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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감동에 글
우리 어머님들은 자식을 위해 이렇게 살아야만 했는지요????
우리 어머니는 한쪽 눈이 없다
난 그런 어머니가 싫었다.
너무 밉고 쪽팔리기 때문에 우리 어머니는 시장에서 조그마한 장사를 하셨다.
그냥 나물이나 초나 여러 가지 닥치는 대로 캐서 파셨다.
난 그런 어머니가 너무 창피했다.
초등학교 어느 날이었다.
운동회때 엄마가 학교로 오셨다.
다음날 학교에 갔을 때 네에 엄마는 한쪽 눈이 없는 병신이냐고 놀림을 받았다.
놀림거리였던 엄마가 이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엄마는 왜 한쪽 눈이 없어?
진짜 창피해 죽겠어.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하고 싶은 말을 해서인지 속은 후련했다.
엄마가 나를 혼내지 않으셔서 그런지
그렇게 기분 나쁘지 않은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날 밤이었다 잠에서 깨어나 물을 마시러 부엌으로 갔다.
엄마가 숨을 죽이며 울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바라보며 고개를 돌렸다.
아까한그말 때문에 어딘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도 한쪽 눈으로 눈물을 흘리며 우는 엄마가 너무 싫었다.
나는 커서 성공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한쪽 눈 없는 엄마도 싫고 이렇게 가난한 게 너무도 싫었기 때문에
나는 악착같이 공부를 했다.
엄마 곁을 떠나 나는 서울로 올라왔다.
공부를 해서 당당히 서울대를 합격했다.
결혼도 했다. 내 집도 생겼다. 아이도 생겼다.
이제 나는 가정을 꾸며 행복하게 산다.
여기서는 엄마생각이 나지 않기 때문에 좋았다.
이 행복이 깊어 갈 때쯤 이었다.
누구야; 이런 그건 우리 엄마였다.
여전히 한쪽 눈이 없는 채로 우리 집을 찾아온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다.
어린 딸아이는 무서워서 도망갔다
그리고 아내는 누구냐고 물었다.
결혼하기전 부인에게 거짓말을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그래서 나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누군데 우리 집에 와서 우리아이를 울리냐고 소리를 쳤다.
당장 나가요! 꺼지라고요!그러자 엄마는 죄송합니다.
제가 집을 잘못 찾아 왔나봐요
이 말을 하곤 묵묵히 눈앞에서 사라졌다.
역시 날 몰라보시는 구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부터는 신경 쓰지 말고 살려고 생각했다
그러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 젓다.
어느날 동창회 한다는 안내문이 집으로 날아왔다.
그 때문에 회사에 출장을 간다다는 핑계를 대고
부인한테는 거짖말을 하고 고향에 내려갔다
동창회가 끝나고 집으로 향하려는데 궁금한 마음에 집에 가보았다
그런데 어머니가 쓰러저 계셨다 그러나 나는 눈물 한방울 나지 않았다
엄마의 손에는 꼬깃꼬깃한 종이가 들려 있었다
그건 나에게 주려던 편지였다.
사랑하는 내 아들 보아라! 엄마는 이제 살만큼 산것 같구나
그리고 이제 다시는 서울에 가지 않을게
그러니 네가 가끔씩 찾아와 주면 안되겠니?
엄마는 네가 너무 보고 싶구나
엄마는 동창회 때문에 니가 올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듣고 너무 기뻤단다.
하지만 학교에는 찾아 가지 않기로 했어 너를 생각해서
그리고 한쪽 눈이 없어서 정말로 너에겐 미안한 마음뿐이다
어렸을 때 네가 교통사고가 나서 한쪽눈을 잃엇단다
나는 너를 그냥 볼수가 없었어 그래서 내눈을 주었단다.
그 눈으로 엄마대신 세상을 하나더...봐주는 거가 너무 기특 했단다
난 너를 한번도 미워한 적이 없단다.
니가 나에게 가끔씩 짜증 냈던건 날 사랑해서 그런 기라 엄마는 생각 했단다
아들아 내 아들아 어미가 먼저 갔다고 울면 안된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갑자기 할수 없는게 내마음 한쪽을 조여 왔다
어머니가 주신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사랑하는 내 엄마 사랑한다는 말 한 번도 못해드리고
좋은 음식 못 사 드리고 좋은 옷 입혀 드리지 못했는데
어머니께선 날 !! 죄송합니다!
엄마가 눈 병신이 아닌 제 눈이
이제야 모른 사실을 안 이 못난놈 어머니 용서해 주십시오!
어머니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지금껏 한 번도 들려 드리지 못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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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금을 울리는 가슴아픈 사연
나환자만 있는 소록도 촌장 앞에
일흔이 넘어보이는 노인이 찾아와서 이 섬에서 살게 해 주실 수 없습니까? "
느닷없는 노인의 요청에 촌장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니, 노인장께서는 정상인으로 보이는데 나환자들과 같이 살다니요?"
노인은 " 저는 모두 열명의 자녀가 있었지요"
"그런데 그중의 한 아이가 40년전11살때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발병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그 아이를 다른 가족이나 동네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로 왔겠군요"
"그렇습니다."
소록도에 나환자촌이 있다는 말만 듣고
우리 부자가 길을 떠난 건 어느 늦여름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교통이 매우 불편해서
서울을 떠나 소록도까지 오는 여정은 멀고도 힘든 길이었죠. 하루 이틀 사흘….
더운 여름날 먼지나는 신작로를 걷고 타고 가는 도중에
우린 함께 지쳐 버리고 만 겁니다.
그러다 어느 산 속 그늘 밑에서 쉬는 중이었는데
나는 문득 잠에 골아 떨어진 그 아이를 죽이고 싶었습니다 바위를 들었지요.
맘에 내키진 않았지만 잠든 아이를 향해 힘껏 던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만 바윗돌이 빗나가고 만 거예요.
이를 악물고 다시 돌을 들었지만 차마 또다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어요.
아이를 깨워 가던 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소록도에 다 왔을 때 일어났습니다.
배를 타러 몰려든 사람들중에 눈썹이 빠지거나
손가락이며 코가 달아난 문둥병 환자를 정면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을 만나자 아직은 멀쩡한 내 아들을 소록도에 선뜻 맡길 수가 없었습니다. 멈칫거리다가 배를 놓치고 만 나는 아들에게 "저런 모습으로 살아서 무엇하겠니? 몹쓸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차라리 너하고 나하고 함께 죽는 길을 택하자."하고 우리는 나루터를 돌아 아무도 없는 바닷가로 갔습니다. 신발을 벗어두고 물 속으로 들어가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오던지….
한발 두발 깊은 곳으로 들어가다가 거의 내 가슴높이까지 물이 깊어졌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아들이 돌아서더니 내 가슴을 떠밀며 악을 써대는 거예요 문둥이가 된건 난데 왜 아버지까지 죽어야 하느냐는 거지요. 형이나 누나들이 아버지만 믿고 사는 판에 아버지가 죽으면 그들은 어떻게 살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완강한 힘으로 자기 혼자 죽을 테니
아버지는 어서 나가라고 떠미는 아들녀석을 보는 순간,
나는 그만 그 애를 와락 껴안고 말았습니다.
참 죽는 것도 쉽지만은 않더군요.
아들의 간곡한 호소에 소록도로 아들만 떠나보내고
저는 돌아와 서로 잊은 채 정신없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아홉 명의 아이들이 자라서
대학을 나오고 결혼을 하고 손자 손녀를 낳고…
얼마 전에 큰 아들이 시골의 땅을 다 팔아서 함께 살자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했지요. 처음 아들네 집은 편했습니다. 주는 대로 받아먹으면 되고 이불펴 주면 드러누워 자면 그만이고. 가끔씩 먼저 죽은 마누라가 생각이 났지만 얼마동안은 참 편했습니다.
그런데 날이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애들은 아무 말도 없는데 말입니다.
어느 날인가는 드디어 큰 아이가 큰아들만 아들이냐고요. 그날로 말없이 짐을 꾸려 둘째, 세째, 네째--…를 찾아갔죠. 그런데 사정은 모두 마찬가지였어요.
허탈한 심정으로 예전에 살던 시골집에 왔을 때
문득 40년 전에 헤어진 그 아이가 생각나는 겁니다.
내손으로 죽이려고까지 했으나, 끝내는 문둥이 마을에 내팽개치고 40년을 잊고 살아왔던 아이, 다른 아홉명의 아이들에게는 온갖 정성을 쏟아 힘겨운 대학까지 마쳐 놓았지만 내다버리고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아이...
한번만이라도 보고 용서를 빌고 죽겠다고
다시 또 먼길을 떠나 오늘 그 아이를 찾아 만나보니
그 아이는 이미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쉰이 넘은 데다 그동안 겪은 병고로 인해 나보다 더 늙어보이는... 그러나 눈빛만은 예전과 다름없이 투명하고 맑은 내 아들이 울면서 반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나를 껴안으며 이렇게 말했지요."아버지를 한시도 잊은 날이 없습니다.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40년이나 기도해 왔는데 이제서야 기도가 응답되었군요.이제 저와 함께 살아요 " 합니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여유도 없이 물었죠.
어째서 이 못난 애비를 그렇게 기다렸는가를...
자식이 문둥병에 걸렸다고 무정하고 내다 버린 채
한번도 찾지 않은 애비를 원망하고
저주해도 모자랄 텐데 무얼 그리 기다렸느냐고….
그러자 아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모든 것을 용서하게 되었노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비참한 운명까지 감사하게 만들었노라고. 그러면서 그는 다시 한번 자기의 기도가 응답된 것에 감사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아 ! 그때서야 나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의 힘으로 온 정성을 쏟아 가꾼 아홉 개의 화초보다,
쓸모없다고 내다버린 하나의 나무가 더 싱싱하고 푸르게 자라 있었다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내 아들을 변화시킨 분이라면
나 또한 마음을 다해 받아들이겠노라고 난 다짐했습니다.
촌장님,
이제 내 아들은 병이 완쾌되어 여기 나환자촌에 살고 있습니다. 그애는 내가 여기와서 함께 살아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애와 며느리, 그리고 그애의 아이들을 보는 순간, 바람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들의 눈빛에는 지금껏 내가 구경도 못했던 그 무엇이 들어있었습니다.
공들여 키운 아홉명의 아이들에게선
한번도 발견하지 못한 사랑의 언어라고나 할까요.
나는 그애에게 잃어버린 40년의 세월을 보상해 주어야 합니다.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그애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는 기꺼이 그 요청을 받아들일 작정입니다.
그러니 촌장님, 저를 여기에서 살게 해 주십시오" .......
- 모셔온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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