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부부의 처절한 인생



오늘하루도 행복하세요

*어느 노부부의 처절한 인생*

 

우리 부부는 조그마한 만두 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손님 중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매주

수요일 오후 3시면

어김없이 우리 만두 가게에 나타나는 겁니다.

대개는 할아버지가 먼저 와서

기다리지만 비가 온다거나

눈이 온다거나 날씨가 궂은 날이면

할머니가 먼저 와서

구석자리에 앉아 출입문을 바라보며 초조하게

할아버지를 기다리 곤 합니다.

 

두 노인은 별말 없이 서로를 마주 보다가 생각난 듯

상대방에게 황급히 만두를 권하다가 눈이 마주치면

슬픈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눈물이

고이기도 했습니다.

대체 저 두 분은 어떤 사이일까?

나는 만두를 빚고 있는 아내에게 속삭였습니다.

글쎄요. 부부 아닐까?


부부가 뭐 때문에 변두리 만두 가게에서

몰래 만나요?

허긴 부부라면 저렇게 애절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진

않겠지.부부 같진 않아.” 혹시 첫사랑이 아닐까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서로 열렬히 사랑했는데

주위의 반대에 부딪혀 본의 아니게 헤어졌다.

그런데 몇 십 년 만에 우연히 만났다. 서로에 게 가는

마음은 옛날 그대로인데 서로 가정이

있으니 어쩌겠는가.


그래서 이런 식으로 재회를 한단 말이지?

아주 소설을 써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아내의

상상이 맞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따뜻한 눈빛이 두

노인이 아주 특별한 관계라는 걸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근데, 저 할머니

어디 편찮으신 거 아니에요?

안색이 지난 번 보다 아주 못하신데요?

아내 역시 두 노인한테 쏠리는 관심이 어쩔 수 없는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 따라 할머니는

눈물을 자주 닦으며

어깨를 들먹거렸습니다.

두 노인은 만두를 그대로 놓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할아버지는 돈을 지불하고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고 나갔습니다.


나는 두 노인이 거리 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시선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곧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걷는 할머니를

어미 닭이 병아리 감싸 듯 감싸 안고 가는 할아버지.

두 노인의 모습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대체 어떤 관계일까?

아내 말대로 첫사랑일까?


사람은 늙어도 사랑은 늙지 않는 법이니까

그럴 수도있겠지.

어머? 비가 오네. 여보, 빨리 솥뚜껑 닫아요.

그러나 나는 솥뚜껑 닫을 생각보다는

두 노인의 걱정이

앞섰습니다. 우산도 없을 텐데…

다음 주 수요일에 오면 내가 먼저 말을 붙여

볼 생각이었습니다.

</p>

그런데 다음 주도 그 다음 주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우리 만두 가게에 나타나지 않는 겁니다.

처음엔 몹시 궁금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두 노인에 대한 생각이 묵은 사진첩에 낡은 사진처럼

빛바래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사람인가 봅니다. 자기와 관계없는

일은 금방 잊게

마련인가 봅니다. 그런데 두 달이

지난 어느 수요일 날,

정확히 3시에 할아버지가 나타난 겁니다.

 

좀 마르고 초췌해 보였지만 영락없이

그 할아버지였습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조금 웃어보였습니다.

할머니도 곧 오시겠지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못 와. 하늘나라에 갔어. 하는 겁니다.

나와 아내는 들고 있던 만두 접시를

떨어뜨릴 만큼 놀랬습니다.


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우리 부부는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기가 막혀서,  너무 안타까워서.

두 분은 부부인데 할아버지는 수원의 큰 아들 집에,

할머니는 목동의 작은 아들 집에 사셨답니다.


두 분이 싸우셨나요?할아버지께 물었습니다.

그게 아니라 며느리들끼리 싸웠답니다.큰 며느리가

“다 같은 며느리인데 나만 부모를 모실 수가 없다”

고 강경하게 나오는 바람에 공평하게 양쪽 집에서

할아버지,할머니를 한 분씩 모시기로 했답니다.


그래서 두 분은 일주일에 한 번씩 견우와 직녀처럼

서로 만난 거랍니다.그러다가 할머니가 먼저 돌아

가셨답니다.이제 나만 죽으면 돼. 우리는

또 다시 천국에선 같이 살 수 있겠지..

할아버지는 중얼거리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습니다.

할아버지 뺨에는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습니다.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감동에 글

 

우리 어머님들은 자식을 위해 이렇게 살아야만 했는지요???? 

 

우리 어머니는 한쪽 눈이 없다

난 그런 어머니가 싫었다.

너무 밉고 쪽팔리기 때문에 우리 어머니는 시장에서 조그마한 장사를 하셨다.

그냥 나물이나 초나 여러 가지 닥치는 대로 캐서 파셨다.

난 그런 어머니가 너무 창피했다.

초등학교 어느 날이었다.

운동회때 엄마가 학교로 오셨다.

다음날 학교에 갔을 때 네에 엄마는 한쪽 눈이 없는 병신이냐고 놀림을 받았다.

놀림거리였던 엄마가 이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엄마는 왜 한쪽 눈이 없어?

진짜 창피해 죽겠어.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하고 싶은 말을 해서인지 속은 후련했다.

엄마가 나를 혼내지 않으셔서 그런지

그렇게 기분 나쁘지 않은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날 밤이었다 잠에서 깨어나 물을 마시러 부엌으로 갔다.

엄마가 숨을 죽이며 울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바라보며 고개를 돌렸다.

아까한그말 때문에 어딘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도 한쪽 눈으로 눈물을 흘리며 우는 엄마가 너무 싫었다.

 

나는 커서 성공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한쪽 눈 없는 엄마도 싫고 이렇게 가난한 게 너무도 싫었기 때문에

나는 악착같이 공부를 했다.

엄마 곁을 떠나 나는 서울로 올라왔다.

공부를 해서 당당히 서울대를 합격했다.

 결혼도 했다. 내 집도 생겼다. 아이도 생겼다.

이제 나는 가정을 꾸며 행복하게 산다.

 여기서는 엄마생각이 나지 않기 때문에 좋았다.

이 행복이 깊어 갈 때쯤 이었다.

 누구야; 이런 그건 우리 엄마였다.

여전히 한쪽 눈이 없는 채로 우리 집을 찾아온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다.

어린 딸아이는 무서워서 도망갔다

그리고 아내는 누구냐고 물었다.

결혼하기전 부인에게 거짓말을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그래서 나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누군데 우리 집에 와서 우리아이를 울리냐고 소리를 쳤다.

 

당장 나가요! 꺼지라고요!그러자 엄마는 죄송합니다.

제가 집을 잘못 찾아 왔나봐요

이 말을 하곤 묵묵히 눈앞에서 사라졌다.

역시 날 몰라보시는 구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부터는  신경 쓰지 말고 살려고 생각했다

 그러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 젓다.

어느날 동창회 한다는 안내문이 집으로 날아왔다.

그 때문에 회사에 출장을 간다다는 핑계를 대고

부인한테는 거짖말을 하고 고향에 내려갔다

동창회가 끝나고 집으로 향하려는데 궁금한 마음에 집에 가보았다

그런데 어머니가 쓰러저 계셨다 그러나 나는 눈물 한방울 나지 않았다

엄마의 손에는 꼬깃꼬깃한 종이가 들려 있었다

그건 나에게 주려던 편지였다.

 

사랑하는 내 아들 보아라! 엄마는 이제 살만큼 산것 같구나

그리고 이제 다시는 서울에 가지 않을게

그러니 네가 가끔씩 찾아와 주면 안되겠니?

엄마는 네가 너무 보고 싶구나

엄마는 동창회 때문에 니가 올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듣고 너무 기뻤단다.

 하지만 학교에찾아 가지 않기로 했어 너를 생각해서

그리고 한쪽 눈이 없어서 정말로 너에겐 미안한 마음뿐이다

어렸을 때 네가 교통사고가 나서 한쪽눈을 잃엇단다

 나는 너를 그냥 볼수가 없었어 그래서 내눈을 주었단다.

그 눈으로 엄마대신 세상을 하나더...봐주는 거가 너무 기특 했단다

 난 너를 한번도 미워한 적이 없단다.

 

니가 나에게 가끔씩 짜증 냈던건 날 사랑해서 그런 기라 엄마는 생각 했단다

 아들아 내 아들아 어미가 먼저 갔다고 울면 안된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갑자기 할수 없는게 내마음 한쪽을 조여 왔다

 어머니가 주신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사랑하는 내 엄마 사랑한다는 말 한 번도 못해드리고

 좋은 음식 못 사 드리고 좋은 옷 입혀 드리지 못했는데

 어머니께선 날 !! 죄송합니다!

엄마가 눈 병신이 아닌 제 눈이

이제야 모른 사실을 안 이 못난놈 어머니 용서해 주십시오!

어머니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지금껏 한 번도 들려 드리지 못한 말...........



         어느 노인의 유언장
아내를 잃고 혼자 살아가는 노인이 있었다.
젊었을 때에는 힘써 일하였지만,
이제는 자기 몸조차 가누기가 힘든 노인이었다.
그런데도 장성한 두아들은아버지를 돌보지 않았다.
어느 날 노인은 목수를 찾아가 나무 궤짝 하나를 주문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집에 가져와 
그 안에 유리 조각을 가득 채우고 튼실한 자물쇠를 채웠다.
그 후 아들들에게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아버지의침상 밑에 못 보던궤짝 하나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들들이 그것이 무어냐고물으면 노인은 별게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할 뿐이었다.
궁금해진 아들들은 아버지가 없는 틈을 타서,그것을 조사해보려 하였지만,
자물쇠로 잠겨져 있어서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궁금한 것은 그 안에서 금속들이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는것이었다.
아들들은 생각하였다.
'그래! 이건 아버지가평생 모아 놓은 금은보화일거야.'
아들들은 그때부터 번갈아가며 아버지를 모시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얼마 뒤 노인은 죽었고, 아들들은 드디어 그 궤짝을 열어 보았다.
깨진 유리 조각만이 가득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큰 아들은 화를 내었다.
".. 당했군!" 
그리고궤짝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동생을 향해 소리 쳤다.
"왜? 궤짝이 탐나냐?  그럼, 네가 가져라!" 
막내아들은 형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적막한 시간이 흘렀다.
1분, 2분, 3분.
 아들의 눈에 맺힌 이슬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막내아들은 그 궤짝을 집으로 옮겨왔다.

나뭇가지가 조용하려 해도 바람이 쉬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려 해도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 옛글을 생각하며, 아버지가 남긴 유품 하나만이라도
간직하는것이 그나마 마지막 효도라 생각한 것이다.
아내는 구질구질한 물건을 왜 집에 들이느냐며,짜증을 냈다.
그는아내와 타협을 했다.
유리 조각은 버리고 궤짝만 갖고있기로.. 
궤짝을 비우고 나니, 밑바닥에 편지지한 장이 들어 있었다.
막내아들은 그것을 읽다가  꺼억꺼억 소리내어 울기시작했다.
나이 마흔을 넘긴 사나이의 통곡 소리에 그의 아내가 달려왔다.
아들딸도 달려왔다. 그글은 이러하였다. 

첫째 아들을 가졌을 때, 나는 기뻐서 울었다.
둘째 아들이 태어나던 날, 나는 좋아서 웃었다.
그때부터, 삼십여 년 동안, 수천 번, 아니, 수만 번
그들은 나를 울게 하였고, 또웃게 하였다.
이제 나는 늙었다. 그리고 그들은 달라졌다.
나를 기뻐서 울게 하지도 않고, 
좋아서 웃게 하지도 않는다.
내게 남은 것은 그들에 대한 기억뿐이다.
처음엔 진주같았던 기억.중간엔 내 등뼈를 휘게 한기억.
지금은 사금파리 유리 조각 같은 기억.
아아, 
내 아들들만은..  나 같지 않기를..
그들의 늘그막이 나 같지 않기를..  
아내와 아들딸도 그 글을 읽었다.
"아버지!"하고 소리치며 아들딸이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아내도그의 손을 잡았다. 네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그들 집안에서는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이 없었다 한다.
 

밝은 웃음소리와 사랑의 대화가

끊이지 않는 행복한 가정...

소중하게 되돌아보는 하루가 되시길요~ 사랑합니다~^&^



심금을 울리는 가슴아픈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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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환자만 있는 소록도 촌장 앞에


일흔이 넘어보이는 노인이 찾아와서 이 섬에서 살게 해 주실 수 없습니까? "
느닷없는 노인의 요청에 촌장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니, 노인장께서는 정상인으로 보이는데 나환자들과 같이 살다니요?"


노인은 " 저는 모두 열명의 자녀가 있었지요"
"그런데 그중의 한 아이가 40년전11살때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발병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그 아이를 다른 가족이나 동네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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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로 왔겠군요"
"그렇습니다."

소록도에 나환자촌이 있다는 말만 듣고


우리 부자가 길을 떠난 건 어느 늦여름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교통이 매우 불편해서


서울을 떠나 소록도까지 오는 여정은 멀고도 힘든 길이었죠. 하루 이틀 사흘….
더운 여름날 먼지나는 신작로를 걷고 타고 가는 도중에
우린 함께 지쳐 버리고 만 겁니다.
그러다 어느 산 속 그늘 밑에서 쉬는 중이었는데
나는 문득 잠에 골아 떨어진 그 아이를 죽이고 싶었습니다 바위를 들었지요.
맘에 내키진 않았지만 잠든 아이를 향해 힘껏 던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만 바윗돌이 빗나가고 만 거예요.
이를 악물고 다시 돌을 들었지만 차마 또다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어요.
아이를 깨워 가던 길을 재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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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소록도에 다 왔을 때 일어났습니다.
배를 타러 몰려든 사람들중에 눈썹이 빠지거나
손가락이며 코가 달아난 문둥병 환자를 정면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을 만나자 아직은 멀쩡한 내 아들을 소록도에 선뜻 맡길 수가 없었습니다.
멈칫거리다가 배를 놓치고 만 나는 아들에게 "저런 모습으로 살아서 무엇하겠니? 몹쓸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차라리 너하고 나하고 함께 죽는 길을 택하자."하고 우리는 나루터를 돌아 아무도 없는 바닷가로 갔습니다. 신발을 벗어두고 물 속으로 들어가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오던지….
한발 두발 깊은 곳으로 들어가다가 거의 내 가슴높이까지 물이 깊어졌을 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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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아들이 돌아서더니 내 가슴을 떠밀며 악을 써대는 거예요 문둥이가 된건 난데 왜 아버지까지 죽어야 하느냐는 거지요. 형이나 누나들이 아버지만 믿고 사는 판에 아버지가 죽으면 그들은 어떻게 살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완강한 힘으로 자기 혼자 죽을 테니
아버지는 어서 나가라고 떠미는 아들녀석을 보는 순간,
나는 그만 그 애를 와락 껴안고 말았습니다.
참 죽는 것도 쉽지만은 않더군요.
아들의 간곡한 호소에
소록도로 아들만 떠나보내고


저는 돌아와 서로 잊은 채 정신없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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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명의 아이들이 자라서


대학을 나오고 결혼을 하고 손자 손녀를 낳고…
얼마 전에 큰 아들이 시골의 땅을 다 팔아서 함께 살자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했지요. 처음 아들네 집은 편했습니다. 주는 대로 받아먹으면 되고 이불펴 주면 드러누워 자면 그만이고. 가끔씩 먼저 죽은 마누라가 생각이 났지만 얼마동안은 참 편했습니다.
그런데 날이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애들은 아무 말도 없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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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인가는 드디어 큰 아이가 큰아들만 아들이냐고요. 그날로 말없이 짐을 꾸려 둘째, 세째, 네째--…를 찾아갔죠. 그런데 사정은 모두 마찬가지였어요.
허탈한 심정으로 예전에 살던 시골집에 왔을 때
문득 40년 전에 헤어진 그 아이가 생각나는 겁니다.
내손으로 죽이려고까지 했으나, 끝내는 문둥이 마을에 내팽개치고 40년을 잊고 살아왔던 아이, 다른 아홉명의 아이들에게는 온갖 정성을 쏟아 힘겨운 대학까지 마쳐 놓았지만 내다버리고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아이...


한번만이라도 보고 용서를 빌고 죽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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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또 먼길을 떠나 오늘 그 아이를 찾아 만나보니
그 아이는 이미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쉰이 넘은 데다 그동안 겪은 병고로 인해 나보다 더 늙어보이는... 그러나 눈빛만은 예전과 다름없이 투명하고 맑은 내 아들이 울면서 반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나를 껴안으며 이렇게 말했지요."아버지를 한시도 잊은 날이 없습니다.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40년이나 기도해 왔는데 이제서야 기도가 응답되었군요.이제 저와 함께 살아요 " 합니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여유도 없이 물었죠.
어째서 이 못난 애비를 그렇게 기다렸는가를...
자식이 문둥병에 걸렸다고 무정하고 내다 버린 채
한번도 찾지 않은 애비를 원망하고
저주해도 모자랄 텐데 무얼 그리 기다렸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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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아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모든 것을 용서하게 되었노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비참한 운명까지 감사하게 만들었노라고.
그러면서 그는 다시 한번 자기의 기도가 응답된 것에 감사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아 ! 그때서야 나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의 힘으로 온 정성을 쏟아 가꾼 아홉 개의 화초보다,
쓸모없다고 내다버린 하나의 나무가 더 싱싱하고 푸르게 자라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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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내 아들을 변화시킨 분이라면

나 또한 마음을 다해 받아들이겠노라고 난 다짐했습니다.



촌장님,
이제 내 아들은 병이 완쾌되어 여기 나환자촌에 살고 있습니다. 그애는 내가 여기와서 함께 살아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애와 며느리, 그리고 그애의 아이들을 보는 순간, 바람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들의 눈빛에는 지금껏 내가 구경도 못했던 그 무엇이 들어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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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들여 키운 아홉명의 아이들에게선


한번도 발견하지 못한 사랑의 언어라고나 할까요.


나는 그애에게 잃어버린 40년의 세월을 보상해 주어야 합니다.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그애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는 기꺼이 그 요청을 받아들일 작정입니다.
그러니 촌장님, 저를 여기에서 살게 해 주십시오" .......




- 모셔온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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