의 재상(宰相) 다니엘이다(단 2:48; 6:2).다니엘 1장 21절은 짧은 한 절의 말씀이지만 다니엘이 권력에 대한 집착이나 욕심 때문이 아니라 그가 왜 벗고 싶은 짐을 벗지 못하고 그 자리에 있어야만 했는지 그의 소명에 관한 숨겨진 이야기를 해 주고 있다.


1. 남유다의 멸망

성경에 느부갓네살로 기록된 네부카드레자르 2세(Nebuchadnezzar II)는 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굽을 물리치고 유브라데강 하류 지방까지 점령했다(왕하 24:7; 렘 46:2~12). BC 625년 그의 아버지 나보폴라살(Nabopolassar)은 앗수르(앗시리아) 제국을 무너뜨리고 신바벨론 제국을 건설했다. 하지만 신바벨론 제국(BC 625~539)은 느부갓네살에 의해 제국의 기틀이 완성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느부갓네살은 재임기간 동안(BC 605~562)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공중정원을 비롯한 대규모 건축 사업을 일으켰고 신바벨론은 제국의 면모를 갖추었다. 느부갓네살 왕은 애굽과의 전쟁 이후 근동의 패권을 완전히 손에 넣었고 이스라엘을 여러번 침략했으며 남유다를 멸망시켰다(BC 586).예루살렘에 입성한 느부갓네살은 솔로몬 성전을 파괴했고 성전 기물들을 빼앗아 바벨론으로 가져갔다(단 1:2). 유대인들은 네 번에 걸쳐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이것을 바벨론유수라고 한다. 1차는 다니엘을 포함한 귀족과 왕족이 끌려갔고(BC 605, 단 1:1~6), 2차 때는 여호야긴 왕을 포함 방백들과 군사들 그리고 쇠를 다루는 대장장이들과 각 분야의 장인들 외에 일반 백성들까지 1만 명의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잡혀갔다(BC 597, 왕하 24:14).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는 예레미야의 경고를 무시하고 친애굽 정책을 폈던 시드기야 왕은 남유다의 멸망과 함께 마지막 왕이 되었다. BC 586년 예루살렘은 함락되었고 솔로몬 성전까지 철저히 파괴되었다. 이때 시드기야 왕과 다수의 백성들이 세 번째로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네 번째는 BC 581년 느부갓네살 왕의 시위대장인 느부사라단에 의해 남아 있던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 끌려갔다. 이 과정에서 비천한 사람들 약 2만 명 정도만 유다 땅에 남게 되었다(왕하 24:14).

2. 노예 소년의 성장

BC 605년 귀족출신인 다니엘은 남유다가 멸망하기 19년 전인 1차 바벨론유수 때 유다의 왕족과 귀족들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왔다. 느부갓네살 왕은 어린 소년이었던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에게 바벨론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쳐 왕궁에서 일을 시키고자 했다(단 1:4). 마케도니아의 펠리포스 2세(BC 382~336)는 그의 아들 알렉산더 대왕(BC 356~323)을 위해 알렉산더가 13세가 되던 때 당대 최고의 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가정교사로 들였다. 알렉산더는 20세에 왕위에 오른 뒤 바사(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헬라제국을 완성해 위대한 대왕의 자리에 올랐다.

바벨론과 헬라 시대는 시간적 차이가 있으나 그 당시 근동의 교육은 대부분 성인식을 치른 13세에 시작되었다. 다시 말하면 느부갓네살이 교육을 시켜 왕궁에서 쓰려고 유다의 소년을 잡아 왔다면 다니엘의 나이도 13세 쯤 되었을 것이다. 다니엘에게 주어진 교육의 시간은 3년이었다(단 1:5). 이 기간 동안 다니엘의 이름은 바벨론 식의 이름인 벨드사살로 바뀌었고(단 1:7) 전혀 생소한 언어 문화 학문을 익혀야 했다.

느부갓네살 왕은 무자비한 왕이었다. 시드기야 왕의 아들들을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무자비하게 죽였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해서 바벨론으로 데리고 왔다(왕하 25:7; 렘 39:6~7; 52:11). 그리고 자신의 꿈을 해석하지 못하는 술사들의 몸을 쪼갤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던 왕이었다(단 2:5). 하지만 다니엘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왕의 음식을 거부했다(단 1:8). 이것은 참으로 목숨을 건 위대한 신앙의 결단이 아닐 수 없다.    

3. 다니엘의 소명과 고레스 원년

바벨론에 잡혀온 유대인들이 꿈에 그리던 일이 고레스 원년에 일어났다. 바사(페르시아)왕 고레스가 포로로 잡혀 왔던 유다 백성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조서를 내렸다(스 1:1~3; 대하 36:22~23). 다니엘 1장 21절은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말씀은 다니엘이 고레스 원년에 죽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때까지 관직에 있었고 그 후에 그만 두었다는 의미이다.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했다는 성경의 기록을 볼 때(단 6:28), 수많은 권모술수가 난무했던 궁정에서 다니엘이 신변의 위협을 느꼈거나 왕으로부터 신망을 잃었던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70년 동안 바벨론 메데 바사 제국의 흥망성쇠를 보며 네 명의 왕 밑에서 재상을 지냈던 예언자이며 정치가였던 다니엘은 고레스 원년 이후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난다.성경에 명문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고레스가 유대인의 포로귀환을 결정할 때 다니엘이 대단히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13세에 바벨론으로 왔다고 가정한다면 70년의 세월이 지나 다니엘의 나이는 83세 정도 되었을 것이다. 세 개의 제국에서 네 명의 왕을 모시며 수많은 음모와 사자 굴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그가 그 자리에 있어야 했던 단 하나의 이유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느부갓네살에 의해 그의 조국 남유다가 멸망하고 시드기야 왕이 두 눈이 뽑혀 사슬에 메어 바벨론으로 잡혀오는 굴욕과 복받쳐 오르는 오열을 참아냈다. 마침내 예언되었던 70년의 시간이 차고, 고레스가 유다 백성의 포로귀환을 칙령으로 반포하자 다니엘은 자신의 소명을 다했다는 듯 뒤도 안 돌아보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 말씀이 다니엘 1장 21절의 말씀이다. 이후 그는 다니엘 7장부터 정치가가 아닌 미래에 일어날 영적 전쟁과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선포하는 예언자의 삶을 살아간다.


이상윤 목사(순복음홍콩신학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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