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진 집사(강남성전) -

사고로 인한 장애를 깨끗이 고쳐주신 하나님

전신마비의 몸이 성령의 역사로 치유
바라던 둘째 출산, 생명의 주님 전파


 유치원 원장이었던 나는 학부형으로부터 전도를 받았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지역장이라는 아이의 엄마는 나를 위해 아침마다 작정기도를 드렸고, 그 열심에 1998년 1월부터 남편과 함께 여의도순복음교회를 가게 됐다. 당시는 초신자라 예배 시간 느지막이 성전에 들어와 부속성전 뒷자리 혹은 돗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렸다. 그것도 매주가 아닌 한 달에 한 번 주일예배에 참석했다.

 그해 5월, 나는 돌아가신지 1주기가 된 형부의 추모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모래를 실은 트럭 운전자가 낸 음주운전 사고였다. 이 사고로 나는 경추 5,6번이 골절돼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며칠 병원에 누워 있으면 바로 회복돼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겠지’라고 믿었다. 하지만 나는 ‘전신마비’가 됐다. 다만 ‘운이 좋으면’ 휠체어를 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가족 중 어느 누구도 내가 받을 충격 때문에 사고결과를 솔직히 말해 주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병원에 누워있던 나는 갑자기 찬송가가 듣고 싶었다. 주기도문도 외우지 못하는 초신자였는데 왜 그렇게 찬송가가 듣고 싶던지…. 며칠 후 나를 전도했던 학부형이 조심스레 병문안을 왔을 때 찬송가가 듣고 싶다고 했다. 그 후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초신자였던 남편은 병간호는 물론 퇴근 후 100일 동안 평일 철야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고 방언이 터졌다. 이후 나는 수술을 통해 왼쪽 마비는 풀렸지만 오른쪽을 전혀 쓸 수 없는 반신마비가 되고 말았다. 당시 5살이 된 딸아이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 절망 앞에 선 나를 위해 교구 식구들은 쉬지 않고 기도해주며 희망적인 메시지를 계속 전해줬다.

 하지만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다. 그때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 가고 싶었다. 잘 움직일 수 없기에 한번 가면 적어도 3,4일 많게는 일주일 넘게 기도원에 머물며 하나님께 고쳐달라고 매달려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위성을 통해 조용기 목사님의 수요 강해를 듣고 있는데 뜨거운 기운이 갑자기 아픈 내 허리에 꽂히는 기분이 들더니 몸이 가벼워졌다. 불편한 몸 때문에 유치원을 그만 두고 대신 예배와 성경공부를 위한 성경학교·성경대학을 열심히 다녔다. 은혜가 넘쳤다. 이때 딸아이 출산 후 그렇게 바라던 둘째를 임신하게 됐다. 병원에서는 체중이 3㎏이상 늘면 몸에 무리가 온다고 했다. 더군다나 임신은 안된다며 출산을 강하게 부정했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러자 기도원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펼쳐든 성경책에서 성경 말씀이 살아 움직이듯 위로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바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라는 예레미야서 말씀이었다. 나는 둘째 임신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임을 확신했고 믿음으로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그렇게 아팠던 허리 통증이 그날을 시작으로 아이를 출산할 때까지 전혀 아프지 않았다. 오른쪽 장애를 깨끗이 고침 받은 것이었다. 할렐루야! 2004년에 태어난 둘째는 건강한 아들이었고,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다. 나는 아들이 어릴 때 함께 복음전도지인 ‘행복으로의 초대’를 사람들에게 전하며 전도에 힘썼다. 지난해 집 근처인 강남성전으로 교적을 옮긴 뒤 지역장으로 활동하며 내가 만난 하나님, 나를 고쳐주신 하나님을 전하며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하고 있다. 내가 아플 때 나에게 희망을 주고 내 믿음을 키워준 지·구역의 중요성을 알기에 지역장의 사명을 귀히 여기고 교구 식구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사명자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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