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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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후 64년 로마를 통치하고 있던 네로 황제는 헤롯의 손자였던 아그립바 2세를 이스라엘의 분봉왕으로 세우고, 아그립바 2세는 풀로루스를 유대지역 총독으로 임명하였습니다.

풀로루스는 유대인들을 학살하였고 약탈을 일삼았습니다. 이에 반대한 유대인들이 주후 65-66년 사이에 로마에 대항하는 대반란을 일으켰고, 로마는 베스파시안과 아들 디도장군에게 반란의 진압을 명하였습니다.

네로는 "이스라엘을 삽으로 깊이 떠서 지중해 바다 속에 던져 버리라." 고 명령하였습니다. 1948년과 1967년 그리고 1973년 이스라엘과 아랍세계와의 전쟁이 있었을 때 아랍은 이스라엘을 삽으로 떠서 지중해로 던져 버리겠노라 장담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승리하였지만 옛날부터 따라다녔던 치욕이 오늘날까지 재현되는 아픔을 겪게 된 것입니다.

이즈음 네로는 로마의 대화재 사건 이후 자살하였고, 베스파시안이 황제가 되어 아들 디도장군에게 반란진압 총 공격 명령을 내렸습니다. 70년 4월 유월절 즈음에 시작된 전투가 70년 8월 28일 예루살렘 멸망으로 종결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대학살에 살아 남은 자 중 960명의 열심당원 사람들이 엘리에젤 장군의 지휘 하에 마사다로 결사항전을 위한 피신을 하였습니다. 로마는 이들의 뒤를 실바장군의 지휘 하에 10군단 1만 5천명이 마사다로 내려갔습니다.

 

이 곳에서 73년 5월 2일 멸망당할 때 까지 3년여간을 자유를 향한 마지막 몸부림을 쳤습니다. 절벽 높이 450m, 둘레 1,280m, 길이 남북 800m, 동서 300m나 되는 천연요새인 바위 암벽 마사다는 BC 167년에 하스모니안 왕가의 요나단에 의하여 에돔지역에서 오는 적군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처음 요새화 되었던 것입니다.

BC 103-76 알렉산더 야나이라에 의해 확장되었고, BC 30년 헤롯 대왕에 의해 지금도 볼 수 있는 대부분의 건물들이 건축되어졌습니다. 동서남북 절벽으로 되어진 곳에 높이 3.5m의 성벽을 쌓았고, 38개의 망대를 설치하여 난공불락의 요새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로마 장군 실바는 군인들을 동원하여 포위공격에 들어갔고, 지형적인 이유로 일시에 점령하지 못하자 서쪽 약간 낮은 지역에 토성을 쌓아 올려 마사다보다 높이를 더하려 하였습니다.

날마다 쌓여져가는 토성을 보고 유대인들은 용기를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최후가 다가온 날 엘리에젤은 용맹스런 동료들과 모든 요새안의 유대형제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로마를 섬기지 않고 하나님 한 분만 섬겼소. 참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은총으로 우리에게는 자유롭고 고귀하게 죽을 수 있게 되었소. 살아 노예가 되어 치욕을 당하는 것 보다... 중략... 우리의 자유를 위한 고귀한 선택을 하도록 합시다."

간곡한 연설에 일부는 동조하였으나 가족들에 대한 연민의 정으로 일부가 망설이자 재차 연설하게 됩니다. "세상에서 자유를 추구하면서 영원한 자유를 꺼리는 것은 분명히 어리석은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결국 성경의 예언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들이 최후로 읽은 성경은 겔 37:1-6, 11, 12, 21절입니다.

자신들은 죽지만 이스라엘은 회복될 것이고, 고국 땅은 반드시 부활될 것을 확신하면서 죽어갔던 것입니다.

이곳에서 발견된 사본들은 시 81편, 85편, 150편, 레위기 일부, 겔 37장 신 33장, 34장 등입니다.

마사다는 시편 18편에 나오는 산성, 요새, 바위라는 히브리어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사다는 실패한 땅이 아니라 결국 하나님의 섭리가 발견되어지는 성공의 땅이 됩니다.

여호와는 지금도 산성이 되셔서 믿는 자를 지켜 주신십니다.  비굴하지 말자.  두려워 하지 말자. 믿음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죽기까지 힘을 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마사다는 이스라엘의 국립공원으로서 사해쪽 아래에서 케이블카(84인승)을 타고 5분이면 정상으로 올라갑니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동쪽에 만들어진 거대한 물저장고를 볼 수 있습니다. 고대에서 물을 저장하는 신기한 방법을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출입문으로 올라가면 마사다 요새 전체를 볼 수 있습니다. 곳곳 마다 놓여진 모형도를 놓고 안내인이 설명하는 모습들도 보입니다. 발걸음을 옮겨 채석장을 지나면 요새의 창고지역이 나타납니다. 거대한 요새의 병사들과 관리들을 먹이기 위한 식량창고와 무기 창고 등이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어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헤롯의 사우나탕은 전형적인 로마 스타일의 목욕문화를 보여 줍니다. 이곳을 지나 북쪽궁전으로 나아가면 발밑에 아스라이 보이는 로마군의 진지들과 방어선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3층 궁전에서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잡힐 듯 다가오는 엔게디의 모습이 보이고, 북서쪽으로 마온 황무지, 십광야, 유대광야 등이 보입니다.

이제 길을 따라 서쪽으로 가보자. 서쪽에 저수지가 있고, 회당이 있습니다. 최후의 연설이 있었던 곳이며, 요새의 거주민이 안식일을 지키고 절기를 지키며 기도하던 곳입니다.

회당 옆 부속건물을 따라 남쪽으로 가면 구멍 뚫린 집이 보이는데 비둘기집들이 있었던 곳입니다. 연락용으로 키웠으리라 생각됩니다.

마다사 중간부에 가면 서쪽 구릉이 보이고 로마군진지가 보이고, 돌 포대도 보입니다. 로마군들이 쏘아올린 돌 포탄들을 지금도 이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비잔틴 문을 통과하여 로마군 진지를 향하여 내려가는 길도 있습니다.

 

모두가 케이블을 타고 마사다에 오르지만 가끔은 아라드 쪽에서 버스로 마사다로 와서 로마군진지에서 출발하여 정상에 오르는 길로 오를 때도 있습니다. 곳곳에서 로마군이 쌓아올린 경사로를 볼 수 있는 묘미가 있습니다.

서쪽 궁전은 천연돌로 만들어진 2,000년된 모자이크를 볼 수 있고, 남쪽으로 계속 가면 거대한 저수지와 묘지, 비들기집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시간 관계상 대부분이 이 서쪽 궁전을 본 후 5세기에 지어진 비잔틴 수도원을 보고 다시 케이블카로 이동합니다. 마사다 매표소는 현대식 건물로 냉난방이 잘 되어있고, 영화를 보는 곳도 있으며, 유물들이 전시되어있는 공간도 있습니다. 쇼핑센터와 조그만 가계가 내부에 있고, 외부에는 노천 카페에서 생과일 쥬스를 팔고 있습니다. 과일 쥬스를 마시면서 마사다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으며 역사를 음미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유를 향한 몸부림을 배우려 오늘날에도 많은 유대인들이 부지런히 마사다로 올라가고, 이방인 순례객들도 덩달아 올라가고 있습니다.

신앙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면서 마사다를 이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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