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내려온 기쁨 /김병화목사
눅2:15-20
오늘은 성탄음악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찬양이라고 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기도요, 또 한편으로는 선포요, 메시지가 되고 또 한편으로는 고백이 됩니다. 바로 전에 성가대의 찬양을 들었습니다만 이 찬양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메시지를 받으시고 함께 돌리시고 그리고 함께 참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찬양과 함께 아울러 잠깐 주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3가지 메시지를 캐내려고 합니다.
먼저 누가복음 2장 8절을 보겠습니다.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당시 '목자'하면 두 가지 보편적인 개념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믿을수 없는 사람들'로 인식되었습니다. 자신들이 양의 주인이 아니고 단순히 관리자라서 그랬던 것인지 양을 소홀히 돌보고 때로는 양을 훔쳐내고는 거짓말을 하는 경우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못 믿을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둘째로는 당시 유대인의 규례에 의하면 목자의 일은 부정한 일로 간주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사회적인 비천하였고 종교적인 소외를 당했고 심지어는 자신들 마저 자신을 값없이 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실직자들의 참 아픔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식구를 부양할 돈이 없는 것입니까? 그것도 포함됩니다만 그들의 본질적인 상처는 '쫓겨났다. 쓸모없이 여겨졌다.'는 것에 대한 분노와 아픔입니다.
그런 목자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9절을 보세요.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황홀한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여기 주목할 말씀이 있습니다. "주의 사자가 곁에 서서" 비천하고 종교적으로 소외되어 있고 자신들조차 귀하게 여기지 않았던 그들 곁에 주의 사자가 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목자들을 그렇게 취급하고 있으나 그러나 하늘은 달랐다. "주의 사자, 영광" 이것은 그들과 전혀 관계없는 얘기입니다. 예루살렘의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나 관계 있는 얘기이지 그들의 가슴과 머리 속에는 없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런 그들에게 주의 사자를 보내시고 영광보이셨습니다, 이것이 성탄의 참 기쁨입니다. 큰 기쁨입니다.
기력을 입은 사람들, 존재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삶의 덧없음에 참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가난함에 불행을 느끼는 모든 사람들, 삶에 지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비취는 빛이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사건입니다. 참다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회복의 사건입니다. 사람들은 사람답게 보지 않고 귀하게 여기지 않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선언하시는 사건입니다.
이번 성탄절을 맞이하여 여러분 모두에게 이런 참되고 큰 기쁨이 임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은 그들에게 들려온 음성이 무엇인가?
10절부터 12절을 보겠습니다.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목자들에게 보다 큰 음성으로 들린 내용은 "온 백성에게"라는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존귀한 자들,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제사장들, 스스로 종교적인 경건성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만 아니라 '온 백성'입니다. 자신들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에는 빠졌는데 지금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 같은 목자들에게까지도 미칠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그 소식이 무엇입니까?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차별 없이 내리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땅에 얼마나 차별이 강한 구조로 자리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차별은 사람을 찢어 놓습니다. 대립하게 합니다. 증오하게 만듭니다.
실수로 일어나는 차별이야 그저 침 한번 꿀꺽 넘어갈 수 잇는 것이고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만 그러나 구조적이고도 의도적인 차별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고 평화를 깨뜨립니다.
성탄절에 주시는 강력한 메시지는 하나님께는 그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가난한 자들의 친구가 되셨고, 세리와 창기들과 친구가 되셨습니다. 그들의 죄를 경시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주어지는 얼음 같은 차별의 사슬을 끊어 내신 것입니다. 목자들은 여기서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역사입니다. 여러분들에 있는 차별로 인한 아픔이나 차별을 조장하는 모든 것이 평화와 기쁨으로 바뀌는 놀라운 역사가 이번 성탄절에 이 땅 가운데 그리스도의 사람들을 통해서 나타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그 소식을 듣고 어떻게 했습니까? 16절부터 18절까지를 보십시오.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듣는 자가 다 목자의 말하는 일을 기이히 여기되" 목자들이 하나님의 메신저가 되었습니다. 목자들의 삶의 역할이 전혀 달라졌다. 마리아의 가슴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메시지를 전하는 자로서의 역할까지 한 것입니다. 목자가 아니라 사명자가 되었습니다. 성탄절에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탄의 메신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탄절에 우리가 함께 주님의 오심을 기뻐하며 감사하며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역사를 찬양하는 것은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인류의 치유할 수 없는 질병을 고치시기 위해 오신 주님을 가족들과 이웃들과 그리고 교우들과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성탄절은 구주가 오셨음을 세상에 선포하는 메신저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이 땅 가운데 나아가야 합니다. 한밤에 졸며 양떼를 지키는 이 세상의 변두리에 있던 존재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알리는 하나님의 백성의 한 가운데로 들어오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이, 여러분들의 언어가, 여러분들의 모습이 메신저적 의미를 가졌음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이 땅 백성들 가운데 구원을 선포해야 합니다. 사랑을 보여야 합니다. 소망을 선포해야 합니다. 죄악의 심각성을 알려야 합니다. 이것이 없는 성탄절은 반쪽의 성탄절에 불과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가 바로 이 메신저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목자들은 첫 번째 성탄절날 아름다운 경배를 드렸습니다. 20절을 보세요.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찬송했습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영국국왕이 신하들과 귀족들이 집결해 있는 곳에 나타납니다. 그러자 모든 귀족들과 신하들이 엄숙한 자세로 일어나 최고의 예우를 보입니다. 그때 국왕이 말합니다. "여러분 자리에 앉으시오. 나는 여러분들의 친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덧붙입니다. "나는 주님이 아니잖소." 그러자 귀족중 한 명이 "폐하 만일 폐하기 주님이셨으면 저희들은 이렇게 자리에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 주님이셨다면 저희들은 무릎을 꿇었을 것입니다."
성탄절은 오신 주님을 큰 기쁨 가운데 맞이하는 날임과 동시에 무릎 꿇는 날입니다. 여러분 모두 내 삶 모두가 주님의 것이며 그래서 주님의 뜻 앞에 100% 순종하겠다는 참다운 경배의 무릎을 꿇는 날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