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고 네 아비를 용서한다

 

조선 성종 때 큰 가뭄이 들었다. 조선 팔도 전역에서 기우제를 지내는 백성들의 간절한 바램을 외면할 수 없었던 성종도 금주령을 내리고 직접 논으로 나섰다. 뙤약볕 아래에서 농부들과 논을 둘러보던 성종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풍악소리에 놀라 벽력같이 고함을 쳤다.

"당장 가서 소리의 진원지를 캐오너라."

냉큼 다녀온 신하가 근처에 있는 감찰사 김세우의 집에 잔치가 벌어졌다는 전갈을 가져오자 성종은 다시금 불같이 화를 냈다.

"백성들이 이렇듯 고생하고 있고 하물며 짐도 반찬 가짓수를 줄이고 있는데 나라의 녹을 먹는 자가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이요!"

성종은 김세우는 물론 잔치에 모인 사람 모두 한 명도 빠짐없이 잡아들이라 는 엄명을 내렸다. 김세우의 가족들은 궁리끝에 아들들의 이름으로 용서해 주기를 간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러자 성종은 더욱 화가 났다.

"국법을 어긴 주제에 어린 자식들을 내세워 용서를 받으려 하다니..."

성종은 그의 아들 모두를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미리 소식을 전해들 은 김세우의 아들들은 재빠르게 몸을 피해 멀리 달아났다. 군졸들이 김세우의 집에 들이닥쳤을 때는 어린 소년만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바로 김세우의 열 살된 아들 김규였다. 군졸들은 왕 앞에 김규를 데려갔다. 임금이 물었다.

"네 형들은 다 도망갔는데 어이하여 너는 남았느냐?"

그러자 어린 소년이 야무지게 대답했다.

"아비를 구하기 위해 상소를 올린 것이 무슨 죄가 된다고 도망가겠습니까?"

성종은 당찬 소년의 대답이 하도 기특해 `가뭄'에 관한 글을 지으면 아버지를 석방하겠노라고 약속했다. 소년은 단숨에 글을 지어 임금께 받쳤다. 글을 훑어본 성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글을 보고 네 아비를 석방하고 네 글시를 보고 네 아비의 이웃을 석방 한다. 아버지에 대한 그 효심으로 나라에 충성하도록 하여라."


 


'말씀과 찬양의방 > 설교 예화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용서하는 마음이 없이는  (0) 2017.08.22
패륜아의 눈물  (0) 2017.08.18
오리털의 무게?  (0) 2017.08.10
죄가 밉지 사람이 밉나?  (0) 2017.08.02
종이 울지 않는 이유  (0) 2017.07.21

+ Recent posts