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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나큰 기쁨의 선물 (눅2:1-14)
성탄절은 기쁨의 절기입니다. 성탄은 그 누구에게나 크나큰 기쁨이 됩니다.
그 이유는 이 성탄절에 누구나 하나님의 선물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탄절을 맞이할 때마다 기분이 나쁘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성탄절이 되면 누구나 큰 기대와 함께 기쁨을 간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100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성탄절은 이 민족의 중요한 명절이 되었고,
이 백성들이 즐거워하는 기쁨의 명절이 되었습니다.
오늘 설교 본문인 누가복음 2 : 10에 보면,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
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천사가 목자들에게 전해 준 좋은 소식입니다.
이 좋은 소식(福音, good news)은 구주(그리스도, 메시야)가 나신다는 좋은 소식입니다.
그런데 사실에 있어서 이 좋은 소식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로서
거저 주시는 크나큰 기쁨의 좋은 선물(good present)입니다.
우리들의 일상생활을 통해서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편지를 받을 때 기쁩니다.
이 편지 속에 좋은 소식이 담겨 있든, 좋지 못한 소식이 담겨 있든 간에 일단 편지를 받는
그 순간은 기쁜 것입니다. 더욱이 그 편지 내용이 기쁘고 반가운 좋은 소식이면 더욱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그래서 편지를 읽고 또 읽습니다.
우리가 이같이 편지를 받는 일도 기쁜 일이지만 선물을 받는 일은 더욱 기쁜 일입니다.
그것도 자기에게 꼭 필요한 선물을 받을 때의 기쁨은 더할 나위 없습니다.
성탄절에는 우리들이 아름다운 마음과 정을 담은 성탄절 카드와 선물을 주고 받으며
지내는 참으로 아름답고 복된 기쁨의 절기입니다.
이 아름답고 복된 절기, 기쁨의 성탄절에 여러분들은 어떤 선물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대학 입학시험을 치룬 자녀를 가진 부모님들은 '합격'이라는 기쁜 소식의 선물을 기다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합격의 기쁜 소식을 받은 자들도 있습니다. 한없이 기뻤으리라 믿습니다.
저도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대학에 입학했다는 소식이 이 성탄절에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보내 주신 선물 중에 어쩌면 가장 큰 선물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1. 그러나, 가장 큰 기쁨의 선물은
그러나 이 성탄절에 우리들이 참으로 기뻐해야 할 선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직접 찾아오셔서 주신 선물입니다.
그 선물의 내용은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선물이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선물이라는 말씀입니다.
이토록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크나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만일의 경우 우리가 이 크나큰 선물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처럼 불쌍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이것보다 더 하나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해드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부터 2000년 전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귀한 선물을로 주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선물을 기뻐하면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바빠서, 너무나 분주해서 그 귀한 선물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여관마다, 호텔마다 손님이 가득 차서 아기 예수를 영접할 방이 없었습니다.
또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를 맞이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것들은 세상의 욕심과 세상의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탄절은 우리들에게는 기쁜 날일지 모르지만, 하나님께는 슬프고 아픈 날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무나도 인간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아픈 마음으로 사랑하는 아들을,
그것도 외아들을 우리들에게 내놓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RP서 우리들에게
거저 주신 은총의 선물입니다.
이 성탄절에 아기 예수께서 우리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을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크나큰 선물로 아기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이 성탄절에 이 같은 크나큰 기쁨의 선물이 되시길 바랍니다.
2. 크나큰 기쁨의 선물
어찌하여 아기 예수가 우리들에게 크나큰 기쁨의 선물이 되는 것입니까?
그 선물의 내용이 무엇이길래, 즉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무엇이며,
누구이길래 우리들의 기쁜 선물이 되신다는 것입니까? 첫째는 구원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11절에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기 예수는 누구입니까? 구주입니다.
세례문답을 하면서 "예수는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했는데, "예수는 나의 구주입니다,
나의 주님입니다, 나를 죄악에서 건져 주신 구주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는 나를 구원해 주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새로운 사람이 되어 변화하여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이 구원입니다.
이토록 죄인된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함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 멸망받을 자가 구원얻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고, 이것보다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이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 이토록 예수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둘도 없는 가장 큰 구원의 선물입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는 기뻐하는 것 입니다.
둘째는 생명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12절에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강보에 싸인 아기는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생명을 강보로 싸서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입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더 이상 생명을 연장할 수 없는 죽음의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 같은 우리들을 살리기 위해서,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기 위해서 생명으로 오셨습니다.
즉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생명으로 우리들에게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 : 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주셨고, 그 독생자, 생명이신 독생자를 믿음으로 영원히
살 수 있는 영생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자에게 영원히 살 수 있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
셋째는 예수님은 '임마누엘'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의 선물입니다.
마태복음 1 :23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 예수님은 임마누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은총보다 더 큰 은총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의 은총의
선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외롭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외로운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병석에 누워 계시는 분들, 감옥에 갇혀 있는 분들,
외롭고 슬픈 가난한 어머니들이 너무 많습니다. 상점마다 가게마다 선물들이 가득가득 쌓였는데도
그 선물 하나 사서 자식들에게 줄 수 없는 가난한 어머니들이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가난한 어머니들에게는 슬프고 외로운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외로운 사람들과 더불어 해야 하는 날입니다. 성탄의 기쁨을 이웃들과 함께
나누어 가지는 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8 :20에 보면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특별히 이 성탄절에 의지할 데 없는 외로운 사람들과
함께 하는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네 번째의 기쁨의 선물은 평화입니다.
본문 14절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는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기 예수는 우리의 평화이며, 평강의 왕이십니다(사 9:6-7).
아기 예수가 누구에게 평화입니까? 아기 예수가 아무에게나 평화가 되시는 것은 아닙니다.
아기 예수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입니다.
'기뻐하심을 입은 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자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선물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서 변하여 새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인하여 기뻐하면서
그 선물을 이웃과 함께 나누어 가지며 사는 자, 이 같은 자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자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입니다. 이 같은 자에게 하나님께서 평화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 같은 자 중에 예수님은 평화가 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 : 27에 보면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평안을,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다른 영원한 평안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기쁜 성탄절에 구원의 주, 생명이신 아기 예수,
임마누엘 예수,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로 받아 크게 기뻐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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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 (대림절 설교)
대림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계절입니다. 현대 사회심리학자 엘리히 프롬은 우리 인간을 위를 바라보며, 미래를 바라보며 사는 자 들이라고 했습니다. 94%에 해당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의 목적은 기다리는 데 있다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더 좋은 사람을 기다리고 더 좋은 기회를 기다리며,
더 좋은 소식을 기다립니다. 꿈을 안고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며 현실의 고통과 어려움을 이기며 살아갑니다. 독일의 포로수용소에서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 갑자기 많은 포로들이 죽어갔다고 합니다. 그 원인을 조사했더니 포로들이 크리스마스에는 석방해 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고통을 참고 살았는데,
크리스마스가 지나도 석방을 하지 않자 그들은 희망을 잃게 되었고 희망을 포기했을 때 그들은 갑자기 죽어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저 막연하게 기다리는 것은 문제일 것입니다. 무엇을 기다리느냐? 어떻게 기다리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람은 사모하고 생각하는 사람을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도 기다림입니다. 참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히11: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습니다. 히12:2절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참 믿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것이다. 초대교회 당시 성도들은 서로 만나면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오시옵소서” 그리스도께서 속히 오시기를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오늘까지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다시 재림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던 노인 시므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일평생을 오직 그 한가지만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시므온은 자신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 메시야를 기다린 것이 아닙니다. 그는 메시야, 즉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실 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어떠한 나의 삶의 환경을 바꿔주시고 나의 삶을 풍족하게 해 주시기를 바라는 기다림이 아닙니다. 그분께서 오셔서 나를 구원해 주시고 온 인류를 구원해 주시기를 믿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성공, 자신의 즐거움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기다렸습니다. 민족의 위로를 기다렸습니다. 온 세계 만민의 구원을 기다렸습니다. 그는 지금 이 시대에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위로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위로였습니다. 오늘 우리시대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인간의 위로일까요?
달라입니까? 직장입니까?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인간의 위로는 순간일 뿐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위로의 하나님을 기다려야 하는 때입니다. 정치계가 혼란합니다. 독이 오를 때 까지 올랐습니다. 경제는 바닥을 치고 있는데 서민들의 고통은 갈데까지 간것 같습니다. 악이 오를 때 까지 올랐습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의 참된 위로가 필요합니다. 이때 성도들은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마다 깨어야 합니다. 우리의 위로는 오직 하나님의 위로만이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대림절에 우리는 이 민족에게 주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며 간구하며 기도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대림절을 살아가는 성도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입니다. 고후1:3-7절에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위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클레시스”는 ‘용기를 돋우어주고’, ‘도와주고’, ‘위로하고’,‘대신 요청 해 주고’, ‘구원하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하시리라”고 말씀하셨는데, 보혜사(Helper)성령께서 파라클레토스 위로하는 자, 도와주는 자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시므온은 평소의 삶이 의롭고 경건했습니다. ‘의롭고’에 해당하는 ‘디카이오스’는 옳은, 공의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의로운’자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우선되는 것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입니다.
따라서 경건한 사람은 좋은 것 곧 하나님의 말씀을 꽉잡고 살아가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누가 의롭고 경건한 사람입니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자 하나님의 말씀을 꽉잡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성령이 누구에게 역사합니까? 누구에게 지시하고 감동합니까? 성령은 불의한 사람에게 절대로 역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빗나간 삶을 사는 사람에게 지시하거나 감동하지 않습니다. 경건의 능력을 상실한 채 세상과 타협하며 사는 사람에게 역사하지 않습니다. 희망을 가진 사람은 경건하게 살아갑니다.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늘 그 소망이 이루어지는 날을 위하여 살아가기 때문에 경건하게 살아갑니다. 살았다고 합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지조를 지킵니다. 신앙적 절개를 지키는 것입니다. 거룩하고 깨끗한 삶을 살기 위해 애를 씁니다. 하늘나라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죄를 멀리하고 깨끗하고, 세속적인 것들에 물들지 않습니다. 언제나 역사는 위대한 정치가가 살린 것이 아닙니다.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 . .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하실 때 의인 열명을 찾으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멸망 하실 때 예레미야에게 의인 한 사람을 찾으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의롭고 경건한 자 한 사람은 백만명의 군대보다 더 강하고, 수천억 달라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의롭고 경건한 시므온에게 죽기 전에 메시야를 볼 수 있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경건한 한 사람의 기다림이 있는 그 곳에 나타나셨습니다. 의로운 한 사람, 경건한 사람의 영향은 이렇게 큰 것입니다. 약5:16절에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시므온은 성전에 들어가는 것부터 성령의 감동으로 들어갔습니다. 27절에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감동된 시므온은 영안이 열렸고 위대한 신앙고백을 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라고 했습니다. 시므온은 성령이 그 위에 계신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성령의 도움을 구하던 시므온은 성령의 지시로 아기 예수님을 만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그 노인은 늘 성령과 동행했습니다. 25절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고 했습니다. 26절에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라고 했습니다. 27절에 “성령의 감동으로”라고 하였습니다. 시므온은 한 마디로 성령충만한 자였습니다. 시므온의 삶이 연로함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경건하고,
아름답습니까? 노인들은 인생의 황혼 길에 접어든 아무런 세상의 낙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것도 삶의 의욕을 갖게 할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이젠 편안히 쉬어야지 . . . ’하며 일 손을 놓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일손을 놓는다는 것은 스스로 희망을 버리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나이가 많아지면 모든 것을 체념하고 소망을 다 포기하고 늙어 죽기만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시므온은 늙도록 성령충만하여 거룩한 비젼을 가지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희망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비젼을 품고 살아가는 자입니다. 희망이 있는 사람은 삶을 긍정적으로 살게 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을 하는 것입니다. 시므온에게 유일한 소망은 오직 메시야를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참 아름다운 노인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성탄절을 맞이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아기 예수를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은 아기 예수를 만날 수가 없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자기 주관대로 사는 사람은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을 수가 없습니다.
시므온은 성령의 지시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영적인 눈이 열리시기를 바랍니다.
29절부터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시므온은 메시야를 보고 구원을 보았습니다.
성전에는 마리아와 요셉만 온 것이 아닐텐데 수십명, 수백명의 아기들이 있었을텐데, 많은 부부들이 아기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고 예루살렘 성전에 왔을 것인데 말입니다. 성전 안에는 수많은 백성들도 있었고, 제사장들도 있었고, 바리새인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 누구하나, 하던 일을 멈추고,
아기 예수 앞에 와서 경배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한 눈에 메시야를 알아보았을까? 시므온보다 더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어찌하여, 모든 면에서 둔감한 늙은 노인이 아기 예수를 메시야로 보는 영적 통찰력을 가질 수가 있었을 까? 그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28절에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그토록 기다렸던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품에 안았습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을 안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성도는 시므온처럼 하나님을 안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창조주시오, 세상의 주인이시며, 우주보다 더 크고 위대하신 분, 이런 아기 예수님을 가슴에 안은 자는 얼마나 복된 자 입니까? 시므온의 가슴은 예수님을 안은 가슴입니다. 예수님을 안은 시므온은 우주를 안은 것입니다.
천지를 안은 것입니다. 어떤 것도 다 품을 수 있는 가슴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슴에는 무엇을 안고 있습니까? 이번 성탄에 우리의 이 가슴에 미움을 안고 경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를 안고 찬양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죄악을 안고 성탄을 맞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대신에 죄인을 위해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안고 찬양하고, 경배하고 기뻐하는 성도들이 되어야I할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가슴에도 예수님을 안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를 안으시기 바랍니다. 형제를 안으시기 바랍니다. 원수를 안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안으십시오.
그리고 시므온은 예수님을 축복했습니다. 34절에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아기 예수님까지 축복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메시야를 기다리는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경건하고 의로운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한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아기 예수를 가슴에 안고 찬양한 자만이 할 수 있는 특권 중의 특권입니다. 혹시 기다림도 없이 성탄절을 맞이하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과 기다리지 않는 사람과는 나중에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은 무의미한 성탄절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이번 성탄절이 놀라운 감격의 성탄절이 되게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대림절에 우리의 구세주로 임하신 예수그리스도의 탄생 하셨음을 널리널리 전하여야 합니다. 아직도 이 기쁜 소식을 접하지 못한 이웃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의 복된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 도 참 좋으신 하나님아버지! 대림절을 맞이하여 우리교회 성도들도 시므온처럼 아기 예수를 간절히 사모하다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아기 예수님을 첫눈에 알아보았던 것처럼 예수님을 알아보는 성도들이 되게 해 주세요.
성령님께서만이 할 수 있는 일이시기에 성령님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금년 성탄절에 아기 에수님을 만나지 못한 성도가 한 사람도 없도록 성령 충만함을 허락하옵소서!
주님! 시므온이 아기 예수님을 가슴에 안았듯이 우리교회 성도들도 예수님을 가슴에 안게하시고 교회를 안게 하시고. 이 사회를 끌어 안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허락하옵소서! 직엄을 갖지 못하여 분노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끌어 안을 수 있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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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예수그리스도의 탄생 마1:18-25
메리크리스마스 !!
여러분!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와 미사라는 말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을 맞이하면 기독교인은 물론 타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무실론 자 들까지도 성탄을 축하하며 전 인류 공통의 축제의 날이 되기도 합니다.
기독교에서는 부활절과 함께 가장 큰 기독교 명절의 하나로 아기예수 탄생을 축하하고 전 인류구원의 메시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을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서 8:14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예언하기를“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했습니다.
오늘본문 23절에서 7백년전의 말씀이 그대로 인용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름을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다”바로 하나님이 아기예수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이사야서11:1-2에서는“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신 곧 지혜와 총명의신이요 모략과 재능의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이사야 선지자는 바로 7백년 후에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서 예언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구상에는 수만은 인종과 종교가 있고 그들이 각기섬기는 신들은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대상 중에는 사람은 물론 동물과 식물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돌과나무 물고기까지 수 없는 우상들이 있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섬김의 대상인 석가나 공자나 맹자나 그 어떤 현인도, 석학도. 피조물의 하나이지 창조주가 될 수 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외의 다른 믿음의 대상들은 모두가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때문에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자의 몸에서 성령을 통해 잉태 되여 세상에 나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언한대로 예수님이 이 땅에 태여 났으나 그 출생은 보통사람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피조물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피를 받아 잉태되는 것이 인간은물론 모든 동식물에 이르기까지 자연의 법칙입니다.
은행나무가 암수가 같이 있어야만 은행이 열리죠?
또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것들도 암수의 꽃가루가 만나야 열매를 맺게 되잔 습니까?
역사이래로 육신의 아버지 없이 여자의 몸에서 태여 난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으며 상상할 수도 없는 일 인 것입니다.
혹 근대의 과학의 힘으로 유전자변형이나 정자이식 같은 방법이 가끔은 메스콤을 탑니다만 이는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에는 어긋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 없이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잉태 되여 태여 난 것입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마저도 자신의 잉태한 사실을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요셉과 정혼만 하였을 뿐 전혀 가까이 한일이 없기에 자신이 아이를 잉태한사실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자 꿈속에서 천사들이 현몽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낳을 것 이라는 말에 여호와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또한 정혼 자 요셉도 마음에 심한 갈등을 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였던 것입니다. 22-2
정혼만 하였을 뿐 단 한번도 가까이 해본일이 없는 약혼녀가 어느 날 임신한 몸으로 눈앞에 나타났을 때 어느 누구라고 해도 심한 갈등을 하지 않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이러한 요셉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현몽하여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꿈속에서 요셉에게 그의 의심을 풀어줍니다.
때는 로마제국의 헤롯왕 때로서 헤롯왕은 인구조사를 명령하여 모두가 고향으로 돌아가 인구조사에 응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리아와 요셉도, 요셉의 고향으로 향해 가던 중 베들레헴에 도착하였으나 방을 얻지 못하고 마구간에서 마리아가 해산을 하게 됩니다.
이분이 바로 아기예수그리스도인 것입니다.
마2:2“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왔노라”
아기예수가 태여 나자 천사의 인도를 받은 동방박사 세 사람이 베들레헴의 마구간에 찾아와 모친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예수께 엎드려 경배하고 가지고온 보배 함을 열어서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아기예수의 탄생은 이처럼 평범한 우리들의 출생과는 그 근본부터 다른 것 이였습니다.
우리들과 똑같은 출생으로부터 해서 똑같은 삶을 사는 메시야라면 어느 누가 그를 따르고 그를 믿겠습니까?
아기 예수의 탄생은 그의 잉태부터 아니 이미 7백년전 예언에서부터 보통사람과는 전혀 다른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인간의 몸을 비러 우리와 똑 같은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기예수의 탄생의 근본은 죄만은 우리들의 죄를 씻어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로인해서 죄에 묶여있던 인류는 메시야 그 분을 시인하고 섬기기만하면 죄로부터 자유 함을 얻고 영원한 천국의 백성으로 육신이 세상을 떠나면 천국에서 아픔이 없는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기예수로 탄생하신 메시야가 죄로부터의 자유 함과 영원한 천국의 영생을 우리에게 주셨기에 오늘 석가나, 공자, 맹자, 그 외의 다른 어떤 우상을 섬기는 많은 사람들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어찌 보면 본능적인 환희와 기쁨으로 해서 아기예수탄생인 성탄을 축하하며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인류전체의 축제의 날로 자리 메김을 하여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성탄의 의미를 그냥 즐기는 것으로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 기독인들이 먼저 성탄이주는 인류구원의 절실함을 깨달아서 소외되고 아픔이 있는 구석구석까지도 구원자로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널리 널리 전파해야할 것 입니다.
닦아오는 소망찬 한해에도 여러분모두의 꿈을 이루는 보람되고 복된 한해가되고 예수그리스도와 늘 함께하는 한해요, 예수그리스도를 모르는 이웃에게 구원자 예수의 오심을 전파하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여러분의 삶이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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