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베드로젖서 2장 1~5절)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역사의 주관자가 되신 하나님께서 이제 우리 대한민국에 통일의 문을 열어주시고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잘 진행되어서 북한에 복음이 들어가 복음을 통한 진정한 통일의 날이 다가올 줄로 믿습니다. 믿고 기도하면 주님께서 주님의 때에 반드시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복음성가: 약한 나로 강하게>
(1절)
약한 나로 강하게 가난한 날 부하게 눈먼 날 볼 수 있게 주 내게 행하셨네
(2절)
내가 건너야 할 강 거기서 내 죄 씻겼네 이제 주의 사랑이 나를 향해 흐르네
(3절)
깊은 강에서 주가 나를 일으키셨도다 구원의 노래 부르리 예수 자유 주셨네
(후렴)
호산나 호산나 죽임당한 어린양 호산나 호산나 예수 다시 사셨네
주님, 홀로 영광 받으시고 우리 기도에 웅답하여 주옵소서. 다 같이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호산나 호산나 죽임당한 어린양 호산나 호산나 예수 다시 사셨네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홀로 받으시옵소서. 역사의 주관자가 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북한의 문을 여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내려주셔서, 복음이 북한 전역에 증거되게 하여주심으로 무너졌던 모든 교회가 다시 수축되게 하여주시고, 북한 전역에 교회마다 부흥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남북 8천만이 함께 기쁨으로 주님을 찬양하는 진정한 통일의 날이 속히 다가올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감사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저는 오늘 베드로전서 2장 1절로 5절 말씀 가지고 “보배로운 산 돌 예수 그리스도”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눕니다. 제목을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보배로운 산 돌 예수 그리스도” “보배로운 산 돌 예수 그리스도”
우리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출발합니다. 아무런 자격도 없는 우리들이, 어떠한 조건도 갖추지 못한 우리들이 죄 가운데 살고 있었을 때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택함받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첫 출발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신앙이 시작하게 된 것이고, 우리 일생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는 일생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나서 우리 일생은 감사의 일생이 되어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택하여 구원하여주시고 하나님 자녀 삼아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영광 위해 살기 원합니다!” 날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 믿고 난 이후에 하나님 자녀답게 하나님 앞에 인정받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베드로 사도가 소아시아에 보낸 첫 번째 편지인 베드로전서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버릴 것과 사모할 것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에게 먼저 버릴 것이 있고, 또 사모할 것이 있다고 저들에게 권면합니다. 버릴 것과 사모할 것에 대해서 베드로전서 2장 1절과 2절은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신앙생활은 평생 선택과 결정의 연속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내 원하는 대로 맘대로 선택하고 결정했지만, 예수를 믿고 난 다음부터는 그 선택이, 그 결정이 주님 보시기에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냐, 기뻐하지 않는 것이냐에 기준을 둬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지 않는 일을 우리가 하면 안 됩니다. 사도 베드로는 먼저 이러한 것을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버릴 것이 무엇입니까? 2장 1절에,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그랬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죄에 속한 사람들이 늘 행하는 그러한 잘못된 모습이다. 이러한 나쁜 것을 버리라.”하고 말씀합니다. 악독과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이제 더 이상 악한 의도를 갖고 남을 해치는 그러한 악독을 버리고, 남을 속이는 기만을 버리라. 그리고 겉과 속이 다른 외식하는 모습을 버리라.”하고 말씀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종교 지도자들이 그렇게 겉과 속이 다른 모습으로 살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사람들 앞에 자기의 종교적 행위를 자랑했습니다. 사람들이 다 듣는 거리에 나가서 크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가 일주일에 이틀씩 금식합니다. 십일조를 드립니다. 말씀을 지켜 행합니다. 난 이렇게 거룩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탐욕과 교만과 분노와 시기, 질투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입니다. 가장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하는 저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늘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보시기에 이러한 겉과 속이 다른 외식하는 모습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시기를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서 고쳐야 될 것이 하나 있어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축하해주고, 가서 “참 잘됐다.”하고 그렇게 격려해주지는 못할망정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시기심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악한 말로 남을 참소하고 비판하고 물고 뜯는 이러한 모습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 한국에 SNS에 떠돌아다니는 많은 이야기들이 부정적인 이야기입니다. 남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얘기는 적고 대부분이 남의 잘못을 들추어내고, 그 사람을 끌어내리는 그런 부정적인 말로 뒤덮여 있는 것을 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 같은 잘못된 모습을 버려야 합니다. 절대 그러한 잘못된 길로 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남이 좀 허물이 있어도 덮어주고, 좋은 것은 칭찬하고, 격려해주고 그리하는 것이 우리,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참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나 없나 들춰내 갖고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 우리는 주님 앞에 부끄러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모습을 버려야 되고, 우리가 사모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2장 2절에,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아이가 태어나면 본능적으로 엄마의 젖을 찾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난 다음,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늘 사모해야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한 끼 밥을 안 먹으면 배고픈 것을 아는데, 말씀을 하루 이틀 건너뛰고 말씀을 묵상하지 않는데도 영적인 배고픔을 느끼지 못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영적인 갈급함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늘 사모하는 마음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우리 믿음이 자라게 합니다. 우리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돼서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아가도록 말씀이 우리를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로 17절은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5만 번 이상 기도 응답을 받은 조지 뮬러 목사님. 기도의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기도의 사람이기 이전에 앞서서 그는 성경의 사람, 말씀의 사람이었습니다. 평생 동안 성경을 200번 정도 통독을 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말씀을 사모했는데, 100번 읽을 때 그 성경을 읽는 것이 너무나 감동스러워서 무릎을 꿇고 말씀을 보았다고 합니다. 성경 읽기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와 같이 말씀했습니다.
“영적인 생명력은 우리의 생각과 생활에 말씀이 얼마나 자리 잡고 있는가와 정확하게 정비례합니다. 저는 100번이 넘게 성경을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매번 기쁨이 점점 커졌습니다. 성경은 늘 저에게 새로운 책으로 다가왔습니다. 날마다 성실하게 성경을 읽고 연구할 때 놀라운 축복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날 성경을 읽지 않았던 시절을 저의 ‘잃어버린 세월’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자신을 보면 성경을 읽지 않고 잃어버린 시간이 얼마나 많습니까? TV 드라마 앞에서 ‘헤...’ 하고 정신을 빼놓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까? 신문 보며, 잡지 보고 이런 시간은 얼마나 시간이 흘러가는지 모르고 거기 빠져있는데, 말씀 보는 것은 너무나 소홀히 했다는 것을 우리가 반성하고 회개해야 됩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일생이 말씀과 동행하는 일생이 되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1년에 한 번 이상은 통독을 반드시 해야만 합니다. 지구역장 하려면 열 번 이상은 읽어야 합니다. 아멘 소리가 잘 안 나오네. 안수집사님, 권사님, 장로님 돼서 교회를 섬기려면 한 20번은 읽어야 될 것입니다. 말씀을 모르고 어떻게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말씀을 모르고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말씀을 모르고 우리가 어떻게 교회를 섬기는 직분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말씀에 굳건히 서서 주님의 뜻을 깨달아 알고 그 뜻을 실천해 나가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주님께 나아가라
둘째로, 우리는 말씀을 붙잡고 날마다 주님께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3절, 4절입니다.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날마다 우리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로 나아가고, 찬송으로 나아가고, 예배를 통해 주님 앞에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아 알라!” 체험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34편 8절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너희는 야훼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신앙생활은 주님과 만남의 체험인 것입니다. 내가 지식적으로 아는 것 가지고는 충분하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삶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체험해야 되는 것입니다. 가슴이 뭉클해지고, 주님의 은혜가 임할 때 감동이 오고, 기쁨이 넘쳐나고, 감사가 넘쳐나는 그러한 체험을 날마다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예배 구경꾼이 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귀한 예배 시간에 구경꾼으로 왔다 가는 것처럼 그 삶이 불행한 것이 없습니다. 이 시간이 나의 운명을 바꿀 그런 축복의 시간인데, 그런 기적의 시간인데, 주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복된 시간인데. 예배를 통해서 날마다 주님께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나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매일 예배 시간마다 주님의 은혜와 기적을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주님 은혜 감사합니다. 내 일생 다 가도록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습니다!” 믿음으로 고백하며 주님 앞에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베드로 사도가 이 편지를 쓸 때에, 소아시아에 있는 모든 교회에 이 편지를 보내 믿음을 격려했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그 기독교 박해를 피해서 뿔뿔이 흩어져 신앙생활을 하고있는 성도들이었습니다. 버린 바 된 모습으로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네로 황제 시대 이후로 시작된 기독교 박해가 약 250년 가까이 계속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로마 원형 경기장에서 짐승의 밥이 되어서, 또 불에 타서, 십자가형으로 죽었습니다. 귀족들은 재산을 몰수당하고 추방당했습니다. 이렇게 사람에게 버린 바 되었지마는 주님은 그들을 붙드시고, 세워주시고, 함께하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핍박을 당할 수가 있습니다. 직장에서 핍박을 당할 수도 있고, 믿지 않는 집에 시집을 가서 핍박을 당할 수도 있고, 어려움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지키면 주님께서 복에 복을 더해주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은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 여러분을 모든 고난을 이기게 만들어주시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켜주실 것입니다. 시편 118편 17절에 이와 같은 축복의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야훼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를 핍박하고 괴롭히고 힘들게 했던 사람들을 주님이 다 심판하시고 우리를 그들 앞에서 높여주실 것입니다. 고난은 잠깐입니다. 고난 뒤에 다가올 영광과 축복과 이 고난을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난의 때에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또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부르짖어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주님, 나를 도우시고 함께하여주옵소서.”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고, 놀라운 역사를 우리에게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힘든 일이 다가옵니다. 어려운 일이 다가옵니다. 요즘 참 경제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사업하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요즘 아이들이 중학교만 올라가면 벌써 사춘기가 와 가지고 반항하고 집을 뛰쳐나가고, 말할 수 없는 어려운 일들이 다가오지만, 그때가 주님께 더 가까이 나가 부르짖어 기도해야 할 때인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눈물의 기도를 주님께서 귀하게 보시고 그 기도를 반드시 응답해주셔서 주님의 기적이 우리 앞에 펼쳐지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3.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
우리는 날마다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부름에 합당한 삶을 살며 거룩한 제사장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셋째로,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5절입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할렐루야! 여기 보니까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령한 집입니다.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우리 마음 가운데 예수를 믿는 그 순간부터 들어와 계셔서 내가 신령한 집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신령한 집인 우리의 집을 잘 보전하고 아름답게 만들고 관리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됩니다. 신령한 집을 함부로 내버려두면 안 되요.
성격이 부지런한 사람은 일을 찾아서 합니다. 쉬는 시간이 없어요. 집에서도 계속 바닥을 청소하고 또 닦고 또 닦고 반짝반짝하게 만들고, 설거지통에 그릇 쌓이는 것을 그냥 지나가지 않습니다. 주저 없이 또 닦고 또 닦고 또 닦아요. 그런데 성격이 원래 게으른 사람은 막 설거지 이만큼 쌓아놓고. 집안에 청소하지 않아서 먼지가 쌓여 가지고 이렇게 만져보면 막 먼지가 묻어나오고.
그런데 여러분은 신령한 집이기 때문에 그 집을 아름답게 가꿔야 됩니다. 늘 기도하고, 말씀 보고, 성령으로 충만해서 집을 아름답게 가꿔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도 하지 아니하고, 말씀도 보지 아니하고, 예배드려서 예배드릴 때도 전혀 그냥 구경꾼으로 앉아 있으면, 그 집에 먼지가 가득 앉아서 기쁨이 사라지고 감사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집을 잘 가꾸게 되기를 바랍니다.
신령한 집인 우리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곳이, 바로 이곳이 교회입니다. 이 교회 건물은 예배드리는 우리를 예배 잘 드리도록 건물이 되어서 예배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고, 진짜 교회는 바로 우리 자신들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신령한 집이 되어서 주 앞에 거룩한 제사장으로 예배드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교회의 주춧돌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주춧돌을 빼내면 건물이 흔들리고 집이 무너지게 되는데, 예수님이 우리 교회의 주춧돌이 되시고, 예수님이 머리가 되시고, 예수님이 전부가 되십니다. 예수님만이 온 인류의 희망이 되시고, 예수님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시고,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 제일주의의 신앙을 가지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주님을 섬기며, 교회를 바로 세우고 교회를 부흥시키고 교회를 위해 헌신 봉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8절에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하고 베드로가 고백할 때, 예수님께서 “이 믿음의 고백의 위에 내가 교회를 세울 터인데, 그 어떠한 흑암의 권세도 이기지 못할 것이라.” 기독교와 맞서서 이긴 정부가 없습니다. 기독교와 맞서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에 그 악한 세력을 하루아침에 와르르르르 무너뜨려버리시는 것입니다.
1917년, 기독교 국가였던 러시아에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서 러시아가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다 잘살게 해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교회의 문을 닫고, 기독교를 박해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을 때,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습니다. 74년이 지난 후에 1991년에 소련은 와르르르 무너졌습니다. 그들이 한때 핵무기를 개발하고 미국과 맞서는 대국이라 했지마는, 소련이 무너진 다음 들어가 보니까, 어떻게 이 나라가 이렇게 유지가 될 수 있었는지 의문이었습니다. 1993년도, 94년도, 제가 6개월마다 모스크바에 들어가서 신학교 학생들에게 강의를 했는데, 그 당시 한 달 평균 생활비가 20달러입니다. 2만 원, 별로 놀라지도 않으시네. 2만 원, 20만 원도 아니고 200만 원도 아니고 2만 원. 먹을 것이 없어서 하루 두 끼만 먹습니다. 딱딱한 빵, 요만한 것 하나가 한 끼입니다. 정말 딱딱하고 질기고 맛이 없는데, 그게 한 끼에요. 그것도 세 끼를 못 먹고 두 끼만 딱딱한 빵 하나를 먹고 지내는데, ‘아! 공산주의가 기독교를 핍박하더니 이렇게 가난과 저주가 다가왔구나.’ 완전히 소련이 무너져버린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온 인류의 희망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우리는 자유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마음껏 주님 앞에 예배드릴 수 있는 이 놀라운 일을 감사해야 됩니다. 이 우리는 주 앞에 거룩한 산 제사가 되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될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우리가 있는 곳에서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도록 우리 삶이 거룩한 산 제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여러분은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특별히 택하고 부르셔서 위대한 사명을 맡겨주신 거룩한 제사장들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의 분명한 정체성을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소유된 백성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부르셨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셨습니다. 택하신 족속으로, 거룩한 나라로, 소유된 백성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남은 여생 우리를 부르신 부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다 되어야 할 것입니다.
33년 동안 몸담고 있던 불교에서 벗어나 승려였다가 하나님 자녀로 거듭난 서건석 성도를 소개합니다. 원래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났지만, 사춘기 때 방황하면서 나쁜 길로 들어섰습니다. 주먹을 휘두르며 깡패로, 폭력배로 방탕한 삶을 살다가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서 그는 도망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제주도까지 도망을 갔는데 한밤중에 목탁 소리를 듣고 찾아가 보니, 그곳이 절입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주지 스님을 따라서 훈련을 받으면서, 하루 삼천 배씩 하면서 승려가 됩니다. 승려가 돼서 나와가지고 금산에서 이제 절을 짓고 승려로 살게 되었는데, 이분이 결혼을 합니다. 승려도 결혼을 하는 모양이에요. 그래 결혼했는데, 크리스천인 아내를 만났습니다. 아내가 남편이 변화되어서 하나님 일꾼 되게 해달라고 날마다 기도합니다. 하루는 목사님이 심방 오신다고 하니까, “제 남편이 승려예요.” 그래 목사님도 놀래고, 교인들도 놀라고. 그래서 교인들이 함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분 남편이 변화되어서 예수 잘 믿게 하여주옵소서.” 본인도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내 남편이 청년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다가 예수님 만나 변화된 것처럼 변화되어서 하나님 사람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이 부인되는 분이 나가던 교회가 오래되어서 건물에 금이 가고, 비가 새고, 건물을 다시 짓지 않으면 안 될 그런 어려운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 남편이 그 소식을 마을 사람에게서 전해 듣고 한 번 가보니, 건물이 낡아서 다시 안 지으면 굉장히 위험하겠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집에 와서 그 부인에게 말합니다. “교회 짓는 데 돈이 얼마나 드냐?”고. 그래서 승려가 건축 헌금을 해가지고 교회를 다시 지었습니다.
그리고 매번 교회 올 때마다 교회에다 데려다주고 본인은 가는데, 성탄절 날, 부인을 따라 교회 들어와가지고 예배를 드리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찬송을 들으니까 마음이 뭉클해지고, 내가 어떻게 살았나 주님 앞에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부인을 따라서 교회를 나오게 되는데 부흥회 때 나와 가지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부흥회 강사 목사님이 아픈 데에 손을 얹고 기도하겠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 고쳐주신다고 하니까, ‘아니, 저 사람 사기 치는 것 아니야?’ 그러나 혹시 하는 마음에 오랫동안 허리가 아파서 고생을 했는데, 허리에 손을 얹고 간절히 ‘하나님 살아 계시다면 제 허리를 고쳐주옵소서. 약으로 또 의학적으로 못 고치는 이 허리를 고쳐주옵소서.’ 기도했는데, 다음 날 아침 일어나보니까 허리가 말끔히 나아버렸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33년 동안 승려 생활에서 완전히 돌이켜 모든 자기의 삶을 정돈하고 올해 첫 주부터 교회를 열심히 잘 다니고 있습니다. 그는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 주님께 돌아오기까지 33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세상에서 죄 짓고 불의하고 하나님을 떠난 것을 용서하여주옵소서. 너무나 많은 세월을 방황하며 돌아왔습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저를 도와주세요. 하나님을 직접 더 간절히 만나고 싶습니다.“
할렐루야! 이제는 절을 처분하고 거기다가 기도원을 짓는답니다. 할렐루야!
우린 이렇게 하나님 앞에 귀한 존재입니다. 거룩한 제사장입니다. 하나님 우리를 택하여 부르신 것은 이 어둠이 깊은 세상에 사랑의 빛, 치료의 빛, 용서의 빛, 구원의 빛을 비추라고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이제 남은 여생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귀하게, 아름답게, 위대하게 쓰임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우리가 주님 뜻대로 살지 못한 것,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한 것, 주님 용서하여주시고 이제부터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늘 신령한 젖을 사모하며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거룩한 제사장으로 쓰임 받게 하여주시옵소서. 감사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