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민·김은이 집사(장년부) - “아내의 기도로 제 인생이 달라졌죠”
하나님 의지해 노점상에서 사업가로 성공

 나는 평일철야예배 찬양을 인도하는 ‘기쁜소리 찬양팀’의 총무를 맡고 있다. 낮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봉사를 통해 주님을 찬양할 수 있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내 인생을 돌아보며 아내의 기도는 남편을 변화시키고 남편이 변화되면 아내의 삶이 바뀐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어렸을 때 가난하게 자랐기 때문에 인생의 목표가 돈을 많이 벌어서 폼나게 사는 것이었다. 2000년에 우리 부부는 지금까지 모은 전 재산을 투자해서 의류사업을 시작했는데 두달 만에 쫄딱 망하고 말았다. 쇼핑몰도 입점하고 나름 괜찮게 시작했지만 기도도 안하고 준비없이 내 생각대로 사업을 한 결과였다. 많은 빚과 현금 40만원만 남았다. 길거리에서 노점상을 시작해 악세사리도 팔고 아동복도 팔았다. 아들이 태어났지만 병원비가 없어 퇴원도 못하는 처지였고, 겨우 퇴원해서도 아내 혼자 집에서 산후조리를 해야 했다. 이런 힘든 상황에서도 아내는 늘 감사하며 열심히 교회를 다녔다. 나는 밥 굶을 걱정에 늘 전전긍긍하는데 아내는 세상 편하게 교회에 가는 것이 싫었다. 몇 년 후 길거리에서 카세트테이프를 팔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해 전 재산 100만원을 모아 장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4일째 되던 날 음반저작권협회에서 단속을 나와 물건을 모두 빼앗아 가버렸다. 벼랑 끝에 몰린 기분이었다. 둘째아이 분유 값도 없고 당장 저녁에 먹을 밥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작은 보험에 하나 가입되어 있는 것이 생각났다. 내가 죽어서 돈이 나오면 당분간 식구들은 먹고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아내의 기도 때문인지 실패하고 말았다.

 어느 날 아내가 장년부 수련회를 같이 가자고 부탁해 마지못해 따라갔다. 나는 한번도 배워본 적 없는 드럼을 연주하게 됐고 3년간 젊은부부선교회에서 드럼을 쳤다. 정말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했다. 하지만 내 생활은 여전히 배고팠고 생활고에 시달렸다. 나는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아내와 집중적으로 기도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이 사업 아이템을 주셨다. 도검을 판매하는 거였다. 누가 봐도 안 될 것 같은 사업이었고 실행이 쉽지도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상품화해서 판매가 시작됐다.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도검을 국내에 유통하게 됐는데 사업이 잘 됐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니 사람들을 만나서 밥사주고 술사주고 하며 인심 좋은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인색했다. 아내가 1만원 헌금하면 화내고 1000원만 내라고 하고 나는 교회에 안나갈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런데 3년 전 어느날 갑자기 사업장에 형사 7명이 압수수색영장을 들고 들이닥쳤다. 나는 합법적으로 사업을 진행한 건데 누군가 신고를 해 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힘든 법적 싸움이 1년 동안 이어졌고 그 동안 내 인맥으로 생각해온 지인들이 모두 뒤돌아섰다. 하지만 내가 인색하게 굴었던 교회 지역식구들만이 나를 위해 기도해주었다. 나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느라 여력이 없었지만 장년부 브엘세바찬양팀에서 봉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내 사업장의 목표가 ‘폼나게 살자’에서 ‘매달 50가정 후원’으로 바뀌었다. 그 이후로 세상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교회 안에서 10가정을 후원하고 있다.  

 나는 법적 문제를 빨리 해결하기 위해 아내와 기도원에 올라가 얼굴이 퉁퉁 부을 때 까지 울면서 기도했다. 우리 부부는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렸다. 재판에서 마지막 선거공판이 있던 날 판사가 “김경민 씨 당신은 죄가 없습니다. 무죄입니다”라고 말했다. 모든 일이 깔끔하게 해결된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 내 인생의 목표가 “우리 식구 잘 먹고 잘 살자”에서 “세상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데 크게 쓰임받는 사람이 되자”로 바뀌었다.

 늘 어려운 중에도 불평 없이 감사하며 신앙으로 이끌어준 아내 김은이 집사에게 감사하다. 사업은 주 안에서 날로 번창하고 있다. 나는 더 열심히 돈을 벌어 하나님 영광을 위해 쓰임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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