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두려워하지 말라/이영훈목사

<말씀봉독>
“야훼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야훼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야훼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야훼의 말이니라 하시고”(예레미야 1장 4~8절)

<등단 후 멘트>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십니다. 우리 일생 다 가도록 첫째도 예수님, 둘째도 예수님, 마지막도 예수님입니다. 

   <복음성가: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1절)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2절)
힘이 없고 네 마음 연약할 때 능력의 주님 바라보아라
주의 이름 부르는 모든 자는 힘 주시고 늘 지켜주시리

(후렴)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 예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주님 만 바라봅니다. 다 같이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 예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봅니다. 우리 모두가 힘들고 지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데, 주님, 자신을 바라보고 문제를 바라보면 우리는 가라앉지만, 주님을 바라보면 우리는 일어납니다. 새 힘을 얻습니다. 치료함을 받습니다. 회복이 됩니다. 그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하여주셔서 주님 안에서 위대한 승리자의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오늘 말씀의 제목입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예레미야 1장 본문 말씀 가지고 함께 은혜 나누기를 원합니다. 제목을 한번 따라해주세요.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흔히 세상을 고해, 고난의 바다라고 부릅니다. 좋은 일만 일생 동안 우리 앞에 펼쳐지면 참 좋은데, 예기치 않은 어려움들이 우리 앞에 가로놓일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문제는 겨우 그 문제를 해결하고 난 후에 또 문제가 다가오고 또 문제가 다가오고 우리에게 고난과 어려움이 그치지 않는 데 우리의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많은 문제와 어려움을 당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을 굳건히 지켜야 됩니다. 우리 마음이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나 죽음이 해결이 아닙니다. 죽음은 영원한 절망입니다. 이겨내야 합니다.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잠언서 4장 23절에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지키시길 바랍니다.

어떻게 마음을 지킵니까?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께 딱 시선을 고정시키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생각하고 예수님만 의지하고 말씀 붙잡고 나아가면 우리의 마음을 지키고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환란이 변하여 축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가나안 정복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여호수아 1장 5절입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절망에 처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절망하지 마라. 낙심하지 마라. 내가 나와 함께할 것이라. 놀라운 것은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만세 전에 택하고 부르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1.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

오늘 예레미야 1장은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에 대해 이렇게 4절, 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훼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오늘 말씀 보니까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를 아시고 택하셨다 말씀합니다. 오늘 여러분들 여기 와서 앉아 예배드리는 것은 여러분이 자동차를 타고 오고, 걸어오고, 지하철로 왔고, 버스를 타고 왔던 간에 우연히 이곳에 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세 전에 택하여서 오늘 이 자리까지 인도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오늘 이곳에 와서 예배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택하고 부르신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머니 뱃속에 만들어지기 전부터 너를 알았고 내가 너를 택하였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예레미야를 잘 알고 계십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그에 대해 알고 계셨고 그가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서 오늘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태어나서 오늘 여기까지 온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어떻게 험한 나의 어린 시절과 나의 인생에 경험을 하면서 오늘까지 온 것을 주님이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알고 계시고 우리의 죄와 허물을 알고 계시고 감춰두고 싶은 은밀한 죄도 주님이 다 지켜보고 알고 계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통하여 주님의 일을 하길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늘 주 앞에 나와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나올 때 우리 손을 붙들어 주시고 우리를 통하여 주님의 놀라운 일을 이루시고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택하고 부르신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는 감사해야 됩니다.

이사야 43장 1절에 위대한 축복의 선언이 나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야훼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할렐루야!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지명하여 불렀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우리 이름을 불러서 칭찬하면 참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시험 성적표를 나눠주면서 “김 아무개, 이번에 이 성적이 전교 1등이야.” 그러면 나가서 성적표 받아오면서 기분이 우쭐합니다. 학교 선생님이 나를 인정해줘도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데, 하나님께서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 우리를 지명하여 불렀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내 것이라!” 누가 우리를 함부로 하지 못합니다! 왜?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버림받은 인생이라고 말씀하지 마십시오! 부모님 없이 고아로 자랐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입니다.

예레미야 1장 5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구별하셨을 뿐만 아니라, 사명을 주셨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 앉아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님이 사명을 주셨습니다. 각자 각자에게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직장인은 직장인으로서, 사업가는 사업가로서, 가정주부는 가정주부로서, 학생은 학생으로서, 선생님은 선생님으로서, 예술인은 예술인으로서 각 자기의 속한 분야에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법조인은 법조인으로서, 의료인은 의료인으로서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내가 하는 그 어떤 일이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다 소중한 것입니다. 사명 받은 자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행기가 하늘에 떠서 날라가는데 기장만 파일럿이 돼서 비행기를 조종하고 나는 것이 아닙니다. 비행기가 뜨기 전에 정비사들이 철저하게 점검하고 또 점검하고 점검해고 해서 모든 점검을 마친 후에 또 기름을 가득 채워서 그 다음 비행기가 뜰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냥 뜨는 것이 아닙니다. 또 관제탑에서 지시를 내립니다. 지시를 따라서 비행기가 뜨고 항로에 따라서 비행기가 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한 사람도 자기 일을 소홀히 하면 큰 사고가 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가 사명자입니다. 여러분이 있는 곳에 최선을 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여러분이 직분을 맡았으면 장로님은 장로님으로서, 권사님, 안수집사님, 남녀선교회, 지구역장, 찬양대, 오케스트라, 교회학교 교사 어느 부서에 있든지 간에, 여러분이 사명을 잘 감당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선교연합회에 와서 사역하는 여러분들은, 선교연합회에 친교로 모인 것이 아니라 선교하기 위해서 모였다는 것을 아시고 선교의 사명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2. 우리의 연약함

둘째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연약함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1장 6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야훼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우리 모두가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예레미야가 말하기를 슬픕니다. 나에게 그 큰 사명을 주셨는데, 나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그 일을 잘 감당할 능력이 없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어떤 큰 일이 우리 앞에 닥쳐왔을 때, 그러한 일이 맡겨졌을 때 두려워하고 주저하게 됩니다. 나는 이 일을 감당할만한 아무런 능력이 없는데, 난 그 힘이 없는데, 예레미야는 말합니다. 난 아직 나이가 어린데, 젊은 제사장으로서 이 큰 일을 할 수 있는 그러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이 많은 경험 있는 제사장이 아니라 나는 겨우 초년병인데, 목사로 말하면 내가 이제 겨우 목회를 시작하는 목사 초년병인데 어떻게 큰 교회를 맡기셔서 이 일을 감당하게 하십니까. 저는 못합니다. 저는 아이입니다. 저는 말주변도 없고, 이를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러나 우리 외모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야훼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사람들은 겉의 모습을 봅니다. 얼마나 많이 배웠느냐, 얼마나 그가 가진 능력이 많으냐, 이것을 가지고 먼저 평가 하려고 합니다. 뒷 배경이 누구냐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제쳐 놓고 그 마음에 중심을 보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느냐, 얼마나 주님 앞에 진실 되느냐 그 모습을 보시고 주님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이 주님 마음에 합한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러한 마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앞에 진실한 주님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늘 실수합니다. 늘 넘어집니다. 늘 자기의 어려움을 피해보려고 말을 바꾸고 속이고 거짓말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부족하고 허물 많은 우리를 들어 사용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나는 연약하지만, 난 능력이 없지만,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으시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일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폭적으로 우리 주님을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 감격하면서 주님 내 모습 이대로 주님께 바칩니다. 주님 나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우리의 마음에 중심을 보시는데 우리가 예수를 처음 믿었을 때 그 뜨거운 열정. 그 눈물 그 주님 앞에 드리는 넘치는 감사의 모습을 회복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에베소교회를 책망하는 장면이 요한계시록 2장 4절입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이 말씀을 우리가 또 되새기고, 또 되새겨서 첫사랑을 회복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가장 큰 문제가 형식주의, 습관주의에 빠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입니다.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 정말 하늘을 날 듯 한 기쁨을 갖고 내가 대기업에 취업을 했을 때, 내가 정말 잘 해야 겠다. 더 일찍 나와 가지고 들뜬 마음으로 아주 열심히 일을 하는데, 일주일, 한 달, 일 년 지나고 나면 적당 적당히 시간을 때우고 퇴근시간만 시계를 보며 기다리는 모습으로 바뀌어 지는 자기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세상 직장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예배 태도가 어떠합니까. 예배 태도가 어떠합니까.

 저는 미국에서 십 몇 년 만에 우리 처음 여의도순복음교회로 나오면서 너무 감격해서 저 밑에 계단부터 울면서 계속 계단 올라와 처음 예배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울었다는 어느 성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연 우리가 그런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오고 있는가? 첫사랑의 감격에 우리가 머물러 있는가? 아니면 알게 모르게 우리의 신앙이 나태해지고, 습관적이 되고 형식적이 되어서 예배의 구경꾼으로 전락하지 않았는가?

예배 시간에 딴 생각이 많으면 구경꾼이 이미 된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으면 벌써 나는 습관적인 신앙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매너리즘에 빠져 버린 것입니다. 우리 신앙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으로 재 충만 받아서 매일 매시간이 내 운명을 바꾸는 기적과 축복의 시간이 되고, 우리들의 기도가 찬양이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올 때 드리는 우리의 정성이 하늘보좌를 감동시키는 그러한 우리의 헌신과 섬김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 영적으로 재무장해서 우리 삶에 어떠한 문제가 다가오더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담대하게 나가는 주님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3.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

셋째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을 봅니다. 예레미야 1장 7절에 “야훼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내 입으로 스스로 부정적으로 말하지 말라. 저는 못합니다. 할 수 없습니다. 아닙니다. 이렇게 말하지 말라. 내가 함께 하고 있지 않느냐? 너는 가라! 내 명령에 순종하고 가면 내가 무엇을 말할지 너에게 다 가르쳐줄 것이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못합니다.’ ‘안됩니다.’ 하지 말고 순종하겠습니다. 가라는 곳에 가고 전할 말씀을 전할 때 그 말씀을 전하는 주님의 일꾼이 될 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같고 내 스스로 하려고 하면 또 쓰러지고 또 쓰러지고 상처투성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너는 아이라고 말하지 말라! 더 이상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말고 나만 믿고 의지하라!”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 믿음은 전폭적으로 말씀을 믿고 말씀 붙잡고 나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 생각과 판단을 뛰어넘어서 난 할 수 없지만 능력은 없지만 주님이 함께 하시니 주님이 도우시는 능력으로 내가 이일을 감당하겠습니다. 나아가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예레미아 1장 8절에는 이렇게 말씀을 주십니다.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야훼의 말이니라 하시고” 너를 대적하고 너를 치려하는 많은 무리들 때문에 “두려워 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니라!” 여호수아 1장 9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야훼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강하고 담대하라! 강하고 담대하라! 강하고 담대하라!” 우리에게 주님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언제 제일 약한지 아세요? 내 자신의 약함을 내가 바라볼 때 내가 제일 약합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압니다. 내가 스스로 두려워 떱니다. 내가 스스로 나의 약점 때문에 주저앉습니다. 나의 지나간 과거의 상처 때문에 나의 잘못 때문에 나의 허물 때문에 스스로 주저앉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두려움에 갇혀서 주저앉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함께 할 것이다.”

 로마서 8장 31절에 위대한 축복의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이 우리 편이신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일하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우리들은 너무나 우리 인간의 약함에 사로 잡혀서 흔들리고 상처받고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는데 무엇을 두려워하느냐?”, “왜 낙심하느냐?”, “왜 염려하느냐?” 주님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 우리 자신을 보면 이 연약한 종이와도 같습니다. 이 종이는 그저 쉽게 바람에 흔들리고 아이들이 손가락으로 찔러서도 구멍을 낼 수 있는 이런 연약한 종이입니다. 그런데 이 종이에다가 이 철판을 붙여놓으면 그 무엇이 와도 뚫지 못합니다. 절대로 이 종이가 철판에 붙어 있는 동안에는 종이는 견고한 종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이 같지만 견고한 철판과 같은 주님이 딱 우리 뒤에 서서 우리를 받치고 계시기 때문에 어떤 것이 우리를 공격하고 공격하고 공격해도 우리는 절대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기고 또 이기고 또 이기고 또 이기는 것입니다.

 예레미아 1장 18절 19절의 축복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보라 내가 오늘 너를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지도자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그들이 너를 치나 너를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야훼의 말이니라”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미 견고한 성읍이 되었고 쇠기둥이 되었고 놋성벽이 되었으니 그 누가 벌떼처럼 치러 달려와도 결코 너를 헤하지 못할 것이다. 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주님 일을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비웃고 공격하고 조롱하고 도전해 올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일을 하지 않으면 이런 욕을 안 먹어요. 그러나 앞장서서 나가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공격이 집중되어서 그를 무너트리려고 시도 때도 없이 어려움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말씀 꼭 붙잡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미 택함 받을 때 견고한 성읍이 된 것입니다. 쇠기둥이 된 것입니다. 놋성벽이 된 것입니다. 마음의 두려움만 떨쳐내 버리면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가 있습니다.

 꿈과 희망을 전하는 닉 부이치치(Nick Vujicic) 전도사를 기억합니다. 저희 교회에 와서 금요철야 때 간증을 하는데 큰 감동을 받았어요. 태어날 때부터 두 팔과 두 다리가 없이 태어났습니다. 몸에 가진 것이라고는 발가락 두 개 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 얼굴에 기쁨이 충만합니다. 기쁨이 충만해요. 간증을 하는데 얼마나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감격의 간증을 하는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사지가 없어서 불행하냐고요? 마음에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더 불행합니다. 신체장애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목적이 있다면 어떠한 고난도 어떠한 역경도 능히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앞길이 막막했던 어린 시절에는 다른 사람의 손과 발을 한없이 부러워하며 ‘왜? 나는 손과 발이 없을까?’ 생각하면서 절망하기도 했죠. 하지만 전 발가락이 둘 있어요 두발가락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발가락이 둘인데 그 발가락 가지고 책도 넘기고 그것으로 모든 일을 다 합니다. 이제 팔 다리가 없다고 불행하기 보다는 제가 가진 두 개의 발가락으로 인하여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이런 위대한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두 팔 두 다리가 없고 발가락만 두 개 붙어있는데 감사하잖아요. 여러분 멀쩡하게 열손가락 열 발가락 다 있는데 감사하지 아니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남 탓하고 부정적으로 말하고 살았던 것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해야 돼요. 여러분의 삶의 모습이 닉부이치치보다 더 절망적인 사람은 한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발가락 두 개로 감사하는 이분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 하고 있는가?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참 감사한 것은 그가 이렇게 절망의 자리에서 하나님과 함께해서 절대 긍정의 삶을 사니까 하나님이 아주 훌륭한 믿음 좋은 부인을 보내주셨어요. 2011년에 결혼을 했는데 일본계 멕시코 여인인 카나에 미야하라와 결혼해서 두 아들하고 쌍둥이 두 딸을 낳아서 네 남매를 기르면서 이렇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분과 결혼한 부인도 대단하고 또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서 네 자녀는 열 발가락 열 손가락이 다 있는 애가 네 명이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의 삶의 승리는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지금 자꾸 넘어지고 상처받고 절망한다고 여러분 그런 인생이 끝이 아닙니다. 절대 인생 포기하지 마십시오. 인생은 예수를 믿은 그날부터 다시 새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머물러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열 번 넘어져도 열 한번 일어나고 백번 넘어져도 백 한번 일어나서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가야 될 것입니다.

 여호수아 1장 5절에서 6절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우리 일생 다하도록 우리를 대적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만군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강하고 담대하라! 강하고 담대하라!” 이 말씀 붙잡고 한평생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때때로 너무나 힘들고 어려워서 다 내려놓고 싶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 듣고 다시 일어납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너를 알았고 너를 지었다고 말씀하신 주님 내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만 의지하고 한평생 살기 원합니다. 가슴이 찢어지고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고통과 괴로움이 다가와도 주님 말씀 붙잡고 다시 일어납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갑니다. 우리 일생을 주님 함께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조용기목사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사도행전 3장 1~10절)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있은 후,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어느 날 베드로와 요한이 유대인들의 관습을 따라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었는데 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걸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먹고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구걸을 해야 했습니다. 매일 아침 다른 사람이 업어서 성전 미문에 데려다주면 하루 종일 길가에 앉아서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도와 달라고 손을 내밀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그 사람 앞을 지나갈 때, 갑자기 베드로의 마음속에 ‘이 사람이 오늘 일어나서 걸을 수 있다!’라는 확신이 용솟음쳤습니다.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주셔서 그 사람이 일어나 걷게 될 것을 알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앉은뱅이에게 “우리를 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앉은뱅이가 베드로를 쳐다보았습니다. ‘이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주려고 쳐다보라고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올라 두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다.” 잔뜩 기대하고 있다가 돈이 없다는 말을 듣자 마음속에 실망이 꽉 들어찼습니다. 은과 금이 없는 사람이 왜 자기에게 우리를 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단호하게 명령을 합니다.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리고는 어리벙벙하게 앉아있는 그 사람의 손을 잡고 일으켰습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그에게 임하자 갑자기 무릎이 펴지고 다리에 생기가 돌았습니다. 그는 벌떡 일어나서 구걸이고 뭐고 다 집어 치우고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 사람은 일시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성령의 능력으로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 받은 것입니다. 만약 베드로가 그에게 동전 몇 푼만 주고 그냥 지나가 버렸다면 그 날 끼니는 해결했을지 몰라도 걷지 못한다는 근원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평생 길가에 앉아서 구걸하면서 살다가 인생을 마쳤을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은 일시적이고 현실적인 인생의 문제보다도 영원하고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현실적인 문제는 자연히 해결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 성경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찌릿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준다.”고 말했는데 베드로는 자기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았던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은과 금을 가지고 있는데 예수님의 능력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자기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내게 있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다면 인생의 어리석음을 만날 때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나는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내게 있는 것이 있으니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겠다!” 적어도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베드로처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나에게는 과연 무엇이 있는가?’를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첫째로, 내게 있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예수님 자신이기 때문에 예수 이름에 권세와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도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름을 주셨어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 유익도 얻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이름을 주신 것은 그 이름의 권세와 능력을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는데 바로 죄를 사하는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가시관을 쓰시고 양 손과 양 발을 대못에 박히시고 창에 찔려 물과 피를 쏟음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로 6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를 다 청산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 중에 30년이 넘도록 이단 사설에 매여 있다가 회개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딸이 어머니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전도했으나 도무지 딸의 말을 듣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딱 한 번만 교회에 가달라는 부탁에 못 이겨 예배에 참석했다가 예수님의 이름과 그 보혈에 대한 설교를 듣고 그 자리에서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예수님을 영접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다 청산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죄를 안 지은 사람처럼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이처럼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또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 16:17~18)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어떤 부부의 간증을 들었었는데 남편이 술만 먹으면 부인을 때리는 것입니다. 참다못한 부인이 마지막 방법으로 남편에게 철야예배를 가자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철야예배를 드렸는데 어떤 집사님이 남편에게 와서 “당신 알콜 중독인데 술을 끊지 않으면 곧 죽습니다.”라고 말하고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두려워진 남편이 아내와 기도원에 올라가 7일 금식 기도를 하고 있는데 그 남편이 아내에게 말하기를, “내 옆에 검은 사람이 쫓아다니면서 술을 먹어보라고 하고 아내를 때리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았더니 귀신이 떠나가고 그 날 이후로 술을 딱 끊고 착실한 성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오늘날에도 일어납니다. 오늘날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쫓아내면 귀신이 나갈 리가 없지요. 우리 힘이 아니라 예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귀신이 쫓겨나가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대만에서 복음을 증거할 때, 신유기도가 끝난 후 간증시간에 어떤 부인이 엑스레이 2장을 가지고 나와서 그리고 간증하기에 “코에 중한 병이 있었는데 병원에서 의사들이 도저히 고칠 수 없다고 했는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눈 깜짝 사이에 나아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엑스레이를 가지고 나와서 사람들에게 간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분야에 전문가인 의사가 마침 집회에 참석했다가 나를 붙잡고 하는 말이 “당신 가짜가 아니죠? 진짜죠?” 그러는 겁니다. 그러고는 내가 쓴 ‘4차원의 영성’을 손에 들고 “이거 거짓말 아니고 참말이죠?” 또 그렇게 묻습니다. 그래서 내가 “거짓말 같으면 안 읽으면 되지 않느냐? 내가 뭐 할 일이 없어 거짓말을 하고 다니겠느냐?”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그 의사가 찾아와서 하는 말이 “나는 이비인후과 전문의다. 의학적으로는 그 병은 그렇게 순간적으로 나을 수가 없는 병인데 순식간에 낫는 것을 보고 너무나 믿기지 않아서 진짜인가 자꾸 물어본 것이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사람이 완전히 예수 믿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육체의 병을 고쳐 주시고 마음의 병을 고쳐 주시고 생활의 병을 고쳐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이 시간에도 여러분의 병을 고치고자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절)라고 말씀하고 계셨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약간 기도하다가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나 예수 이름에 하나님의 치료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진짜로 알면 목숨을 걸고 하루도 좋고 한 달도 좋고 매달리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럴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두 번 쫓아내서는 귀신이 나가지 않습니다. 나가는 것이 자기의 멸망이므로 귀신도 안 나가려고 끝까지 발버둥을 칩니다. 그러나 승리는 이미 우리의 것임으로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끝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예수 이름의 능력으로 가난과 저주에서 해방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천국만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이 땅에 사는 동안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을 지으셨을 때,  벗고 또는 굶주림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아담이 마귀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반역함으로 말미암아 땅이 저주를 받아 우리 삶에 가난과 저주가 들어온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길을 믿으면 아브라함의 복을 받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죽음도 이길 수 있습니다.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육신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 11:2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육신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15절에 예수님이 오신 것은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부활과 영생을 소망을 안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이름을 가볍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은 하나님 아들의 이름이요 그 속에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린 모든 공로가 들어 있으며 그 속에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2. 함께하시는 성령님

둘째로, 내게 있는 것은 성령님입니다. 여러분, 인생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것 중 하나는 고독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했을지 몰라도 고독이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우울증에 걸리고 많은 고통을 당합니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함께 있어도 그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고독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외롭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6~17)’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십니다.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인생에는 나 혼자란 없습니다. 언제든지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항상 이것을 생각하고 고백하십시오. “성령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나는 혼자 인생을 살지 않는다, 성령님과 함께 인생을 산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다.” 여러분 혼자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고 성령님이 함께 계시니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전도서 4장 12절에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아무리 힘든 일도 여럿이 함께 하면 넉넉히 이겨내는 것입니다. 사람이 함께해도 이처럼 힘을 얻는데 하물며 성령님이 함께하신다면 우리가 못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3. 사랑의 손을 내밀라

셋째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다른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절망이라는 길가에 주저앉아 있습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있던 사람은 다리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고 싶은 곳에도 못 가고 하고 싶은 일도 못하고 오도 가도 못하고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리를 쓰지 못하는 사람만이 앉은뱅이가 아닙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죄의 사슬에 매여서 불의와 더러움에 매여져서 질병에 매여져서 가난에 매여져서 죽음에 매여져서 오도 가도 못하고 절망의 자리에 주저앉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갖가지 문제에 매여서 날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는 모든 인생이 앉은뱅이인 것입니다.

앉은뱅이는 혼자 움직일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앉은뱅이로 살아가던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고 뛰게 되었으니 이제는 우리가 다른 이들을 향하여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은과 금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이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망으로 주저앉은 사람들에게 다가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사도행전 3장6절)’ 그렇게 복음을 선포하고 복음의 능력으로 그들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구세군 창시자인 윌리암스 부스(William Booth)에게 “당신의 전도 비결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어느 날 런던의 빈민가를 보았을 때,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내게 금과 은은 없었지만 나의 전부인 그리스도를 전하여 주리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전도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말한 것은 사랑의 외침인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이 일어나 걷기를 바라는 베드로의 사랑의 외침이 그를 온전하게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외침이었던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로 쓰임을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죄와 더러움과 질병과 저주와 죽음 때문에 절망의 길에 앉아 있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의 손을 잡고 일으켜 교회에 데리고 와서 새로운 인생을 살도록 도와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사랑의 삶입니다.

교회가 구제 사역을 하는 것은 그들의 일시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으로서 참으로 귀한 사역입니다. 하지만 교회의 사명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근원적이고 영원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인생에게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가는 곳마다 인생의 근원적이고 영원한 문제를 해결하시는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오늘 오신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 이름으로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을 돌아보아 절망의 자리에 주저앉은 사람들을 예수 이름으로 일으켜 세우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도>
은혜로우시고 긍휼하신 아버지 하나님! 이 땅의 모든 인생들의 삶이 마치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 장애인과 같이 서럽고 힘들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들 모두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예수믿고 구원받아 성령받은 우리가 그들에게 주님의 이름을 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우리는 연약하오니 날마다 인도하시고 힘을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이영훈목사

<말씀봉독>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시 51:10~13)

<등단 후 멘트>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다녀오고 나서 주님께서 주신 말씀은 교회를 새롭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를 새롭게 하라. 교회가 새로워져야 한다. 교회를 개혁해야 한다. 그래서 저는 2019년도에 들어와서 그 새롭게 해야 될 1차 대상을 우리 장로님 그리고 우리 주의 종들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기도원의 기도굴에 들어가서 기도하는데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개혁 1호 대상이 바로 너다. 네가 죄인의 두목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1서 1장 9절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 붙잡고 많이 울었습니다. 이것은 저뿐 아니라 여러분 모두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숨겨질 죄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죄에 대해서 너무나 관용했습니다. 은혜라는 것으로 덮었습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낱낱이 고하고 우리 주님 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 보시기에 부끄러움 없는 모습으로 서야 합니다.

요한1서 1장 9절 말씀을 우리가 다 같이 한 번 고백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오늘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완전히 주님 앞에서 죄 사함 받고 치료받고 회복되어서, 다가오는 날들이 여러분 생애에서 가장 위대한 날들로 바뀌어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모든 상처가 치료함 받고 죄책감에서 놓여남 받고 주님의 풍성한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송가:(통 332) 274장: 나 행한 것 죄뿐이니>

(1절)

나 행한 것 죄뿐이니 주 예수께 비옵기는

나의 몸과 나의 맘을 깨끗하게 하소서

물 가지고 날 씻든지 불 가지고 태우든지

내 안과 밖 다 닦으사 내 모든 죄 멸하소서

(2절)

내 어둔 눈 밝히시니 참 기쁘고 고마우나

그보다 더 원하오니 정결한 맘 주옵소서

물 가지고 날 씻든지 불 가지고 태우든지

내 안과 밖 다 닦으사 내 모든 죄 멸하소서

(3절)

정결한 맘 그 속에서 신령한 빛 비치오니

이러한 맘 나 얻으면 눈까지도 밝으리라

물 가지고 날 씻든지 불 가지고 태우든지

내 안과 밖 다 닦으사 내 모든 죄 멸하소서

(4절)

못된 행실 다 고치고 악한 생각 다 버려도

주 앞에서 정결타고 자랑치는 못하리라

물 가지고 날 씻든지 불 가지고 태우든지

내 안과 밖 다 닦으사 내 모든 죄 멸하소서

주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다 일어나서 몸만 불편 않으시면 우리가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주님 앞에 일대일로 내 죄를 회개하고 앞으로 남은 여생 주님 영광을 위해 살길 원한다고 고백하는 시간 되길 원합니다. 주님만이 아십니다. 오늘 주님과 나와의 만남을 통하여 여러분의 삶이, 일생이 바뀌어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물 가지고 날 씻든지 불 가지고 태우든지

내 안과 밖 다 닦으사 내 모든 죄 멸하소서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은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 것 잘 압니다. 잘 알면서도 예배드릴 때만 그 마음이 조금 표현될 뿐이고 교회를 나서는 순간부터 우리는 쉽게 무너집니다. 죄와 타협하고 물질의 탐욕에 빠지고, 각종 세상의 중독에 빠져서 주님 보시기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았던 것을 회개합니다. 주님, 예수님한테 우리가 빠져야 되는데 세상에 빠졌습니다. 음란 중독, 도박 중독, 알코올 중독, 담배 중독, 마약 중독, 인터넷 중독, 빠져서는 안 될 죄의 수렁에 빠져서 발목이 잡혀서 절망적인 삶을 살았던 것을 회개합니다. 겉으로는 거룩한체하면서 안 보이는 은밀한 죄를 지었던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시고 이제 저희들이 그 삶에서 벗어나 우리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주님이 사랑하는 모습으로 회복되어지게 하시고 하나님 은혜 가운데 우리가 날마다 승리하며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설교말씀>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너무나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죄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나고 추함에도 불구하고 늘 주님을 배반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주님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 때문에 우리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다시는 주님의 사랑에 배신하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죄책감에 매여 살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삶 가운데 풍성한 주님의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오늘의 말씀의 제목은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입니다. 한 번 따라하세요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편 51편 10절로 13절 말씀 가지고 함께 은혜를 나눕니다. 다시 한 번 제목을 따라해 주세요.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여러분 예수를 믿고 나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바로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무너뜨리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죄의 심각성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은혜의 시대에 살다보니까 너무나 은혜 속에 죄를 덮어두었습니다. 주님은 엄히 꾸짖으셨습니다. “철저히 회개하고 돌아서라. 이제 오늘부터가 새로운 날의 출발이 될 것이다.”

제가 일본에서 목회할 때, “목사님, 너무 죄를 지적하지 마세요. 아직 성도들이 믿음이 약해서 죄를 지적하면 교회에서 떠납니다.” 그렇게 말씀하셨던 목사님의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주님 말씀하시길, “아니다. 이제 여의도 성도들은 다 믿음이 곧게 자랐기 때문에 담대하게 선포하고, 이를 통해서 치료받고 회복해서 새로운 내일을 향해 나아가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시편은 다윗이 죄짓고 회개한 시편입니다. 눈물로 회개하며 지은 시편입니다. 그가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졌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죄 앞에 회개하며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통곡하며 드린 기도가 시편 51편이고, 51편에 관계 회복을 위해서 이와 같은 고백을 합니다.

1. 정결한 마음을 주옵소서

먼저 “주님, 내게 정결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정결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 더럽혀진 마음, 부패한 마음, 이 마음이 정결하게 변화되게 하여 주옵소서. 순수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변화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시편 51편 10절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정한 마음이란 “pure heart”, 정결한 마음, 순수한 마음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처음 믿었을 때의 그 모습. 찬양을 불러도 눈물이 나고, 설교를 들어도 눈물이 나고, 기도를 해도 눈물이 나던 그 시절이 있었습니다. 예배드리는 시간이 너무 좋아서 주일날이 오기만을 손꼽아서 기다리던 시간이 있습니다. 예배 시간이 눈물의 바다였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서대문 시절에 제가 처음 은혜받았을 때가 그랬습니다. 저는 5년 내내 눈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가면서 알게 모르게 그 눈물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열정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첫사랑의 감격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느새 나는 교회에 구경꾼으로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심한 것은 한 걸음 더 뒤로 물러서서 교회에 대해서 비판하고 부정적으로 말하고 있는 잘못된 모습으로 타락해버리고 말게 된 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회개하고 다시 순수하고 정결한 모습으로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그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시편 24편 3~4절에 “야훼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이와 같이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마음이 청결하면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마태복음 5장 8절에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해야 주님과 만나고, 마음이 청결해야 주님과 대화하고, 마음이 청결해야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을 받습니다. 욥기 8장 6절에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언제나 주 앞에 나아올 때마다 첫사랑의 감격을 회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울고 또 울며 주님의 첫사랑에 감격하며 “주님, 내가 왔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받아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 원합니다.” 그와 같은 예배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 한 번의 예배, 또 한 번의 성찬 주일이 아니라 매 예배가 새로운 예배, 나의 운명을 바꾸어주는 축복과 기적의 예배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 견고한 마음을 주옵소서

둘째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견고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견고한 마음이란 흔들리지 아니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 때 순수하고 열정적이던 그 마음이 시간이 지나가면서 흔들리는 것입니다. 흔들려요. 노래에도 뭐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린다는 노래가 있어요. 그런데 진짜 문제는 우리 신앙이 흔들리는 겁니다. 신앙이. 바람이 불면 갈대가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영적으로 잠이 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깨어있으라 그랬는데, 잠이 드니까 흔들리는 것입니다.

다윗이 죄를 짓고 나서 통곡하면서 눈물로 기도합니다. 시편 51편 10절에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이 정직한 영이 바로 견고한 영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주님 앞에 바로 서 있는 정직하고 견고한 영을 내게 부어주시옵소서.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에 대해서 기록한 부활장입니다. 사도바울이 부활장 마지막 맨 마지막 결론에 58절에 이와 같이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견고하고 흔들리지 말아라. 견고하고 흔들리지 말아라. 다윗이 그 다윗의 고백처럼 사도바울도 우리에게 그 말씀으로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견고하게 굳건하게 서서 옆에 있었던 것들을 다 내던져 버리고, 담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주님만 바라보고 나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빌립보서4장 6절 7절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할렐루야. 1차 세계대전 때에 전쟁에 나가서 죽은 미국 국군 장병이 41만 8600명 정돕니다. 약 42만 명 됩니다. 그런데 남편을 전쟁터에 내보내고, 자식을 전쟁터에 내보내고 불안과 공포, 두려움 때문에 심장병으로 죽은 사람이 100만 명이 넘습니다. 총알에 맞아 죽은 사람보다 두려움에 공포에 죽은 사람이 훨씬 더 많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긍정적인 사고’의 창시자로 알려진 노만 빈센트 필(N. V. Peale) 박사가 말합니다. “사람들이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것 중에 40%는 지나간 과거에 대한 것이며, 50%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것이며, 10%만이 현재를 위한 것이다”

우리가 지금 염려하는 것의 10분의 1만 염려해도 되는데 과거의 것 들춰보고 염려하고 앞으로의 것 당겨서 염려하고, 참 그런 걸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시는지 아세요. “걱정도 팔자야” 이런 말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합니다. 우리하고는 상관없는 말입니다. 염려 근심 걱정은 물러갈 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그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신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강하고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흔들리면 안 됩니다.

그 실패와 문제와 어려움을 이겨내고 미국의 16대 대통령이 된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자마자 또 남북전쟁을 하게 됩니다. 초반에 계속 남군에 밀리게 돼서 이러다가 북군이 전쟁에서 지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그 때마다 성경을 읽었습니다. 링컨 성경이 보관되어 있는데, 너무 성경을 자주 펴서 손으로 눌러서 손자국이 난 구절이 있습니다. 시편 34편 4절입니다. “내가 야훼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계속 소식이 들려옵니다. “대장군 각하! 이번 전쟁에 또 패했습니다. 또 패했습니다.”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우리가 전쟁에 지면 어떡하지.’ 그 때 엎드려 눈물로 기도합니다. 기도하면 주님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건지셨도다. 건지셨도다. 이 말씀 붙잡고 그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위대한 대통령으로 이름이 남게 되었습니다.

이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을 살아갈 때, 여러분 마음이 무너지면 안 됩니다, 강하고 담대해야 됩니다.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의 초점을 탁 예수님께 맞춰야 됩니다. 히브리서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오직 예수님, 오직 예수님 예수님만 생각하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닮아가고, 예수님만 따라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영어 NIV성경은 더 쉽게 표현되어 있어요. “Let us fix our eyes on Jesus” 우리의 눈의 초점을 딱 예수님께 맞추라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초점을 맞춰야만 됩니다. 공부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차이가 뭔지 아세요.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딱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데, 공부를 잘못하는 사람은 이것도 참견하고 저것도 참견하고 뭔 참견을 다하고 앉았어요. 그러다 보니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납니다. 가만히 앉아서 잘 들어도 시험 보면 시험을 잘 보는데, 주위가 산만하면 여기 보고 저기 보고 하다가 남의 뒷통수만 보고 앉아 있다가 시험장에 가서 빵점 맞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 예수님께 초점을 맞춰야 되요. 우리의 초점은 예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늘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예수님 닮아갈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를 다가가는 그러한 순간이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주님만 바라보고 믿고 의지하고 나가면 주님이 우리의 손을 붙드시고, 여러분의 발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고백합니다. 시편 23편 4절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그는 고백한 것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닌다고 할지라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나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

다윗이 눈물로 고백합니다.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첫째로는 내게 정결한 마음을 주옵소서, 둘째로는 나에게 정직한 영, 견고한 영을 주옵소서, 셋째로는 주여!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통곡하며 눈물 흘리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 51편 11절에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다윗은 알았습니다. 성령이 떠나가시면 자기는 아무것도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죄 덩어리이기 때문에 성령이 떠나가면 죄 덩어리로, 우리는 절망적인 존재로 남게 되고 우리 인생은 비참한 인생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를 쫒아내지도 마시고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늘 성령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성령이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도 아니고 죄 덩어리로 전락당하게 된다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만 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됩니다. 로마서 8장 26절 말씀을 기억합니다.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토요일에 기도굴에 들어가서 기도하는데요, 어떨 때는 기도 첫 시간부터 기도가 쫙 풀릴 때가 있어요. 그러면 2시간이 2~30분쯤처럼 빨리 지나가는데, 어느 때는 기도가 풀리지가 않습니다. 30분이 되도 몸을 비틀며 “주여~주여”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 도우심을 간구하며 방언기도를 합니다. 방언으로 쫙 기도하면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날 위해 대신 간구해주셔서 다시 기도의 줄기가 잡히고 기도에 깊게 들어갈 수 있는 은혜를 체험하곤 합니다.

여러분! 성령님과 동행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주님의 성령을 근심케 하는 일이 없게 되기를 바랍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늘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결론입니다.

4.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키소서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구약시대의 병 가운데 나병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요즘은 한센병이라고 부릅니다. 한센병은 무슨 병이냐면 온 몸의 신경들이 다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경이 죽어가면 손을 화로에 집어넣어 타도 뜨거운지 몰라요. 이 손이 창문에 탁 찧어서 손톱이 떨어져 나가도 우리는 아파서 죽는다고 할 텐데 아프지를 않아요. 왜? 신경이 죽었기 때문에. 그래서 이 병에 걸리면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고쳐 주시면 가족으로 돌아갈 수 있고, 고쳐주지 아니하시면 평생 병든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심각한 병이 영적인 나병입니다. 우리 모두가 알게 모르게 이 병에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왜? 죄를 짓는데 죄책감이 없어요, 감각이 없어요. 이미 나병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내가 시시때때로 분노하고 사람과 다투고 싸움하면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끄러움이 없어요. 나병에 걸린 것입니다. 정말 사람들보기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저주스러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마음에 가책이 없는 것은 이미 심각하게 나병이 진전된 상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그 병에 걸렸음을 알고 가슴을 치고 회개하면 주님께 돌아나오기를 바랍니다.

예배 때 나와서 은혜를 못 받으면 우리는 다 나병 환자인 것입니다. 왜? 영적인 세포가 다 죽어버려서 은혜를 못 받는 것이기 때문에. 찬송만 불러도 은혜가 되야 하고 기도소리에도 은혜가 되야 하고 성가대 찬양에도 은혜가 되야 하고 성경봉독을 할 때도 은혜가 되야 하고 말씀을 들을 때도 은혜가 되야 되는데 이것이 내게서 멀어져있다면 우리는 심각한 병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주여 내가 오늘 영적으로 깨어서 죽어있는 나의 영이 살아나게 하여 주옵소서. 살아나게 하여 주옵소서.

시편 51편 12절입니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예수님이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장 4절에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첫사랑을 버린 우리 모습이 과연 얼마나 주님 보시기에 안타깝고 부끄러운 모습인지 오늘 자신을 돌아보면서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키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영국의 로버트 로빈슨 목사님의 말씀으로 오늘 설교를 마무리 합니다. 한떄 죄의 수령에 빠져서 방탕한 삶을 살다가 회개하고 돌아와 목사가 되었습니다. 25세가 되던 해 캠브리지 침례교회의 목사로 초빙되어 목회에 크게 성공을 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영적으로 점점 타락했습니다. 결국 세속에 물들었고 죄의 노예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모든 것 다 내려놓고 나이가 들어 초라한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는데 어느 날 마차를 타고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교통수단은 마차니까요.

그런데 옆에 앉은 처음 보는 부인이 무슨 책을 보면서 굉장히 얼굴에 기쁨이 넘쳐나면서 자기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이 내용 좀 읽어보세요. 제 마음에 너무나 감동이 오네요.” 그 책에 찬송시가 적혀 있어요.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하소서, 한량없이 자비하심 측량할 길 없도다.” 로빈슨은 고개를 돌려버렸습니다. 그러나 부인은 계속 말합니다. “선생님, 1절부터 3절까지 다 읽어보세요. 이 찬송가 가사가 얼마나 은혜가 되는데요.”

그 때 로빈슨 목사가 고개를 돌려서 눈물을 흘리면 말합니다. “부인, 나는 오래 전에 이 찬송시를 작시한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 찬송을 지은 분이 바로 그 목사님이에요. 만약 그 때 경험했던 것과 같은 기쁨을 지금 내가 맛볼 수 있다면 더 이상 소원이 없겠습니다. 본인이 오래 전에 지었던 그의 마음을 다시 뒤흔들어 놓았고 그는 다시 잠자고 있던 그의 영혼이 깨어나서 회복하고 주님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여생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된 것입니다. 3절에 이와 같은 고백이 있습니다.

주의 귀한 은혜 받고 일생 빚진 자 되네

주의 은혜 사슬되사 나를 주께 매소서

우리 맘은 연약하여 범죄하기 쉬우니

하나님이 받으시고 천국인을 치소서

오늘 이와 같은 회복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아버지 우리는 모두 죄 덩어리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를 불쌍히 보셔서 사랑해주셔서 우리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회복의 영을 보내 부어주셨사오니 이제는 과거의 모든 죄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회복되어 남은 여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지금까지 살아온 날 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주님이 빛내시는 위대한 날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백부장의 믿음/조용기목사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마태복음 8장 5~13절)


어떤 백부장이 예수님을 찾아왔는데, 그가 찾아온 이유는 자기 집 하인이 중풍병으로 큰 고통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사연을 듣고 그의 집으로 가서 하인을 고쳐 주겠다고 말씀하시자, 백부장이 놀라운 말을 합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말을 듣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오늘은 이 백부장의 믿음을 살펴봄으로써,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이 칭찬하시고 인정하시는 믿음을 갖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1.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백부장은 자기 하인의 병을 고치려면 ‘누구를 찾아가야 하는가’ 이를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도울 힘이 없는 사람을 찾아가면, 그 사람이 아무리 나를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와줄 수가 없습니다.

시편 146편 3절로 4절에,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도움이 오지 아니합니다. 사망과 배신감을 얻게 될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려움을 만났을 때 누구를 찾아가야 할까요? 시편 146편 5절에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야훼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자들의 필요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이사야 41장 17절에 “가련하고 가난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야훼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려움을 당하였을 때 낙심하고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백부장이 예수님을 찾아갔던 것처럼,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크고 놀라운 일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2.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하인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 그의 집으로 가서 하인을 고쳐 주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백부장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을 듣고 놀랍게 여기시며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라고 말씀했습니다.

백부장의 말을 보면, 그는 권세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백부장이란 100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있는 로마의 군인입니다. 백부장이 “엎드려!” 하면 엎드리고, “일어나라!” 하면 일어납니다. 말 한 마디에 100명이나 되는 군사들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것입니다.

교통경찰이 아무리 체구가 작고 힘이 약해도, 손짓으로만 큰 트럭을 세울 수 있는 것은 그에게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권세라는 것은 지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예수님의 말씀에 어떤 권세가 있는가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 집으로 가시지 않아도 예수님의 말 한 마디면, 자기 하인이 즉시 나을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에 어떤 권세가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의 권세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님들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권세를 사용하지 못하고 염려와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세를 사용해야 합니다. 한 집안에 자녀가 태어나면, 부모님 슬하에서 자라면서 자녀가 누리는 여러 가지 권리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도 이러한데, 왕의 자녀로 태어난다면 그 권세가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왕의 자녀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가진 권세는 놀라운 권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장 17~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세를 사용할 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함을 누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3.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시자, 그 하인이 나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을 통해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러한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 때,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십자가의 죽음에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고통을 기꺼이 감당하신 분이십니다.

이사야 49장 15절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젖먹이는 자식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절대 그럴 수 없지요. 하지만 설사 사람은 자기 자식을 잊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돌보신다는 것은,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유명한 성경주석가 윌리엄 바클레이(W. Barclay)는 “우리가 기도할 때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세 가지는 첫째, 우리의 유익을 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우리에게 최선의 것만 일어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와 능력을 기억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할 때,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기초를 감정에 두어서는 안 됩니다. 감정에 근거한 믿음은 늘 흔들리고 요동하는 것입니다. 어떨 때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어떨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야고보서 1장 6절로 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의 감정은 바람에 밀려 요동치는 바다 물결처럼 굴곡이 많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을 통해서는 믿음을 굳건하게 유지할 수 없습니다.

저는 비행기를 타고 수없이 태평양을 드나들었습니다. 그래서 눈을 감고 있어도 지금 비행기가 어디쯤 왔고, 또 어디쯤 간다는 것이 훤히 마음에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비행기를 많이 타고 비행을 하였으면서도 어떤 때는 갑자기 비행기가 추락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꼭 떨어질 것 같다고 생각이 오면 정신이 아찔합니다. 이렇게 인간의 기분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마다 제가 외치는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이 말씀을 몇 천 번 외치면 조금 전까지 나를 사로잡던 두려운 생각이 일시에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대한 담대한 믿음이 용솟음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기초를 하나님의 말씀에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경은 너무나 귀중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집에 아무리 모셔놓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액자에 넣어서 아름답게 치장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마음을 중심에 달아놓고 읽음으로써 마음에 하나님의 가르침이 가득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록된 말씀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깨달아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주시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면 죄 사함을 받고 성령 받은 것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병 고침 받은 것을 믿게 됩니다. 저주에서 해방된 것을 믿게 됩니다. 부활 영생의 약속을 믿게 됩니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말씀이 우리의 영혼 속에 깨달아질 때, 마치 숲을 태우는 불꽃같이, 바위를 깨뜨리는 방망이 같이, 능력의 말씀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말씀을 붙잡고 나아가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의 생활 속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에는 성경에 있는 기적들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분입니다. 오늘날에도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나사로의 죽음을 대하는 마리아와 마르다의 신앙을 보십시오.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었는데,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베다니 동구 밖에 오셨을 때 마르다가 뛰어나가 그 발 앞에 엎드려 “주여,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하고 슬피 울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라고 말씀하시자,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나사로가 이미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기적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마지막 날에 부활하게 될 것은 믿을 수 있지만, 지금 살아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이란 지금 믿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과거의 하나님과 미래의 하나님은 믿으면서, 지금의 하나님이 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믿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기적을 행한다는 것을 믿지 못하면 기적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너무나 기적을 기대한다고 공격합니다. 옛날에는 그런 말을 들으면 괴로웠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힘이나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절망에 처했을 때, 그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기적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것을 믿고 기도하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만났을 때 여기 저기 해결 방법을 찾아다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기도의 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설교가이며 기독교 작가인 토저(A. W. Tozer) 목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범하는 가장 보편적인 실수는 하나님 일에 너무 바빠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게을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었습니다. 사람들은 바빠서 기도를 못한다고 말하지만, 기도가 얼마나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면, 아무리 바빠도 기도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설교가 찰스 스펄전(C. H. Spurgeon)은 “기도는 황금 열쇠”라고 말했고, 감리교 목사였던 바운즈(E. M. Bounds)도 “기도는 하나님의 거대한 창고를 여는 열쇠”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가 열쇠입니다. 우리는 기도로써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목사님은 하루에 기도를 몇 시간씩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이런 질문은 외국에서도 자주 받습니다. 제가 “하루 종일 기도합니다.”라고 대답하면 “목사님, 그런 말씀을 하지 마세요. 우리보고 심방은 하루 종일 한다면서 또 기도는 언제 하는 것입니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쉬지 않고 하는 기도의 비결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주님 중심에 두면, 말씀 증거를 하면서, 성경을 읽으면서, 신앙상담을 하면서, 밤에도 잠을 자면서도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 비결을 아셨으니 여러분도 모든 생각을 예수님께 복종시킴으로 항상 기도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살다 보면 힘들고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고 고백합니다.

여러분, 끊을 수 없는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기도로 나아가면,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도>
은혜가 충만하시고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어려움을 당할 때 도울 힘이 없는 인생과 물질, 그리고 환경을 의지했던 믿음 없는 우리 모습을 주님 앞에 모두 내려놓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기억하시고 날마다 우리의 도움이 되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는 권세가 있음을 믿고 의지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도 그러한 권세가 있음을 기억하고 온전히 사용하여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에게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네 길을 주님께 맡기라/이영훈목사

<말씀봉독>
“야훼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또 야훼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야훼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시편 37편 3~7절)

<등단 후 멘트>
인사를 나눕니다. 오늘 우리에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할 분은 우리 주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 주님여 이 손을 >
(1절)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 

(2절)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
주님여 날 도와주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 기울이시사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

주님 우리를 도우소서. 다 같이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 통성기도 >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만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참으로 좋으신 우리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우리 주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와 허물을 고백하고 주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간구하오니 저희들의 모든 죄와 허물을 예수의 보혈로써 정결케 하여 주시고 주님의 은혜와 사랑과 치료와 용서가 회복이 우리 모두에게 넘쳐나게 하여 주옵소서. 문제 많고 어려움 많은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그 보혈의 능력으로 십자가 붙잡고 승리하며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의 말씀의 제목은 “네 길을 주님께 맡기라”입니다. 한번 제목을 따라해 주세요. “네 길을 주님께 맡기라.” “네 길을 주님께 맡기라.” 시편 37편을 본문으로 해서 함께 은혜 나누기 원합니다.
 인생에 두 길이 있습니다. 인간이 삶의 주인이 되어서 내가 원하는 뜻대로 살아가는 인본주의의 길이 있고, 하나님이 삶의 주인이 되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신본주의의 길이 있습니다. 우리의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이 신본주의와 인본주의가 늘 충돌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살면서도 때때로 인간의 생각이 앞서고 인본주의의 길을 가다가 실패를 만나고 절망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는 길이 멀고 험하더라도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신본주의의 길을 가면 그 길의 마지막은 영생이요 축복이요 은혜요 승리인 줄로 믿습니다. 인생 살아가는 동안 신본주의의 삶을 살아서, 하나님 제일주의의 삶을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큰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주님만 의지하라

그와 같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첫째로 철저히 주님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시편 37편 3절은 말씀합니다. “야훼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선을 행하라. 그러나 세상을 살다 보면 선을 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가 삶에서 늘 부딪치는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적당히 거짓말도 하고 적당히 속이기도 하고 나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남이 피해 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렇게 살아가는데 우리 하나님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면 안 되기 때문에 갈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선하게 살아야 합니다.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거짓과 타협하면 안 되고 잘못된 길로 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답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면서도 실제로 세상에 나가 살면서 적당히 죄짓고 타협하고 불의하고 방탕한 삶을 살다가 주일날 교회 와서 양심에 가책을 얻고 그렇게 살면 안 되는데 고개를 저어보고 또 나가서 그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면 우리는 아직 초보적인 신앙에 머물러있는 자요. 부끄러운 삶을 살고있는 자라고 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 올해는 철저히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하나님 제일주의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눈에 보이는 성공을 위해서 죄와 타협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성공은 진정한 성공이 아닙니다. 성공 같으나 실패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모든 것이 다 드러나서 그가 좇았던 것이 세상의 헛된 것이란 것을 알게 되는 날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주님을 바라보고 나아가면 우리가 하는 그 일을 통하여 주님 영광을 받으시고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늘 주님을 먼저 생각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 길이 넓은 길이 아니고 가는 길이 험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길을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장 13절 14절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좁아도 우리는 이 생명의 길을 가야만 합니다. 주님 믿고 의지하여 나가면 주님이 우리 삶 가운데 은혜를 베풀어주시는데, 우리 말 성경에는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라고 되어있는데, 영어 NIV 성경을 보면, “enjoy safe pasture”라는 말이 나옵니다. 주님의 안전한 목장에서 즐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면 주님이 여러분을 안전한 목장으로 인도하여 주셔서 즐기며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시편 23편 1절 말씀 그대로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신 그 말 그대로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 사는 동안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을 살아야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로마서 12장 21절입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죄와 타협하지 말고, 악에게 굴복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어떻게 보면 조금 고지식하고 바보 같은 삶을 사는 것 같아도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삶을 살아가면 그 삶이 바로 성공이고 축복입니다. 오늘 한 해 이와 같은 큰 은혜와 축복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주님을 기뻐하라

둘째로, 우린 주님 안에서 기뻐해야 합니다. 성경은 주님을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말씀 4절에 “또 야훼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면 내 모든 소원을 이루어 주리라. 할렐루야! 문제가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 문제를 만나고 삽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더 좋은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위해서 통과하게 하는 하나의 과정인 것입니다. 문제와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문제와 고난을 통하여서 우리의 삶에 잘못된 것들을 제거해내고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문제를 만났을 때, 어려움 당할 때, 마음을 지켜야 한다는 것 입니다. 마음을 지키는 것이 참 힘듭니다. 마음이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주님 안에서 기뻐하라. 주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예배 시간이 기쁨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 안에 있으면서 감옥 밖에 있는 빌립보 교인에게 보낸 편지가 빌립보서인데 그 결론 부분에 가서 4장 4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사실 사도 바울은 감옥 안에 있으니까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겠습니다. 그 당시 감옥 안이 춥고 더럽고 냄새나고 먹을 것을 제대로 주지 않아 굶주리고 그런 고통을 겪는 그러한 장소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님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 마음을 지켰기 때문에, 주님이 주신 그 기쁨을 가지고 감옥 밖에 있는 빌립보 교인에게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그 말씀을 선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다가와도, 여러분의 삶을 망가뜨리고 여러분에게 고통을 주고 괴롭게 하는 현실이 다가와도 주님이 주신 기쁨을 꼭 간직하고 어려움을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샘솟는 기쁨이 늘 충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미국에서 목회할 때 일본에서 편지를 한 통 받았습니다. 일본에 항공사 본부장 되는 분의 부인되는 집사님이 눈물로 얼룩진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편지를 보는데요, 막 눈물로 편지가 얼룩얼룩져 있어요. “목사님 기도해 주세요. 저희 둘째 아들이 일본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집을 나갔는데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어요. 그 넓은 일본 땅덩어리에 이 아들이 어디 갔는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큰 아들은 가서 적응을 잘해서 학교 반장도 하고 공부도 잘하는데 둘째는 적응을 못했어요. 늘 왕따를 당하고 이지메를 당해서 아이가 방황하다가 집을 나간 것입니다. 그러니 뭐 마음이 무너지는 것이죠. 그런데 집사님이 기도하는 집사님입니다. 무너지는 마음을 꼭 붙잡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워낙 일본 전체 항공사 책임 본부장이기 때문에 주일날도 늘 한국에서 손님이 오면 예배를 빠지고 손님 접대하러 나갔는데 아들이 집을 나가니까 남편이 깨어졌습니다.

처음으로 집에 들어와 아들을 위해서 울며 같이 기도합니다. 본인의 업무상 어쩔 수 없이 주일날 빠져야 되는 수밖에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런 고난을 당하니까 이제는 신본주의로 돌아온 것입니다. 밑에 직원을 내보내고 본인은 주일날 자리를 지키고 매일같이 부인과 함께 눈물의 기도를 드립니다. 주님이 그 마음을 붙들어 주셨습니다. 더 이상 절망하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마음에 평안함을 주셨습니다. 나중에 두 달 있다가 편지가 왔습니다. 목사님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그 가정을 붙들어 주셨습니다. 남편은 장로님이 되고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 가정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고난이었지만 고난은 축복을 향해 가는 과정에 불과했습니다. 우리가 절망에 처했을 때 마음에 낙심이 다가오고 무너져 내릴 때 주님 말씀을 주십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이와 같은 놀라운 말씀을 주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할렐루야! 주님 말씀하십니다.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 염려하지 마라.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내가 너와 함께 한다. 온 세상 사람이 다 너를 버리고 떠나도 나는 너를 떠나지 아니한다. 빌립보서 4장 6절 7절은 말씀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염려할 시간에 걱정할 시간에 염려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엎드려 기도해야 되는데 감사와 함께 기도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토요일 날 기도원에 들어가서 기도굴에 들어가면 눈물밖에 나는 것이 없습니다. 주님 저는 못합니다. 주님이 모든 것을 다 해주시고 저는 주님이 하시는 일에 착한 심부름꾼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이 이 교회를 붙들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강단에 올라갈 때마다 얼마나 큰 감사와 감격이 있는지 모릅니다. 주님 오늘도 이렇게 많은 성도님을 동서 사방에서 보내주셨군요. 주님 감사합니다. 난 아무것도 아닌데 주님이 오늘도 일하고 계시군요. 감사합니다.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주님이 모든 것 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 이 마음이 무너지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에 늘 평안함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들려오는 수많은 이야기들 또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성도들 소식, 달려가 보면 의사들은 다 손을 놨고, 오늘 내일 오늘 내일 하는 분들이 한두 분이 아닙니다. 주님 난 못합니다. 주님이 이 분들의 마음을 붙들어 주시고 육신의 건강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마음에 평안함을 주시면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주시는 것을 우리가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이 평안함이 넘쳐나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께 철저히 맡겨야 됩니다.


3. 주님께 맡기라

셋째로 성경은 주님께 맡기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본문말씀 37장 5절에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자꾸 내가 하려고 하니까 힘든 거에요. 맡겨야 되는데 못 맡기는 겁니다. 우리가 주님께 맡긴다 맡긴다 하면서도 주님 앞에 주일 날 와서 다 눈물 콧물 쏟고 주님 이것도 맡깁니다, 저것도 맡깁니다, 다 내려놓고는 갈 때는 다시 다 짊어지고 갑니다. 무거운 짐을 나홀로 지고.

 여러분,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맡겨야만 우리가 마음에 평안함과 자유함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모함을 받았습니다. 다니엘을 시기한 관원들이 왕이여 앞으로 한 달 동안 왕 외에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하면 사자 굴에 집어넣는 것에 도장 찍어 주십시오. 왕은 뭣도 모르고 도장을 꽉 찍었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신하 다니엘을 감옥에 넣기 위한 계략인 것을 모르고 찍었는데 알고 보니까 다니엘인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성경에 보니까 그 조서에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창문을 예루살렘을 향한 동쪽으로 열어놓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드린 것입니다. 문 닫고 숨어서 기도드리면 누가 압니까. 그러나 다니엘은 비겁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인으로서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신앙인으로서 창문을 열어놓고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그가 붙잡혀 사자굴에 던져지게 됩니다.

왕이 그 소식을 듣고 너무 놀라서 모든 풍악을 멈춰라. 그리고 금식하며 밤새 잠을 못자고 내 사랑하는 신하 다니엘이 어떻게 되었을까 새벽에 가서 말합니다. “다니엘아 다니엘아, 네가 믿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이 너를 살려주었느냐.”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제가 이곳에서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고 잘 있습니다.”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 사단의 입을 막으시고 그를 편히 쉬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요, 그 사자굴에 춥고 떨리는 굴에 사자 카페트에서 따뜻하게 온도가 있는 전기담요 같은 곳에서 편하게 잠을 잤으니, 하나님이 그렇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을 건져내고 난 다음 “다니엘을 모함한 자들을 다 데려와라! 그들을 집어 넣어라.” 그러니까 밤새 굶주렸던 사자들이 그 다니엘을 모함했던 신하들을 떨어지기도 전에 거기서 탁 온몸을 부스러뜨려 죽였다는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 맡겨야 됩니다. 맡겨야 됩니다. 안 맡기면 우리는 절대 이 문제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염려 근심 걱정 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시편 55편 22절입니다. “네 짐을 야훼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잠언서 16장 3절입니다. “너의 행사를 야훼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베드로전서 5장 7절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은혜로다’를 작곡하신 장종택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13년 동안 미국에 유학을 하고 한국에 예배를 개혁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너무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 둘째딸 온유가 희귀병에 걸렸는데요, 항NMDA 수용체 뇌염이라는 희귀병에 걸리고 쓰러집니다. 그런데 고대 병원으로 긴급하게 이송이 되었지만 8분간 동안 발작을 하더니 뇌사상태로 빠졌습니다. 죽은 것과 다름이 없게 되었습니다.

중환자실에 입원해 놓은 다음 의사 선생님이 말씀합니다. “온유가 중환자실에 들어가는 이유는 치료받기 위함이 아닙니다. 온유 자신이 살아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이 병은 종착역이 없는 긴 마라톤이 될 것입니다.”

 의사가 우리 의술은 할 수 없습니다. 포기 선언을 한 것입니다. 그때 목사님이 이제 주님께 맡기는 것 밖에 없구나. 이런 고백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병원에서 살릴 방법이 없다고 결론 지으며 절망과 포기라는 극한 상황에 내몰려 어찌할 바 몰라 하겠지만, 아내와 나는 ‘이제 하나님이 일하시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말씀은 이렇게 하셨지만 얼마나 그 마음이 무너졌겠습니까, 사랑하는 딸이 희귀병에 걸려서 뇌사상태가 돼서 거의 죽은 자와 다름없는 모습이 되었는데. 그러나 목사님 내외는 주님께 다 맡겼습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열흘 기도하고, 한 달 기도하고 두 달 기도했는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아이가 “으..”하더니 “예수님, 예수님”을 찾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8일 후에 또 기적이 일어납니다. 일어서지도 앉지도 못하던 온유가 일어나 걷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입니다. 이 고난을 통과한 후에 이 같은 고백을 합니다.

“저에게 고난은 특별한 은혜입니다. 고난 때문에 하나님께 더 나아갈 수 있었으니까요. 딸아이가 중환자실에 있는 것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구나. 하나님이 하셔야 되는구나.’ 24시간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과 더 친밀해졌습니다.”

 주님께 다 맡기십시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남은 것이 있습니다. 


4. 주님 앞에서 참고 기다리라

주님 앞에 참고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일하시기까지 참고 기다려야 됩니다. 시편 37편 7절은 말씀합니다. “야훼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시편 37편 1절은 이와 같이 기록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너무나 힘드니까 주님 왜 이런 일이 있습니까? 저 나쁜 사람은 저렇게 멀쩡하게 다니고 왜 나는 이렇게 고통을 당해야 됩니까? 불평이 나오는데 주님 말씀하시기를 “안된다,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절대 화를 내고 불평하고 원망하지 말아라.” 시편 37편 2절은 말씀합니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여름철 채소가 푸르게 잘 자랐다고 할지라도 가을이 되면 시들고 겨울이 되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내가 나의 때에 이를 다 정리할 것이다. 분노하지 마라. 감정을 다스려라. 절대로 원망 불평하지 마라. 시편 37편 8절입니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화내고 내가 흥분하면 오히려 일이 더 나빠진다는 것입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어떻게 하라고요?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러분 이게 힘들어요, 사실. 참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우리 한국 사람이 조금 급하잖아요. 저도 참 급한 성격이니까 이 참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늘 체험합니다. 주님 말씀하시기를 참을 때 잠잠하고 참고 기다려라, 그러면 주님이 책임져 주시겠다. 시편 1편 6절에, “무릇 의인들의 길은 야훼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 23편 6절에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여러분 마음이 무너지고 마음에 절망과 고통이 가득해도 주님 손 꼭 붙잡고, 꼭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가십시다. 주님이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폭풍우 흑암 속으로 내가 이 길을 갈 때 헤져나가게 하시고 주님 손 붙잡고 승리하게 하여 주옵소서. 절대로 무너져 주저앉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 영광 위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와 같은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한평생 주님의 손 꼭 붙잡고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힘들고 아프고 어렵습니다. 말 못할 고민이 있고 상처가 있고 아픈 사람이 있고 나를 힘들게 하는 환경이, 주님 고난이 있습니다. 불쌍히 여겨 주셔서 주님 손 꼭 붙잡고 꼭 붙잡고 꼭 붙잡고 승리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조용기목사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편 23편 4~6절)

아담이 죄를 지은 후, 모든 사람이 사망의 골짜기와 같은 인생을 살아갑니다. 가시덤불과 엉겅퀴 가득한 세상에서 저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고달픈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때로는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 닥치면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고 정신이 아찔한 것입니다.


1.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하지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낙심하거나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목동이었던 다윗은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시편 23편 4절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여러분, 중동 지역에는 풀이 많지 아니하기에 목자가 양들을 데리고 푸른 초장을 찾아서 산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길을 가다 보면 평평한 곳을 지날 때도 있고 가파르고 위험한 골짜기를 지날 때도 있습니다. 우리도 인생의 길을 가다 보면, 평탄한 길을 지날 때가 있고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까마득한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것 같고 마음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합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사망의 골짜기로 나가게 합니까?” 물론 우리는 크고 적은 고난의 이유를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게 하시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양을 키울 때 염소를 함께 키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양은 배부르고 안전하다고 느끼면 늘 눕기를 놀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운동 부족으로 병이 생기기 쉽습니다. 날씨가 더울 때도 서로 가까이 붙어 있어서 병에 걸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염소를 한 번 키우게 되면 염소가 양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양을 들이받기 때문입니다. 양이 염소를 피해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건강하게 자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고난을 허락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찰스 스탠리(C. Stanley) 목사님은 “우리는 산꼭대기 경험보다 골짜기 경험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운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공해서 높은 자리에 있을 때보다 고난이라는 낮은 골짜기를 통과할 때,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잔잔한 바다에서는 좋은 뱃사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거센 파도를 이겨 나가야만 훌륭한 뱃사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 J. Toynbee)는 “인류 문명은 역경의 소산”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언뜻 생각하면 기후도 좋고 평온한 지역에 살았던 민족이 훌륭한 문명을 이룰 것 같지만 실제로는 불리한 자연환경에 처한 민족들이 역경을 극복하고 어려운 과정에서 위대한 문명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민족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도 고난이 없으면 성장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고난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것입니다. 대나무가 바람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고 곧게 위로 뻗을 수 있는 것은 중간중간에 마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원리를 이용한 것이 드럼통입니다. 드럼통은 처음에는 양철로 그냥 둥그렇게 만들어졌는데 옆에서 충격을 가하면 쉽게 터지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대나무의 마디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서 드럼통에 대나무 마디처럼 주름을 몇 개 만들어 넣었습니다. 그랬더니 3배나 더 강해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사람도 고난을 이겨낼 때 마디가 생겨납니다.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 편을 들고 기도하면 믿음이 더욱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시편 34편 19절은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야훼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의인에게는 고난은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모든 고난에서 건지신다고 하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2.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제가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가족들은 부산으로 이사 가고 저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려면 논두렁과 산비탈을 걸어서 와야 하는데 숲이 우거지고 공동묘지가 있어서 굉장히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고 집으로 올 때면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깜깜해서 깜깜한 간이 벌렁 앞에 너울 치는 것 같습니다. 그때는 예수님도 안 믿을 때니까 ‘이젠 죽었구나.’ 하는 매일에 그런 생각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올 때 되면 우리 할머님이 산꼭대기 위에서 “용기야! 오냐?” 그렇게 고함을 치셨습니다. 할머님 목소리를 들으면 내 마음속에 기쁨이 충만하고 용기가 생겨나요. ‘할머니 함께 계시면 여우나 이리가 가도 도망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마음에 두려움이 사라졌던 것입니다. 사람이 함께 있어도 두려움이 사라지는데 하물며 하늘과 땅과 세계의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깨달아 알면 두려움이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는 것입니다.

 양들만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는 것이 아니라, 목자가 양들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 때도 혼자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걷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복음을 전하러 다니다 보니 비행기를 탈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기상이 좋지 않아서 제가 탄 비행기가 큰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기체가 흔들리니까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고 난리가 났습니다. 저도 제일 처음에는 겁이 덜컥 났습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시편 23편이 떠올랐습니다. 특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이 구절이 떠올라서 입술로 고백했더니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고 평안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바라보면 두려움을 이기고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요 10:11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늘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먹이시고 돌보시고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목자는 지팡이와 막대기로 양을 위험에서 건져 주시는데 우리의 목자이신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를 구원하는 지팡이요 막대기인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죄악이라는 골짜기에서 건져 주는 지팡이요, 불의함이 있는 골짜기에서 건져 주는 지팡이요, 질병이라고 하는 골짜기에서 건져 주는 지팡이요, 가난이라는 골짜기에서 건져 주는 지팡이요, 영원한 죽음이라는 골짜기에서 건져 주는 지팡이의 하나인 것입니다. 십자가 지팡이를 의지하면 우리는 어떤 골짜기라도 건널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바로 이 자리에도 함께 계시지요. 그러므로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 때 다른 것은 보지 말고 예수님만 바라보십시오. 시편 23편 6절에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고 인자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제가 불광동에서 교회를 개척할 때, 마음도 춥고 몸도 춥고 생활도 추웠어요. 천막을 치고 가마니를 깔았는데 교인이라고는 다섯 명, 연보도 한 푼 없었습니다. 그러나 항상 밥상은 비어 있지요, 잠자리는 추워서 벌벌 떨지요.
바로 그때 성령께서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진리를 알려주셨습니다. “천막에 있어도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고 가마니 위에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라고 빈 밥상을 만나도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성령님의 음성은 저에게 굉장한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확고한 확신을 품고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라고 전하게 된 것입니다. 


3.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알아둬야 하는 것은 골짜기는 머무르기 위한 처소가 아니며 아니고 통과하기 위한 통로라는 사실입니다.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는 것은 고통스러운 경험이 되나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목자이신 주님의 인도를 따라가면 골짜기를 통과하여 마침내 푸른 풀밭, 쉴 만한 물가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0장 11절에는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 때, 우리의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그 품에 안고 푸른 풀밭,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 아래에 푸른 풀밭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용서와 의가 있고 거룩함과 성령 충만함이 있고 치료와 건강이 있으며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함이 있고, 부활과 영생, 천국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면 그 삶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신명기 2장 7절에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다님을 알고 네 하나님 야훼께서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광야 건널 때, 그들의 무사에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광야는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매우 열악한 곳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백성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낮의 더위에 밤의 추위에 상하지 않도록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네 하나님께서 이 사십 년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에 그들의 삶에 아무 부족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돌보시고 지켜주시기 때문에 광야를 걸어가도 부족함이 없고 사망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J. Wesley) 목사님은 88세의 나이로 이 땅에서의 삶을 마쳤습니다. 그는 숨을 거두기 전에 남아 있던 온 힘을 다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찰스 스펄전(C. H. Spurgeon) 목사님은 “연금술사들이 모래에서 금을 캐듯이 신앙인은 염려 가운데서 기도를 캐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고난을 만났을 때, 우리와 함께 하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면 좋으신 하나님께서 고난을 축복으로 바꾸어 나오시는 것입니다. 

『하버드 새벽 4시 반』이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영국의 선박 박물관에 특별한 배 한 척이 있는데 이 배는 첫 항해를 시작한 이후, 백 번 넘게 암초에 부딪혔고 백 번 넘게 빙산에 부딪혔으며 수백 번 넘게 폭풍을 만나 돛대가 부러졌습니다. 이 배는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침몰하지 않고 거센 파도를 이겨냈습니다. 그런데 이 배가 유명해진 것은 한 변호사 때문입니다. 그는 큰 어려움을 만났을 때, 선박박물관에서 이 배를 보고 다시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만나는 고객들에게 박물관에 가서 이 배를 보라고 권했습니다.

 그 결과, 2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배를 관람했습니다. 수없이 많은 파도와 암초를 이기고 끝까지 대서양을 건넌 배를 보면서 “나도 이 배처럼 인생의 파도와 맞서리라.”라는 자신감을 얻었던 것입니다. 관람객들이 방명록에 가장 많이 남겼던 문장은 바로 이것입니다. “파도를 만나보지 못한 배는 없다.”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파도를 만나지 않은 배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파도를 이기고 계속 전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힘으로는 파도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인생의 파도를 이기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려면 주님의 손을 붙잡고 주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여러분, 시편 23편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암송하십시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면, 아무리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불어도 두려움을 이기고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는 것은 터널을 통과하는 것과 같습니다. 동굴과 터널은 다릅니다. 동굴에는 출구가 없지만, 터널은 아무리 어둡고 캄캄하고 끝이 보이지 않아도 한 발 한 발 계속 전진하다 보면 반드시 출구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터널을 나와서 뒤를 돌아보면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터널이 바로 지름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걸어서는 넘기 힘든 높고 험준한 산을 터널을 통해 직통으로 통과하는 것입니다. 지금 가는 길이 어둡고 캄캄한 터널이라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왜 터널이 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산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터널을 통과한 후 내가 지나온 산을 돌아보면 터널이 곧 지름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터널을 지날 때 눈에 보이는 것 없고 손에 잡히는 것 없어도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의 손을 붙잡고 한 걸음 한 걸음 믿음의 길을 옮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친히 인도하셔서 복된 미래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오늘 오신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도>
은혜가 충만하시고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인생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도 주께서 우리와 함께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하는 지팡이요 막대기임을 고백합니다. 불의와 질병, 가난과 저주의 골짜기에서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시니 그 은혜가 충만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고통와 절망의 골짜기 터널을 지나 축복과 은혜가 넘쳐나는 쉴만한 물가의 삶을 살게 됨을 믿습니다. 우리는 연약하오니 굳건한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신앙/이영훈목사

<말씀봉독>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에게서로다 야훼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야훼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야훼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야훼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야훼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 121:1~8)

<등단 후 멘트>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베토벤의 오라토리오 감람산의 그리스도 가운데 ‘천사의 합창’이었습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우리 삶의 첫째도 예수님, 둘째도 예수님, 마지막도 예수님입니다. 이것 잃어버리면 다 잃어버리는 겁니다, 내 일생 다 가도록 내 목숨 바쳐 사랑할 분은 예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날 위해 몸 버려 피 흘려 돌아가신 그 예수님의 사랑을 늘 감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늘 기쁨으로 감동으로 주님을 섬기기 원합니다.”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이 찬양을 드립니다.

<찬송가: 216장(통 356): 성자의 귀한 몸 >

(1절)

성자의 귀한 몸 날 위하여

버리신 그 사랑 고마워라

내 머리 숙여서 주님께 비는 말

나 무엇 주님께 바치리까

(2절)

지금도 날 위해 간구하심

이 옅은 믿음이 아옵나니

주님의 참 사랑 고맙고 놀라워

찬송과 기도를 쉬지 않네

(3절)

주님의 십자가 나도 지고

신실한 믿음과 마음으로

형제의 사랑과 친절한 위로를

뉘게나 베풀게 하옵소서

(4절)

만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내 평생 슬프나 즐거우나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주님만 위하여 늘 살겠네

이 고백대로 살게 하옵소서.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성자의 귀한 몸 날 위하여

버리신 그 사랑 고마워라

내 머리 숙여서 주님께 비는 말

나 무엇 주님께 바치리까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멸시 천대 고난의 삶을 사시고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돌아가셨는데 우리가 그 은혜로 하나님 자녀가 되었는데 주님, 저들의 모습은 심히 부끄럽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 우리 마음은 나의 개인의 왕국을 지어놓고 주님 들어오실 자리 하나도 없고 나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내가 상처받으며 분노하고 주님과의 관계가 멀어졌던 우리들의 지난 모습들을 회개합니다.

항상 내 뜻이 없었고, 주님보다는 내 생각이 앞섰던 내 생각을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의 일생 다 가도록 예수님만이 모든 것 되셔서 나는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하며 주님의 자녀 된 모습을, 예수님 닮은 주님의 일꾼들로 일생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 은혜 내려주옵소서. 이 시간 주님의 시간입니다. 주님이 홀로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님의 십자가 나도 지고

신실한 믿음과 마음으로

형제의 사랑과 친절한 위로를

뉘게나 베풀게 하옵소서

우리 일생 다가도록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한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설교말씀>

오늘은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신앙”으로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말씀은 시편 121편입니다. 제목을 한번 따라해 주시기 바랍니다.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신앙”. 하나님의 은혜로 축복의 새해가 밝아 벌써 세 번째 주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면 많은 사람들이 큰 기대를 가지고 올해 내게 어떤 좋은 일이 생겨날까? 그와 같은 기대로 한 해를 시작합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내게 올해 무슨 좋은 일이 생길까? 그래서 점치는 사람들을 찾아가기도 하고 무당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절대 그들이 우리의 미래를 얘기해주지 못합니다. 용한 점쟁이들이 혹 과거를 좀 들여다볼 수는 있어도 미래는 우리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용한 신들린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미래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말해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감사한 것은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면 우리 일생이 주님의 은혜 가운데 풍성한 은혜가 넘쳐나는 일생이 될 것입니다.

1.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

무엇보다도 우리가 감사드려야 할 것은 일생을 살아가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신다,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는 믿음을 갖고 “주님 나와 함께 하심을 감사합니다” 고백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시편 121편 1절 2절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에게서로다”

할렐루야! 이 시편은 이스라엘의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시온산을 향해 나아가면서 부르는 찬송이요 기도였습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1년에 세 차례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예배를 드리러 왔습니다. 가장 큰 절기가 유월절입니다. 그 다음 오순절이 있고, 그 다음은 초막절이 있습니다. 이 세 절기 때는 전 세계 흩어져서 살던 유대인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여왔습니다. 예수님 당시만 해도 이 절기 때는 보통 2~300만 명이 모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였기 때문에 절기 끝나고 내려갈 때 예수님을 잃어버렸어도 삼 일 동안 찾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저들이 산을 향해 올라가는데 저들이 산을 바라보면서 “내가 산을 향하여 나의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절 말씀입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에게서로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에게서로다” 이 고백이 여러분의 일생의 신앙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의 도움은 온 천지를 지으시고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철저히 하나님만 믿고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을 믿고 의지하면 다가오는 것은 실망이요 상처뿐입니다. 왜? 완전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우리가 만난 사람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때 풍성한 은혜를 우리가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러한 은혜를 체험하기 위해서 먼저 겸손해져야 합니다. “주님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만이 나의 모든 것 되십니다. 주님 홀로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뭔가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을 하니깐 이것이 나의 신앙에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꾸 상처받는 사람들은 내가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짜로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면 상처받을 일도 없고 섭섭할 일도 없고 아플 일도 없어요. 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니깐. 겸손해져서 주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하고요.

그리고 주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도우시고 함께 하신다. 2절에 보니깐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에게서로다. 그랬거든요.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주님께로부터 옵니다. 확고한 믿음! 히브리서 11장 6절에 있는 그대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이 믿음을 붙잡고 나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믿음은 행함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말만 하면서 그 삶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모습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것은 잘못된 믿음이기 때문에 야고보서에서 그를 꾸짖고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꾸짖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새해 결심해서 매주 한 번도 안 빠지고 예배 잘 나오겠다 하다가 아무것도 아닌데 조금 섭섭한 일이 생기면 오늘 교회 가? 말아? 가? 말아? 스스로 망설여지고 신앙이 엎치락뒤치락 한다면 그것은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일을 지키기로 했으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어려움이 있으나 없으나, 내게 억울한 일이 다가오고 상처받는 일이 있으나 없으나 그거에 상관없이 주님만 바라보고 열심히 나와서 주님을 섬길 때 하나님이 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거룩한 소원을 가지고 주님만 바라보며 믿음으로 나아갈 때 주님이 도우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주님이 나와 동행하시며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이 하늘의 문을 여시고 복을 주십니다.

아합왕 시절에 온 백성들이 우상숭배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하늘의 문을 닫았습니다. 삼 년 반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심한 가뭄 속에 모든 식물들은 말라 죽어가고 가축도 물이 없고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를 사르밧에 있는 한 과부의 집에 보냅니다.

그 과부는 남편을 일찍 여의고 외아들을 데리고 살고 있었는데 그 집에 마지막 밀가루가 한 움큼 남았습니다. 그 한 움큼 남은 것으로 음식을 만들어서 자식에게 주고 이제 죽는 날만을 기다리는 절대 절망의 처지에 처해 있던 과부였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탁 나타나서 말하기를 “내게 물 좀 가져오시오.” 물을 갖다주니깐 “나에게 먹을 것을 가져오시오. 나에게 먹을 것을 가져오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그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도록 풍성히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 순간 그녀는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내가 믿음의 선택을 해야 할 것이냐? 아니면 현실을 바라보고 현실의 이성주의적인 판단을 해야 할 것이냐? 옆에서 아이가 배가 고프다고 빨리 먹을 것을 달라고 “엄마 엄마...”

그런데 사르밧 과부는 영적인 여인이었습니다.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나와 이 아들이 한 움큼의 밀가루로 빵 하나를 만들어 먹어도 며칠 더 살겠나? 이것을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리면 하나님의 사람이 이것을 먹고 주님 일을 더 할 것이고 또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우리 가정에 축복이 임할 것이다.’ 그래서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서 엘리야에게 갖다 줍니다. 어린아이는 배가 고팠다가 자기에게 주는 것인 줄 알고 기다렸는데 그것을 왠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 갖다주니깐 자지러지게 웁니다. “엄마, 엄마.” 그러나 그 사르밧 과부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단호했습니다. 믿음의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엘리야에게 갖다 주자!” 삼 년 반 동안 그 밀가루 통이 떨어지지 아니하고 또 채워지고 또 채워지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한 해를 승리하며 사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올 한 해 하나님 뜻대로 살기를 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 올해 먼저 철저히 주일 성수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철저히 십일조 생활을 해서 하나님 주시는 물질의 축복을 누리면 살겠습니다. 제가 올해 성경 일독 이상을 하고 기도와 전도 생활에 힘쓰겠습니다. 저의 잘못된 성격 습관을 완전히 버리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결단하고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여시사 사르밧 과부의 집에 삼 년 반 동안 풍성한 은혜가 내린 것처럼 여러분의 가정에 그 창고에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넘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나의 도움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2.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

둘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신다는 그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121편 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그랬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서 먼 길을 가는 동안 저들은 위험한 광야길 험한 산길을 넘어야 되며 또 강도의 위협을 만나야 했습니다. 그 길을 가는 동안 하나님이 그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셨습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예기치 못하는 곳곳의 고난의 돌부리들이 솟아올라 있어서 그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죄의 유혹들이 굶주린 사자처럼 엎드려 있다가 우리가 방심하고, 믿음이 약할 때 확 우리를 덮쳐서 죄의 유혹에 빠지게 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우리에게 고난과 어려움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때 기억해야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지키신다. 우리와 함께 하신다. 시편 121편 4절에 이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항상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시는 것입니다.

고대 근동의 이방신들은 보통 낮에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평상시에 쉬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제사를 지낼 때 막 시끄럽게 해서 자고 있는 신을 깨워야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신을 깨워가지고 자기에게 소원을 들어달라고 그렇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갈멜산 상에서 엘리야가 바알신을 섬기는 그 제사장들과 영적대결을 할 때에도 저들이 막 온갖 소리를 내면서 자신들의 신을 깨웠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고함을 지르고 큰 소리를 내어도 없는 신이 깰 수도 없고, 반응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것은 우리를 완전하게 지켜주지 못 합니다. 물질이 명예가 인기가 권력이 우리를 완전하게 지켜주지 못합니다. 부모님이 여러분을 사랑해서 여러분을 돌보신다고 해도 24시간 깨어있어서 주무시지 아니하시고, 졸지도 아니하실 분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깨어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일생 다가도록 우리의 보호자가 되셔서 모든 환란에 대해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풍성한 은혜 속에 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21편 5절로 6절은 말씀합니다. “야훼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야훼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이사야 43장 2절입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할렐루야!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 동안 광야 길을 가는 동안에 그 광야의 뜨거운 햇빛을 낮에 시원한 구름기둥으로 막아주시고 밤에 온도가 뚝 떨어져서 너무 추워서 그들이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불기둥으로 저들을 따뜻하게 해주셔서 발걸음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의 발걸음을 그렇게 인도해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삶 가운데 말씀의 구름기둥으로 환난이 다가오는 밤에는 성령의 불기둥으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해주시고 계십니다. 주님과 동행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와도 넉넉히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942년 11월 28일입니다. 보스턴시는 온통 흥분으로 뒤덮였습니다. 왜냐하면 보스턴대학이 미식축구, 미국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미식축구 풋볼인데 결승전에 나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모든 시합을 다 이겼어요. 상대편은 홀리크로스(Holy Cross)팀인데, 10전 4승 6패로 전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싸우나마나 이긴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온통 보스턴시가 축제분위기로 뒤덮였습니다. 이제 끝나면 어떻게 잔치를 벌일까 끝난 후에 축하 파티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코치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결코 자만하지 않도록 선수들을 경고하고 모아놓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뜻이면 승리로 끝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대학 관계자측도 당연히 승리해서 우승의 트로피를 거머쥔 것을 생각하고 아주 큰 나이트클럽을 빌려가지고 파티를 할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니 시합이 시작하자마자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처음부터 상대편이 터치다운으로 점수를 얻기 시작하더니 계속해서 밀려서 큰 점수 차이로 패하고 말았습니다. 모두가 실망했습니다. 코치와 선수는 큰 실망을 하고, 거기에 모여 있던 온 보스턴 시민들이 큰 실망을 하고, 그 날 축하 파티 하려했던 것 다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음 날 아침 신문이 배달 돼서 신문을 탁 펼치는데, 1면 전면에 큰 글씨로 기사가 나있는데, ‘나이트클럽의 화재와 공포 잿더미 속에 시체 491구 발굴’ 그들이 축하파티를 하려고 했던 그곳에 불이 나서 그 안에 있던 사람이 약 500명 가까이 불에 타 죽은 것입니다. 그 당시 신문을 찾아보니까 최악의 화재 참사라고 그렇게 기록돼 있었습니다.

그때 코치와 선수들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드렸습니다. 자기들이 승리를 했더라면 당연히 거기에 가서 축하 파티를 벌였을 것이고, 그 모든 선수들이 다 불에 타 죽었을 것인데 그 재앙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예배 드린 것입니다.

술잔치, 댄스파티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로마서 8장 28절의 이 위대한 고백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같이 고백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좋았던 일, 나빴던 일, 슬펐던 일, 기뻤던 일, 내가 아팠던 일 건강했던 일 모든 것이 합력하여서 선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모자이크라고 하는 그림의 종류가 있는데, 그것은 색종이를 뜯어서 그림을 만드는 것입니다. 절대 밝은 색깔만 뜯어서 붙이지 않습니다. 어두운 색깔 이것저것 막 뜯어서 붙여가지고 그것이 어울리도록 딱 완성이 되면 아름다운 한 폭의 작품이 되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인생에 구김살을 가져오게 했던 어두웠던 그림자들, 상처를 주었던 그러한 기억들 실패했던 그 모든 것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할렐루야! 실패가 실패가 아닙니다. 절망이 절망이 아닙니다. 요셉의 13년이 실패가 아니었고, 오히려 하나님의 예비 된 축복을 향해 나가는 길이 되었던 것입니다. 고난은 축복의 지름길입니다. 변장된 축복입니다. 잊지 않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이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3. 영원히 함께하시는 하나님

셋째로,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드리길 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많은 문제와 어려움이 우리 앞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우리에게 다가 올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하게 아는 것은 우리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지키시고 나를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121편 7절은 고백합니다. “야훼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러분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내 영혼을 지키신다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고 오늘 우리에게 그 말씀을 주님 선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절대로 낙심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주저앉아서 인생 끝났다고 말하지 말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나를 지키신다” “나의 일생을 주님께서 인도해 주신다”라고 고백하며 어떠한 절망적인 얘기가 들어와도 세상의 음성에 귀를 닫고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121편 8절은 이렇게 위대한 선언으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야훼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우리에게 절망은 절망이 아닙니다. 새로운 희망의 시작입니다. 우리에게 실패는 실패가 아닙니다. 새로운 성공의 시작입니다. 이렇게 우리 경제가 침체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지만 오히려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준비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남북관계가 교착되어있지만,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포기하고! 우리 남한이 예수님의 그 복음의 신앙으로 똘똘 뭉쳐서 위대한 통일의 역사를 이루는 날이 다가올 것을 믿습니다. 역사의 주관자가 되신 하나님만이 이 일을 하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방법도 정치적인 통일도 불가능합니다. 어떠한 인간의 노력도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이 도우셔야 되는데 예수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남북을 하나로 묶고 하나로 만드는 위대한 역사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믿고 의지한 한 독실한 미국의 크리스천 한 분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이분의 일생을 보면 좋고 행복한 일보다는 실패와 좌절이 더 많았습니다. 이 사람은 22살 때 사업에 실패하고, 23살 때 주 의회에 낙선을 하고, 24살에 사업에 실패하고, 25살에 주 의회에 당선되었는데, 26살에 사랑하는 여인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27살에 신경쇠약과 정신분열증이 다가왔고, 29세에 의회에 의장직에 도전했다가 낙선을 하고, 31세에 대통령 선거위원회 낙선이 되고, 34세에 하원의원에 낙선을 하고, 37세에 겨우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가 다시 2년 뒤에 하원에 낙선을 합니다. 46세에 상원의원에 낙선을 하고, 47대 부통령에 나와서 낙선을 하고, 49세에 상원의원에 낙선을 했지만, 마침내 51세에 대통령으로 당선됩니다.

이분이 미국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대통령인 제16대 애브레이엄 링컨 대통령입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그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노예를 해방하고 흑인을 해방하고 미국의 참된 평화와 인권의 모든 장벽을 무너트리는데 그 기초를 놓은 주님의 일꾼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의 일생은 좌절과 실패의 일생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마침내! 마침내! 그를 대통령으로 세우시고 노예해방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주셨던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며 영원토록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은혜위에 은혜를 더해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이 다가와도 절대 낙심하지 말고 주님께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사업이 실패하는 때가 있어도 우리 자녀가 아프고 옆으로 탈선하는 길이 있어도 그것을 보고 낙선하지 말고 반드시 돌아올 것을 믿고 바라보고 사업이 다시 일어날 것을 믿고 바라보고 병상에 누웠어도 건강이 회복된 모습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가시길 바랍니다.

혹시 사랑하는 가족이 먼저 세상을 떠났어도 눈물도 근심도 없는 저 천국에 먼저가신 것을 감사하고 천국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먼 훗날 저 천국에서 우리 사랑하는 가족들 다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그때까지 우리는 넘치는 감사로 살아가야 합니다. 넘치는 감사. 우리 찬송가 아까 마지막 이러한 고백이 나오죠.

만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내 평생 슬프나 즐거우나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주님만 위하여 늘 살겠네

<찬송가: 216장(통 356): 성자의 귀한 몸: 4절 >

(4절)

만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내 평생 슬프나 즐거우나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주님만 위하여 늘 살겠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 신앙의 고백이 우리 일생동안 우리 신앙의 고백이 되어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영원토록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내가 너를 지키고 보호하리라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나간 나의 인생길에서 나를 상처 입히고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그 기억들이 이제는 주님 은혜 가운데 아름다운 보석 같은 그러한 축복으로 바꿔지는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채우시는 하나님/조용기목사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야훼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하니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 그가 이르되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니 이르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하니라 여인이 물러가서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말하니 그가 이르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왕하 4:1~7)

인생을 살다보면 갑작스러운 고난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을 보면, 한 여인이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남편이 엘리사가 운영하는 선지학교의 생도였는데, 갑자기 남편이 죽어 과부가 된 것입니다. 게다가, 남편이 산더미 같은 빚을 남기고 죽었는데, 빚쟁이들이 찾아와서 “당장 빚을 갚으라”고, 그렇지 않으면 두 아들을 종으로 데려가겠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은 것도 하늘이 무너질 일인데, 빚 때문에 자식까지 종으로 팔려가게 되었으니, 눈앞이 캄캄한 것입니다.옛날보다 형편이 많이 나아졌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족 중에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병원비 때문에 가정경제가 파탄나기도 하고, 생활고 때문에 비관하거나 빚을 갚지 못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산다는 것이 참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언제든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지 생도의 아내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하나님의 선지자인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어려움을 만났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가 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 ‘누가 나를 도와줄 수 있을까?’ 여기저기 사람을 찾아다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의지할 것이 못 됩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시편 146편 3절에서 5절에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야훼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인생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믿지 말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1. 하나님께 기도하라
어려움을 당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마태복음 6장 31절~32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실뿐 아니라, 우리의 약함도 다 알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로 16절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으로 오셨기 때문에, 우리의 배고픔과 피곤함과 연약함을 다 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아뢰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며칠 전, 기쁨이라는 14살 소녀가 저에게 간증을 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목사님, 첫 번째 간증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들한테 따돌림을 당해서 힘들 때가 있었는데, 그때 교회에서 하나님이 다정한 목소리로 “기쁨아”라고 부르시는 소리를 두 번이나 듣고, ‘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구나. 나는 외롭지 않다. 잘 될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친구들과도 잘 지낼 수 있게 되고 정말 기적 같았어요. 그 후에도 어려운 일들이 있었지만, 제가 씩씩하고 밝게 자랄 수 있었던 건 그때의 하나님의 음성이 저의 친구 역할을 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간증은, 이 아이가 작년부터 교회학교 금요철야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가 참 기특합니다. 철야예배를 한 주도 빠질 수 없는 이유가, “통성기도 시간에 마음에 힘든 것들을 하나님께 다 말씀드려야, 일주일을 잘 견딜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아이가 하는 말이, “목사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바꿔주세요. 하기 싫은 공부도 왜 해야 하는지 알려주시고, 꿈을 주셔서 열심히 공부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제가 보니 이 아이는,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시는가?’를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시고, 그 마음을 따라 환경도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십니다.

인생에 막다른 골목을 당하면 사람들은 길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물이 없는 사막에 강을 내시고, 길이 없는 광야에 길을 내어 주십니다.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인간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시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유명한 설교가 템플 감독이 캠브리지 대학 채플에서 초청을 받아 말씀을 전하였는데, 설교가 끝난 후 한 청년이 와서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아직까지도 기도의 응답이라는 미신 같은 소리를 믿고 계십니까? 우연히 어떤 사건이 맞아 떨어진 것을 가지고 기도의 응답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자 템플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청년의 말도 일리가 있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기도하면 우연이 생기고, 기도를 안 하면 우연이 안 생긴다는 것이네. 기도하면 응답이 오기 때문에 나는 기도하는데 마음을 쓴다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면 응답하시게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2절 13절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했던 선지 생도의 가정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고난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며,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고난조차 유익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17살에 폐병으로 쓰러졌을 때, “다른 애들은 다 건강한데, 왜 내가 폐병에 걸려야 합니까?” 늘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서 지금 뒤돌아보니, 이제야 대답이 됩니다. 저를 주의 종이 되게 하고, 그렇게 주의 종이 되도록 병을 들게 하셨던 것입니다. 또, 주의 종이 되고 나서도 늘 몸이 약했습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하나님은 은혜를 주기 위해 그랬던 것입니다. 몸이 허약하니까, 늘 기도하게 됩니다. 밤에 자다가도 일어나서 기도하고, 새벽에도 일찍이 일어나 기도하고, 늘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되고 기도하게 됩니다. 성도여러분! 어려움을 당해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선을 이루실 것을 믿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크고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2. 믿음으로 순종하라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려면, 믿음의 순종이 필요합니다. 엘리사는 도움을 청하러 온 여인에게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고 합니다. 여인이 “기름 한 그릇밖에 없다”고 하자, 엘리사는 “이웃에 가서 그릇을 많이 빌려다가, 집에 있는 기름을 빌려온 그릇들에 부으라”고 말합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이해가 힘들지만, 이 여인은 엘리사의 말에 그대로 순종합니다. 그러자 빌려온 그릇이 다 찰 때까지 기름이 끊이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믿음의 입을 크게 벌려야 큰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통해 기적을 베푸실 것을 믿었습니다. 만약 기적을 믿고 기대하지 않았다면 그릇을 그렇게 많이 빌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두 아들이 종으로 팔려갈 그만큼이라면, 꽤 큰돈을 빚진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빚을 다 갚고도 남을 만큼의 기름을 얻었다면, 이 여인은 온 동네 집집마다 다니면서 그릇이란 그릇은 다 빌렸던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그릇을 준비한 만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입을 넓게 열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적을 베푸실 때, 우리에게 무엇이 있는가를 묻습니다.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인이 가지고 있던 기름을 사용하여 기적을 행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과 저에게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예수님의 이름이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기적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제가 천막교회에서 목회할 때, 서울역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 소년이 찾아왔는데, 몸 상태를 보니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만큼 심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 마음속에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베드로는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라고 말을 했다. 조용기 전도사여, 그렇다면 네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이냐?’ 이 말을 듣고 저는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딱히 뭐라 대답할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5시간 이상을 맨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그 소년을 위하여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갑자기 마음속에 “하나님은 기적의 하나님이시다!”라는 믿음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점점 커져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손가락으로 지구를 밀 수 있을 것 같은 큰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한쪽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소년에게 다가가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라고 외쳤습니다. 그러고는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아 버렸습니다. 그런데 박수 소리에 눈을 떠 보니까, 그 소년이 울면서 천막 교회 안을 뛰어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면, 오늘날에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말합니다. 또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도 고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9장 33절로 34절에 보면, 애니아라는 사람이 중풍병으로 8년 동안이나 침대에 누워 지냈는데, 베드로가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라고 명령하니까, 그 사람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가 바울과 실라를 따라다니면서 여러 날을 괴롭게 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하니, 귀신이 즉시 떠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놀라운 능력의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 받고, 병도 고치고, 귀신도 쫓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3. 채우시는 하나님
 여러분!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삶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우리는 늘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고 걱정하면서 살아가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태복음 6장 31절~32절)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하루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빈들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있었는데, 날이 저물고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빌립이라는 제자는 “1인당 아주 조금씩 먹는 것도 불가능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안드레가 가져온 한 어린 아이의 오병이어 도시락으로, 오천 명이 원하는 대로 배불리 먹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든 후하고 넘치게 은혜를 주시는 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무엇이든 줄 때, 차고 넘치게 주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후히 베푸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비록 적은 양의 기름이라도 하나님께서 그 위에 역사하시면, 그릇마다 차고 넘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또,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라도, 주님께서 역사하시면, 수천 명을 먹이고도 남을 만큼 풍성한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너도 나도 부족한 것이 많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며칠 전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빚이 4천만 원입니다. 아무리 수고하고 애써도 빚진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돈이 많으면 괜찮은가? 그렇지 않습니다. 돈이 많아도 여전히 부족한 인생인 것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그 인생이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아무리 수고하고 애써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채워지지 않는 인생이 우리의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구주로 모시면, 텅 빈 마음이 채워지고, 그 인생도 예수님이 주시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옛날에 어떤 분이 사업을 하다가 큰 빚을 지고 죽으려고 하다가, 우리 교회 성도님의 전도를 받고 교회에 왔어요. 늘 술에 취해서 가족들을 괴롭히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 마음속에 희망이 생기자, 사람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채권자들을 피해 도망 다니던 사람이 채권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사과를 하고 반드시 재기해서 빚을 갚겠다고 약속하니까, 채권자들이 감동해서 그를 도와주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 사람은 다시 사업에 성공해서 빚을 다 갚았는데, 그분이 저에게 이런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목사님! 빚을 지고 자살밖에는 아무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까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희망 때문에 제가 오늘날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목사님은 열심히 다니시면서 소망을 심으십시오. 그러면 몇 십억의 자본을 제공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이 당하는 모든 문제의 답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올 한해 어떤 어려움을 만난다 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좋은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능력과 권능으로 마음에 채워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도>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시고 자비로우시며, 복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날마다 모든 것이 부족함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아무도 이러한 부족함과 갈증을 채워 줄 수 없음을 주님 앞에 두 손 들고 나와 고백합니다.
이제 온전히 갈보리 십자가 앞에 나아와 엎드려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무한하신 사랑과 은혜로 우리의 모든 것들을 채워 주옵소서! 우리의 믿음이 연약하오니 날마다 지켜주시고 보혜사 성령님의 능력으로 우리의 마음에 소망과 은혜를 채워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새 역사를 창조하라/이영훈목사

<말씀봉독>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 1:1~5)

<등단 후 멘트>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새해 하나님의 축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우리에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한 번 더 인사합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행복합니다.”

축복으로 주신 한 해에 주님을 향한 넘치는 감사와 찬양이 드려지는 복된 한 해 되기를 바랍니다.

<찬송가 79장(통합 40장):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은>

(1절)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2절)

숲속이나 험한 산골짝에서 지저귀는 저 새소리들과

고요하게 흐르는 시냇물은 주님의 솜씨 노래하도다

(3절)

주 하나님 독생자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보내주셨네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주 내 모든 죄를 대속하셨네

(4절)

내 주 예수 세상에 다시 올 때 저 천국으로 날 인도하리

나 겸손히 엎드려 경배하며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라

(후렴)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호흡이 다하는 그날까지 주님을 찬양하고, 또 찬양하고, 또 찬양하다가 우리 주님 부르시는 날 기쁨으로 주님 앞에 가서 영원토록 주님을 찬양하게 하여주옵소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한 해는 감사와 찬양의 한 해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더 이상 우리가 과거의 상처나 우리의 현재 힘들고 어려운 일들 때문에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하지 않게 하여주시고,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내일을 바라보며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나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할렐루야! 여러분의 일생이 주님을 찬양하는 일생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창세기 1장 1절로 5절 말씀 가지고 “새 역사를 창조하라”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새 역사를 창조하라” “새 역사를 창조하라”

축복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주님 안에서 거룩한 꿈을 품고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정복하며 새 역사를 창조해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 역사로부터 시작합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위대한 선언으로 성경 말씀의 기록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창조라고 하는 말은 히브리어 원어로 ‘바라’라고 하는데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세계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받고 부름받았으니 이제는 주님 안에서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이루어나가는 주님의 귀한 자녀들, 귀한 일꾼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내 스스로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1. 성령의 역사

먼저,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창세기 1장 2절은 말씀합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조의 역사는 혼돈을 질서로, 흑암을 광명으로 바꾸어놓습니다.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운행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 죄로 인해 어둠이 깊고, 절망이 가득한 그러한 문제와 어려움의 환경으로 변화된 이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는데, 이 세상에 우리가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내 힘과 능력으로는 이 어둠을 밝힐 수가 없습니다. 내 힘과 능력으로는 오히려 죄악성에 끌려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탐욕을 가지고 그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 몸부림치는데, 탐욕은 더 깊은 공허감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힘들고 어려움 가운데서 몸부림치며 살아보려고 하다 더 큰 절망에 빠지게 합니다. 그러니까 공허감과 절망이 마음속에 쌓이면서, 이것이 분노로 바뀌어버렸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보면 분노에 지배되는 사회가 되어버린지 모릅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분노조절 장애로 병원 진료를 받은 환자 수가 5,986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2014년에 4,968명, 2015년에 5,390명, 2016년에 5,920명 이 4년째 4년 세에 20퍼센트가 넘는 많은 분노조절 장애 환자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2015년 4월 우리나라 성인 만 20세에서 59세의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1/3 정도가 자신이 분노, 우울, 불안 증세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중에 42%는 정신과 상담이 필요하다고 자기가 말을 했고, 11%는 실제로 분노조절장애가 의심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분노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혼돈, 공허와 흑암이 깊어졌기 때문에 이 세상이 분노로 뒤덮인 것입니다. 이런 분노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힘은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 성령의 능력밖에 없습니다.

바나 리서치 그룹에 조지 바나(G. Barna)는 말합니다. “우리의 타고난 성향은 사탄의 영향 아래 있기 때문에 삶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낙담하게 되며, 불만을 갖게 되고, 회의적이며, 이기적이 된다. 우리의 힘으로는 우리의 본성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의 능력으로 우리의 존재를 우리가 하나님과 그분의 창조의 반응하는 방법을 180도 바꿀 수 있으며, 바꾸려 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통해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성령의 능력이 임하면 우리가 이 죄와 어둠의 권세를 넉넉히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의 능력을 받기 전에는 예수님이 붙잡혔을 때 다 저들이 겁에 질려 주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에는 자기들에게도 그러한 환란이 다가올 것을 두려워하여 문을 꽁꽁 잠그고 숨어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저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1절-22절입니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000년 전 부활의 날 저녁, 제자들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니라 오늘 이 새해 벽두에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성령을 받으라!” 죄악 세상을 이길 위대한 능력은 오직 성령을 받는 데 있습니다. 성령충만을 받으면 우리는 죄와 흑암의 권세를 물리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은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우리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다시 한번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 붙잡고 열흘 동안 간절히 기도했을 때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1절로 4절은 설명합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을 받은 다음 그들의 삶이 완전히 바뀌어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던 베드로가 문을 박차고 뛰어나가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고 그들에게 선포했습니다. 그때 그 말을 듣고 모인 청중들이 가슴을 치며 회개하며 “어찌할꼬 어찌할꼬” 고백하며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 앞에 돌아 나왔는데, 그날 하루 침례 받은 사람이 남자 어른만 3,000명입니다. 여자와 아이를 합하면 약 10,000명이 넘는 사람이 그날 주님께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꿉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꿉니다. 우리 삶 가운데 모든 문제를 축복의 응답으로 바꾸어놓는 것이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제 생애를 바꿔놓은 것이 1966년 2월의 성령체험입니다. 저는 4대째 장로교 집안에서 태어나가지고 굉장히 ‘거룩’ ‘거룩’을 찾던 그러한 습관을 따라 신앙 생활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순복음교회에 와서 가만 눈치를 보니깐 성령을 안 받으면 살아남지 못하겠더라구요. 조 목사님께서 매 시간마다 “성령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시는데, 저는 그때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저는 처음으로 순복음교회에서 성령이란 말을 들었기 때문에, “주님 그게 뭔지 모르지만 받아야 되겠습니다. 주시옵소서.” 아무리 기도해도 안 주시는 거에요. 그런데 66년 2월에 조용기 목사님이 닷새 동안 부흥회를 하시는데 네 번째 날 마음이 뜨거워지더니 혀가 딱 굴러가면서 방언이 터져 나왔습니다. ‘왔구나. 왔구나. 왔구나.’ 그래 가지고 기도를 하는데 막 얼마나 통곡이 나오는지 저는 어디서 그 울음이 쌓였다 나오는지 막 한 시간 내내 통곡하고 울었어요.

그전에는 아무리 기도하려고 해도 5분을 기도해도 기도할 게 없어서 시계를 보면, ‘시계 죽었나? 이거 왜 이러나?’ 그렇게 기도가 안 되던 사람인데, 성령의 체험을 하고 나니까 막 눈물 콧물이 쏟아지면서 엎드려 기도만 하면 주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모습이 보이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보여서 그냥 울고 또 울고, 울고 또 울고 그 눈물이 5년을 가더라구요. 5년을 가요. 요즘 저를 보면 많이 타락했어요. 한 번 울려면 몸부림쳐야만 하니깐. 여러분 늘 감사와 감격의 눈물이 메마르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은 권면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할렐루야! 성령충만이 모든 문제 해결의 비결인 것입니다. 죄악 세상을 이기고 절망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삶의 비결이 성령충만에 있습니다. 올 한 해 성령으로 충만하여 모든 문제와 싸워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말씀의 역사

성령충만의 역사는 말씀 충만의 역사와 함께 갑니다. 우리는 성령충만과 함께 말씀 충만의 역사를 체험해야 합니다. 창세기 1장 3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말씀 하나로 온 우주만물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능력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기적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축복인 것입니다. 말씀 속에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 담겨있습니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세상 사람들의 말을 듣고, 흔들리고 상처받는 여러분 안 되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의 말은 불완전한 사람들이 자기 편한 대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말을 들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닌데 상처받고 여러 가지 염려 근심이 들어올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주님 내게 말씀하여 주옵소서. 내가 주님의 음성을 듣기 원하나이다.” 주님 말씀을 듣고 아멘으로 순종할 때에 말씀이 내게 축복이 되고, 기적이 되고, 은혜가 되고, 치료가 되고, 용서가 되고,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우리가 세상 사람들의 말을 듣고 흔들릴 것이 아니라 늘 주님의 음성을 듣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그리고 주님 말씀을 내 마음에 가득 채워서 우리가 입술을 열면 긍정적인 고백이 쏟아져 나오게 되길 바랍니다. 감사와 찬양이 쏟아져 나오게 되길 바랍니다.

올 한 해 지나가면서 절대 여러분 입에서 부정적인 말. 원망 불평하는 말, 남을 헐뜯고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흑암의 역사입니다. 흑암의 세력에 여러분 지배받지 말고, 성령의 능력에 지배받아서 절대 능력 절대 감사의 고백을 하며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풍랑이 잠잠해졌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죽었던 나사로가 벌떡 일어나 살아서 걸어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했던 맹인 바디매오가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그 말씀의 역사가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선포해야 합니다. 절망은 떠나갈지어다. 염려, 근심, 걱정은 떠나갈지어다. 내 몸을 약하게 하는 모든 질병은 떠나갈지어다. 우리 가정을 흔들고 상처를 주는 모든 흑암의 권세는 물러갈지어다. 담대하게 외치셔야 합니다. 여러분 가정에 문제가 있습니까. 믿음으로 외치십시오. 문제는 떠나가라. 기적이 일어날지어다. 주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주셔서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기적은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올 한해 복 있는 사람의 삶을 살기 위해서 말씀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1편 1절로 2절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야훼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여러분 복 있는 사람이 되어서 죄의 길을 가지 아니하고, 말씀이 인도하는 길을 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바른 길, 의의 길, 축복의 길, 기적의 길로 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 필사를 해서 전시회까지 하게 되신 윤여선 권사님을 소개합니다. 지금 97세 신데, 96세 때 전시회를 하셨어요. 전주 동산교회 권사님이신데, 자녀들에게 성경 필사본을 남겨주기 위해서 70세에 성경필사를 시작해서 처음에는 참 시간 내기에도 힘들고, 몸도 힘들고, 끝까지 쓸 자신도 없었는데, 결국 신약은 완성해서 자녀들 여섯 명을 모아놓고 복사해서 나눠줬더니 한 딸이 말합니다. “엄마, 복사본 말고 원본을 갖고 싶어요.” 이 딸도 하여간……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매일 여섯, 일곱 시간씩 어머니가 필사를 해가 지고, 97세가 된 지금까지 필사를 하고 계신데 필사의 유익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첫째, 말씀을 편식하지 않고 모두 볼 수 있음. 둘째,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이 됨. 셋째, 성도의 거룩한 삶을 살게 됨. 그러면서 고백합니다. 성경 필사를 하면 시간을 소중히 쓰게 합니다. 말씀을 늘 읽고 쓰다 보니 말씀을 거울삼아 늘 생각과 행동을 조심하게 합니다. 권사님이 좋아하는 찬송은 304장인데 그중에 3절을 제일 좋아하신다고 합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그러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읽고 토를 달지 마세요. 무조건 믿고 순종하면 그 진리를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조건 믿고 따르면 복이 되어 돌아와요. 말씀에 순종하다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단단히 붙들리게 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올 한 해 말씀에 붙들려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저는 새벽에 일어나서 말씀을 읽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은혜고 축복인지 모릅니다. 성찬 주일이라서 일찍 깨었어요. 오늘 2시 8분에 깨었더라고요. 깨어보니까요. 그래서 일어나서 침대에서 한 시간 기도하고 나와서 성경을 보는데 얼마나 말씀이 은혜가 되는지 그냥 너무너무 감사했어요. 말씀이 너무 감사하고 또 오늘 주일 1, 2, 3부 주님께서 주시는데, 또 감사하고 아침 내내 감사하다 왔습니다. 여러분 말씀이 여러분을 생명의 길로 축복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

나아가서 우리는 말씀과 성령충만을 받은 다음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올 한해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창세기 1장 4절에 보니까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만물을 만드셨는데 만드신 온 우주만물을 보니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할렐루야!

우리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주 좋은 하나님 기뻐하시는 귀한 존재로 우리가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날 어떻게 보느냐 이게 중요한게 아니예요. 사람이 날 무시하고 깔보고 나를 상처 주는 말해도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와 같은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하나님이 복 주시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일생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1년 365일 224시간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시고 계시는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 그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우리 인생이 복된 인생이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편 121편 3절 4절은 말씀합니다. “야훼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우리가 혼자 외롭고 쓸쓸해 밤잠을 자지 못하고 베개에 머리를 눈물로 적실 때 주님이 내 곁에 오셔서 나를 꼭 품으시면서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슬퍼하지 말라~ 외로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돌보고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할렐루야! 때때로 우리가 주님 앞에 죄짓고 불의해서 순간적으로 무너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 주님 마음 아파하십니다. 얼른 주님 앞에 회개하고 “주님, 나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앞에 돌아오면 주님이 다시 사랑의 품에 안으시고 우리 죄와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고 “주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주님이 인정하신 주님의 자녀로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갓난아기를 둔 부모님은 아이로부터 눈을 떼지 못해요. 이 아이가 어떻게 어디 가서 부딪히지는 않나? 또 아무거나 막 집어먹지 않나? 애들은 보이는 것마다 막 집어먹으니까. 그래서 어린 자녀를 둔 부모는 늘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데 하나님이 그처럼 우리를 어린아이를 돌보듯이 불꽃 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계시고 우리를 주님의 사랑의 품에 안으시고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넘치게 채워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넘치는 감사와 넘치는 찬양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되기 위해서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무장해서 그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상급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복된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예배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예배에 최선을 다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왜? 예배에 우리 하나님 친히 좌정하셔서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고 우리 기도를 받으시고 우리의 감사를 받으시고 우리에게 복을 내려주시는데 이 복된 시간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교회에서 봉사 할 때, 남녀선교회가 주님을 섬길 때 기쁨과 감사함으로 주님을 섬기길 바랍니다. 교회학교 교사들이 섬길 때, 우리 찬양대 오케스트라가 찬양을 통해서 주님께 영광을 드릴 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 찬양을 드리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크게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시편 37편 4절에 말씀합니다. “또 야훼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하고 주님을 섬기면 주님이 내 마음에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기쁨으로 찬양하고 기쁨으로 감사하고 기쁨으로 섬기면 내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거룩한 꿈을 품고 날마다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나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나갈 길을 주님께 맡기세요.

시편 37편 5절입니다.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님께 맡기면 주님께서 우리의 발걸음을 가장 주님이 기뻐하시는 발걸음 그곳으로 인도하여 주셔서 우리 발걸음이 복된 발걸음, 기적의 발걸음, 축복의 발걸음, 생명의 발걸음이 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올 한해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믿음을 갖고 전진해 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어떤 도전이 다가와도, 어떤 환난과 시련이 다가와도, 넉넉히 싸워 이겨서 여러분의 신앙이 정금같이 변화되어 위대하게 쓰임 받는 주님의 일꾼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우리 예수님 머지않아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 다시 오실 때 주님 앞에 서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불렀던 찬송가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의 마지막 4절에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내 주 예수 세상에 다시 올 때 저 천국으로 나 인도하리

나 겸손히 엎드려 경배하며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라

<찬송가 79장(통합 40장):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은>

(4절)

내 주 예수 세상에 다시 올 때 저 천국으로 날 인도하리

나 겸손히 엎드려 경배하며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라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호흡 다하는 그날까지 주님을 찬양하고 또 찬양하고 또 찬양하고 또 찬양하고 주님께 찬양과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살다가 주님 앞에 가기를 원합니다. 지난해에 우리 마음속에 상처를 입혔던 것들을 다 떠내려 보내길 원합니다.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슬프게 했던 일들 가정의 문제, 생활의 문제, 직장의 문제, 몸의 질병의 문제, 힘들게 했던 일들 주님 다 떠내려 버리고 오늘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무장해서 올 한해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주님을 찬양하며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기로 결심했사오니 우리를 붙들어주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옵고 예수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생명의 물과 양식/ 조용기목사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 6:35)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이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문명의 혜택들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여전히 목마르고 배고프고 인생이 고달픈 그대로인 것입니다. 육신의 배고픔은 이전보다 크게 나아졌지만 마음이 영양실조에 걸려서 죄책감과 무의미, 죽음과 허무, 미움과 원망,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1. 목마르고 배고픈 인생


 “목마르고 배고픈 인생”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그 마음속에 샘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그 속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는데 그 생기가 바로 우리 마음속에 있는 영혼의 샘물인 것입니다. 이 영혼의 샘물은 마시면서 살 동안에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풍요롭고 삶이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고 평안하고 행복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풍요롭고 행복한 삶이 깨어진 것은 죄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죄를 짓자 그 영이 죽고 생명의 샘물도 말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세기 3장 17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 때문에 배고프고 목마른 인생이 시작된 것입니다.

목마른 배고픈 인생이 돼버린 사람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누우며 온갖 수고를 다해도 고생의 떡을 먹고 고생의 물을 마시며 살아가게 됨은 예레미야서 2장 13절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라고 말씀한 것처럼, 생수의 근원되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나니 목마르고 배고프고 고달픈 인생을 살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2.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인생의 배고픔과 목마름은 예수님을 만나야 해결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예수님만이 생명의 떡이요 생명의 물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 6장35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결코 주리지 않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로 가셨을 때, 우물가에서 한 여인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를 것이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마시는 물은 육신의 목마름을 해결해 줄 수는 있지만 영혼의 목마름은 해결해 줄 수가 없습니다.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아무리 채워도 만족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지위, 명예, 권세, 부귀라는 세상의 물을 마심으로써 갈증을 해결해 보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소금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목이 마를 때 소금물을 마시면 더욱 갈증이 심해지는 것처럼 이 세상의 것으로는 아무리 채워도 끝없이 목마르고 갈급합니다. 그래서 전도서 5장 10절은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참된 평안과 기쁨, 만족과 행복은 환경이나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육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영적인 존재입니다. 또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에 육체의 필요를 채운다고 해서 영혼까지 채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세상의 부귀와 영화와 공명을 다 가지고 있어도,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모시지 않으면 영적으로 배고프고 목마른 인생은 치울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 4장14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주로 모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구주로 모시면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됩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내 인생은 맹물 같다”고, “아무런 기쁨이 없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자포자기하고 절망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주님께서 맹물 같은 인생을 포도주와 같은 인생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주가 떨어진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 잃어버린 기쁨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기쁨이 없고 고달픈 인생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께서 기쁨이 넘치는 삶으로 바꾸어 주시는 것입니다.
 인생의 참된 기쁨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6편 11절에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생명을 얻은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 다릅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일시적이고 헛된 것이지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은 충만한 기쁨이요 영원한 즐거움이요. 기쁨입니다. 그 무엇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쁨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3. 꿈과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라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배고픔과 목마름만 해결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혼의 배고픔과 목마름만 해결하신 것이 아닙니다. 실제 우리 삶의 배고픔과 목마름도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삶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꿈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환경이 어렵고 힘들어도 예수님을 바라보면 꿈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꿈 공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누구든지 꿈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백화점 주인이 고아원 아이들을 초청해서 장난감을 선물해 주기로 했습니다. 장난감 코너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한 가지씩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하나씩 집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는 장난감을 고르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화점 주인이 “왜 너는 고르지 않니? 원하는 것을 고르면 이 아저씨가 선물로 줄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백화점 주인의 다리를 힘차게 붙잡고, “그럼, 저는 아저씨를 고를래요.” 이 아이는 백화점 주인을 선택했습니다. 거기 있는 장난감을 다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백화점 주인은 그 아이를 자녀로 입양했고 나중에 어른이 된 다음에는 그 백화점 주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한복음 14장14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꿈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하늘에서 은혜의 비가 쏟아져도 그릇을 준비하지 않으면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릇을 준비하면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는데 그 그릇이 바로 꿈인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꿈이라는 그릇을 준비하면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인생은 발전이 없습니다. 옛날에는 사람이 하늘을 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서 출장도 가고 여행도 가고 하는 것입니다. 또 옛날에는 사람이 지구를 벗어나는 일, 달에 가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달에 가는 꿈을 꾸었고 그 결과 지금 달에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또 옛날에는 인간이 화성에 간다는 것은 영화에서나 나올 만한 이야기가 되어있습니다. 그럼에도 최근에 미국서 나사의 화성 탐사선이 화성에 무사히 착륙해서 큰 이슈가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꿈이 있는 사람의 가슴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꿈이 있어야 인류의 역사도 발전하고 우리 인생도 발전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꿈을 가지고 있으면 어떠한 어려움과 장애물을 만나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한 사람인데 어떤 기자가 그에게 “어떻게 그처럼 높은 산을 정복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것이니 확고한 목표가 있는 사람은 꿈을 이룰 때까지 계속 시도합니다. 저도 역시 꿈이 있었기 때문에 도중에 장애물이 나타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했던 것입니다.” 조셉 마셜이라는 작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산꼭대기를 향해, 해돋이를 향해, 희망을 향해 내디딘 가장 연약한 한 걸음이 가장 맹렬한 폭풍보다 강하다.” 이 말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희망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가를 잘 말해 줍니다. 꿈과 희망을 가지고 나아가는 사람은 어떠한 어려운 일을 만나도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폭풍우보다도 강한 것입니다.

 꿈과 희망을 가진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계속 전진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꿈과 목표를 가진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믿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태복음 17장 20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겨자씨 한 알 만큼의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중국의 어린 이광이라는 사람은 밤중에 산에서 큰 호랑이를 만났습니다. 그는 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활을 겨누어서 화살을 당겼습니다. 화살이 “탁”하고 호랑이를 맞췄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 보니 호랑이가 아니라 호랑이처럼 생긴 큰 바위였습니다. 살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활을 쏘았더니 화살이 바위를 꿰뚫었습니다. 목표를 가지고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면 우리의 삶에도 이러한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는 기도에는 참으로 놀라운 힘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5장 15절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해외 성회를 하면서 기도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많이 체험했습니다. 한 번은 필리핀에서 성회를 인도할 때, 암에 걸린 젊은 자매님이 성회에 참석했는데 이미 온몸에 암이 퍼져서 아무런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집회의 소문을 듣고 그 마음속에 꿈과 희망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가 집회에 참석해서 말씀을 듣고 부르짖어 기도하는데 성령의 불이 떨어져 그 길이 암이 깨끗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할머니는 남편을 데리고 왔는데 남편이 직장암 때문에 바깥 피부까지 곪아 터졌다고 해요. 그런데 병자를 위한 기도 시간에 남편의 엉덩이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하고 집에 갔는데 다음 날 자고 일어나 엉덩이를 쓰다듬어 보니까 깨끗이 나았습니다. 할머니가 다음 날 집회에 와서 남편을 대신 해서 간증을 하는데 “자고 일어나서 우리 영감 엉덩이를 만져보니까 깨끗이 나았어요.”하고 “하하하하!”라고 좋아서 웃으면서 간증을 했습니다. 그래서 청중들이 다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전에처럼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로 13절에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심을 다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놀라운 기적을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첫째도 기도요, 둘째도 기도요, 셋째도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듣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58장 9절에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야훼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내가 여기 있다.”라고 말씀하시며 응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이 있을 때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시고 모든 필요한 것들을 예비해 주십니다. 오랜 세월 동안 예수님을 믿고 살아온 경험을 통해서 보면 어려움을 당할 때, 어려움을 이길 수있는 길은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것을 한두 번 체험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항상 피할 길이 있다고 믿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길을 찾습니다.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하나님께서 길을 예비해 놓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어려움이 있든지, 낙심하지 말고, 꿈과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기도의 사람은 B. M. 바운드는 자신의 책에서 “오직 주님만이 산들을 옮길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과 기도를 통해서 주님의 손을 움직일 수 있다”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하면 전능하신 주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지 꿈과 믿음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놀라운 기적을 베푸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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