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아시나이다/이영훈목사

"야훼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야훼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편 139편 1~5절, 23~24절)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코로나19가 계속 확산되고 있습니다. 어저께는 100명이 넘었습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예배가 정상화되지 못한 것에 대한 심한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기도처뿐 아니라 본 교회 모든 부속 성전을 다 열어서 교회 와서 예배드리고 싶은 분들은 모두 다 예배드릴 수 있도록 예배 처소를 개방했습니다.

그래서 13개 지성전과 136개 기도처와 본 교회 모든 부속 성전 그리고 전국에 영상으로 함께 예배드리는 650여 예배 처소, 교회의 모든 성전으로 오셔서 예배를 드리시길 부탁드립니다.

그 대신 우리가 방역지침을 잘 따라서 거리 두기도 하고 마스크도 착용해야 하겠습니다. 예배드리는 것에 소홀하면 안 됩니다. 언제 이것이 끝날지 모르기 때문에 이제는 마음을 부여잡고 모든 예배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예배에 최선을 다해주시고 오늘 한 가지 기도 부탁드릴 내용은 우리 조용기 목사님, 사랑하는 원로 목사님이 경미한 뇌출혈로 수술을 받으시고 지금 회복 중이십니다. 주님이 속히 회복시켜주셔서 맡겨진 사명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이를 위해 함께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 다같이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 382장 (통:432) :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시고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어떤 어려운 시험과 문제와 고통이 우리에게 다가와도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시는 주님의 은혜로 모든 어려움 이겨내고 넉넉히 승리할 줄을 믿습니다. 주여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의 신앙의 열정이 식고 감사가 사라지고 기도가 소홀했던 것을 주님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시고 다시 첫사랑을 회복하고 주님 앞에 나와 간절히 예배드리고 기도할 때 하늘 문을 활짝 여사 큰 은혜와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조용기 원로 목사님 속히 건강을 회복하셔서 귀한 사명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은 시편 139편의 말씀을 본문으로 하여서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아시나이다” “주께서 아시나이다”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와 부딪히며 고통 가운데 살아갑니다. 너무나 힘들고 괴로워서 차라리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 삶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 사는 동안에는 이러한 문제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 하므로 늘 고통의 굴레에 갇혀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그때로부터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 되시기 때문에 주인 되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면 어떤 어려움도 고통도, 괴로움도, 질병도 주님의 은혜로 넉넉히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고 주인이라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많은 문제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철저히 주님께 맡기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맡기는 것입니다. 맡기고 다시 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까 끊임없이 문제 속에 갇혀서 고통을 당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1. 나를 아시는 주님

그런데 참으로 감사한 것은 오늘 시편 139편 말씀 보니까 첫째로 주님이 우리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를 잘 아시는 주님에 대해서 139편 1절은 말씀합니다.

야훼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님이 나를 살펴보시고 아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냥 쓱 지나쳐서 우리를 보고 계신 것이 아니라 깊은 관심을 가지고 우리를 살펴보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깊은 감춰진 상처를 아십니다. 우리의 아픔을 아십니다. 우리의 문제를 아십니다. 우리의 질병을 주님이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의 꿈과 소망을 주님이 알고 계신 것입니다. 예레미야 12장 3절은 말씀합니다.

야훼여 주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보시며 내 마음이 주를 향하여 어떠함을 감찰하시오니

주님이 나를 아시고 내 마음을 감찰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겉모습을 보고 자기가 느끼는 바대로 쉽게 판단합니다. 그래서 남의 무슨 약점이나 허물을 보면 정죄하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의로워서 자기도 똑같은 허물투성이인데도 불구하고, 자기의 허물은 보지 못하고 남의 허물을 보고 지적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양심을 살펴보고 계십니다. 시편 7편 9절입니다.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주님이 우리의 마음을 보시고 우리를 인정해주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을 택할 때 그의 겸손을 보고 택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얼마 못 가고 교만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마음을 돌이키시고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 한 사람을 다음 왕으로 세우기로 하셨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를 보내 이새 아들 중에 한 사람을 기름 부으라고 해서 사무엘이 이새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이새에게 여덟 아들이 있었는데 사무엘이 첫아들 엘리압을 보고 그냥 반했어요. 외모만 보고 “이 사람이구나.” 해서 기름을 부으려고 생각하는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입니다.

야훼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야훼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입니다. 주님을 향한 그 믿음, 그 사랑을 보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통해서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의 의식을 가지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생을 복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내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 간구와 소원을 아뢰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아뢰기 전에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간구를 주님이 들으시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시편 139편 2절, 3절입니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나의 모든 것을 잘 아시는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나를 안수하시는 주님

성경은 나아가서 둘째로 우리를 아실 뿐 아니라 우리를 안수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139편 5절입니다.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주님이 나를 감싸주시고 나를 안수하신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님의 보호하심에는 빈틈이 없습니다. 주님이 나를 딱 둘러싸고 계시기 때문에 어떤 대적이 우리를 공격해도 주님이 막아주시는 것입니다.

때때로 내가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더라도 주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해주시고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친히 안수해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경을 보면 안수를 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안수하십니다. 둘째로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안수하십니다. 셋째로 성령충만을 위해서 안수하십니다. 넷째로 귀한 직분자로 세우기 위해서 안수하시는 것입니다.

영적 권위를 가진 제사장이나 선지자나 주의 종이 안수할 때 그와 같은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런데 주의 종이 안수만 해도 놀라운 은혜가 임했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안수하시니 우리에게 얼마나 큰 축복이 임하겠습니까. 주님의 능력의 손이 우리 위에 얹어져 안수할 때 문제가 사라져 버리고 모든 병에서 놓여남을 받고 치료받게 되고 우리 마음에 기쁨과 은혜가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날마다 주님의 은혜 가운데 주님께 안수받고 문제가 해결되고 병이 고침을 받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 병자들에게 때때로 안수하셨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을 안수하셔서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8장 25절입니다.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18년 동안 귀신이 들려서 꼬부라져 허리를 펴지 못하던 여인을 안수하셔서 고치셨습니다. 누가복음 13장 13절입니다.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우리가 주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어 안수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주님이 안수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안수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택하셔서 무조건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우리가 엎드려 기도할 때 우리에게 안수해주십니다. 여러분 날마다 주님 앞에 깨어지고 낮아져 엎드려 기도함으로 주님께 안수받는 복 받은 인생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부모들이 자기 아이를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 안수받기를 원했습니다. 당시 아이들을 무시하던 사회였기 때문에 제자들은 꾸짖으며 저리 가라고 왜 귀찮게 하냐고 그들을 물리치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제자들을 나무라시고 그 아이들을 오게 하여 안수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9장 13절~15절입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그들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

안수하실 때에 주님의 은혜와 축복이 안수받은 사람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강림 이후 사도들이 사마리아에 가서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안수할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사도행전 8장 17절입니다.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날마다 주님의 안수를 받도록 주님 앞에 기도의 무릎을 꿇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해도, 우리에게 허물이 있어도 엎드려 회개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면 우리에게 안수해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기뻐하시고 안아주시고 우리에게 안수해주시고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주님 앞에 깨어지고 낮아진 모습으로 나와 엎드려 기도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나를 안수하시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염려도 떠나가고 근심도 떠나가고 슬픔도 떠나가고 질병도 떠나가고 문제도 떠나가고 주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큐티함으로 말씀을 통해 주님 앞에 안수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늘 찬양과 감사와 기도를 드림으로 주님 앞에 안수받고 복 받은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3. 나를 인도하시는 주님

셋째로 주님이 우리를 안수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주님께서 인도하여 주십니다. 시편 139편 23절, 24절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피시고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의의 길로, 축복의 길로, 영원한 길로 우리를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것 아시는 주님께 맡기고 오직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우리의 앞길을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길을 인도해주실 때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5절은 말씀합니다.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여러분의 길을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각도, 계획도, 뜻도, 여러분의 일생도 주님께 맡기면 주님께서 인도하시고 주님께서 놀라운 일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이 한평생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넘치는 복을 부어주십니다. 일생이 다 가도록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한평생 주님의 은혜 가운데 살다가 그의 일생을 회고하며 지은 시편 23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는 성경 말씀 중 하나입니다. 시편 23편 1~3절을 우리 다같이 고백합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주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므로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주님이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고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해주십니다. 내 영혼을 날마다 소생시켜주시고 주님의 의를 위해서 우리를 복된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좋은 길을 예비하시고 인도해주신 주님, 주님 앞에 감사드려야 합니다. 고난이 다가와서 우리가 마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가운데로 다니는 그러한 고통 가운데 빠졌다고 할지라도 주님께서 그곳에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 주시고 내 잔이 넘치는 복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환난이나 핍박이 다가오고 문제가 다가오고 고통이 다가오고 질병이 다가와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4절과 5절은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오늘 여러분의 잔이 넘치는 복을 다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할렐루야. 궁극적으로 우리를 영생 천국으로 인도해주십니다. 23편 6절 결론입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주님의 전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영원히 살리로다.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무엇을 염려하십니까. 주님이 이렇게 우리의 일생을 책임져 주시는데 왜 슬퍼하고 왜 낙심하고 왜 상처 가운데 쭈그려 앉아서 눈물만 흘리고 있습니까.

믿음으로 일어서십시오.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의 손을 꼭 붙잡으십시오.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우리의 호흡이 다하는 그 날까지 오직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는 가운데 주님이 찬송가 하나를 마음에 떠올리게 해주셨습니다. 그것은 토마스 오베다이아 치솜 목사가 지은 ‘오 신실하신 주’라고 하는 찬송입니다. 미국 켄터키 프랭클린이라고 하는 한 작은 마을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목사님은 어릴 때부터 너무 몸이 아팠습니다. 평생 몸이 아팠습니다.

또 집안이 어려워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해서 결국 독학으로 교사자격증을 땄는데 몸이 너무 아프고 안 좋아서 몇 년 만에 교사 생활을 그만둬야 했습니다. 21살 때 신문 편집장으로 일했지만, 몸이 아파서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27살 때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이 주인이 되시니까 그때부터 삶이 바뀌었습니다. 37살 때 감리교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건강이 안 좋아서 몸이 아파서 목회를 1년만 하고 그만 교회를 사임하게 됩니다.

“아니, 하나님 평생 아팠는데 목회라도 제대로 하게 해주시지. 37살에 목사가 돼서 1년 만에 목회를 그만두게 되었으니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누가 그렇게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후 인디애나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보험을 팔아 겨우겨우 생계를 유지합니다.

그런데 그가 몸이 아파서 질병과 싸우고 있을 때 주님의 말씀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매일 같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여러분, 말씀을 날마다 읽고 묵상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 모릅니다. 말씀 하나가 여러분에게 탁 뛰어 들어와서 여러분의 운명을 바꾸는 축복의 말씀으로 바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22절, 23절이 다가왔습니다.

야훼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그래서 슬픔과 절망 가운데 있던 이 치솜 목사가 새 힘을 얻었습니다. 몸이 아파서 고통 가운데 있으면서도 신실하신 주님, 날마다 새 힘을 주시는 주님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은 찬송이 바로 새찬송가 393장 ‘오 신실하신 주’입니다.

이 찬송가가 수많은 사람에게 큰 은혜를 끼쳤습니다. 무엇보다도 많은 신학생을 배출하고 주의 종을 배출한 무디 신학교에서는 이 ‘오 신실하신 주’ 찬송이 교가처럼 시도 때도 없이 불렸습니다.

어느 총장은 이 찬송을 거의 매주 학생들과 함께 불렀는데 장례식 찬송도 이 찬송이었습니다. 이것이 성악가, 찬양 사역자 조지 베블리 쉐아에 의해서 빌리 그레함 전도 대회 때 불렸습니다. 그리하여 전 세계 성도들이 사랑하는 귀한 은혜의 찬송이 되었습니다. 이 찬송을 짓고 난 다음 하나님께서 그의 건강을 조금씩 회복시켜주셔서, 놀랍게도 몇 년 더 살까 하던 그분이 94세까지 살았습니다. 할렐루야.

그는 1200편의 찬송시를 지었습니다. 여러분은 건강하신데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부끄러운 삶을 살지 말고 정말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목사님이 고백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건강이 나빠서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신실하심과 놀라운 돌보심을 이 찬송에 기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가 솟구쳐 올라옵니다!

경이로운 감사가 넘쳐난다고 그는 고백했습니다.

이 찬송은 그의 신앙 고백이자 많은 성도의 신앙 고백이 되었습니다.

393장입니다. 이 찬송이 우리 모두의 신앙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1절] 오 신실 하신 주 내 아버지여

늘 함께 계시니 두렴없네

그 사랑 변찮고 날 지키시며

어제나 오늘이 한결같네

[2절] 봄철과 또 여름 가을과 겨울

해와 달 별들도 다 주의 것

만물이 주 영광 드러내도다

신실한 주 사랑 나타내네

[3절] 내 죄를 사하여 안위하시고

주 친히 오셔서 인도하네

오늘의 힘되고 내일의 소망

주만이 만복을 내리시네

[후렴] 오 신실 하신 주 오 신실 하신 주

날마다 자비를 베푸시며

일용할 모든 것 내려주시니

오 신실 하신 주 나의 구주

우리 3절은 자리에서 다 일어나서 우리의 믿음의 고백으로 이 찬송을 부릅니다. 주님, 신실하신 주님, 제가 너무 힘듭니다. 저를 붙들어주시고 치료하시고 회복시켜 주옵소서. 새 힘을 주옵소서. 고백하며 찬양합니다.

 

 

<기도>

기도드립니다. 오 신실하신 나의 주님,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못나서, 어리석어서, 연약해서, 부족해서 이 신실한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하고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살아왔던 나의 부족한 모습을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는데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지 못하고 내 생각에 사로잡혀서 염려하고 근심하고 미워하고 다투고 분노하고 상처받고 고통 속에 살아왔던 것을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시고 오늘 이후로 우리의 삶이 시편 23편의 고백처럼, 또 ‘오 신실하신 주’ 이 찬송의 고백처럼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나아가는 우리 되도록 도와주옵소서. 그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되도록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광야 길 40년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야훼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야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애굽기 14장 13~14절)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코로나-19가 이렇게 종식될 듯하면서 계속 확산이 이어져가고 최근에는 50명, 60명 숫자가 늘어나면서 특별히 교회,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에 대한 특별한 주의를 요청해왔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교회는 방역에 모범을 보여서 지금까지 어떤 어려움도 없이 이렇게 예배를 잘 드리고 있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전 지성전과 136개 기도처가 그리고 650여 교회가 이 시간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일부 성도님들은 온라인으로 집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줄 압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은 하나님, 이 코로나-19가 속히 종식되게 하여 주옵소서.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이대로 계속 연말까지 갈 것이다. 라고 하는 예측을 하고 실제로 완전한 종식은 백신하고 치료제가 나와서 전 세계에 보급되는 그때를 시점으로 잡고 있는데 그것은 지금부터 1년 6개월 후로 봅니다. 그러니까 2021년도에도 모든 국제 행사가 다 취소되고 2022년도로 넘어가는 그러한 시점에 우리가 서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은 주님 이 백성을 긍휼히 여겨 주셔서 코로나-19가 속히 종식되게 하여 주시고 성도들이 일상적인 생활로 돌아오고 예배가 회복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지금 경제는 곤두박질하고 사회는 불안정하고 북한은 끊임없이 무력도발을 하고 어디를 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데 우리에게는 만군의 야훼 주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시기 때문에 하늘을 바라보고 기도하면 길이 열릴 줄로 믿습니다.

“주님 긍휼히 여겨 주셔서 이 땅에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모든 문제가 사라지게 하여 주시고 우리의 예배가 회복되게 하여 주시고 성도들의 삶 가운데 신앙의 열정이 회복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여 삼창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 412장 (통:469) :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셔서 속히 이 어려움을 벗어나게 하여 주시고 예배가 회복되고 사회가 안정되고 모든 문제와 어려움이 속히 사라지게 하여 주옵소서.

오직 주님만이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우리의 주님이시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오니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은 출애굽기 14장 13절~14절 말씀 가지고 “광야길 40년”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은혜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 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광야길 40년” “광야길 40년”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주고 안 알아주고 이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정해주셔야 우리 삶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함을 받아야 우리가 사는 삶 가운데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주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와 믿음, 하나님과의 동행,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에 있습니다. 정말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있느냐?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느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있느냐? 늘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다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가운데 유월절 사건을 통하여 저들이 해방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던 것은 낮에는 40, 50도 높이 기온이 올라가서 너무 뜨겁고 밤에는 영하로 떨어져서 추워 덜덜 떨어야 하는 사막과 같은 척박한 환경의 광야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이 광야를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40년 광야 길을 갔습니다. 이 40년 광야 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훈련 시키시고 연단시키신 과정이었다는 것을 잊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믿자마자 우리 앞에 천국이 펼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난 그 순간부터 우리 앞에 광야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왜 우리 앞에 광야를 펼쳐놓으셨느냐?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우리를 광야로 내보내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광야 길을 가면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서 우리 삶에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애굽의 군대가 다시는 쫓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말씀을 보니까 광야 길을 갈 때 애굽의 군대가 다시는 쫓아오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해방되어 가나안을 향해 출발했을 때 그들이 출애굽 하자마자 바로 그 앞에 홍해가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가나안으로 가려면 홍해를 건너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뒤에는 바로 왕이 군대를 풀어서 그들을 잡으려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자기 밑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다 해방되어 나가니 얼마나 국가적으로 손실입니까. 바로 왕이 마음이 변해서 군대를 풀어서 그 뒤를 쫓아왔습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혀 있고 뒤에는 바로의 군대가 쫓아오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워 떨면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모세에게 원망, 불평을 했습니다. 출애굽기 14장 10절, 11절입니다.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야훼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그들이 그들의 지도자 모세에게 대들었습니다. 우리가 죽어서 묻힐 그 매장지가 없어서 이 광야까지 끌고 와서 죽임을 당하게 하느냐? 거친 말로 원망과 불평의 말을 쏟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쏟아 놓는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많은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들려올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얘기를 듣고 마음에 담아두면 그것이 상처가 되고 마음 속에 쌓여 분노가 됩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안 됩니다. 그런 부정적인 이야기는 귀를 닫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오직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주님의 음성을 듣고 담대히 외쳤던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다가와도, 절망적인 상황이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쉽게 원망하고 불평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불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감사하고 원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주님을 찬양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감사하며 절대 긍정의 고백을 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출애굽기 14장 13절, 14절입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야훼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야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주님께서 행하시는 그 구원의 놀라운 역사를 보라. 주님께서 너희를 위해서 대신 싸워 주실 것이므로 가만히 있을지니라. 이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불평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고 소리 지르지 말고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라. 어떻게 주님이 일을 하시는가 살펴보아라. 모세가 담대히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와 같이 외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을 들은 모세가 바다를 향하여 지팡이를 내미니 하나님께서 홍해를 쫙 좌우로 갈라지게 만들어 주시고 그 갈라진 사이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육지처럼 건너갑니다. 할렐루야.

그 뒤를 바로의 군대가 따라 들어 오지만 곧 하나님이 물을 합치게 해주셔서 저들은 몰살당하고 맙니다. 출애굽기 14장 27절, 28절은 설명합니다.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새벽이 되어 바다의 힘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슬러 도망하나 야훼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따라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으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할렐루야.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하나님께서 대신 싸워주시기 때문에 어떤 환난이 다가오고 문제가 다가와도 주님만 믿고 의지하면 백전백승인 것입니다.

70년 전, 6월 25일 북한 공산 괴뢰집단이 350여 대의 소련 탱크를 앞세우고 38선 전체를 넘었지마는 이 땅에 기도하는 수많은 백성들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결국 저들이 전쟁에 패하게 하시고 저들이 물러가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저들이 뭐 핵을 가졌다 어쨌다 해도 그들이 무력으로 도발하는 그날은 북한이 망하는 날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부르짖어 기도하여 주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이 홍해 사건 이후 다시는 바로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추격 해오지 않았습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에서 이 같은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고 주님을 찬양합니다. 출애굽기 15장 1절, 2절입니다.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야훼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야훼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야훼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할렐루야. 저들이 주님 앞에 감사하며 찬양을 올려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고 나서 이와 같은 감사와 찬양을 드렸던 것처럼 우리의 일생도 주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와 찬양의 일생이 되어야 합니다.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실 때 죄와 사망의 권세가 완전히 바로의 군대가 홍해에 덮여 멸망한 것처럼 이미 그때 다 패한 것입니다. 더 이상 죄와 사망의 권세가 우리를 다스리지 못합니다.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영생과 부활이 선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고 나의 구세주가 되셨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위대한 승리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늘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여 주님 안에서 승리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아말렉이 그들의 뒤에서 공격했다.

둘째로 오늘 말씀을 보니까 아말렉이 그들의 뒤를 공격했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바로의 군대는 쫓아오지 않았는데 그 뒤에 성경을 보면 아말렉이라고 하는 이방족속이 가나안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쳤습니다. 그런데 신명기에서는 그 설명을 저들이 그 뒤를 공격했다고 말합니다. 25장 17절, 18절입니다.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광야 길을 가는데 아말렉 족속이 그 뒤에 쳐진 사람들, 약한 사람들을 공격해 온 것입니다. 아말렉은 우리가 천국 갈 때까지 광야 길을 가는데 영적으로 우리가 나태해지고 게을러지고 뭔가 주님 보시기에 부끄럽고 연약한 모습이었을 때 그때 우리를 공격해 오는 마귀의 세력을 말합니다.

마귀는 언제나 우리 주변을 맴돌다가 우리가 이와 같은 약점을 보일 때 우리를 공격해 옵니다. 우리가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면 아말렉이 와서 눈치만 보다가 그냥 가버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이 나태해져서 기도도 하지 아니하고 말씀도 보지 아니하고 예배에 대한 사모함도 사라지고 입술을 열면 감사 대신 불평이 나오고 하면 그때 벌떼처럼 아말렉이 달려들어서 우리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세상에 나가 적당히 죄를 짓고 타협하면 그때 아말렉이 공격해 오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속히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두 손을 들고 주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강력한 기도가 아말렉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아말렉이 공격해 올 때 모세가 산에 올라가서 손을 들고 기도할 때 아말렉을 물리쳤습니다. 출애굽기 17장 11절입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마귀가 공격해 올 때, 기도의 손을 높이 들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아말렉은 아주 끈질기게 우리 주변을 맴돌 것입니다. 그래서 약점만 보이면 달려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한 번 충만하고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충만하고 또 충만해서 영적으로 강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믿음으로 전진하여 나가면, 우리는 백전백승입니다. 왜냐?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아말렉과 싸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7장 16절입니다.

이르되 야훼께서 맹세하시기를 야훼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할렐루야~!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고 말씀으로 충만하고 기도에 힘쓰면, 늘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주시고 백전백승 승리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마귀를 대적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 9절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근신하라 깨어라!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광야 길을 갈 때 한가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가면서 늘 애굽의 살던 때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생각이 옛날에 사로잡히니까 부정적으로 되고 원망과 불평을 쉽게 쏟아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 승리자로 살기 위해서는 절대 과거에 붙잡혀 살면 안 됩니다. 이사야 43장 18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과거에 붙잡혀서 사는 한, 우리는 늘 광야에서 맴도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안에서 과거의 모습은 다 벗어버리고, 새롭게 변화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여러분은 새롭게 변화된 하나님의 복 받은 자녀입니다. 더 이상 과거의 실패가, 과거의 상처가,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가 여러분을 붙잡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간 것입니다.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복 받은 존귀한 자녀로, 존재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약속의 말씀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하여 나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언제나 주님이 돌보시고 함께 하셨다.

우리가 아말렉을 물리치고 믿음으로 전진하여 나아갈 때, 셋째로 언제나 주님이 돌보시고 함께 하시며 우리의 삶을 인도해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끊임없이 원망과 불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40년을 하루같이 저들과 동행하시며 저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저들을 돌봐주셨습니다. 저들의 길을 우리 하나님이 앞서가시면서 인도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가야지, 내가 앞서갔다가는 많은 문제와 어려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신명기 1장 30절 31절입니다.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야훼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야훼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보살피시고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데, 우리보다 앞서가십니다. 우리가 피곤하여 쓰러지면 우리를 안아주시고 일어나 걸을 힘이 없으면 우리를 엎고 가시는 것입니다. 이만큼 우리 주님이 사랑하시고 우리를 돌보고 계십니다. 신명기 1장 33절에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13장 21절로 22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야훼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우리가 일생 살아가는 동안 늘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의지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말씀의 구름 기둥이 우리를 덮어서, 우리의 삶을 인도할 때 우리는 어떠한 문제와 어려움도 능히 싸워 이기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환난의 밤이 다가올 때는 성령의 불기둥이 우리에게 임하여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세상의 모든 죄를 물리칠 수가 있습니다. 마음속에 다가오는 염려, 근심, 고통, 괴로움 모든 어려움을 우리가 성령의 능력으로 물리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주님과 동행하시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평상시에는 믿음이 좋은 거 같은데, 환난을 당하면 많이 흔들립니다. 상처를 받고 낙심하여 주저앉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우리 주님이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 순간에도 우리 주님이 우리를 돌보고 계십니다. 그 순간에도 주님이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세상 사람 다 떠났어도 주님은 우리 곁에 계셔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며 염려하지 말라, 걱정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내가 너의 일생을 가장 좋은 길로 은혜의 길로 인도해 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어릴 때 정식 의사가 아닌 요즘으로 말하면 돌팔이 의사가 약을 잘못 처방해서 생후 6주 만에 눈이 먼 화니 제인 크로스비라는 분이 계십니다. 화니 제인 크로스비 선생님은 1820년 뉴욕주의 남동부에 브루스터라는 아주 조그만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그 마을이 얼마나 작은 마을인지 인터넷에 들어가보니 한 2,100명 정도 살고 있는 지금도 그렇게 작은 마을인데, 행복하게 자라야 할 이 어린 딸이 생후 6주에 눈에 염증이 생겼을 때 옛날에 뭐 벌에 물리고 된장 바르듯이 누가 와서 눈에 약을 발라줬는데, 그만 눈이 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그 삶에 그때부터 광야길이 시작돼서 일 년이 지나지 않아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하루하루 살기가 힘드니까 어머님이 나가서 파출부 일을 하시는데 할머니 밑에서 자랐어요. 할머님이 얼마나 이 화니 제인 크로스비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했는지 어린 시절에 할머니의 기도 소리에 하나님 앞에 일러주는 것을 들으면서 자라납니다. 아주 신앙의 뿌리가 깊어져서 벌써 여덟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고, 그가 어린 시절 하나님 말씀을 읽고 암송을 하는데 일주일에 성경을 다섯 장씩 외웠다고 합니다. 그렇게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며 자라났는데, 그 할머니도 열한 살 때 천국에 가셨습니다.

그래서 참 외롭고 힘든 인생길을 걸어가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찬송을 지었습니다. 38살 때 늦은 나이에 배우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 남편도 앞을 못 보는 분인데 두 분이 신앙 안에서 만나서 한 가정을 이루고, 그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태어나서 얼마 있다 또 죽습니다. 지금까지도 고난인데 계속 고난이 겹치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고난 속에서도 절대 원망 불평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찬양하며, 그때마다 펜을 들어 찬송을 지은 것이 무려 9천 편이 넘습니다. 1820년 3월에 태어나서 1915년 3월에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95세를 살면서 9천 편이 넘는 찬송을 지었습니다.

우리 찬송가에 그분이 지은 찬송이 많이 있습니다. 아까 우리가 불렀던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화니 제인 크로스비 선생님이 지은 찬송입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사랑하는 말일세’, ‘십자가로 가까이 나를 이끄시고’ 무려 우리 찬송가에 22곡이 실려 있습니다.

이분의 일생은 광야길 이었지만, 광야 길에서도 주님이 함께하여주셔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해주시고 풍성한 은혜 가운데 살게 하신 복된 일생이었습니다. 이분이 지은 찬송 우리 함께 부르면서 오늘 말씀 마무리합니다. 이분의 신앙고백이 우리의 신앙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찬송가 391장 (통:446) : 오 놀라운 구세주>

 

1절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

참 능력의 주시로다

큰 바위 밑 안전한 그곳으로

내 영혼을 숨기시네

 

2절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

내 모든 짐 벗기시네

죄악에서 날 끌어 올리시며

또 나에게 힘주시네

 

3절 측량 못 할 은혜로 채우시며

늘 성령의 감화 주사

큰 기쁨 중 주님을 찬양토록

내 믿음을 도우시네

 

후렴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 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으로 덮으시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광야길 인생이지만 주님이 동행해주시고 함께해주심에 그 놀라운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혼자인 줄 알았는데 혼자가 아니라 광야 길에 주님이 동행자요, 인도자가 되어주셔서 함께하여주심을 생각할 때 첫째도 감사요, 둘째도 감사요, 마지막도 감사입니다.

한평생 앞을 못 보는 맹인으로 살았지만 주옥과 같은 은혜로운 찬송 9,000편을 넘게 지은 화니 제인 크로스비 선생님처럼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는 주님의 일꾼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이영훈목사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하나님이시라 사망에서 벗어남은 주 야훼로 말미암거니와 그의 원수들의 머리 곧 죄를 짓고 다니는 자의 정수리는 하나님이 쳐서 깨뜨리시리로다"(시 68:19~21)

귀한 은혜의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첫째도 기도, 둘째도 기도, 마지막도 기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의 노력도 예기치 못한 이 어려운 상황을 제대로 해결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는 이때에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너무 바빠서, 살기 바빠서 주님과의 교제가 멀어져 기도가 소홀히 되었고 말씀 묵상하는 것도 소홀했고 신앙의 열심도 사라졌고 이러한 영적인 침체에 알게 모르게 빠져있던 우리들이 그것도 모르고 지나왔습니다.

주님께서 이제는 다시 잠자고 있던 곳에서 깨어 일어나서 신앙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의 열정을 회복하라. 기도를 회복하고 감사를 회복하고 찬양을 회복하고 말씀의 은혜를 회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회복되면 이 사회가 밝아질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희망은 우리 교회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기도할 때 주님 우리가 먼저 영적으로 회복되게 하여주셔서 이 모든 어둠이 사라지고 주님의 은혜의 찬란한 빛이 비쳐오게 하여 주옵소서. 다같이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 412장 (통:469) :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불쌍히 보셔서 이 절망적인 현실에서 건져주시고 모든 무거운 짐 내려놓고 주님 안에서 참된 평안과 기쁨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옵소서.

지금도 몸 된 교회에 나오지 못하고 있는 곳에서 모바일로, 인터넷으로, tv로 예배드리는 성도에게도 긍휼함을 베풀어 주셔서 그곳에도 큰 은혜가 있게 하여주시고 코로나-19가 종식되어 우리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그날 감격의 눈물이 우리 모두에게 넘쳐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배를 통하여서 주님 영광 홀로 받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시편 68편 19절에서 21절의 말씀을 가지고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 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아서 인생을 살아갈 모든 힘을 다 잃어버리고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절망에 빠진 한 성도님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 목사님은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유명한 노만 빈센트 필 목사님이신데 뉴욕에서 52년 동안 목회하시면서 긍정적 사고의 힘으로 많은 사람에게 큰 감동을 끼친 목사님입니다. 목사님께 와서 상담합니다.

"너무나 힘들어서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이 세상 어디 염려, 근심, 걱정 없고 스트레스 받지 않고 평안히 쉴 곳이 없습니까? 제 인생의 짐이 너무나 무겁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이 그 말을 듣고 가만히, 물끄러미 그 여성도님을 쳐다보고 계시다가 잠시 생각을 하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여기 뉴욕에서 나가면 뉴저지 턴파이크를 만나는데 뉴저지 턴파이크를 타고 내려가다가 11번 출구에서 빠지면 뉴저지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가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정말 고요하고 염려도, 근심도, 걱정도 없고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평안히 쉴 수가 있습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정말 편안히 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가면 Rest in peace. 평안히 쉬라고 하는 사인이 그곳에 붙어있습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고난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예고도 없이 시시때때로 우리를 찾아와서 우리를 괴롭힙니다. 고난은 우리 인생의 한 부분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은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갖고 고난을 잘 견디고 극복하면 반드시 우리에게 좋은 날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코로나-19로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지내고 있지만 믿음을 굳건히 해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인생

먼저 무거운 인생,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인생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모든 인생이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68편 19절에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이렇게 시편 기자가 기록했습니다. 이 세상 사는 사람 누구나 예외 없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벌써 2월부터 시작해서 약 5개월 이상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19사태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거의 다 멈춰져 있는 것 같습니다.

경제가 곤두박질하고 사회가 불안정하고 학생들은 제대로 학교 가서 수업을 받지 못하고 몇 차례 연기했다가 겨우 학교 갔는데 확진자가 하나 나오면 학교 전체가 폐쇄돼서 2주 동안 학교가 멈춰 서고 무엇보다도 우리 크리스천들은 주일날 맘껏 와서 찬양하고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불편함을 겪어야 합니다. 늘 마스크를 써야 되고 열을 체크하고 또 아이디를 갖고 확인을 해야 예배 장소에 들어올 수 있는 그러한 불편함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 각자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삶의 염려, 근심, 걱정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고 크고 작은 질병의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고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생겨난 각종 스트레스의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누구나 예외 없이 다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인생에 다가오는 모든 짐은 죄의 결과로 말미암은 저주입니다. 짐이 축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은 어떤 불의도, 불행도, 문제도 없는 완전한 샬롬, 평화의 세상이었습니다. 말씀대로 살아가기만 하면 기쁨과 평화가 넘쳐나는 세상이었는데 아담과 하와가 죄짓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평화가 사라져버리고 질병과 고통, 가난과 저주, 사망이 인류 역사 가운데 뿌리를 내리게 된 것입니다.

인류 역사 대대로 이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사람들이 몸부림쳤지만 그 누구도 죄와 사망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탄식합니다. 로마서 7장 24절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 누구도 스스로 죄와 사망의 짐을 벗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오직 인류의 희망되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거운 죄 짐을 짊어지고 가는 인생을 향하여 부르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 보니까 주님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오늘 주님의 음성을 듣고 모든 무거운 짐을 지고 주님 앞에 나와 주님 밑에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문제 해결자가 되시고 주님만이 우리에게 참된 평화와 안식을 주시고 주님만이 우리의 모든 무거운 짐을 해결해 주실 수 있으신 것입니다.

2.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성경은 이어서 말씀합니다. 날마다 우리의 짐을 주님이 지신다고 말씀합니다.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시는 주에 대해서 68편 19절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모든 사람이 무겁고 힘든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것 같고 늘 싱글벙글하니까 아무런 문제도, 어려움도 없는 것 같지만 실제로 알고 보면 남에게 말 못 할 고민, 상처, 아픔, 슬픔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내 마음의 이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져 줄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속은 모른다고 누가 우리 마음의 고통과 고민을 알고 대신 그 무거운 짐을 짊어져 주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 앞에 나와서 모든 짐을 내려놓으면 주님이 우리 인생의 모든 짐을 대신 짊어져 주시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택하고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한평생 우리를 도우시고 돌보아 주십니다. 이사야 44장 2절에 이와같이 말씀합니다.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 낸 너를 도와 줄 야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

주님께서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백발이 될 때까지 우리를 안고, 품고 업어주시고 모든 짐을 대신 짊어져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46장 3절, 4절입니다.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홀로 해결해 주시는 위대한 주님이 되십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스스로 해결해보려고 몸부림치지만 그 짐이 날로 더 무거워질 뿐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서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백발이 성성해서 우리의 호흡이 다하는 그날까지 책임져 주신다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잠깐 있다가 떠나는 세상의 친구와 다릅니다. 우리를 지으신 주님이 끝까지 우리를 돌보시는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의 짐을 대신 져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피곤에 지쳐 쓰러지면 와서 안아주시고 그래도 걸을 힘도 없어 누워있으면 우리를 업고 가시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시편 55편 22절입니다.

짐을 야훼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모든 무거운 짐을 다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십자가 그늘 밑에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요즘 얼마나 날씨가 더운지 올해 여름이 일찍 찾아오고 다른 때보다 더 날씨가 뜨거운 여름이 된다고 하는데 그래도 그늘 밑에 가면 잠시 시원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고난의 햇볕이 내려쬐일 때 십자가 그늘 밑에 가면 우리는 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찬송가 415장에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찬송가 415장 (통:471) : 십자가 그늘 아래>

십자가 그늘 아래 나 쉬기 원하네

저 햇볕 심히 뜨겁고 또 짐이 무거워

이 이 광야 같은 세상에 늘 방황할 때에

주 십자가의 그늘에 내 쉴곳 찾았네

십자가 그늘에서 나 길이 살겠네

나 사모하는 광채는 주 얼굴뿐이라

이 세상 나를 버려도 나 두려움 없네

내 한량없는 영광은 십자가뿐이라

할렐루야.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모든 무거운 짐을 다 십자가 밑에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어차피 우리 힘으로 부친 인생입니다. 여러분 힘으로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맡기면 주님께서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게 하시고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4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뿐만 아니라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 주시고 내 잔이 넘치게 만들어 주십니다. 다음 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꼭 붙잡고 있으면 모든 어려움을 이기게 만들어 주시고 우리의 잔이 넘쳐나는 풍성한 은혜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모든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새 힘을 주시고 승리의 삶을 살게 만들어 주십니다. 시편 68편 20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하나님이시라 사망에서 벗어남은 주 야훼로 말미암거니와

할렐루야. 약속의 말씀 붙잡고 기도하면서 날마다 주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주여! 나를 도와주옵소서. 주여! 나와 함께하여 주옵소서. 주여! 나를 살려 주옵소서. 내 짐이 너무 무겁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말씀 붙잡고 기도하며 성령의 충만함 받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3. 우리의 원수를 멸하시는 주님

주님께서는 셋째로 우리의 원수를 멸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대적에 둘러싸여 있는지 근데 그 문제도 주님이 해결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68편 21절입니다.

그의 원수들의 머리 곧 죄를 짓고 다니는 자의 정수리는 하나님이 쳐서 깨뜨리시리로다

평생 우리를 괴롭히는 많은 대적이 있습니다. 물질에 어려움을 당하는 분들은 물질의 고통이 참 큽니다. 요즘은 우리가 잘 살아서 그런 걱정은 안 하지만 옛날 제가 어릴 때 보면 어렵게 사는 분들 "오늘 저녁 뭐 먹지? 쌀이 떨어졌네." 그런 얘기를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또 대학을 다닐 때 제가 난지도 철거민촌에 갔었는데 정말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서 그렇게 힘들게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처음 봤습니다. 아이들은 나가서 구두닦이 하고, 넝마주이하고 어른들은 나가서 아스팔트 까는데 자갈 까는 일을 하는데 참 힘들게 사는 인생들의 모습은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때 '내가 앞으로 평생 어려운 사람들 도우며 살아야겠다.' 그런 결심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뿐만 아니라 병원에 가보면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있는지 대형 병원이 꽉꽉 찼습니다. 각종 질병의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물질 문제는 열심히 노력해서 우리가 힘을 얻는 대로 수입을 얻으면 되고, 질병도 우리가 잘 치료받고 건강 관리해서 건강해지면 되는데 진짜 대적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는 문제가 많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병들었습니다. 얼마나 악한 비방이 난무하는지 모릅니다. 그냥 SNS에 유튜브에 막 띄웁니다. 일단 띄워놓고 상대편에 큰 상처를 입히고 나중에 아니면 말고. 이런 일들이 지금도 이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일을 당할 때 참 감당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연예인들이 가끔 악성 댓글 때문에 목숨을 끊기도 하는 그러한 일들이 생겨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악한 사람들하고 직접 대면해서 싸우지 말라고 말합니다. 어떠한 문제도 다 주님께 맡기면 주님이 책임져 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감정이 상한 채로 사람들과 다투게 되면 우리의 감정을 절제하기 힘들고 그래서 큰 소리가 오가게 되면 나에게도 상처가 고스란히 남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원수를 갚아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12장 19절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히브리서 10장 30절입니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주님이 우리의 억울함을 아시고 우리의 상처를 아시고 우리의 원수를 심판하시고 그들을 징계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순간적으로 절제하지 못해서 감정적으로 폭발해서 소리 지르고 욕하고 싸우면 그 상대편 악한 사람과 똑같이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우리가 그런 악한 사람과 똑같이 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아무리 속이 뒤집히고 속상해도 그때는 납작 엎드려서 주님 앞에 기도드려야 됩니다. 눈물의 기도로 나아갈 때 주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보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그 모든 대적으로부터 보호해주시고 대적을 물리쳐 승리하게 해주시고 큰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21절을 말씀합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모든 악과 싸워 승리하며 남은 일생 하나님 영광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14장 8절입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위대한 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지금 잠깐 어렵지만 잠깐 힘들지만 잠깐 짐이 무겁지만 주님께 믿음으로 맡기고 주님만 바라보고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면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우리의 삶을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놀라운 은혜로 함께해 주시는 것입니다. 절대로 낙심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상처 가운데 낙심하며 주저앉지 말고 주님 붙잡고 주의 말씀으로 의지해서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말로 감당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 믿음으로 승리한 한 분의 간증으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목사님 사모님이시면서 많은 글을 쓰신 저술가이기도 하고 강연가로 유명하신 리앤 맥코이 사모님입니다. 목사님의 아내로서 목회자의 아내로서 세 자녀와 함께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던 사모님이신데 2010년도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 한꺼번에 몰아닥쳤습니다.

2010년도 3월에 대장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두 달 지나고 나서, 목사님이 있던 테네시 중부에 집중호우가 와서 예배당과 교육관이 물에 다 침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려 피해액은 27만 5천 달러, 약 3억 원 가까운 피해가 났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지난 후에 18살 난 큰딸이 가출했어요. 자, 목사님 딸이 가출을 하면 얼마나 힘듭니까. 또 사람들이 뭐라고 비방을 할 것 아닙니까. 목사님 딸이 집을 다 나갔다고. 그런데 집을 나가서 또 남자친구랑 동거하면서 아이까지 낳았어요. 딸 가진 부모님들은 잘 보시기(watch) 바랍니다.

큰딸이 가출하고 나서 석 달이 지나고 난 다음, 그분의 아들은 전염성 단핵증이라고 하는 발열과 오한을 동반하는 바이러스성 병을 앓게 돼서 온몸이 바늘로 찌르는 듯한 그런 고통이 와서 일 년 동안 병마와 싸워야 했습니다. 또 그 아들이 이런 진단을 받고 난 한 달 뒤에는 남편 목사님 눈꺼풀에 피부암이 발견되어 종양 절제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삼 주 후에는 작은딸마저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라고 하는 진단을 받아서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일 년 내에 순식간에 갑자기 이 목사님 가정에 불어닥친 것입니다. 본인은 대장암으로 또 교회는 홍수에 침수되고, 큰딸은 가출하고, 남편은 피부암이 왔고, 아들도 막내딸도 다 병이 오고 그러고 이년 후에는 또 사모님 암이 재발되었어요. 간으로 전이가 되었습니다. 계속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 때문에 제대로 먹지고 자지도 못하고 몸은 쇠약해지고 정신은 점점 지쳐만 갔습니다. 마치 욥이 하루아침에 전 재산 다 잃어버리고 태풍이 불어서 열 자녀 다 잃고 몸에 건강이 사라져 온몸이 피부병에 걸려서 기왓장으로 긁고 아내는 등을 돌리고 친구들이 와서 비난하는 그러한 절망에 빠진 것 같은 말 할 수 없는 고난의 자리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어느 날 새벽 코피가 터져서 코피를 닦다가 이대로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 암으로 인해 죽게 되나요."

그때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아니다. 리앤, 너는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좋아질 것이다. 내가 너로 장수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할 것이다."

그래서 약속의 말씀 붙잡고 주님 앞에 기도합니다. 눈물 콧물 쏟으면서 주님 앞에 기도합니다. '주님 저를 살려주신다고 했사오니,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고, 우리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모든 어려움을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건강을 회복하여 주시고 세 자녀가 다시 다 회복되게 해 주시고 남편도 건강하게 해 주시고 교회도 안정되게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내 삶을 궁극적으로 주관하고 계시므로 내 육신에 스며든 암세포들도 그분이 허락하신 것임을.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강렬한 사랑을 가장 잘 보여주신 그곳 십자가 아래에 내 모든 두려움과 걱정을 내려놓았다."

십자가 밑에 모든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 모든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고 주님 안에서 참된 기쁨과 감사를 회복하고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무장해서 승리자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절대 낙심하지 마시고 절대 포기하지 말고 십자가 꼭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가십시오.

우리 함께 찬송가 415장을 부르면서 오늘 말씀을 마치고 기도하기 원합니다.

<찬송가 415장 (통:471) : 십자가 그늘 아래>

십자가 그늘에서 나 길이 살겠네

나 사모하는 광채는 주 얼굴뿐이라

이 세상 나를 버려도 나 두려움 없네

내 한량없는 영광은 십자가뿐이라

내 눈을 밝히 떠서 저 십자가 볼 때

날 위해 고난 당하신 주 예수 보인다

그 형상 볼 때 내 맘에 큰 찔림 받아서

그 사랑 감당 못하여 눈물만 흘리네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십자가 사랑에 감사합니다. 저희들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서 온갖 고난을 겪으시고 돌아가신 우리 예수님 믿고 의지하고 사랑합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짐을 대신 짊어지신 우리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사랑합니다.

주님 계시기에 제가 오늘 여기까지 왔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돌봐주시고 우리를 치료해 주시고 우리를 회복시켜 주셔서 한평생 십자가 그늘 밑에 쉬면서 주님만 믿고 의지하며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가는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기도하면 천국이 보인다/조용기목사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태복음 11장 28~30절)

 

1. 하늘을 바라보라

첫째로, 문제를 당했을 때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이 “나는 병들었다. 나는 병들었다.” 그러면서 병만 바라보면 병이 한없이 커져요. 병을 바라보면, 두려움과 근심, 걱정 때문에 병이 더 악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때,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여덟 식구가 들어갈 배를 만들라고 하셨는데 배를 만들 때 희한하게 만들었었습니다. 노아의 배는 옆에 창문이 없어요. 노아의 배는 오직 천장에다 구멍을 뚫어서 위에만 창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밖을 볼 수 없고 아침, 점심, 저녁 언제나 위의 하늘을 쳐다보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비가 40일 동안 내려서 천하가 다 물에 잠겼는데 일엽편주로 이 노아의 방주만 물에 떠 있었습니다.

만일 배 옆 부분에 창문이 있어서 밖을 내다보았다면 노아의 가족은 아마 심장마비에 걸려서 다 죽었을 것입니다. ‘천하가 다 물에 잠기고 우리만 두둥실 떴는데 우리가 과연 살아남을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아주 낙심하고 절망해서 죽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환경과 문제를 바라보지 못하게 하시고 창문으로 옆에 만들어진 것을 보는 것이 아니고 천장에 문을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하나님만 바라보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신다는 것을 믿게 되고 그래서 방주에 탄 사람들이 홍수를 다 지나고 육지에 무사히 내리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큰 문제를 당했을 때, 환경을 바라보면 낙담하고 절망하여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땅만 바라보고 삽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의 자랑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문제가 다가올 때, 그들은 땅만 보기 때문에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과 다른 것은 우리는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문제 당할 때 땅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면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의 시민이기 때문에 하늘을 쳐다보고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과 총명과 능력을 받아서 땅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믿는 사람이 취해야 할 태도인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에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습니다. 그는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침범하려고 계획을 세울 때마다 미리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이스라엘의 왕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람 왕의 계획이 늘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아람 왕이 그 사실을 알고 엘리사를 잡으려고 군대를 이끌고 와서 엘리사가 있는 도단 성을 첩첩이 둘러싸고 엘리사를 잡으려고 날이 새기를 기다렸습니다.

이른 아침에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일어나서 기지개를 쫙 펴고 하품을 하다가 그만 기절초풍을 했습니다. 온 천지에 아람 군대의 깃발이 가득하고 개미 새끼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도단 성을 완전히 포위한 것입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빠져 나갈 도리가 없습니다. 그걸 보고 게하시가 벌벌 떨면서 들어와서 엘리사에게 “이제 우리는 죽었습니다. 우리는 적군에게 완전히 포위당했습니다.” 그렇게 보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그 말을 듣고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하나님, 이 종의 눈을 뜨게 하여 보게 하소서.” 하고 게하시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게하시의 눈이 열리고 게하시가 너무나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열왕기하 6장 17절에 “기도하여 이르되 야훼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야훼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고 말합니다.

게하시가 영적인 눈이 열려서 보니 아람 군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람 군대와 엘리사 사이에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이 불말과 불병거를 타고 첩첩이 둘러싸 있는 것을 자기들을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엘리사의 종은 땅만 바라보니까 아람 군대를 보고 벌벌 떨고 절망에 처했지만 엘리사는 하늘을 바라보니까 하나님께서 이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셨다는 것을 알고서 마음에 담대함을 가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땅이 아니라 하늘을 볼 때,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문제를 당하면 성경 보고 새벽에 새벽기도하고 혹은 철야기도하고 금식기도하면서 하늘을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의 해답을 알게 되고,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 기도하라

둘째로, 문제를 당했을 때, 전능하신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에 도착했을 때, 앞에는 바다요, 뒤에는 애굽 군대가 쫓아 나오고 있으니 ‘이제는 죽었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그들은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해 통곡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벌써 그러한 일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가올 것을 아시고 바다 속에 길을 예비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아무리 피할 길을 예비해 놓았다 할지라도 우리가 기도해야 길을 열어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출애굽기에 14장 21절에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야훼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고 말합니다.

홍해 앞에 서서 모세가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다 가운데로 지나게 하셨던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마실 물이 떨어졌습니다.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으니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때 마침 물을 발견했는데 먹어보니 그 물은 써서 먹지 못하는 물이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 다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면서 “우리를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고 고함을 쳤습니다.

이와 같이 문제를 당했을 때, 땅만 바라보면 낙심하고 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했습니다. 왜냐면 모든 문제의 해답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문제를 당했을 때, 땅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기도했던 것입니다. 모세가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15장 25절에 “모세가 야훼께 부르짖었더니 야훼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이런 일을 당할 것을 아시고 벌써 그곳에 물을 달게 하는 나무를 심어서 자라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기도할 때, 그 나뭇가지를 물에 던지라고 방법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문제를 당하였을 때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을 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문제를 해결할 길도 이미 예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그것을 알려 주시기 때문에 원망이나 불평이나 탄식을 하는 사람은 그 길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문제에 대한 해답을 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실이 너무 암담하고 답답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길이 안 보인다고 말합니다. 정치도 길이 안 보이고 경제도 길이 안 보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문제를 당했을 때, 사람의 눈에는 길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홍해를 만났을 때, 바다가 갈라질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먹을 물이 떨어졌을 때, 바위에서 물이 나올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먹을 양식이 떨어졌을 때, 하늘에서 만나가 내릴 것을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나사로가 죽었을 때, 주님께서 그를 살리실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을 지금 우리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비하신 길을 보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6절에 “나 야훼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라고 말씀합니다. 또,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사 43:19~20)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이같이 길을 없는 곳에 길을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제를 만났을 때, 하늘을 바라보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3.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셋째로, 우리가 기도로써 문제를 맡기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쉼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저의 죄를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고 무거운 짐을 예수님이 대신 짊어지고 쉼을 줄 수가 있습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 된 문제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해결하셨습니다. 병의 문제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짊어지고 해결하셨습니다. 저주의 문제도 죽음의 문제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해결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면 주님께서 우리의 짐을 대신 져 주시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60년 동안 목회하면서 수많은 성도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긴 사람은 어떠한 형태든지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맡기지 아니하고 늘 울고불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고 그 문제를 자기가 부둥켜안고 몸부림치는 사람은 그 문제를 말미암아 파멸되는 것을 또한 많이 보았습니다.

여러분, 기도를 통해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저는 기도할 때 이런 마음의 상상을 합니다. 내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부둣가에 배를 가지고 와서 “네 무거운 모든 짐을 이 배에 짐 싣듯이 실어버리라.”고 그러면 나는 그 배에 나의 모든 짐을 다 실어버립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 다 실었어요. 이제 떠나세요.” 그러면 내 짐을 실은 배가 떠나버립니다.

일단 배가 떠나면 이제는 하나님의 책임입니다. 그 배를 운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절대로 잘못 운전할 리가 없습니다. 그렇게 맡기고 나면 우리 마음이 얼마나 편안한지 모릅니다. 대개 우리 성도들이 실패하는 것은 기도가 부족해서 실패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님들이 성전에 와서 기도할 때 보면 “하나님이여, 이 일도 맡깁니다. 저 일도 맡깁니다. 괴로운 나의 모든 짐을 다 맡깁니다.”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성전을 떠나갈 때, 그 짐을 도로 찾아가는 것입니다. “잠시 동안이라도 맡아주신 것 감사합니다. 내일 와서 또 다시 한 번 더 맡겨보겠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께서 잠시 맡았다가 도로 다 찾아 버려 가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일을 책임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맡길 때는 완전히 맡겨야 합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나는 주님께 맡기고 순종하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문제를 완전히 주님께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문제를 당했을 때는 내 고집을 부리지 말고 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9~30)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쉼을 얻기 위해서는 주님께 배우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우리 멋대로 가면 우리가 올바른 길로 가도록 주님께서 고난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우리 교회 부형님 한 분이 크게 사업을 했었는데 갑자기 도산하는 바람에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어 가족들을 이끌고 겨우 움막집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하루 세끼 라면만 먹고 사는데 부인도 낙심하고 자리에 눕고, 완전히 절망 가운데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웃에 살던 우리 교회 구역장님이 그 가정에 가서 전도를 했는데 처음에는 반응이 없다가 구역장님이 하도 열심히 전도를 하니까 마지못해서 그 집 부인이 구역장님을 따라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부인이 처음 교회에 나올 때는 구역장님 등에 업혀서 나왔는데 그러기를 몇 번 하더니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어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그 남편이 도대체 교회가 어떤 곳이길래 병이 낫고 사람이 달라지는가? 궁금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 금요일 저녁에 부인이 교회 간다고 하니까 그 남편이 술병을 포켓에 넣고 아내를 따라 나섰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남편이 그날 철야예배를 드리다가 은혜를 받았어요.

그때부터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철야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면서 “하나님, 우리 식구가 움막집에 살고 있습니다. 셋방이라도 주시고 식구들을 먹여주시고 살펴 주시게 해 주시옵소서.” 그렇게 열심히 부르짖어 기도를 했단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사업을 시작하게 되고 또 사업이 잘 되어서 집도 사고 큰 공장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속에 그만 악한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이 있기는 어디에 있어? 우연의 일치로 내가 잘 되던 차에 교회에 간 것이지, 하나님 믿었다고 잘 될게 무어냐?” 그렇게 생각하고 그때부터 하나님을 등을 지고 교회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인이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면서 자리에 눕더니 얼마 안 있어 혼수상태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급히 병원으로 데리고 갔는데 의사가 말하기를 뇌출혈로 쓰러진 것인데 십중팔구는 죽고 살아나도 반신불수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병원에서 아무런 방법이 없다고 하니까 할 수 없이 부인을 업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언덕길을 낑낑대면서 올라가다가 갑자기 하나님을 배신했던 자기 죄가 떠올랐습니다. 그 자리에서 회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눈물, 콧물로 범벅된 채 부인을 업고 집에 돌아오니까 구역식구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그 구역식구들이 부인을 위해서 울면서 합심으로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부형님이 밤늦도록 부인을 위해서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까 옆에 있어야 할 부인이 안 보이는 겁니다. 깜짝 놀라서 부인을 찾아보니까 병원에서 곧 죽는다던 부인이 밤새 멀쩡하게 나아서 부엌에서 아침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문제를 당했을 때,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자기중심으로 살던 것을 회개하고 간절하게 기도하면 주님께서 친히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을 섬기며 따라갈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삶에 쉬는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여러분을 향해서 팔을 활짝 펴시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여 주십니다. 여러분 모두가 오늘 이 시간에 가지고 온 문제를 주님께 맡기고 간절하게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참된 쉼을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다 수고하고 짐 진자들이 어디를 찾아갑니까? 병원을 찾아가도 안 되고 시장터에 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안 되고 지혜와 총명을 다해서 인간의 힘을 이용해도 안 됩니다.

주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했으니 우리는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주님 능력으로 오늘 병든 자를 고쳐 주시옵시고 주님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옵소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희 원수 병마는 떠나갈지어다! 떠나가라! 떠나가라!

우리 성도들 병들어 아파 눈물 흘린 사연을 다 고쳐주시고 병든 자들을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병든 자들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 지은 자들 다 회개하고 하나님 무릎 밑에 꿇어앉아 회개하고 그 팔 밑에 들어가서 피난처로 삼으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새 힘을 주시고 새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치료함을 주시고 건강을 주시고 기쁨과 행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시여, 개인문제, 가정문제, 세상문제, 사업문제 문제에 묻혀서 온갖 고생을 하고 발버둥을 치는 형제, 자매들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홍해수를 가르듯이 광야의 바위에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만나가 떨어지듯이 메추라기가 비처럼 어지듯이 우리 오늘날도 하나님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분명히 알고 예비해주신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비한 것을 바라보고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늘을 쳐다보고 살아야 되는데 땅을 바라보고 살면 안 됩니다. 아브라함도 땅을 보고 살 때는 아들을 얻지 못했으나 하늘을 보고 별들을 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너희 자손이 별들처럼 많을 것이라고 해서 용기를 주고 아들을 주었습니다.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 형제, 자매들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하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 능력을 힘입어서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삶의 심판의 두 가지 근원/조용기목사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중략)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야훼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야훼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창세기 18장 18~21절)


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성경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당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정욕이 넘쳐나 매우 부패하고 도덕적으로 무너진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기 전에 그곳에 두 천사를 보냈는데 그들이 소돔에 이르렀을 때,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두 천사를 자기 집에 머물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소돔 사람들이 롯의 집으로 몰려와서 롯의 집을 둘러쌌습니다. 그들은 롯에게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창 19:5)고 말합니다. 이것만 봐도 소돔과 고모라 성 사람들이 얼마나 부패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악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은 것이 당연합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멸망을 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얼마나 세상을 사랑했던지 그런 음란하고 방탕한 곳을 택하여 그곳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롯이 올바른 신앙생활을 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롯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기에 롯이 그 영혼을 유지했지 그렇지 않았으면 완전히 파멸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심판과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에 그 계획을 아브라함에게 먼저 알려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심판 계획을 듣자 하나님께 나아가서 간절히 중보기도를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기도하기를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창 18:23~24)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를 보면, 그는 하나님의 성품을 좇아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를 행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악인에게는 형벌을, 의인에게는 구원을 베푸시는 분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의인과 죄인을 무더기로 함께 심판하지 않습니다. 의인은 반드시 구출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공의로운 하나님께 나아가서 "이 성에 50명의 의인이 있으면 50명 때문에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기도를 한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창 18:26)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50명의 의인만 있어도 모든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풀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죄인들은 의인 덕분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북한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이 땅에 1천만 명의 이상의 성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성도들을 위해서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함께 살려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모르는 하나님의 법칙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계속해서 기도합니다. "그러면 다섯 명이 부족해서 45명만 있으면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그래도 용서해 주겠다." "그러면 40명만 있으면?" "40명만 있어도 용서해 주시겠다." "그러면 30명만 있으면?" "30명만 있어도 용서해 주겠다." "그렇다면 20명만 있어도 용서해주시겠습니까?" "20명만 있어도 용서해 주겠다." 나중에는 "의인이 열 명만 있어도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열 명만 있어도 심판 안 하겠다."고 그러셨습니다. 의인의 수를 오십 명에서 열 명이 될 때까지 계속 기도를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했는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곳이 심하게 타락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의인 열 명이 없어서 심판을 받은 완전히 무너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은 죄에 대해 엄하게 심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시사 우리의 죄악을 그에게 책임지게 하시되 십자가에 매달으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엄하게 심판하셨는가를 보십시오. 하나님은 아들이라도 하나님은 인정사정없이 심판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조차도 그 무서운 심판을 감내하실 수가 없어서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외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엄히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중보기도가 효과가 없었는가?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했지만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했을 때, 아브라함의 기도로 말미암아 롯과 그의 가족이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창세기 19장 29절에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롯을 보시고 그곳을 피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소돔과 고모라 성을 엎으시는 중에 롯을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롯의 신앙을 보신 것이 아니라 의인 아브라함의 간구에 응답하셔서 롯의 생명을 건져 주셨던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6절에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중보기도는 큰 힘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열심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가족은 물론 친척들, 친구들, 이웃들, 그리고 우리나라와 민족과 전 세계를 위해서 기도의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작년에, 우리 교회 자매님 한 분이 저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그 아버지가 쓰러져서 뇌진탕으로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데 뇌에 부종이 점점 커지고 있어서 생명이 위독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이 광주에 있어서 제가 기도해 줄 테니 손수건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님은 아버지 옆에 있어야 하니까 못 오고 딸의 친구가 대신 손수건을 가지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손수건 위에 손을 얹고 간절하게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그 자매님의 편지가 다시 보내져왔습니다. 당시 병원에서 1주일을 넘기기가 힘들다고 했는데 그 손수건을 얹고 기도하자 아버지가 한 달 동안을 누워계시다가 소천 하셨는데 그 한 달 동안 가족들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고 감사 편지를 보내 온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자매님을 전도한 사람이 누군가 하면 바로 손수건 심부름을 한 친구의 어머니였던 것입니다. 이 어머니가 자기 딸과 딸의 친구를 위해서 중보기도를 했는데, 딸의 친구가 먼저 예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 어머니의 딸이 심부름 때문에 손수건을 가지고 저에게 왔다가 기도를 받고 예수님을 잘 믿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은혜에 감격해서 4부 성가대 찬양대원으로 섬긴다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중보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려지는 기도는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응답되게 하는 것입니다. 당장은 응답이 없을지라도 그 기도가 쌓이면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따라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가 위대한 일을 이룬다는 것을 알고 가족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더 많이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 불의와 악이 가득 넘쳐나는데 하나님께서 바로 심판하지 않는 것은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8절에 "야훼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기 때문에 인간이 죄를 짓는다고 금방 심판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경고하고 경고해도 그것을 듣지 않고 죄가 쌓여서 상한선에 차면 그날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도 그 죄가 하늘에 닿았을 때 하나님께서 심판하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심판과 회개

그러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방법은 바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에는 여러 차원이 있는데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섬기지 않는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여러분,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셨는데 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죄인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은 자기 죄 때문에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는 예수님이 대신 다 갚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를 흘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심으로 우리 인생의 죄를 다 청산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네 죄를 다 갚았으니 너를 믿고 나를 믿고 용서함을 받으라."고 하셨는데, 그 주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이 제일 먼저 회개해야 될 것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 내 중심으로 산 죄를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의 기회가 와도 이를 외면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의 롯의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성을 멸할 것이므로 빨리 그 성을 떠나라는 경고를 들었지만 경고를 무시하고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코 결국 멸망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어 세상의 끝이 온다는 말을 듣고도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구원이 문 앞에 와 있으나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구원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받는 것은 인간이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구원의 길이신 예수님을 주셨어도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지 아니하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2)고 말씀하시고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7)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놀라운 복음의 은총을 베풀어 놓았으니 지금은 은혜 받을 때요, 지금이 구원의 날인 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불신자뿐만 아니라 예수 믿는 성도들도 회개를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로 오염된 세상에 살면서 날마다 더러워지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무공해 지대에 살았습니다. 에덴동산에는 죄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무공해 지대에 살면서도 마귀의 유혹을 받아 넘어졌는데 우리는 죄가 꽉 들어찬 세상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눈을 뜨면 죄가 보이고 어느 곳에 가도 죄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입니다. 죄가 꽉 들어찬 세상에 사니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도 죄에 빠지고 죄로 말미암아 상처를 입을 때가 많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날마다 죄를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회개를 그냥 후회만 하고 자백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후회와 자백하는 것과 더불어 삶의 방향까지 바꿔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으로 살던 삶을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고 세상을 따라 살던 삶을 주님을 따라 사는 삶으로 바꾸는 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회개란 히브리어로 '슈브'인데 그 말은 '되돌아오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길로 가던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절로 5절에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말씀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해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 대신에 자기가 하나님이 되고 돈이 하나님이 되고 쾌락이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죄를 모두 회개하고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51편 17절에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불쌍히 여기시고 소생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잠언서 28장 13절에도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한 것입니다. 죄를 숨기면 형통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인을 멀리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를 자복하면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서 죄를 씻어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우리 앞에는 은혜의 보좌가 나아가는 길이 항상 열려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죄를 회개하고 긍휼하심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특권이 주어져 있으므로 늘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회개하는 여러분이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깊은 차원의 회개가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하면 성령께서 깊은 차원의 회개를 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데 이러한 회개는 바로 생각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이 달라지는 것이 깊은 차원의 회개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세상적으로 생각하고 이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는 생각이 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깊은 차원의 회개라는 것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믿음과 순종을 생각하고 십자가를 바라보고 마음이 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나는 용서 받은 의인이라는 마음으로 무장을 하고 용서 받은 의인이니 의롭게 살아야 하겠다는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또, 나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화목하고 성령께서 내 속에 와 계시므로 성령을 항상 내 마음속에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성령과 동행함으로써, 거룩하고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으므로 예수님이 나의 치료자가 되시고 나를 건강하게 하셨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무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저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나를 해방하였으니 예수 안에서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무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하여 나는 부활이요, 영생천국이 내 본향이라는 생각으로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과 오중복음으로 무장하고 생각을 새롭게 하는 것이 깊은 차원의 회개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종착역에 도착할 때까지 회개의 연속일 것입니다. 우리는 회개의 의미를 한 가지에 국한시켜서는 안 됩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에게 회개라는 것은 돌이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믿은 것을 삶의 원리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회개하라는 것은 윤리와 도덕적으로 잘못된 죄를 회개하고 거룩한 삶을 살라는 것이요, 예수님을 잘 믿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회개하라는 것은 더욱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마음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점차 마음이 말씀으로 깊은 곳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살라는 의미입니다.

이러므로 회개하는 삶이 복된 것입니다. 오늘 이후로 여러분 모두가 회개를 통해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 도>

하나님 아버지여, 빨리 병든 가슴에 손을 얹으라고 하는데 간이 아픈 사람도 간에 손을 얹고 위가 나쁜 사람도 위에 손을 얹고 허리가 나쁜 사람은 허리에 손을 얹고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은 눈에 손을 얹고 귀가 안 들리는 사람은 귀에 손을 얹고 밥을 먹어도 소화가 안 되는 사람은 위장에 손을 얹고 다리가 아픈 사람은 다리에 손을 얹고 모든 아픈 곳에 손을 얹고 주를 바라보니 주님이시여 성령으로 나타 나사 그들을 다 고쳐주시옵소서.

이 시간에 기적이 나타나시옵소서. 너희 모든 죄악을 가지고 병을 가지고 온 원수 귀신아, 이 시간에 떠나가라! 떠나가라! 떠나가라! 병에서 고침 받으라! 이 시간에 병을 고침 받으라! 하나님 아버지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든 자를 다 고쳐주시옵소서. 기적이 일어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고난의 유익/이영훈목사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편 71절)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코로나-19사태로 말미암아서 벌써 2달째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리지 못하고 모바일로 인터넷으로 또 TV 앞에서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크신 위로하심과 평안함이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반드시 우리에게 이 어려움을 통과하고 난 후에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은 절망이지만 절망 뒤에 다가올 희망의 내일을 우리가 바라보면서 우리가 기도합니다.

이제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되게 하여 주셔서 우리 대한민국이 온 세계에 그 의료기술이 가장 뛰어난 나라로 인정받고 주목받는 좋은 결과가 나타나게 하여 주시고 이 땅에 독버섯처럼 자란 신천지 이단이 완전히 해체되고 뿌리 뽑혀서 교회가 정화되고 교회에 제2의 부흥이 있게 하여 주시고 신천지를 통하여 가정이 파괴되고 교회에 분열과 사회의 혼란을 가져왔던 이 모든 문제가 싹 해결되는 좋은 결과가 있게 하여 달라고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이번 총선에 세워진 많은 국회의원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국민을 섬기고 올바르게 그 맡겨진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있는 자리에서 우리 다 같이 통성으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 412장 (통:469) :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평안을 저희의 마음 가운데 허락하여 주셔서 염려, 근심, 걱정이 다 사라져버리고 주님이 주신 평안함으로 모든 어려움을 헤쳐나가고 승리하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주님 홀로 영광 받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시편 119편 71절 말씀 가지고 "고난의 유익"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고난의 유익" "고난의 유익"

이 세상 사는 사람들 가운데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내게 고난이 다가오면 어떡하든지 고난을 피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될 것은 아무리 애를 쓰고 피하려 해도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을 어찌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당할 때 많은 사람들이 원망하고 불평하고 남 탓을 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고난은 궁극적으로 신앙과 생활의 큰 유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예비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으로, 은혜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 고난 없는 성숙은 없다

먼저 고난 없는 성숙은 없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언제 영적으로 성숙합니까. 고난을 당할 때 성숙하는 것입니다.

온실의 화초가 잘 자라는 것 같아도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것 같아도 병충해에 약하고 찬 바람 한 번 불면 시들어 버려 죽게 합니다. 왜? 고난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고난을 겪어서 찬 비바람을 맞은 화초가 굳건히 잘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이 힘들고 어려워도 열심히 공부해야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가 있습니다. 몸의 건강을 위해서 열심히 운동을 해야 합니다. 건강 검진 가면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죠. "하루에 30분 이상은 숨이 찰 정도로 운동하는 것이 좋습니다. 목사님처럼 나이가 드셨으면 하루에 30분은 숨이 가쁘게 걸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육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이렇게 우리가 수고하는데 우리가 영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이라고 하는 훈련과정을 통하여서 우리의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 고난을 통하여서 주의 말씀을 배우게 되었다고 고백을 합니다. 119편 71절입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사람들은 고난을 당할 때 왜 하필이면 이러한 일이 내게 다가왔습니까. 원망하고 불평하고 남 탓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고난을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난이 그를 더 짓누를 뿐인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이 다가올 때 오히려 자신을 살펴보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뢰하고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 이 고난의 과정 속에 어떻게 나를 훈련시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까를 깊이 생각하며 믿음의 전진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고난 속에서 주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고난을 통하여서 우리를 바로잡아 주시고 우리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길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 때 하나님이 고난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길을 바른길로 가게 바꾸어 놓으십니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야 하는데 다시스로 가니까 풍랑이라고 하는 고난을 통해서 그를 물고기 뱃속에 넣으시고 다시 니느웨로 방향을 돌리신 것처럼 우리가 고난이 다가올 때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과연 내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내가 지금 주님이 원하시는 길로 가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알게 모르게 주님 뜻과는 벗어난 잘못된 길을 가고 있지는 않은가? 잘못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 자신을 살펴볼 수가 있습니까. 고난의 때에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 가운데 주님의 뜻이 있고 주님의 은혜가 있고 주님의 가르치심이 있고 주님의 인도하심이 있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67절에 성경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부족함과 잘못된 모습을 발견하고 우리 자신을 바로잡고 바른길로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는 삶의 나침반이요, 인생의 내비게이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통과할 때 철저히 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거울을 보면 내 얼굴에 무엇이 묻었는지를 다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서 내 영혼을 살펴서 주님 보시기에 내가 잘못된 것이 무엇이 있는가 다 찾아내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말씀을 통해 새 힘을 얻고 모든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119편 50절입니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고난 당할 때에 말씀이 내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치료가 되고 능력이 되어서 정말 죽을 것 같은 그 고난의 자리에서 우리를 살려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절대로 우리에게 손해가 아닙니다. 절대 절망이 아닙니다. 고통이 있고 아픔이 있지만 우리를 더 나은 길, 좋은 길로 인도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 중에 약속의 말씀을 꼭 붙잡고 오히려 감사와 찬양으로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웬 귀신 들린 아이가 자꾸 쫓아와서 방해를 합니다. 그래서 귀신을 쫓아버렸어요. 그랬더니 이 점치는 여자아이를 통해서 돈을 벌던 주인이 바울과 실라를 이상한 풍습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고발해서 붙잡아서 매를 맞게 하고 감옥에 집어넣습니다. 아마 그 지역 유지였던 모양이죠. 재판도 받지 않고 그렇게 몰매를 때리고 감옥에 넣을 수 있는 것은 굉장히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억울하게 매 맞고 들어간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 여기까지 복음을 전하러 왔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밤중에 감옥에서 주님을 바라보고 감사하고 찬양했습니다. 기도했습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 25절은 설명합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그 순간 옥터가 흔들리고 손과 발에 매인 모든 것이 풀어지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26절입니다.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고난의 감옥에서 주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절망 가운데 주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고난의 옥터를 흔드시고 매인 것을 풀어주시고 닫혔던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시편 119편 54절, 55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들이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야훼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할렐루야. 여러분 아프지 않은 주사가 없습니다. 한 번 어릴 때 주사를 맞은 아이들은 병원에만 가자고 그러면 싫다고 그럽니다. 주사만 보면 웁니다. 그러나 그 아픈 주사가 내 몸에 있는 병균을 죽이고 나를 살려내는 것입니다.

고난의 주사가 아픕니다. 그러나 그 아픔이 내 영혼을 찌르는 그 통증이 내 영혼 속에 들어와 있는 영혼의 악성 바이러스들을 다 죽이고 나를 치료하고 살려내는 놀라운 은혜를 가져온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고난 중에, 절망 중에, 아픔 중에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2. 고난은 축복으로 가는 과정이다

둘째로 고난은 축복으로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 없는 영적 성숙도 없을뿐더러 이 고난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더 나은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로마서 5장 3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고난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입니다. 피한다고 해서 피해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참고 견디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극한 영혼의 고독과 통증을 느끼며 그냥 고난의 시간을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저 눈물의 골짜기에 이르면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아픔 없는 고난이 없습니다. 고난은 아픈 것입니다. 아프지 않은 주사가 어디 있습니까. 다 주사가 아프지요. 그러나 그 고난이 축복입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 중에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119편 84절, 85절입니다.

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나이까 나를 핍박하는 자들을 주께서 언제나 심판하시리이까 주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는 교만한 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팠나이다

얼마나 힘들면 이제 내 인생의 남은 날이 며칠이나 됩니까? 막 너무 고통이 심해서 막 거의 죽게 되었어요. 마음이. 나의 남은 날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내가 너무나 힘듭니다. 나를 물고 뜯고 원수들이 나를 공격해오고 웅덩이를 파고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고난이 그러한 고통이 다가왔다고 할지라도 약속의 말씀을 꼭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악한 자를 심판하시고 우리를 건져주시고 우리를 모든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승리하게 해주시며 우리 앞에 시온의 대로가 펼쳐지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119편 88절입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입의 교훈들을 내가 지키리이다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서 나를 살려내시는 것입니다. 모든 고난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이유 없는 고난이 없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계획이 어디 있는지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잘 참고 견뎌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꿈 많은 소년이었습니다. 사랑받는 아들이었습니다.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거룩한 꿈을 꾸었을 때 형들이 시기 질투하고 미워했습니다. 동생을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심부름 온 그 동생 요셉을 상인에게 노예로 팔아버립니다. 17살 때 이야기입니다. 꿈 많은 소년이 하루아침에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고난의 시간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울면서 형님들 그러지 말라고 그랬는데 형들은 고개를 돌려버렸습니다. 당시에 노예로 팔려간다는 것은 죽음의 길과 같았습니다. 1년 365일 때리고 일 시키고 부려먹다가 병들면 광야에 내다 버려 짐승의 밥이 되어 죽게 하는 것이 그 당시 노예의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노예로 팔려갔어도 원망,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탄식하지 않았습니다. 고난 속에 하나님의 뜻을 찾고 참고 견디고 또 견디고 또 견디고 또 견뎠습니다. 그래서 주인의 인정을 받아가지고 이제 좀 안정되려고 하니까 덜커덕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게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요셉이 감옥에 들어갔어도 누명을 씌운 그 경호 대장 보디발의 부인을 욕하거나 원망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성경 그 어디에도 형들을 원망한 이야기도 없고 누명을 씌운 사람을 원망한 이야기도 없습니다.

억울하고 기가 막힌 일을 당했지만 주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주님의 뜻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그의 마음속에 이미 주님의 거룩한 꿈이 있었기 때문에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 기간이 13년입니다. 그 기간을 잘 견뎌냈던 것입니다.

여러분 억울한 일 당하고 젊은 나이에 13년 참는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린 누구에게 그런 말만 들어도 발끈하고 당장 팔 걷어붙이고 그와 싸우려 하는데 요셉은 그저 억울하게 당하면서도 13년 동안 참고 또 참고 또 참았습니다.

마침내 때가 되어 하나님이 높이시매 애굽의 총리가 된 것입니다. 젊은 소년의 나이에서 13년은 몇십 년 같은 긴긴 세월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 긴 세월을 잘 참고 견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간을 잘 견뎌냈던 것입니다. 여러분 억울한 일 당하고 젊은 나이에 13년을 참는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그런 말만 들어도 발끈하고 당장 팔 걷어붙이고 그와 싸우려 하는데 요셉은 그냥 억울하게 당하면서도 13년 동안 참고 또 참아서 마침내 때가 되어 하나님이 높이시매 애굽의 총리가 된 것입니다.

젊은 소년의 나이에서 13년은 몇십 년과 같이 긴 세월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 긴 세월을 잘 참고 견딘 것입니다. 그런데 그 13년 중에 가장 힘들었던 기간이 마지막 2년입니다.

그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을 때 하루는 바로왕 옆에서 섬기는 높은 관원장 두 명이 들어왔습니다. 한 명은 떡 맡은 관원장, 다른 한 명은 술 맡은 관원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꿈을 꾸었는데 요셉이 해몽을 해보니 술 맡은 관원장은 사람은 살 운명이고 떡 맡은 관원장은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술 맡은 관원장은 자신이 복직되면 바로왕에게 말해서 풀려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요셉의 해몽대로 그는 복직이 되었지만 사람이 화장실 갈 때 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나가는 순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창세기 40장 21절에서 23절입니다.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잊힌 인연. 요셉은 "야 이 밤만 자면 내일 나가겠구나." 밤잠을 못 자고 설렜을 것입니다. 해몽을 해준 사람이 바로왕 옆으로 갔으니 그가 한마디만 해주면 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노예로 잡혔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있는 한 소년을 만났는데 해몽을 잘합니다. 그 사람 살려줘야 합니다." 그 한 마디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까맣게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기다립니다. 아침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아무런 연락이 없습니까?" "연락이 없는데." "아마 오늘 복직해서 바쁜 모양입니다." 다음 날 아침 "연락 없습니까?"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열 달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그 시간이 길게 늦게 느껴졌겠습니까? 그러나 그것도 잘 참고 견뎠습니다. 참고 견디다 마침내 서른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그를 높이십니다. 하나님이 높이시면 낮출 자가 없고 낮추시면 높일 자가 없는 것입니다. 때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41장 38절로 41절입니다.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그가 지낸 그 긴긴 13년의 기간 그 누구도 자기를 돌봐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17살 그가 소년의 때에 어린 청년으로서 애굽에 끌려왔을 때 말도 다르고 풍습도 다른 애굽 문화 가운데 노예로 자라면서 히브리 노예로 붙잡혀왔으니 얼마나 멸시를 당하고 짓밟힘을 당했겠습니까? 사정없이 등에 채찍질이 내리쳐져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그를 불쌍하다고 위로해주고 돌봐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혼자였습니다. 감옥에 내동댕이쳤을 때에도 혼자였습니다. 꿈을 해몽해 준 지 2년이 지났으니까 그전에 또 얼마 정도 감옥에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 수년간을 감옥에서 외롭게 혼자 깊은 고독 속에서 그는 오직 주님 앞에 매달렸던 것입니다.

긴긴 이 고독의 시간이 그의 영혼을 깊이 통찰하게 하고 영적으로 큰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고난 중에 나 홀로의 시간을 갖게 될 때 주님과 깊은 교제를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앞에서 벌거벗은 모습으로 내 자신이 서서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주님의 도우심을 받고 치료받고 위로받고 회복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고독의 밤을 지나며 외로움의 밤을 지나며 슬픔의 밤을 지나며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3. 고난 중 말씀과의 동행은 형통을 가져온다

셋째로 고난 중 말씀과의 동행은 형통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을 극복하는 위대한 능력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은 생명입니다. 능력입니다. 은혜입니다. 빛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구원받아 모세의 인도함을 따라 가나안 입구까지 40년이 걸려서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갑자기 모세를 데려가신 것입니다. 그때까지 모세가 눈이 침침하지도 않고 건강한 모습이었는데 하나님이 모세를 "이제는 너의 할 일을 다 잘 감당했으니 이제는 그만 다 내려놓고 내게로 와라." 그러고 주님이 데려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이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를 데려가셨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허탈감과 충격에 빠졌습니다. "아니 우리가 믿고 의지하고 따랐던 우리 지도자 모세를 데려가면 어떻게 합니까?" 후계자로 모세의 몸종이었던 시종이었던 여호수아를 세웠지만 40년 동안 모세만 바라보았기 때문에 여호수아가 눈에 안 들어 왔을지도 모릅니다. 여호수아 자신도 갑자기 40년을 따라다니던 영적인 거인이요 위대한 지도자였던 모세가 천국에 가시게 되자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가득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때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주님이 말씀을 주십니다. 여호수아 1장 7절 8절입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매 순간순간 말씀의 인도함을 따라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119편 105절은 말씀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인생길이 흑암으로 뒤덮여서 앞이 안 보이는 것 같아도 말씀을 붙잡으면 말씀이 내게 호롱불이 되어서 나의 갈 길을 보여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슬픔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오직 믿고 의지할 것은 주님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그 말씀을 붙잡을 때 그 말씀이 나를 절망에서 건져주고 슬픔에서 위로해주고 모든 어려움을 이기는 위대한 능력을 내게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07절입니다.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야훼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할렐루야! 주의 말씀은 우리를 살립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를 살려 주시고 말씀을 붙잡고 나아갈 때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의 때에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무책임하게 말합니다.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합니다. 그 말을 통해서 내게 큰 상처를 안겨줍니다. 그 말 하나하나에 연연해하지 말고 귀 닫아버리고 주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주의 말씀이 나의 은신처가 되고 나의 방패가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14절입니다.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말씀이 나를 붙들어 주고, 말씀이 나에게 꿈과 소망을 이루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16절입니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어떠한 고난이 어떠한 절망이 어떠한 문제가 어떠한 슬픔이 어떠한 괴로움이 여러분 앞을 가로막고 있다고 할지라도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일어나십시오. 말씀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십시오.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이 말씀 붙잡고 전진해 나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너를 붙들리라. 너를 붙들리라. 이 말씀이 고난 가운데 극한 상처와 절망 괴로움 가운데 있는 나를 살리고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고 모든 어려움을 이기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두 딸을 키웠던 한 엄마가 큰딸을 잃고 다시 말씀 붙잡고 일어나 승리한 홍애경 집사님. 수원 온누리교회 집사님이신데요, 이분 간증으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이분은 음대 교수인 아버지 밑에 태어나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대학 졸업 후에는 드라마 작가로 활동했고, 남편과 결혼하자마자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두 딸을 낳았습니다. 두 딸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기 위해서 사우스베일로 한의대를 졸업해서 한의사로 활동하며 남들이 보기에는 승승장구하고 잘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큰 고난이 찾아온 것입니다.

사랑하는 큰딸이 결혼을 앞두고 말기 암 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2년여 동안 암과 싸우다가 27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엄마로서 더 큰 충격이었던 것은 자기는 세상 성공을 향해 승승장구하고 잘 달려나갔지만 큰딸 제니퍼는 얼마나 주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모든 면에 신앙적인 면에서 부족한 것이 없던 딸이었는데 "어떻게 하나님 왜 저렇게 착한 제니퍼를 데려가셨습니까, 날 데려가셨어야죠." 울부짖어 하나님 앞에 기도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울다 지쳐 쓰러져 있을 때 이와 같은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너를 데려가지 않은 이유를 알고 싶니? 내가 너를 데려갔으면 너는 지옥에 갔을 거야. 그래서 너를 데려갈 수 없었어. 그러면 너는 영원히 제니퍼를 만날 수 없어. 그래서 제니퍼를 먼저 데려온 거야. 그러니까 너도 이제부터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야 해. 그래야 제니퍼를 만날 수 있어."

쾅, 주님이 해머를 때리신 것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름 그대로 그는 이름뿐인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이름뿐인 크리스천. 그래서 미국에서 예수 믿느냐고 물을 때 꼭 물어보는 말이 있습니다. '아 유 본 어게인 크리스천 (Are you born again christian?) 거듭난 사람입니까?'라고 물어보는 겁니다.

본인은 크리스천으로서 교회를 왔다 갔다 하고 무엇하나 남들이 보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진정한 구원의 확신이 없이 세상의 성공을 향해 달려나갔던 그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눈물로 회개하고 모든 것 다 접었고 정리하여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그때부터 바르게 주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을 하는데 말씀으로 출발합니다. 큐티를 하면서 큐티하는 권사님들이 같이 모여서 간증을 나누면서 매일매일 말씀으로 무장을 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은혜를 주시는지 과거의 잘못되었던 자기 모습을 보여주시고 이제는 바로 살 수 있는 인생의 기회를 제시해 주셔서 자신처럼 고난 당한 이웃들 위해 사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올해 1월에 '오늘도 만나를 줍는 여자'라는 제목으로 간증집을 냈습니다. 이 책에서 고백합니다.

"다시는 기뻐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내 마음에 기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다시는 감사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모든 일이 감사했다. … 어떻게 세리 같던 내가 그리스도의 신부를 꿈꿀 수 있었는지, 내 삶에 기적이 일어난 것 같다. 하지만 난 그 이유를 안다. 말씀으로 내 영혼이 소생되었기 때문이다. 말씀은 이렇게 읽으면 읽을수록 놀라운 힘이 있다."

고난 없는 성숙은 없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축복으로 이끌어가는 과정인 것을 잊지 마시고 고난의 과정을 통과하며 철저히 말씀 중심의 신앙으로 변화되어 위대한 하나님의 신앙인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껍데기뿐인 신앙생활 했던 것 용서하여 주옵소서. 원래 교회를 다녔으면서도 구원의 확신도 제대로 없는 채 구원받은 것처럼 착각하고 살았던 사람이 있었다면 회개하고 이 시간 돌이키게 하여 주시고 예수 바로 믿고 남은 인생 하나님의 영광 위해 사는 사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새로운 피조물/조용기목사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장 17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날씨가 싸늘하고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는데 요사이에 밖을 내다보니까 천지가 봄기운으로 가득하고 진달래도 개나리도 활짝 피었습니다. 겨울에는 모든 것이 죽은 것만 같았는데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오니까 온 천지가 부활의 생명으로 가득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실제로 사람으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장차 부활할 수 있는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제 새로운 피조물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예수님과 함께 부활함으로써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인간은 원래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생물을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닮도록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로 28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아담이 죄를 짓기 전에는 왕 같은 존재로서 3차원의 세계를 정복하고 다스리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반역하자 땅을 다스리는 권세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아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던 땅이 저주받은 땅이 되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의 삶에 가시와 엉겅퀴가 가득한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부모 자식 간에도 부자간에도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고 직장과 사업에도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납니다. 아무리 치우고 또 치워도 계속 가시와 엉겅퀴가 되살아나는 저주와 땅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아담은 원래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는데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병들고 고통당하고 결국은 죽음과 병을 얻어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지는 존재가 되고 만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삶에는 절대절망뿐인 것입니다.


2.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러한 절대 절망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훌륭한 생활을 하면 죽어서 좋은데 간다.” 그런 말을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인간의 행위로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이 구원을 받는 길은 예수님 한 분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인류가 절대 절망에 빠져있을 때,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8절에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담 안에서 우리가 다 죽었고 아담 안에서 버림을 당했는데 마지막 아담 예수께서 처음 아담이 가지고 온 죄와 죽음을 다 받으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심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다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를 흘려 우리의 죄를 다 청산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의로운 사람, 거룩한 사람, 치료받은 사람,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 영생 복락을 얻은 사람,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은 사람으로 변화된 생활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할 사람이 없는데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당당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죽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시 산 사람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과 나는 이제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오늘날 우리가 누리게 된 가장 놀라운 복인 것입니다.

또, 우리는 허물의 사함을 받아 거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살면서 허물진 인생을 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히브리서 10장 10절에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허물이 없는 거룩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허물을 다 짊어지시고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허물을 사하시고 거룩한 옷을 입혀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이 사실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심신이 치료를 받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아담 이후로 인간은 다 병들었습니다. 영이 병들고 마음이 병들고 몸이 병들고 가정이 병들고 생활이 병들고 세계가 병들었고 역사가 병들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가 전염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여 일어나며 살상과 피 흘림을 즐거워하고 미움과 분노, 시기와 질투, 원한과 원망이 들어차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가정으로부터 시작해서 사회와 국가와 세계 전체가 가시밭길을 걸어가며 피투성이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병든 세상이 치료받을 곳이 어디 있습니까? 인간이 발견한 정치나 철학이나 과학이나 윤리나 도덕으로 치료함을 받을 수 있나요? 치료함을 받을 수 있다면 오늘날 세상이 이렇게 무섭게 병들어 갈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를 치료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 속에는 무질서나 병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므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그리스도의 완전한 질서가 우리 몸속에 흘러 들어오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근처만 가도 모든 무질서는 질서로 모든 흑암은 광명으로 변화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님만이 우리의 치료자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병들었을 때,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예수님으로부터 치료의 강물이 흘러내려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영적인 병, 마음의 병, 도덕적인 병, 가정의 병, 생활의 병, 모든 병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축복과 형통도 우리 주 예수님 안에서 얻게 된 것입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냥 사는 인생이 아니라 항상 모든 것에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는 인생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의 삶에 고난이 다가올지라도 예수님을 의지하며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에 결국은 그 모든 고난이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간구한다고 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범사에 주님을 모시면 잘되면 좋고, 안 되면 결국 좋게 되지 않느냐고 모든 것이 다 좋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복과 형통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알고 항상 감사하며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에게 부활과 영생을 주시고 천국 시민이 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잠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는 그날에 모두 다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강림하실 때,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남은 우리도 변화되어 주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만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3. 성령님과 함께 사는 삶

셋째로, 십자가에 죽으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은 바로 성령을 보내어 주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실 뿐 아니라 오순절 날에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속에 강림하셨습니다. 우리 마음이 바로 성령이 거하는 성전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예수님께서는 여러분과 내 안에, 또 내가 예수님 안에 함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손으로 만질 수가 없고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성령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우리의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을 통해 임하시기 일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을 잘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옛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와 계신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우리의 삶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시고 우리에게 오중복음이라는 놀라운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선물을 받아 누리게 하는 것이 바로 4차원의 영성인 것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의로운 옷을 입은 사람이다. 나는 거룩한 옷을 입었다. 나는 치료의 옷을 입었다. 나는 축복과 형통의 옷을 입었다. 나는 부활 영생의 옷을 입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입술의 말로써 고백하면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생활에 새로운 변화가 다가오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대조동 천막교회에서 목회하다가 서대문으로 옮긴 지 4개월이 지났을 때, 순복음부흥관이 완공되었는데 그때 성전 좌석이 1,500석이었습니다. 첫날 기념예배에 많은 손님들이 와서 축하를 해 주고 그날 저녁에 열린 부흥성회에는 더 많은 성도들이 몰려와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성회에서 걷지 못하는 사람이 일어나 걷게 되는 수많은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첫 주일예배 인도하는데 당시 성도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저에게는 1,500석의 좌석이 너무나 거대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성도들한테 앞쪽으로 앉으라고 하는데 그 뒤로는 빈 좌석이 너무 많아서 마치 성전이 텅 비어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예배에 참석한 할머니와 노숙자들 중에는 설교 내내 잠을 자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니까 제가 더 힘이 빠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 날부터 저는 전단지를 만들어서 노방전도도 하고 유명한 부흥강사를 초청해서 부흥회를 열어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교회는 부흥되지 않고 제 마음이 점점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토미 리드 목사님과 그 아들을 초청해서 부흥회를 가졌는데 부흥회 마지막 날, 토미 리드 목사님의 아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 때 제가 아직 전도사였을 때인데 그분이 저에게 말하기를 “조 전도사님, 제가 간밤에 전도사님에 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제 꿈에 수천, 수만의 군중들이 모여서 누군가 자신들을 이끌어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조 전도사님이 그들 앞에 나서자 모두들 기뻐서 전도사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갔습니다. 앞으로 전도사님께서 수천, 수만의 양을 인도하시게 될 것인가 보게 됩니다.” 그렇게 저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가 돌아가고 난 후에, 제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힘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제 주님만 의지해서 처음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이 교회를 이끌어 주시옵소서. 저는 순종하며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하나님께서 저의 마음속에 “네가 수천, 수만의 양을 인도하리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마음속에 꿈꾸면서 그날부터 하루 종일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상황이 금방 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빈 좌석들이 많았고 강단에 서서 빈 좌석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서 차라리 눈을 감고 설교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는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고 곧 성전을 가득 채울 성도들을 제 마음속에 그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할렐루야, 오늘 이 성전을 가득 메운 성도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지금 너무 많은 분들이 오셔서 자리가 부족합니다. 불편하시더라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인사말씀을 한 후에 온몸이 땀에 젖을 정도로 최선을 다하여 설교 했습니다. 그러자 정말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매주 20명에서 30명 이상이 새신자로 등록해 늘어가더니 1년이 되기도 전에 재적 교인이 2천 명을 넘어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꿈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꿈을 가지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바라보고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그 믿음대로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입술의 말이 중요한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야훼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루 동안 생활할 때 짜증나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이렇게 말을 하십시오. “나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나는 죄 사함을 받고 의롭게 되었다. 나는 치료를 받고 건강하다.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고 형통함을 얻었다.” 이것을 자꾸 말하십시오.

말이라는 것은 속에 있을 때는 내가 컨트롤합니다. 그러나 일단 입 밖으로 나오면 그 말이 여러분의 삶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여러분이 말한 대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여러 가지 말을 하지, 그 말이 다 나가서 에너지가 되어서 나중에는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을 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찬 미래를 꿈꿀 수 있습니다. 생각을 통하여 꿈을 통하여 믿음을 통하여 말을 통하여 우리는 새로운 내일을 앙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옛사람이 아닙니다. 이제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 속에 사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 모습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 자신이 변화된 축복받은 모습을 마음속에 사진으로 찍어서 걸어놓고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믿고 “나는 이렇게 되었다.”고 말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여러분의 삶이 날마다 날마다 새로워질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 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시여, 하나님의 자녀들이 병들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앙망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모인 장소에서 손을 아픈데 얹고 주님을 바라보고 있사오니 주님 그 바라보는 시력을 쫓아서 각 사람 속에서 창조적인 능력이 나타나게 하여 주옵소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는 불의와 추악한 짐승 같은 이 원수 마귀야,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하나님 아버지여, 모든 짐승 같은 이 더러운 마귀를 물리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이 넘쳐나게 도와주옵소서. 새로운 생명이 가득하게 도와주옵소서. 좋은 일이 일어나게 도와주옵소서. 기적이 일어나게 도와주옵소서.

이제 좋은 일이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날지어다! 하나님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게 된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미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장대 위의 놋뱀/이영훈목사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민 21:4~9)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서 성전에 나와 예배드리지 못하고 있는 처소에서 영상을 통하여 예배드리는 모든 분들에게 또 tv 생중계를 통하여 예배드리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코로나-19사태가 이렇게 장기화될 것은 아무도 예측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더욱 확산되는 지금 분위기입니다. 다행히 우리 대한민국이 이제 확진자가 3자리에서 2자리로 내려가고 있는데 50명 미만으로 내려가야 사회적 거리 두기나 이런 여러 지침들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기도할 때 하나님 코로나-19를 속히 종식 시켜 주셔서 우리가 일상적인 생활을 회복할 수 있도록 특별히 교회에서 예배가 회복될 수 있도록 주님 은혜 내려 주옵소서.

또 한국의 코로나-19 확산의 주범이 된 신천지가 이번에 완전히 해체되게 하여 주셔서 한국교회를 무너뜨리고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에 혼란을 준 이단, 사이비들이 이 땅에 발 붙이지 못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다 같이 한 번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 412장 (통:469) :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 응답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곧 코로나-19가 종식되고 신천지 이단과 각종 사이비, 이단들은 이 땅에서 해체되어 사라지고 경제가 회복되고 모든 교회가 영적으로 부흥하고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되는 날이 곧 다가올 줄로 믿습니다. 주님 홀로 영광 받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은 민수기 21장 4절~9절의 말씀을 가지고 "장대 위의 놋뱀"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 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장대 위의 놋뱀" "장대 위의 놋뱀"

오늘이 종려 주일입니다. 예수님의 3년 반 공생애 사역 가운데 가장 소중한 마지막 일주일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주일날 주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모든 백성이 나와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겉옷을 펴서 길에 깔며 주님을 환영했기 때문에 종려 주일이라 이렇게도 부릅니다.

월요일 날 다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의 모든 장사꾼을 내쫓으시고 성전을 정결케 하시고 화요일 날에는 유대교 지도자들과 함께 많은 논쟁을 하십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하든지 문제를 만들어서 공경에 빠뜨리려고 하는 저들과 변론을 하시고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세에 될 일을 예언하셨습니다.

수요일 날 특별히 주님이 하신 일이 없고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한 여인이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부은 사건이 나옵니다. 목요일 날은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고 다락방에서 저들에게 말씀을 전하시고 그 후에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올라가십니다.

금요일에 잡히셔서 금요일 날 새벽 내내 이곳 저곳을 불려 다니시면서 심문을 받으시고 아침 여섯 시에 사형 언도를 받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 금요일 날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셔서 오후 3시에 운명하십니다. 그래서 금요일을 성금요일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영생의 축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고난은 축복의 도구요, 변장된 축복입니다. 십자가 고난이 있었기 때문에 부활의 은혜가 임했고 예수 믿는 자들에게 영생의 축복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온 인류 구원의 역사가 완성된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케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부모님들이 자녀가 잘되는 것을 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잘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살아가는 믿음의 자녀들을 복 주시고 그들의 삶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불순종하고 원망, 불평하며 잘못된 길로 갈 때 그들을 징계하십니다. 징계와 고난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요, 축복의 도구인 줄로 믿습니다.

1. 원망 불평하는 이스라엘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종살이하다가 애굽에서 놓여남을 받았는데 그들의 40년 광야 생활은 원망과 불평의 연속이었습니다. 먼저 원망과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민수기 21장 4절~5절입니다.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이 호르산을 거쳐서 가나안 입구인 모압 평지로 가는 길에 이 왕의 대로라고 하는 넓고 편한 좋은 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역을 다스리고 있던 에돔 족속들이 "우리 땅을 못 지나간다." 그들의 진입을 막는 바람에 그 옆의 홍해 길을 빙 돌아서 험하고 먼 길을 가야만 했습니다.

고된 여정에 힘들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왜 우리를 그냥 애굽에서 종살이하게 내버려두지, 굳이 애굽에서 우리를 해방 시켜가지고 이 광야에 와서 고통 가운데 죽게 하는가. 마땅히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고 하찮은 음식밖에 없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 필요할 때마다 먹을 것을 주시고 마실 물도 주시고 그들의 옷, 신발이 해어지지 않게 해주시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뜨거운 햇볕을 가려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의 추운 몸을 따뜻하게 해주시며 그들의 길을 인도해 주셨건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지 아니하고 조금 자기들이 불편하고 어려움을 당했을 때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았던 것입니다.

그들의 광야 40년은 원망과 불평의 연속이었습니다. 성경 민수기에 특별히 불평하는 장면이 많이 나와서 특별히 민수기를 불평기라 이렇게 부르기도 합니다. 430년 동안이나 그들의 민족관이 말살될 정도로 정말로 인권을 유린당하며, 짓밟히며 노예 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지 아니하고 사사건건 조금만 불편한 일이 생기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우리 예수 믿는 우리도 그들과 다를 것이 없는 삶을 살아오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주님의 그 놀라운 구원의 은혜에 감사, 감격하며 살아도 부족한 우리가 너무나 쉽게 불평하고 원망하고 부정적인 말을 쏟아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놀라운 은혜, 건강의 축복, 가정의 축복. 또 학생들은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좋은 교육 환경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사업을 할 수 있고 또 내게 재능을 주셔서 그 재능을 주신 걸 가지고 내가 이렇게 사회를 위해서 아름답게 헌신하고 쓰임 받을 수 있게 되고 이 모든 것이 다 주님의 은혜인데 모든 것이 다 주님의 은혜인데.

교회에 나와서 기쁨과 감사로 예배드려도 부족할 우리들의 모습이 형식적으로 습관적으로 되고 나서 딱 코로나-19가 확산되고 난 후에 이제는 함께 모여 예배드릴 수 있는 그러한 여건이 되지 않으니까 이제야 "아이고, 참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그렇게 좋은 것이고 은혜가 넘쳐나는 것을 예전에는 미처 몰랐구나." 많은 성도님들이 이런 얘기를 합니다. "언제 교회 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날이 다가올지를 너무나 사모합니다." 항상 사람들이 가득 찬 곳에 떠밀려 들어가고 떠밀려 나올 때는 그 은혜에 감사하지 아니하고 감격의 예배를 드리지 못했던 것 너무나 죄송하다고.

성경에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신 말씀은 그 은혜를 잊지 말아라. 잊지 말아라. 시편 103편 2절입니다.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은혜를 잊지 않는 방법은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이 우리를 주님의 풍성한 은혜 가운데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찬양할 수 있고 찬양할 수 있는 사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 앞에 죄입니다. 왜?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해야 옳게 주님 앞에 바로 서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고 그것이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고 그러한 자들에게 내가 구원을 베푼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범사에라는 말을 그 앞에 조건부로 달아놓았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려움이 다가와도, 문제가 다가와도, 때때로 내 사업이 좀 안되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다가와도, 때때로 내가 몸이 아픈 경우가 생겨도 그래도 무조건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생겨서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자녀가 좋은 대학 갔다고 감사할 수 있고 사업이 잘돼서 감사할 수 있고 그러한 감사가 아니라 그건 당연한 감사고 고난 중에도 어려움 중에도 넘치는 감사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에서 넘치는 감사와 찬양으로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호흡이 다하는 그날까지 우리는 감사의 제사를 주님 앞에 드려야 합니다. 시편 150편 6절은 말씀합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야훼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2. 징계하시는 하나님

원망과 불평을 할 때 하나님의 징계가 임합니다. 징계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민수기 21장 6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야훼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원망,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뱀을 보내서 물게 하셨습니다. 독사들이 와서 무니 수많은 불평분자들이 온몸이 퉁퉁 붓고 고통 가운데 죽어갔습니다.

우리에게 임하는 징계는 사실 우리가 잘못해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것입니다. 은혜에 감사하지 아니하고 사순절에 원망 불평하고 불순종하고 남을 물고 뜯고 부정적으로 말하고 주님 보시기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았기 때문에 우리가 징계의 불뱀에 물린 것입니다. 이 신천지의 불뱀에 물린 것입니다. 교회가 감사가 사라지니까 신천지의 불뱀을 들어서 성도들을 물어서 독이 퍼지게 해서 그들의 영혼을 지옥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징계를 당할 때 회개해야 합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고난 중에도 주님이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두면 잘못되니까 바로 주님 앞에 하나님 인자하신 모습으로 쓰임 받게 하기 위해서 징계를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5절, 6절입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징계하신 것은 그들을 버리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을 돌이키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을 버리고 주님 앞에 돌아 나와야 합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원망과 불평은 우리를 파멸로 이끕니다. 죄의 모습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 풍성한 은혜 가운데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축복을 망각하고 말씀에 불순종하고 말씀을 의심하고 그래서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음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그 이후로 인류의 역사 가운데 죄가 뿌리를 내리게 되어서 모든 사람들이 태어날 때 죄의 DNA를 갖고 태어납니다. 그것을 원죄라고 합니다. 원죄. 날 때부터 갖고 태어난 죄. 그리고 태어난 다음 우리가 짓는 죄를 자범죄라고 합니다. 자기가 스스로 죄를 행하는 것.

그래서 원죄 가운데 태어나서 자범죄를 짓고 사는 모든 사람이 철저히 부정적입니다. 철저히 자기중심적입니다. 늘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에 대신 앉아서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쉽게 원망하고 불평하고 분노하고 미워하고 다투고 남을 모함하고 상처 입히고 하는 그런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 순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하실 때 우리의 원죄를 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원죄로 태어난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고 우리는 새 사람으로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육신이 입고 있는 동안 이 죄의 DNA가 남아있어서 우리를 자꾸 죄로 이끌어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와 싸워야 합니다. 늘 말씀 붙잡고 기도하며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 죄와 싸워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권능으로 죄를 물리쳐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은 말씀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코로나-19를 통과하면서 모든 성도님들이 있는 곳에서 다시 성령으로 재충만 받게되기를 바랍니다. 또는 성령의 역사가 임하여서 방언으로 기도하고 주님 앞에 열정적으로 부르짖으며 나아가서 믿지 않는 영혼들을 주님께 인도해서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 주님의 일꾼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부정적인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징계를 내리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주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거룩하고 정결한 모습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우리를 때리시는 것입니다. 징계와 고난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축복의 도구인 것입니다. 환난을 잘 참고 견디고 다듬어지면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3절과 4절은 말씀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으로 온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아 십자가에 달려 고통 가운데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놀라운 은혜에 대해서 한 평생 감사하고 찬양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징계를 당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잘못을 회개하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3. 모세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모세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뱀 물려 죽어가면서 그제서야 자신들이 습관적으로 하던 원망과 불평이 이와 같은 하나님의 징계를 가져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말합니다. 빨리 하나님께 기도드려서 이 불뱀이 우리에게 사라지게 해달라고. 민수기 21장 7절입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야훼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야훼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저들이 이 말씀을 보면 저들의 죄를 알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원망 불평했습니다. 저희를 용서해주시고 빨리 하나님께 기도해서 이 불뱀이 떠나가고 이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회개는 빨라야 합니다. 회개가 빠를 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에게 신속히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엎드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할 때 주님의 긍휼하심이 임했습니다. 응답이 다가왔습니다. 민수기 21장 8절 9절에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불뱀 모양으로 놋뱀을 만들어서 장대 높이 달아라. 그리고 그 장대 높이 달린 놋뱀을 쳐다보면 살 것이다." 그래서 놋뱀을 만들어 높이 장대에 달고 백성들에게 외쳤습니다. "지금 놋뱀을 바라보라. 하나님 말씀하시기를 저 장대에 달린 놋뱀을 바라보는 자는 그 순간 고침을 받고 불뱀이 떠난다고 말씀하셨다." 불평하며 죽어가던 저들이 고개를 들어 장대에 달린 놋뱀을 바라보는 순간 몸에서 독이 싹 빠져나가고 불뱀이 싹 떠나가고 몸에 치료와 회복이 임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그 몸이 퉁퉁 부어 죽어가며 뒹굴면서도 내가 지금 아파죽겠는데 약도 바르지 않고 고개를 들어 쳐다보라고 하냐고 그러면서도 불평한 사람들은 불뱀에 물려 독이 온몸에 퍼져 퉁퉁 부은 채로 죽어갔던 것입니다. 이 뒤틀려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에게 있는 것은 멸망밖에 없습니다. 기다리고 있는 것은 멸망밖에 없습니다. 불쌍한 모습으로 끝까지 회개치 않는 자들은 멸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불뱀에 물려 고통당하며 신음하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죄지은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감사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찬양하지 아니하고 늘 부정적으로 비판만 하고 원망 불평하는 사람들은 불뱀에 물려 징계를 받게 되었다는 것을 잊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그러나 불뱀에 물린 것은 감사해야 돼요. 왜? 하나님이 사랑하시니까 불뱀에 물린 것입니다. 아예 버린 자식은 불뱀에 물리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징계를 받을 때 심판을 받을 때 하나님 앞에 우린 감사해야 합니다. "내가 고난당한 것은 그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더 뜨겁게 사랑하지 못한 것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최선을 다해서 주님을 섬기지 못한 것, 더 겸손하지 못한 것, 열심히 복음을 전하지 못한 것 주님 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코로나-19를 통과하면서 우리 모두가 회개해야 합니다. "욕심과 탐욕에 사로잡혀서 소외된 이웃을 돌보고 사랑을 실천하지 못한 것 주님 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늘 주님만 바라보고 살아야 되는데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세상을 바라보고 내 자신을 바라보고 살았던 것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4, 15절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주님,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며 살지 못한 것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한 주간이 고난주간입니다. 이 고난주간을 지나가면서 나를 위해 몸 버려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여러분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는 순간 불뱀에 물렸던 우리가 그 독에서 놓여남을 받고 치료받으며 우리를 물고 있던 불뱀들이 떠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이 고난주간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을 변화되어 승리자의 삶을 살아가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은 권면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할렐루야! 코로나-19가 완전히 우리 일상을 바꿔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코로나-19를 통과하면서 너도나도 힘들고 불편하고 어렵지만, 이 중에서도 감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감사하는 사람들에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임하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지난 3월 21일 날, 국민일보에 '나는 코로나-19 확진자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소개되었습니다. 글 쓴 사람은 여섯 살 난 아이와 백일 갓 지난 두 아이를 둔 엄마인데,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음압병실에 격리 중에 이와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1.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렸음에도 증상이 없음에 감사하고, 저랑 남편이 양성임에도 우리와 가장 가까이 붙어 지낸 아이들이 음성임에 감사합니다.

2. 갑자기 벌어진 긴급 상황에서도 친정엄마가 아이들을 돌봐주실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3. 격리 상태로 입원할 수 있는 병실이 있음에 감사합니다.

4. 잠들어있던 새벽 시간에도 지역사회 감염을 막기 위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빠르게 확인한 보건소 직원분들의 노고에 감사합니다.

5. 어디가 불편하진 않은지 매번 먼저 나서서 따뜻하게 챙겨주는 의료진, 의사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 병원시설팀, 영양실 분들께 정말 감사합니다.

6. 병원에 격리됐다는 소식에 영양제와 책들을 병원으로 보내주려는 친구들의 마음에 감사합니다.

7. 아이의 유치원에 연락하여 내가 확진자임을 밝혔음에도 따뜻한 응원의 연락을 남겨준 엄마들에게 감사합니다.

8. 우리를 모르는 익명의 사람들이 랜선으로, 아이들과 갑작스레 떨어진 마음을 공감하며 쾌차하라는 응원의 댓글을 남겨주어서 감사합니다.

9. 가족의 소중함, 그리고 평온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코로나-19 확진 중에 이렇게 감사했어요. 그 감사의 결과로 완전히 완쾌가 되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할렐루야.

이 정도 믿음은 되어야죠.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조금 어렵다고 불평하고 조금 무시당했다고 부평하고 섭섭해하고 상처 받았다 그러고, 조금 뭐가 내 뜻대로 안 된다고 분노하고 다투고 이건 아닙니다. 이러한 초보적인 신앙으로 살면 안 됩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제는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전진해나가는 주님의 위대한 일꾼들이 다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 속에 불평을 제거하시려고 때때로 징계의 불 뱀을 보내시는데 불 뱀에 물렸더라도 즉시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한평생 주님을 바라보며 승리하는 놀라운 축복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늘 주님 안에서 복된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은혜를 받고도 원망과 불평을 해서 부정적으로 살았기 때문에 불뱀에 물렸습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 회개하고 돌이켜 주님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원하오니, 주님 우리들의 삶을 긍휼히 여겨주시고 보살펴 주시고 은혜 가운데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생기가 넘치는 삶/조용기목사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중략)…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에베소서 6장 10~17절)

사람이 기가 있어야 사람이 기쁘고 행복합니다. 기가 빠진 사람은 기름이 떨어진 자동차 같아서 모양은 근사해도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생기가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1. 귀신을 쫓아내고 승리하는 삶

첫째로, 우리는 사탄을 대적하고 귀신을 쫓아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21세기에 무슨 귀신이 있느냐?” 말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실상은 부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귀신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배후에서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의 개인과 가정과 생활을 파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으며 먹을 것과 모든 것이 있는 에덴의 낙원을 지으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는데 누가 아담과 하와를 파멸시켰습니까? 그 배후에 와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고 악한 영향을 미친 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마귀였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첫째 아들인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무엇이 형이 아우를 죽일 만큼 마음에 속에 불붙는 질투심을 일으킨 것입니까? 성경은 밝히 말씀하기를 ‘가인이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다(요한일서 3장 12절)’라고 말한 것입니다. 악한 원수 마귀가 가인에게 들어가서 불같은 질투심을 일으키매, 가인이 그 아우를 쳐서 죽이는 비극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사울왕에게 무엇이 왔기에 그 인격이 그렇게 변화되고 만 것일까요? 사울왕은 이스라엘의 초대왕이었는데 그가 하나님을 반역하자 악신이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그러자 그의 인격이 완전히 일그러져서 흉악하고 난폭한 사람으로 바뀐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그냥 판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마귀가 그 속에 들어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유다가 은 삼십을 받고 예수를 팔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귀신은 사람의 눈에는 안 보이지만 배후에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귀와 귀신들은 하나님 없는 세상풍속을 따르도록 사람들에게 악한 영향을 미치고 육체의 정욕과 마음의 탐욕을 따라서 하나님 없는 영원한 파멸로 가도록 그 배후에서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6장 11절로 12절에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여 배후에서 역사하는 마귀를 대적하고 귀신을 쫓아내어야만 우리가 생기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가는 곳마다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보면 예수님은 복음 증거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의 한 회당에서 가르치고 있을 때,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크게 소리를 지르자 예수님께서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하고 꾸짖으시니 귀신이 즉시 그 사람에게서 쫓겨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복음증거를 시작할 때부터 마귀의 눌림을 받아 병든 자와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시고 복음의 능력을 천하에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어느 곳에 가시나 천국 복음을 증거 하시고 귀신을 내어 쫓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도 천국 복음을 전파할 때, 귀신을 내어 쫓으라고 말씀하셨고 70인의 제자에게도 귀신을 내어 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활 승천하면서 최후에 가장 중요한 명령을 남기실 때도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7~18)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만일 귀신의 활동이 중요하지 않다면 왜 예수께서 그 일생을 통해서 집요하게 귀신을 쫓아내시고 마지막 남긴 말 중에도 귀신을 쫓아내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생기 넘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귀신을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 한 분은 그 아버지가 무당이 굿하는 날짜를 잡아주는 일을 했었는데 그 영향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눌리고 질병이 끊이질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성도님은 결혼을 한 후에도 엄청난 돈을 사기당하고 화병으로 정신의 치료를 받아야 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고 환청이 들리고 잠도 못 자고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어서 몸은 약해질 대로 약해지고 온몸에 침을 맞아 한약만 380첩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집터가 안 좋다는 말에 4번이나 이사를 하고 굿도 수차례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어 그야말로 인생을 포기하는 그런 상황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우리 교회 집사님들이 이분을 전도해서 교회로 데리고 온 것입니다. 정신이 혼미해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로 성전에 들어와서 누워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제가 신유기도시간에 갑자기 “오늘 이 시간, 온갖 귀신이 들린 30대 여인을 하나님이 고쳐 주십니다.” 그렇게 선포했다는 것입니다.

그 부인이 간증하기를 몸이 너무 아프니까 설교는 귀에 하나도 안 들어오는데 그 말씀만은 귀에 분명히 음성으로 들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날부터 기력이 회복되기 시작해서 혼자서 일어설 수 있게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상태가 좋아져서 두통과 여러 가지 질병들이 6개월 만에 전부 다 고침 받았다고 간증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마귀를 대적하고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을 우리 속에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이 예수님이 여러분 속에 지금 와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 속에 계시기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를 단호하게 대적하면 마귀는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물러 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2. 성령으로 충만한 삶

둘째로, 우리가 생기 넘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개인과 가정, 사회와 국가,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고 주님 앞에 나아와서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문을 여시고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창조적인 능력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절에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고 말합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성령께서 운행하시자 어두움은 빛으로 무질서는 질서로 죽음은 생명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오늘날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 사회, 국가, 세계가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 할지라도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하면 성령께서 혼돈과 흑암이 가득한 곳에 운행하셔서 문제가 해결되고 변화와 창조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지만 이 동일하신 그리스도께서의 권세는 오늘날 성령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요 예수님의 영으로 오늘날은 성령께서 주도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역사하는 곳에 놀라운 변화와 창조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우리 교회 성도님의 자녀가 코가 잔뜩 막혀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큰 병원에 가서 정밀 진단을 받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큰 병원에서 검사를 했는데 횡문근육종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이 병은 당시에는 원인도 치료 방법도 어떠한 것도 소용이 없는 희귀병이었습니다.

담당 의사가 암이 말기라서 수술 받고도 방법이 없는데 수술을 하려면 얼굴의 반 이상을 절개해서 암 덩어리를 도려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수술 후에도 5년 이상을 살기가 힘들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 어머니가 얼마나 낙심이 되었겠습니까? 하지만 이 어머니는 사탄이 주는 부정적 생각을 몰아내고 바라봄의 법칙을 적용해서 건강한 자녀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기도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자녀가 수술 후에 항암치료를 받는데 방사선 치료로 몸이 너무나 약해져 응급실로 주로 실려 가기가 일쑤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머니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의사가 외출을 허락하지 않으니까 아이가 늘 착용하고 있는 마스크를 가지고 저에게 안수기도를 받으러 온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마스크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해 주었는데 그 어머니가 마스크를 가지고 가서 아이에게 씌워주고 어머니가 기도할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완치는커녕 얼마 살지도 못한다던 아이가 암 수치가 완전히 정상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에 죽음의 그림자가 가득할지라도 성령께서 오셔서 운행하시면 치료와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영이시기 때문에 성령이 오시면 생기가 넘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가득한 삶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간절히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마 7: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령 충만을 위해서 한 시간도 좋고 두 시간도 좋고 세 시간도 좋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하루에 한 시간 이상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누구를 불문하고 하루에 한 시간 이상 집중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때, 성령의 충만함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를 왔다 갔다 해도 내가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깊은 기도의 교제가 없으면 성령이 내 마음속에 충만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같이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이상, 아침 새벽 일찍 일어나서 기도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마음속에 공허가 말할 수 없습니다.

그 날 나와서 무슨 일을 해도 일이 잘 안되고 화가 나는 일만 자꾸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에 한 시간 반 내지 두 시간 이상, 주님께 고할 것을 고하고 하나님과 대화를 하고 하나님을 먼저 섬기고 나면 마음에 성령이 충만하고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그런 날은 어떤 일을 당해도 하나님께서 그 일을 능히 해결할 수 있는 힘과 능력과 지혜와 총명을 주시기 때문에 생활에 생기가 넘쳐나는 것입니다.


3.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

셋째로, 우리가 생기가 넘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령의 인도함과 도움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4차원의 성령께서 3차원의 세계에 역사하시면 우리 삶에 변화와 창조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우리에게 꿈과 비전을 주십니다. 사람은 꿈이 있어야 삽니다. 아무리 형편이 나빠도 마음이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지라도 꿈을 가지고 있어야 성령께서 그 꿈을 통해서 운행하시고 꿈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또,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장애물이라 할지라도 성령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장애물을 넉넉히 뛰어넘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성령님은 우리 입술의 말을 통해 우리 삶에 변화와 창조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 11: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말 한마디가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가를 알아야만 합니다.

말은 인간과 인간과의 대화의 광장입니다. 그뿐 아니라 말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대화의 광장이며 인간과 마귀와 귀신들과의 대화의 광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말을 하면 하나님 같이 계시고 귀신이 좋아하는 말을 하면 귀신이 들어옵니다.

여러분의 말로써 귀신이 나가기도 하고 들어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말로써 하나님이 찾아오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하나님 중심, 예수님 중심, 십자가 대속 중심의 말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과 내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성령께서 우리 입술의 말을 따라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보혜사로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공기가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것같이 4차원의 영이신 성령께서 3차원의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떠나지 않고 영원히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혼자가 아닙니다. 오늘 여러분과 나는 고아와 같이 버림을 받지 않았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 연약함을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날마다 연약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려고 하는데 미움이 생겨나고 평안하려고 하는데 불안과 두려움이 다가오고 믿음을 가지려고 하는데 마음의 의심이 생깁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는 우리를 도와주시는 성령님이 계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의지하고 기도하면 성령께서 미움을 사랑으로 불안을 평안으로 의심을 믿음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인도함과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셔야 우리가 삶에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관차와 같습니다.

옛날에 부산역에 가면 화물을 싣고 이동하는 화차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화차가 짐을 잔뜩 싣고 철로에 서 있는데 화차는 혼자서는 꼼짝도 못합니다. 어떤 화차는 3일, 어떤 화차는 1주일, 어떤 화차는 한 달도 움직이지 못하고 마냥 철로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차가 언제 움직이느냐? 기관차가 와서 덜커덩하고 연결이 되고 기관차가 “뿌웅~”하고 앞으로 나가면 화차들이 그 뒤를 줄줄줄 줄줄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때 제가 마음속에 깊이 느낀 것은 ‘아, 기관차가 없으면 화차는 꼼짝도 못하는구나.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많이 싣고 있어도 기관차가 없으면 움직일 수가 없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오늘날 성령의 역사가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화차와 같아서 우리의 힘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영특한 사람이라도 혼자서는 아무도 일도 할 수 없어요. 보배를 잔뜩 싣고 있어도 그냥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관차처럼 성령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면 우리가 앞으로 힘차게 달려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성령이 이끌어 주셔야 기도도 하고 전도도 하고 복음증거도 하고 사랑의 역사도 베풀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세계적인 교회로 성장하게 된 것도 불광동 천막교회 시절부터 성령의 기관차에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성령께서 이끌어 주셨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힘차게 달려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연약하고 힘이 없어도 성령께 연결되어 있으면 성령께서 여러분의 삶을 이끌어 주시고 아름답게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는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지식이 있고 감정이 있고 의지가 있고 인격이신 것입니다.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성령은 바람과 같이 우리와 같이 계시는 인격자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격이신 성령님을 늘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님, 인정합니다. 환영합니다. 모셔 들입니다. 의지합니다. 보혜사 성령님이시여, 감사합니다. 저를 이끌어 주옵소서.”하고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교회의 총사령관이시고 우리는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역에 부름을 받은 머슴들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성령님의 뜻을 받들어 일해야 됩니다. 내 맘대로 하겠다고 오늘은 동쪽 밭으로 가고 다음은 서쪽 밭으로 가리라 이것은 안 되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성령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셔서 우리 삶에 날마다 생기가 넘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그리고 보혜사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하십시오. 우리는 이러한 간단한 영적 운동을 통해서 신앙의 생기가 살아나고 빛난 성도의 모습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후로 여러분 모두가 성령을 의지함으로써, 생활에 변화와 창조를 경험하고, 날마다 생기 넘치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기 도>

하나님 아버지여, 당신의 자녀들이 교회당에는 못 오지만은 자녀들이 사는 집에 마음을 다해서 아버지 하나님을 모시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다 안수하고 한 사람도 남김없이 낫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희 원수 마귀는 오늘 이 시간에 떠나가라! 떠나가라! 떠나가라! 하나님 아버지, 죽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천지를 지으신 예수님이요, 천지를 재창조하시는 예수님이요, 우리 모두 사람들을 살리는 하나님이시니 예수님을 따라서 기적을 우리 집에 베풀어 주시옵소서.

영혼이 잘 되게 하소서. 범사가 잘 되게 하소서. 강건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오늘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 나타나고 기적이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적이 일어나라! 기적이 일어나라! 기적이 나타나라! 하나님 감사합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행복과 기쁨을 마음속에 허락해 주셨습니다. 마귀들을 내어 쫓아주셨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감사하여 기도드립니다. 아멘.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이영훈목사

<말씀봉독>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계 5:7~12)

<등단 후 멘트>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 하나님 주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코로나-19가 속히 종식 되어지게 하여 주시고 이 땅에 신천지 이단이 이번 기회에 완전히 뿌리 뽑혀서 더이상 사회에 혼란과 교회에 분열을 가져오지 않고 가정 파괴를 가져오지 않도록 주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있는 처소에서 함께 마음을 모아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 412장 (통:469) :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첫사랑의 감격을 잃어버리고 기쁨과 감사가 없이 형식적으로, 습관적으로 신앙생활을 했던 저희의 모습을 용서하여 주시고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하여 주님 교회에 나오지 못하고 있는 처소에서 예배드리는 저희를 불쌍히 보시사 예배가 회복되게 하여 주시고 저들의 첫사랑의 신앙이 회복 되게 하여 주셔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모여 주님을 찬양하는 그날이 속히 다가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신천지 이단을 뿌리 뽑아 주시고 주님 그곳에 속아서 들어간 많은 형제, 자매들을 긍휼히 보시사 돌아 나와 가정으로, 교회로 복귀하게 하여 주셔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주님 은혜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요한계시록 5장 7절에서 12절 말씀 가지고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이 길지만 한 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약 1,600년에 걸쳐서 40여 명의 저자들이 각기 다른 환경에서 기록한 것입니다. 그냥 기록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성경을 기록했는데 이 성경 66권의 주제는 단 하나입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구약성경은 앞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 신약 성경은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대부분의 예언들은 역사 가운데 다 이루어졌는데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은 아직 성취가 되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 말세에 되어질 일과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모든 이단이 이 요한계시록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해서 교리를 만들고 이단 집단을 만들어서 그들의 교주를 신격화하고 다시 오실 재림주로 믿고 섬기게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을 미혹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이 구세주가 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사람인 것입니다. 유한한 존재인 것입니다. 사람이 재림주가 될 수도 없고 사람이 메시아가 될 수도 없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에 대신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든 이단의 특징은 그들이 따르는 교주를 신격화하고 재림주로 믿고 있다고 하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이단에 빠지지 않도록 철저히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살피고 신앙을 무장해서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 높이고 예수님만 닮아가고 예수님만 섬기고 예수님만 전하는 귀한 하나님의 일꾼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의 기도

오늘 성경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의 기도,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의 기도에 대하여 말씀을 합니다. 5장 7절과 8절입니다.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 환상 가운데 천국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천국의 모습이 보이는데 그 한 가운데 어린양인 예수 그리스도가 많은 천사들과 무리들 앞에 찬양을 받고 계셨습니다.

예수님 앞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가장 높은 천사장들이 네 생물의 모습으로 우리 주님을 찬양하고 있었고 모든 성도를 대표하는 24장로가 엎드려 주님을 경배하는데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갖고 있었습니다.해석하기를 24장로는 구약의 12지파와 신약의 12사도를 상징하면서 전 믿는 사람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에 성막을 짓게 하시고 그 가운데 임재하셨습니다. 성막은 크게 둘로 나누어졌는데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와 또 금 향로와 진설병 상, 일곱 촛대가 있는 성소로 나누어집니다. 여기 금 향로에서 계속 향을 피워올렸습니다. 이 향은 성경에 보니까 성도의 기도를 상징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계시록 8장 3절, 4절에도 그 말씀이 나옵니다.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는 아름다운 향과 같은 것입니다. 시편 141편 2절은 말씀합니다.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성막 안을 향기가 가득 채운 것처럼 이 성전 안에 우리들의 기도가 가득 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 가운데 기도가 가득해야 합니다. 기도로 우리 삶을 가득 채울 때에 주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우리 신앙생활을 할 때 많은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습니까? 기도가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도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기도하지 않으니까 끊임없이 문제가 우리를 둘러싸는 것입니다. 간절히 기도하면 문제의 결박을 풀어버리고 주님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특별히 구별된 제물을 준비해 그것을 태워서 그 향기로 하나님께 올려드렸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구별된 모습으로, 가장 정결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올려드리는 기도를 주님 기뻐 받으십니다.

우리가 하루를 바쁘게 지내다가 그저 생각날 때 기도하는 것이 기도가 되면 안 됩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에 마음과 정성을 다해 기도할 때 주님이 그 기도를 받으십니다.

보통 새벽 첫 시간에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할 때 그 기도가 하늘로 올라가는 향기가 돼서 우리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기도가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를 살린 것이 바로 이 새벽기도입니다. 전 세계 어디서 볼 수 없는 이 새벽기도가 한국교회를 살려서 오늘날 이렇게 아시아 최대의 기독교 국가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의 열정이 사라지고 기도가 성전을 가득 채우지 못하니까 그 향이 사라지니까 이단들이 들끓고 이같이 코로나-19 전염병으로 인하여 온 국민이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이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 진실한 기도가 주님 보좌 앞에 상달 될 때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풍성히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위대한 선물입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이 바로 기도에 있습니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복음을 전하는 선교 사역인데 그리고 교회를 견고하게 하고 성장시키는 것은 말씀 사역인데 그리고 성도님들을 풍성한 은혜 가운데로 인도하는 것이 치료 사역인데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선교를 가능하게 하고 우리의 기도가 말씀의 역사를 가능하게 하고 우리의 기도가 섬김의 역사를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합니다. 물론 선교하는 집이고 말씀 가르치는 집이고 치료하는 집이지만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기도이기 때문에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사야 56장 7절입니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할렐루야. 우리들의 간절한 기도가 아름다운 향이 되어서 주님의 보좌 앞에 올라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향기가 천국 보좌를 진동하여서 주님을 감동시켜 주님 앞에 올려드리는 기도마다 응답으로 기적으로 축복으로 다가오게 되기를 바랍니다. 문제가 생길 때 사람을 찾아다니지 말고 엎드려 기도하고 주의 도우심을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조지 뮬러 목사님은 다섯 개의 큰 고아원을 운영하면서 만 명이 넘는 고아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런데 기록을 보면 많은 비용이 들어 이 고아원을 운영해야 하는데 사람을 찾아다니지 않았습니다. 모금하러 다니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편지해서 도와달라고 그러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해서 그 모든 필요를 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채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를 저물어 가는 시간에 하루를 돌아보면서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하나님께서 이것도 응답하셨다, 응답하셨다, 응답하셨다 하는 것을 일기장에 남겨 놓게 되었고 목사님이 천국 가신 후에 일기장을 보면서 응답하셨다는 그 횟수를 다 헤어려 보니까 5만 번이 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 기도 내용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1844년 11월, 나는 다섯 사람의 회심을 위해 기도를 시작했다. 아플 때든 건강할 때든,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했다. 18개월이 지나자, 처음으로 한 사람이 회심했다. 하나님께 감사한 뒤, 남은 사람들을 위해 계속 기도했다. 5년 후 두 번째 사람이 회심했다. 6년이 지나자 세 번째 사람이 회심했다. 나는 하나님께 감사한 뒤 나머지 두 사람을 위해서도 계속 기도했다. 두 사람은 아직도 회심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기도 후 한 시간이나 당일 내로 수만 번이나 내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 그런 내가 두 사람의 회심을 위해 36년 가까이 날마다 기도했건만 그들은 아직도 회심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을 바라고 계속 기도하며 여전히 응답을 기다린다. 그들은 아직 회심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회심할 것이다.“

다섯 친구가 예수 믿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데 첫 번째 친구는 18개월 만에 예수를 믿게 되고 그 다음 친구는 5년 후에, 그 다음 친구는 6년 후에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나머지 두 친구가 예수를 안 믿는 거에요.

그래서 간절히 기도하고 기도하고 평생 기도했는데 이 목사님이 임종할 때 그 네 번째 친구가 예수를 믿게 되고 장례식에서 다섯 번째 친구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52년간 기도했던 그 기도가 장례식에서 완성이 된 것입니다. 목사님은 기도에 대해서 이러한 말씀을 남겼습니다.

“기도란 응답 받을 때까지 하는 것이 기도이다.”

할렐루야.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까? 개인의 문제, 가정의 문제, 생활의 문제, 자녀의 문제, 직장의 문제, 사업의 문제, 질병의 문제, 어떤 문제를 가졌던 간에 응답이 올 때까지 기도하고 또 기도해서 반드시 응답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

기도할 때 우리는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에 대하여서 성경은 계시록 5장 9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24장로가 새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 새 노래는 구원받은 사람만이 부를 수 있는 감사의 노래, 승리의 노래, 구원의 기쁨의 노래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는 슬픔을 담고 이별을 담고 상처를 담고 일시적인 사랑을 담고 노래하지만, 예수 믿는 사람이 부르는 이 노래는 오직 구원받은 사람이 부를 수 있는 승리의 노래, 생명의 노래, 기쁨의 노래, 축복의 노래가 되는 것입니다.

이 노래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피를 흘려서 우리의 죄를 사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일생 동안 불러야 할 우리의 새 노래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여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셨다. 예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구원의 능력을 감사하는 것이 새 노래의 핵심적인 내용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구약의 피의 제사를 완성하시고 온 인류에게 구원의 문을 여셨습니다. 모든 죄는 그 대가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을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시고 공의로운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그 죄의 경중을 따라서 크고 작은 형벌을 내리지만, 하늘 법정에서 내리는 그 죄에 대한 심판은 영원한 사망 하나뿐입니다. 사망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죄를 지은 사람은 법정에서 그 죄에 따라서 형을 언도받지만, 이것이 때로는 사면을 받기도 하지만, 인간이 지은 죄는 어떠한 노력으로도, 어떠한 행위로도 사함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하나님께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그의 가장 사랑하는 동물을 가져오게 해서 보는 앞에서 피를 흘려 죽게 함으로 일시적으로 죄를 사하게 한 것입니다.

요즘 반려견을 자기 가족처럼 기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인이 죄를 지었을 때, 그 반려견을 제사장 앞에 갖고 와서 목을 베어 피를 흘리게 한다면, 그 부모의 마음이, 반려견 주인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구약의 4천 년의 제사가 그런 제사였습니다. 가장 아끼는 어린 양을 갖고 와서 보는 앞에서 피를 흘려 죽게 했습니다. ‘내가 죄를 지어서 저 어린 양이 나 대신 죽는구나!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야지!’ 고개를 흔들고 돌아와서 또 죄를 짓고, 또 죄를 짓고 그래서 수많은 짐승이 피를 흘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죄 없으신 몸으로,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스스로 제물이 되어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가 죄 사함을 얻고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놀라운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을 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8절 19절입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로 바뀐 것입니다. 죽어야 마땅한 죄인이 죄와 허물로 얼룩진 더러운 죄인이,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 받아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의 눈으로 살펴주시고 우리를 품어주시고 우리 일생을 인도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왕 같은 제사장의 모습으로 이미 바뀌었습니다. 우리를 매우 존귀히 여기는 자로 일컫고 계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5장 10절입니다.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할렐루야!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감사 찬양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할 것입니다.

3. 찬송과 존귀를 받기에 합당하신 주님

셋째로 찬송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요한계시록 5장 11절 12절입니다.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의 피로 돌아가신 그 우리 주 예수님을 영원토록 찬양하고 또 찬양하고 또 찬양하여야 합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우리가 절대로 소홀히 하거나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우리를 옮기셨으니 한평생 우리의 삶은 주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의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헨델이 ‘메시아’를 작곡할 때, 요한계시록의 이 말씀에 큰 감동을 받고 메시아의 마지막 ‘죽임 당하신 어린 양’ 52번째 곡을 작곡한 것입니다. “찬송과 존귀 영광 주님 홀로 받으시옵소서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코러스로 메시아가 마무리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이제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내가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겠습니다. 주님만이 나의 모든 것 되십니다. 이것이 우리 일생의 신앙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먹고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님만이 홀로 높임 받으시길 원합니다. 빌립보서 2장 9절로 11절은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모든 감사, 찬송, 존경을 우리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됩니다. 우리가 어떤 선한 일을 하고, 우리가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할지라도, 큰일을 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가능하게 하신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잘나서 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이기 때문에 주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일을 잘하고 큰 업적을 남겼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박수갈채를 받고 우리가 받을 영광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다 주님의 것입니다. 계시록 5장 13절, 14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할렐루야! 찬송과 존귀 영광을 주님 홀로 받으시옵소서. 주님 홀로 받으시옵소서. 주님 홀로 받으시옵소서. 그런데 사람들은 참 착각을 잘합니다. 조금만 잘되면 자기가 잘나서 잘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하나님 은혜로 그 높은 자리에 올라갔으니까 잘 섬겨야 하는데, 자기가 다 갖췄다고 생각하고 마음대로 권력을 가득 휘둘러서 그 자리에서 내려오고 난 다음에 많은 사람들이 다시 감옥에 갑니다. 왜 함부로 권력을 휘둘렀기 때문에.

인간의 자리는 절대로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감당하고 있는 모든 것이 다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직분도, 우리의 재능도 우리가 누리는 모든 은혜와 축복도 다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이 주신 재능을 가지고, 주님이 주신 축복을 가지고 나가서 어떠한 업적을 남기고 사람들한테 박수갈채를 받을 때, ‘그래 내가 잘나서 그렇다.’ 착각하고 주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않기를 바랍니다. 절대로 여러분이 주님의 영광의 자리에 앉지 마시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115편 1절입니다.

야훼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

우리 한국에 나타난 수많은 자들이 다 주님의 자리에 자신이 대신 앉아서 이단이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주셨는데, 그들은 말하기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 실패했다. 그래서 실패한 그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서 재림주로 온 것이 나 문선명이다. 그래서 통일교를 문선명이 만듭니다. 그는 이미 죽었고, 자기들끼리 지금 갈등과 다툼이 있어서 성전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 밑에서 통일교 원리강론을 배워서 30개 재단을 만들어 또 살림을 차려서 나간 것이 JMS 정명석입니다. 이 정명석이 십 년 징역을 살고 지금 나와서 다시 이 JMS 재건을 위해서 애쓴다고 하는데, 이 이단도 아주 이 땅에서 뿌리 뽑혀야 하는 이단입니다.

한때 남대문교회 장로님으로서 많은 병자를 고친 신유의 은사로 이름을 날렸던 전도관의 박태선. 영생불사한다고 했지만 그는 죽었습니다. 온갖 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그 밑에서 가지가 쳐서 나온 장막성전 유재열. 유재열 밑에서 배워서 또 하나의 가지를 치고 만들어진 것이 이만희 신천지입니다.

다 저들이 예수님 자리에 대신 앉아서 자기가 재림주라 자기가 보혜사라 그래서 자기를 신격화하고 그 영광을 가로챔으로 말미암아 이단의 교주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이단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번에 신천지뿐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 각종 이단들을 다 심판하실 것입니다. 충격적인 것은 이러한 이단에 속한 사람들이 한국에 한 200만이 된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이라고 말했던 사람 중에 천만 명 중에 한 이백만은 거기에 속해있다는 것입니다. 다 찾아내야 합니다. 다시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 구원파, 여호와의 증인 다 이단에서 돌아오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다시 변화시켜서 신앙의 기초부터 바로 세워 오직 주님만 높이고, 주님만 섬기고, 주님만 닮아가고, 주님만 전하는 그러한 주님의 자녀로 변화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만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려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로 승리합시다. 보혈의 능력으로 흑암의 권세를 물리치고 모든 영광 우리 주님께 올려드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신학교 1학년 다니다가 군대 갔다 왔는데 친구의 꼬임에 빠져서 신천지에 들어간 김강림이란 분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서 7개월 동안 교육받고 나서 완전히 세뇌가 되었어요. 처음에는 교회에서 전혀 듣지 못한 새로운 성경의 세계에 흥미를 느끼고 공부하다가 그만 완전히 세뇌가 되어서 신천지 멤버가 됐는데, 신천지에서 빠져나온 한 자매가 부모님에게 가서 얘기해줬습니다. “당신의 아들이 지금 신천지에 빠져 빨리 구해내야 됩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이단 상담소 가서 상담을 받고 온 가족이 힘을 합해서 이 아들을 이단에서 돌이켜 나오게 하려고 하는데 상담받으러 가자고 하니까 완전히 막 버티고 난리가 납니다. 아버지는 직장을 정리하고 매달려서 아들이 돌아오기를 위해서 밖에 못 나가게 감시하고 그를 설득합니다. “상담받고 바른길을 가자.” “절대 상담받으러 안 갑니다.” 이미 세뇌를 받았어요. “상담받으면 거기에 마귀가 역사하기 때문에 거기 가면 안 된다.” 어머님이 매일 눈물로 찬송을 부르며 기도하고 아버님은 생수통을 배달하느라 거칠어진 손으로 그를 안고 엉엉 우셨습니다. 그런데도 반항하고 아버지 어머니를 밀쳐냅니다. 왜냐하면, 신천지를 배신하면 다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영원한 유황불, 지옥불에 떨어지고 온 가족이 구원을 못 받는다고 세뇌를 당하기 때문에 어떤 압력이 들어와도 누가 뭐라고 해도 버텨야 하는 것입니다. 가족과 인연을 끊더라도 그것을 지켜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버텼습니다.

그렇게 부모님과 밀고 당기는 그러한 어려움 가운데 어느 날 생일을 맞게 되었는데 어머님이 생일 케이크를 들고 오셨어요. 그 순간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온 가족이 나 때문에 이렇게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과연 내가 이 신천지 이 믿음 지키는 것이 맞는 일인가? 내가 지금 뭐 하는 것인가? 마음이 녹아졌습니다. 신천지에 돌아 나오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온 가족이 달라붙어서 그를 설득해서 상담받게 하는 것 밖에 없다고 그랬는데 “내가 상담받겠습니다.”

상담받은 이틀 만에 신천지가 완전히 사기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나옵니다. 그는 신천지에서 나온 후에 신학을 마치고 전도사가 되었고 지금 이단과 싸우며 주의 복음을 전하는 귀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유투브에 이분의 간증이 많이 나오니까 한번 꼭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저는 제 교만으로, 제가 신앙적으로 (말씀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신천지에 빠졌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져버리고 내 스스로 뭘 해보겠다고 전도하고, 이만희라는 다른 구원자를 찾고,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 예수님의 구원을 알게 되고 수렁에서 건져주신 것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흑암의 권세를 물리치고 승리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흑암의 권세를 물리치고 이제는 주님 앞으로 돌아 나와서 주님 기뻐하시는 주님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신 위대한 기도의 능력을 회복하고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힘입어서 흑암의 권세를 물리치고 찬양과 존귀와 영광을 주님께 돌리며 한평생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한 번뿐인 인생인데 혹시 우리가 주님 보시기에 부끄럽게 잘못 살아오지 않았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첫사랑을 회복하고 신앙의 열정을 회복하여 주님 기뻐하시는 자녀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주님 신앙이 나태해지고 감사가 사라지고 기쁨이 사라지고 염려가 가득했던 저희의 삶을 용서하여 주시고 이제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예수의 보혈을 의지하여 흑암의 권세를 물리치고 주님께 영광 돌리며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도록 주님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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