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갤러리-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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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옛 골목길의 추억사진

       

서울 옛 골목길의 추억사진

 

'서울 행촌동 1972' '집이 좁아 손님을 변변히 초대할 길이 없을 때 평상

하나 놓으면 그걸로 온 골목이 내 집 마당이고 거실이 되었다.

골목은 좁은 집을 열고,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마술의 공간이었다.

 


 '서울 중림동 1984' '강아지를 한 팔로 안은 소녀가 카메라가

신기한 듯 말똥말똥 바라본다. 얼굴은 흙먼지로 얼룩졌어도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가득한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서울 문래동 1975' '한겨울,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으니 물을 끓여 세수를 한다.


 

'서울 아현동 1974' '이삿짐을 나르는 동안 아이를 어떻게 할까.

아저씨는 고민 끝에 리어카에 함께 태운다. 행여 아이가 떨어질까,

고무끈으로 임시 안전벨트까지 채우고 리어카를 몬다.



 '서울 중림동 1973' '아이들은 경계심이 없다.

골목 어귀에서 만난 낯선 아저씨에게도 눈부신 웃음을 선물할 줄 안다.



 '서울 수색 1979' '온 동네 개들 다 집합해

꼬리 살랑대며 밥을 기다린다. 


 

'서울 중림동 1991' '골목 어귀 나무그늘에서

더위를 식히는 할아버지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다. 


 

'서울 행촌동 1976' '보자기 하나 몸에 두르고

잔뜩 얼굴을 찌푸린 소년이 할아버지에게 이발을 당하고 있다.


 

'서울 중림동 1983' '갑작스레 눈이 내린다.

우산을 챙겨 오지 않은 소녀는 지붕 아래로 용케

눈을 피해 골목 사이를 쌩쌩 내달린다.

 

'서울 행촌동 1974' '선풍기도 변변히 없는 집에서

더위를 피하려니 자연스레 러닝셔츠 차림이 된다. 

 더위를 먹었는지 기운 없는 강아지에게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이는 아주머니 얼굴이 인자하다.

 

'서울 천호동 1969' '골목 어귀에 천막 영화관이 들어서면,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각다귀 떼처럼 모여들었다.

  비록 영화를 볼 순 없어도 포스터를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했으니까.



 


자연이 만든 바위 작품  

























장소팔 고춘자의 만담

 

   

시선을 끄는 거리 곳곳의 조각품들

▼ 1. 서울시 태평로 ...세종대왕상


▼ 2.. 서울시 태평로 ...이순신 장군상.


▼ 3. 주한영국문화원 빌딩 앞(움직이는 조형물).


▼ 4, 종로2가 르메네르 스포츠 종로센터 앞


▼ 5. 부산역 앞 ...(Welcome to Busan)


▼ 6. 경기도 용인 도자기 전시관 건너편.


▼ 7. 여의도 KBS.


▼ 8. 충무로5가 CJ센터빌딩 앞


▼ 9. 여의도 SEWOO빌딩 앞/출근 .


▼ 10.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앞.


▼ 11. 일산 드라마파크빌딩 앞.


▼ 12 .서울 노원구 문화의 거리(롯데백화점 뒤)


▼ 13. 서울 신공덕동 S-Oil 빌딩 앞/빛을 든 사람.


▼ 14. 일산 종합운동장 정문 앞.


▼15 . 서울 상암동 CJ E&M Center 앞/그들(They)


▼ 16. 중앙일보사 앞.


▼ 17. 서울 월곡동 Home Plus 주상복합아파트 앞/꿈+사과.


▼ 18. 서울시 삼성역 COEX.


▼ 19. 일산 아람누리/대지의 향기.


▼ 20. 호반의 도시 춘천역.


▼ 21. 경기도 이천세무서 앞/ 서희선생 일대기 조형물.


▼ 22.마포대교 남단 /여의나루


▼ 23. 경마장 입구


▼ 24.김포 롯데몰


▼ 25.서울시 송파구 가락동.


▼ 26. 청와대 사랑채 앞.


▼ 27. 서울시 반포동 효성반포빌딩 앞/서래공원


▼ 28. 미아리 유타 쇼핑몰빌딩 앞/또 다른 나


▼ 29. 의정부시 로데오거리/태조 이성계상




▼ 30. 서울시 역사박물관 앞/옛 전철.


▼ 31. 춘천시 KBS 앞 네거리/雄飛의 塔


▼ 32. 아라인천여객터미널.


▼ 33. 서울시 송파구 잠실 올림픽거리.


▼ 34. 임진각/버마 아웅산 순국외교사절위로탑.


▼ 35. 일산 KINTEX 제2전시관 광장.
 


죽기전에 봐야할 비디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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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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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의 아름다움이......





















호롱불에 얽힌 사연들                             

            

남포등

 

 

 

호롱불

법정스님의 글 한귀절에 ,아궁이에서 군불이 타는 동안
등잔에 기름을 채우고 램프의 등피를 닦아 둔다.

이제는 밤으로 등불이 정답게 여겨지는 계절.
등잔의 심지를 손질하다가
남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떼 소리를 들었다.

산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맘때가 되면
감성의 줄이 팽팽하게 조여지고
귀가 아주 밝아진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렇게 등불은 밝기보다 감정적으로 가슴에 닿는 단어이다.
석유가 들어오기 이전, 그리고 전등이 없었던 시절에
밤의 어둠을 밝히기 위해쓴 것이 등잔이다.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등잔에 콩기름?피마자 기름 등의
식물성 기름을 부어 어둠을 밝혔다.
등잔의 종류도 다양하여 흙으로 만든 것과
유기(놋쇠)로 만든 것, 도자기 유형 등이 있다.

등잔 이외에 초를 사용하기도 하였는데
초는 상류층 양반가정에서 주로 사용하였으며,
예식용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초를 꼽는 촛대는 보통 30 - 70㎝ 정도로,
그 모양도 박쥐형?나비형?원형 등 다양하였다.

개방 이후 1880년대에 석유가 들어오고,
남포등이 소개되면서 일부에서는 기름등잔을 석유 남포등으로 바꾸었고,
초도 밀납 대신 양초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전등이 일반화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전통적인 기름등잔을 사용하고 있었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전기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곳이 절반이 넘었다.
그 때의 학생들은 호롱불을 밝히고 공부했는데
좀 열심히 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콧구멍이 검게 그을려 있곤 했다.

그러나 더욱 옛날에는 그것조차 없어
공부하는데에 애로가 많았다
등잔의 발달사는 이렇다.

등잔 -> 호롱불 ->
남포등(램프 호야) ->백열전구 -> 형광등->삼파장 전구

양초는 옛날부터 쓰였는데
우리가 쓰는 용어 중에 화촉이란 말은
물들인 초를 말한다 .

화촉은 빛깔들인 밀초로,
혼례 때 신랑신부가 함께 자는 방을 화촉동방(華燭洞房),
혼례 때 사용하는 여러 가지 기구를
화촉지구(華燭之具)라고 하는 등,
화촉은 일반적으로 혼례를 상징하는 물건이 되었다.

특히 여러 문양과 다양한 색상이 가미된 밀초는
혼례의 즐거운 분위기와 잘 맞아들었다.
궁중에서는 용이 양각된 용초와 모란꽃이 장식된
화초(畵燭)를 사용하였다




인간이 불을 이용한 이래 불은
음식을 익히는 조리용과 주거를 데우는 난방용
그리고 어둠을 밝히는 조명용의 세 가지로 발전했다.

모든 물체는 빛으로 말미암아
그 실체를 드러내고 아름다움을 보이게 된다.
어둠 속에서는 진실을 알 수가 없다.

등은 어둠을 밝히는 광명의 상징이요 믿음이며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가치이다.
어둠은 죽음이요 빛은 생명이고 희망인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프로메테우스가
신으로부터 불을 훔쳐내어 인간에게 주었다고 하며
우리의 단군신화에서는
단군의 셋째 아들 부소가 불을 발명하였다.

세상에 맹수와 독충이 생기고
돌림병이 퍼져서 많은 사람들이 죽자
부소가 부싯돌을 만들어 불을 일으켜
해로운 것들을 물리쳤는데
부싯돌은 부소의 돌이란 말에서 유래되었다.

산간지방의 흙벽 한 귀퉁이에
제비집 같은 턱을 만들고 거기에 관솔을 피워
방을 밝히는 고굴이 있었다.

등잔불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용되던 등불이었다.
토기, 도자기, 옥 등으로 등잔을 만들고
그 언저리에 한지, 솜, 마사, 삼 등을 꼬아
심지를 만들고 연료는 참기름, 콩기름,
아주까리기름, 동물기름, 생선기름 등을 썼으며
심지가 두 개 인 것을 쌍심지라 했는데
쌍심지는 매우 밝았으나 기름도 많이 먹는다.




등불은 길을 밝혀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길잡이의 상징이다.
인류는 불을 발견하고 이용하면서부터
불에 의지하고 어둠을 밝혀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확실성의 세계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사월 파일의 연등제에는 수많은 종류의 등을 밝혀 어둠을 깨치는데
여기서의 불은 무명을 떨치는 의미이다.

1876년 이후 일본으로부터 석유가 들어오면서 등잔은 호롱으로 바뀌었다.
등잔은 뚜껑이 없는 종지 같은 그릇이었으므로 석유를 쓸 수가 없었는데
그것은 석유는 인화성이 강하여 등잔 전체에
불이 붙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여 석유를 넣는 병모양의 용기와

이를 덮는 뚜껑을 만들었고
뚜껑을 관통하는 심지에 불을 붙이는 호롱불이 생기게 되었다.

호롱불은 보통 나무로 된 등잔대에 놓여졌으며

등잔대 밑은 사각, 육각, 원형, 동물의 모형 등으로 되어
등잔을 안정되게 받혀주고 성냥 등을 놓는 곳이 되었다.

등잔은 아주 작아 크기가 지금의 알콜램프만했고 하얗게 사기로 만들었다.
심지를 돋구면 불이 밝아졌으나 그을음이 많이났고
석유를 많이 먹는다 하여 어른들이 심지를 돋구지 못하게 했다.
등잔밑은 등잔 받침대가 있어서 항상 제일 어두운 곳이었다.





알뜰한 집은 부엌과 안방 사이의 벽에 사방 한 자 남짓 구멍을 내고
부엌쪽 벽에 유리창을 해 달아 그 공간에 호롱불을 놓았다.

일석이조가 아니라 일등이조였다고 하는편이 낫다.
이것은 한 등으로 두 군데를 밝히려는 절약정신이었으며
호롱불은 석유를 적게 소모해 석유 한 홉이면 하룻밤을 밝히고도 남았다.
물론 부엌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호롱불은 늘 안방 한가운데 차지였지만..

호롱불을 놓는 등잔대는
두 자 남짓의 높이로 어른 앉은키와 비슷해서
한밤중에 학생 책 읽는 소리가 낭낭하고
여인네 바느질하는 그림자가 방문 창호지에 비치면
한 폭의 그림이었다.

가물거리는 호롱불은 조금만 움직여도 불길이 흔들렸고
워낙 어두워 바늘귀를 꿰려면 불 앞에 갖다 대야 보였는데
그 불빛 아래서 아이들은 공부를 했고 여인들은 바느질을 했다.




호롱불은 꼭 그림자가 사방에 생겼다.
아이들은 손가락을 이용해 벽에 개,
여우, 나비, 도깨비, 주전자 등의 그림자를 만들며 놀았다.

그 뒤 양초가 나와 부잣집은 양초를 쓰게 되었고 뒤이어
남포등이 나왔는데 배가 불뚝 나오고 위로는 굴뚝처럼 생긴 남포등은
얇은 유리로 만들었는데 자주 깨져서 조심조심 다뤄야 했다.
남포등은 석유는 많이 들었으나 몇 곱은 밝아서 인기였으며

특히 밤나들이를 갈때는 바람막이가 있어서

더욱 애용을 했었다.

남포등을 등피라 했는데 등피는 그을음으로 꺼매졌다.
그런 등피를 청소하려면  세숫대야에 비누를 풀고,
지난밤 그을음이 낀, 유리로 된 등피를 물속에 넣고
물을 넣은 후 양쪽 입구를 막고 흔든다

1970년대 이후 전기가 활발하게 보급되면서 호롱불은 자취를 감추었다.
삼십 촉짜리 알전구가 방을 밝혀
사람들을 놀라게 하더니
형광등이 나오면서 사람들은 방바닥의 서캐도 보인다며 신기해했다. 

지금은 간접조명에 삼파장스탠드가 방마다 밝혀주는 그림자가 없는 시대이다.
그림자란 무엇인가.

밝은 빛을 가로막는 자신의 모습이 아니던가?
자기 자신을 늘 돌이켜 보아 갈고 닦던 옛 어른들의 지혜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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