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씨가 된다

 

잠언 18:20-21



사람은 그 일생을 입으로 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입으로 먹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입으로 말하면서 일생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입이 우리의 생명이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입으로 나오는 언어를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하고, 인간의 언어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우리는 입에서 나오는 말로 서로 교제하면서 우리 인격을 표현하고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말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권입니다. 우리는 말할 수 있는 자유를 가졌고 마음대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에 대한 책임이 있고 심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생은 자기가 말한대로 산다고 말합니다.

찬양과 저주도 말이요, 감사와 불평도 말이요, 친절과 온유도 말입니다. 그러므로 말이 그 사람의 인격이며 인간의 운명도 그 말로 결정이 됩니다.

유명한 에머슨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가 하는 말에 의해서 그 자신을 비판한다. 말은 남 앞에 자기 초상을 그려놓는 셈이다."

말은 곧 인격이요, 삶이요, 사상이요, 운명입니다. 말을 철학적으로 표현하면 말이 마음에 있으면 사상이요, 말이 입을 통해 전달되면 언어요, 말이 고정되면 뜻이요, 말이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을 행위라고 말합니다.

금년 설에 어떤 가정에서 자녀들이 부모에게 세배를 했을 때 아버지가 자녀들을 앉혀놓고 덕담하기를 "금년에 너희들에게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위하여 내가 세배 돈은 못주고 복받는 지혜를 주노니 잘 들어라. 말이 씨가 된다. 그러니 너희들이 말을 잘 심어서 열매를 거두어라. 우리가 이 세상에 조상적부터 받은 물질의 유산은 없지만 입에서 말로 씨를 잘 심으면 큰 노력없이 복 받고 잘 살고 성공하는 인생을 살 수 있다. 가정에서 부부간에 좋은 말 많이 심고 자녀들에게 좋은 말을 많이 심어두면 이 가문이 빛날 것이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저는 요즘 시간 날 때마다 양수리 수양관에 들어가서 내가 수십년동안 외쳤던 설교집의 수십권을 전부 탐독하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목사로서 일생동안 말하고 사는 사람인데 말로 복을 빌어주고, 말로 은혜를 끼치고, 말로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데 내가 우리 교인들에게 그동안 전했던 말들이 어떤 면을 많이 전했으며 어떤 면은 전하지 않아서 우리 교인들이 복받는데 장애가 되었나' 스스로를 성찰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유명하고 세계에서 유명한 분들의 설교를 검토하면서 '이 분은 어떤 말을 많이 하고 어떤 면에서 부족한가'를 분석하면서 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내가 말한 만큼의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내가 말한 만큼 행복할 수 있으며, 내가 말한 만큼 성공할 수 있으며, 내가 말한 만큼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내가 무슨 말로 인생을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중대한 교훈을 오늘 말씀이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말은 씨가 된다.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20절)

다시 말하면 입에서 나가는 열매로 배부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입에서 좋은 열매가 나가면 좋은 것으로 배부를 것이고 나쁜 열매가 나가면 나쁜 것으로 배부를 것이라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21절)

여기에서 열매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말은 곧 씨가 되기 때문에 그 씨가 열매를 맺는대로 배부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는 말은 나쁜 말을 좋아하면 나쁜 것으로, 선한 말을 좋아하면 선한 것으로, 악한 말을 좋아하면 악한 것으로 채운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얘기입니까?

공동번역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입을 잘 놀리면 단 것을 실컷 먹고 입술을 잘못 놀리면 쓴 것을 들이켜게 된다. 죽고 사는 것이 혀 끝에 달렸으니 혀를 잘 놀려야 잘 먹을 수 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7-8)

심는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 속에 몇 가지가 있습니다. 심으면 반드시 거둔다는 원리가 있습니다. 또 하나 심는 종류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 7:16-18)라고 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말을 심느냐에 따라서 그 열매를 거둔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심는 양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돈 안들이고, 힘 안쓰고, 큰 재주없이 잘될 수 있는 비밀이 하나 있는데 입으로 좋은 씨를 많이 심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조심하라는 말은 좋은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의 말을 들으시고 심판하신다.

내가 한 말을 우리 하나님께서 다 들으시고 응답해주시기 때문에 조심해야 됩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우리는 듣는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하는 말을 하나님도 들으십니다. 하나님은 인격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우리는 듣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말을 들으십니다.

냉정히 생각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는 것보다 내 말을 하나님께서 더 들으시고 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들을 생각을 않고 내가 많은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말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 말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응답하십니다.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2:36-37)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내뱉은 말까지도 다 하나님께서 심문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약 3:2)

우리는 온전해지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온전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실수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말로 실수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성도들은 천사가 호위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모든 말이 기도가 됩니다. 하늘에 바로 응답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큰 헌금해서 영광 돌리겠습니까 이것은 어쩌다가 몇 사람 있습니다. 큰 능력받아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도 어쩌다가 한 두 사람씩 나옵니다. 그런데 날마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리는 모든 영광은 말로 하고 있습니다. 말로 찬송하고, 말로 감사하고, 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고,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의 요점은 말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감사의 말을 많이 하는 자에게는 감사의 열매를, 불평을 많이 하는 자에게는 불평의 열매가 돌아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많이 찾았던 말은 원망이었습니다. 광야 40년동안 저들이 불평, 불만, 원망했습니다.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사람들의 말을 듣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저들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 14:27-28)

'차라리 우리가 애굽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할 때 "그래 원망하면서 거기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했으니 내가 죽여주마" 해서 20세 이상 된 장정들을 다 광야에서 쓰러지게 만들었습니다. "결단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말은 씨가 되어 열매를 맺습니다. 말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모든 말은 기도적 의미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응답이 잘 안되는 때가 있습니다. 위선적인 기도를 드리는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말을 만들어가지고 하기 때문에 기도 응답이 안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때 말한 것은 제 진실을 얘기하기 때문에 그대로 응답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응답보다 말하는 것의 응답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석에서나, 가정에서나, 교인들이 모일 때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한 자매가 유능하고 인물 좋은 남자와 교제하다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워낙 인물이 좋았기 때문에 주위에 여자들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애정관계가 복잡했습니다. 너무 속상해서 부인이 속으로 이렇게 불평했습니다. '차라리 혼자 사는 것이 좋겠다. 교통사고라도 나서 죽어버려라' 그런데 어느날 밤 남편이 한강변 조용한 숲속에서 술을 마시고 돌아오다가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부인이 이제는 울면서 "일년내내 바람을 피워도 좋으니 살아만 주시오."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말한대로 응답된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도 매몰찬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못된 면이 있어도 막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좋은 말을 써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가 쓰고 있는 말이 어떻게 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모세같이 위대한 사람도 말 한마디 잘못해서 그의 사역이 끝이 났습니다. 모세가 자기 백성들이 원망할 때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민 20:10) 하고 지팡이를 들어 반석을 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반석에 명하여 물을 내라'고 말씀하셨는데 백성들을 향해서 분노해서 반석을 쳤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민 20: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다른 사람에게 심은대로 나에게 돌아옵니다.

왜 말을 조심해야 되느냐? 심은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심어서 내가 거두는 것입니다. 좋은 말 심어주면 좋은 것이 나에게 거두어지는데 친절한 말은 친절한 것으로, 선한 말은 선한 것으로 거두어집니다.

한 번은 어떤 시어머니가 밖에 볼 일이 있어서 외출하다가 놓고 온 것이 있어서 집에 들어왔는데 며느리의 전화 통화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직도 새파란데 언제 받아?" 빨리 가야 재산을 받는다는 말 아닙니까 시어머니가 창밖에서 섬짓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누렇게 생기면 좋겠습니까? 말조심 해야지요. 그래서 집을 사서 내보내려고 했다가 조그만한 월세방을 얻어서 얼마 후 내보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심은대로 거둡니다. 그래서 잠언에 보면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 15:1)라고 했습니다.

부부가 살면서 언제나 말로 행복을 얻어야 합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남편이 아내에게 "여보, 내가 당신을 사랑해" 그 말을 해야 합니다. "늙어가지고 뭐 간지럽게 그런 말을 합니까?" 그런데 늙었다고 그런 말을 안하면 안됩니다. "여보, 당신은 나이가 들수록 고상해" 이런 말 하면 좋지 않습니까 그런데 꼭 기 꺾는 말만 골라가지고 합니다. 좋은 말 하고 살기도 인생이 짧은데 나쁜 말 하면서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서로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말로 대화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상대방에게 존경하는 말을 써야 합니다. 친절과, 온유와, 겸손과, 매사에 긍정적이며 창조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대문에 이런 말을 써 놓았습니다. "이 문안에 들어오는 자는 모두 긍정적인 말을 사용하시오. 이 말을 하기 싫거든 입이나 다물고 계시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모든 직장생활, 가정생활에 있어서 성공과 행복의 모든 문제는 언어의 열매를 먹고 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데이라는 사람이 쓴 "세 황금문"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말을 하든지 세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첫째문은 참말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남이 했다고 해서 자기도 해서는 안됩니다. 자기가 할 때는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필요한 말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참말이라 할지라도 이 말이 꼭 필요한 말인가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진실한 말이라도 필요없는 말은 안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친절한 말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 말이 온유한가, 그 말을 할 때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했는가

필요한 말일지라도 친절하게 말할 때만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이런 황금문을 지날 수 있다면 좋은씨가 되어 좋은 열매를 많이 맛보게 될 것입니다.

말로 상처를 많이 받는 곳이 어떤 의미에서는 가정입니다. 인간 성장에서 가장 상처를 많이 준 사람이 부모라고 합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말의 상처가 우리 마음속에 너무도 많이 얼룩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상처로 받고 있는 사람은 불효자식입니다. 그 상처까지도 '오, 하나님의 은혜로다.' 해야 합니다. 그 상처를 예수님께서 치유하시기 때문입니다. 상처를 많이 받았으면 '아, 우리 주님의 채찍에 맞는 십자가의 상처를 더 많이 받으라고 우리 아버지가 그렇게 하셨구나 우리 아버지는 좋은 분이지' 하는 사람은 효자입니다. 가정에서 상처를 받았다 할지라도 은혜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부부는 말 한마디 상처를 용서하지 아니하고 오년, 십년동안 간직하고 있다가 때마다 칼내놓듯이 내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말을 조심해야 될 것은 나쁜 말을 썼다가 자기 생명을 잃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교도소 생활을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이 어린시절 가출하여 타락의 길로 갔습니다. 그래서 교도소를 자기집 안방 드나들 듯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예수를 믿게 되었고 믿음 좋은 처녀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전과자라는 이유 때문에 사회생활하는데 지장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전과자'라는 말만 들으면 머리가 섭니다.

어느날 밤에 부부가 서로 대화를 나누다가 언성이 좀 높아지면서 다투게 되었습니다. 그때 부인이 남편에게 "당신이 전과자라 그래"라고 한마디 했습니다. 이 말에 이성을 잃은 남편이 일어나더니 부엌에 들어가 식칼을 들고 나와서 자기 아내를 찔러 죽였습니다. 자기 남편을 전과자로 만들었으니 전과자한테 죽은 것이죠. 자기 남편으로 만났을 때는 회개한 남편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과거에 대한 전과를 들추어내면 안됩니다. 분노하면 정신을 잃습니다.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말하기 좋다 하고 남의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말하기 좋다 하고 남의 말을 말을 것이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

말로서 말 많으니 말 많을까 하노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

'은혜를 끼치게 하라' 어떻게 끼칩니까? 좋은 말을 하고, 격려하는 말을 하고, 칭찬하는 말을 하면 됩니다. 우리가 서로 서로 남에게 좋은 말로 심어야 됩니다. 좋은 것을 심으면 좋은 것이 들어오고 나쁜 것을 심으면 나쁜 것이 들어옵니다.



넷째, 내가 한 말은 내 인격을 이룹니다.

말은 자기 마음에 자기가 심고 있습니다. 말은 자기가 듣고 자기 속에서 먼저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대화를 나누거나 자기 생각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듣는 것이 내 귀입니다.

남은 못알아들어도 자기는 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한 말을 할 때는 내 마음이 선해지고,

악한 말을 할 때는 마음이 악해지고, 격한 말을 하면 스스로 격분하게 됩니다.

더러운 말을 하게 되면 듣는 사람이 영향을 받기 전에 자신의 마음이 더러워집니다.

내 인격이 그 말로 추해집니다. 말이 마음에서 나오지만 또한

그 말이 내 마음에 자리를 잡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말을 배의 키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작은 키 하나가 배의 방향을

조정하듯이 말이 인격을 좌우하고 운명을 이끌어간다는 것입니다.

말이 가는대로 인격이 형성되고 인격이 가는대로 운명이 결정됩니다.

어떤 부부가 잘 살다가 3년만에 이혼했습니다. 그 남편이 기타 치는 것을 좋아하는데

집에만 들어오면 '이별의 부산항'으로부터 '목포의 눈물까지' 13곡을 불러야 끝이 납니다.

그래서 '이별의 부산항'을 부르다가 결국 이혼한 것입니다. 마음속에 들려오는대로 되는 것입니다.

내 운명을 내 말로 이루고 있습니다. 말은 씨가 됩니다. 그러므로 열매를 맺습니다.

무슨 열매를 맺어있는지 말씨대로 결정이 됩니다. 혀를 쓰기 좋아하는대로 그 열매를 먹게 됩니다.

좋은 말 쓰기 좋아하면 좋은 열매를 먹게 됩니다. 나쁜 말 쓰기 좋아하면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말 한마디'라는 짧은 시가 있습니다.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싸움의 불씨가 되고

잔인한 말 한마디가 삶을 파괴한다.

쓰디쓴 말 한마디가 증오의 씨를 뿌리고

무례한 말 한마디가 사랑의 불을 끈다.

은혜스러운 말 한마디가 하루를 빛나게 한다.

때에 맞는 말 한마디가 긴장을 풀어주고

사랑의 말 한마디가 축복을 준다.



우리는 모두 다 말로서 내 운명을 창조해간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좋은 말로

씨를 심어 나도 좋고, 남도 좋고 자손 대대에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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