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조용기목사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편 50편 23절)

우리는 살면서 감사보다는 원망과 불평을 할 때가 많습니다. 불평을 위해서는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혼자서도 혹은 두세 사람만 모여도 쉽게 불평을 하고 비난을 합니다. 그런데 원망과 불평은 마귀가 우리를 점령할 수 있는 열쇠를 내어 주는 것에 같습니다. 마귀는 원망과 불평을 통해서 우리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와서 삶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41편 3절에 “야훼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의 결심을 하고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 원망과 평의 마귀가 들어오지 못하게 노력을 해야 합니다.


1. 원망과 불평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로, 원망과 불평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어서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해방과 자유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계속해서 원망하고 불평을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에 이르렀을 때, 애굽 군대가 오는 것을 보고 “장지가 없어서 이곳에서 우리를 장사 지내려고 애굽에서 데리고 나왔느냐?”라고 하면서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갈라서 바다 속에 길을 만들어서 육지같이 건널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르 광야에서 사흘 길을 걷는 중에 마실 물이 떨어지자 “목말라 죽게 하려고 우리를 광야로 데리고 나왔느냐?”고 원망했습니다. 이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서 그들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먹을 떡이 없다.”고 불평했고, 하나님은 만나를 내려서 그들을 배불리 먹게 하셨습니다.

또다시 “마실 물이 없다.”고 불평할 때, 하나님은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셨고 “고기가 없어 영양실조가 되어 못 살겠다.”고 불평할 때, 하나님이 메추라기를 보내셔서 고기를 배불리 먹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면서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계속해서 원망하고 불평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가데스바네아에 왔을 때, 열두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열 명의 정탐꾼들이 하나님이 주신 땅을 악평하자 백성들이 통곡하고 원망하면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민수기 14장 27절로 30절에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야훼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예비하셔서 도와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돌보심에 감사하지 아니하고 없는 것만 원망하며 불평하고 탄식하다가 결국 출애굽한 첫 세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모두 죽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원망과 불평은 이처럼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평하게 만드는 유혹을 대적하고 물리쳐야 하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을 이기는 것은 영적인 전쟁입니다. 이 전쟁에서 지고 낭패를 당하고 이기면 축복을 얻는 것입니다.


2. 감사와 찬송

둘째로, 우리는 감사와 찬송이 하나님의 기적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역대하 20장을 보면, 여호사밧 왕이 연합군의 침략을 당했는데, 그에게는 적을 상대할 만한 군대도 없고 무장한 무기도 부실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백성들을 모아 놓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합니다. 역대하 20장 20절에 “이에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야훼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그렇게 선포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사밧 왕은 감사와 찬양이 원수를 물리치는 무기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역대 전쟁사에 없는 희한한 일을 했습니다. 전쟁에 나가면서 군사들 앞에 성가대를 조직해서 성가대들이 거룩한 옷을 입고 하나님께 찬송을 부르면서 나아간 것입니다.

역대하 20장 21~23절에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야훼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야훼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야훼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찬송이 시작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는 말입니다. 아마 가만히 있을 때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았어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시작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하셨는데 여호사밧 왕과 그의 군대가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림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구원을 베푸어 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감사와 찬송이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받는 열쇠인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감사와 찬송은 의심을 이기게 하는 무기가 됩니다. 사람들이 저를 찾아와서 “목사님, 기도하고 구한 것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서 자꾸 의심이 다가오는데 어떻게 합니까? 목사님은 의심을 하지 않으시지요?”라고 질문을 하는데 그때 저는 “아니오. 저도 여러분과 같이 의심을 합니다.” 그렇게 대답합니다.

여러분, 의심은 누구에게나 다가오지만 의심 속에 빠지느냐? 의심을 이기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심을 이기는 방법이 바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의심이 파도처럼 몰려올 때, “하나님께 내 기도에 응답하셔서 기적이 나타난 것을 감사합니다.” 그렇게 감사를 드리면 찬송을 부르면 의심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또한, 감사와 찬송은 불평을 이기게 하는 무기인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우리 교회 구역장 한 분이 자궁암의 말기인데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괴로워서 “목사님, 바늘 한줌을 쥐고 쉬지 않고 찔러대는 것 같습니다. 이 고통과 이 괴로움에서 내가 정신을 온전히 하고 이 세상을 떠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간절히 기도한 결과, “집사님 하나님이 원망스럽죠?” 그러니까 그렇게 앓다가 얼굴을 딱 펴더니만 정색을 하고 “목사님, 머리를 하늘로 두고 태어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좋을 때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나쁠 때도 하나님께 감사해야지, 인생으로 태어난 자가 어떻게 천지를 지으시고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목사님 그런 말씀 마세요.” 하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제가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릅니다. 그게 수십 년 전에 일어난 일인데 그 자매님이 마지막 떠나면서 감사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


3. 우리의 감사

우리는 무엇보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게 된 것을 감사해야 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 16: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부귀, 영화, 공명이 자기 목숨을 구해줍니까? 아무리 부귀, 영화, 공명을 누린다 해도 그것은 한때에 불과할 것입니다.

세월은 흐르고 자기 인생의 종말이 다가올 때, 부귀, 영화, 공명을 누리는 것은 다 과거의 일이고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항상 감사해야 될 것은 우리는 비록 세상의 부귀, 영화, 공명을 못 가졌다 할지라도 가장 귀한 목숨을 가졌기 때문에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고 했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것을 우리는 끝없이 끝없이 감사해야 될 것입니다.

또,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를 알면,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여러분과 나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족속인 것입니다. 여러분,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살 때 선택하지 않습니까? 옷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고 가구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더구나 내가 살 집 같은 것은 많이 집을 보고 선택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만민 중에서 여러분을 자기의 자녀로 선택하셨으니 하나님이 얼마나 여러분을 좋아하시는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좋아하시고 우리를 선택해 주신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매일같이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다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장차 다가올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살 수 있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면 너무나 감사한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왕 같은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왕은 다스리지 않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마귀가 가져오는 여러 가지 흑암의 세력을 다스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 한 분은 골수암에 걸렸는데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회개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눈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항암 치료를 받고 한쪽 다리를 절단하게 되었을 때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두 다리를 다 잘랐으면 어쩔 뻔 했습니까?” 그러면서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 후에 암이 폐로 전이되어 의사가 고개를 흔들며 방법이 없으니 퇴원하라고 했습니다. 목발을 짚고 집으로 와서 너무 아파서 누워있는데 성령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모든 병은 귀신이 가져왔으니 이제부터 내 이름을 다스려라. 너는 왕 같은 제사장이다.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물리쳐라!”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 성도가 일어나서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물러가라! 물러가라!” 계속해서 고함을 쳤습니다.

그러자 온 전신이 사시나무 떨듯이 떨리더니 폐에서 뭐가 공기처럼 확 튀어 나왔습니다. 그래서 ‘아, 귀신이 떠나갔구나.’ 그러나 일어나 앉았더니 몸이 날아갈 듯이 상쾌하고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했더니 의사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골수암도 폐암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깨끗하게 나아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이 사람이 불치의 병에 걸렸는데도 불구하고 원망,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니까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귀신을 쫓아내고 건강을 얻을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담대하게 기도하여 마귀의 일을 예수 이름으로 물리쳐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아끼고 돌보시겠습니까? 시편 100편 3절로 4절에 “야훼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주의 소유된 백성이요, 주의 기르시는 양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돌보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이 땅에서 삶이 끝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옮기셔서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는 영원한 천국에 살게 하시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저 캄캄한 밤중에 방황하면서 살다가 결국은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통하여 죄 사함을 받고 의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이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다가 육신의 장막집을 벗어 버리고 예비한 영원한 집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천국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잠시 있다 사라지는 집이 아니라 영원히 들어가서 거할 곳을 주님이 예비해 놓았습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가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 천당에 대하여 이야기하면 ‘아직 새까맣다. 먼 훗날에 일어날 일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제는 가깝게 느껴집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천국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나라에 집이 있으니 우리는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가다 몸이 아플 때도, 또 몸이 피곤할 때가 있습니다. 젊었을 때는 자고나면 금방 회복되었는데 지금은 피곤이 많이 쌓이면 자고나도 쉽게 회복되지 않습니다. 그럴 때, 천당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죽음을 생각하는데 우리에게는 천국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이 육신의 장막집을 떠날 때, 주님이 와서 내 손을 잡고 영원히 살 천국으로 데려간다는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고 소망이 넘치는지 모릅니다. 만일 죽음이 가까울 때, 가야할 곳이 없다면 얼마나 당황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겠습니까? 오늘 예수를 믿지 않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갈 곳이 없으므로 내일이 캄캄합니다. 육신의 집을 떠나면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다른 길이 없는 것입니다. 집 없는 방랑자가 갈 곳은 지옥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영원한 집을 예비해 놓으셨으니 이로 인하여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설교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하는데 성령께서 내 마음속에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조 목사, 네게 기쁨을 주는 사람에게도 감사하고 슬픔을 주는 사람에게도 감사하라. 나는 삶의 기쁨과 슬픔을 다함께 네게 선물로 주었다. 네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셨으니 좋은 일은 좋아서 기뻐하고 좋지 않은 일도 내가 좋게 만들어 줄 것이므로 모든 것을 선물로 받아들여라.” 그래서 제가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항상 기쁘기만 하면 기쁨을 잘 모르지 않겠습니까? 슬픔이 다가와야 기쁨의 참맛을 알고 배고픔이 있어야 밥 먹는 기쁨을 알고 질병이 들어야 건강의 기쁨을 압니다. 기쁨과 슬픔이 연달아 와서 인생을 참 만족으로 살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영적인 전쟁을 하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우리 삶에 마귀를 끌어들이는 길이고 감사와 찬송은 우리 삶에 하나님을 모셔 들이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와 찬양이 있는 곳에 임재하기 때문에 우리가 감사로 문을 열면 하나님이 오셔서 하나님의 기적이 우리 삶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삶을 살고 싶으면 감사를 하십시오. 히브리서 13장 15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으로 제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의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하셔서 큰 은총과 축복과 영광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삶을 통해 날마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 도>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이 이와 같이 주님 앞에 모였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기도는 못 해도 우리 집에서 우리 형제들이 모이는 곳에서 손을 가슴에 얹고 아픈데 얹고 기도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곁에 계시니 마음이 든든하고 위로가 되니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오니 너희 원수 마귀는 떠나가라! 떠나가라! 떠나가라! 예수의 이름으로 생명이 넘치게 하여 주시옵시고 생명과 거룩함과 성령 충만이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의 이름으로 나을지어다! 나을지어다! 나을지어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삼중구원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한 것을 사실로 허락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이 어려움과 고통을 지날 때도 예수님 이름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가면 저 하늘에 있는 별들보다 많은 천사들이 우리를 지켜 주시기 때문에 담대하게 나갈 수가 있사오니 우리가 세상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을 따라가지 말고 별을 따라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을 따라가고 하나님을 따라가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드립니다. 아멘.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이영훈목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6~18)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서 예배를 교회에서 드리지 못하고 온라인으로 각자 있는 처소에서 예배드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고 신앙의 열정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이 코로나-19의 재앙이 속히 그치고 사이비 신천지 이단은 해체되고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추게 하여 주옵소서. 다시는 이러한 재앙이 우리 사회 가운데 임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고난은 변장 된 축복이라고 했습니다. 이 고난을 통하여 우리 교회들이 다시금 영적으로 재무장하고 영적인 부흥의 역사를 이루게 하여 주시고 사분오열 나누어지고 다투고 싸우는 모습에서 대통합을 이루고 사회를 치료하고 변화시키는 영적 지도력을 회복하고 이 복음이 저 북녘땅에 증거되어 남북 평화통일의 날이 속히 다가오게 하여 주옵소서.

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서 애쓰고 있는 의료진들과 관계자들에게 은혜 내려 주시고 거짓 사이비 신천지 이단 집단에 세뇌되어 빠져있는 저들이 속히 돌아 나와 가정으로, 교회로 돌아가 올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다같이 통성으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 412장 (통:469) :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의 삶 가운데 주님 은혜 내려 주셔서 첫사랑을 회복하고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넘쳐나게 해주심으로 말미암아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고 주님께 영광 돌리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옵소서.

코로나-19가 속히 종식되게 하여 주시고 신천지 사이비 이단, 각종 이단들이 이 땅에서 다 해체되고 사라지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이 땅에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은 다니엘서 3장을 본문으로 하여서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말씀의 제목을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코로나-19가 급속도로 전 세계로 확산되어 온 세계가 불안과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하루에 600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천 명의 확진자가 나오고 이란도 이와 비슷하고 전 세계가 코로나-19의 공포로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이러한 때에 염려, 근심, 걱정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해서, 더욱 믿음을 굳세게 해서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갖가지 시험과 환난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지켜야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꼭 붙잡고 기도하면서 더욱더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나아갈 때에 믿음의 전진을 해 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려 주시고 승리의 삶을 살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1. 믿는 자에게 다가온 고난

먼저 믿는 자들에게 다가온 고난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남 왕국 유다가 주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그리고 이 유다 왕국의 많은 인재들과 지도자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생활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 포로로 끌려간 사람 가운데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있었습니다. 워낙 뛰어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뽑혀서 포로로 끌려온 그들이 바벨론 왕국의 주요 관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각기, 각기 어느 지역을 다스리는 책임자가 되었고 다니엘은 전국을 다스리는 그러한 높은 위치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금 신상을 만들어 놓고 "모든 신하들이 다 와서 절을 하라." 그랬는데 이 금 신상이 얼마나 규모가 큰지 높이가 60규빗, 약 27미터입니다. 여러분이 이해하기 쉽게 보통 한 12층 정도의 건물 높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또 옆의 폭이 6규빗 그러니까 2.7미터입니다. 어마어마한 금 신상을 세워놓고 준공식에 모든 신하가 와서 악기 소리가 울려 퍼질 때 다 절을 하라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이 준공식에 아예 참석하지 않았고 다니엘의 세 친구는 참석을 했지만 악기가 울려 퍼지고 다 엎드려 절을 할 때 꼿꼿이 서서 금 신상에 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이들을 못마땅히 여기던 신하들이 즉시 왕에게 이 사실을 보고 합니다. 3장 11절, 12절입니다.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음을 당하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지방을 다스리게 하신 자이거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

바벨론 왕의 다른 신하들은 이 포로들이 끌려와서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을 늘 못마땅히 여겼습니다. 저들의 허물이 무엇일까 늘 살펴보고 있었는데 마침 저들이 금 신상 앞에 절하지 않는 것을 보고 왕에게 가서 고발합니다. "왕이여 왕이 세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고 왕의 신들에게 절하지 아니하고 왕이 세운 금 신상에 저들이 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편에서는 왕을 높이면서 그들의 잘못을 지적했습니다. "저들이 왕을 무시했습니다. 왕이 세워서 그런 높은 위치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왕이 섬기는 신을 섬기지도 않고 절하지도 않고 저렇게 왕의 명령에 불복종했습니다." 그 말에 느부갓네살왕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당장 그들을 끌고 오라고 명령합니다. 13절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오라 말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택하고 불러 세우신 자들입니다. 세상의 신이 아니라 참신이신 하나님만을 섬기고 세상의 법을 지키지만 세상의 방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죄악된 세상은 믿음의 사람을 무차별하게 공격합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따르라고 위협하기도 하고 때때로 우리를 회유하기도 합니다. 신천지 같은 이단들도 어ㄸ■ㅎ게 하든지 믿는 사람들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미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러한 때에 믿음을 지켜야 됩니다. 왕은 신상에 절하지 않은 세 사람에게 이같이 엄하게 말을 했습니다. 3장 15절입니다.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지금이라도 악기 소리가 울려 퍼질 때 너희가 절을 한다면 살려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저 풀무불에 집어넣을 것이다. 어떤 신이 너희들을 저 풀무불에서 건져낼 수 있을 것인가?"

이 풀무불은 용광로입니다. 용광로는 쇠도 녹입니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저 뜨거운 불 속에 들어갈 터인데 어떤 신이 너희들을 구원해낼 수가 있겠느냐고 왕이 말한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큰 어려움과 고난이 다가오기도 합니다. "너무 견디기 힘들어서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 하는 그러한 고통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눈물로 밤을 세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주위를 둘러봐 그 어디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고 캄캄한 칠흑 같은 어두운 밤 같은 그러한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눈을 들어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해서,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해서 여러분 앞에 다가온 고난을 헤쳐나가며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고난 중에 믿음을 굳건히 지킨 세 사람

둘째로 고난 중에 믿음을 지킨 세 사람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말을 듣고 세 사람이 이렇게 답변합니다. 17절입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들은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초보적인 신앙의 사람들은 늘 자기의 유익만을 간구합니다. "이것도 주시고 이것도 주시고 이것도 주시옵소서." 그러다가 어려움을 당하면 교회를 떠나기도 하고 쉽게 상처받고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문제가 다가올 때 뒤로 물러가는 것이 아니라 더욱 주님께 매달리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이와 같은 큰 고난이 닥쳐왔을 때에 "설령 내가 죽는다고 할지라도 내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을 절대로 배반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지키겠습니다." 믿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금 신상에 절할 수 없습니다."라고 담대히 고백한 것입니다.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이같이 믿음을 지키다가 순교의 자리까지 갔던 것입니다. 이 세 사람은 왕 앞에서 자기들의 믿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풀무불에서 능히 건져내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놀라운 신앙의 고백이 18절에서 이어서 나옵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풀무불에서 건져주시겠지만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믿음을 지키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내게 죽음이라고 하는 그러한 절망적인 순간이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나는 믿음을 지키겠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이와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모든 고난을 헤쳐나가고 이기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믿음의 사람과 함께하시며 믿음의 사람을 통하여 큰일을 이루시고 믿음의 사람을 통하여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6절은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해서 강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주님만 전폭적으로 의지하고 약속의 말씀만 붙잡고 전진 또 전진, 전진해 나아갈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모든 것이 절망적이고 눈에는 보이는 것 없고 귀에는 들리는 것 없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는 그러한 고난의 밤을 지낸다고 할지라도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주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며 믿음으로 전지해 나아갈 때 반드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승리가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믿음이 위대한 기적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절망의 벼랑 끝에 서서 떠밀려 떨어지는 것 같은 그러한 순간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의 날개를 달아주셔서 창공을 날아오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전의 하나님이십니다.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되게 만들어 주시고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만들어 주시고 우리의 실패가 변하여 성공이 되게 만들어 주시는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고난을 통과하여 우리에게 예비한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도록 주님이 우리의 삶을 주관해 주실 것입니다.

3. 고난 중에 도우시는 주님

셋째로 고난 중에 도우시는 주님에 대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왕이 진노했습니다. "저 풀무불을 평소보다 더 뜨겁게 해라." 7배나 뜨겁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19절입니다.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얼굴빛을 바꾸고 명령하여 이르되 그 풀무불을 뜨겁게 하기를 평소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 하고

얼마나 불이 뜨거웠던지 그를 붙들어가지고 불속에 집어넣으려던 군사들이 그 불길에 타죽었습니다. 악한 원수 마귀가 우리를 참수하고 우리를 넘어뜨려 붙들어도 하나님의 심판에 그들은 다 불에 타 없어지고 말게 될 것입니다. 악한 원수 마귀는 우리를 어떻게든 헤치려고 모함을 하고 달려들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해주셔서 우리를 잡아넣으려고 했던 함정에 그들이 빠지게 되고 우리를 심판하려고 했던 그 심판의 칼에 그들이 징계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22, 23절에 말씀합니다.

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불이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이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 채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떨어졌더라

그들을 붙들었던 사람은 불에 타고 그들은 불에 던져졌는데 웬일입니까? 불속에 들어가도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아니하고 그들은 그 안에서 주님의 보호하심을 받았습니다. 27절입니다.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놀라운 것은 분명히 세 사람이 불구덩이 속에 들어갔는데 가보니깐 한사람 모르는 신의 아들과 같은 사람이 같이 저들과 대화를 나누며 불구덩이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24절 25절입니다.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하니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옳소이다 하더라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네 번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는데 내가 보니 신들의 아들과도 같구나." 우리 주님이 불구덩이 속에 그 고난의 자리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 믿음의 사람 세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서 그 자리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불같은 시험을 당할 때 우리를 홀로 외롭게 내버려 두시는 것이 아니라 불구덩이 속에 오셔서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우리에게 용기와 힘을 주셔서 불같은 시험을 이기고 견딜 수 있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2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홍해가 가로막힐 때 하나님께서 그 홍해 바다를 갈라 바다 가운데를 육지처럼 건너게 하셔서 그 물이 그들을 해하지 않게 하셨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구덩에 떨어졌을 때에 그 가운데 오셔서 함께하셔서 그 불꽃이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아니하고 주님의 은혜 가운데 그 불같은 고난을 이길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이 이 하나님의 사람 세 사람과 함께 하셔서 풀무불 가운데서 그들을 격려하시고 위로하시고 용기를 주신 것처럼 지금도 그 불같은 시험을 만났을 때 감당할 수 없는 고난 속에 있을 때에 주님이 오셔서 함께 하시고 도와주시고 붙들어 주시고 힘과 용기를 불어 넣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입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할렐루야!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할렐루야.

그래서 저들을 부릅니다. "이리 나와 오너라." 나오는데 네 번째 사람은 보이지 않고 세 사람만 나오는데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아니하고 그저 어디 하나 화상을 입은 곳이 없는 건강한 몸으로 나왔습니다. 없어진 게 딱 하나입니다. 뭐냐 하면 그들을 묶고 있던 끈입니다.

고난의 풀무를 통하여서 우리에게 사라지는 것은 우리를 묶고 있던 모든 절망의 끈, 상처의 끈, 분노의 끈, 미움의 끈, 염려 근심 걱정의 끈, 참소의 끈들이 다 태워지고 사라져 버릴 뿐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불같은 시험을 통과하고 있을지라도 그 불같은 시험을 통과하고 난 다음 여러분을 괴롭히는 모든 대적이 다 멸함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모든 끈이 다 태워져 버리고 사라져버리고 자유롭게 되어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주님을 찬양하는 여러분 모두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믿음이 정금같이 변화되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새롭게 탄생될 것입니다. 욥기 23장 10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고난 후에 우리에게 반드시 좋은 일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반드시 좋은 일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3절에서 4절로 약속하였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환난을 통하여 우리가 인내를 배우게 되고 인내를 통하여 우리가 연단되어서 결국 정금같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큰 축복이 우리의 꿈과 소망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코로나-19를 통과하고 있지만 이 코로나-19를 통과한 다음 우리나라 모든 의료체계가 더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서 세계적인 의료 국가, 위생 청정 국가로 바뀔 것이고 이를 통과함으로써 신천지 이단이 해체됨으로 말미암아 한국 교회가 정화되고 한국 교회의 분열과 다툼이 사라지고 이제는 성령으로 충만해서 제2의 도약과 부흥하는 놀라운 시대가 다가올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개인적으로 고난의 풀무 불을 통과하지만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고 어려운 그러한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가고 있지만, 주님이 함께하셔서 붙들어 주시고 용기와 힘을 주셔서 넉넉히 이기게 해주시고 궁극적으로 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파푸아 뉴기니에서 사역하고 계시는 문성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해발 2,500미터 정글 속에서 미히 족속이라고 하는 미전도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고 계시는 선교사님이신데, 2,500미터라고 하면 백두산보다 더 높은 그러한 깊은 산인데 원래 여의도에서 IT 업체를 운영하며 벤처사업을 하던 분입니다.

어느 날 파푸아뉴기니에서 원주민 사역을 하는 선교사님의 영상을 보고 큰 충격을 받고 눈물 흘리며 내가 지금까지 무엇하며 살았나, 내 남은 인생 주님을 위해 살기 원합니다. 그래서 이 미전도 종족에게 들어가서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신학을 공부한 후에 파푸아뉴기니로 들어갑니다.

그가 찾아간 미히 부족은 험한 산 외부 깊은 계곡에 갇혀 있어서 외부 문화를 전혀 접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식인 문화 속에 살아왔던 그러한 난폭한 부족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여성의 인권은 찾아볼 수 없고 한 명의 여성과 돼지 세 마리를 거래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문자도 없는 이곳에 들어가서 그들의 말을 듣고 문자를 만들고 성경책을 만들어서 그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에 말라리아도 걸리고 복부 대동맥류도 걸리고 심장 대동맥류 병이 와서 그는 몇 번이나 죽음의 고비를 넘깁니다. 대동맥류 수술을 받을 때는 6일간 코마 상태로 혼수상태로 있기도 했습니다. 그때 고난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피하고 싶은 고난은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과 기쁨의 통로가 되었다. 고난은 우리에게 큰 유익이 되었다. … 두려움이었던 죽음은 소망이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으로 그분을 향한 절대 순종의 사랑과 경외가 일어났다. 고난을 기뻐한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가슴 깊이 이해되었다."

할렐루야. 죽음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는 그의 선교 열정에 이 미히 부족 사람들이 감동을 받기 시작하고 한 사람 두 사람 예수를 믿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 부족 가운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리화나 대마초를 하고 마약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다 끊고 예수 믿고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여자를 가축보다 못한 그런 인격적이지 못한 대우를 하던 저들이 그들을 존중하게 여기게 되었고,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어서 가정이 회복되고 그래서 이 부족이 변화되기 시작했고 이 산골에 있던 사람들 140여 명이 세례를 받고 그중에 17명의 제자가 세워져서 다른 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훈련을 받고 나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대동맥 수술 이후로 심장에 통증이 올 때마다 그는 이런 기도를 드린다고 합니다.

"아버지, 오늘이 마지막입니까? 만약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 밤이라면 잠이 들기 전에 나의 모든 죄를 낱낱이 찾아 주시어 기억나게 하소서. 죄인이 잠들기 전에 회개하기를 소망합니다. 오직 죄인의 소망은 천국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뵙고 천국에 거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무도 가지 않는 곳, 그 험한 산골짜기에 들어가서 식인종들을 변화시키고 그들이 예수 믿게 하고 그들의 삶 가운데 행복이 무엇인가 깨닫게 하고 여성 인권을 회복시키고 가족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 또 그곳에 제자 양성을 해서 또 다른 부족에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로 만들고 이런 위대한 일을 그가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이 그에게는 축복이 되었습니다. 죽음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지만 그때마다 더욱더 주님을 의지하게 되었고, "내 호흡이 다하는 날까지 이 복음 전하다가 주님 앞에 가리라." 그는 귀하게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떠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한 번뿐인 인생에 우리가 정말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깨닫고 주님 주신 그 소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며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맡겨진 달란트가 무엇입니까? 정말 그 달란트를 가지고 세계 어느 곳에 가든지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헌신하는 삶을 여러분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있는 그곳에서 여러분의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가정에서 주님의 귀한 역사를 이루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믿는 자들에게 고난이 다가온 것은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주시는 축복의 과정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난은 변장된 축복입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고난을 당하든지 간에 이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큰 은혜와 축복을 체험하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놀라운 은혜가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떠한 고난이 다가오고 문제가 다가오고 어려움이 다가와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주님만 믿고 의지하겠다는 고백을 할수 있는 큰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조용기목사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편 42편 5절)

오늘날 세상이 매우 혼란스럽고 어수선합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마음을 잘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방향을 잃으면 마귀가 틈을 타서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도 마음의 중심을 잃고 방황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는 갈멜산에서 수백 명의 바알 선지자들을 심판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3년 6개월 동안 멈추었던 비를 내리게 했던 위대한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런 사람도 이세벨의 협박을 받고 두려움에 사로잡히자 즉시 광야로 도망가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두려움과 절망은 누구에게든지 다가올 수 있는 것입니다. 위대한 종 엘리야에게도 다가올 수 있고 여러분에게도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자기의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오늘 읽은 성경을 보면, 시편 기자는 마음이 낙심되고 불안할 때,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말합니다. 시편 42편 5절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둘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셔서 모든 두려움과 낙심과 불안을 우리가 넉넉히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모셔라

첫째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하나님을 그 마음에 주인으로 모시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영혼의 삶에도 시련이 다가오고 세상 생활에도 어려움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사업상 어려움이 다가오고 대인관계의 어려움, 부부간의 어려움, 부모 자식 간의 어려움, 끊임없이 어려움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또, 육신이 병들고 허약해지고 고통스러운 일이 다가오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담과 하와의 자손인 이상은 이러한 고통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난 다음 가는 곳마다 가시넝쿨과 엉겅퀴가 나고 질병과 고통으로 괴로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힘으로는 세상의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내 마음에 주인으로 모시고 있으면 두려움과 염려, 근심, 불안을 넉넉히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1절로 2절에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라고 기록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다보면 여러 가지 광풍을 만나게 됩니다. 정치적인 광풍, 경제적인 광풍, 또 오늘날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전염병과 같은 광풍이 불어올 때, 우리는 하나님을 마음에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으로 광풍을 막아주는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바라보며 그런 기적이 일어날 것을 마음에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그것을 입술로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면 정말로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 시편 91편 3절로 6절은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마음에 주인으로 모시면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밤에 퍼지는 전염병도 우리를 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즘같이 어려운 때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은 우리에게 굉장한 위로와 도움과 힘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베푸신 은혜를 깨달아 알면 우리는 어떠한 형편에서도 위로와 힘을 얻고 희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우리의 죄와 불의, 질병과 저주와 죽음을 죄 없으신 예수께서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다 청산하셨습니다. 이제 죄에서 자유를 얻고 허물에서 해방을 얻고 질병에서 고침을 얻고 저주에서 벗어나 축복을 얻고 죽음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하나님의 사랑과 도우심을 믿고 담대하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건히 서라

둘째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하는데 하나님은 눈에 안 보이고 그러나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은 말씀과 일치가 되어 있기 때문에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속에 말씀을 간직하고 그 말씀으로 환경을 대항해야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에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유혹이 오면 말씀으로 죄의 유혹을 대적해야 되고 병이 오면 병을 대적해야 되고 귀신이 오면 귀신을 대적해야 되고 사업상 어려움이 오면 말씀위에 서서 기도하고 믿음으로 대적해야 되고 죽음의 세력까지 대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 말씀을 많이 마음속에 외워 놓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저는 매일같이 잠들기 전에 시편 23편을 외우고 아침에 깨어나면 제일 먼저 시편 23편을 외웁니다. 말씀을 외우고 믿으면 성령께서 마음속에 역사하는 것입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 23편) 이 말씀을 하고 나면 “나는 부족함이 없다.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른다.” 이 말씀 속에 있는 놀라운 힘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아 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 말씀을 외워 놓으면 ‘내가 어떻게 살까?’ 걱정과 염려와 두려움이 다가올 때, 성경에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한다”고 말했으니 반드시 잘될 것을 생각하고 잘될 것을 꿈꾸고 잘될 것을 믿고 잘될 것을 강하게 선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혹은 마음에 고통스럽고 육신이 병들었을 때는 베드로전서 2장 24절 말씀을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이 말씀 위에 굳게 서서 나음을 받은 것을 생각하고 나음을 받은 것을 내 모습을 사진처럼 바라보고 믿고 그리고 강하게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는 나았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려도 나는 나았다.” 그렇게 믿음으로 선포하면 믿음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 마음에 두려움이 다가올 때는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이 얼마나 좋습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여러분, 이 말씀이 여러분 마음속에 들어오면 용기와 힘이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아무도 의지할 수가 없어 온 천지가 다 캄캄하고 외로울 때도 하나님의 말씀이 광명한 빛과 같이 마음에 들어와서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같이 한다.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된다. 내가 너를 굳세게 할 것이다. 참으로 너를 도와준다. 참으로 나의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어 준다.” 이런 말씀을 하시니 얼마나 큰 위로가 됩니까?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모든 어려움과 두려움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 말씀인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나타나시고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이 찾아오시고 말씀을 통하여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말씀을 많이 외우고 그 말씀 속에 살아가십시오. 어떤 일이 있어도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십시오.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확실히 모시면 모든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게 될 것입니다.


3. 기도로 나아가라

셋째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어려움을 당할 때,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해야 그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여 주시겠습니까? 우리는 마음에 확신과 평안이 올 때까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홍해가 내 앞을 가로막을지라도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홍해가 갈라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전에 독일 프랑크푸르트순복음교회 성도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분은 한국 사람이 아닌 독일 사람인데 루게릭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왜 독일 사람이 말도 안 통하는 한인교회를 다니냐?”고 물어볼 때마다, 이분이 대답하기를 “통역 없이는 알아들 수 없지만 이 교회는 성령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다. 아픈 몸을 이끌고 가서 예배를 드리면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분의 간증이 감동스러운 것은 이분은 루게릭병 때문에 잘 움직이지 못하지만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고 있다.”고 간증한 것입니다.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건강한 자녀들을 출산하게 해 주시고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돕는 자를 보내셔서 자녀들을 키울 수 있게 해 주시고 기도하니까 불신자인 친정아버지가 예수님을 믿고 이분의 가정에 새 집까지 마련해 준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몸이 불편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기도하면 주님께서 모든 것을 해 주신다고 간증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말씀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너무나 큰 힘이 되었다고 저에게 감사를 전해왔습니다. 여러분, 기도는 이와 같이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몸이 연약해서 움직이기 힘든 사람도 기도를 통해서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중국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도 건강이 좋지 않아서 병상에 있을 때, 하나님께 기도만 했는데, 자기가 건강할 때도 하지 못한 일까지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주셨다고 간증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은 연약해서 할 수 없는 일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을 당했을 때, 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십시오. 사람들은 대개 곧 시련을 당할 때, “다 끝났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다 끝났다”가 아니라 “아직 늦지 않았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아직 기도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는 언제나 우리에게 “아직 늦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문제를 해결하시고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몇 번이고 기도하다가 포기하고 마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도는 영적인 전쟁입니다. 전쟁이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아요. 싱겁게 시작해서 싱겁게 끝나는 전쟁은 없습니다. 생사를 걸어놓고 하는 투쟁이 바로 전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막고 있는 마귀와 악령들과 한판 싸움을 하는 것이 우리의 기도인 것입니다. 그 때문에 기도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엘리야는 기도로 비를 내리게 했던 이스라엘의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그가 한 번 기도해서 비가 내린 것이 아닙니다. 엘리야는 한 번 기도해서 응답이 없자 두 번 기도했습니다. 두 번 기도해도 응답이 없자 세 번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일곱 번을 간절히 기도했을 때에야 멀리서 손바닥만한 구름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제목 기도를 할 때면 새벽에 그 제목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점심이 되면 또 그 제목을 놓고 기도하고 잠자리에 들어가기 전에도 그 제목을 놓고 기도합니다. 이와 같이 간절한 마음으로 끝까지 기도할 때,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마음에 간절한 소원을 가졌으면 마음속에 평안이 다가올 때까지 끝까지 부르짖어야 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7장을 보면 여호수아가 군대를 이끌고 나가서 아말렉과 싸워서 크게 이겼는데 성경을 보면 그 승리는 모세의 끈질긴 기도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출애굽기 17장 10절로 12절에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라고 기록합니다.

전쟁에 이기느냐 지느냐가 그 전쟁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전쟁의 배후에서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는 기도가 승패를 결정지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모세가 중간에 기도를 포기했더라면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기도했기 때문에 마침내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모든 일에 있어서 기도로 싸워야 합니다. 요사이 전국 교회가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때, 모세와 아론과 훌이 전쟁에서 싸우는 여호수아와 백성들을 위해 기도한 것처럼 오늘날 우리의 종과 재직들은 성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하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권세를 주시고 힘을 주셔서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나가 원수와 마귀와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입니다.

또, 성도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매일 아침 주님께 나아와서 부르짖으면 그날 전쟁터에 나가서 생존경쟁의 투쟁을 할 때,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서 승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승패는 인간의 능력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문을 열어 놓으시면 닫을 자가 없고 주님께서 문을 닫아 놓으시면 열 자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높이시면 낮출 자가 없고 주님께서 낮추시면 높일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면 상상을 초월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여러분의 삶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는 개인, 기도하는 가정, 기도하는 나라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위대한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부터 마음을 가다듬어 열심히 뜨겁게 쉬지 않고 기도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지금 전염병이 온 세계를 휩싸더라도 여기에 사람이 이기지 못하는 것은 기도로써 이길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도와서 기도해서 내일, 모레, 글피 얼마 안 가서 이 병을 다 정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우리는 기도해야 됩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모두 다 아픈 곳에 손을 얹으십시오. 어려운 문제가 생긴 사람도 가슴에 손을 얹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들어주십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만세 전에 낳으시고 기르신 당신의 아들, 딸들이 주님 앞에 나와서 오늘 있는 자리에서 아픈데 손을 얹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하늘을 짓고 땅을 짓고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 무슨 능력이 없겠습니까?

하나님이 하나님께 의지해 나오는 당신의 자식들을 한 사람, 두 사람 다 안수해 고쳐주옵소서. 오늘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사람은 고침을 받을지어다! 모든 원수 마귀는 떠나가라! 모든 문제는 해결될지어다!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축복이 일어납니다. 역사가 일어납니다.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니 다 의로운 일에서 용기를 얻고 힘을 얻을 수 있음을 감사드리옵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나의 하나님이여/이영훈목사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시 22:1~3)


귀한 은혜의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서 본 교회에 나와 예배를 못 드리고 온라인으로 함께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함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어려움을 당할 때 오늘 성가대의 찬양처럼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왜 우리에게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가? 왜 신천지라고 하는 이단이 이렇게 온 한국 사회를 충격 속에 몰아넣는 그러한 집단이 되었는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교회가 영적 지도력을 상실했을 때에 교회 역사를 보면 이단들이 흥왕했습니다. 우리나라가 해방 이후 6.25 전쟁을 치르면서 온갖 사이비 이단들이 들끓었었고 흥왕했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70년대, 80년대 부흥을 이루었을 때 이단들이 자취를 감추는 것 같았는데 우리가 알게 모르게 풍요로움 속에 우리의 신앙의 열정을 잃어버리고 형식주의, 습관주의, 율법주의적인 신앙의 모습 속에 갇혔을 때 이단들이 우후죽순처럼 뿌리를 내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이런 일을 당할 때 먼저 우리 한국 기독교 1천만 모두가 먼저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우리의 신앙을 회복하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열심히 기도하지 못한 것, 열심히 예배드리지 못한 것, 주의 사랑을 실천하지 못한 것, 주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교회가 분열하고 다투고 나누어진 것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회개해서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 한국교회가 대화합과 통합을 이루어 한국의 모든 문제를 짊어지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교회의 모습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편 가르기로 나누어진 한국사회를 치료하고 하나 됨을 만들고 북녘땅에 복음이 증거되어 평화통일의 물꼬를 트고 그래서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가 더 밝아지도록 우리 모두가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함께 기도할 때 코로나-19가 속히 종식되게 하여 주시고 신천지 사이비 이단의 모습들이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추게 하여 주옵시고 4.15 총선 때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의를 행하며 겸손히 우리 국민들을 섬길 수 있는 바른 지도자들이 세워지게 하여 주옵소서. 무엇보다도 코로나-19를 종식시키기 위해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밤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하면서 헌신적으로 수고하고 있는 의료진들과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들에게 주님 함께하여 주옵소서. 우리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 412장 (통:469) :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코로나-19의 재앙이 속히 종식되게 하여 주옵소서. 지금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데 각 나라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코로나-19가 속히 소멸되게 하여 주옵소서.

수많은 확진자와 희생자를 낳고 있는 이란과 이탈리아에 특별히 긍휼함을 베풀어 주시고 온 유럽과 온 세계에 더 이상 이 전염병이 확산되지 않도록 주님 도와주옵소서. 모든 의료진들이 힘을 합해서 막아내게 하시고 또 속히 치료제가 개발되어 이 전염병에 감염된 자들이 병에서 놓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를 불쌍히 보시고 긍휼히 여겨 주셔서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 가운데 속히 다 마무리되도록 도우시고 은혜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은 시편 22편 1~3절의 말씀 가지고 “나의 하나님이여”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 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때때로 우리 삶에 너무나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운 순간이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고 점점 더 문제는 복잡해지고 내 자신이 고통 가운데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날마다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하루 하루를 지낼 때, 때로 마음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믿음이 약해져서 혹시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않으셨나. 내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오늘 시편 22편은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이 같은 절망적인 상황을 맞아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한 기도의 내용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1. 절망적 현실

첫째로 다윗은 절망적인 현실에서 이렇게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시편 22편 1절~2절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윗은 극한의 절망 가운데서 주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다윗은 아무리 자기 자신을 살펴보아도 하나님 앞에 크게 잘못한 것이 없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고난은 그치지 않고 계속 어려움이 다가오니까 이렇게 부르짖어 기도한 것입니다.

그가 골리앗이라고 하는 장수를 무너뜨리고 난 다음 민족의 영웅이 되었는데 사울 왕의 시기 질투로 말미암아 왕이 자기를 죽이려 하므로 그때로부터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집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는 것이 얼마나 고달픈지 모릅니다. 그런데 더군다나 도망자의 신세로 그를 쫓아오는 군대를 피해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녀야 하니 그 마음에 두려움과 염려, 근심, 걱정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어느 곳도 편안한 곳이 없습니다. 어디 가서 조금 몇 일 거하려고 하면 또 밀고를 해서 군대가 쫓아오고 또 군대가 쫓아오고 또 군대가 쫓아오고.

그래서 이 절망 가운데 그는 하나님 앞에 이렇게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죄 없는 나를 이 같은 고난에 처하게 하시고 하룻밤도 편안할 날 없이 이렇게 쫓겨다니는 도망자의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 앞에 질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왔는데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고 가만히 지켜만 보고 계십니까? 나를 왜 이렇게 절망의 자리에 내동댕이 쳐놓고 돌보지 않으십니까?” 그는 울부짖어 기도한 것입니다.

다윗은 구원의 능력이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내가 왜 무엇 때문에 이러한 고난을, 이러한 어려움을 이렇게 오랫동안 당하고 있어야 합니까? 아무리 내 자신을 살펴보아도 내가 뭐 크게 잘못한 것을 내가 모르겠는데 왜 내가 대적에게 쫓겨서 이렇게 도망다녀야 합니까?”

때때로 우리도 이렇게 절규를 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 천국 가신 한국의 c.c.c. 대학생 선교회를 창설하신 김준곤 목사님께서 큰딸의 죽음에 대한 책을 내신 것이 있습니다. 『딸의 죽음, 그 존재의 제로점에서』라고 하는 책입니다.

오래전에 제가 이 책을 손에 들고 선교여행을 가면서 비행기에서 책을 읽다가 얼마나 울었는지 스튜어디스가 지나가면서 무슨 일 있나 자꾸 쳐다봤던 그런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큰딸 신희가 믿음 좋은 남편을 만나 결혼해서 딸 둘을 낳았습니다. 삶이 기쁨이 충만하고 행복이 넘쳐나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몸이 불편해서 병원에 가보니 위암 말기입니다. 이미 암이 온몸에 퍼져서 수술을 해도 살아날 가능성이 100만 분의 1도 안 된다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도 수술을 했습니다. 왜 의사 선생님이 수술을 그때 했는지. 수술을 하면서 위를 다 잘라내고 비장 전부를 잘라내고 이 췌장, 간장의 일부를 또 잘라내고 소장의 일부를 잘라내서 대용 위를 만드는 대수술을 했습니다.

그때로부터 온몸에 호스를 꼽고 대소변도 옆에서 받아내야 하는 그런 시체와 같은 모습으로 병상에 누워서 167일 동안 죽음의 고통과 싸웁니다. 몸무게가 26kg까지 내려갑니다. 1982년 4월 6일 29세를 일기로 어린 세 살, 다섯 살의 두 딸을 남겨 놓고 천국에 가게 됩니다.

이 167일 동안 온 가족이 정말로 하나님 앞에 다윗과 똑같은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무엇 하나 흠이 없고 정말 주님 뜻대로 살기를 원했던 이 딸이 왜 죽어야 합니까? 왜 이런 고통 속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까? 내가 주님을 신실하게 섬긴 주의 종인데, 목사 가정에 그것도 제일 사랑하는 큰딸이 이런 고난을 당해야 됩니까?” 그 고난 중에 이와 같은 기도를 드린 내용이 나옵니다.

“주여, 기도할 힘도 없고 믿음도 심지가 꺼져갑니다. 감사와 찬송을 악마가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살 힘도, 죽을 힘도 없습니다. 병과 싸우고 고통을 참을 힘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 시련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대신 책임져 주십시오. 물속에서 건지듯이 불 속에서 건지듯이 당신이 성령으로 내 대신 기도해주시고, 믿게도 해주시고, 감사도 찬송도 주십시오. 나는 이미 죽었고 내게 사는 것은 오직 주님뿐이며 당신의 죽음으로 죽음을 죽였사오니 나와 죽음과 상관없게 하소서. 신희의 전폭을 대신해 주십시오. 사는 것도 주님이고, 죽는 것도 주님입니다. 이 싸움은 당신의 싸움입니다. 이 죽음은 당신의 죽음입니다.”

온 가족이 피를 토하는 기도를 드리며 딸의 죽음의 고통을 함께 했습니다. 기적적으로 벌떡 일어나서 살았으면 참 좋았겠지만 29살 젊은 나이로 천국에 갔습니다. 그러나 온 가족이 이 말 할 수 없는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가면서 믿음으로 하나 되고 기도로 하나 되고 신앙이 승화되어서 죽음까지도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변화되었습니다.

이 책 뒤에 가면 딸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김준곤 목사님이 주님 앞에 찬양 드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가장 절망의 밑바닥에서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다시 믿음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을 보고 절망에서 무너지면 안 됩니다. 어떤 어려움이 다가와도 어떤 고통과 슬픔, 괴로움이 다가와도 그 고통의 기간이 아무리 길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끝까지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음을 지키고 주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시편 22편 2절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우리 기도를 다 듣고 계십니다. 우리가 느끼기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끼지만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기도를 다 들으시고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주님의 뜻을 펼쳐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영의 눈이 어둡고 영의 귀가 어두워서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주님의 은혜의 모습을 보지 못해서 그렇지, 고난에 대해서 참고 견디고 나아가면 반드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좋은 일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2. 찬송 중에 계시는 주

다윗은 이렇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가장 절망의 밑바닥까지 내려간 다음, 거기서 주님을 바라보고 다시 일어납니다. 그리고 위대한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우리는 이 절망의 자리에서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다윗의 고백을 봅니다. 22편 3절입니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할렐루야!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하셔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언제나 가장 절망적인 그 자리에 주님이 오셔서 그를 건져주시고 그 놀라운 은혜를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 앞에 감사와 찬양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 이스라엘 백성의 감사와 찬양의 고백을 기억하며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히고 뒤에는 이스라엘을 쫓는 바로의 군대가 쫓아왔을 때,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지나갑니다. 쫓아오는 군대는 그 홍해를 합치심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다 홍해에서 죽게 됩니다. 그때 저들이 주 앞에 찬양의 제사를 드립니다. 출애굽기 15장 2절입니다.

야훼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위대하신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문제의 해결자가 되시는 하나님, 언제나 이스라엘 백성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신 구원의 하나님은 찬양 중에 거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드린 감사와 찬양을 기뻐 받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 가운데 거하십니다. 우리의 감사 가운데 거하십니다. 주는 홀로 거룩하시고 위대하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신데 우리가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리면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생이 감사와 찬양의 일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아무리 고통스럽고 괴로워도 여러분의 입술에서 찬양과 감사가 그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기자는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105편 1절에

야훼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고난의 때에 고난의 풍랑을 바라보지 말고, 풍랑 위를 걸어오시는 우리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문제의 해결자가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의 많은 크리스천이 로마 원형경기장에서 죽어가면서, 사자에게 물어 뜯겨 죽어가면서, 불에 태워 죽임을 당하면서,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면서 찬양을 불렀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찬양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 앞에 두려워 떨고 살려달라고 울부짖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천국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가장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순간에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감사하고 찬양하고 영광을 돌렸던 것입니다. 어떤 고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를 갈라놓지 못했습니다. 찬양과 감사가 우리의 관계를 하나 되게 만들었습니다. 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로 우리를 이끌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와 고난과 어려움을 당해도, 감사와 찬양을 그치지 않게 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건지시는 하나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면 주님은 우리를 모든 장막에서 건져주십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찬송 중에 계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나서, 구원의 은혜에 대하여 이와 같이 고백을 합니다. 22편 4절 5절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절망에서 건져 주시는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고비 고비마다 어려움을 당할 때, 문제를 만났을 때 저들을 건져 주셨습니다. 적군의 손에서 저들을 건져 주시고, 저들을 고통과 절망에서 자유케 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범죄 했을 때 하나님이 이방 민족을 통해 그들을 치게 하셨습니다. 그때 저들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통회 자복하고, 주님의 긍휼하심을 간절히 간구할 때, 저들을 대적에서 건져 주시고 대적을 물리치고 승리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시편 23편 4절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렇게 고백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택하신 백성을 끝까지 돌보십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까웠던 사람이라도 자기에게 불이익이 다가오면 관계를 끊습니다. 심지어 어떤 못난 사람은 자기가 그렇게 평생에 따르고 그저 주인 말이라고 하면 무엇이든지 그냥 다 좋아서 주인만 믿고 따르는 충성된 반려견도 병이 들면 내다 버립니다. 그런데 그 반려견은 너 여기 가만히 있어 하니까 그냥 그 자리에 기다리고 있는 거에요.

얼마 전 해외토픽에 나온 뉴스를 들어보니깐 추운 저 구 소련 지역인데, 반려견을 놓고 가버린 후에 눈이 오니까 이 강아지가 얼어 죽었더라구요. 끝까지 주인이 오기만을 기다렸다가 얼어 죽었더라구요. 이것이 사람의 참 죄 성입니다. 악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배신하고, 사람을 배신하고, 나를 따르는 짐승을 사랑하는 충견들을 버릴 수 있어도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 끝까지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2편 5절에 이와 같은 고백이 나옵니다.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너무나 힘들고 어려워서 눈물 흘리며 부르짖을 때 주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절망에서 건져 주십니다. 22편 4절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어려울 때 우리에게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지만 하나님을 오히려 그러할 때 더 가까이 오셔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그 사랑으로 돌보시고, 우리를 그 품에 안아주시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놀라운 은혜를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찬양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22편 22절입니다.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우리가 어떠한 절망의 자리에 떨어졌다고 할지라도 주님을 꼭 붙잡고 있으면 우리를 반드시 그 자리에서 일으켜 주시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사우스센트럴 지역의 가난한 흑인 동네에서 태어나서 이혼한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고 힘든 생활을 했다가 마약 딜러까지 되었다가 미국이 알아주는 요리사가 된 제프 핸더슨이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도둑질을 일삼다가 열네 살 때 퇴학을 당하고 거리를 떠돌아다닙니다. 그래서 마약 세계에 발을 디뎌놓습니다. 20살 때쯤 마약을 직접 만들어서 팔기 시작했습니다.

한때 마약을 작업할 때는 일주일에 35,000달러 마약을 팔기도 했던 잘 나가는 마약 딜러였습니다. 그 옛날 24살에 마약 밀매로 경찰에 붙잡혀서 19년 7개월 형을 받고 감옥에 들어갑니다. 한 20년을 감옥에 들어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의 인생이 끝났다고 했을 때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습니다. 감옥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에게 전하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 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때로부터 그는 교도소의 삶에서 절망이 아니었습니다. 희망을 향해 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재소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교도소 주방에서 설거지하는 일을 배정받았는데 기쁨으로 그 일을 감당했습니다. 기록을 보면 하루 8시간을 1,500명분의 그릇을 다 손이 퉁퉁 부을 정도로 설거지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렇게 등 너머서 요리하는 것을 보고 배우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그가 열심히 그릇을 잘 닦았던지 모범수가 되어서 10년 만에 1996년 출소하게 되었고 그가 교도소에서 갈고닦은 솜씨로 접시닦이부터 시작해서 호텔의 요리사의 경력을 쌓으면서 2001년도에는 미국에서 테스티 협회 음식 평가하는 협회에서 최고 요리사 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흑인이며 전과자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라스베가스에 있는 세계적인 벨라지오 호텔의 최초로 흑인 총주방장이 됩니다.

그리고 2007년도에 『나는 희망이다』라는 책을 출간했고 그는 굿모닝 아메리카 등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그의 지나간 얘기를 간증했습니다. 지금은 학교, 교도소를 다니면서 과거에 자기처럼 가난과 절망 속에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와 같이 한 인터뷰에서 고백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감옥에 갇힌 것도 나를 현재의 삶으로 이끄신 하나님 계획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제가 지금까지(인터뷰 당시 44살)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인종이나 지역 공동체의 차별 없이 모든 사람들을 건지시고 격려하시고 힘주시고 일으켜 세워주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기에 제가 성공할 수 있었다고 확신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빈민촌에서 자랐던 그를, 학교를 퇴학당하고 도둑질하던 그를, 마약 딜러를 하던 그를, 감옥에도 들어갔던 그를 부르시고 변화시켜주셔서 이와 같이 모두가 부러워하는 세계 최고 호텔에서 주방장으로 귀한 일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어떤 고난의 밤을 지나고 있습니까? 너무 고난의 밤이 길어서 내게 있는 고난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그런 절망에 처한 분이 있습니까? 그런 절망 가운데 낙심하지 마십시오.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나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새 힘을 얻으십시오.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놀라운 은혜와 축복으로 여러분에게 넘치게 채워 주실 것입니다.

밤이 깊으면 반드시 새벽은 밝아 오는 것입니다. 그 밤이 너무나 길다고 느껴지면 그만큼 새벽이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고난의 밤을 지나면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복 받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 복덩어리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가 절망의 터널을 지납니다. 고난의 과정을 지납니다. 위대한 성군 다윗도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와 같은 절규를 하나님 앞에 했던 어려운 시절이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의 시간을 지나도 변함없으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위대한 하나님을 의지하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도록 주님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조용기목사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에게서로다 야훼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야훼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야훼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야훼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야훼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 121:1-8)


누구든지 고난을 당하면 도움을 청하게 됩니다.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남에게 도움을 청할 필요가 없는데 자기 힘이 미치지 못하는 어려움이 닥쳐오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문제를 해결할 때도 있지만 사람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많은 것입니다.

오늘날도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전 세계가 두려움 속에 빠져 있는데 인간의 힘으로는 치료할 방법조차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은 비록 짧지만 일생 동안 수없이 많은 환난을 경험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신적인 환난일 수도 있고 육체적인 질병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정적인 환난이 될 수도 있고 국가적인 환난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당할 때, 궁극적인 도움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도우시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에게서로다”(시 121:2)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천지를 지으신 야훼께서 우리의 도움이 되실 수 있을까요?



1. 전능하신 하나님

첫째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어려울 때 부모님이 도움이 되면 참 좋지 않아요?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고 자녀에게 무엇이든지 주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부모도 자녀를 도와줄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아무리 그 자녀를 사랑해도 부모는 전지전능하지 않기 때문에 도움을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도움을 기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기도하고 부르짖으면 우리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를 얼마든지 도와주실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기 때문에 없는 것도 있게 만들 수가 있고 있는 것도 없게 만들 수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 혼, 육을 지으셨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세부 문제를 다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인간의 모든 문제를 도우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보존하고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야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야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시 127:1)라고 말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보존해 주시고 다스려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이 큰소리치지만 실제 하나님이 역사하지 아니하시면 벌레 한 마리도 생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 만물을 보존하고 계신 것처럼 여러분을 지으신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존해 주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시고 보존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 가운데 필요하면 놀라운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430년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나왔을 때, 홍해가 앞을 가로막자 모세가 기도하매 하나님이 홍해를 갈라놓은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수백 만 명이 먹으면서 얼마나 많은 양식이 필요합니까?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만나를 비 같이 내려 주시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고 살았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면 요사이 우리에게는 왜 그런 기적이 없습니까?” 그렇게 묻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기적이 있어날 것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계셔도 우리가 안 믿는 것이면 기적이 안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실 것을 믿으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서 볼 때, 기적을 빼놓고는 우리가 예수님의 사역을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예수님께서는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위기를 기쁨으로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위기를 만났을 때, 우리를 위해 기적을 베푸시고 위기를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바다의 풍랑을 말씀 한마디로 잔잔케 하셨습니다. 폭풍이 일어나서 거대한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고 배가 침몰할 위기에 처했을 때, 주님께서 “고요하라. 잠잠하라!”고 명령하시자, 그 말씀 한마디에 풍랑이 순식간에 잠잠해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삶에 풍랑이 몰아칠 때, 예수님이 “잠잠하라!” 말씀하시면, 순식간에 풍랑이 그치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그러므로 오늘날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기적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2. 사랑이신 하나님

둘째로,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면 자꾸 도와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에게 도움을 주고 또 주고 또 줍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도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 대답이 성경에 나오는데 요한일서 4장 9절로 10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증거는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제물로 내놓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전혀 모를 때,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영혼을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 자녀로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지금 여러분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리게 하셨는데 하나님이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셨기에 그렇게 하셨을까요?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여러분에게 대속 제물로 주신 예수님은 엄청난 사랑을 베푸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기꺼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9~11)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의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실히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기 위하여

그러면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안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14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이름을 알고 높이는 자를 주님께서 돕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잖아요. 예수님 이름을 모르잖아요. 그러니 건지거나 높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주님을 사랑하고 그 이름을 알고 주님께서 그를 고난에서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 우리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 한 분은 열심히 교회에서 봉사하면서 신앙생활을 잘 하던 분인데 어느 날 갑자기 췌장암에 걸린 것입니다. 췌장암 2기에 암세포가 간으로 전이되어 간암 2기가 되고 의학적으로는 췌장암 4기 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수술도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항암치료를 시작했는데 항암치료도 효과가 없고 오히려 간의 상태가 더 악화되고 말았습니다.

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하자 이분이 유언장을 쓰고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항암약물 치료법으로 2차 치료를 다시 시작했는데 부작용으로 머리카락과 눈썹이 빠지고 수시로 코피가 나고 얼굴과 온몸에 종기가 돋고 구토와 메스꺼움으로 밥을 먹을 수 없어서 몸무게가 10킬로 이상 빠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성도님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산리기도원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원에서 내려와서 축복성회에 참석했는데 그때 제게 와서 안수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제가 설교 후에 “췌장암과 간암이 치료받았다!”는 선포를 했는데 이 성도님이 12일 후에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 보니까 간에 퍼져있던 암세포가 깨끗이 사라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얼마 후에는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셔서 췌장의 암세포도 다 없애주신 것입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로 13절에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구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만나시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끝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끝까지 하나님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조금 믿다가 말면 안돼요. 하나님께서는 믿자마자 응답해 주실 수도 있지만 우리가 믿고 난 다음 오래 기다리게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아들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1년을 기다리고 10년을 기다리고 20년을 기다려도 응답이 없다가 25년을 기다려서 100살이 되었을 때, 아들을 얻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끝까지 믿고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시키신 대로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고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천막 안에서 엎드려 가지고서 “주여, 아들 주옵소서. 아들 주옵소서.” 하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천막 밖으로 나오라. 그리고 하늘을 쳐다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천막에서 나와서 하늘을 쳐다보니까 별이 얼마나 많은지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저 별과 같이 많을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별을 바라보라고 하신 것은 엎드려서 기도만 하지 말고, 하늘의 별처럼 많은 후손을 바라보고 응답 받은 꿈을 마음속에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25년 동안 마음속에 자녀가 하늘의 별같이 많은 것을 꿈꾸면서 기도했고 그 결과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저는 한평생을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천막을 치고 가마니를 깔고 빈손 들고 있을 때도 눈만 감으면 마음속에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여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 축복을 받는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것을 바라보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정말로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셔해서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고 살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우리 마음속에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마음속에 응답받은 모습을 꿈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여러분의 죄를 담당하셨으므로 죄에서 씻음 받은 여러분 자신을 마음속에 그려 놓으십시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여러분의 모든 허물을 청산하시고 성령을 주셨으므로 술 취하고 방탕하는 모든 것에서 해방되어서 거룩하고 성령충만한 사람이 된 여러분 자신을 바라보십시오. 병이 고침을 받아서 건강하게 사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십시오. 병 낫기 위해 “병을 고쳐 주옵소서. 병을 고쳐 주옵소서.” 그렇게 기도하면 주님께서 “알았다. 이제는 병 나은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라. 꿈을 가져라. 그러면 내가 역사하마.”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 못사는 것만 바라보지 말고 잘사는 모습을 그려 보십시오. 그리고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보좌에 앉아서 영광을 누리는 모습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 마음속에 꿈을 분명히 품고 그 꿈을 바라보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2절로 3절에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라고 말합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주신 붓입니다. 이 약속의 붓으로 여러분 마음에 그림을 그리십시오. 나를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을 그리십시오. 나의 피난처요 요새가 되시는 하나님을 그리십시오. 그 하나님께서 내가 환난 당할 때 함께 계시는 것을 그리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 기도로써 그림을 그려서 분명히 가지고 있으면 그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한 번 해보십시오. 진짜입니다. 저는 경험하지 않은 말은 하지 않습니다. 실제 나는 체험했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체험해보니 진짜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한 청년이 행정고시에 수석으로 합격했는데 그 비결이 바로 바라봄의 법칙이었다고 간증하면서 저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매주 저의 설교를 들으면서 4차원의 영성과 바라봄의 법칙을 공부할 때 적용했던 것입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행정고시에 합격하는 상상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부정적인 말은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수석합격을 하게 되었고 ‘아, 이것이 진짜였구나.’ 다시 한 번 깊이 깨닫게 되었다고 간증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가슴속에 꿈을 품고 꿈이 이루어진 것을 바라보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신다는 말이 여섯 번이나 나옵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죽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우리를 지키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121편 3절로 4절에 “야훼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철저하게 지켜 주시는가? 다윗이 고백하기를, 하나님께서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신다”(시 17:8)고 말한 것입니다. 신명기 32장 10절에도 “야훼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고 말씀합니다.

눈은 매우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위험이 닥치면 나도 모르게 눈을 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로 그 눈동자처럼 지키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형편에 처해도 하나님을 믿고 평안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평안할 때는 몰라도 인생의 풍랑을 만나게 되면 나에게 의지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시고 지켜주시고 인생의 짐을 함께 져주신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요 축복인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므로 우리에게는 언제나 든든한 뒷배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뒷배로 삼으면 형언할 수 없이 위대한 은총이 우리의 삶에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병의 늪에 빠졌으면 병을 털고 일어나십시오. 고통과 괴로움과 낭패와 실망과 좌절에 넘어졌으면 믿음으로 일어나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돕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 하늘과 온 세계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또 그 아들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돕겠다고 하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절망에서 다시 일어서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간부터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고 여러분을 돌보시고 여러분을 이끌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섬기며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고 기도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 도>

하나님 아버지여, 몸이 아파서 오신 당신의 자녀들을 고쳐 주시옵소서. 원수 귀신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에게 명하노니 우리 성도들을 떠나라! 떠나라! 떠나라! 예수 이름으로 고침을 받을찌어다!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가 성취한 대속을 통해서 오늘 모든 성도들을 고쳐 주시옵소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오니 간구한대로 이뤄주옵소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치료함을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돌보시는 하나님/이영훈목사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편 23편 4절)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우리가 기도할 때입니다. 우리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코로나-19 전염병으로 인하여 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셔서 속히 코로나-19의 재앙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또 한국 사회에 독버섯처럼 뿌리 내린 신천지 이단이 이번에 완전히 해체되어서 저들이 가정으로 교회로 돌아가게 하여 주시고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주님 이 시간 역사하여 주옵소서.

여러분이 예배드리는 그 처소에서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 412장 (통:469) :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주님 긍휼히 보셔서 속히 이 재앙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시고 정상적인 신앙생활,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주님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이 고난의 계기를 통하여 우리가 어디서 떨어졌는가 우리의 신앙을 살펴보고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여 주시고 다시 성령으로 재충만을 받아 모든 교회마다 제2의 영적 부흥이 다가오게 하여 주옵소서.

코로나-19 퇴치를 위하여 수고하는 모든 의료진과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들에게 복 내려 주시고 특별히 이번 기회에 사회를 혼란 속에 빠뜨린 그리고 많은 젊은이들의 삶에 혼돈을 가져다 준 신천지 사이비 이단 집단이 해체되고 뿌리 뽑히게 하여 주시고, 거기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고 교회로 돌아가 정상적인 사회활동,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주님 은혜 내려 주옵소서.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시편 23편 4절의 말씀 가지고 "돌보시는 하나님"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 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돌보시는 하나님" "돌보시는 하나님"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던 다윗이 그의 한평생을 회고하면서 지은 시편이 시편 23편입니다. 그는 23편 1절에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주님이 목자가 되어 주셨기 때문에 그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부족함이 없다고 그는 고백한 것입니다. 물론 여러 가지 부족한 점도 있었고 문제도 있었고 어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문제와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이 목자가 되셨기 때문에 그 하나만으로 내게는 그 어떤 것도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고백한 것입니다. 그의 일생의 어려웠던 순간을 회고하면서 그는 이와 같이 말합니다. 23편 4절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난 후에도 예기치 않은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우연은 없습니다. 고난에도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우리 좋으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반드시 선을 이루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1. 우리가 만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먼저 우리가 만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23편 4절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다윗은 고백합니다. 팔레스타인 땅에는 가파른 골짜기들이 곳곳에 놓여있습니다. 눈이 어두운 양들이 목자의 곁을 떠나 잠시 길을 잃고 발을 헛디디기만 하면 이런 골짜기에 떨어져서 죽거나 크게 다치게 됩니다. 우리 인생의 여정에도 때때로 이와 같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갖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우리 앞에 놓여있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전 국민을 불안 속에 몰아넣은 코로나-19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모든 국민들의 마음에서 평안함을 빼앗아 가 버렸습니다. 이로 인해서 경제적인 한파가 불어닥쳐 음식점들은 문을 열어도 사람이 오지 않으니까 하루 종일 빈 가게를 지켜야 하고 공장은 올 스톱하고 무엇하나 제대로 활동할 수 없는 그러한 어려움에 우리가 처했습니다. 외교적으로는 고립이 되고. 이 같은 고난의 골짜기를 우리가 통과할 때 그 고통과 어려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윗이 시편 22편에 이와 같은 고백을 합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얼마나 그 고통이 심하고 그의 삶에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다가왔던지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울부짖어 주님 앞에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와 같은 고난이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낙심하거나 포기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으면 안 됩니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밝아 오는 것입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나면 따뜻한 봄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천둥 번개 치고 궂은 날이 있으면 밝고 환한 개인 날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한다고 할지라도 이 고난의 골짜기를 통과하고 나면 반드시 우리에게 광명의 내일이, 축복의 미래가 예비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은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면서 알게 모르게 우리 신앙이 자라고 강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나의 모습이 깨어지고 제대로 기도하지 아니하고 말씀 묵상하지 않던 내가 변화되어서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기도하고 말씀 묵상하며 주님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그러한 모습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난 다음 우리는 은혜의 아침을 맞게 될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갈 때 절대로 낙심하지 말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희망과 축복의 새벽이 밝아올 것입니다.

2. 두려움을 물리치고 주님과 동행하는 신앙

둘째로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두려움을 물리치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3편 4절에 이와 같이 위대한 신앙의 고백이 나옵니다.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가장 무서운 적은 내 마음에 찾아오는 두려움입니다. 공포입니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두려움과 공포를 주었는지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옆에서 누가 기침만 하면 의식적으로 그 사람을 피하게 되고 마스크를 안 쓰고 사람이 타면 "저 사람 예의도 없구먼." 하고 그를 한 번 더 쳐다보게 되는 이러한 어려운 현실에 우리가 처해 있습니다. 마음에 두려움이 있어서 그래요. 두려움.

큰 부자였던 욥이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칠남 삼녀 열 자녀를 다 잃고 부인과 가까웠던 친구가 다 등을 돌리고 몸의 건강마저 잃어버렸을 때 그는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욥기 3장 25절에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여러분, 마음을 지키시길 바랍니다. 환난이 다가올 때 두려움이 내 마음에 엄습해 오면 순식간에 두려움에 사로잡혀 내가 무너져내리는 것입니다. 큰 절망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도 되지 아니하고 말씀에 의지하는 그러한 나의 신앙의 모습도 잊어버리고 그냥 맥없이 주저앉아 버리는 그러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우리 주님이 함께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길 바랍니다. 주님이 그 절망의 자리에도 주님이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 이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하여서 모든 사람이 전염병의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냥 손을 놓고 일찍 집에 들어와서 하루 종일 TV 뉴스만 보고 있습니다. "어이구 벌써 6,000명 넘었네, 7,000명 넘었네, 이제 곧 10,000명 넘겠네. 거의 사망자가 40명이 넘었네." 두려움이 점점 더 깊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 극복하기 위해서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믿음으로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염려, 근심, 걱정, 두려움을 다 십자가 밑에 내려놓고 주님과 동행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우리가 사망의 깊은 골짜기를 지난다고 할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할렐루야.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찬송가 442장 후렴 부분에 보면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할렐루야. 주님이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우리를 주님께서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갈 때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먼저 십자가를 지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먼저 통과하신 주님을 바라볼 때 주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평안함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면 주님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고 우리의 요새가 되시고 우리의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가 고백합니다. 91편 2절입니다.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내가 주님과 동행하기만 하면 어떠한 음침한 사망의 골짜기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가슴을 펴고 그 골짜기를 통과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고 있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1장 10절의 말씀을 우리가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지금 어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고 있습니까? 어떤 폭풍우 치는 절망의 계곡을 지나가고 있습니까? 우리와 동행하고 우리의 일생을 함께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나의 일생을 책임지시고 인도해주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믿고 의지하고 그 손 붙잡고 나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약속의 말씀에 의지해서 흑암의 권세를 물리치고, 내게 다가온 두려움을 물리치고,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나와 모든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으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 영혼의 안식처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주는 안식처요, 성령충만의 은혜를 주는 안식처요, 마음의 기쁨과 평안을 주는 안식처요, 우리의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안식처요, 우리의 병을 치료해주는 안식처인 것입니다.

두려움이 엄습할 때 문제가 다가올 때 우리와 동행하시는 주님은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며 나아가면 반드시 우리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과 동행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과 동행하며 나아갈 때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괴로움이 변하여 즐거움이 되고 문제가 변하여 응답과 해결이 되고 원망과 불평이 변하여 감사가 되고 우리의 삶에 풍성한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믿는 그 날부터 천국 가는 그날까지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가장 깊은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 때 그 절망의 순간에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니 우리를 돌보고 계신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느끼지 못해도 주님이 한순간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아니하시고 나를 불꽃 같은 눈으로 지켜보시고 함께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미국에 미국 뉴욕 맨해튼을 비롯해서 세 군데 교회에서 약 6천여 명의 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리디머교회 팀 켈러 목사님의 책이 많이 소개되었습니다. 이 팀 켈러 목사님은 그의 저서 ''고통에 답하다''에서 이와 같이 말씀하였습니다.

"더없이 캄캄하고 메마른 시기를 지내며 하나님을 조금도 느낄 수 없을지라도, 그분은 여전히 거기에 계신다. 고난에 맞서는 기본 중의 기본이 여기에 있다. 욥처럼 하나님을 찾고 그분께 나아가야 한다. 풀무불을 나란히 통과해서 반대편으로 데려가 주실 분은 오직 참 하나님 한 분뿐이다."

주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입니다.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할렐루야!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문제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정면돌파 하십시오. 믿음으로 문제와 싸워 승리하시고 어려움을 물리치고 공포를 물리치고 질병을 물리치고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힘들고 어렵고 고통의 순간을 지나지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3. 주님만 의지하는 신앙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갈 때 우리가 세 번째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주님만 믿고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면 주님이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는데 23편 4절에 이와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스라엘에서 양치는 목자들은 지팡이와 막대기를 같이 가지고 다닙니다. 이 지팡이는 끝이 둥글어서 긴 지팡이인데 양들이 대열을 이탈해서 딴 길로 가려고 할 때 목은 탁 걸어 끌어당깁니다. 그래서 이 지팡이는 양들을 인도하는 지팡이요, 막대기는 끝이 쇠가 감겨있는 짧고 단단한 막대기인데 뱀이나 이리, 사자, 늑대 등이 오면 그것으로 쳐서 물리칩니다. 그래서 지팡이는 길잡이가 되는 것이고 막대기는 보호해주는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목동으로 양들을 돌보면서 양 떼를 탈취하려는 사나운 짐승들의 습격을 받았을 때 몽둥이로 쳐서 물리쳤고 양들이 길을 이탈하였을 때 지팡이로 목을 걸어서 끌어와서 그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길을 인도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사는 동안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오든지 간에 주님이 우리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되어주셔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윗이 그렇게 양 떼를 돌보면서 하나님이 그렇게 자신을 돌보실 것을 알고 적들에게 둘러싸여 고통스럽고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문제에 처했을 때 주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는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시편 27편 1절입니다.

야훼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야훼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28편 7절입니다.

야훼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할렐루야! 주님이 우리의 빛이 되시고 구원이 되시고 힘이 되시고 방패가 되십니다. 우리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오. 할렐루야. 지금 천국 갔습니다만, 빌리 그레함 목사님 선교단에 참여해서 함께 찬양 사역을 했던 한국인 시각 장애인 킴 윅스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6.25때 두 눈을 잃고 고아원에서 자라던 중에 미국에 입양되었고 인디애나 주립대학과 오스트리아에서 성악 수업을 받아서 훌륭한 성악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 주신 은혜에 너무 감사해서 내 남은 인생 주님 영광을 위하여 찬양하며 살리라. 그래서 빌리 그레함 전도단에 합류해서 찬양 사역을 담당하다가 1973년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함께 한국을 방문해서 찬양을 통해 많은 분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그가 찬양 콘서트를 가졌을 때 이와 같은 간증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시각장애인인 나를 인도할 때 보면, 저 100미터 전방에 뭐가 있다고 말해주지 않습니다. 앞에 물이 있으니 건너뛰라고 하고, 층계가 있으니 발을 올려놓으라고 합니다. 나를 인도하시는 그분을 믿고 한 걸음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어느새 나는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는 방식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10년 후, 20년 후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늘 하루하루를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다 보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계획하신 그곳에 우리를 도달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생길을 걸어가면서 우리 역시 한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나라고 하는 인생의 한계는 뭐냐, 내일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 시간 후에 24시간 후에 한 달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코로나-19가 이렇게 갑자기 우리에게 다가와서 온 한국을 이렇게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때때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그러한 험난한 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우리를 인도하고 보호하기 때문에 우리는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주님만 믿고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고 푸른 초장에 도착해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인도하는 이 지팡이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의 지팡이가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합니다. 우리를 보호해주는 이 막대기는 성령의 검입니다. 성령의 검이 되어서 모든 흑암 권세를 물리치고 주님 안에서 위대한 승리자로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 사는 동안 예수 잘 믿는 것밖에 우리에게 큰 복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가 예수를 잘 믿습니까.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저 기도 많이 하고 나보다 말씀 묵상해서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고 열심히 예배드리고 있는 곳에서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하고 성령충만 받아 열심히 교회를 섬기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이것이 예수 잘 믿는 것이고 복 받은 삶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모든 삶의 순간순간마다 함께 하시고 큰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지금도 말씀의 지팡이와 성령의 막대기로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어떠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고 계십니까? 어떤 절망의 계곡을 통과하고 계십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염려하지 마십시오. 걱정하지 마십시오. 목자되신 주님께서 말씀의 지팡이와 성령의 막대기로 여러분을 돌보시고 지키시고 동행하시고 한평생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의 길 의의 길 은혜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 주님만 믿고 의지함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부족하고 부끄러운 것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바라볼 때 주님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과 같이 고백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나의 목자가 되어 주셔서 부족함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이와 같은 삶을 살지 못했다면, 이번 기회에 우리가 회개하고 반성하며 주님만이 나의 목자가 되어 주셔서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할 수 있게 하여 주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할지라도 주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감사하며 담대한 믿음으로 전진해 나갈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혹시 영상을 통해 함께 예배드리는 많은 사람 가운데 신천지에 빠졌던 분들이 있다면 회개하고 돌아와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에 돌아와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하여 주시고 가정에 돌아가 가정을 지키고 가정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올리옵나이다. 아멘.

 


마귀와의 말싸움/조용기목사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마가복음 16장 16~18절)

우리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향력이든, 악한 사탄의 영향력이든, 인간은 영적인 영향력을 벗어나서 살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온 세상은 악한 자에게 속하였고 예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 안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공중권세를 잡고서 타락한 천사와 악의 영들을 거느리고 온 세상을 미혹하며 죄악과 파괴를 일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마귀와 귀신들의 정체를 알고 모든 악의 세력을 단호하게 대적하고 승리하며 살아가야 될 것입니다.


1. 마귀의 거짓말에 속지 말라

마귀의 전략을 보면 마귀는 부정적인 말을 해 듣는 이가 중심을 잃게 합니다. 방울뱀이 다람쥐를 잡을 때 보면 먼저 꼬리를 흔들어서 소리를 냅니다. 그 소리를 듣고 나무 위에 있던 다람쥐가 소리 나는 곳을 내려다보는데 그 순간 독사의 눈과 마주치게 됩니다. 그러면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독사를 보고 나무 위에서 떨던 다람쥐가 비틀비틀 중심을 잃어 나무 아래로 떨어져서 독사의 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마귀의 전략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방울뱀이 꼬리를 흔들어서 소리를 내는 것처럼 마귀는 부정적인 말을 하게 만듭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마귀가 주는 부정적인 말을 듣고 두려움이 생겨서 마음의 중심을 잃고 마귀의 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또, 마귀는 사람들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듣게 만들어서 결국 탐욕의 노예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원수 마귀의 영향을 받으면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의 자랑을 따라 살게 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이러한 일들을 하고 탐욕의 노예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사람 스스로 우연히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는 그 배후에서 원수 마귀와 귀신이 작전을 짜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품을 떠나게 하여 결국에는 멸망을 당하게 하려고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마귀는 삶에서 잘못된 길을 선택하게 만들고 거짓말을 하게 하여 거짓말을 믿게 하여 결국 패망의 길로 이끄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왜 에덴동산을 잃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 마귀의 거짓말에 속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와가 그 거짓말에 그만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따 먹고 아담에게도 주어서 결국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의 말을 듣고 따라가면 그 끝은 반드시 멸망으로 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마귀가 수많은 이단들을 통해서 사람들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고 있는데 그러한 마귀의 거짓말을 듣고 따라가면 멸망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그러면 어떻게 해야, 악한 마귀와 귀신들을 대적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는가? 에베소서 6장에 그 방법이 나와 있는데, 마귀가 다방면에서 공격해 올 때,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정면에서 싸워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오중복음과 삼중축복과 4차원의 영성을 옷 입어야 합니다.

옛날 6.25 전쟁으로 피난민 생활을 할 때는 사람들이 누더기 옷을 입고 길거리를 다니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찢어지고 구멍 뚫린 옷을 몇 번이고 기워 입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은 그런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없지만 그때는 옷이 찢어져서 못 입을 때까지 입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옛날에는 죄와 허물로 더럽혀진 누더기 옷을 입고 살았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새 옷을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새 옷이 바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옷인 것입니다. 우리는 용서와 의의 옷을 받아 입고 성결과 성령충만의 옷을 받아 입고 치료와 건강의 옷을 받아 입고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의 옷을 받아 입고 부활과 영생, 천국의 옷을 받아 입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오중복음과 삼중의 축복의 옷은 눈에 안 보이는데 어떻게 받아 입느냐? 바로 4차원의 영성을 통해서 받아 입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옷을 받아 입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입술로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의로운 옷을 입은 사람이다. 나는 거룩한 옷을 입었다. 나는 치료의 옷을 입었다. 나는 축복과 형통의 옷을 입었다. 나는 부활 영생의 옷을 입었다.” 이러한 생각을 꿈꾸고 믿고 입술로 말로 선포해야 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여러분의 생활에 새로운 변화가 다가오게 되고 삼중축복의 옷을 입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진리로 허리띠를 띠어야 하는데 진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리 그 자체입니다.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의 중심을 삼으라는 것입니다. 허리는 우리 몸의 중심입니다. 허리를 상하면 그 사람은 일어나지도 못하고 아무 짐도 들 수 없으며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허리가 우리 몸의 중심기둥인 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중심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를 흘려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부활, 승천하시고 오늘날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셔 장차 재림하셔서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데려가실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 외에 다른 것을 좇아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수많은 이단들이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는데 그것을 좇아서 영원한 멸망으로 가고 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 삶의 중심으로 삼고 오직 예수님만 의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 다음, 성경은 의의 호심경을 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사이 방탄조끼를 입는 것처럼 옛날에는 전쟁에 나갈 때, 가슴에 구리로 만든 흉배를 붙여서 적의 창이나 칼이 가슴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의의 호심경을 붙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셨지만 율법이나 계명을 통해서 의롭게 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율법과 계명은 죄를 기억나게 할 뿐이지 의를 주지는 않습니다.

여러분, 거울 앞에 서면 우리 몸의 여러 가지 허점만 보이지 거울이 우리를 씻어서 치장해 주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계명은 우리의 인격 속에 잘못된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 우리를 의롭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그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 일생의 모든 죄를 다 청산해 버리고 우리에게 주님의 의를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의 흉배를 붙이라는 것은 주님의 의롭다함을 선물로 받아서 우리 가슴에 간직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의라는 것은 우리가 평생에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은 상태입니다. 마귀가 와서 아무리 우리의 흠을 잡으려고 해도 흠을 잡을 수가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담대하게 설 수 있는 자격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나는 용서받은 의인이다’라는 의의 흉배를 붙이고, ‘나는 죄인이다. 나는 버림받았다. 나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들을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의를 의지하고 원수 마귀를 예수의 이름으로 대적해서 물리쳐야만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어야 합니다. 여기 성경은 평안의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얻은 불안의 복음이 아니고 예수님의 십자가로 다 이루어 놓은 평안의 복음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평안히 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다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2천 년 전에 갈보리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하셨을 때, 우리 삶을 위해서 다 예비하셨다는 것을 믿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이와 같은 은혜로서 예비해 놓은 것을 우리가 신발로 신어야 합니다. 신발을 신는다는 것은 믿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발을 신지 않고 인간의 힘으로 살면 돌에 채이고 가시에 찔리고 피투성이가 됩니다. 올바른 걸음을 걸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이 예비하신 은혜를 믿고 그것을 신발로 삼고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가면 주님의 영광과 역사가 나타나서 죄는 사라지고 의가 다가오고 성령이 와서 우리에게 힘을 주고 병은 사라지고 치료가 다가오고 저주는 사라지고 축복이 다가오고 사망은 사라지고 축복과 영광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아무리 우리 앞에 장애물을 갖다놓고 돌 자갈밭과 가시밭을 만들어 놓아도 예수님의 대속의 은총의 신발을 신고 나아가면 마귀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우리는 믿음의 방패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쟁에 나가는 군사는 적이 쏘는 화살을 막는 방패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마귀가 쏘아대는 불안과 공포와 좌절과 절망과 슬픔과 괴로움과 고통을 막아낼 믿음의 방패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환경에 동요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눈에는 아무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을지라도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는 것이 바로 믿음의 방패를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위에 단호하게 서는 것이 믿음의 방패요, 입술로 고백하는 것이 그 방패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마귀의 공격이 올 때, 말씀에 서지 않고 눈에 보이는 환경을 바라보고 불안해서 우왕좌왕하고 부정적인 말을 합니다. 그러면 마귀의 화살을 받아들여서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좌절하고 버림을 받는 상태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입술의 말로써 마귀의 모든 공격을 막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구원의 투구를 써야 합니다. 투구라는 것은 철모인데 머리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철모를 쓰라는 것은 언제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나는 패배한다. 나는 절망이다. 나는 죽는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말고 예수님께서 주신 구원으로 우리 생각을 가득 채워야만 합니다.

‘나는 죄에서 해방을 얻었다. 하나님의 성령이 나와 같이 계신다. 나는 건강한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나는 천국시민이다. 나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된 사람이다.’ 이런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인 생각으로 머리를 보호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머릿속에 부정적인 것이 들어오게 되면 그때부터 우리는 마귀의 공격에 박살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능히 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하였는데 우리 생각이 부정적이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 가운데 역사하실 그릇을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과 생각을 언제나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에 두고 굳세게 긍정적인 자세에 서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야 합니다. 검이라는 것은 공격용 무기인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모두 다 방어용 무기였지만 최후로는 주님께서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말씀하셨는데 검은 바로 원수를 공격할 때 쓰는 것입니다. 마귀의 진을 깨뜨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을 우리가 취해야 할 때는 검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사용하면 원수의 진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값 주고 사신 가나안 복지를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이 40일을 금식하고 주리셨을 때, 마귀가 와서 유혹을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쳤던 것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아무리 유혹해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호하게 말씀의 검으로 대적하니까 마귀가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고 만 것입니다. 우리도 공격 무기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다가올 때 말씀을 가지고 대적하면 마귀는 우리를 이기지 못하고 도망을 치고 마는 것입니다.


3. 말씀을 의지하고 힘써 기도하라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을 하고 난 다음에도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라는 무장이 우리 생활 속에 활발하게 역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와 간구를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해서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써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는 4차원의 대화인 것입니다. 기도를 해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깊은 교제가 생기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라는 이 모든 무장이 살아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영혼이 잠들어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아니하고 영혼이 잠들어 버리면 잠든 사람이 아무리 좋은 무기로 무장을 하였어도 마귀가 와서 잠든 사람의 무장을 해제해 버리고 그 삶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야말로 우리가 영혼이 깨어서 있어서 우리가 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개인 기도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매일같이 최소한 한 시간 이상씩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으면 집에서든지 교회에서든지 새벽기도도 해야 되고 필요하면 철야기도도 하고 금식기도도 하고 그래서 뜨거운 기도를 통해 우리 자신이 깨어 있으면 언제 어느 시에 원수 마귀가 쳐들어와도 우리는 마귀를 능히 이기고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일본의 한 성도님의 간증인데 이분은 허리 골절로 인해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눕지도 못한 채 15년 동안 고통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고통을 당했는가 하면 이분이 한때 이단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집단생활을 하는 동안에 여러 명이 같이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던 것입니다.

그 때, 덩치가 큰 사람이 이분 위로 넘어지는 바람에 허리를 심하게 다쳤는데 이단에서 병원에 가지 못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크게 다치고도 병원에 가지 못가고 병이 점점 더하여 심해진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단의 지도자가 감옥에 들어가게 되면서 자신이 이단에 빠진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다행히 이단에서 빠져나와 일본에 있는 순복음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었고 그때부터 위성으로 저의 설교를 들으면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게 되고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검사결과가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사고 당시에 척추 4번과 5번이 골절되어 신경혈관이 지나가는 곳이 심하게 손상되었는데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신경이 끊어져서 하반신 마비가 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더욱더 절망스러운 것은 수술을 해도 가능성이, 성공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분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기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매주 위성으로 저의 설교를 들으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제가 일본에서 성회를 인도한다는 소식을 듣고, 더 열심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그렇게 날마다 긍정적인 고백을 하면서 성회에서 은혜를 받기 위해 3개월 동안 새벽기도로 준비했던 것입니다.

그러고는 성회에 왔는데, 신유기도 시간에 제가 “오늘 척추가 아픈 사람이 나았습니다!”라고 선포하는 순간 갑자기 등이 뜨거워지더니 15년 동안 괴롭히던 허리통증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성회 장소에 올 때만 해도 통증을 참으면서 한걸음씩 겨우겨우 걸어서 왔는데 하나님이 치료해 주시니까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펄쩍펄쩍 뛰어다니게 되었다는 간증한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무어라고 말하든 간에 사람의 말에 우리가 좌우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땅을 보고 살지 아니하고 하늘을 쳐다보고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이상 결코 낙심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는 우리에게 주신 특권이요 하늘나라를 여는 열쇠이고 마귀를 물리치는 능력이며 하나님의 손길을 움직이는 권세입니다. 그러므로 아침, 저녁, 정오에 큰 소리로 기도함으로써 원수 마귀를 미약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로써 우리 자신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만들어야 귀신을 쫓아내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오신 여러분 모두가 항상 깨어 기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신유 기도>

여러분, 몸에 병이 있는 분은 모두 다 일어나십시오. 그리고 아픈 데에 손을 얹으십시오. 그리고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원수 마쉬를 쳐 물리쳐주시옵소서. 악한 마귀가 다가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하는 일을 하는데 마귀가 우리 곁에 얼씬하지도 못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너희 원수 마귀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우리를 떠나가라! 이 자리를 물러가라! 너희 원수 마귀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우리를 죽이지 못할터이니 하나님 아버지여, 예수 이름으로 원수마귀를 내어 쫓고 흑암의 세력을 물리쳐 주시옵소서.

너희 원수 마귀야,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너희는 우리를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지 못한다. 예수님 보혈로 우리를 주님께서 값 주고 사시고 채찍에 맞으신 공로로 우리 모든 질병을 청산하셨으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한다.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서 원수 마귀를 다 물리쳐 주시옵시고 원 수 마귀를 다 쳐 복종시켜 주시옵시고 흑암의 세계로 물리쳐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는 원수 마귀에게 해방된 자유로운 몸이 되어 깨끗하게 나아서 행복하게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낫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다 나을지어다! 예수님 이름으로 나아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라! 아버지 하나님, 예수의 이름으로 모두 다 나은 것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를 건지시는 하나님/이영훈목사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시 91:1~7)

찬양대의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교회가 창립 62주년 만에 이렇게 온라인 생중계로 예배를 드리는 상황을 맞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 이 전염병이 온 전국에 확산되어서 지금 비상시국에 이르러서 특별히 이번 주일과 다음 주일 만은 정부 지침이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밀폐된 공간이나 또 협소한 공간에서 종교 행위를 자제해달라고 하는 부탁도 있었고 또 많은 국민들의 염려가 있고 또 성도들의 안전을 염려하는 의미로 우리가 함께 동참해서 오늘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만 명이 넘게 함께 예배드리는 이 대성전에 오늘 교회를 대표해서 한 30여 분, 200여 명의 성가대를 대표해서 한 20여 분의 찬양 대원이 찬양을 드리게 되었는데 여러분 오늘 특별히 이런 생중계 예배에 참여하게 된 것을 특별한 은혜로 아시고 특별히 온라인으로 함께 예배드리는 우리 여의도 56만 성도 여러분들은 어디서 예배를 드리든지 간에 그곳에서 마음을 합해서 함께 예배드려주시길 바랍니다.

이 시간 우리가 함께 기도해야 될 것은 코로나-19가 속히 소멸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번 주, 다음 주가 고비라고 하는데 2주 안으로 확산세가 완전히 다 멈추고 소멸되고 특별히 신천지에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속이지 말고 커밍아웃해서 자신들의 증세가 있는 것을 의료기관에 알리고 그래서 소멸되는 것에 협조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우리 교회에 침투해 있는 신천지들도 이번 기회에 잘못된 이단이라는 것을 알고 회개하고 돌아 나와서 올바른 신앙생활 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우리가 함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 대한민국을 코로나-19의 공포와 두려움에서 건져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를 계기로 우리 한국 모든 교회가 다시 영적 지도력을 회복하고 한국 사회의 밝은 등불로, 한국 사회의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앞장서는 주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동안 기독교가 큰 부흥을 이루면서 알게 모르게 영적 리더십을 잃어버리고 풍요로움에 빠져서 소외된 계층을 돌보지 못하고 사회적인 어려움에 동참하지 못한 것을 철저히 이번 기회에 회개하고 더욱이 우리 대한민국이 국론 분열로 말미암아 몸살을 앓고 있는데, 더 이상 이 같은 편 가르기가 우리 대한민국에 있지 않도록 국민 대통합을 이루는데 우리 기독교계가 앞장서고 힘을 합하여서 사회 부조리를 해결하고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데 우리가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이 시간 우리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기도를 들어주셔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게 하여 주시고 또 사이비 이단 집단 신천지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 이제는 잘못된 집단에서 벗어나서 더 이상 가정파괴와 사회적인 혼란에 그 문제의 근원에서 나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동참해 줄 것을 간절히 호소합니다. 이 시간 우리 다 같이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 412장 (통:469) :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코로나-19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온 국민들의 마음속에 불안과 염려, 공포가 가득한 현실을 우리가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고난도 그 고난을 잘 극복해 나아가면 더 나은 미래를 우리가 건설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번에 우리 모두가 정신을 차려서 이 코로나-19의 고난을 잘 극복함으로 모든 의료체계가 더 발전되게 하시고 몇 년마다 주기적으로 다가오는 전염병이 더 이상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여 주시고 나누어졌던 우리 국민들의 마음이 하나 되게 하여 주셔서 온 국민이 한마음 되어 이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이 일에 우리 기독교가 앞장서게 하여 주시고 그동안 분열과 다툼으로 사회에 실망을 주었던 우리 기독교가 한마음 되어 국민 대통합을 이루는데 앞장서므로 다시 신뢰를 회복하고 영적 지도력을 회복하여서 가난하고 소외되고 헐벗고 상처 입은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는 우리 교회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주님 은혜 내려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온라인을 통해서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들에게 은혜 내려 주시고 또 혹시 이 온라인에 동참해서 함께 예배드리는 신천지 교도가 있다면 회개하고 돌아와 다시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고 정통 교회로 돌아올 수 있도록 주님 은혜 내려 주옵소서.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 전 여러분과 함께 시편 91편 1절~7절 말씀 가지고 "우리를 건지시는 하나님"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때때로 예고 없이 크고 작은 환난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사람들은 환난이 다가올 때 심히 당황하고 두려워하고 낙심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큰 환난이 다가올 때 낙심하고 절망하지만 우리 기독교인들은 그러한 때에 낙심하지 아니합니다. 왜냐하면 문제보다 크시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시는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시편 91편은 환난의 때를 통과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1.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

첫째로 우리에게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신다고 말씀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19의 확산으로 온 국민이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세상 그 어디에도 안전한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룻밤만 자고 나면 뉴스에 어느 지역을 확진자가 다녀갔다, 어느 지역을 확진자가 다녀갔다 하는 보도가 나오고 그로 인해 백화점이 폐쇄되고 병원이 폐쇄되고 하는 그러한 보도가 들려옵니다. 또한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던 의사도, 간호사도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위험에 빠졌다고 하는 보도를 듣게 될 때 사람들은 절망하고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에 우리는 낙심하고 절망하고 두 손을 놓고 있을 것이 아니라 문제의 해결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우리의 믿음의 거처로 삼고 하나님의 은혜의 그늘 아래 거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시편 91편 1절~2절은 말씀합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우리의 요새가 되어주시고 방패가 되어주십니다. 우리를 그 은혜의 날개에 품어주시고 우리를 보호해 주시며 우리를 모든 대적으로부터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4절은 말씀합니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그렇습니다. 어미 새가 새끼들을 품고 있으면 폭풍우가 몰아쳐도 독수리 같은 무서운 새가 공중을 떠돌아도 그 새끼들은 평안히 어미 새의 날개 아래 쉼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날개 아래 우리가 거할 때 세상의 환난, 풍파가 몰아닥치고 온갖 불안한 소식이 들려와도 우리는 염려하지 아니하고 걱정하지 아니하고 평안함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27편 5절은 말씀합니다.

야훼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주님 안에 거할 때 우리는 절대로 염려하지 아니하고 평안함 가운데 거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모든 환난에서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시편 32편 7절은 고백합니다.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

외롭고 힘들고 어려운 인생길입니다. 그러나 그 힘들고 어려운 인생길에도 주님이 늘 함께하시고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날개 아래 거할 때 우리는 평안함을 누릴 수가 있고 참된 행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의 날개 아래 거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이렇게 문제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그늘 아래 거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찬송가 415장에 이와 같은 가사가 있습니다.

십자가 그늘 아래 나 쉬기 원하네

저 햇볕 심히 뜨겁고 또 짐이 무거워

이 광야같은 세상에 늘 방황 할때에

주 십자가의 그늘에 내 쉴 곳 찾았네

그렇습니다. 십자가 그늘 아래에서 우리의 쉴 곳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참된 평화나 안식처를 얻을 수 없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의 그늘 아래 거하기만 하면 우리 마음 가운데 주님이 평안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위로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을 더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나아가는 주님의 귀한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절대 낙심하지 마시고 절망하지 마시고 포기하지 마시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 그늘 밑에서 참된 평안함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십자가 그늘 아래 거할 때 평안함을 얻게 되고 주님이 우리를 모든 절망에서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

2. 우리를 건져주시는 하나님

둘째로 우리를 절망 가운데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길 원합니다. 시편 91편 3절은 말씀합니다.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사냥꾼의 올무는, 사냥꾼의 새를 잡는 올가미를 말하는데, 특별히 여기서는 하나님의 사람을 공격하고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려고 계략을 꾸미는 악한 자들의 계략과 술책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또한 심한 전염병은 콜레라, 메르스, 사스 코로나 19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질병과 죽음을 가져오는 이러한 전염병을 의미할 뿐 아니라 또한 우리를 상처 입히고 무너뜨리는 악성 루머, 중상모략, 비방 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세력과 그 어떤 위험과 어려움이라고 할지라도, 십자가 그늘 아래 피하기만 하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모든 절망에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그 사랑의 품에 안아주시고 모든 전염에서 우리를 막아주시고 이와 같은 흑암의 올무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참된 평안함을 누릴 수 있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이 다 주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면 첫째로 하나님의 은혜고, 둘째도 하나님의 은혜고, 마지막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이 참 험한 인생길을 살았지만 하나님께서 그때마다 도우신 은혜를 체험하고 그는 이와 같이 고백을 합니다. 시편 40편 1절과 2절입니다.

내가 야훼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지는 그러한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의 웅덩이, 질병의 웅덩이,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생겨난 수렁, 죄와 허물의 수렁, 상처의 수렁, 모함의 수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떠한 역경과 환란의 웅덩이와 수렁에 빠졌다고 할지라도,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그 수렁에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불쌍히 보시고 우리를 절망에서 건져주시고 모든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주실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주셔서 죄와 질병, 가난과 저주, 불안과 공포에서 건져주시고 우리를 보호해주고 계신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늘 주님 앞에 감사하며 기도하기를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3. 두려움을 물리치게 하시는 하나님

셋째로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두려움을 물리치게 해주십니다. 91편 5절과 6절은 말씀합니다.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다윗 시대에 이 시편이 기록되었다고 하면 약 3천 년 전인데, 이 3천 년 전에 어쩌면 오늘날과 같은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공포와 전염병의 두려움을 이렇게 자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전염병이 퍼질 때 사실 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것이 두려움과 공포입니다. 미국에서 제2차 세계 대전에 나가서 전쟁에 나가 죽은 군인이 40만 7천 명인데, 미국 국내에서 불안과 공포로 심장병으로 죽은 사람은 백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마음을 지키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 4장 23절입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이 코로나 공포증의 확산을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고 있습니다. 공포증 이 포비아라고 하는 것은 어떤 특정 대상이나 상황 등에 대해서 과도하게 반응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번 코로나 전염병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두려움과 공포증도 같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조금만 열이 있고 기침만 해도 '내가 코로나가 아닐까?' 두려워합니다.

실제로 한 설문조사에서 현직 직장인 64%가 코로나 감염될까 봐 걱정이 된다고, 출퇴근할 때마다 두려움을 느낀다고 그들이 답변을 했습니다. 3분의 2나 되는 직장인들이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혹시 감염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인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 내 몸에 이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않는가 하는 공포감에 모든 사람이 두려워서 떨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기침만 해도 놀라서 경계심으로 그를 쳐다보고, 약간 내게 몸에 열만 있어도 내가 무슨 일이 있지 않나 염려하며 불안과 공포에 휩싸입니다. 이러한 불안과 공포가 우리를 분노하게 만든다고 정신전문학자는 말합니다. 명지병원에 정신건강의학과 김현수 교수는 이분이 서울 코로나-19 심리지원단장이시기도 하신데, 코로나 공포증에 대해서 염려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염병은 공포와 함께 분노를 자아내는 형식으로 우리의 마음을 힘들게 한다. 우리를 감염시키는 바이러스는 때로는 목숨을 빼앗아 갈 정도로 증상을 악화시키기도 하지만, 마음을 크게 다치게 하여 사회적 분열이나 혼란을 낳기도 하는 만큼 생명도 지키고 힘도 지키는 면역을 모두 길러야 한다."

그래서 김현수 교수는 격려, 희망 등 마음에 긍정적인 그 백신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긍정적인 자세로 이 모든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 됩니다. 이 긍정의 백신에 더하여서, 기도의 백신, 말씀의 백신, 믿음의 백신으로 두려움을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하며 두려움을 물리칠 때,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됩니다.

시편 34편 4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야훼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빌립보서 4장 6절, 7절에 이와 같이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함께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렇습니다. 염려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기도함으로 두려움을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시편 50편 15절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어떤 두려움으로 공포가 있습니까? 연약한 우리의 힘으로 그 모든 것을 극복하려고 애쓰지 말고 주님께 엎드려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께 부르짖어 간구할 때에 모든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우리 마음에 평안함을 넘치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피난처가 되시는 주님의 품에 거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평생 감사와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주님을 섬기며, 모든 고난과 고통의 두려움을 이기고 승리한 채규철 교장님의 이야기입니다. 교육자이시며, 사회운동가인 그분은 E.T 할아버지라 불리었습니다. 온몸에 화상을 입어 외계인 같다고, 사람들이 붙여놓은 별명입니다.

채규철 박사는 하나님의 은혜로 덴마크에 유학 가서 선진 농업기술을 배우고, 귀국하여 장기려 박사님과 함께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는 청십자 의료보험 조합을 만든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31살 때 가파른 언덕에서 차가 굴러서 폭발하는 바람에 온몸 50%가 불에 휩싸여서 타버렸습니다. 그래서 양쪽 귀가 다 녹아 없어지고 머리가 다 없어지고 한 눈은 멀게 되고 입도 불에 타고 손도 불에 녹아 갈고리처럼 되었습니다. 저도 한번 우리 교장 선생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저 모습이 수술을 많이 받고 제일 좋아진 모습입니다. 그냥 일반 사람이 보면 놀라서 피할 정도로 그렇게 흉측한 모습이었습니다. 30여 차례 수술을 받고 고통 가운데 어려움을 이겨나가는데 몸 약한 아내가 2년여 간호하다가 그만 먼저 세상을 떠납니다.

"하나님이 원망스러워서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그 순간 마음을 바꿨습니다. "내가 죽느니 분명히 여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다. 죽음 대신 내가 감사로 절대 긍정으로 살곘다." 그는 고백합니다.

"이런 모습으로 나를 살리신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아멘으로 순종하고 감사하자."

그날 이후로 그의 삶이 180도로 바뀌었습니다. 절망과 낙심 탄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가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하나님! 비록 귀는 다 타 버렸지만, 소리를 듣는데 지장이 없고 한겨울 추운 날에도 귀가 시리지 않으니 감사합니다. 피고름이 나던 머리에서 새 머리카락이 나오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귀도 없는 일그러진 얼굴을 그 머리카락들이 조금이라도 가려주니 감사합니다. 한쪽 눈은 실명했지만, 남은 한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입술이 없어졌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전할 수 있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때로부터 그는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 피하고 무시하고 조롱했지만 그는 마음에 조금도 그로 인해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주님 나와 함께 하신다. 몸이 회복되자."

그는 남은 여생 불쌍한 이웃을 섬기며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청십자 조합 일을 할 뿐 아니라 간질환자들을 돌보는 장미회를 설립하고 사랑의 장기기증 본부를 만들어서 사고로 불의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그 장기를 생명의 위협이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게 했고 매년 자원봉사자 100명을 이끌고 소록도에 가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고 목욕시키고 빨래도 해주고 그들을 사랑으로 품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소록도에서는 이 채규철 선생님을 하나님의 사람 천사와 같이 여기고 그가 올 때 모두가 나와서 환영하고 반겼습니다. 이렇게 절망에 처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증거하며 살다가 70세를 일기로 주님 앞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주님이 피난처가 되시면 어떤 절망도 어떤 두려움도 어떤 고통도 우리는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우린 모든 환난에서 놓임 받게 되고 우릴 건져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 다가온 두려움과 공포를 물리치고 주님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용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어려움의 과정을 통과하면서 큰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더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어려움을 통과하면서 우리 주위에 절망에 처한 사람들에게 주의 사랑을 나눠주고 주님의 은혜를 선물로 선사하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코로나-19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공포에 휩싸였으나 우리는 신앙심으로 이 모든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오히려 이 절망의 기회를 더 나은 희망을 향한 발판으로 삼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기를 원합니다. 주님 우리 모든 믿는 사람이 한마음 되어서 힘을 합하여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내게 하여 주시고 우리가 힘을 모아 절망에 처한 이웃들에게 예수의 사랑을 증거하고 그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 다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옵소서. 큰 믿음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기도하는 자는 하늘을 본다/조용기목사

“이 후에 야훼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이르되 주 야훼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야훼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야훼를 믿으니 야훼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세기 15장 1∼6절)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대화를 중지하고 마귀와 대화를 하고 살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고, 그러다 결국 마귀의 유혹에 빠져서 저주와 사망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을 바라보는가? 매우 중요합니다. 똑같은 형편에 있어도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그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인 것입니다.


1. 당신은 어디를 바라보고 사는가?

그러면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까요?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하늘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에게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자기 천막집 안에서 밤에 잠을 자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잠에서 일어나라. 빨리 천막에서 밖으로 나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천막 밖으로 불러내신 것은 땅을 바라보지 말고 하늘을 바라보라고 불러내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천막 안에 웅크리고 앉아 있으니까 하늘이 안 보이지요. 천막 안에 있으면 천막 안에 있는 환경만 보입니다. 이미 75세가 되어버린 늙은 아내가 보이고 85세가 되어버린 늙은 자기 모습이 보입니다. 땅바닥을 바라보니까 먼지와 티끌만 보입니다. 그러니 마음이 답답하고 앞길이 캄캄합니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삶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아브라함이 천막에서 나와 하늘의 별을 바라보자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믿게 되고 가슴속에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하늘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하듯이 우리에게도 “하늘을 쳐다보라. 너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하늘을 쳐다보라. 땅을 바라보지 말고 하늘을 쳐다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인본주의라는 천막을 치고 그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지혜와 지식과 경험과 감각을 가지고 판단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낙심하고 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14절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결코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내일 일이 보이지 않으니 좌절하고 절망하고 불안하여 떨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욥기 16장 6절에는 “내가 말하여도 내 근심이 풀리지 아니하고 잠잠하여도 내 아픔이 줄어들지 않으리라”고 말합니다. 혼자 문제를 끌어안고 전전긍긍해도 마음이 답답하고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해도 여전히 마음이 답답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힘으로는 우리가 당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중국에 사는 한 성도님의 딸이 신장염으로 몹시 고통을 당하였는데 매년 열리는 아세아성도방한대회에 와서 고침을 받았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성도님의 사연을 보면 하나님을 바라보고 간절히 구하는 자가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성도가 자기 딸의 병을 치료받기 위해 아세아방한성도대회에 오려고 하는데 비행기 표를 구할 수가 없어서, 게다가 딸이 신장이 매우 나빠져서 5년이 넘도록 일주일에 두 번씩 투석을 받고 있었는데 요도염까지 심해져서 한국에 가면 죽을 것이라는 모두가 반대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기도를 하면 성령께서 한국에 가면 반드시 낫는다는 메시지를 그 마음속에 심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에 가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비행기표를 구할 수가 없으니까 중국에서 기차를 타고 출발한 것입니다. 기차를 타고 홍콩으로 가서 거기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온 것입니다. 몸이 아픈 딸과 함께 그 먼 길을 여행했으니 그 믿음의 결단이 참으로 대단하지요. 두 모녀가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한국으로 오는 동안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놀랍게도 비행기에서 성회 관계자 만나게 하시고 그래서 마침내 오산리기도원에서 열린 성회에 참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저의 설교를 듣고 난 후, 기도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저와 함께 서계시는 환상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기를 얻어서 그 자리에서 저에게 안수기도를 신청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 주었는데 하나님께서 즉시 그 딸을 치료해 주신 것입니다.

만약 이 성도님과 딸이 환경을 바라보고 포기했더라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 죽는다고 했지만 그분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의 발걸음을 옮기니까 하나님께 그 딸을 치료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을 받으려면 하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땅을 바라보고 환경을 바라보고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계신 하늘을 바라보아야 가슴속에 소망을 품게 되고 우리 인생이 달라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하늘

그러면 우리가 바라볼 하늘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 하나님 아버지인 것입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 친자녀인 것입니다. 저 광활한 우주, 저 무수한 별들을 지으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고 예수님을 믿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신 것입니다.

아버지와 자식 간에 얼마나 친밀하십니까? 여러분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직접 태어난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아버지의 친자식이 되고 아버지께서 자기의 영을 부어 주셔서 우리는 성령을 모시고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육신의 아버지가 자녀를 위해서 모든 것을 예비하는 것처럼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바라보면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이사야 41장 10절로 16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야훼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보라 내가 너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을 겨 같이 만들 것이라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들을 날리겠고 회오리바람이 그들을 흩어 버릴 것이로되 너는 야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사 41:14~16)고 말씀합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그 모습이 버러지 같을지라도 실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안에 계신 하나님은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되시면 우리가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한번 하늘을 쳐다보십시오. 천막 밑에 좁디좁은 곳에서 탄식하지 말고 밖에 나와서 하늘을 한번 쳐다보십시오.

저 광대한 하늘, 저 무수한 별들을 지으신 이가 바로 우리 아버지인 것입니다. 그 아버지가 나를 생각하시고 나를 돌보시며 내 머리털 수도 다 헤아리고 계십니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하시는 놀라운 사랑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27편 1절에 “야훼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야훼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만 바라봅니다. 땅만 바라봅니다. 그러니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을 바로 쳐다보고 저 광활한 하늘과 저 무수한 천체를 만드신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신 것을 알고 이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를 보내서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려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셔서 구원해 주신 것을 알게 되면 어떤 형편에 있어도 강하고 담대해질 수 있습니다.


3. 십자가 대속의 그늘 밑에 거하라

그 다음,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하늘은 예수님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우리는 늘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 대속의 그늘 밑에 거해야 합니다. 여러분, 사는 게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가 기도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바로 여러분과 나를 위한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1절로~3절에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야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고 멸시를 당하고 십자가에서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신 것이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 모든 것이 바로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사야 53장 5절로 6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 대속의 그늘 밑에 거하면서 죄 사함과 용서, 거룩함과 성령 충만, 치료와 건강,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 그리고 영생, 천국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그들이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불뱀에 물려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라고 하셨고 그것을 바라보는 자는 다 살아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4절로 15절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놀라운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이 세상살이를 이스라엘 백성이 지나온 광야에 비유하셨고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뱀에 물렸다고 하신 것입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마귀에게 물려서 독이 올라서 죄짓고 불의하고 병들고 저주와 절망에 허덕이고 종국적으로 죽을 것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광야를 지나는 인생이 마귀의 독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마귀에게 눌린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기만 하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언제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언약들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리심으로 우리에게 용서와 의를 약속해 주었습니다. 거룩함과 성령 충만을 약속해 주었습니다. 치료와 건강을 약속해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을 약속해 주었습니다.

부활, 영생, 천국을 약속해 주었습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전인 구원도 약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무수한 하나님의 약속이 하늘의 별들같이 반짝이고 있는 것입니다. 땅을 바라보고 먼지와 티끌을 바라보고 죄와 좌절을 바라보는 사람은 꿈도 희망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은 하늘에 있는 수많은 별들을 헤아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꿈을 얻고 믿음을 얻고 강하고 담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땅만 내려다보고 티끌만 바라보고 울지 마십시오. 천막에서 나와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뿌려 놓으신 저 별들같이 많은 약속을 따라서 우리의 생각이 달라지고 꿈이 달라지고 믿음이 달라지고 입술의 고백이 달라져서 마침내 우리의 인생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천막 밑에 웅크리고 앉아 있지 말고 밖으로 나와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서 꿈과 믿음을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 별들과 같이 많은 약속을 준비하시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기도해라. 내가 도와주겠다. 내가 너를 복 주고 싶다. 희망을 주고 능력을 주고 싶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으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이나 지식이나 과학이나 체험이나 감각이라는 천막 밑에 웅크리고 앉아서 “나는 못 해. 나는 안 돼. 나는 할 수 없어. 나는 절망이야. 나는 죽을 것이야.” 그렇게 하고 있으면 갈 곳이 없습니다. 이것을 탁 털어 천막 밖에 나와서 하늘을 쳐다보십시오. 이 세상에는 천막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있는 것입니다.

하늘을 지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바라보면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손을 내밀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너는 내 자녀요 나는 너의 아버지가 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해서 은혜를 예비해 놓았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난 다음에 생각이 부정적이 되지 말고 긍정적이 되며 절망이 되지 말고 소망적이 되며 어두운 생각을 버리고 밝은 생각을 받아들여야 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밝고 맑고 환한 꿈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보다 미래는 지금보다 나아질 것을 꿈꿔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을 것을 꿈꿔야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꿈으로 가득 채워 놓고 우리는 주를 믿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외국인이 저를 보고 말하기를, “밤에 한국에 비행기를 타고 들어오는데 큰 공동묘지 같다.”고 말해요. 십자가가 너무 많아서 온통 벌겋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에게는 공동묘지로 보이지만 우리에게는 축복의 상징으로 보인다. 그리스도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이 우리 서울을 점령하고 있고 한국을 점령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죄 사함과 용서, 거룩함과 성령 충만, 치료와 건강,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 그리고 영생, 천국을 얻게 되니 축복의 상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마음이 낙심되고 절망이 찾아올 때,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하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인 것입니다.

또,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하늘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고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면 가슴속에 희망을 품고 살 길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신유기도>

병든 사람 다 일어나십시오. 문제를 가진 사람도 일어나십시오. 우리 손들어 아픈 자리에 손을 얹고 하나님 아버지여, 하나님 아들, 딸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땅만 바라보고 하늘을 바라보지 못해서 무기력하게 되고 무능하고 되고 탄식하고 고통할 때, 마귀들이 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여, 우리가 예수 이름을 통해서 아버지를 찾아오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귀에서 건져주시기 바랍니다. 너희 마귀야,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서 너희에게 명하노니 이 시간에 물러가라! 머물러 있지 말라!

아버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죽었을 때 일으키신 생명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길이 되시고 진리가 되시고 생명이 되시오니 오늘 이 시간에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의 살길을 열어주시고 참 길을 열어주시고 생명의 길을 열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간에 주 예수를 통해서 넘치는 생명을 부어주시옵소서. 건강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기적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건강을 원합니다. 우리는 기적을 원합니다. 우리는 승리를 원합니다. 우리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의 별들을 헤아리고 별들을 바라봅니다.

별같이 많은 생생한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마음에 별을 가지고 꿈을 품고 꿈이 가득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믿음의 주여,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고 나가게 도와주시옵소서.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며 강건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자리에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가 성령님의 능력을 통해서 우리와 같이 계심을 감사합니다.

이 시간에 성령이 우리 몸속에서 운행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이 운행하는 곳에는 마귀가 다 쫓겨나가고 흑암이 사라지고 광명이 다가오며 아름다운 승리가 다가오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주님은 나의 목자/이영훈목사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 23편 1절)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한 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에게 좋은 일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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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주님의 귀한 백성들에게 언제나 좋은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주님이 들으시고

우리가 찬양할 때 주님이 들으시고 우리가 주님 앞에 예배드릴 때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좋은 일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계를 뒤흔들고 염려, 근심, 걱정에 빠지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이러한 일이 생길 때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벌써 중국에서만 700명이 넘게 죽었는데 우리 한국 사람은 아직 한 사람도 그러한 피해가 없습니다. 우리가 김치를 먹어서 그런다는데 그건 모르겠고, 심한 독감 정도입니다. 너무 두려워할 것은 없습니다. 이것이 전염되어 그러한 고통을 주는데 빨리 소멸하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위생을 철저히 하면 절대로 이런 것은 퍼지지 않습니다. 손을 자주 씻고 밀폐된 공간에 있으면 꼭 마스크를 하고 주의하면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또 이 바이러스가 나와서 얼마 오래 못 살고 죽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드리기 전에 모든 성전 구석구석을 전날 소독을 해서 오히려 다른 균도 다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육신의 병을 가져오는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우리 심령을 파괴하는 거짓 뉴스, 남을 비판하고 헐뜯고 상처입히는 이러한 악성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도록. 우리 대한민국이 이래서 아주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진실만 얘기할 수 있게 하여 주시고 우리 대한민국의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서 나누어진 사회를 대통합을 이루고 예수의 사랑으로 치유하는 우리 되게 하여 주옵소서.

북한에 복음이 증거되어서 북한 2,500만이 예수님을 알게 하여 주심으로 말미암아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문을 열고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남북이 하나 되는 역사를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고, 경제가 회복되고 우리 국방이 더욱 튼튼해지고 외교가 굳건할 수 있도록 그리고 이번 총선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진실한 사람, 의로운 분들이 세워질 수 있도록 당에 따라서 거짓을 일삼고 잘못된 길을 가는 정치인은 이번에 다 떨어뜨려 버리고 정말로 바로 선 사람들을 세워서 이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도록 우리 주님 앞에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 412장 (통:469) :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사랑하여 주셔서 거룩한 주일, 주의 전에 나와 기쁨과 감사함으로 예배드릴 수 있는 은혜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 일생이 감사하는 일생 되게 하시고 주님을 찬양하는 일생 되게 하여 주셔서 주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신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 나가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주님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전 세계적으로 창궐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속히 소멸하게 하시고 특별히 우리 대한민국을 지켜주셔서 단 한 사람도 피해가 없게 하여 주시고 그보다 더 악성 바이러스인 거짓 뉴스 바이러스를 소멸시켜 주셔서 이번 총선을 통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의로운 사람들이 세워져서 국민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우리 대한민국 세울 수 있도록 주님 함께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은 시편 23편 1절의 말씀 가지고 "주님은 나의 목자"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 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주님은 나의 목자"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살다가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셔서 내 삶을 인도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난 다음 여러분의 삶의 주인은 여러분이 아니라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문제는 예수를 믿고 나서도 아직도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사는 데 있습니다. 그렇기에 늘 문제가 있고 염려, 근심, 걱정이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녀도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면 그 신앙이 자라지 않고 늘 제자리걸음 하게 되고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다 보니까 많은 문제와 어려움에 갇혀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 내 삶의 중심에 예수님을 모시고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날마다 말씀 묵상하고 기도에 힘써서 우리 마음에 늘 성령이 충만하고 감사가 넘쳐남으로 말미암아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 앞에 귀히 쓰임 받는 주님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은 한평생 하나님 앞에 인정받고 귀하게 쓰임 받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한평생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면서 지은 시편 23편은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말씀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는 시편 23편 1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주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셔서 내 삶에 그 어느 것도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그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이 말씀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몇 가지 은혜를 살펴보기 원합니다.

1. 목자 되신 주님

첫째로 주님이 나의 목자가 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의 목자는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그는 고백한 것입니다.

동물 중에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이 아무것도 없고 늘 제멋대로이고 겁이 많고 병이 잘 걸리고 또 아주 눈이 나빠서 1m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이 양입니다. 양.

그래서 양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양에게 있어서는 그 목자가 생명과도 같습니다. 목자에게 모든 것이 달려있어요. 그래서 목자를 잘 만나면 좋은 목자가 그를 보호해 주고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 게으르고 문제 있는 목자를 만나면 필요할 때 필요한 것을 공급받지 못하고 또 생명의 위협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니까 우리는 다 양 같아서 제멋대로 살아왔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늘 문제 속에 살았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사야 53장 6절에 설명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다 양 같이 제멋대로 사는 우리 인생에 예수님이 참 목자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죄인 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목숨을 버리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1절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신, 그래서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신 예수님이시오, 우리의 모든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우리 주님이 되십니다. 요한복음 10장 14절~15절은 말씀합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주님이 우리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양 같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내 뜻대로, 내 고집대로 하려는데 바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여러분의 삶에 진정한 목자로,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시면 우리의 길이 되시고 진리가 되시고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께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유일한 길이 되시고 인생의 진정한 목적을 깨닫고 살게 하는 참된 진리가 되시고 영생을 선물로 주시는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좋은 목자 되시는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구세주가 되셔서 우리를 죄와 절망에서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고 주님을 따라갈 때 우리 일생은 복된 일생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길 잃어 방황하는 우리에게 천국의 길을 보여주시고 그리고 우리를 날마다 축복의 자리로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5절에 이와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목자가 없을 때는 양처럼 길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길을 잃어버려서 앞을 잘 보지 못하니까 낭떠러지에 떨어져 다쳐 죽기도 하고 또 사나운 짐승에게 공격받아서 죽음을 당하기도 되었는데 그러한 길 잃은 양 같은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한 원수 마귀는 우리 영혼을 도둑질하고 멸망시키려고 왔지마는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더욱 풍성한 삶을 얻게 해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할렐루야. 예수님이 오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시고 더 풍성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목자로 모시고 한평생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따라가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내 삶의 주인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실 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 주인이 되십니다. 목자가 양을 돌보는 것은 주인으로서 양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목자와 양과의 관계와 같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예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시고 우리의 주인이 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입술로는 예수님을 나의 주인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정작 세상에 나가서는 자기가 자기의 삶에 주인이 돼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양이 어디로 가야할 지 결정하고 인도하는 것은 목자인데 본인이 스스로 내가 원하는 길을 가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문제는 나의 주인인 주님을 따라가지 않고 내가 주인이 되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자꾸 시험에 드는 이유는 내 삶의 주인이 내 자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주인이시면 내가 자꾸 시험에 안 들어요. 누가 뭐라고 말해도 상처받고 아무것도 아닌데 분노하고 다투고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교회 내 분열을 일으키고 다툼을 일으키는 것은 다 내가 양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에 잘못을 행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인데 내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원망하고 불평하고 분노하고 다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삶의 주인이 되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고 난 다음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우리 주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여러분의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주인 되신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모든 문제에서 우리가 자유함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좋으신 우리의 주님이 되십니다. 참으로 좋으신 목자가 되시고 주인이 되셔서 우리 삶에 놀라운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고난을 당할 때도 내가 외롭고 슬퍼 밤잠을 자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도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을 때도 모든 사람이 다 나를 떠나 나 혼자 내동댕이쳐져 있을 때도 주님은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목자가 되어주셔서 우리를 돌보시며 우리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이후 여러분의 삶에 주인이 주님이심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 제일주의. 하나님 먼저의 신앙을 갖고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 33절에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먼저가 잘못되어 있으니까 다 뒤죽박죽되는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잘되는 것도 다 내가 잘나서 잘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요. 내가 잘못되는 것도 주님이 나를 훈련시키셔서 나를 다듬으셔서 잘되게 만들어 주시려고 고난을 통과하게 하시는 것이니 그때도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나아가면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려움 당할 때, 고난 당할 때, 문제를 만났을 때, 육신에 예기치 않은 질병이 왔을 때 원망, 불평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삶의 주인이 되면 상처투성이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 왜? 여러분이 여러분 삶의 주인이니까. 그러나 주님이 여러분의 삶의 주인이 되면 원망과 불평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욥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이 다 날아갔습니다. 열 자녀를 다 잃었습니다. 건강도 잃었습니다. 그의 아내도 떠나갔습니다. 친구들은 와서 손가락질합니다. 그런데 욥기 1장 22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보통 사람 같으면 원망하죠. 하나님, 하나님 살아계시다면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재산이 없어지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열 자녀를 하루아침에 그렇게 데려가십니까. 누구나 원망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에서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왜?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오, 거두신 이도 하나님이시니 주님만이 홀로 영광받으시옵소서.

철저한 주인의식. 주님이 나의 모든 것 되심을 알았기 때문에 가장 힘들고 어려운 절망의 밑바닥에 떨어졌어도, 원망하지 아니하고 불평하지 아니하고 주님께만 영광 돌리는 욥을 바라보고 그 믿음을 본받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 부족함이 없는 인생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는 은혜가 임합니다.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우리가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23편 1절에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며 사는 인생입니다. 사업이 잘돼서 돈을 잘 버는 사람을 만나서 다음 목표가 무엇입니까? 더 많이 돈을 버는 것입니다. 그 다음 목표가 무엇입니까? 더욱 더 많이 버는 것입니다. 욕심이 끝이 없습니다.

축복받은 것을 나눠주면 그것이 더 큰 축복으로 다가올 텐데 더 움켜쥐고 있다가 어느 날 호흡이 멈추면 다 놓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이 세상에서 참된 만족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물을 마셔도 늘 목에 갈증이 오는 것처럼, 이 세상 어떤 것이 나를 모든 것을 메꿔주고 참된 만족을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가 다 가지고 있어서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에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부족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가지라도 원수의 목전에 있다 할지라도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4, 5절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 자신을 바라보면 부족하고 연약하고 내 주변을 바라보면 늘 모든 것이 못마땅하고 나를 만족시키지 못하지만 주님을 바라보면 그것이 기쁨이고 은혜이고 감사고 찬양할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환경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대적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평생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사람을 바라보면 환경을 바라보면 문제를 바라보면 부정한 것 투성이인 것입니다.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나갈 때 큰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34편 9절과 10절은 말씀합니다.

너희 성도들아 야훼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야훼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젊은 사자는 모든 동물 가운데 가장 힘이 강한 동물의 왕입니다. 그런데 그 젊은 사자도 어느 날은 자기가 사냥을 실패해서 굶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다 숨어버리면 자기가 사냥할 먹이를 찾지 못하니 굶기도 하겠죠. 그러나 젊은 사자는 혹시 굶주릴 때가 있다 할지라도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에 거할 때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할렐루야!

주님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시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낮에는 40, 50도 뜨거운 뙤약볕에 밤에는 추운 광야에 풀 한 포기 잘 나지도 않고 어디 하나 마실 물이 없는 그 광야 길을 40년을 가는 동안 주님이 인도해 주셨습니다.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나가면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필요할 때마다 필요할 때마다 공급해주시고 저들을 돌봐주셨기 때문에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버텼고 그들의 후손이 약속의 가나안 땅에 다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경외하고 사랑하고 주님을 섬기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로 우리가 받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을 목자로 모시고 살아갈 때 풍성한 주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고 우리 마음에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4장 4절의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6절과 7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된 자유가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평안이 있습니다. 만족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뿌리가 깊은 사람들은 이와 같이 고백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에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나는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주님만이 나의 모든 것 되십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왜 여러분이 여러분의 인생을 주인공으로 살려고 그렇게 고생하며 애쓰고 상처투성이인 인생으로 살고 계십니까? 어차피 내 힘으로 사는 인생은 힘에 부치는 인생이요, 고달픈 인생인 것입니다. 한번 지나가는 인생인데 주님을 목자로 모시고 주님을 주인으로 섬기고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한 분으로 만족합니다. 주님이 여러분의 일생을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지난달에 "나는 같이 살기로 했다"라고 하는 책이 출간되었는데 고난 중에 고난을 헤쳐 승리한 한근영 사모의 간증을 담은 책입니다. 남편은 희귀 난치성 질병으로 투병 중이고 큰아들은 불안증을 앓고 있는 그런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이 사모님은 주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원래 작은 교회 가난한 부교역자 사모로 살면서 어지간한 어려움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행복하게 살았던 그분에게 갑자기 감당하기 어려운 큰 고난이 다가왔습니다.

나이 서른한 살 결혼 5년 차였던 2001년에 남편이 섬유 근육통 증후군이라는 희귀난치성 질환 진단을 받았습니다. 어디에서 이 병이 왔는지 이 병이 온 원인도 발견하지 못하고 또 여기다 치료법도 없어서 연구과제인 병에 걸린 것입니다. 온몸이 바늘을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와서 너무 고통스러워서 잡을 수 있는 것은 진통제밖에 없는 병인데 그래서 남편이 사역을 할 수가 없어서 사표를 내고 쉬었다가 몸이 조금 좋아져서 다시 또 사역을 하다가 다시 또 그만두고, 그래서 사모님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했습니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 겨우 몸을 움직이는 남편이었는데 그래도 목사님이니깐 주일을 해야 하니깐 조그만 방 한 칸에서 2008년도에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담트고 길닦는 교회'라는 교회를 개척하고 이제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개척 후 1년 만에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큰아들이 갑자기 불안증을 앓기 시작하는 데 원인을 모를 코피를 쏟고 다리에 통증과 어지러움을 호소하고 해가 지나도 병이 낫지 않아서 학교를 쉬게 되고, 그러다 보니깐 남편도 돌봐야 하죠, 아들도 돌봐야 하죠, 본인도 우울증에 걸리고 수입은 없고 통장은 바닥이 나고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울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왜 나를 내버려 두시나요? 나는 완전 사막 한복판, 어쩌면 망망대해 한복판에 버려졌어요. 어떻게 헤쳐나가라고요?"

울부짖으며 기도하는데 갑자기 마음속에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나는 너를 한순간도 내버려 둔 적이 없단다."

그 순간 그녀는 지금까지 그리고 지금도 앞으로도 자신을 떠나지 아니하고 돌봐주실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일어섰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어떤 고난도 결국은 이겨낼 것이고 유익이 될 것을 믿으면서 고난과 싸우며 하루하루 믿음으로 전진해나가는 가운데 남편의 건강이 서서히 회복되고 또 큰아들은 미술에 재능이 있는데 미술에 전념하면서 오랫동안 복용하였던 항우울증 약을 끊고 둘째 아들은 학교에서 공부를 잘해서 고등학교 전체 수석으로 공부하고 있고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 가정에서 드려지는 예배가 부흥하게 돼서 상가를 얻어 지금 50명이 넘는 성도가 모이기 시작하고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제게 많은 일이 회복 중임을 보게 하심으로, 고통에는 반드시 끝이 있음을 믿게 하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새롭게 시작된 또 다른 고통의 문제에도 믿음으로 대응할 용기가 납니다. 물론 어떤 고통은 10년, 20년, 때론 평생에 걸쳐 씨름해야 하겠지요. 하지만 그런다 한들 두려워 떨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어차피 우리는 한 치 앞을 볼 줄 모르고 작은 문제도 스스로는 해결 못 하는 양들이기에, 어떤 문제 앞에서도 한 발 한 발 선한 목자의 뒤만 따라갈 뿐입니다. 그러면 종내에 주께서 그 한걸음들을 모아 우리 인생의 그림을 가장 아름답게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통은 과정일 뿐인 것입니다. 고통을 바라보고 괴롭고 힘들어하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고 고통을 뛰어넘으시길 바랍니다. 환난을 뛰어넘으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여러분의 목자가 되셔서 반드시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고,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살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주님 안에서 부족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연약해서 늘 부족하다고 원망하고 불평하였습니다. 몸이 아프다고 불평하고 자식이 속 썩인다고 불평하고 사업이 곤두박질한다고 불평하고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주님이 나의 목자가 되셔서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며 승리의 삶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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