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아시나이다/이영훈목사 |
"야훼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야훼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편 139편 1~5절, 23~24절)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코로나19가 계속 확산되고 있습니다. 어저께는 100명이 넘었습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예배가 정상화되지 못한 것에 대한 심한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기도처뿐 아니라 본 교회 모든 부속 성전을 다 열어서 교회 와서 예배드리고 싶은 분들은 모두 다 예배드릴 수 있도록 예배 처소를 개방했습니다. 그래서 13개 지성전과 136개 기도처와 본 교회 모든 부속 성전 그리고 전국에 영상으로 함께 예배드리는 650여 예배 처소, 교회의 모든 성전으로 오셔서 예배를 드리시길 부탁드립니다. 그 대신 우리가 방역지침을 잘 따라서 거리 두기도 하고 마스크도 착용해야 하겠습니다. 예배드리는 것에 소홀하면 안 됩니다. 언제 이것이 끝날지 모르기 때문에 이제는 마음을 부여잡고 모든 예배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예배에 최선을 다해주시고 오늘 한 가지 기도 부탁드릴 내용은 우리 조용기 목사님, 사랑하는 원로 목사님이 경미한 뇌출혈로 수술을 받으시고 지금 회복 중이십니다. 주님이 속히 회복시켜주셔서 맡겨진 사명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이를 위해 함께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 다같이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 382장 (통:432) :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시고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어떤 어려운 시험과 문제와 고통이 우리에게 다가와도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시는 주님의 은혜로 모든 어려움 이겨내고 넉넉히 승리할 줄을 믿습니다. 주여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의 신앙의 열정이 식고 감사가 사라지고 기도가 소홀했던 것을 주님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시고 다시 첫사랑을 회복하고 주님 앞에 나와 간절히 예배드리고 기도할 때 하늘 문을 활짝 여사 큰 은혜와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조용기 원로 목사님 속히 건강을 회복하셔서 귀한 사명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은 시편 139편의 말씀을 본문으로 하여서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아시나이다” “주께서 아시나이다”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와 부딪히며 고통 가운데 살아갑니다. 너무나 힘들고 괴로워서 차라리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 삶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 사는 동안에는 이러한 문제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 하므로 늘 고통의 굴레에 갇혀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그때로부터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 되시기 때문에 주인 되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면 어떤 어려움도 고통도, 괴로움도, 질병도 주님의 은혜로 넉넉히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고 주인이라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많은 문제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철저히 주님께 맡기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맡기는 것입니다. 맡기고 다시 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까 끊임없이 문제 속에 갇혀서 고통을 당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1. 나를 아시는 주님 그런데 참으로 감사한 것은 오늘 시편 139편 말씀 보니까 첫째로 주님이 우리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를 잘 아시는 주님에 대해서 139편 1절은 말씀합니다. 야훼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님이 나를 살펴보시고 아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냥 쓱 지나쳐서 우리를 보고 계신 것이 아니라 깊은 관심을 가지고 우리를 살펴보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깊은 감춰진 상처를 아십니다. 우리의 아픔을 아십니다. 우리의 문제를 아십니다. 우리의 질병을 주님이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의 꿈과 소망을 주님이 알고 계신 것입니다. 예레미야 12장 3절은 말씀합니다. 야훼여 주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보시며 내 마음이 주를 향하여 어떠함을 감찰하시오니 주님이 나를 아시고 내 마음을 감찰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겉모습을 보고 자기가 느끼는 바대로 쉽게 판단합니다. 그래서 남의 무슨 약점이나 허물을 보면 정죄하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의로워서 자기도 똑같은 허물투성이인데도 불구하고, 자기의 허물은 보지 못하고 남의 허물을 보고 지적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양심을 살펴보고 계십니다. 시편 7편 9절입니다.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주님이 우리의 마음을 보시고 우리를 인정해주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을 택할 때 그의 겸손을 보고 택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얼마 못 가고 교만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마음을 돌이키시고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 한 사람을 다음 왕으로 세우기로 하셨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를 보내 이새 아들 중에 한 사람을 기름 부으라고 해서 사무엘이 이새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이새에게 여덟 아들이 있었는데 사무엘이 첫아들 엘리압을 보고 그냥 반했어요. 외모만 보고 “이 사람이구나.” 해서 기름을 부으려고 생각하는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입니다. 야훼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야훼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입니다. 주님을 향한 그 믿음, 그 사랑을 보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통해서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의 의식을 가지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생을 복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내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 간구와 소원을 아뢰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아뢰기 전에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간구를 주님이 들으시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시편 139편 2절, 3절입니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나의 모든 것을 잘 아시는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나를 안수하시는 주님 성경은 나아가서 둘째로 우리를 아실 뿐 아니라 우리를 안수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139편 5절입니다.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주님이 나를 감싸주시고 나를 안수하신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님의 보호하심에는 빈틈이 없습니다. 주님이 나를 딱 둘러싸고 계시기 때문에 어떤 대적이 우리를 공격해도 주님이 막아주시는 것입니다. 때때로 내가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더라도 주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해주시고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친히 안수해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경을 보면 안수를 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안수하십니다. 둘째로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안수하십니다. 셋째로 성령충만을 위해서 안수하십니다. 넷째로 귀한 직분자로 세우기 위해서 안수하시는 것입니다. 영적 권위를 가진 제사장이나 선지자나 주의 종이 안수할 때 그와 같은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런데 주의 종이 안수만 해도 놀라운 은혜가 임했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안수하시니 우리에게 얼마나 큰 축복이 임하겠습니까. 주님의 능력의 손이 우리 위에 얹어져 안수할 때 문제가 사라져 버리고 모든 병에서 놓여남을 받고 치료받게 되고 우리 마음에 기쁨과 은혜가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날마다 주님의 은혜 가운데 주님께 안수받고 문제가 해결되고 병이 고침을 받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 병자들에게 때때로 안수하셨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을 안수하셔서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8장 25절입니다.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18년 동안 귀신이 들려서 꼬부라져 허리를 펴지 못하던 여인을 안수하셔서 고치셨습니다. 누가복음 13장 13절입니다.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우리가 주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어 안수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주님이 안수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안수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택하셔서 무조건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우리가 엎드려 기도할 때 우리에게 안수해주십니다. 여러분 날마다 주님 앞에 깨어지고 낮아져 엎드려 기도함으로 주님께 안수받는 복 받은 인생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부모들이 자기 아이를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 안수받기를 원했습니다. 당시 아이들을 무시하던 사회였기 때문에 제자들은 꾸짖으며 저리 가라고 왜 귀찮게 하냐고 그들을 물리치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제자들을 나무라시고 그 아이들을 오게 하여 안수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9장 13절~15절입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그들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 안수하실 때에 주님의 은혜와 축복이 안수받은 사람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강림 이후 사도들이 사마리아에 가서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안수할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사도행전 8장 17절입니다.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날마다 주님의 안수를 받도록 주님 앞에 기도의 무릎을 꿇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해도, 우리에게 허물이 있어도 엎드려 회개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면 우리에게 안수해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기뻐하시고 안아주시고 우리에게 안수해주시고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주님 앞에 깨어지고 낮아진 모습으로 나와 엎드려 기도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나를 안수하시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염려도 떠나가고 근심도 떠나가고 슬픔도 떠나가고 질병도 떠나가고 문제도 떠나가고 주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큐티함으로 말씀을 통해 주님 앞에 안수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늘 찬양과 감사와 기도를 드림으로 주님 앞에 안수받고 복 받은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3. 나를 인도하시는 주님 셋째로 주님이 우리를 안수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주님께서 인도하여 주십니다. 시편 139편 23절, 24절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피시고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의의 길로, 축복의 길로, 영원한 길로 우리를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것 아시는 주님께 맡기고 오직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우리의 앞길을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길을 인도해주실 때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5절은 말씀합니다.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여러분의 길을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각도, 계획도, 뜻도, 여러분의 일생도 주님께 맡기면 주님께서 인도하시고 주님께서 놀라운 일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이 한평생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넘치는 복을 부어주십니다. 일생이 다 가도록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한평생 주님의 은혜 가운데 살다가 그의 일생을 회고하며 지은 시편 23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는 성경 말씀 중 하나입니다. 시편 23편 1~3절을 우리 다같이 고백합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주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므로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주님이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고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해주십니다. 내 영혼을 날마다 소생시켜주시고 주님의 의를 위해서 우리를 복된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좋은 길을 예비하시고 인도해주신 주님, 주님 앞에 감사드려야 합니다. 고난이 다가와서 우리가 마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가운데로 다니는 그러한 고통 가운데 빠졌다고 할지라도 주님께서 그곳에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 주시고 내 잔이 넘치는 복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환난이나 핍박이 다가오고 문제가 다가오고 고통이 다가오고 질병이 다가와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4절과 5절은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오늘 여러분의 잔이 넘치는 복을 다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할렐루야. 궁극적으로 우리를 영생 천국으로 인도해주십니다. 23편 6절 결론입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주님의 전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영원히 살리로다.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무엇을 염려하십니까. 주님이 이렇게 우리의 일생을 책임져 주시는데 왜 슬퍼하고 왜 낙심하고 왜 상처 가운데 쭈그려 앉아서 눈물만 흘리고 있습니까. 믿음으로 일어서십시오.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의 손을 꼭 붙잡으십시오.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우리의 호흡이 다하는 그 날까지 오직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는 가운데 주님이 찬송가 하나를 마음에 떠올리게 해주셨습니다. 그것은 토마스 오베다이아 치솜 목사가 지은 ‘오 신실하신 주’라고 하는 찬송입니다. 미국 켄터키 프랭클린이라고 하는 한 작은 마을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목사님은 어릴 때부터 너무 몸이 아팠습니다. 평생 몸이 아팠습니다. 또 집안이 어려워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해서 결국 독학으로 교사자격증을 땄는데 몸이 너무 아프고 안 좋아서 몇 년 만에 교사 생활을 그만둬야 했습니다. 21살 때 신문 편집장으로 일했지만, 몸이 아파서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27살 때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이 주인이 되시니까 그때부터 삶이 바뀌었습니다. 37살 때 감리교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건강이 안 좋아서 몸이 아파서 목회를 1년만 하고 그만 교회를 사임하게 됩니다. “아니, 하나님 평생 아팠는데 목회라도 제대로 하게 해주시지. 37살에 목사가 돼서 1년 만에 목회를 그만두게 되었으니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누가 그렇게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후 인디애나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보험을 팔아 겨우겨우 생계를 유지합니다. 그런데 그가 몸이 아파서 질병과 싸우고 있을 때 주님의 말씀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매일 같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여러분, 말씀을 날마다 읽고 묵상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 모릅니다. 말씀 하나가 여러분에게 탁 뛰어 들어와서 여러분의 운명을 바꾸는 축복의 말씀으로 바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22절, 23절이 다가왔습니다. 야훼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그래서 슬픔과 절망 가운데 있던 이 치솜 목사가 새 힘을 얻었습니다. 몸이 아파서 고통 가운데 있으면서도 신실하신 주님, 날마다 새 힘을 주시는 주님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은 찬송이 바로 새찬송가 393장 ‘오 신실하신 주’입니다. 이 찬송가가 수많은 사람에게 큰 은혜를 끼쳤습니다. 무엇보다도 많은 신학생을 배출하고 주의 종을 배출한 무디 신학교에서는 이 ‘오 신실하신 주’ 찬송이 교가처럼 시도 때도 없이 불렸습니다. 어느 총장은 이 찬송을 거의 매주 학생들과 함께 불렀는데 장례식 찬송도 이 찬송이었습니다. 이것이 성악가, 찬양 사역자 조지 베블리 쉐아에 의해서 빌리 그레함 전도 대회 때 불렸습니다. 그리하여 전 세계 성도들이 사랑하는 귀한 은혜의 찬송이 되었습니다. 이 찬송을 짓고 난 다음 하나님께서 그의 건강을 조금씩 회복시켜주셔서, 놀랍게도 몇 년 더 살까 하던 그분이 94세까지 살았습니다. 할렐루야. 그는 1200편의 찬송시를 지었습니다. 여러분은 건강하신데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부끄러운 삶을 살지 말고 정말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목사님이 고백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건강이 나빠서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신실하심과 놀라운 돌보심을 이 찬송에 기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가 솟구쳐 올라옵니다! 경이로운 감사가 넘쳐난다고 그는 고백했습니다. 이 찬송은 그의 신앙 고백이자 많은 성도의 신앙 고백이 되었습니다. 393장입니다. 이 찬송이 우리 모두의 신앙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1절] 오 신실 하신 주 내 아버지여 늘 함께 계시니 두렴없네 그 사랑 변찮고 날 지키시며 어제나 오늘이 한결같네 [2절] 봄철과 또 여름 가을과 겨울 해와 달 별들도 다 주의 것 만물이 주 영광 드러내도다 신실한 주 사랑 나타내네 [3절] 내 죄를 사하여 안위하시고 주 친히 오셔서 인도하네 오늘의 힘되고 내일의 소망 주만이 만복을 내리시네 [후렴] 오 신실 하신 주 오 신실 하신 주 날마다 자비를 베푸시며 일용할 모든 것 내려주시니 오 신실 하신 주 나의 구주 우리 3절은 자리에서 다 일어나서 우리의 믿음의 고백으로 이 찬송을 부릅니다. 주님, 신실하신 주님, 제가 너무 힘듭니다. 저를 붙들어주시고 치료하시고 회복시켜 주옵소서. 새 힘을 주옵소서. 고백하며 찬양합니다.
<기도> 기도드립니다. 오 신실하신 나의 주님,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못나서, 어리석어서, 연약해서, 부족해서 이 신실한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하고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살아왔던 나의 부족한 모습을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는데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지 못하고 내 생각에 사로잡혀서 염려하고 근심하고 미워하고 다투고 분노하고 상처받고 고통 속에 살아왔던 것을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시고 오늘 이후로 우리의 삶이 시편 23편의 고백처럼, 또 ‘오 신실하신 주’ 이 찬송의 고백처럼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나아가는 우리 되도록 도와주옵소서. 그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되도록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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