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류와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된 역사책이다. 성경 한 구절은 한 개의 구절 이상의 의미와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함축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과 구절들을 넓은 시야로 혹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세하게 접근함으로써 성경 전체를 조금 더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순복음가족신문은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기록한 성경구절의 행간을 풀어 성도들이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영적·육체적으로 타락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신 하나님
"이는 그들이 속임수로 너희를 대적하되 브올의 일과 미디안 지휘관의 딸 곧 브올의 일로 염병이 일어난 날에 죽임을 당한 그들의 자매 고스비의 사건으로 너희를 유혹하였음이니라"(민 25:18)
요단강을 지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은 여리고성을 만나게 되었다. 현재도 발굴 중인 여리고성은 그 규모와 구조에서 철옹성(鐵甕城)이라고 할만하다. 광야를 떠돌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여리고성은 인간적으로 볼 때 좌절 그 자체였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여리고성에 무혈입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전쟁사의 첫 패배는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이 아니라 그들이 보기에도 만만해 보였던 아이성 전투에서 일어났다(수 7:2~7).
여리고성을 빼앗았던 환희와 기쁨은 오래 가지 못하고 큰 슬픔으로 바뀌었다. 아이성의 패배는 하나님께서 명령한 언약을 지키지 않았던 유다지파 갈미의 아들 아간 때문에 일어났다(수 7:1).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민족 전체가 위험에 빠진 사건은 광야 생활 중에도 여러 번 발생했다. 그중에 한 사건이 고스비 사건이다(민 25:18).
1. 고스비 사건의 배경
고스비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이 싯딤에 이르렀을 때 일어났다. 싯딤은 '아카시아 언덕'이라는 뜻으로 요단강에서 동편으로 11㎞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족장시대에는 엘람 왕 그돌라오멜의 연합군이 소돔과 고모라 지역의 다섯 왕을 무찌르고 재물을 약탈했던 곳이다. 이 때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포로로 잡아갔던 곳이기도 하다(창 14:8~12).
가나안의 문턱이었기에 모세가 마지막 설교를 한 곳이기도 하며 여호수아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곳이기도 하다(민 27:12~22). 지리적으로 가나안 땅과 매우 근접해 있었기에 가나안의 종교와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던 곳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입성을 눈앞에 두자 이것을 막기 위해 모압 왕 발락은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했다. 이 계획은 무산됐지만 영적 타락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자멸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일어났다. 그 사건이 고스비 사건이다.
2. 고스비 사건과 이스라엘의 영적인 자멸
민수기 25장 1절은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또다시 가데스바네아의 실수를 범하고 있었다. 가나안 땅을 지척에 두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을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40여 년 전에 했던 일들을 똑같이 반복하고 있었다. 정탐꾼을 보내기도 했고 이것저것 재보고 미루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싯딤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압의 여인들과 음행하기 시작했다. '음행하다'의 히브리어 '리즈노트'는 '창기같이 행동하다'(신 22:21), '다른 남자와 간통하다'(창 38:24) 등으로 쓰였지만 단순히 육체적인 간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을 떠나 우상숭배를 하고 세속에 물들어가는 영적인 간음을 내포한다.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은 모압 여자들과의 음행에서 멈추지 않았다. 모압 외에도 미디안 족속과의 음행으로 이어졌다. 민수기 25장 1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고스비 사건의 고스비는 모압 족속이 아닌 미디안 족속의 여자였다(민 25:15).
3. 바알브올의 집단적 타락과 영적 각성
민수기 25장 3절은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 야훼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바알브올은 '바알을 섬기는 브올'이라는 뜻이다. 그 당시 모압 족속과 미디안 족속 모두 바알을 섬기고 있었다. 바알 신당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었고 이곳에서 바알을 숭배하는 제의 중의 하나로 신전에서 일하는 여인들과 음행이 이루어졌다.
민수기 25장 3절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전체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바알브올에서 음행을 행했던 사람이 소수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연해 있었음을 말해 준다. '가담했다'로 번역된 '차마드'는 재귀형(Niphal)으로 쓰여 '자기 스스로 묶다' '스스로를 연결하다'(KJV, joined himself)란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싯딤에 거하면서 스스로 바알브올로 찾아가 음란에 빠지고 바알을 섬겼다는 의미이다.
이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백성의 수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하나님 앞에서 목매어 달라고 명령하신다(민 25:4). 이스라엘 백성의 수장들도 바알브올에서 행했던 음란과 우상숭배에 적극적으로 연루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민수기 25장 15절은 고스비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죽임을 당한 미디안 여인의 이름은 고스비이니 수르의 딸이라 수르는 미디안 백성의 한 조상의 가문의 수령이었더라." 고스비는 바알성전에서 음란을 행하던 여인이 아니었다. 미디안 가문 중의 수령의 딸이었다. 바알브올의 음행이 미디안 귀족들에게도 만연해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지파의 장들은 미디안의 귀족들과 어울려 음란과 우상숭배를 일삼고 있었다. 이런 바알브올의 우상숭배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은 염병으로 2만 4000명이 죽는 고통 가운데 있었다(민 25:9).
그런데 어느 날 시므온 지파의 수장이었던 시므리(민 25:14)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보는 앞에서 고스비를 이스라엘 회중으로 데리고 들어왔다(민 25:6).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손에 창을 들고 시므리의 막사로 들어가 한 번에 시므리와 고스비의 배를 꿰뚫어 죽였다(민 25:7~8). 이 사건 이후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고 있던 염병이 그쳤다(민 25:8). 이 일로 미디안 족속과 이스라엘은 화합할 수 없는 숙적 관계가 되었다.
가나안 입성 후 미디안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확할 때가 되면 아말렉 족속과 연합해 모든 곡식을 약탈해 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디안 사람들을 피해 동굴로 피신해야만 했다. 이런 약탈이 7년 동안 이어졌으며(삿 6:1) 미디안 족속으로 인한 궁핍함이 극에 달했다(삿 6:7). 하지만 미디안의 압제는 기드온과 300용사의 승리로 일단락됐으며 더 이상 이스라엘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이상윤 목사(순복음홍콩신학교학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