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한 대상을 마음 속에 그리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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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으며 내 기도 소리에 주의하셨도다(시편 66장 19절)

내가 목회한지 몇 달밖에 안되는 아주 궁색한 때였습니다. 그때는 결혼하기 전이었으므로 조그만 방에서 나 혼자 살았습니다. 방 안에는 책상은 물론, 의자도 침대도 없어서 마룻바닥에서 그냥 먹고 자며 공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도 영적으로는 승리감에 충만하여 매일 몇십리 씩을 걸어다니면서 열심히 전도하고 심방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의 약속하신 구절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말씀은 내가 예수 안에서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응답을 받는다는 말씀이었습니다(요 14 : 14). 또한 내가 하나님의 당당한 아들이며, 만왕의 왕, 만주의 주 되신 하나님의 자녀 (요 1 : 12)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었습니다. 나는 성경의 약속을 믿으며 내게 필요한 것을 주님께 요청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를 만왕의 왕, 만주의 주되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셨는데, 어째서 제게는 책상도 없고, 의자도 없고, 침대도 없습니까? 더구나 자전거 하나 없이 매일 몇십리씩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 다녀야 합니까? 적어도 조그만 책상이나 앉을 만한 의자, 심방할 때 타고 다닐 자전거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에게 책상과 의자와 자전거를 주십시오" 나는 믿음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하나님께 기도한 물건들이 속히 내게 도착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응답도 없이 한 달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두 달, 석 달, 넉 달, 다섯 달, 무려 여섯 달이 지나갔으나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응답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비 오던 날, 나는 정말 낙심되어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에는 아무것도 먹지못해 배도 고프고 너무나 지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하염없이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저는 여러 달 전부터 책상과 의자와 자전거를 놓고 기도했는데, 아직 하나도 응답받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 가난한 동네에서 복음을 전하느라 얼마나 고생하는지 주님은 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보십시오. 저 자신도 체험하지 못한 믿음이나 기도 응답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설교할 수 있겠습니까? 저도 이렇게 끼니도 해결하지 못하고 굶어 죽을 지경인데 저들에게 어떻게 인생이 빵만으로 살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 저는 지금 너무나 낙심되어서 아무 의욕도 없습니다. 저의 이번 기도가 왜 응답되지 않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며 시간이 지나면 다 응답된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제가 오래 전에 드린 기도가 언제, 어떻게 응답되는지를 지금 당장 분명히 확신할 수 없으니 정말 답답합니다. 만일 제가 죽고 난 다음에 응답하시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왕 응답하시려면 지금 저의 형편을 보시고 제발 좀 빨리 응답해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하는데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한참 울며 신세 타령 반, 기도 반 쏟아놓고 나니 마음이 아주 평안해 지고 안정되었습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평안이 넘쳐나기 시작했으며, 성령의 음성이 마음 속에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나의 영혼의 깊은 곳에 말씀하시기 때문에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조용히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러자 조용하고 세미한 음성으로 성령께서 나의 영혼을 진동시키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들아, 나는 오래 전에 너의 기도를 들었다." 그 말씀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불쑥 말했습니다. "그러면 제 책상과 의자, 자전거는 다 어디 있습니까? "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비롯한 내 자녀들이 온갖 부탁과 요구를 하지만, 그들은 내가 응답하기에 합당치 않은 막연한 말로 달라고만 하는구나. 너도 마찬가지다. 너는 책상과 의자와 자전거의 종류가 수십 종이나 되는 것을 모르느냐? 네가 언제 내게 책상과 의자와 자전거에 대한 분명한 종류나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한 적이 있느냐? 단지 막연하게 달라고만 하지 않았느냐?" 나는 이 말씀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성령께서 책망하신 이 말씀은 나의 일생 일대에 놀라운 전환점을 가져왔습니다. 이런 것은 신학교에 다닐 때, 누구에게서도 배운 적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큰 실수를 했지만, 이것을 깨닫게 된 것은 엄청난 복이었습니다. "주여, 당신은 진정 분명한 말로 구체적으로 기도하기를 원하십니까?" 이때 성령께서 나에게 히브리서 11장을 펴 보라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는 서두부터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다시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죄송합니다. 제가 큰 실수를 범했습니다. 기도를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그때부터 나의 기도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번에는 책상을 놓고 기도할 때 종류를 분명히 했습니다. 책상 종류는 내가 좋아하는 필리핀제 마호가니 책상이라야 하며, 크기는 어느 정도라고 상세히 말씀드렸습니다. 의자는 철로 테를 두른 것으로, 아래에 작은 바퀴가 달린 가장 좋은 것이라야 책상 주위를 밀고 다닐 수 있어 사용하기에 편리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자전거를 놓고 기도할 때에는 정말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제, 일본제, 대만제, 독일제 등등, 자전거의 종류가 너무 많아서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나는 아주 튼튼한 자전거가 필요했기에 그 당시 자전거의 품질 중 최고인 미국제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기어가 있어서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튼튼한 미국제 자전거를 갖고 싶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가 드린 기도대로 착오 없이 응답하시도록 분명한 말들로 항목들을 요청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데 믿음이 뱃속에서부터 솟아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나는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떨렸습니다. 그날 밤, 나는 엄마 품에 안긴 아기처럼 깊이 잠을 잤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새벽 기도를 인도하기 위해 4시 30분에 일어났을 때에는 갑자기 가슴이 텅 빈 것 같았습니다. 그 전날 저녁에는 온 세상이 다 내 것 같은 믿음이 있었는데, 자고 나니 믿음은 날개를 치고 날아가 버려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나의 마음속에 믿음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 이것은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아버지께서 응답을 주실 때까지 믿음을 간직한다는 것과는 정말 별개의 문제군요. 이러한 일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다반사로 겪는 문제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어떤 집회에서 아주 은혜로운 강사의 설교를 들을 때에는 믿음이 강해져서 무엇이든지 다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집회가 끝나고 나면 미처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 믿음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과 같습니다."

그날 새벽, 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적절한 성경구절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의 눈길이 로마서 4장 17절에서 멈추었습니다.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나는 이 말씀에 사로잡혔고, 이 말씀은 내 가슴 속에서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 나도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를 수 있다. 벌써 그렇게 한 것이다. 하고 나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어떻게 믿음을 간직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 해답을 이 성경 구절에서 얻은 것입니다. 할렐루야!

나는 성도들이 이미 하나 둘씩 모여 기도하고 있는 천막 교회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찬송을 몇 장 부른 후에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나는 로마서 4장 17절 말씀을 본문으로 하여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필리핀제 마호가니로 만든 아주 좋은 책상과 끝에 작은 바퀴가 달리고 쇠로 테를 두른 아름다운 의자와 또 기어가 달린 미제 자전거를 제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저는 이런 것들을 다 받았습니다." 성도들은 모두 다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성도들이 나의 형편이 어떤지를 다 잘 알고 있는데 너무 엄청난 말을 하니까 놀란 것입니다. 내가 계속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들을 자랑하자, 우리 성도들은 혹시 뭐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고 귀를 의심하는 듯했습니다. 나는 성경에 말씀하신 대로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믿음으로 말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나오는데 세 명의 청년들이 호기심이 가득 찬 얼굴로 따라 나왔습니다. "전도사님, 전도사님께서 자랑하신 물건들을 보고 싶습니다. 좀 보여 주세요." 나는 무척 당황했습니다. 나는 믿음의 고백을 했을 뿐,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 천막 교회는 빈민촌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새벽 예배 때 한 이야기가 성도들에게 굉장한 간증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 성도들이 그 말이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면 그로써 끝장입니다. 누가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들으려고 다시 교회에 오겠습니까? 나는 진퇴양난에 빠져 속으로 잠시 묵도했습니다.

"주여, 처음부터 이번 일은 제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말한 것은 순전히 당신 탓입니다. 저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단지 순종하여 이미 응답받은 것처럼 말한 것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곤란한 문제가 생겼으니 어떻게 설명해야 됩니까? 항상 도와 주셨으니 제발 지금도 좀 도와주십시오." 그러자 성령께서 지혜로운 한 생각을 떠오르게 하셨습니다. "아, 그래요? 모두 내 방으로 가봅시다." 그들은 방에 들어서면서 자전거랑 의자랑 책상을 찾느라 두리번거렸습니다. "뭐 그렇게 둘러볼 것 없어요. 제가 나중에 보여 드리지요."

나는 박 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그는 지금 한국에서 목사로 훌륭하게 시무하고 있습니다.) "내가 몇 가지 질문을 하겠소. 만일 박 군이 내 질문에 대답하면 여러분에게 그 물건들을 보여주리다. 박 군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얼마 동안 어머니 뱃속에 있었소?"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습니다. "음, 아홉달이요." "그러면 아홉 달 동안 어머니 뱃속에서 뭘 하고 있었을까요?" "그야 자라고 있었겠지요." "그러나 아무도 당신을 보지 못 했잖소?" "어머니 뱃속에 있었기 때문에 볼 수 없었던 거지요." "맞아요. 다른 사람들 눈에는 안 보여도 여러분들은 세상에 태어나기 전까지 분명히 어머니 뱃속에 있었어요. 저도 어제 저녁 이 방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제 마음 속에 아까 말한 책상과 의자와 자전거를 하나하나 그려가며 기도했어요. 그것들은 지금 눈에는 안 보여도 믿음으로 여기 내 마음 속에 자라고 있어요. 이제 때가 되면 사람들이 보게 될 바로 그 책상과 의자와 자전거가 내 속에 들어 있어요."

이렇게 말을 하자, 그들은 배를 잡고 뒹굴며 웃었습니다. 아무리 그렇지만 책상과 의자와 자전거를 임신한 남자는 처음 본다구요. 그들은 방에서 뛰쳐나가자마자, 온 마을에 남자 전도사가 의자, 책상, 자전거를 임신했다고 하더라는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나는 이일 때문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나를 보면 모여서 비웃을까봐 밖에 나다니기가 어려웠습니다. 개구쟁이 꼬마들은 주일이면 내게 와서 배를 만지며 놀려댔습니다. "전도사님, 어디 좀 봐요. 얼마나 더 커졌는지요."

나는 온 동네에 웃음거리였지만 그런 와중에도 지극히 담대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한 물건들이 믿음으로 내 속에서 자라고 있는 것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어머니가 아이를 잉태해서 낳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여러분이 간절히 원하여 기도한 것이 응답되어 실제로 이루어지는 데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는 이 원리를 되새기며 계속 기도한 물건들을 주실 주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미 받은 줄로 믿고 감사하고 입술로 줄기차게 시인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때가 되자, 내가 기도한 대로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응답하셨습니다. 기도한 내용과 조금도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바로 내가 원한 것을 모두 가질 수 있도록 어떤 사람을 통해 연락이 왔습니다. 가서 보니, 책상은 마호가니로 만든 것이었고, 의자는 일본 미쯔비시에서 만든 것으로 바퀴가 달려서 앉은 채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전거는 미국 선교사의 아들이 좀 쓰던 것이긴 했지만 기어가 달려 있는 튼튼한 것이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아주 놀라운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때까지 나는 매우 막연한 말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 교훈을 깨달은 이후로는 지금까지 한번도 막연한 말로 기도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막연한 기도에 응답하시면, 여러분은 그것이 진정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인지 아닌지를 잘 모를 것입니다. 여러분은 기도할 때, 분명하고 특별하게 요청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성경은 믿음으로 구체적인 기도를 해야 그대로 응답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 마가복음 10장에 기록된 사건입니다. 어느 날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큰 소리로 주님을 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많은 사람들이 잠잠하라고 그를 꾸짖었으나 그는 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보시고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즉각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바디매오에게 직접 물어 보셨습니다.

네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예수님께서는 그의 분명한 뜻을 듣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바디매오는 그 즉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디매오가 눈을 치료해 달라고 특별히 간청하기 전에는 치료의 말씀을 선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가 자신의 분명한 소원을 믿음으로 말했을 때 바로 그때 주님께서는 그대로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하나님께 기도할 때, 막연히 중언부언하지 말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특정한 대상과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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