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영 안수집사(구로대교구) -

내 삶을 인도하신 치료의 하나님

 오래 전 나는 모 회사 입사시험을 보기 위해 상경했다가 당시 돈 6000원이 없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오갈 데 없는 신세에 처한 적이 있다. 도움을 구할 사람도 없어 궁여지책으로 구걸도 해봤다. 그러다 무슨 오해를 했는지 경찰서로 신고가 들어가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은 적도 있다. 그렇게 막막하기만 했던 내 인생에도 하나님은 찾아오셨다.

 1990년이었다. 모 대기업에 입사하게 된 후 인쇄기술을 연마하며 생활을 이어갔던 그 때 빨간 가방을 든 아주머니를 만나게 됐다. 내게 쥐어준 것은 ‘행복으로의 초대’란 전도지였다.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하다 보니 어느새 빼곡히 적힌 글들이 내 마음에 들어왔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라왔던 나는 예수님이 누군지, 하나님이 뭐 하시는 분인지도 모른 채 시골을 누비는 촌놈에 불과했다. 그러다 서울 숙모가 운영하는 홍대 인근 서점에서 일을 배우며 숙모가 다니는 교회를 따라 예배를 드리게 됐다. 지금이야 당연한 것이었지만 매 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과  끼니마다 기도하는 것이 참 어색했다. 그러다 군대를 가게 됐고 좋은 선임을 만났다. 당시 군종이었던 선임은 부대 내 교회로 인도하고 어렵고 힘들 때 좋은 위로의 말을 해주어 인간적으로 잘 따르고 마음도 편안해짐을 느꼈었다.

 그 때의 평안함이 떠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여의도순복음교회로 발걸음이 옮겨졌다. 주일예배는 물론 주일철야예배도 참석하면서 매 예배가 즐거웠다. 지금 담임목사님이신 이영훈 목사님이 당시 철야설교를 하셨는데 하는 말씀 족족 내게 하시는 말씀처럼 느껴져 큰 은혜를 받았다. 말씀으로 은혜를 받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이 햐얀 옷을 입은 봉사자들이었다. 그 때는 남선교회가 무엇인지 봉사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저 “저도 하얀 옷을 입고 싶습니다”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그렇게 남선교회 봉사실에서 봉사를 시작했다. 근데 봉사를 하기 전 봉사자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들었다. 나는 믿음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봉사를 시작하면 마냥 기쁘기만 할 것 같았는데 그런 생각도 잠시 나는 허리통증과 무릎통증이 함께 와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아픈 다리와 허리를 부여잡고 인근 병원에 가서 치료도 받아봤지만 차도가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통증은 더욱 심해졌고 봉사는 물론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 때가 되어서야 매주일 교회에서 듣던 말씀들이 생각났다. 예수님이 늘 병자들을 고쳐주셨음을 기억해냈다. 그래서 교회에서 배운 대로 하나님께 의지하기로 작정하고 기도처에서 40일 작정기도를 시작했다. 성경의 말씀처럼 기도하면 허리와 무릎에 통증이 치료받을 것이라 확신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안수기도만 받으면 무조건 나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 실제로 엄태욱 목사님이 그 때 우리 기도처를 찾아와 예배를 인도해주셨는데 그 때 나는 엄 목사님께 매달리다시피 안수기도를 요청했다. 엄 목사님은 내게 안수기도해주셨는데 그 즉시로 통증이 떠나가버리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봉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내게 힘을 주셔서 아무리 피곤하고 고단하여도 철야예배 후 이어지는 새벽기도에도 참석할 수 있는 새 힘을 주셨다. 매주일 그 힘에 의지해 예배를 드리고 여름이면 오산리 기도원 금식성회도 참석하며 은혜를 누릴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오갈 곳 없던 나를 하나님은 지금까지 지키고 보호하시고 이끌어주셨다. 그 은혜에 감사하며 날마다 이사야 41장 10절과 시편 23편을 묵상하며 오늘도 주님이 주시는 평안함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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